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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는 방학 때면 어김없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 전시회를 둘러보고 감상문을 써오는게 숙제의 일부분이라 의례 인기있다는 음악회나 미술전시회를 미리 알아두었다 방학에 맞춰 가곤 했답니다. 그렇다고 미술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가 있는 건 아니였지만 그냥 그림앞에 서서 바라보는 그 자체가 좋았고 방학 중에는 평일, 그것도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 탓에 조용한 분위기에서 평소 볼 수 없었던 좋은 그림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서 그 시간이 좋았답니다. 마치 그림의 소장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했답니다. 지금도 간혹 그 당시의 기억이 떠오를 때면 아침 일찍 서둘러 전시회를 찾곤하지요. 하지만 평일엔 웬만해서 시간을 낼 수 없기에 고작해야 주말을 이용할 수밖에요. 하지만 워낙 사람들이 많다보니 뒷사람에 밀리기 일쑤고 인기있는 그림 앞에 머물기가 미안해져 서둘러 지나가게 되더군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예전의 한적한 미술관이 그립더군요.
여행 중에 운좋게도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맞닥뜨리게 되면 계획에 없던 관람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생기게 된딥니다. 비록 미술관이 그다지 유명하지 않아도 전시된 작가가 알려진 작가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그럴때면 여행지보다는 그림이 더 기억에 남는 답니다. 그림을 매개로 추억의 장소를 더듬다 보면 여행의 감동이 되실아 나기도 하고요. 특별한 경우엔 그 이름 없는 작가가 몇년 후에 유명한 화가가 되거나 그의 그림이 엄청난 가격에 팔리게 되었다는 기사를 보게 될 때는 사인이라도 한 장 못 받은 걸 애석해 하기도 하지만 그림으로 인해 그 장소는 잊을 수 없는 장소가 되기도 한답니다.
언제부턴가 바쁘다는 핑게로 미술전이나 전시회를 찾는 발걸음이 뜸해지게 되었고, 일부로 시간을 내서 찾아다니던 전시회와 발푸팔아 손에 넣은 팜플렛을 뒤적이던 손길이 작가의 그림 에세이나 화가의 일생과 작품을 그린 책이나 작품집을 넘기게 되었네요. 실제 그림을 보는 것만 못해도 그림을 바라보는 방법도 여러가지란 걸 알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림에게 나를 맡기다>는 그리 에세이지만 작가 자신의 인생과 추억을 그림과 함께 책에 담았답니다. 그림쪽 보다는 어찌보면 작가 개인의 추억과 감상, 느낌이 묵직하게 다가 옵니다. 에세이다 보니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무게가 실렸지만 여행중에 만났던 미술관 한 켠의 그림을 떠올리며 추억과 감상에 젖은 작가의 시선을 따라 그림을 바라보면 제 자신이 마치 그 장소에 서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됩니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오기도 하고 말이지요. 책은 그림에 관한 이야기와 더블어 작가의 추억을 공유하게 합니다.
길 위에서 만나 소중한 인연과 작가와 작품 들을 소개하는 글을 읽다보면 카라바조, 렘브란트, 존 싱어 사전트, 프리다 칼로, 반 고흐와 같은 익숙한 화가를 만나기도 하고 베이컨, 발튀스, 에드워드 호퍼, 사이 톰블리, 토마스 스트루스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등 전혀 접해보지도 못했거나 어렵게만 여기던 현대 작가들까지 폭 넓게 만나볼 수 있답니다. 애써 피하려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예서 만날 줄은 미처 몰랐지만 이 책의 저자는 미술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그림과 작가에 대한 지식 또한 만만치 않더군요. 덕분에 작가의 상상력과 더불어 페이지 곳곳에 시의 형태로 쓰여진 글들을 통해 어렵고 딱딱할 수 있는 미술작품이 훨씬 쉽게 다가오기도 했답니다. 더 많은 작품들이 책에 소개되지 못한게 못내 아쉽지만 색다른 미술관람이였으며, 이 또한 혼자만의 느긋한 감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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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보는 건 좋아한다. 어떤 화풍의 그림인지 어느 화가의 작품인지는 몰라도 좋은 그림은 그냥 봐도 좋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림 분야쪽에는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이쪽 분야의 책을 더 많이 보게 되니 나쁘지만은 않은것 같다.
