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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소설의 내용만 생각하고 싶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현실보다는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라고 하던데(비슷한 의미로 기억된다), 나는 아마도 현실을 잊으려 소설 속에 파고 드는가. 스트레스가 쌓일때면 현실을 잊으려 소설을 많이 읽는다. 짧은 호흡의 단편 보다는 장편을 선호하는 이유와도 같다.
어쩌다보니 산문을 계속 읽었고, 소설이 읽고 싶어 또한 소설을 찾게 된다. 그 중의 하나가 이경 작가의 소설이었다. 약간은 청소년 문학같은, 판타지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미래의 도시, 온몸에 허물이 덮이는 사람들. 그들을 D구역에 격리시켜 따로 관리하는 곳이다. 피부에 뾰루지 하나만 나도 성가신 법인데 온몸에 허물이 덮이기 되면 어떤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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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파충류 사육사로 일하던 '그녀'. D구역의 한 공원에서 공원관리자와 숨바꼭질을 하며 지내고 있다. 스스로 방역센터에 가서 8주간을 머물며 허물을 제거하고 나왔다. 방역센터에서 만난 후리후리한 키를 가졌다는 후리와 재생 타이어 가게를 하는 김과 함께 전설속의 뱀 롱롱을 찾아 나선다.
허물로 덮은 사람들에게 롱롱은 희망의 메시지다. 뱀이 허물을 벗고 탈피할때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허물이 벗겨졌다는 전설이 전해졌다. 뱀을 부리는 그녀와 후리, 김은 오래전에 버려진 궁으로 향했다. 궁의 검은 아궁이 속에 거대한 뱀이 살고 있었다. 스네어 폴을 이용해 뱀을 유인했다. 역시 방역센터에서 마주쳤던 척이 있는 스포츠센터로 향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핸들링을 하며 자신이 주인이라는 것을 가르치던 그녀. 뱀의 난동으로 방역센터에서 나와 할 수 없이 김의 타이어 가게로 들어섰다. 뱀은 허물을 벗기 전 눈이 흐려지며 블루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 블루를 본 그녀는 뱀의 탈피가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탈피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마련해 주려 한다.
문제는 허물이 계속 자라나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데 프로틴이라는 약을 먹어야만 멈출 수 있다는 거다. 약을 개발하는 거대한 제약회사의 음모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롱롱을 찾으면 정말 허물을 벗을 수 있을까. 영원히 허물을 벗으면 한 번도 허물을 입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71~72페이지)
가상의 도시. 거대한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허물에 관련된 연구를 했고, 오히려 허물을 이용해 격리시켰고 착취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롱롱의 전설을 믿었던 것 같다. 그들에게 희망이라고는 롱롱의 탈피였으니까. 음모에 맞서 싸운 그들은 인간의 생존권을 위한 염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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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을 평가하고 문명을 파멸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검토하는 단체가 바로 어스 가디언즈이다. 그들은 이따금 조만간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10가지의 위협을 공개하곤 하는데 그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바이러스로부터의 위협이다. 2017년의 발표에 의하면 1위가 '인공지능의 폭주', 2위는 '합성 생물 공학에 의한 판데믹'으로 자기 복제 능력이 있는 바이러스의 '기능 획득'과 생명공학 연구소 직원의 실수 혹은 돌발행동에 의한 바이러스 유출을 심각한 위협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3위는 'AI 무기를 소유하는 민병대', 4위는 '핵전쟁의 발발', 5위는 '극단적인 기후 변화로 인한 인프라의 황폐 등이 있으며 '기근으로 인한 식량 부족'이나 '폭군의 등장'도 있다.
물론 이러한 가능성은 반드시 일어난다기보다 일어날 가능성에 중점을 둔 연구 보고서이지만 실제로 중국에서 얼마 전에 있었던 페스트 환자의 발생이라든가 국내에서도 있었던 아프리카 돼지열병, 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병원 내성균에 감염돼 사망하는 환자의 수 증가 등 바이러스의 위협은 어떤 가능성의 차원이 아니라 상존하는 위협인 게 사실이다. 일본 국립국제의료연구센터병원 연구팀의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내성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수가 연간 최소 8000명에 이른다고 하니 결코 가벼이 취급할 위협이 아닌 것이다.
제13회 김유정 문학상을 받았던 이경 작가의 첫 장편소설 <소원을 말해줘>도 그와 같은 가능성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SF소설이라는 게 모름지기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현시점에서 오직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하여 펼쳐내는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장르소설에 대한 선호도가 빈약하고 작가층도 두텁지 않은, 말하자면 SF소설의 지지기반이 약한 우리나라에서 SF소설을 내놓는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자 도전일지도 모른다.
"전설 속 거대한 뱀 '롱롱'을 찾아 나선 파충류 사육사 '그녀'와 방역 센터의 입소자들. 허물에 덮인 그들이 롱롱과 마주치는 순간, 도시를 움직이는 거대 제약 회사의 충격적인 음모가 드러난다. 작가의 압도적이고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구축된 거대 도시. 재난과 질병에 포위된 인간의 극한 공포. 그리고 생존을 위한 단 하나의 간절한 '소원'!" (표지글)
소설의 주인공인 '그녀'는 파충류 사육사이다. 티셀 바이러스에 감염된 엄마로부터 태어난 그녀 역시 온몸이 허물에 덮이는 피부병에 시달리다 결국에는 치료 병동에 수감된다. 거대 제약회사가 지배하는 인구 50만의 기획 도시에 사는 '그녀'는 석 달전까지만 하더라도 파충류 사육사였지만 산사태로 동물원이 무너지면서 직업을 잃었다. '그녀'는 비단뱀을 찾아 D구역으로 간다. 뱀의 허물 같은 각질이 온몸을 뒤덮는 풍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피부병을 앓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드러낸 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곳. 그곳 사람들은 전설 속 거대뱀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모든 허물이 벗겨진다고 믿고 있다.
허물을 벗기 위해 입소했던 방역센터에서 '그녀'는 김과 후리, 뾰족 수염과 척을 만나게 되고 거대 뱀이 사는 곳의 위치를 알게 된 그들은 폐허가 된 궁의 아궁이에서 거대 뱀을 꺼내 D구역의 끝에 위치한 김의 재생타이어 가게로 간다. 그곳에는 항공 타이어가 긴 동굴처럼 이어져 있었고 그곳에 거대 뱀을 숨긴 채 허물을 벗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하게 된 것은 도시정부와 거대 기업이 모의한 충격적인 음모였다.
"공포가 이념이 되고 , 이념이 공포를 강화시켰다. 그 불행한 순환 속에 유일하게 실재하는 건 허물 뿐이었다. 공 박사는 시민이 아니라, 시민들의 허물이 불행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p.277)
허물을 벗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에 판타지를 심어준 거대 기업과 도시정부의 음모.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진실 앞에서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의 실체가 드러나고 소설은 끝을 향해 가는데...
