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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대문학기행을 적고 있습니다. 상해에 있는 영화 <색·계>의 촬영현장을 찾아갔던 인연으로 작가 장아이링의 <적지지련>을 읽었습니다. 1920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청나라 관료의 후예이자 수구파였던 장즈이(張志沂í)와 해외유학파 신여성 황이판(黄逸梵)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홍장 북양대신의 외증손녀였습니다. 상하이의 성모여학교를 졸업하고 홍콩대학 영문과에 진학했습니다. 1941년 일본이 홍콩을 점령하고 상하이로 돌아와 생계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상하이를 접수한 뒤에도 활동을 이어갔지만, 사회주의 건설의 낭만주의가 시들고 정치적 광증이 거세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1952년 홍콩으로 망명하였다. 이 무렵 홍콩주재 미국 공보처의 지원을 받아 <앙가(秧歌)>와 <적지지련(赤地之戀)>을 썼습니다. 하지만 홍콩에서 정착할 수 없었던 그녀는 1955년 난민자격을 얻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창작활동을 이어 갔지만 전성기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 죽음을 맞았습니다. 사후에 전성기 시절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1980년대에는 타이완 문단의 ‘어머니’로 칭송되었고, 사회주의 역사관이 물러난 대륙에서도 복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색·계>는 그녀를 친일작가, <앙가>와 <적지지련>은 그녀를 반공작가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앙가>와 <적지지련>은 지금도 대륙에서 출판되지 못하는 금서입니다. <앙가>는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이후 토지개혁을 거치며 기아에 허덕이던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내용입니다. <적지지련>은 역시 주인공이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시행된 토지개혁과 삼반 운동, 그리고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등 중국 공산당의 실체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이징 대학을 갓 졸업한 류취안은 공산정권이 주도한 대학생 토지개혁단의 일원으로 시골 마을 한자퉈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황쥐안이라는 여학생을 만나 호감을 갖는다. 봉건적인 대지주의 재산을 몰수해 빈농에게 재분배한다는 토지개혁운동이었지만, 이미 부패한 당 지도부의 잇속차리기와 원칙 없는 일처리를 보면서 두 사람은 실망하게 됩니다. 토지개혁운동이 마무리될 무렵 류취안은 상하이로 발령을 받고, 황쥐안 역시 다른 사업에 참여했다가 상하이로 옮겨오게 됩니다. 상하이의 당 기관지 《해방일보》에서 일하게 된 류취안은 미모의 여간부 거산과 엮이지만, 상하이로 발령을 받은 황쥐안이 찾아오면서 관계가 복잡해집니다. 그러던 중에 류취안이 신문사 내부의 횡령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으로 공안국에 체포되고, 황쥐안으로 인하여 없던 혐의를 뒤집어 쓰고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면서 황쥐안은 류취안의 목숨을 구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에 실망한 류취안은 은 거산에게 도움을 청하고, 거산은 황쥐안에게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황쥐안은 류취안을 구하기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영문도 모른 채 풀려난 류취안은 뒤늦게 진실을 알고 괴로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다.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하여 북한(조선)을 돕는다]를 내세운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한 것입니다.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부상을 입고 한국군에 투항한 류취안은 반공포로로 분류되었다가 마지막에 중공해설원의 회유에 응하여 타이완이 아닌 중공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중국 소설은 제목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적지지련(赤地之戀)>의 적지(赤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사전적으로는 ‘가뭄이나 병충해 등으로 황폐화된 땅’인데 붉은 땅, 즉 공산화된 중국에 대한 은유로 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련(戀)은 청춘남녀의 사랑을 가리키는가 하면, 적지(赤地)에 대한 주체의 애정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직접 정한 영문판 제목이 <Naked Earth>인 점을 보면 헐벗은 땅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보기 드물게 한국전쟁에 관한 소설 가운데 중공군의 시각을 담은 책이라는 점,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중국 공산당의 민낯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특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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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대학을 졸업한 류취한은 공산당 당국이 시행하는 전국 토지개혁의 일환으로 한자퉈란 시골마을로 트럭에 타고 다른 일행과 함께 향한다.
트럭 안에서 본 황쥐안이란 여학생을 본 순간 맘에 들지만 토지개혁의 사업일환이란 거대한 참여때문에 말을 못하고 , 마을에 도착 후 그 곳 간부들과 장리란 사람이 행하는 일에 일멸의 환멸과 자신이 알고있던 마오쩌둥이 실시하라는 정책에 위반되는 사건들을 접하면서 괴로움에 고민하던 중 황쥐안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게되면서 가까워진다.