게다가 요즘은 그냥 그림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다양한 분야가 접목되어서 그림을 또다른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롭다. 게다가 '영혼을 어루만지는 그림'이라니 눈길이 갔었던게 사실이다.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면 모르던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모르고 보면 자신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단순히 그림들에 대한 설명적 내용을 담고 있기 보다는 그림과 함께 저자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도 담겨져 있어서 그림에세이 같이 느껴진다.
제법 많은 그림들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완전히 생소한 것도 있고, 나름대로 많이 보아온 그림들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본적이 있는 루벤스의 <한국 남자>가 인상적이다. 경매 시장에 나왔을 당시의 제목은 <한복 입은 남자>였다고 하는데 미국 폴 게티 미술관에 있다고 한다. 그의 이목구비에서 서양인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고 이것이 안드레아 코레아라는 이름의『베니스의 개성상인』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는 그의 존재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러니 우리는 그속에서 역사적 사실과 허구 작품과의 관계에서 '상상'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니 <한국 남자>의 정체는 그림을 보는 이마다 다르게 나타날 것 같다.
모네 <백수련>
반 고흐 <꽃 핀 편도나무 가지>
그리고 책속에 소개된 그림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화가를 꼽자면 단연코 모네와 빈센트 반 고흐다. 그중에서도 반 고흐의 작품 <꽃 핀 편도나무 가지>는 왠지 동양적으로 느껴져서 더 좋은 것 같다. 그가 그린 최초이자 유일한 봄에 대한 환희의 표현일 것이라는 이 그림은 추운 겨울을 이겨낸 봄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우리나라의 민족성과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림만 보는 것도 좋고, 그 그림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과 저자의 주관적인 감상을 함께 읽는 것도 좋을것 같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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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속이 복잡하고 답답할 때는 글을 읽거나 그림을 보는 것이
표지의 자매는 나의 7살 터울인 여동생을 생각나게 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이라는 그림을 보았다.
그리고 프리다칼로의 자화상을 본다.
현실 직시를 통해 현실을 이겨내기. 이제는 프리다칼로의 자화상을 보며 그것을 배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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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참 좋아한다. 디자인을 전공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색채와 형태로 표현되는 그림들은 항상 시각적인 미려함 그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해외 여행을 가더라도 일정의 상당부분을 미술관에 할애할 정도로 그림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온전히 나만의 그림을 만나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무리 회화사에 이름을 남긴 그림이나 조각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이들에게 특별한 그림으로
다가오는 경우는 좀처럼 만나보기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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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베데레 궁전에서 만난 구스타프 크림트의 '키스'는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를 감동시켰다
그 감동을 계속 내 머리와 가슴과 눈에 담아보고 싶어서 보고 또 보느라 여러번을 왔다갔다 했고 그 그림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이것이 그림이 주는 감동이고 감탄이고 행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그리고 먼 훗날 나의 화실을 만들어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전시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고 소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림을 보고 감상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기에 유럽의 여러나라에 있는 유명한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이 나의 여행의 목적 중 한 일부분이고 행복이고 내가 세계여행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 [그림에게 나를 맡기다]에서는 화가와 함께 화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그들의 작품 속 이야기를 저자의 관점에서 함께 찾아볼 수 있고 그 작품들이 품고 있는 깊이 있는 감성조각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내가 가보지 못한 갤러리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고 맛깔스럽게 작품을 소개하고 그 작품과 연관하여 저자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낸 것도 좋았고 저자의 감성적인 부분을 그림과 함께 녹아져 있는 것도 좋다.
작가의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비중을 더 많이 둔 탓인지 이 책에 나오는 화가와 작품에 대한 깊이 있고 숨은 작품 내면의 가치를 돌아보는 관점이 줄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개인적인 감성에 호소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가지게 한다.