"롱롱에게로 흘러든 수많은 소망들, 롱롱의 몸속으로 들어간 엄마와 노파, 노파의 모친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들, 롱롱은 그 모든 것들이 살아 꿈틀거리는 장대한 몸뚱이였다. 시간의 지류 같은 이야기들이 흘러들어 가는 사이 허물이 생기고 허물을 벗고, 마침내 롱롱은 거대한 시간의 강으로 흘러야 했다. 마침내 세상의 모든 허물을 벗기는 신이 돼야 했다." (p.294)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시각에도 자신의 허물을 벗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벗어던질 수 없는 우리는 우리를 대신할 거대 뱀 롱롱을 기다리면서 그 판타지 속에 우리의 욕망을 숨기고 잇는 것은 아닐까.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아토피를 떠올렸다. 그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잇으면서도 이렇다 할 치료제는 내놓지 못하는 걸 보면 아토피는 일종의 문명병이 아닌가. 가려움으로 인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면서도 밤새 자신의 피부를 긁어대는 무서운 병. 작가는 어쩌면 이 시대의 천형은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거대 기업의 음모에서 비롯될지도 모른다고 추정하고 있는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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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시간의 강이 만든 신화 - 이경, 『소원을 말해줘』
1. 허물
하반신 전체가 허물로 뒤덮인 여인이 있다. 사마귀에 곰팡이가 핀 것 같기도 하고 거칠게 갈라진 소나무 껍질 같기도 한 허물이 갈라지면 진물이 진득하게 묻어났고, 진물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풍겼다. 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피부 각화증을 완화시키는 신단백질이 함유된 ‘T-프로틴’이 시판되고 있지만, 이 약을 먹는다고 허물을 완전히 벗는 것은 아니다. 이 약은 치료제라기보다는 허물을 돋아나는 걸 억제하는 약일 뿐이다. 약을 먹지 않으면 허물이 온몸을 덮는다. 여자는 생각한다. “허물이 두렵진 않았다. 두려운 건 허물에 뒤덮여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10쪽) 몸 전체가 허물에 뒤덮였는데도 죽지 않는다고? 여자와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은 주로 D구역에 모여 있다. 여자는 D구역으로 들어간다. 뱀을 찾기 위해서다.
여자는 파충류 사육사였다. 재력가 노인이 소유한 사설 동물원의 파충류관에서 그녀는 뱀을 돌봤다. 파충류관에서 가장 큰 동물은 크기가 30미터에 달하는 비단뱀이었다. 석 달 전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산사태가 동물원을 덮쳤다. 호랑이나 늑대와 같은 맹수들과 함께 비단뱀도 사라졌다. 사라진 맹수들이 곳곳에서 나타나 시민들을 공격하자, 인구 50만 명의 소도시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여자는 뱀을 찾아 온종일 도시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뱀을 찾을 수는 없었다. 직장을 잃으면서 하루 두 번 먹던 프로틴을 한 번으로 줄여야 했다.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먹을 때도 있었는데, 이 때문인지 허물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단뱀을 찾는 일에 매진했다. 비단뱀을 찾으면 사육사로 다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비단뱀은 폐쇄된 약수터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깊은 우물에 갇혀 있는 걸 보고 주민이 방역대에 신고했다. 여자는 저지선을 넘어 우물 가까이 다가갔다. 뱀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블루, 뱀이 허물을 벗을 거라는 신호다. 방역대는 뱀을 살릴 생각이 없다. 여자가 파충류 사육사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동물원에서 나온 맹수들이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터다. 방역대원들이 뱀이 있는 우물 안으로 실탄을 난사했다. 몸이 갈기갈기 찢긴 뱀은 죽는 순간에도 허물을 벗으려 몸부림쳤다. 뱀에게 허물을 벗는 일은 본능(자연)과도 같다. 여자는 죽음에 이르러서도 느리게 허물을 벗는 뱀에게서 생을 향한 지독한 몸부림을 본다.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자리에 허물을 벗는 뱀의 자연이 있다. 생명은 어떤 경우에도 몸에 새겨진 본능을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다.
여자는 허물 입은 어미의 자궁에서 태어났다. 여자의 어미 또한 온몸이 허물로 덮인 병에 걸렸다는 말이다. 역시 허물을 뒤집어 쓴 생부는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된 여자를 보육원에 맡겼고, 명절이나 여자의 생일에 찾아왔다. 보육원 아이들은 여자에게 ‘롱롱’이 아버지를 구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롱롱은 사람들이 영물로 믿는 뱀이다.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병에 걸린 이들 또한 허물을 벗을 것이고, 동시에 타락한 세상 또한 허물을 벗을 것이라고 그들은 믿는다. 성인이 된 여자가 파충류 사육사가 된 이유는 무엇보다 여기서 비롯된다. 허물을 벗고 새로운 몸을 얻은 뱀처럼 여자도 허물을 벗고 새로운 몸을 얻고 싶다. 여자만 그런 게 아니다. 롱롱을 믿는 사람들 모두 허물을 벗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한다.
몸에 들러붙은 허물을 벗겨내기 위해 여자는 D구역에 있는 방역센터로 들어간다. 방역센터를 관리하는 사람은 공 박사이다. 공 박사는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체 정보를 모으고 있다. 허물을 벗기는 치료제를 만든다는 게 명분이지만,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그는 벌이고 있다. 이를테면, 임상시험 병동과 같은 것이다. 이곳에 여러 차례 들어온 후리는 입소 동의서에는 임상시험에 관한 항목이 없는데도, 공 박사가 억지로 임상시험을 한다고 주장한다. 여자 또한 치료실에 가는 도중 방역대원 두 명에게 양 팔을 잡힌 채 어딘가로 끌려가는 남자(척)를 본 적이 있다. 남자는 임상시험 병동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그토록 몸부림을 친 것일까?
이곳에서도 롱롱이 화제다. 병자 가운데 하나인 뾰족 수염은 아예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허물이 죄다 벗겨진다고 얘기할 정도다. 과학을 신봉하는 방역센터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신화에 관심을 기울인다. 몸을 뒤덮은 허물을 벗기려면 과학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과학 너머에서 이루어질 초월성 또한 배제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다. 죽음과 맞닥뜨리면 사람들은 보이는 현실보다 보이지 않는 상상을 꿈꾸기 마련이다. 방역센터에서 완벽한 치료제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 사람들은 롱롱이 펼쳐내는 상상을 외면하기 힘들다. 허물이 몸을 덮는 병에 걸린 여자가 왜 뱀을 찾으러 다니겠는가. 더 이상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사람들은 상상을 한다. 길 밖에 길이 있다고 상상을 한다. 롱롱은 길 밖에서 길을 찾는 이들이 붙잡고 있는 희망의 지푸라기와도 같은 존재인 셈이다.
