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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앞에 정지된 개인의 삶
"역사 앞에 정지된 개인의 삶" 내용보기
“당신이 멀리 가신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요!” 스잔나는 요한 모리츠에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7쪽)   게오르규의 『25시』의 첫 문장이다. 루마니아 판타나 마을에 살며 알렉산드로 코루가 집에서 일했던 요한 모리츠는 돈을 벌어 농사지을 땅을 마련하기 위해 꿈의 땅 미국으로 갈 계획이었다. 미국은 오래전 알렉산드로 코루가 사제가 그리스 정교회에 선교사로 부임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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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멀리 가신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요!” 스잔나는 요한 모리츠에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7쪽)

 

게오르규의 『25시』의 첫 문장이다. 루마니아 판타나 마을에 살며 알렉산드로 코루가 집에서 일했던 요한 모리츠는 돈을 벌어 농사지을 땅을 마련하기 위해 꿈의 땅 미국으로 갈 계획이었다. 미국은 오래전 알렉산드로 코루가 사제가 그리스 정교회에 선교사로 부임했지만, 아내와의 결혼 때문에 포기한 나라였다. 요한 모리츠는 스잔나의 아버지 요르그 요르단이 스잔나를 폭행할까 판타나를 떠나지 못한다. 작가였던 코루가 사제의 아들 트라이안은 판타나 마을에 집을 지을 생각이었지만 그 돈을 요한 모리츠와 스잔나에게 준다.

 

스잔나에게 관심이 있었던 헌병대 소장 니콜라이 도브레스코 준위는 요한 모리츠를 ‘불온한 인물’이라며 말이나 가죽이 아닌데도 ‘징발’한다. 요한 모리츠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마을을 떠나게 된다. ‘불온한 인물’이었던 요한 모리츠는 유대인 야곱 모리츠가 되어 루마니아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가 아무리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개인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 요한 모리츠의 일이 자기 생각과는 다르게 흐르자 니콜라이 도브레스크 준위는 자신의 잘못을 들킬까 스잔나에게 집을 징발하지 않으려면 이혼 서명을 하라고 강요한다. 알렉산드로 코루가 사제가 요한 모리츠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지만 허사였다.

 

유대인이었던 엘레오노라 베스트는 트라이안을 사랑했지만 사랑때문이 아닌 운영하던 신문사를 구하고 자신의 생활을 구하기 위해 트라이안과 결혼을 계획했다. 게오르규는 루마니아에 공산정권이 세워지자 독일로 망명했지만, 루마니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수용소 생활을 했다. 게오르규의 아버지는 트라이안의 아버지 알렉산드로 코루가처럼 그리스 정교회 사제였다. 게오르규의 실제 모습과 많은 부분 겹치는 트라이안은 ‘관리, 군대, 정부, 국가조직, 행정 등 모든 것이 힘을 합하여 인간을 질식시킨’다며 ‘지상의 모든 인간이 탁한 공기에 질식되어 무서운 고통을 당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25시>를 쓰고 있었는데 『25시』은 트라이안이 쓰고 있던 것과 같은 주제의 소설이었다.

 

루시안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제 시계가 섰군요. 몇 시입니까, 아버지?”

“25시다!”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지금은 25시다. 바로 유럽 문명이 지금 처해 있는 시간이다.”(190쪽)

 

유대인 수용소에서 만난 의사 아브라 모비치와 함께 헝가리로 탈출한 요한 모리츠는 아브라 보비치의 여동생 로자 나기 집에 머물렀다. 하녀 율리스카와 함께 초콜릿 공장에 일자리를 구하러 가다 불심검문에 걸린 그는 헝가리 적국인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유로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 독일은 속국이었던 헝가리에 노무자 5만 요구했고 ‘국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요한 모리츠는 독일의 헝가리인 수용소로 보내졌다. 요한 모리츠는 동물이 아니었지만 징발당했고, 인간이었지만 팔렸다. 지금이 25시다, 라고 말한 이는 헝가리 정보국 국장인 바르토리 백작이다. 그는 기술 사회인 서구문명에서 인간은 인간 자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사회적 가치의 차원에서만 평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트라이안처럼 게오르규의 또 다른 자아로 보인다.

 

스잔나에게 애칭 야니로, 어머니 아리스티차에겐 세례명 이온으로 불렸던 양켈 혹은 요한 모리츠는 유대인 야곱 모리츠에서 헝가리인 모리츠 야노스가 된다. 그는 뮐러 대령에게 ‘영웅족’이라고 불리며 연구 대상이 된다.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목적 혹은 가치 판단에 따라 수용되거나 폐기되는 대상이었다.

 

제 힘으로는 더 이상 이 괴로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제가 처해 있는 시간은 이제 삶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저는 무거운 살과 피를 지니고 그런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25시, 그야말로 구원을 받기에도, 죽기에도, 살아가기에도 너무 늦은 시간인 것입니다. 실로 모든 것이 너무 늦었습니다.(380쪽)

 

루마니아가 소련에 정복당한 후 아니스티차와 스잔나는 목숨만 붙어 있는 사제를 구해 독일인에 넘겼다. 그 후 아니스티차는 총살당했고 스잔나는 도망쳤다. 요한 모리츠는 프랑스인 조제프와 함께 탈출해 미군 점령지역에 도착했지만, 미군은 요한 모리츠에게 루마니아는 연합국의 적국이라며 수용소로 보냈다.

 

트라이안 코루가와 엘레오노라 베스트 역시 요한 모리츠와 별반 다르지 않게 떠돌았다. 루마니아가 휴전을 청한 이후 크로아티아 사람에게 억류되고 오스트리아, 독일, 체코슬로바키아로 이송되었다. 소련군의 공포정치가 싫어 구원을 향해 탈출했지만 그들이 도착한 곳은 미군의 감옥이었다. ‘25시’의 세계는 개인의 가치는 인정하지 않는 세계이자 개인의 의지로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세계였다. 트라이안 코루가는 탄원서를 쓰며 이름 대신 증인이라고 썼다. 이들에겐 삶의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개인은 삶의 가치를 실천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이 세계를 지켜보는 ‘증인’일 뿐이었다. 보고도 침묵해야 하는 증인 말이다.

 

요한 모리츠는 십삼 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했고 여전히 수용소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공식적으로 자유로웠던 시간은 고작 열여덟 시간이었다. 그는 석방되자마자 동유럽인의 외국인이란 이유로 다시 감금되었다. 요한 모리츠는 인간이었고, 인간이길 포기한 적이 없지만, 인간의 삶을 살지 못했다. 숨을 쉬고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은 아니지 않던가. 아이러니하지만 인간을 존중하지 않고 기계로 여긴 존재는 체제와 문명에 속해 있는 인간, 역사 속 인간이었다. 따라서 인간을 존중하는 문제는 인간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숨을 쉬고 말을 하고 걸을 수 있는 건, 자유롭게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해졌다.

