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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으로 산다
이 책은
이 책 『주체적으로 산다』는 <왕양명의《전습록》읽기> 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은 중국 명나라 시대의 학자 왕양명이 쓴 책《전습록》을 저자 임홍태가 독자들을 위해 해설해 놓은 책이다.
저자 임홍태는 <현 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 성균관대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런민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유교학회 유교사상연구소 책임연구원, 다산학술문화재단 선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왕양명은 누구이며, 그가 쓴 책 《전습록》은 어떤 책인가를 먼저 알아보자.
왕양명은 중국 명나라 중기의 사상가이자 정치가로, 양명학(陽明學)의 창시자이다. 원래 이름은 왕수인(王守仁)인데, 그의 호가 양명(陽明)이어서 원래 이름 대신 호를 사용하여 왕양명(王陽明)이라고 불린다.
《전습록》은 그의 학설과 가르침, 편지글들을 그의 제자들이 모아 편집한 것이다. "전습(傳習)"이라는 말은 『논어』 〈학이(學而)〉편에서 "전(傳)한 바를 익혔(習)는가"에서 나온 것이다.
저자는 왕양명의 책 《전습록》을 토대로 하여,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주체적으로 사는 것인가를 논하고 있다.
이 책의 사용 방법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방법으로 읽을 수 있다. 첫째는 마음공부, 둘째는 경전 공부.
첫째, 마음공부를 할 수 있다.
마음공부 중 으뜸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법을 아는 것이다.
흔히들 말한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과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힘이 든다고. 바로 이 책에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이 들어 있다.
왕양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자기를 이길 수 있다.> (122조목) (232쪽)
원문으로 읽어보자. 有爲己之心, 方能克己
소혜라는 제자가 어느날 양명에게 물었다. “자신의 사사로움을 이기기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양명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너 자신의 사사로움을 가져와봐라, 내가 너를 대신해 그것을 이겨주겠다.”
소혜는 그 말을 듣고, 그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자신의 사욕을 선생에게 가져다 줄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그 사욕을 극복할 방법이 자신의 마음에 달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양명은 다시 말한다. “진실로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사욕을 이길 수 있고, 자기를 이길 수 있어야 자기를 성취할 수 있다,”(232쪽)
자기 자신이 자기를 위하여 뭔가 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자기를 위하여 무어 하나라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또한 맹자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 자신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귀와 눈 같은 감각기관은 생각하지 못하면 물욕에 가려지는 것이니, 물욕과 물욕이 교차하면 사람을 끌고 갈 따름이다.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큰 것을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이는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한 것이니 먼저 그 큰 것을 세운다면 작은 것이 빼앗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대인이 되는 것이다.”(『맹자』, <고자 상>, 제15장)
둘째, 중국 고전 경전 공부를 할 수 있다
주교재는 왕양명의 《전습록》 전습록이다, 그 《전습록》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불가불 중국고전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저자는 『논어』, 『맹자』, 『서경』, 『대학』, 『중용』 등을 들어 《전습록》을 설명하고 있다.
위에 이야기한 마음공부에서, 저자는 자기를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논어』를 거론한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이다.
옛날의 학자는 자신을 위해 학문했지만, 오늘날의 학자는 남에게 알리기 위해 학문을 한다는 『논어』 헌문편(24)의 구절을 들어,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해야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한다. (234쪽)
이런 식으로 저자는 《전습록》 강의를 중국 경전을 들어 하고 있으므로 《전습록》 공부를 하다보면 저절로 중국 고전 경전 공부가 되는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왕양명이 주자의 학설에 맞서 자기 의견을 과감하게 주장한 것처럼, 이 시대에, 확실한 자기 철학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볼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책, 이런 책으로 우리 인생을 북돋아 가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특별히 '말 따로 행동 따로', '아는 것 따로 행하는 것 따로'가 대세인 시대에, 왕양명이 주장한 지행합일의 가르침을 우리 삶의 지표로 삼아 살아간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조금이나마 밝아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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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으로 산다 책<주체적으로 산다>는 왕양명의 [전습록]을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에 수월하도록 현 성균관대 철학교수인 임홍태 교수가 풀어서 들려준다. 간단하게 왕양명과 전습록을 이야기하자면 배우고 아는 것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그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독서 그 자체를 강조하던 분위기가 독서 후 글쓰기로 이어져야 한다고 확장되고 또 이제는 읽었으면 실천에 옮겨야만 제대로 읽은 것이라고 실천을 강조하는 분위기와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왕양명은 지식과 배움을 통해서만이 성인의 경지에 닿을 수 있다는 주자학을 반대하였다. ‘앎은 마음의 본체’라고 말하면서 이미 사람의 마음안에는 우리가 성인이라 부르는 이들의 가치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본 것이다. 