2. 롱롱
뾰족 수염이 들려주는 신화를 묵묵히 듣고 있던 후리가 뜻밖의 말을 한다. 궁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뱀을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폐쇄된 궁에 들어간 후리는 아궁이를 기어 나오는 커다란 뱀을 보았다. 그렇잖아도 여자는 D구역에서 뱀에 관련된 소문을 많이 들었다. D구역에는 뱀을 모시는 무당들이 많다. 뱀을 특별히 생각하는 곳이라는 말이다. 병실에 모인 네 사람(여자, 후리, 뾰족 수염, 김)은 치료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면 롱롱을 찾아가자고 약속한다. 여자가 파충류 사육사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물론 그 이면에는 허물이 온몸을 뒤덮는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강력한 믿음이 스며들어 있다. 과학의 힘으로 쉽게 치유되지 않는 병이라면, 과학 너머에서 그 방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병실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 방책은 ‘롱롱’이라는 거대한 뱀이 품고 있는 신화이다.
사람들은 신화 속 롱롱을 현실에서 찾으려고 한다. 신화가 현실로 내려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진다. 사람들은 늘 현실 속에서 비현실을 보려고 한다. 현실은 보이는 곳이고, 비현실은 보이지 않는 곳이다. 현실은 질서를 의미하고, 비현실은 카오스(혼돈)를 의미한다. 롱롱이 현실에 나타나면 비현실이 현실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당연히 기존 질서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D구역에 질서를 부여하는 곳은 앞서 말한 대로, 공 박사가 책임자로 있는 방역센터이다. 도시 전체가 허물로 뒤덮이자 정부는 D구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다국적 제약 회사의 기업도시로 지정했다. 방역센터와 제약 회사가 힘을 합쳐 ‘T-프로틴’이라는 치료제를 시판했고, 사람들은 이 약을 복용하며 허물과 싸우고 있다. 한마디로 D구역은 제약 회사와 방역센터가 기획한 질서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뾰족 수염을 제외한 세 사람이 롱롱을 찾아 궁벽을 넘는다. 여자의 눈에 분수대 밖으로 기어 나오는 거대한 뱀이 보인다. 신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물빛을 일렁이며 천천히 물 밖으로 기어 나오는 저 뱀이 정말로 롱롱인 것일까? 저 뱀이 롱롱이라면, 여자는 현실에서 비현실을 보는 격이 된다. 비현실을 현실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라고 말해도 상관없다. 후원에 있는 전각 앞에 이른 뱀이 기둥을 감고 지붕 위로 오른다. 기둥을 타고 내려온 뱀이 전각 아래로 기어들어가 아궁이 안으로 모습을 감춘다. 여자가 땅바닥에 엎드려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자 깊은 곳에서 뱀이 제 몸을 비비는 것 같기도 하고 흙을 파 내려가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여자가 흙바닥에 납작 엎드려 아궁이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는다. 아궁이 깊은 곳에서 표정 없는 뱀의 눈이 보인다. 소용돌이 같은 눈이 다가오자 여자는 길게 손을 뻗는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여자가 뒤로 물러서자 뱀이 따라 나온다.
그녀는 네 개로 갈라진 턱뼈 끝에 스네어 폴을 걸었다. 막대에 달린 로프를 힘껏 당기자 뱀이 아가리를 짝 벌렸다. 팔꿈치로 뱀의 목덜미를 꽉 누르고 다리를 구부려 놈의 몸통을 단단히 휘감았다. 바지가 위로 올라가며 발목이 드러났다. 적갈색과 검푸른 색이 뒤엉킨 허물 사이로 누런 진물이 흘렀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허물과 뱀의 몸통은 하나로 보였다. 뱀이 당장 아래로 흘러내렸다. (89쪽)
길이가 80~90미터, 두께가 1미터, 몸무게가 1톤을 훌쩍 넘는 뱀을 데리고 여자는 척이 운영하는 헬스클럽으로 간다. 여자는 방역센터에서 어딘가로 억지로 끌려가는 남자를 본 적이 있는데, 그가 바로 척이었다. 마침 그가 운영하는 곳에 후리가 근무하고 있었다. 척은 어쩔 수 없이 뱀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뱀이 허물을 벗으면 사람들도 허물을 벗을 거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여자는 뱀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온다. 여자는 난간에 묶인 줄을 풀고 팔을 뻗은 채 뱀을 기다린다. 파충류 사육사이긴 해도 여자가 핸들링을 하는 건 처음이다. 핸들링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뱀이 그녀를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는 표시가 된다.
핸들링을 하는 사이 뱀이 여자를 공격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척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험을 벗어난 여자는 지금이라도 뱀을 살던 곳으로 데려가라는 척의 말에, 뱀이 허물을 벗어야 세상의 허물을 벗길 수 있다는 말로 대꾸한다. 앞서 말한 대로, 뱀은 눈이 희뿌옇게 변하는 블루 현상이 나타나면 허물을 벗을 준비를 한다. 척은 신화는 단순히 상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인간은 신화로 도피한다는 것이다.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최소한, 설명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막연한 희망이 허물을 벗겨줄 거라고 정말 믿는 겁니까?”(102쪽)라는 척의 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 두 사람은 같은 뱀을 보고 있다. 그런데도 한 사람은 그 뱀을 구원의 대상으로 보고 있고, 한 사람은 그것을 거짓 믿음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신화를 믿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신화는 그저 상상 속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 척의 말마따나, 사람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 신(화)을 찾는다. 자연을 정복했다고 자부하는 문명인들이 쓰나미와 같은 자연 재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현실을 생각해 보라. 온몸이 허물로 뒤덮이는 병은 이러한 쓰나미와 같은 것이다. 아무리 방비를 해도 자연은 거대한 힘으로 인간을 압박한다.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곳에서 문제가 오는 거라면, 그에 대한 해결책 역시 인간의 힘을 넘는 곳에서 나와야 한다. 롱롱은 그렇게 사람들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3. 자본
온몸을 덮는 허물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자본은 끊임없이 성장을 한다. 허물에 대한 공포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그만큼 치료제에 목을 맨다. 치료제가 없으면 온몸을 허물이 뒤덮을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자연스레 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자본은 사람들의 공포를 먹고 자본을 증식하는 셈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는 보이는 대상에서 오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대상에서 뻗어 나오기도 한다. 지금 D구역에 사는 사람들은 눈앞에 확연하게 보이는 허물로 해서 극도의 공포감에 빠져 있다. 사람들이 허물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있는 한, 치료제를 판매하는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 방역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공 박사가 기업의 자본 논리를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철저히 자본 논리로 ‘허물’을 본다.
“공포는 방역 센터가 시민을 통제하는 도구입니다. 허물을 퇴치하기 위해 세금을 걷고 수십 종의 프로틴을 출시해 점점 가격을 올리고 방역대를 도심에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습니다. 허물을 입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허물에 대한 공포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을 지배합니다. 전설 따위에 기대 당신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겁니다.”(146~147쪽)
척이 여자에게 하는 말이다. 사람들이 공포에 떨수록 방역센터는 사람들을 통제하기가 쉽다. 허물을 퇴치하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서슴없이 세금을 낸다. 사람들의 공포를 먹이 삼아 기업은 수십 종의 치료제를 출시하고, 그 결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도심에 주둔한 방역대를 움직이는 힘은 시민들이 아니라 기업이 쥐고 있다. 기업이 치료제를 생산하지 않으면 시민들은 속절없이 병에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만이 있어도 시민들은 그래서 저항을 하지 못한다. 저항을 하면 기업이 도시에서 철수할 테고, 그러면 온몸에 허물을 입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물에 대한 공포는 이미 시민들의 일상이 되었다. 사람들 몸속 깊이 뿌리 내린 공포를 롱롱과 같은 신화로 물리칠 수 없다는 척의 말은 이리 보면 분명 타당성이 있다고 하겠다.