 

 

 



YES마니아 : 로얄 m****6 2013.01.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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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고통의 시간-홍신문화사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고통의 시간-홍신문화사" 내용보기
주님, 제가 더 이상은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가 처해 있는 시간은 이제 이 현실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25시, 그야말로 구원 받기에도, 죽기에도, 살아가기에도 너무 늦은 시간입니다. 주님 이제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의 울부짖음으로 이루어진 이 글의 제목이 밝혀지는 부분이다. 조금의 각색을 했지만 대충 이렇게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절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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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가 더 이상은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가 처해 있는 시간은 이제 이 현실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25, 그야말로 구원 받기에도, 죽기에도, 살아가기에도 너무 늦은 시간입니다. 주님 이제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의 울부짖음으로 이루어진 이 글의 제목이 밝혀지는 부분이다. 조금의 각색을 했지만 대충 이렇게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절규하고 있다. 주어진 상황이, 주어지는 삶의 조건이 너무나 자신의 길을 막고 있는데 대한 심연의 고통을 느끼면서 하는 말이라 생각된다.

 

이 글은 명작으로 소문이 나 있다. 절망에 처한 인간의 섬세한 심리가 그려지고 시대의 부정적인 모습들이 고발되는 수작으로 일컬어져 온다. 20세기 초중반 당대의 동유럽 조그만 나라가 주변의 강국들에게 둘러싸여 존재 가치까지 미약할 때, 이 책은 그 나라에 사는 평범한 한 인간이 겪는 고통의 시간을 적나라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인간적 욕망이 타인에게 얼마나 누가 되는가를 보여주면서 인생이란 것이 어떤 기회로 너무나 손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루마니아 시골의 순박한 농부 주인공 모리츠가 그의 아내를 탐낸 헌병에 의해 유태인이라 누명을 쓰고, 노동 수용소로 압송되면서 그의 고통은 시작된다. 유태인은 어느 민족에게도 호응을 받지 못한다. 곳곳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도 내재한다. 또 연합군들도 그를 적성 국가인 루마니아 인이라고 포로수용소에 감금하고 고난의 삶을 살게 한다. 그는 루마니아에서 헝가리로 헝가리에서 독일로 그리고 수용소 곳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면서 자신이 유태인이 아님을, 또 감옥에서는 무죄임을 지속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약소민족의, 또 감옥의 기계적인 관리 기구의 이유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의 삶은 지속적으로 고통의 구렁텅이로 밀려들어 간다.

 

인간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조직의 살벌함, 인간성이 상실되고 모든 일들이 문명에 의해 조각화되는 현대 사회의 비극성이 글의 부분 부분에서 보여 지는 내용이다. 작은 한 개체는 그 삶이 무시당해도 어쩔 수 없는 사회적인 악, 그것을 통해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인간들의 자각이 필요함을 이 글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전쟁 중이라는 상황이 있지만 일본에서 산다고 전부 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동유럽에 적을 두었다는 이유로 연합군에 의해 체포령이 떨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넌센스다. 그런데 그러한 일들이 버젓이 행해지는 것이 그러한 시대다. 전쟁으로 치닫는 시대가 인간들에게 광기를 불어 넣고, 인간임을 포기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을 주인공은 못 견디면서 힘들어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방 직후 이런 비극들이 많이 발생했다. 어제 같이 살던 사람들도 서로 생명을 노리는 참혹한 관계가 만들어 졌다. 죽장을 깎아들고, 어떠한 수단으로라도 지목한 자들을 색출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인간성이 상실된 상황이 만들어 진 것이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이념이라는 것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이념 놀음으로 그렇게 피를 나눈 자들끼리도 서로 원수가 되었던 것이다. 그로인한 부작용도 많았다. 바로 무고한 민간인들을 이념의 희생물로 만든 일이다. 제주 4.3 사건 거창 신원 사건 등은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20세기 초 유럽에서도 이루어졌다. 연합군은 동유럽 국적을 가진 사람들을 무조건 적국이라는 이유로만 체포하고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자행된 것이다. 크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을 이렇게 떠벌려 숱한 선량한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간 일들이 이 책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 있다. 무고한 많은 희생양들의 삶은 비극 그 자체였다. 그들의 삶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극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인간의 종말이라는 비극을 예지하도록 만들어 가기도 한다.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기 말이오. 인간은 이젠 더 이상 견디어낼 수 없을 것 같소, 관리, 군대, 정부, 국가조직, 행정 등 모든 것이 힘을 합하여 인간을 질식시키고 있소. 현대사회는 기계와 기계 노예에게 봉사하고 있거든. 마치 그것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야. 주인공의 삶을 걱정하는 사제의 아들이 쓰는 소설 속의 글귀다. 그가 그의 아내 로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 주인공으로 질식할 것만 같은 인류들의 삶을 모두 그릴 수가 없기에 몇 사람 등장시키는 인물 중에 주인공 요한 모리츠가 이중적으로 등장한다. 그처럼 인간들이 질식할 것 같은 공간에 살아가고 있음을 20세기 초의 유럽을 중심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소설을 액자로 하고 모리츠의 고난이 그려져 나간다. 그의 삶은 이미 말해진 것처럼 도망과 감옥 생활이 연속적으로 진행되어 나가면서 고통을 받는다. 그의 삶은 질식할 것 같은 삶이다. 어디 벗어날 공간이 없다. 그것이 25시라는 말로 형상화된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오늘의 세상도 경우에 따라서는 소설의 세상과 다름이 없다고 깨닫는다. 공해, 전쟁, 기근, 테러, 자연 재해 등 숨 막힐 수 있는 공간에 살고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으면서 살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삶의 터전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주는 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을 읽으면서 왜 이 글이 명작이 되는지 이유를 깨닫는다. 인간 보편의 문제를 거론하며 내일의 할 일을 제시해 나가고 있는 글이 인간들에게 감동으로, 해결책으로 남는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는 삶, 자연스러움과 공존하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j****3 2013.01.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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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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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과거로 돌아가 버린 것만 같다는 뉴스를 올해처럼 많이 들었던 때가 최근 있었나 생각 하다 '25시'를 떠올렸다.모든 구제의 시도가 무효된 시간 25시! 그러나 트라이안은 25시가 현재의 시간이라고 말한다.인간 존중은 사라지고 오로지 기계인간으로 전락한 인간을 고발하기 위한 소설의 제목으로 25시가 딱 맞는 상징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과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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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과거로 돌아가 버린 것만 같다는 뉴스를 올해처럼 많이 들었던 때가 최근 있었나 생각 하다 '25시'를 떠올렸다.모든 구제의 시도가 무효된 시간 25시! 그러나 트라이안은 25시가 현재의 시간이라고 말한다.인간 존중은 사라지고 오로지 기계인간으로 전락한 인간을 고발하기 위한 소설의 제목으로 25시가 딱 맞는 상징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과거로의 회귀 같은 시간이란 결국 '25시'와 참 많이 닮은 듯 하다.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데 과거로 다시 들어간 것 같은 두려움.그러나 현실은 이미 구제의 시도가 무효가 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총을 겨눈 전쟁이 아니어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음소리의 시작이 어디에서 시작되였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해 보였다.