더불어 왕양명이 창시한 양명학은 아는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 안다는 것 자체가 실행에 이어질 수 있을 때에만이 진정한 앎이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이자 왕양명이 뜻하는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서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으며 내 자신을 얼마만큼 믿어주고 또 훈련시키고 있었는가 반성하게 되었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믿어주는 것이 답이 아니고 반대로 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의지를 제대로 태울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산상수훈>에서는 스스로 예수가 되어야만 하며 그렇게 노력했을 때 진짜 예수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 마치 불교에서 고행을 통해 열반에 오를 수 있다라는 것과 유사하며 이 책에서도 성인이 각자의 마음속에 있지만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 속 성인을 묻어버린다라고 말한다. 예수가 되는 것, 부처가 되는 것 그리고 성인이 된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참 먼길이며 혹은 지나친 교만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는 바를 실천하고 자신을 믿음과 동시에 지나친 과신을 절제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성인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와 같은 책을 읽을 때마다 어쩌면 가장 좋은 개발서란 결국 누가 쓴 책인지가 아니라 내가 이미 다 아는 것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게 해준 책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더는 자기개발서를 지나치게 맹신할 이유도 그렇다고 거기서 거기인 책이라고 무시해서도 안될 것이다. 왕양명의 말처럼 ‘책을 읽어 성인이 되는 일’이 가장 중요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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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으로 산다》 왕양명의 <전습록>읽기 임흥태 지음 학창 시절에 윤리 시간에 주자의 주자학의 집대성, 즉 성리학과 주자학 비판에서 나온 왕양명의 양명학을 배운 기억이 난다. 성리학이야 조선의 건국 이념으로 조선 시대사상의 기본을 이루고 이황과 이이에 의해 그 학문의 가치가 드높아졌아져 깊게는 아니지만 책으로도 알고 있는데 양명학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고 책도 거의 접해 본 적이 없다. 왕양명은 명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수인이고 호가 양명이다. 주자학을 공부하면서 회의를 느끼고 격물 공부란 외부 사물의 이치를 깨우치는 과정에서 습득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만 가능하다는 깨우침 이르게 된다. 즉 심즉리 사상을 이끌어 낸다. 그의 책 <전습록>에 대해 알고 가야겠다. "전이란 선생께서 가르쳐준 것이고,습은 그 가르침을 받아 내 몸에 익숙하게 하는 행위, 즉 복습을 뜻합니다."p9 전습록에 담긴 책 내용은 왕양명의 제자들이 평소 선생의 말씀과 학문을 논한 편지글이다. 주로 제자들의 물음에 왕양명의 답변하는 형식을 담고 있다. 저자 임흥태는 왕양명의 <전습록>을 그만의 해석으로 새롭게 읽는 시도를 했다. 바로 양명의 핵심 사상인 마음이 곧 이치라고 주장하며 특히 공부하는 사람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이런 양명학의 핵심 사상을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깨우침을 준다. 양명이 훈장에게 이렇게 묻습니다."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훈장은 책을 읽어 과거에 급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양명은 "과거에 급제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책을 읽어 성형이 되는 방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되묻습니다. p28 12살인 어린 양명이 훈장에게 한 질문과 그의 결론이 참 놀랍다. 12살에 이미 그는 학문의 뜻을 두었다. 진정한 성공을 눈앞의 성과가 아니라 내재적 수양으로 공부를 통한 성형의 인격을 배워 자기 인격의 완성으로 여겼다. 이렇게 학문에 뜻을 세우고 학문을 통해 성인의 경지에 오르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은 것이 12살 아이였으니 그의 그다음 행보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반드시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주어야 하며, 덕을 심는 사람은 반드시 그 마음을 길러야 한다. - 115조목 p38 양명은 덕을 기르는 방법을 나무를 심어 기르는 방법에 비유했다. 덕을 기르기 위해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마음이 바로 서는 공부, 이것이 바로 학문의 뜻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렇게 뜻을 바로 세우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 방법을 찾는데 몰두하지 말고 그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고 바로잡을 힘을 길러야 한다. 지금 나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가슴속에 각각 하나의 성인을 지니고 있다. 다만 스스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 스스로 성인을 묻어버리고 말았을 뿐이다. - 207조목 p60 자녀 교육에 꼭 나오는 말이다. 모든 아이들은 자신만의 장점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우리 교육에서는 그 장점을 살리지 않고 아이의 단점을 줄이는 게 모든 노력을 쏟아 진정 타고난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만다는 말이 떠올랐다. 엄마도 마찬가지로 아이의 못하는 것만 눈에 들어와 못하는 것을 잘하게 하려고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엔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 양명학의 말이 또 다른 깨달음을 준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자신을 믿고 선천적으로 내재된 양지를 끊임없이 발현하는 공부를 통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제대로 된 공부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에게 잠재된 능력을 찾는 공부가 필요하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믿고 그 믿음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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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의 전습록은 쉬운 책이 아니다. 철학적 깊이가 깊고, 우리들에게 생소하기 때문이다. 동양학적 기본이 갖추지 않고 바로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책이다. 전습록을 바로 읽기 전에 이 책과 같은 입문서를 읽고 전습록을 읽으면 무척 도움이 될 것 같다. 사견이지만 전습록은 이 책에서 24쪽에서 인용한 정인재 한정길 역의 책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전습록을 읽어 보고, 양명 사상에 대해 약간 들은 바가 있지만 그분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많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주자’의 학문 체계에 길들여져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양명학의 핵심인 ‘양지’와 이에 따른 ‘치양지’는 주자학에서는 없는 내용이다. 처음 양명학을 접했을 때 이들 개념이 ‘절대자’를 만나는 느낌이었고, 양명학이 학문이 아니라 ‘종교’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미지의 세계였다.