헬스클럽 사우나장에서 난동을 부린 뱀을 여자는 김이 운영하는 타이어 매장으로 이끌고 간다. 뱀이 허물을 벗으려는 징후를 보였기 때문이다. 커다란 뱀이 대로를 활보하니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을 수 없다. 방역대장은 재난 특별법에 따라 뱀을 포획하려고 한다. 뱀이 잡히면 허물을 벗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은 어떻게 될까? 뱀을 신으로 모시는 노파가 방역대원들을 막아선다. 노파를 따라 롱롱 신화를 믿는 사람들이 나선다. 방역대장은 어쩔 수 없이 타이어 매장에 사육장을 설치한다는 조건으로 뱀 사육을 인정한다. 시민들이 처음으로 방역대의 활동에 제동을 거는 순간이다. 허물에 대한 공포를 방역센터에 의지하던 사람들은 이제 롱롱 신화에 모든 것을 건다. 김이 운영하는 타이어 매장은 순식간에 뱀을 숭배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시민들이 방역센터보다 롱롱 신화에 관심을 기울이자 공 박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공 박사는 의외로 뱀을 살리려고 한다. 먹이로 준 ‘T-프로틴’의 부작용인지 뱀은 허물을 벗을 때가 되었는데도 허물을 벗지 못한다. 타이어 매장을 찾은 공 박사는 뱀을 살리려면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말한다. 공 박사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는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 자본의 목적은 오로지 자본을 증식하는 데 있다. 뱀을 살리는 일이 자본 증식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공 박사는 롱롱 신화를 통해 자본에 맞서려는 사람들의 시도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허물을 벗지 못한 뱀이 죽는 순간 신화에 들뜬 사람들은 스스로 무너지게 될 거라는 것이다. 신화가 현실이 되면 사람들은 롱롱과 같은 영웅을 보며 환호를 한다. 신화가 실현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운 영웅을 스스로 허물어뜨린다.
공 박사의 말처럼 자본은 롱롱을 환상으로만 바라볼까? 그럴 리가 없다. 자본이 환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롱롱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믿음이 자본을 극복하는 힘이 될 거라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사람들은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자신들 또한 허물을 벗을 거라고 믿는다. 사람들의 믿음이 현실이 되면 자본은 자본을 증식하는 길을 잃게 된다. 자본의 입장에서 이 믿음은 결코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믿음이 거세된 롱롱이라면 어떨까? 공산주의 혁명을 이룩한 체 게바라를 자본 증식의 수단으로 만든 자본의 힘을 생각해 보라. 자본은 혁명(가)마저도 그 드넓은 품 안으로 받아들인다. 뱀을 살리고 싶다면 자신에게 데려오라는 공 박사의 말은 어찌 보면, 현대 사회에서 자본이 지닌 막강한 힘을 에둘러 드러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결국 공 박사의 방역센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밝혀낸다. 방역센터는 허물을 벗겨낸다는 명분으로 허물을 더욱 더 피부에 고착시키는 일을 해왔다. 방역센터는 허물을 벗기는 곳이 아니라 허물을 (재)생산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보기에도 끔찍한 이 허물을 자본은 왜 방역센터까지 두면서 생산해 온 것일까? 자본의 목적은 오로지 자본 증식에 있다고 했다. 허물을 생산하는 일이 ‘돈’이 되기 때문에 자본은 허물을 (재)생산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을 그토록 괴롭히는 허물이 자본에게는 더 없는 자본 증식의 도구가 되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본은 인간의 행복을 묻지 않는다. 행복을 묻지 않으니 당연히 고통도 묻지 않는다. 자본은 그저 더 많은 자본을 꿈꿀 뿐이다. 허물로 뒤덮인 채 공포에 떠는 인간을 자본은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본다.
“난 이 도시를 완벽한 표본 집단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어. 먼저, 허물을 끔찍한 것으로 만들었지. 실제보다 훨씬 더 혐오스러운 것으로 말이지. 시민들은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허물보다 손에 잡히지 않는 허상을 더 믿더군. 허물 있는 사람들은 숨어들 곳을 찾았지. 맞아. D구역일세. 나머지 사람들은 T-프로틴을 광적으로 소비했어. 난 티셀 바이러스가 대량으로 확산되거나 반대로 소멸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네. 허물은 너무 많아도, 적어도 안 되거든. 허물이 너무 많이 퍼지면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고, 반대로 너무 적으면 도시의 성장 동력을 잃게 될 테니까 말이야.” (276쪽)
공 박사는 임상시험 병동에서 다른 시험을 하고 있었다. 피부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시험. 척의 등을 휘감고 있는 검은 색 껍질은 이러한 피부암 시험 결과로 생긴 것이다. 완치율 100% 피부암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그는 허물을 뒤집어 쓴 사람들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처음부터 이런 의도를 품은 건 아니었다. 지역 풍토병을 연구하던 중 공 박사는 우연히 허물 안에서 피부암에 효과가 있는 물질을 발견했다. 유효 물질 추출에만 적지 않은 허물과 시간이 필요했고, 인체를 숙주로 한 시험 또한 반드시 필요했다. 자본의 놀라운 욕망이 아닌가. 더 많은 자본을 얻기 위해 공 박사는 과학의 이름으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실험용 생쥐로 만들었다. 50만 명이 사는 도시 전체를 표본 집단으로 만들어 그는 자본을 증식하기 위한 생체 실험을 마음껏 했다.
4. 희생
자본은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공 박사는 자본이 곧 이념이 되는 순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도시가 생산하는 건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네. 사람들은 몸에 허물이 생기면 자발적으로 방역 센터로 오지. 허물은 혐오스럽거든. 방역 센터로 오면 허물을 벗겨주고 유효 물질을 추출하지. 그들은 다시 밖으로 나가 허물을 키워.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선순환이란 말일세.”(277쪽) 이것이 과연 선순환일까? 애초부터 허물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면 이런 (악)순환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주 적은 양의 약물로 완치할 수 있는 병을 방치함으로써 자본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공포로 길들였다. 더욱 끔찍한 허물을 만들어 사람들을 공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괴물로 만들어버렸다.