 

'25시'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그러나기존의 전쟁 소설과는 좀 다른 느낌을 받았다.전쟁으로 인해 현대문명의 종말과 인류가 파멸하게 될 지 모른다는 것을 지적하기 때문이다.기존의 전쟁 소설들 처럼 역사에 유린 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왜 우리가 전쟁을 하게 되였는가에 대한 질문을 좀더 포괄적으로 던져 준다.그래서일까? 전쟁을 다룬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소설로만 읽히지 않는다.오히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 가장 가깝게는 생명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 작태들을 보면서 작가의 냉소에 가까운 지적이 소름돋게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기술사회의 출현이다.이것은 인간에게 편리함과 안락함을 제공했지만 결국 여러 세기에 걸쳐 창조한 것을 파괴하고 인간 멸시의 관념을 끌어 들이게 되였다는 거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으니 전쟁이란 것을 할 수 있는 것일테고,지금의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인간을 하나의 부속품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게 생각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존중이 사라지는 시대로 가고 있는 시간은 '25'시 였다.

도대체 이런 삶이 있을까 싶은 순박한 농부 요한 모리츠와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어 두려웠던 작가 트라이안의 인생을 따라가면서 숨쉬기의 곤란을 수없이 느껴야만 했다.밑줄과 한숨의 연속으로 읽었지만 문체의 흡인력은 잔인하게도 놀라워 단숨에 읽어 버렸다.이렇게 속도감 나게 읽어도 되는 걸까 싶게...

찬찬히 다시 읽어 봐야 겠지만...시간을 좀 흘려 보내고 난 후에나 가능하겠다.

 

 

사람들은 이 사회를 논리적인 질서로써 구원하려고 하지만 결국 바로 그 질서가 이 사회를 죽이고 있는 거야.이것이 서구 기술 사회의 죄악이다.그들은 산 사람을 죽이고 인간을 이론과 추상과 계획의 희생물로 만들어버리지.그것이 바로 인간을 희생물로 바치는 현대적 형태야./403

 

 

정의와 자유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광기라고 간주하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446

w*******i 2014.11.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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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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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님들 안녕하세요. 오늘 루루공주 서하맘이 소개해드릴 책은 세계문학 시리즈 중 한권입니다. C.V. 게오르규 작품인 '25시'예요.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판타나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순박한 농부입니다. 그의 아내를 탐냈던 헌병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가면서부터 그의 비극은 시작됩니다.     헝가리로 탈출하여 또다시 첩자의 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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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님들 안녕하세요.

오늘 루루공주 서하맘이 소개해드릴 책은 세계문학 시리즈 중 한권입니다.

C.V. 게오르규 작품인 '25시'예요.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판타나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순박한 농부입니다.

그의 아내를 탐냈던 헌병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가면서부터 그의 비극은 시작됩니다.

 

 

헝가리로 탈출하여 또다시 첩자의 누명을 쓰고 고초를 당해야 했으나

다행히도 독일 장교의 눈에 띄어 포로 감시병으로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고,

포로들의 탈주를 도우며 자신도 함께 연합군 점령지구로 도망쳤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그는 백여 곳의 수용소를 전전해야 했고,

체포령이 내려져 석방된 지 채 하루도 안 되어 다시 감금되고 말았습니다.

파란만장한 역사적 비극에 철저히 유린당하고 희생되었던

인간의 내면을 절절하게 그려낸 작품!!

 

 

독일로 망명했지만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비참한 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던 저자의 생생한 체험이 이 소설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요한 모리츠라는 평범한 인간의 비극적 인생을 통해,

약소 국가의 민족이 겪어야 했던 눈물겨운 고난을 재현한 '25시'!!

 

 

이 작품으로 인해 일약 명성을 얻게 된 루마니아의 작가 게르오규의 이 소설,

미국과 소련의 틈바구니에 끼인 약소민족의 고난과 운명을 묘사한

멋진 작품인만큼 세계 명작 중 한권으로 추천합니다...^___^

 

h*****k 2013.01.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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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진정한 정의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
"이 시대의 진정한 정의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 내용보기
이 책은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였고 시인으로도 명성을 높였던 게오르규의 작품으로 역사를 아우르면서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는 정의와 관련된 약자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고 어떤 힘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이어서 가슴 뜨거운 심정으로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진정 우리가 이 세상에서 추구해야할 정의란 무엇이고 약자들의 삶이란 어떤 모습이기에 개선
"이 시대의 진정한 정의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 내용보기

이 책은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였고 시인으로도 명성을 높였던 게오르규의 작품으로 역사를 아우르면서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는 정의와 관련된 약자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고 어떤 힘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이어서 가슴 뜨거운 심정으로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진정 우리가 이 세상에서 추구해야할 정의란 무엇이고 약자들의 삶이란 어떤 모습이기에 개선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어서 오늘도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현실문제들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반성하는 마음으로 책의 내용을들을 음미하면서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모리츠는 농사를 짓는 농부이지만 아내와 얽힌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어지는 수용소 생활은 끝이 날 줄 모르면서 그의 고단하고 힘든 생활은 너무나도 힘겹게 이어지는데, 그것이 결국 자신이 만들지 않고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역사의 비극적인 현실과 그 소용돌이 속에서 힘겹게 삶을 살아야만 했던 소시민의 억울한 모습에서 지금의 이 시대 이 사회에서 나 또한 저러한 위치의 저러한 입장이 아닐까를 생각해보면서 가슴이 아프다는 느낌으로 먹먹해지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 참 궁금하고 호기심이 일어났는데, 그 누구도 구원해줄 수가 없는 '절망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라니, 그것 또한 가슴이 아픈 의미여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삶의 본질과 실체에 대해서 더욱 고민해보고 삶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도록 만들어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철학과 신학을 함께 공부한 저자의 사색의 힘의 내재된 작품이어서 진정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촉구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더욱 밀도 있는 내용의 구성에 감탄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어요.


 

이달의 사락 y****7 2013.01.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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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규]25시
"[게오르규]25시" 내용보기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약 7시간가량 정독으로 한꺼번에 읽어 내려갔다. 이렇게 집중해서 책을 읽어본지도 참 오랜만이다. 처음 읽은 책도 아니고 3번째 읽는 책을.....    그 동안 읽었던 어떤 책들보다 너무 좋았다. 우선 번역자의 번역이 당시 시대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해나가면서 글씨의 크기나 행간 또한 눈에 쉽게 들어와 너무 좋았다. 뿐만 아니라 완역본이다 보니 전에
"[게오르규]25시" 내용보기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약 7시간가량 정독으로 한꺼번에 읽어 내려갔다.