그렇지만 양명학을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깊이가 있었다. 주자학을 극복하고 세워진 학문이라는데도 이견을 달지 않겠다. 주자학의 꽉 막힌 느낌이 양명학에서 뻥 뚫린 것처럼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꼭 한번 접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을 한 번 읽고 읽었다고 말할 이는 없을 것 같다. 그나마 쉽게 쓰였고, 사례도 많이 들었지만 전습록을 쉽게 풀어쓰는 일이 결코 녹녹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80쪽의 ‘공부는 하나다’와 같은 글은 정말 좋은 글이고, 참으로 실용적인 글이다. 하지만 한 번 읽어 이 글을 이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초심자라면 10번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불현듯 깨우쳐지는 바가 있을 것이다.
2장은 ‘누구나 성인 될 수 있다’이다. 그러나 하위 절에는 ‘네 마음속에 성인이 있음을 믿어라’라고 되어 있다. 내 안의 성인을 드러내기만 해도 된다. 하지만 내가 성인이고,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 세파에 휘둘리다 보면 숭고한 정신을 잃고 방황하기 일 수다. 물론 나 역시 성인이 되고 싶기에 문뜩문뜩 놀라며 성인의 길로 되돌아오려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정말로 쉽지 않다. 사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따르는 게 진정으로 쉬운 길임을 알지만, 이 육체는 왜 인욕으로 가득한 길을 가는지 모르겠다.
모든 장에서 진정한 공부나 양지의 실현을 개념이 아닌 실제 생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먼 나라의 특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데에서 공부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명학이 어렵다고 말했지만 사실 실천은 바로 지금 여기의 일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쉬우면서 어렵다고 한 것이다.
책을 재독할 때는 전습록 책을 구해다 놓고, 인용구를 바로 찾아서 읽고, 글의 전후 글도 같이 읽으면 좋겠다. 정인재 역의 전습록을 보면 친절한 인용과 해설이 있어 더 깊게 공부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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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9 / 인문학. 동양철학] 주체적으로 산다. 임홍태. 문헌재 (2019)-왕양명의 <전습록> 읽기 내게 고등학교 2학년, 윤리 시간은 참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이다. 암기 과목 외우듯 뜻도 모르고 단어만 달달달 외워 시험만 잘 보면 그만인 시간이었다. 교과목 자체가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등학생 시간 중 단 1년, 일주일에 한두 시간 동안 시공간을 초월한 여러 학자의 사상을 훑어보려면 영어단어 외우듯 달달달 외우는 수밖에 없었던 당시 윤리 선생님의 교육방식이 조금은 이해되지만, 정말 재미가 없었고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하지만 최근 2~3년 전부터 동서양 학자들의 사상을 쉽게 설명한 책들을 가끔 읽는데, 위인들로부터 통하는 큰 줄기의 방향 같은 게 있다는 걸 느낀다. 지행합일, 격물치지, 심즉리의 양명학, 주자학을 반대하여 나타난 왕양명의 양명학 책을 읽게 되었다. 20년 전 그저 외웠던 그 실체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에 ‘주체적으로 산다’를 선택했다. 동양사상과 철학을 연구하는 저자 임홍태는 왕양명의 <전습록>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책을 집필하였는데, 동양철학에 대한 깊이가 얕은 독자로서 비슷한 단어들이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글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며 읽어냈지만, 전체를 이해한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외부나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 양명학의 핵심은 마음이라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싫어하던 윤리 과목, 사상가들의 사상을 이제는 스스로 찾아본다.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학자들과 사상, 그 속뜻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살면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잃고 헤맬 때 선인들의 책에 기대어 숨 고르기를 하게 된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지칠 때마다 버팀목 같은 책을 만난다. 4년 전 최진석의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위즈덤하우스, 2015), 3년 전 이진우의 니체(휴머니스트, 2015)가 그랬다. 