사람들의 마음에 롱롱이 자리를 잡으면서 공 박사의 계획은 틀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방역센터에 입소하는 대신 롱롱에게 소원을 빌었다. 방역센터에 입소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 추출할 수 있는 유효 물질의 양도 줄어든다. 피부암 치료제 개발에 제동이 걸렸고, 제약 회사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도시에서 손을 떼겠다는 최후통첩을 공 박사에게 보냈다. 그는 자본의 논리만 좇는 자본가들은 과학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과학자는 가설을 세우는 존재라고 선언한다. 그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벌인 끔찍한 일들을 그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는 과학은 인간의 행복(고통)을 묻지 않는 과학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 지점에서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과학과 자본이 무시한 이 감정을 사람들은 롱롱으로 대변되는 신화에서 찾는다. 신화는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사람들도 허물을 벗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본이 과학의 힘으로 사람들의 몸에 끔찍한 허물을 씌웠다면, 신화는 이야기의 힘으로 사람들의 몸에 들러붙은 허물을 떼어낸다. 이야기가 어떻게 허물을 떼어내는 힘이 되는 것일까? 이 소설의 제목인 ‘소원을 말해줘’에 그 해답이 나와 있다. 사람들은 이야기에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투영한다. 롱롱 신화는 그러니까 고통에 떠는 사람들의 수많은 소망들을 먹고 자란 셈이다. 롱롱을 키운 게 사람들이니, 롱롱이 사람들의 소망을 거절할 리는 없다. 롱롱이라는 거대한 뱀은 스스로 허물을 벗는 자연을 실천함으로써 과학이라는 인위에 찌든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안는다.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마음의 길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그녀는 뱀의 몸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롱롱이 그녀를 내장 깊숙이 밀어 넣었다. 날 삼켜. 핏속 소금이 녹아들 때까지. 그래서 허물이 벗겨질 때까지. 내 허물이, 세상의 모든 허물이 벗겨질 때까지. 롱롱에게로 흘러든 수많은 소망들, 롱롱의 몸속으로 들어간 엄마와 노파, 노파의 모친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들, 롱롱은 그 모든 것들이 살아 꿈틀거리는 장대한 몸뚱이였다. 시간의 지류 같은 이야기들이 흘러들어 가는 사이 허물이 생기고 허물을 벗고, 마침내 롱롱은 거대한 시간의 강으로 흘러야 했다. 마침내 세상의 모든 허물을 벗기는 신이 돼야 했다. (294쪽)
롱롱은 거대한 뱀이기도 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소망으로 빚어진 거대한 희망이기도 하다. 작가는 롱롱에게로 흘러든 수많은 소망들과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롱롱은 그 모든 것들이 살아 꿈틀거리는 장대한 몸뚱이였다.” 여자는 뱀의 몸속으로 헤엄쳐 들어가 허물을 남기고 떠난 엄마를 만나고, 뱀을 신으로 모시던 노파를 만난다. 그들은 스스로 뱀의 몸속으로 들어가 허물을 벗은 뱀이 이 세상 사람들의 몸을 휘감은 허물을 벗겨내기를 소망했다.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다른 이를 살리는 숭고한 소망을 영물인 뱀이 어떻게 거절할까. 그 숱한 사람들의 소망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뱀은 허물을 만들었고, 그 허물을 벗었다. 허물이 벗긴 자리에 새 허물이 생기는 순간이 반복되면서 롱롱은 사람들 마음에 “거대한 시간의 강”으로 남았다.
거대한 시간의 강이 흐르고 흘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신화이다. 신화에 새겨진 영원한 시간은 그러므로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온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공 박사와 같은 자본은 그러한 생명의 역사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지배하려고 하지만, 유한한 과학이 무한한 시간을 이길 도리는 없다. 무한한 시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신화는 바로 그 무한성으로 인간을 중심에 세운 질서에 틈을 낸다. 자본은 허물을 만들어 인간을 구속했다. 그래야 자본을 증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본의 악마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신화를 통해 자본을 넘어서는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롱롱 신화는 무엇보다 자본을 넘어서는 힘이 사람들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음을 다시금 알려준다.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서 사람들 또한 허물을 벗는 장면으로 이 소설은 끝난다. 롱롱 신화가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완전히 허물을 벗은 롱롱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누군가가 희생한 자리에서 누군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아무도 희생하지 않으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무언가가 희생한 자리를 다른 무언가가 채움으로서 생명의 역사는 이어져 왔다. 역사의 빈자리를 신화가 채우고, 신화의 빈자리를 역사가 채운다. 롱롱과 공 박사는 무한한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공 박사가 다른 도시에서 자본의 계획을 실천하면, 그곳에도 롱롱이 나타날까? 소설이란 어찌 보면 자본이 세운 성채를 떠도는 롱롱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보이는 현실에 집착하는 사람은 볼 수 없는 세계가 소설에는 드러난다고나 할까. 그것을 보는 몫은 그러므로 온전히 독자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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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여자가 있다. 공원관리인과 밀당을 하며 도망다니는 한 여자. 그냥 노숙인이라고 하자. 처음부터 그녀가 이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엄연히 파충류관리자라는 직업이 있었으니까. 어느날 자신이 관리하던 뱀이 사라졌고 그녀는 졸지에 직업을 잃었고 몸에 허물이 생겼고 지금은 뱀을 찾아서 떠도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나저나 뱀은 어디서 찾나.
여기 허물이 덮인 인간들이 모여사는 특별관리구역이 있다. 나라에서는 방역이라는 일므으로 허물인간들을 모아서 관리를 하고 허물을 벗겨준다. 새사람이 되면 무엇을 하나. 그곳을 나오면 또 다시 생겨버리는 허물. 허물인간들은 어디에 소속이 될 수도 없고 무엇을 할 수도 없고 결국 또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끊임없는 악순환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탈출구는 있는 것일까.
처음에는 좀비문학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이 감염되고 그들의 공격을 받은 사람들이 줄줄이 감염되는 그런 피해를 유발하는 이야기. 다행히도 이 허물이라는 것은 전염성은 없는 듯 했다. 그렇다고 뚜렷하게 어떻게 하면 허물이 생긴다고 밝혀주지도 않는다. 그저 어느 순간 허물이 생기고 사람들은 거 허물에 잠식되어 버린다. 프로틴을 먹지 않으면 말이다. 생활을 유지하기도 힘든 사람들에게 프로틴을 꼬박꼬박 챙겨먹기란 힘이 들 수밖에 없고 결국 프로틴을 중단하면 허물은 다시 생겨버리고 만다.
전설따라 삼천리라고 사람들은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롱롱의 이야기를 믿게 된다. 뱀이 허물을 벗으면 사람들의 허물도 모두 없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롱롱찾기 대작전을 펼치게 되는데 그 선두에 파충류관리자인 그녀가 앞장을 서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롱롱을 찾아서 허물을 벗을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자신들이 믿고 있는 그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가 먼저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될 것이다.