이렇게 집중해서 책을 읽어본지도 참 오랜만이다.

처음 읽은 책도 아니고 3번째 읽는 책을.....

 

 그 동안 읽었던 어떤 책들보다 너무 좋았다. 우선 번역자의 번역이 당시 시대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해나가면서 글씨의 크기나 행간 또한 눈에 쉽게 들어와 너무 좋았다. 뿐만 아니라 완역본이다 보니 전에 두 번씩이나 읽었음에도 그 느낌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1992년 써놓은 독후감을 보아 당시에도 이 책에 상당한 감동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당시 독후감에는 주인공 [요한 모리츠]에 대한 이야기와 수용소 생활, 기계문명에 지배를 받는 현대인들에 대한 감깐의 언급만 돼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때 읽은 책이 완역본이 아니거나 번역자가 모든 초점을 요한 모리츠의 삶에 맞춰 번역하면서 알렉산드로 코루카 사제나 그의 아들 소설가 트라이안 코루카에 대한 언급은 정말 중요함에도 그냥 스쳐지나가 듯 핵심만을 번역했던 게 아닌가 싶다.

 

 모든 사람이 전쟁의 피해자라고 하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요한 모리츠]는 소설의 테마를 이끌어가는 중심적인 인물로 피해자의 가장 중심에 서있다고 한다면 서구 현대의 기계문명의 영향으로 인간성을 상실하고 인간 개개인은 큰 카테고리 속의 하나의 범주에 포함하는 작은 세포에 지나지 않는 기계의 종속에 불과하다는 작가의 현대인의 인간성 회복을 주장하는 핵심의 모티브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트라이안 코루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제가 우리를 침략하면서 강제로 위안부를 끌고 갔듯이 독일도 폴란드 여성을 위안부로 끌어갔던 것을 처음 알게 됐고, 조정래님의 [아리랑]에서 나오는 조선의 백성을 일제가 중앙아시아로 열차를 이용해 강제이주하는 비참한 실상과 같은 것이 유럽에서도 똑같이 자행되었던 것을 알게 됐다.

 

 요한 모리츠는 영문도 모른 채 이리저리 13년 동안 105군데의 수용소를 끌려 다니다 석방되어 아내와 자식들을 만난다. 그 때 맏아들 페드로는 15살이 되었고, 둘째 니콜라이와 스잔나가 소련군에게 강간을 당해 낳은 네 살짜리 셋째 아이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가 꿈같은 행복한 시간을 갖지만 그 행복은 불과 8시간 만에 끝나고, 106번째 수용소로 들어간다.

 

 수용소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군인으로 지원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트라이안 코루카]의 아내인 [엘라오노라 베스트]를 만나 트라이안의 유품인 안경을 전해주면서 트라이안은 인간이기보다 성인이었다고 고백을 하는데 루이스 중위는 요한모리츠 가족의 사진을 찍기 위해 “웃어”라는 명령을 또 받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순간순간 가슴이 먹먹하다. 전쟁 속에서 희생되는 약소국의 비애와 희생되는 사회적 약자인 여자와 약소 국민들. 기계문명 속에 기계의 법칙에 따라 인간성을 상실하고 기계의 노예로 살아가는 현대인들. 25시 속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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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줄거리 -

 

루마니아 판타나라는 곳에서 25살이 된 요한 모리츠는 순수한 청년으로 아니 막연한 내 추측으로 IQ가 90을 넘지 않을 정도의 약간은 바보스런 청년으로 쉰살 정도 된 알렉산드로 코루카 그리스 정교 사제의 집에서 6년간 충실하게 일하던 중 2~3년 돈을 벌어 자신이 사랑한 스잔나와 결혼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스잔나의 아버지 요르그 요르단은 게르만 족 헝가리 인으로 경제적인 여유를 갖고 있으나 사람보다 말을 더 사랑하는 비이성적이면서도 대단히 난폭한 사람으로 스잔나가 남자와 만나는 것을 알고 심한 욕설을 하므로 스잔나는 아버지가 자기를 죽일 것을 두려워해 요한 모리츠와 도망을 가게 된다. 이 일로 스잔나의 엄마 요란다는 요르그 요르단에게 심한 폭행으로 죽게 되고 요르그 요르단은 구속된다.

 

[요한 모리츠]는 스잔나의 집에서 그녀를 데리고 나와 갈 곳을 찾지만 요르그 요르단을 두려워해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아 [알렉산드로 코루카] 사제의 집을 찾아가 도움을 받고, 사제의 아들 [트라이안 코루카]를 만난다.

 

[트라이안 코루카]는 서구 기계문명의 발달로 기계가 인간 20~30명을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보니 기계를 만들게 되고 인간의 필요에 의해 기계가 만들어지는 한계를 넘어 기계의 필요에 의해 인간이 지배되게 되어 인간의 법규와는 관계없는 기계의 법규에 따라 생활하게 되고 기계의 법칙을 준수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의 벌을 받게 되어 인간은 인간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배척당할 수밖에 없고 결국 인간은 기계에 종속되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렇듯 모든 구제의 시도가 무효가 된 시간. 메시아의 왕림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시간. 최후의 시간이 아니라 최후의 시간에서도 한 시간이나 더 지난 시간. 서구사회의 정확한 시간인 현대의 시간인 [25시]라는 소설가 다.

 

한편 아내를 폭행해 죽게 한 [요르그 요르단]은 2년을 복역하고, 석방되어 SS(나치 돌격대) 하사관으로 지원해 마을을 떠나고, 요한 모리츠는 [트라이안]에 게 받은 돈으로 [스잔나]와 땅과 집을 장만해 아이 둘을 두고 더 없이 행복한 삶을 누리는데 당시 헌병소장이 [스잔나]에게 관심을 갖게 되어 관심을 갖게 되어 [요한 모리츠]가 없을 때 그녀를 차지할 욕심으로 [요한 모리츠]를 유태인으로 만들어 징집 당해 운하 건설 현장에 투입된다. 자신이 파 놓은 운하를 보면서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기대하지만 그 꿈은 수포로 돌아간다.

 

한편 [알렉산드로 코르카]와 [트라이안 코루카] 부자는 요한 모리츠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그 사이 요한 모리츠는 수용소에서 만난 의사 [아브라모비치]는 그 일행이 미국으로 탈출하려는데 그들의 짐을 나르는 일꾼으로 함께 데려가겠다는 조건을 수락해 수용소를 탈출해 헝가리로 무사히 입국하지만 헝가리에서 [아브라모비치]는 [요한 모르츠]를 그곳에 떼어 놓고 미국으로 가고 요한 모리츠는 헌병에게 붙잡히게 된다.