나는 그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예술적 가치를 더 많이 언급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책 [그림에게 나를 맏기다]에서 저자의 삶을 조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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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그림에게 나를 맡기다.(함정임: 마로니에북스, 2012) 노마디즘 [nomadism] 그림 에세이
"이 책은 소설을 본업으로 '예술로서의 삶"을 추구해온 내 오랜 신념의 한 장면이다." - 함정임
사실과 허구의 경계선상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그림의 가치를 존중하는 가운데 펼쳐진다면 그림은 더욱 색다르고 매력적이라고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실현시킨 작가의 글을 만난다는 것은 즐겁고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
<일상을 예술로 예술을 일상으로 삶의 전환이 펼쳐지는 한 영감은 계속 된다.>
자신을 소설가로 소개하는 작가 함정임은 현재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는 작가의 말이 반영되어 있듯이 <그림에게 나를 맡기다>는 일상과 예술의 가까운 공간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와 에세이 그리고 미학이 한데 섞여서 작품 속 그림과 함께 또 다른 작품이 된 <그림에게 나를 맡기다>는 조금은 독특한 마치 '노마디즘 [nomadism]'*의 형식을 따라 쓰여진 책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책의 형식을 찾기 보다는 작가의 삶의 편린들을 찾아 맞추는 과정이 더 의미있는 책>
<그림에게 나를 맡기다>는 2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행복과 기묘한 일상이라는 테마 가운데 그림과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 표지와 제목을 본다면 그림을 주제로 설명하는 책일듯 싶지만 이 책은 그림에서 얻어지는 영감과 작가의 삶이 한데 어우러진 에세이로 보여집니다. 특정한 형식과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내면적 자아와 삶의 가치를 그림과 함께 풀어쓰는 글은 미학관련 서적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기에 즐겁고 흥미로운 느낌 가운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카라바조, 렘브란트, 존 싱어 사전트, 프리다 칼로, 반 고흐와 같은 익숙한 화가부터 베이컨, 발튀스, 에드워드 호퍼, 사이 톰블리, 토마스 스트루스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등의 현대 작가들까지 폭 넓게 아우러진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와 작가의 시와 유려한 문장들을 보는 것을 함께 즐길수 있다는 점이 책이 가진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조금은 딱딱하게 느껴지는 미술 감상집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느낌의 책을 찾는 분들이 있다면 <그림에게 나를 맡기다>에 시간을 맡겨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노마디즘: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철학적 개념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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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림을 보여주며 인생과 예술을 말하는 책들을 즐겨 읽습니다. 크리스토프 앙드레의 <행복을 주는 그림>, 이주은의 <그림에 마음을 놓다>, <당신도, 그림처럼>, 손철주의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 <옛 그림보면 옛 생각난다>, 등등. 이런 책들을 읽다보면, 미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뿐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림에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지요. 실제로 두통환자의 방에 맑은 공기가 가득 담긴 숲 그림을 걸어 놓거나, 열병환자에게 샘물 그림을 보여주면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 또 한 권의 그림책을 대했습니다. 함정임의 <그림에게 나를 맡기다>입니다. 소설가가 그림을 매개로 삶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져줍니다. 이 책은 그림에 관해 많은 정보를 주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조카가 결혼할 때, 작가는 프리드리히의 <범선 위에서>를 보여 주었답니다. 그림 속에는 한 쌍의 남녀가 갑판 위에 앉아 손을 잡고 한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은 높은 건물들이 있는 항구 같습니다. 작가는 조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항해는 곧 모험이다. 전부를 걸어야 하는 것이 모험의 세계란다. 