허물인간들의 소원은 단 하나, 일단은 허물을 벗는 것일게다. 그 허물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단지 눈에 보이지 않고 인식할 수 없을 뿐이지만 우리는 모두다 허물인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한다. 우리의 허물을 벗겨줄 것은 무엇일까.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이 허물속에 숨겨진 비리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더러운 권력자들. 결국 우리 모두는 소수임에 불과하며 그들에 횡포에 놀아나는 것은 아닐까. 표지에 그려진 동그란 달을 보며 사람들은 소원을 빌 것이다. 하지만 그 소원마저도 누군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것이라는 알게 된다면 그것마저도 허상이 아닌 가 말이다. 우리는 어디에 소원을 빌어야 하는 것인가. 대체 어떤 소원을 말해야 하는 것인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알면서도 우리는 결국 소원을 계속해서 말해야만 하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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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나오키문학상 서점대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등의 수상작품을 주로 읽는데, 최근 관심이 생긴 한국문학상이 있다. 한국문학의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소설가 김유정의 문학적 업적과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김유정문학상이다. 한 해동안 모든 중 단편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해 삼천만원의 상금을 지급하는 이 문학상은 김유정의 문학혼을 기리는 한편으로는 역량있는 한국 신예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상인데, 최근 주변에서 평이 좋은 편이라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임에도 유독 눈길이 갔다. <소원을 말해줘>는 2007년 <토큰>이라는 단편소설로 당선된 작가 이경의 재난,공포,SF 소설이다. 뱀처럼 허물이 온몸을 뒤덮는 병, 그 병으로 격리되어 가는 구역, 그 구역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원을 말해줘>를 소개한다.
‘다른 구역 사람들에게 D구역 사람들의 피부는 깨끗하다 해도 깨끗한 것이 아니었다. 언제라도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숙주와 다르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레 초래하는 귀결은 D구역은 다른 구역과 격리돼야 한다는 거였다. 그것은 다분히 정서적인 것이었지만 확실하게 작용하는 금기의 전제가 됐다. 간혹 원거리 여행을 떠나는 철새들처럼 훌쩍 떠나갔던 사람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기름에 흠뻑 젖은 깃털을 질질 끌며 구사일생 자신의 둥지로 되돌아왔다.‘
거대 제약 회사가 지배하는 기획 도시. ‘그녀’는 그 도시의 동물원 파충류 사육사이다. 석달 전 폭풍이 온 날 거센 비바람에 의해 산이 무너졌고, 흙과 돌너미 빗물이 동울원을 덮치게 된다. 산사태로 동물원이 무너지자 야생동물은 도시 곳곳으로 흩어지고, 도시는 혼란에 휩싸인다. 호랑이가 조정 경기장에서 조정 선수를 덮치고, 코끼리는 느닷없이 동네 미용실로 돌진하는 등 인구 50만 명의 소도시가 발칵 뒤짚어 진 것이다. 방역대가 동원되어 사라진 동물을 추적했고, 그녀 역시 뱀을 찾아 새벽부터 한방중까지 도시를 돌아다니게 된다. 이 사건으로 11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부실관리를 이유로 동물원은 폐쇄되고 그녀는 직장을 잃게 된다.
그녀는 허물이 생기는 병인 피부각화증을 앓고 있는데, 하루 두 번 프로틴을 먹어야만한다. 하지만, 사육사라는 직업을 잃은 뒤 통조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됨으로써 제대로된 음식섭취와 치료는 불가능하다. 점점 통장 잔고는 바닥나고, 월세는 밀리고, 집주인을 열쇠를 바꿔 그녀를 쫓아내기에 이른다. 결국 그녀는 공원에서 노숙을 하며 뱀을 찾게된다. 뱀만있으면 사육사로 다시 일할 수 있으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비단뱀을 찾아 D구역까지 가게된다. 그곳을 피부각화증이 심해져 뱀의 허물 같은 각질이 온 몸을 뒤덮는 풍토병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들은 전설 속 거대 뱀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 모든 허물이 영원히 벗겨진다는 믿을 가지고 있는데... 롱롱을 찾으면 정말 허물을 벗을 수 있을까
자연스러운 병이나 고도로발달된 과학인 SF적인 재난소설인줄만 알았던 초반부를 지나면, 결국 자연이나 과학보다 무서운 인간을 마주하게 되는 소설이다. 롱롱만 있으면 허물을 영원히 벗을 수 있다는 판타지, 그 희망의 붕괴가 가져온 비참한 현실은 잔인하고 끔찍하지만 그 모든 진실의 뒤켠에 숨겨진 도시정부와 거대 기업의 모의한 충격적인 음모는 어떤 재난보다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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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사는 세상에 거짓 아닌 것이 있을까? 대체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 걸까? - 우리는 정치에 속고, 기업에 속고, 너에게 속고, 나에게 속는다. - 본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사람들을 파충류로 만들어 약을 팔아먹는 제약·바이오산업의 거대자본. 그에 맞서는 민중들. - 착취 당하는 지배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실을 벗어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보지만 그 역시도 너와 나를 기만한 일일 뿐이다. - - 우리는 실제로 얼마나 유린당하고 있는것일까? 작가는 판타지라는 형식을 빌려 부조리한 사회를 꾸짖고 있다. - 대중을 속이는 정치, 그리고 대중을 속이는 거대자본들. -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애꿎은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가고, 연예인 기사로 국민들의 눈을 돌린다. 대기업의 사건은 기사화되지 않으며, 하청업체마누죽어난다. - 권력 앞에, 자본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는 대중들은 그저 바보처럼 당한다. - 정녕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걸까?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 밖에는 없는걸까? 무지한 대중인 나는 참으로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 - ?? 책속에서... 롱롱을 찾으면 정말 허물을 벗을 수 있을까. 영원히 허물을 벗으면 한 번도 허물 입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 ?? 책속에서... 전설은 전하는 입마다 다르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이야. 믿음은 저절로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 스스로 택하는 게야. 제 손으로 터를 파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집을 짓는 것이지. 너는 스스로 허물을 벗으면 마땅히 다시는 입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던 게지. - ?? 책속에서... “공포란 인간의 욕망과 여러모로 비슷하지. 공포가 공포를 낳는 것처럼 욕망이 욕망을 낳는다네. 내가 공포를 이용했다면 자네는 욕망을 이용한 거야. 허물을 벗고자 하는 욕망. 그게 죄라면, 자네와 내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비슷할 걸세.” - - #소원을말해줘 #이경 #다산북스 #장편소설 #sf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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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구역에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피부 각화증이 심해져 뱀의 허물 같은 각질이 온몸을 뒤덮는 풍토병을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각질세포 형성에 관여하는 구조단백질이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티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유독 티셀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고 증세가 심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도시화되기 이전 혈족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 촌락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이유를 들어 유전적 결함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었다. 그들은 전설 속 거대 뱀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모든 허물이 영원히 벗겨진다고 믿고 있다.
주인공인 그녀는 파충류 사육사다. 석 달 전 산사태로 동물원이 무너지자 야생동물들은 도시 곳곳으로 흩어지고 그로 인해 인구 50만 명의 도시가 발칵 뒤집어졌다. 결국 동물원은 폐쇄되고 그녀는 직장을 잃었다. 이후 그녀의 삶은 궁핍해졌다. 그녀에게 허물이 생긴 건 한 달 전, 발꿈치의 한 점을 바늘로 따끔하게 찌르는 느낌에서 시작된 허물은 미칠 듯한 가려움과 함께 손톱이 지난 자리가 붉게 부어올랐다가 홍반으로 피어나 사각형 모양의 회갈색 딱지로 변하더니 점차 허물로 굳어버렸다.