갑작스런 상하이 발령으로 그녀와 이별을 해야하려던 때에 황쥐안은 그에게 자신의 주소가 적힌 편지봉투를 주면서 다시 만날 기약을 하며 헤어진다.
상하이로 온 류취안은 상하이 당 기관지인 해방일보에서 알게 된 연상의 여인 거산을 만나게되고 눈빛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그녀에게 빠져 연인관계를 이어나간다.
어느 날 뜻밖에 자신과 같은 지역으로 발령을 받은 황쥐안을 만난 류취안은 거산과의 관계를 모르는 그녀 앞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되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를 접으려 하지만 , 내가 갖기엔 싫고 남을 주자니 아까운 류취안에 대한 거산의 질투은 뜻밖에 상사의 횡령사건에 연루되어 공안당국에 류취안이 체포, 구금되면서 틀어지게 된다.
둘 사이를 모르던 황쥐안은 그를 구명하기위해 거산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게된다.
거산으로부터 제의를 받은 황쥐안은 감옥에 있던 류취안을 마지막으로 만나게되고 류취안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던 차, 한국전이 반발한 것을 계기로 전장에 참열을 하게된다.
영화 색.계의 원작자로 유명한 장 아이링의 작품이다.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된 시기적 상황을 알고 읽는 것이 책을 접하기에 앞서 도움이 될 듯 싶은데, 이 소설이 쓰여진 때는 중국을 버리고 홍콩에 가면서 홍콩주재 미국 공보처의 지원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상으로 말미암아 읽다보면 반공소설이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데 이런 일련의 과정과 한국전, 그리고 최후에 포로교환 과정에서 다시 고국에 돌아가느냐,아니면 타이완으로 가느냐를 두고 회유의 정책을 듣는 과정에서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중국 내에서는 출판금지 책이라고 한다. 아마도 자신들의 사상과 인민 해방 운동을 한답시고 지주와 빈농, 중간농의 재산 분배과정에서 오는 공정치 못한 처사의 행동들을보인 당원들의 묘사와 항미원조라 불리는 한국전을 대상으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꼬임에 넘어가 전선으로 가게된 힘없는 사람들의 하소연 같은 것은 분명 자신들의 사상에 위배되는 상황이기에 금서가 되지 않았나 싶다.
류취안은 거산이 계획한 계략에 황쥐안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맘에도 없는 사람과 생활할 것이란 말 한마디로 전장으로 자원을 하게 되고 이는 류취안 뿐만이 아니라 아마도 당시에 자신을 구해준 동료들도 마찬가지 사정을 지녔다는 것을 작가는 한 개인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상과 이념, 그리고 사랑을 하는 가운데 어떻게 인생이 휩쓸려가는지에 대해 그려나가고 있다.
"적지지련"- 붉은 땅, 공산주의가 문득 떠오르지만 영어의 원 제목을 보면 척박한 땅, 벌거벗은 땅의 뜻으로 쓰였다.
전장의 참혹한 상황에서 남한의 병사들 손에 구해져 포로병원을 거쳐 포로수용소에 갇히면서까지 포로들이 겪었을 상황에 대한 조바심, 제 3국으로 가야할지, 아님 다리는 잘려도 고국으로 돌아가야한단 생각으로 일관된 주관을 가질지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들은 읽는 내내 우리나라가 겪었던 포로생활을 했었던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독자의 허를 찌른 류취안의 고국송환의 바램은 자신의 힘은 보잘 것 없지만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인다면 좀 더 나은 세상을 구할 수도 있지 않겠나하는 생각과 황쥐안이 자신 때문에 희생을 치른 양심의 가책으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 생각을 한 생각엔 수긍을 할 수가 없게 한 점도 눈에 뛴다.
전반적으로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뜻과는 다르게 어려운 사랑을 하는 남녀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이란 생각과는 달리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한국전에 자원한 류취안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황쥐안과 거산의 그 이후의 이야기들은 흐지부지 없어져버린 부분이 아쉽게 남는다.
영화 색.계에서 보여준 이야기의 강렬한 흐름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작품이기도 하고, 두 남녀간의 좀 더 끈끈한 인연의 진전도를 보여줬음 이 소설의 제목이 말하는 뜻과도 부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