 

요한 모리츠는 수용소 탈출과정을 이야기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양켈이라는 이름이 바뀐 채 루마니아의 스파이로 침투됐을 거라는 이유로 심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독일 나찌는 헝가리에 지원병력을 요청하게 되고 힘없는 헝가리는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데 헝가리 내 의식있는 바리스토 백작은 이 일에 대해 “자신들의 인간의 사랑과 존중이 없이는 유럽문화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며, 지금은 [25시]라고 말한다.

 

한편 [트라이안 코루카]는 신문사 사장으로 있는 유대인 [엘레오노라 베스트]를 사랑하여 청혼을 하지만 번번히 거절당하는데 나찌의 인종차별에 부모에 관한 유대인 서류를 모두 빼오게 하고, [트라이안 코루카]와 결혼을 하므로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탈출을 시도한다.

 

독일로 팔려간 요한 모르스는 [야누스]라는 이름으로 수용소 공장으로 배속되어 기계가 요구하는대로 기계에 지배를 받으면서 일을 하면서 루마니아에서 감금당하고 매를 맞는 것보다 헝가리에서 살을 뜯어내던 그 어떤 고문보다 독일인들의 악랄한 행위보다 기계에게 지배당하는 일이 두려운 상태에서 프랑스인 [조제프]를 만나 위로를 받으면서 그곳에서 폴란드 여성들이 위안부로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수용소에서 장교들의 발칸어 통역에 착출된 요한 모리츠는 게르만족을 연구하는 [뮐러 대령]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뮐러대령은 요한모리츠를 외모에서 게르만족의 순수혈통 영웅족의 후예라고 인정을 하여 경비대에 보초병으로 배치되게 되지만 폐렴에 걸리게 되어 병원에 입원을 하게되는데 거기서 군의관을 통해 [힐다]양을 만나게 되어 결혼을 하여 아들 프란츠를 낳고 단란하게 살아간다.

 

독일의 패전 소식이 들려오며 수용소에 있던 조세프 일행은 프랑스로 탈출을 계획하면서 자신들의 보초를 맡고 있는 요한 모리츠에게 함께 탈출할 것을 권유한다. 프랑스가 독일을 점령할 때 힐다와 프란츠를 제일 먼저 구출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들과 함께 프랑스로 탈출한다.

 

[요한 모리츠]가 탈출하고 독일이 점점 밀리면서 요한 모리츠의 아내가 사는 [힐다]의 집에 스잔나의 아버지 [요르그 요르단]중위가 찾아와 자결을 하는데 [힐다]에게 화장해줄 것을 요청하자 휘발류를 뿌리고 불을 붙이다가 집에 불이 붙어 힐다와 아들 프란츠까지 한꺼번에 죽게 되고, 프랑스로 탈출한 [요한 모리츠]는 미국 연합군 측에서 처음에는 융숭한 대접을 받지만 루마니아가 연합군의 적국이므로 [요한 모리츠]는 당연히 적으로 간주된다는 법리에 따라 다시 수용소로 보내진다.

 

독일이 점점 밀리면서 악랄한 소련군이 판타나 마을을 점령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숲속으로 도피하지만 알렉산드로 코루가 사제는 사제로써의 본본을 다하며 교회를 지키는데 [요한 모리츠]와 함께 유태인으로 끌려갔던 [마르쿠 골덴베르크]가 점령군의 인민법정의 의장이 되어 나타나 학살을 자행하는데 알렉산드로 코루가는 총을 맞지만 요한 모리츠의 어머니 아리스티차와 스잔나의 도움으로 후퇴하는 독일군 차에 후송되어 두 다리는 절단되지만 목숨은 건지고

 

[트라이안 코루가]와 [엘레오노라 베스트]는 엘레오노라가 유대인이기에 나찌를 피해 달아났다가 독일이 패망하고 소련군이 점령군으로 들어오자 미군정의 진영으로 200키로를 걸어 피해가지만 인간에게는 관심이 없고 모든 것을 획일화해서 규칙에만 굴복하고 있는 미군정에 의해 처참한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다.

 

[요한 모리츠]와 [트라이안 코루가]는 우연히 올드루프 강제수용소에서 만나게 되고 서로를 의지하면서 [트라이안 코루가]는 지구상에 나타난 [시민]이라는 새로운 동물은 기계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괴상한 잡종이 나타나 인간성을 말살한다는 것과 작가란 진리를 인간에게 제시해줌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부르럽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우쳐주면서 많은 탄원서를 쓴다.

 

탄원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1호 : 비좁은 수용소와 열악한 식사로 인한 지방 결핍. 2호 : 영양결핍으로 인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비난. 3호 : 불구자들에게 제공하는 음식이 아까울텐데 더 줄이라는 비난. 4호 : 포로들을 더욱 굶주리게 하므로 남성들은 호르몬 변화로 여성을 만들고, 여성들에게 과잉영양공급을 해 남성으로 만들어 군사력을 키우라는 힐난 등..

 

말을 싣는 열차로 수용소를 옮겨 가는 비참한 실상은 지옥도 그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열차 이동 중 요한 모리츠는 밖에 있는 프랑스 사람을 보자 함께 탈출했던 [조제프]로 착각해 독일어로 인사를 했으나 그 프랑스 사람들은 독일말을 듣자 돌을 던지고 같은 포로들에게도 몰매를 맞는다. 물을 마시고 싶어하는 요한 모리츠에게 물을 줄 수 없고, 자신의 피라도 주고 싶어하지만 트라이안의 주변에서 유일하게 피를 맛보지 않은 사람으로 진정인간을 사랑한 당신만이 인간이라면서 피를 보는 인간으로 사느니 차라리 죽더라도 피맛을 보지 말라고 한다.

 

트라이안이 쓴 요한모리츠에 대한 진정서의 내용 중 일부가 가슴 속에 남는다.

“저는 하나의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잘못이 없는 이상 아무도 저를 가둬놓고 괴롭힐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생명과 저의 그림자는 바로 제 것입니다. 당신들이 어떤 사람이든, 탱크와 기관총과 비행기와 수용소와 엄청난 돈을 소유한 사람이더라도 저의 생명과 영혼에 손을 댈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한평생 소원이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일을 해서 양식을 얻고 처자식과 함께 지낼 수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보고 요한 모리츠는 눈물을 흘린다.

 

열다섯 번 째 다름슈타트 수용소로 이감됐는 때 거긴 그리스정교의 교회가 있었는데 빨간 물감이 없어 담배값에 나타난 붉은 종이를 오려붙인 십자가를 보면서 자신의 상처를 호소하러 왔던 트라이안은 주님의 상처가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위로하며, 가슴에 Menu Unit의 종이상자를 잘라서 쓴 것을 보면서 “당신은 신앙과 빵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모두 상징하고 있다”며 큰 감동과 함께 기도를 올린다.