그녀는 허물을 벗기 위해 방역센터에 입소한다. 방역센터는 시 당국이 허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운영하는 곳으로 약물을 주입해 시민들의 허물을 벗겨내는 도시 내 유일한 기관이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거쳐 허물을 벗고 방역 센터에서 나와 직업도, 이웃도 없는 삶과 마주하며 결국엔 벌거벗은 기분으로 공원에서 잠을 자다 다시 허물 속으로 숨어들기 마련이었다. 방역센터에서 허물을 벗고 퇴소하면 다시 허물을 입게 되는,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을 알지만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녀는 그곳에서 김과 후리, 뾰족 수염과 척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 전설 속 거대한 뱀이 폐허가 된 궁의 아궁이에 산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녀와 김, 후리는 궁의 아궁이에서 거대 뱀을 꺼내 D구역 끝에 있는 김의 재생타이어 가게로 향한다. 그곳에는 겹겹이 쌓은 항공기 타이어가 긴 동굴처럼 이어져 있어 그들은 거대 뱀을 타이어 동굴 속에 숨기고 허물을 벗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전설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그때 알게 될 것이다.
“롱롱을 찾으면 정말 허물을 벗을 수 있을까. 영원히 허물을 벗으면 한 번도 허물 입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허물을 벗고 싶다. 엄마가 버린 허물 같은 아이, 버림받아도 좋다는 표식 같은 이 허물을 벗어버리고 싶다.” 전설 속 거대한 뱀 롱롱을 찾아 나선 파충류 사육사와 방역센터의 입소자들. 허물에 덮인 그들이 D구역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도시정부와 도시를 움직이는 거대 제약 회사가 모의한 충격적인 음모가 드러난다. 예로부터,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허물이 죄다 벗겨진다고 하는데 과연 정말 그렇게 될까?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시간순삭! 흥미진진! 정말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소재는 감탄사를 내뱉을 만큼 특색이 있다. 특히 제약된 상황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극한 공포와 분노,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들이 강렬하게 뇌리에 들어와 박힌다. 결말이 어찌 되었던 간에 무조건 끝까지 정주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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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란 인간의 욕망과 여러모로 비슷하지. 공포가 공포를 낳는 것처럼 욕망이 욕망을 낳는다네. 내가 공포를 이용했다면 자네는 욕망을 이요한 거야. 허물을 벗고자 하는 욕망. 그게 죄라면, 자네와 내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비슷할 걸세. - p278 다른 도시와는 달리 격리된 D 구역은 특이하고도 특별한 피부병을 앓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곳은 사람들의 피부 땀구멍에서부터 시작으로 허물로 뒤덮인 사람들이 사는 격리된 곳이다. 힘겹게 제약회사가 운영하는 방역센터로 입소하여 허물을 벗지만 퇴소 후에도 쳇바퀴처럼 또 다시 온몸에 퍼지는 허물이다. 이로 인해 이곳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롱롱'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파충류 사육사 "그녀"는 방역센터에서 만난 그들과 함께 전설의 '롱롱'이었음을 하는 바람으로 거대한 뱀을 구조하면서 허물을 벗기만을 기다리는 스토리로 전개가 이어가는 소설이다. 작가만의 상상력을 덧대어 만들어진 SF 소설인데도 다만 현실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사회의 면에서 감춰진 이면의 음모들과 계획들로 피해 보는 평범한 사람들... 무의미하고 건조한 sf 소설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다. 이 책을 펼치고 읽어갈수록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도서인지를 알게 될 책이다. 단순하게 생존만을 위한 소설이 아닌 재난과 공포가 스며든 스토리텔링이니 꼭 맛보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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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소설이었다. 소원을 말해달라는 상큼한 제목과는 다르게, 음울하고 축축한 느낌이 물씬 드러나는 내용이었다. 읽으면서 계속, 이게 뭔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국내 최초 재난.공포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역작!'이라는 띠지의 문구를 보면서 역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소설은 확실히 국내 최초이긴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표지 디자인이 예뻐서 겉만보고 어떤 내용일지 꽤 기대했었는데, 읽고 나니 아무래도 책을 앞에 두고 산길을 걷다 뱀 한마리를 마주한 것처럼 호감이 일지 않는다. 뱀을 싫어했던가, 재난물을 좋아하는 편인데, 왜 그럴까.
"소원을 말해줘"에는 두가지 키워드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뱀이다. 소설에서는 뱀을 전설 속의 존재로 그려낸다. 도시를 사로잡은 불치의 전염병을 치료할 수 있는 전설을 품은 뱀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도시에 나타난 전설-일지도 모르는-의 뱀을 두고 경외하고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뱀에 애정을 보이는 사람들까지도. 동물원의 주인이 가끔 찾아와 핸들링을 하거나 사육사가 뱀과 교감하는 장면들은 놀라움과 더불어 약간의 불쾌감을 준다. 뱀도 주인을 알아본다는 것이 신기하고, 그 몸을 타고 구불거리는 것으로 묘사되는 교감의 순간이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막연히 좀 징그럽게 느껴진다.
또 하나는 피부병인데, 이 특정 구역 사람들에게 주로 발명하는 병은 피부껍질이 각화되면서 간지러움과 통증이 생기고 심해지면 악취를 풍기는 피고름을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 이들이 사회에서 격리되고 불이익을 감수하며 생존하는 모습은 과거 한센병을 앓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떠올리게 만든다. 소설 속에서 증상이 심해진 피부 껍질을 치료해서 새 살이 돋게 한다는 치료방법은 꼭 뱀이 허물을 벗어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탈피 과정을 연상하게 한다. 때문에 책을 읽으며 이 두가지 키워드가 꽁꽁 얽혀 도시전설에 지나지 않는 롱롱의 존재를 마음 속 깊이 바라게 된다. 기적이나 영웅이 나타나길 바라는 것처럼 '소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만 소설은 뱀처럼 교묘히 독자를 홀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거대한 뱀이 궁에서 도시로 이동할 때의 모습은 설명으로 감이 잡히지 않았다. 헬스장에서도 타이어가게에서도 뱀은 때로 거대해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존재처럼 느껴지다, 갑자기 이성적인 크기의 파충류로 작아지기도 했다. 그 점은 읽는 동안 아쉬웠다. 거기에 사육사와 척의 감정선은 갑작스럽게 깊어졌고, 공박사와 척 사이의 끈은 설정보다 약해서 존재감이 미미했다. 양념처럼 끼얹어진 노파나 두목 원숭이의 존재는 거칠게 두드러져 나왔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등장한 인물들이라 구심점없이 기능만 하고 흩어진 느낌이었다. 좀 더 탄탄했다면 훨씬 더 매력적으로 읽히지 않았을까 싶다.
읽으면서 종종 작가에게 있어 뱀이란 대체 무엇일까 생각했다. 뱀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뱀을 너무나 무서워하는 사람일까. 어찌되었든 작가가 뱀이란 것에 깊이 사로잡혀있다는 것만은 느껴졌다. 뱀이 이렇게나 중요한 존재였던가. 소설 안에서 뱀은 실제로 존재하고, 전설이 되고, 상징이 되어 등장한다. 사람들에게 허물이 생긴다는 것은 그저 부수적인 것이고 모든 것이 마치 뱀에 의한 뱀에 대한 뱀을 위한 소설같았다. 한번도 뱀을 이렇게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읽으면서 조금 당황했다. 뱀이란 단어를 단시간에 이렇게 많이 본 것은, 동물원의 파충류사를 구경할 때 말고는 없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이 점은 재밌었다.