너의 전부를 걸 만한 각오가 전제된 사랑만이 타인의 전부 또는 너의 것이 되는 것이다”(p. 54). 작가는 이 책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을 보여줍니다(p. 87). 흰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채 격렬히 키스하는 연인들에게 사랑은 무엇일까요? 호기심, 집착, 동정, 등등 수많은 단어가 떠오르네요. 함정임 작가는 이 그림에서 사랑은 영원하지 않으며 동시에 영원하다는 사실을 읽어 냅니다. 그리고 사랑이 영원하며 동시에 영원하지 않기에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p. 91). 이런 식입니다. 함정임 작가는 때로 그림 옆에 시를 쓰기도 하고, 편지를 쓰기도 합니다. 작가는 자기 자신을 하나의 ‘작품’으로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로 볼 것을 제안했습니다(p. 39). 그리고 한편 한편의 그림에서 예술적 아름다움을 넘어 행복감을 느끼게 합니다. 복잡하고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각종 스트레스로 마음은 지치고 깊은 상처로 얼룩져 있습니다. 치유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데, 이 책은 우리의 지친 영혼을 부드럽게 만져줍니다. 저는 특히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가 마음에 듭니다.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예술가의 작품은 그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진대, 돌아온 탕자에서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영성가 헨리 나우엔은 이 그림에서 돌아온 아들의 어깨를 감싸주는 아버지의 오른손은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용서는 탕진한 아들의 삶을 다시 행복을 향해 출발하게 하지요. 함정임 작가가 이 그림을 한 해의 끝자락에 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 가끔은 그림에게 자신을 맡겨, 영혼의 치유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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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이 넘어서인가? 점점 외로움을 느끼면서 나만의 취미생활. 나만의 생활. 그런 것들을 찾아보게 된다. 그렇게 보게 된 책 하나<그림에게 나를 맡기다> 박물관. 미술관에 아주 간혹가다가 가게 되면 그런 그림들을 전혀 알지도 못하겠고, 왜 흰백지안에 사각형 하나 있는데도 그 그림이 천문학적인 가격을 매기는 지에 대해 도대체 알길이 없었다. p.16 페이지에서 보게 된 말레비치. 이 그림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 이 그림이 놓여진 이유를 보면 추상의 기하학적인 요소를 그림에 넣었기 때문에 그렇게 절대주의 표방에 이르게 된 그림인듯 보인다.
그림은 시대적 상황에서도 앞서나가고 선두주자가 되면, 이렇게 미술관에 전시할 정도로 이름을 높일 수가 있다. 순수. 경쾌함을 원한다면 이렇게 단순 선으로 [말레비치]식 스타일로 그려보는 것도 좋아보인다.
프리드리히 <달을 응시하는 남자와 여자>그림은 작은 사이즈로 34cm정도로 캠버스 유채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 다음 페이지에 넓은 바다 안에 배가 그려져 있으며 축복이 깃들을 수 있도록 책은 편지체로 적혀져 있다.
빛의 속도로 그려진 터너. 월리넘터너의 작품.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이 작품은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 그녀의 눈동자 시선이 매혹적으로 남아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베르메르 작품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된다. 소녀는 아버지가 시력을 잃게 되어 시녀로 팔려가면서 그림의 모델로 또 그려지게 된다.
베르메르의 <물주전자를 든 젊은 여인>을 보면서 그는 꽤 여인의 작품을 많이 그렸다. 시선은 매혹적으로 꽤 미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보면서 유럽의 시대상도 잠시 보면서, 푸줏간의 피냄새, 부엌에서 고기 굽는 냄새, 코르셋 매장까지. 지금은 보기 힘든 광경들을 그림을 통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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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게 나를 맡기다 함정임 지음│마로니에북스 刊
또 그림에 관한 책이 새해에 도래했다. 명화를 놓고 써대는 서사 에세이는 너무 고급한
카라바조 그는 어느 누가 소개해도 사뭇 음영이 짙은 화가다. 명암의 대비가 주는 비장 두 번씩이나 등장하는 베르메르의 너무 아름답고 신비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게서, 물주전자를 든 젊은 여인에게서, 우유 따르는 여인 등 시리즈에서 영혼을 어루만져지고,
역시 세 번이나 출연하는 렘브란트나 베르메르같은 플랑드르 화가들의 일상을 그린 그
저작(咀嚼)감이 좋으면 맛이 있다는 이야기고 독서감이 좋다면 책을 읽을 맛이 퐁퐁 솟
우선 저자의 사진이 좋다, 밀라노 두오모를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고 칼로처럼 찍어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