그 책들을 읽으며 어렴풋이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좀 많이 지치고 무기력한 요즘의 내게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말고 나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라는 이 책 덕분에 생각 가지치기를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진 않지만, 꾸역꾸역 해내고 싶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시켜서 꾸역꾸역 외워야만 했던 양명학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지키고 싶은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조금 어려웠지만,- 그런 의미에서 좋은 때에 좋은 책을 만났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반드시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야 하며, 덕을 심는 사람은 반드시 그 마음을 길러야 한다. (38)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생각하는 바를 믿고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서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시시각각 ‘... 하려고 하는’ 생각을 유지한다면 나의 생각이 ‘나는... 하려 한다’는 데서부터 점차 ‘나는... 해야 한다’ 또는 ‘나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어감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생각하고 원하는 바를 분명히 알아서 대담하게 견지해나갈 때 비로소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잠재 능력을 제대로 발현할 수 있습니다. (33)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자기를 이길 수 있다. (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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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철학가로 공자 맹자 순자 노자.....여기에 조금 더한다면 장자 주자 까지는 그래도 익숙한데 왕양명이라는 이름은 좀 낯설다 그런데 왕양명이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던 주자학이니 성리학이니 하는 것 중에서 양명학이란 걸 알고나면 어쩐지 익숙하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양명학은 명나라의 왕양명이 주자학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으로써 주창한 학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왕양명의 전습록을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해설한 책이다.
책의 구성은, 먼저 들어가는 말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짧게 생각해 보고, 왕양명과 전습록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 이후 저자가 전습록의 교훈 중 독자에게 전하는 메세지를 11장에 걸쳐서 이야기 하는데 전습록의 원문이 수록되진 않았다. 다만 내용 중, 전습록을 인용한 구절은 원문노트 코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왕양명 사상, 즉 양명학의 핵심 개념은, 시비와 선악을 분별하는 '양지(良知)'에 대한 인식과, '지행합일'임을 알수 있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교리처럼 왕양명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누구나 '양지(良知)'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양명학은 '지행합일'을 중시하여 굉장히 실천적이었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전습록에서 전하는 많은 메세지들은 현대의 자기 계발서들이 말하는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왔다. 1556년에 편찬된 이 책이 47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현실적이고 유효한 메세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오랜 시간 견뎌온 고전의 힘과, 철학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읽는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이고 자극적인 책보다 이 책, 왕양명의 전습록을 통해 자기계발을 하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공자나 맹자와 같이 잘 알려진 철학가 외의 새로운 동양철학자의 사상을 알게 해 준 책이었다.
'훌륭한 인품과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나이들고 성장, 성숙하기 위해 왕양명이 알려주는 '양지'와 '지행합일', 이 두가지 미덕을 잘 기억하여 계발하고 실천하며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해 주신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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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으로 산다
고등학교 학창시절 윤리시간이 즐거웠다. 윤리선생님이 동서양의 철학을 매우 재밌게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그때의 좋은 기억으로 난 대학에 들어가서도 교양수업을 종종 철학과 관련된 수업을 듣곤 했다. <철학과 사상>이란 수업에서는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양명학>에 대해서 발표했던 기억도 난다. 난 예전부터 성리학사상에 반대하여 확립된 양명학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 서평도서 <주체적으로 산다> 읽기를 더욱 기대했던 것도 있다. 책은 왕양명의 <전습록>을 새롭게 읽는 시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양명의 사상은 마음이 곧 이치라고 주장하며, 공부하는 이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제목 또한 주체적으로 살자고 하는가보다.