사실 동물원에서밖에 뱀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유리창 너머로 격리되어 있는 무기력한 기묘한 생김새의 동물을 별 의식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다만 내 가까운 친구는 어린시절 집이 농장을 했었는데, 길에서 가끔 뱀을 마주칠 일이 있었던 터라 뱀을 아주 싫어했다. 단지 뱀의 생김새같은 것 때문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위협을 느끼며 뱀을 싫어하게 되었다고 말한 사람은 주변에 오직 그뿐이라 나는 뱀이란 말이 나오면 무심결에 그를 떠올리곤 한다. 책을 읽으며 그 친구를 내내 떠올렸는데, 아마 이 책은 읽기조차 싫어하지 않을까 싶다. 독특한 느낌을 주는 인상적인 소설이기는 하지만 뱀 때문이 아니더라도 피부병같은 소재로도 충분히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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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제약 회사가 지배하는 인구 50만의 기획 도시.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읽는 내내 허구이지만 허구처럼 읽히지 않았다. 제약, 바이오산업을 기반으로 한 거대자본에 대한 음모론은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므로 말이다. 의약품을 판매하기 위해 일부러 병을 먼저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라던가, 약품의 공급량을 조정하고 있다라는 소문은 낯선 것이 아니다. 소설이 아닌 논픽션 책으로도, 영화로도, 드라마로도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재는 늘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소원을 말해줘 이경 장편소설 다산책방 이 도시의 D구역에는 온몸이 허물에 덮이는 피부병에 걸린 사람들이 격리된 채 모여 산다. 그들의 허물은 마치 뱀의 허물 같다. 피부병이 나았다고 해도 '언제라도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숙주' 취급을 받기에 그들은 일반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다. 전직 파충류 사육사였던 주인공도 일하고 있던 동물원이 폐쇄되면서 이곳으로 오게 된다. 도시에서는 방역센터라는 곳에서 시민들의 허물을 벗겨내준다. 그리고 시민들은 허물방지를 위하여 프로틴이라는 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하게 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어 프로틴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터라 대부분은 길고 두꺼운 옷으로 자신의 허물을 가리고 살다가, 방역센터에 입소와 퇴소를 반속하는 삶을 산다. 주인공도 허물을 벗기 위해 방역센터에 입소한다. 피부각화증은 지역의 풍토병이었던 터라 전설도 존재한다. 전설의 거대뱀인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모든 허물이 벗겨진다는 전설. 도시에서 거의 유일한 파충류 사육사인 주인공이 그 뱀을 찾아나서는 것은 당연한 순리처럼 느껴지는 구성이다. 주인공이 방역센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롱롱' 을 찾고, 그 거대뱀이 허물을 벗기를 기다리는 동안의 여러 정경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주인공과 D구역의 사람들 모습은 디스토피아적인 부분에서 얼핏 조남주의 소설 「사하맨션」 의 구성원들을 떠올리게도 했다. 허물 안에서 자살한 척의 아버지와 허물처럼 아이를 벗어 두고 도망간 그녀의 엄마, 척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은 그녀와 같았다.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의 마음 속에 무겁게 가라앉은 수치심. 척에게 허물을 벗는 것은 수치를 벗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허물뿐 아니라 세상의 허물을 전부 벗겨내려 한다. - 152 소설 구성원의 스토리보다는 오히려 방역센터의 진실, 그리고 대중의 반응들에 대한 문장들이 현실과 맞닿으며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주인공은 그저 파충류 사육사로서 뱀을 구하고자 했을 뿐인데 어느새 사회를 구해야하는 듯한 영웅의 부담감을 떠앉는다.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진실에 마주할 수 밖에 없었고. 공포는 방역 센터가 시민을 통제하는 도구입니다. 허물을 퇴치하기 위해 세금을 걷고 수십 종의 프로틴을 출시해 점점 가격을 올리고 방역대를 도심에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습니다. 허물을 입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허물에 대한 공포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을 지배합니다. 전설 따위에 기대 당신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겁니다. - 146 보험 영업이란 게 말입니다. 실은 불안을 퍼뜨리는 일입니다. 허물에 대한 불안을 수치로 증명하고, 만일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고객을 설득하죠. 허물이야말로 이 도시에 존재하는 제일 큰 불안이지 뭐겠습니까. - 179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은 늘 벌어진다. '공포 소구(Fear appeal) 마케팅' 이란 용어도 있지 않은가. 정치판에서는 FUD(Fear, Uncertainty, and Doubt) 전략도 자주 활용 된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 라는 생각에 아예 관심을 거두기는 어렵다. 결국 그 두려움의 실체를 마주하기 보다는 다른 무엇인가를 믿고 싶어한다. 이 뱀이 진짜 롱롱인지, 아니면 그저 거대한 뱀에 지나지 않는지,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겁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뱀의 몫이 아니라 사람의 몫입니다. 위험을 감당하지 않을 거라면 답은 한 가지뿐입니다. 뱀은 조만간 방역대에 포획돼 죽게 되겠죠.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 158 전설은 전하는 입마다 다르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이야. 믿음은 저절로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 스스로 택하는 게야. 제 손으로 터를 파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집을 짓는 것이지. 너는 허물을 벗으면 마땅히 다시는 입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던 게지. - 202 전설의 뱀 롱롱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진 도시는 허물을 영원히 벗으려는 열망에 휩싸인다. 그러나 점점 기대는 부서져간다. 전설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만큼, 기대가 무너졌을 때의 분노는 더 거셀 수 밖에 없었다. 시민들이 원하는 건 하나야. 허물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거. 공포가 부풀려질수록 소망도 꼭 그만큼 부풀려지기 마련이니까. - 155 결국 자신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주보게 되고, 방역센터에 대한 의심을 해보게 한다. 그리고 그 지배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일반 대중들이 움직인다. 허물에 덮인 자들이 꿈틀거리며 이 도시의 진실과 음모를 마주한 것이다. 그들의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뱀이 꿈틀거리는 모습'과 같았다는 묘사는 이들도 곧 허물을 벗을 것임을 암시하는 듯 했다. 그렇다. 비록 진실이 수면 속으로 가려졌지만 결론적으로 전설은 이루어진 셈이 되었다. 다만 '가려진 진실'을 계속 믿어나갈 대중들의 모습이 내 모습일 듯 하여 씁쓸하기도 하다. 게다가 책 속의 '허물'처럼 현실에서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인가. 내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은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의 소재처럼 시기마다 등장하는 각종 '유행전염병'의 위협일 수도 있고, 아이의 '교육의 방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한동안은 '전쟁' 에 대해 두려워한 적도 있었다. 무엇이든 그 두려움은 일반일들을 흔드는 강력한 무기다. 난 내 '허물'의 실체를 어떻게 마주하고, 벗을 수 있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