 

“주님. 제가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제 힘으로는 더 이상 괴로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제가 처해있는 시간은 이제 삶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저는 무거운 살과 피를 지니고 그런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25시, 그야말로 구원을 받기에도, 죽기에도, 살아가기에도 너무 늦은 시간인 것입니다. 실로 모든 것이 너무 늦었습니다.” 이것은 기도가 아닌 처절한 절규의 몸부림을 하던 중 두 다리가 절단된 아버지 코루가 사제를 만나 요한 모리츠는 같은 천막에서 생활하게 된다.

 

루마니아에서 요한 모리츠와 함께 탈출했던 아브라모비치는 수용소의 중위가 되어 나타나 한가닥 희망을 걸어보지만 아무런 도움이 돼주질 못하고 코루가 사제는 고문 끝에 죽음을 맞게 된다. 트라이안은 아버지의 장례를 그리스정교회 방식으로 요구하지만 묵살당하자 단식투쟁을 하게 된다.

 

단식투쟁이 장기화되면서 정신이 맑아지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성인에게 나타나는 후광을 발견하게 는데 결국 정신병동으로 옮겨지게 되자 정상임을 증명하기 위해 식사를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수용자들에게 흥분제를 투여하는 모습을 보며 미치광이 소굴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본래 수용소로 돌아와 요한 모리츠와 만나 죽음을 결심해 자기가 아끼던 담배 파이프를 요한 모리츠에게 선물로 주고, 쓰고있던 안경을 벗어주며 맡아두었다가 아내 [엘라오노라 베스트]를 만나면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수용소 정문으로 걸어가다 총살을 당한다.

 

영문도 모른 채 이리저리 13년 동안 105군데의 수용소를 끌려 다니던 [요한 모리츠]는 석방되어 아내와 자식들을 만난다. 그 때 맏아들 페드로는 15살이 되었고, 둘째 니콜라이와 스잔나가 소련군에게 강간을 당해 낳은 네 살짜리 셋째 아이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가 꿈같은 행복한 시간을 갖지만 그 행복은 불과 8시간 만에 끝나고, 106번째 수용소로 들어간다.

 

수용소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군인으로 지원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트라이안 코루카]의 아내인 [엘라오노라 베스트]를 만나 트라이안의 유품인 안경을 전해주면서 트라이안은 인간이기보다 성인이었다고 고백을 하는데 루이스 중위는 요한모리츠 가족의 사진을 찍기 위해 “웃어”라는 명령을 또 받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순간순간 가슴이 먹먹하다. 전쟁 속에서 희생되는 약소국의 비애와 희생되는 사회적 약자인 여자와 약소 국민들. 기계문명 속에 기계의 법칙에 따라 인간성을 상실하고 기계의 노예로 살아가는 현대인들. 25시 속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a****1 2013.01.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25시] C.V. 게오르규 - 25시. 인류의 모든 구제의 시도가 무효가 된 시간
"[25시] C.V. 게오르규 - 25시. 인류의 모든 구제의 시도가 무효가 된 시간" 내용보기
25시 C.V. 게오르규   동구의 약소국가 루마니아 출신으로서 역사의 흐름에 따라 자신이 왜 잡혀왔으며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체 ( 개인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단지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느냐가 중요할 뿐.) 마치 핀 볼 게임에서 공이 튕겨지듯 여기 저기 수용소로 튕겨지는 기구한 운명을 그린 이야기.     사제의 아들인 작가 트라이얀 코루가가 소설속에서 쓰는 소설이
"[25시] C.V. 게오르규 - 25시. 인류의 모든 구제의 시도가 무효가 된 시간" 내용보기
25시 C.V. 게오르규
 
동구의 약소국가 루마니아 출신으로서 역사의 흐름에 따라 자신이 왜 잡혀왔으며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체 ( 개인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단지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느냐가 중요할 뿐.) 마치 핀 볼 게임에서 공이 튕겨지듯 여기 저기 수용소로 튕겨지는 기구한 운명을 그린 이야기.  
 
사제의 아들인 작가 트라이얀 코루가가 소설속에서 쓰는 소설이 <25>시. 25시는 기계문명에 의해 인간의 개성과 가치가 말살된 서구 문명으로 인해 인류 최후의 시간에서도 한 시간이나 더 지난, 즉 메시아가 다시 강림한다고해도 아무런 구제를 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을 의미한다.
"우리 개개인은 기계 노예의 사슬에 얽매인 채 죽어 갈거야. 내 소설은 그러한 인류의 종말을 그린 작품이 될 거고"
"제목은 뭐라고 붙일 건가?"
"25시. 이것은 인류의 모든 구제의 시도가 무효가 된 시간이야. 메시아의 왕림도 어떻게해볼 수없는 시간이지. 이건 최후의 시간이 아니라 최후의 시간에서도 한 시간이나 더 지난 시간이니까. 이것은 서구 사회의 정확한 시간, 다시 말하면 현재의 시간을 뜻하고 있네. "66
   
 
기술 사회의 출현은 우리가 여러 세기에 걸쳐 획득하고 창조한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말았어. 기술 사회는 다시 인간 멸시의 관념을 끌어 들인거야. 오늘날 인간은 오로지 사회적 가치의 차원에서만 평가되고있어.
이제 그만하자. 가봐야하지 않겠니? 늦었을 텐데. "
루시안은 손목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제 시계가 섰군요. 몇시입니까, 아버지? "
"25시다! "
"무슨 말씀 이세요? "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지금은 25시다. 바로 유럽 문명이 지금 처해있는 시간이지." 
 
 
루마니아의 시골 마을 판타나의 가난한 농부 요한 모리츠는 미국에가서 3년 정도 일해서 돈을 벌어오면 땅도 사고 사랑하는 스잔나와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꿈에 부풀지만 떠나기 전날밤 스잔나를 만나다가 그녀의 포악한 아버지 요르그 요르단에게 들키는 바람에 스잔나는 집에서 도망을 나오고 요르그 요르단을 스잔나의 어머니를 때려 죽인 후 독일로 도망가고 요한 모리츠는 미국행을 포기한다.
미국행 대신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까지 둔 요한 모리츠는 나름 행복한 생활을 하던 중, 스잔나를 넘보던 헌병 소장 도브레스코의 계략으로 유대인이 아님에도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가고 
유대인 및 불온한 인물을 징발하여 강제수용소로 송치하라는 명력에 따라 두 사람을 구속 송치함. 89
자신이 유대인이 아님을 항변하나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유대인이 세례받는 법을 아나?" 
"압니다." 
"그러면 너는 그들과 같지 않다는 걸 증명할 수 있나?"
"증명할 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정말입니다. 준위 님." 
"밝은 창문 가로 가서 네가 유대식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증명을 보여라!"
준위는 책상 곁을 떠나 모리츠 앞에 무릎을 꿇고서 문제의 부분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100
 