전습록은 왕양명의 제자들이 평소 선생의 말씀과 학문을 논한 편지글을 모아 기록한 것이라 주로 물음과 답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명학은 그가 겪은 경험 속에서 깨닫고 실천한 체험적 진리가 점철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자학에서 주장하는 심과 리의 구별, 사물의 이치를 마음 밖에서 구해야 한다는 것을 반대해 심즉리를 주장한 양명은 나아가 앎과 실천이 분리될 수 없다는 지행합일을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치양지라는 세글자로 압축하여 그의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데, 마음의 본모습을 실현하고 오염된 마음을 바르게 하여 마음의 본모습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책은 총 11장으로 <뜻을 세우다>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양명의 사상을 전달하고 있다. 책을 읽어가며 교수님께 대학수업을 듣는 기분도 들었고, 도서관에서 전문강사분을 모셔 강의를 듣는 기분도 들었다. “마음은 한 덩어리의 혈육이 아니라, 무릇 지각하는 곳이 바로 마음이다. 예를 들어 눈과 귀는 보고 들을 줄 알고, 손과 발은 아프고 가려운 것을 아는데, 이 지각이 바로 마음이다.” 우리는 말과 행동을 통해 마음을 표현한다. ‘말은 마음의 소리’ 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 있다. 마음이 언제나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면 선천적인 의식에 의지함과 동시에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정확한 의식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주관적인 억측에 기대서는 안 된다. 우리가 독서하는 목적은 왕양명이 말하는 ‘양지’를 밝히는데 있다. 어떤 지식을 기억하거나 쌓아두기만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보고 들은 것이 많아도 그것을 가슴속에만 남겨두는 것은 과식 후 배탈이 난 상황과 매한가지라고 이야기했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저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욕심에 무비판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배운 지식을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자기 사상으로 바꾸며, 이를 보다 탄력 있게 운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책 표지에도 나무를 심는 사람은 반드시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야 한다는 문구를 크게 실어놓았다. 역시 공부하는 이의 주체성을 강조한 양명의 가르침이다.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에도 사상과 지식에만 얽매여 변화되지 않는 자신을 자각하고 깨닫기를 바라는 그의 바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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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에 못 미쳐 실망스럽다. 제목(주체적으로 산다)과 다루는 소재(명대 중기의 사상가 왕양명)는 그럴싸한데, 풀어내는 내용이 고루하고 중언부언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에 소개한 왕양명과 『전습록』에 관한 내용을 제외하면, 막상 본문에서 다루는 양명학의 내용은 매우 피상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하다. 해당 구절의 설명도 양명학적인 해석에 보다 집중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뚜렷한 색채를 상실한 책이랄까.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인생론이나 윤리학 서적도 아닌 매우 어정쩡한 위치다. 물론 중국철학과 양명학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들은 그래도 읽을 만하단 인상을 받을 순 있겠지만, 프로의 눈으로 평하면 이 책은 '불통'이다. 『전습록』의 번역도 기존의 번역을 그대로 따와 전혀 새로운 구석이 없다. 나도 이 번역본을 갖고 있지만, 인용하는 문장에 약간의 윤색조차 하지 않았으니 저자의 글쓰기 노력이 거의 자취를 감춘 날림 공사에 가깝다. 유불선 가운데 유가 사상이 가장 인간적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개인적 요건(가령 수신)과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적 조건(가령 오륜)을 가장 많이 고려하고 있는 동양철학이 유학이다. 공자에서 주자로 이어지는 유가의 핵심 가르침이 바로 '주체적으로 산다'다. 주체적인 삶이란 인간의 선한 성품을 토대로 한 가장 인간적인 삶이고, 끝없는 극기복례의 인격 도야의 과정이며, 성과 경으로 일상을 적절히 규율하는 수기치인의 행로다. 조선 선비가 추구한 이상적인 인간상인 '성인군자'가 바로 주체적 인간의 궁극적인 완성에 해당한다. 성인군자가 어떤 인물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면, 재물병(금전욕), 여색병(색욕), 이름병(명예욕)에 걸리지 않은 젠틀맨을 떠올리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크고 멋진 일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눈앞의 사소한 일, 매일의 일상처럼 간단해 보이는 일에는 성실히 임하려는 마음조차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털끝만 한 차이가 나중에는 천 리나 되는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부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293쪽) 왕양명의 『전습록』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도 심즉리, 치양지, 지행합일 같은 양명학의 키워드 정도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양명을 논하는 이들은 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길 좋아한다. 가령 주자학이 내 마음 밖의 이치와 원칙을 중시하는 '이학'이라면 양명학은 양지처럼 기준과 중심이 내 마음 안에 있다고 보는 '심학'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주자학이 입신양명을 위한 '관학'이라면, 양명학은 수덕을 위한 '민학'이라고 말한다. 양명의 눈에 당시 주자학은 훈고학과 기송학, 사장학에 매몰돼 그 폐해가 맹자 때의 묵가나 한유 때의 불교와 그리 다를 바 없었다. "양명은 주자 말학의 혼란 속에서 세상 사람들을 구해내려는 자신을, 양주와 묵적의 폐해를 없애려 노력한 맹자, 불교와 도교의 폐해를 없애려던 한유에 비유합니다."(22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