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재산을 모두 몰수한다는 방침을 피하기 위해 스잔나는 이혼서류에 서명을 하고 이를 알게된 요한 모리츠는 절망한다. 
이혼은 간단히 됩니다. 여자 쪽에서 '인종상의 문제'로 남편과 헤어지고 싶다는 걸 문서로 선언만 하면 됩니다. 신청서만 올리면 그걸로 이혼이 허락되지요. 민사재판을 할 것도 없이 구내 행정만으로 처리가 되거든요. 그것이 새로운 법률입니다. 111
 
유대인 수용소에서 헝가리로 탈출하여 미국행을 꿈꾸던 의사 아브라모비치 일행의 짐꾼이 되어 헝가리로 가지만 이번에는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국행에 합류하지 못하고 (자신이 도와준 유대인들을 나중에 만나지만 하나같이 요한 모리츠를 외면하거나 도움에 소극적이다.)오히려 루마니아의 첩자로 몰려 모진 고문을 당한 후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유로 헝가리 수용소에서 수감된다. 이후 헝가리에서 독일로 강제 노동자로 팔아넘겨져서 단추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요한 모리츠는 공장에서 인간이라기 보다는 기계에 맞춘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채플린의 <모던 티임스>를 떠올리게하는 장면
"로봇이 인간에게 적응하는게 아냐. 언제나 너 자신이 그에게 적응해야하고, 너의 동작을 로봇의 동작에다 맞추지 않으면 안 돼. 그것이 당연한 일이지! 왜냐하면 저쪽은 완전무결한 노무자이지만, 넌 그렇지 못하니까 말이야. 어떤 인간도 완전무결한 노무자가 될 수는 없어. 오직 기계 만이 가능할 뿐이야. 그러므로 일을 배우려면 기계를 주시해야 하는거야. 204
 
여자들이 포로들과 자러 온 것은 알고 있었다. 독일은들은 포로들에게 여자를 안겨주지 않으면 일의 능률이 제대로 오르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220
"저들은 강제 수용소의 폴란드 여자들이야. 수용소에 들어온 여자들은 반년 동안만 저 짓을 하면 석방이 되지, 그러나 반년 동안에 그녀들은 완전히 몸을 망쳐 버리고 말지. 수용소에서 풀려나면 곧장 병원이나 보 호소 아니면 공동묘지행이란 말이야. "
"난 그게 저 여자들의 직업인 줄 알았는데. "요한 모리츠가 말했다. 비로소 그 여자들이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로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221
 
그러다가 우연히 우생학에 빠져있는 뮐러대령에게 발견되어 순수 독일 게르만 족의 원형 '영웅족'의 완전한 전형적인 인물로 지목되고
'과학은 눈부시게 진보했다. 그러나 궁극적인 완성까지는 아직도 멀었어, 이 엄선된 표본, 극히 흥미있는 한 인종의 대표적인 인물은 모든 귀중한 전형을 보호하는 인류원에 보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시설은 아직되어 있지 않다. 유럽에는 갖가지 종류의 조류와 동물을 선택하여 보존하는 동물원이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편견 때문에 '인류원 '의 창설은 지연되고 있단 말이야. 이것은 과학적으로 막대한 손실이 아닌가. 이 분야에 있어서는 미국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 그들은 흥미있는 인디언의 표본을 수용해둔 공원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나 장차 우리 유럽에도 그것이 창설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전쟁에 이겨야한다. 다음 회합 때에는 처음으로 인류원 창설을 제의 해봐야 겠어. 그렇게 되면 과학은 표본을 확보하여 누구나 자유로이 그 인종에 대하여 연구할 수있게 되리라. 이'영웅 족 '의 일원은 그 인류원을 장식할 최초의 표본이 되겠지. 그리고 나는 그 기증자가 된다."   230
 노예 노동자에서 SS 돌격대 사병이 되어 순수 독일 여자  힐다와 결혼하고 아들 (프란츠)까지 둔다.
독일 부인과의 어떠한 접촉도 최저 오 년형의 처발을 가한다. 202
 
 하지만 친하게 지내던 수용소의 프랑스인 조제프로부터 독일 패망이 멀지 않았음을 듣고 전쟁이 끝나면 힐다와 아들을 제일 먼저 구해주겠다는 제안에 넘어가 조제프 등 포로 5명과 같이 연합군 측으로 탈출한다. 프랑스인을 탈출 시켜준 공로로 UN RRR호텔에서 지내며 잠시 환대를 받는 듯했으나 다시 적국 루마니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올드루프 강제  수용소에 갇히게되고, 거기서 고향 사제의 아들 트라이얀 코루가를 만난다. 
작가인 트라이얀 코루가는 신문사 사장이자 지식인이던 유대인 아내 엘레노라 베스트와 함께 도주 했지만 역시 적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수용소를 전전하고 있었던 것.
 
고향 마을 판타나에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하루 아침에 다른 세상이되고 지주와 성직자 등이 처형된다. 죽은 줄 알았던 알렉산드로 코루가를 구하려던 스잔나와 시어머니 아스트리차는 신부를 퇴각하는 독일인에게 맡기고, 이 사실이 발각되어 시어머니 아스트리차는 처형되고 스잔나와 아이들은 독일로 도주한다.
소련군에게 쫒기던 스잔나의 아버지 요르그 요르단는 우연히 요한 모리츠의 아내 힐다의 집에 들어가게되고 면도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자신을 화장시켜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하고 소련군이 집에 들이닥치자 집에 불을 지르던 힐다와 아들은 같이 불에 타 죽는다.
독일군에게 인계된 사제는 목숨은 구했지만 두 다리를 잃었고 역시 수용소에 갇혔다가 아들 트라이얀 코루가와 요한 모리츠를 만난다. 사제가 죽게되지만 시체조차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게된 아들 트라이얀은 단식 투쟁을 하다가 정신병자로 몰려 카를스루에 포로병원 (429쪽)에까지 갔다온 후 절망하여 스스로 금지구역으로 걸어가서 총에 맞아 자살한다.
 
"당신은 이 수용소의 어느 포로도 돌본 일이 없습니다. 당신은 관리 기계, 다시 말하면 비인간적인 일에 종사한 것 뿐입니다. 이 수용소의 사람들을 장부나 타자기, 혹은 계산기 같은 것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이 돌본 것은 바로 그런 것에 불과합니다. 시장님, 당신은 한 번도 2 만 명의 인간을 돌본 적이 없습니다. 그 2 만 명은 살과 피와 영혼을가진 인간입니다. 그들은 고통과 신앙과 욕망과 기아와 절망과 공상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들의 살이나 피와 같은 개인적 요소도, 그리고보다 개인적인 요소인 그들의 희망과 절망은 염두에도 없었지요. 당신은 오직 숫자와 서류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당신은 한 사람의 포로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포로 하나도 돌보지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2 만 명의 포로를 위한다고 말하는 겁니까? 참으로 우습군요. 당신이나 제콥슨,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관념이나 추상입니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도,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있는 그런 인간은 아닙니다. 지금 당신의 눈에 보이는 나는 2 만 중의 한 분자에 불과 합니다. 당신이 시간을 허비했다고 화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요. 당신은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 본 일이 없습니다. ......당신은 지구상에있는 어느 한 인간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그중의 한 사람을 돌본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요. 428
 
 
여기에는 수용소에서 죽은 여자들의 머리칼로 침대 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은 그 요 위에서 애인과 사랑을 속삭 인단 말입니다. 매를 맞아 죽고 화장당한 여자들의 머리칼로 만든 요 위에서 그들의 아내에게 애를 배게하는 짓도 하더군요. 그렇게하면서도 그들은 아무런 혐오 나 메스꺼운 기분도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이 잘 만들어졌다고 아주 기뻐 하거든요. 나는 침실과 방 안에 사람의 피부로 만든 전등갓을 해놓고 살던 여자와 한 수용소에서 지낸 일이 있습니다. 그 전 등갓은 누르스름하고 음란한 빛을 발하고있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그 빛 아래서 성교를하고, 먹고, 춤을 추고, 마시고, 동침을 원하는 사나이에게 몸을 맡기고 키스를하면서 행복해 하더군요.
인간들이란 구역질에는 곧 익숙해 지니까요. 이것은 습관과 의지의 문제입니다. 소련 군인들은 여든 살 먹은 노파를 강간 했지요.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한 노파를 차례로 열 번이나 강간 했단 말입니다. 여든 살 먹은 노 파와 관계를 한 뒤에도 그들은 구토증을 느끼기는 커녕 보드카를 마시 며 좋아 하더군요.  423
 
남편의 행방을 찾아 수소문 끝에 스잔나로 부터 편지를 받는 요한 모리츠는 또 한번 절망한다. 스잔나와 두 아이는 무사하지만 소련군에게 능욕당한 스잔나에게 소련군의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 하지만 스잔나의 사랑은 여전함을 알게된 요한 모리츠는 스잔나를 받아들이기로하고 이유없이 체포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100여군데 수용소를 떠돌던 요한 모리츠는 갑자기 석방되어 그리운 가족을 만나고 스잔나와의 사랑을 확인한 것도 잠시. 다시 소련과 서방의 전쟁 (3차대전) 때문에 적성국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동적으로 체포되어 다시 수용소 온 가족이 끌려간다.
이것이 1938년부터 오늘까지 지내온 길입니다. 수용소, 수용소, 수용소에서만 13년을 보냈습니다.
1938에는 루마니아 수용소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40 헝가리  수용소에서는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유로, 1941 독일 수용소에서는 헝가리인이라고, 1945 미군 수용소에서는 적성국가인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유로 포로 생활을 하다가 13년 만에 다하우 수용소에서 풀려나지만 18 시간의 자유 끝에 다시 적성국 주민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잡혀간 것이다.
 
'고작 열 여덟 시간의 자유 였구나! 이제 나는 다시 수용소에 들어간 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대인 이라든가, 루마니아 인, 독일인, 헝가리 인 또는 친위대 원으로서가 아니라 동반구에서 태어 났다고해서 체포되는 것이다 483
 
수용소에서 역시 포로로 통역일을 하던 엘레노라 베스트를 만난 요한은 그녀에게 남편의 유품, 안경을 전해주고, 가족을 수용소에서 빼내기 위해 요한 모리츠의 가족은 지원군에 자원한다.
그 요한 모리츠 가족에게 홍보용 사진을 찍으려는 미군 장교는 요한에게 명령한다.
웃어! 장교는 요한 모리츠를 쳐다보며 명령했다. 웃어! 웃어! 그대로 웃고 있어.....
r*****t 2021.07.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라는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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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시>는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 게오르규가 2차 세계대전과 연합국의 적국인 루마니아 사람이라는 이유로 2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경험을 토대로 쓰인 소설이다. 책은 요한 모리츠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작가의 경험을 좀 더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 내용은 정말 아찔하다 못해 끔찍할 정도이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요한 모리츠는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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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는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 게오르규가 2차 세계대전과 연합국의 적국인 루마니아 사람이라는 이유로 2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경험을 토대로 쓰인 소설이다. 책은 요한 모리츠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작가의 경험을 좀 더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 내용은 정말 아찔하다 못해 끔찍할 정도이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요한 모리츠는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가고자 한다. 하지만 여자친구인 스잔나과 임신을 하자 어쩔 수없이 미국행을 포기하고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이후에는 평범하고 행복한 삶이 계속 되면 좋으련만 아내를 탐하고자 하는 군인에 의해서 그는 강제로 징집 당하게 된다. 명목은 유대인. 하지만 요한은 유대인이 아니다. 뭔가 잘못된 거야 하고 억울해 하면서도 곧 풀려나겠지, 하고 생각한 그의 삶은 더욱 꼬이기만 한다. 며칠이겠거니 했던 가족과의 이별은 6개월 이상 흘러가고. 당시 2차 세계대전의 혼란함 속에서 그는 계속 다른 수용소로 가게 된다.

 

소설이니까 가능한 일이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행동 할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의 를 그들에게 증명할 수 있을까. 국가 또는 집단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다면. 그 희생양이 어떤 이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소설 속 주인공처럼 신에게 살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죽여 달라고 기도할지도 모를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통해 배운다고 하지만. <25와 같은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는 행동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러한 가정을 하기 보다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우리 주변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한번쯤은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다.

j********8 2013.01.2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운명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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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운명이란 참 잔인한 것 같아요.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견디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니까 말이죠.인류의 역사상 잊어서는 안되는 사건 중에 하나가 바로 유대인의 학살이 아닐까요?전쟁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리죠.25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결코 우리들은 살 수 없는 시간.평생, 아니 영원한 시간 속에서 존재할 수 없는 시간인 25시.하지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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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운명이란 참 잔인한 것 같아요.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견디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니까 말이죠.
인류의 역사상 잊어서는 안되는 사건 중에 하나가 바로 유대인의 학살이 아닐까요?
전쟁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리죠.
25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결코 우리들은 살 수 없는 시간.
평생, 아니 영원한 시간 속에서 존재할 수 없는 시간인 25시.
하지만 사람들은 25시를 가지려고 아둥바둥 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의 인생이 왜 그토록 꼬여가는지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요.
정말이지 세상을 살다보면 너무나 착한 사람들이 너무 큰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기도 하죠.
행복이라는 것을 잡았다고 생각할 때 마치 모래알처럼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
그런데 정작 인간은 어떠한 극한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말이죠.
도대체 어떻게 하면 우리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어느 순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사람에게서 버림받고 상처받게 되지만 정작 우리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서 위안을 받고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손에 놓지 않을 수 있는 건 아닐지 모르겠어요.
비록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런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 벌어지지 않겠지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가혹한 운명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모든 것은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고 그 속에서 어떤 삶의 의미를 찾을지는 바로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네요.

n******s 2013.01.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