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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나라 이름은 대한민국 이고 북한의 나라 이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야 우리가 늘상 써왔으니까 이상할 것이 없는데 왜 북한은 그렇게 긴 나라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어렸을때 궁금했던 적이 있다. 게다가 공산국가인데 왠 민주주의? 그리고 망한 나라인 조선을 맨 앞에 쓴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했었다. 나이가 들어서 대충 그 이유를 알게되었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그런 의문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고 차근차근하게 잘 답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제 이 '국호'만 떼어서 국호를 정하는 것에서도 남북 분단의 씨앗이 되었음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나라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쉬운것이 아니다. 나라를 세운 사람들의 이념과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담는다는 점에서 그것을 뜻하는 이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가 건국했을때 이념은 옛고구려를 계승하고 통일 왕국을 세운다는 뜻이 들어가서 그렇게 지은 것이다. 남한의 대한과 북한의 조선도 단순하게 지은것이 아니라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지어진 이름이다.
우선 우리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살펴보면 일단 '대한'은 구한말 대한제국 시절의 그 '대한'에서 따온것이 맞다. 하지만 '한'은 그전에 삼한 시대에 있었던 그 한으로부터 연유가 되었다. 일단 중국으로부터 독립된 나라임을 선포한 대한제국을 잇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민족적인 의미도 있었다. 일제에 의해 빼앗긴 '한'국을 새로 새운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것이 집약되어 나타난 것이 3.1 운동뒤에 결성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이다. 국호를 정할때도 상당한 격론이 있었다고 하니 허투로 지어진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한 후 처음으로 세워진 통합된 임시 정부는 독립 방향을 놓고 내분이 일어나고 만다. 당시 임정 주류의 외교론에 맞서서 더 강한 투쟁을 원했던 사람들과의 견해 차이가 심각했던 것이다. 그것에 불을 지핀것이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위임 통치 제안설' 이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이 미국더러 한국을 위임 통치 해달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 폭발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회의가 열였지만 임정을 개혁하자는 개조파와 임정을 대신할 새로운 독립운동의 지도기관을 세우자는 창조파로 나누어져서 끝내 분열되고 말았다.
이 분열은 다시 봉합되지 않았고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은 점점 임정에서 멀어져갔다. 그때부터 단체 이름이나 국호를 '한'이 아닌 '조선'을 주로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1940년대에 김원봉과 일부 좌파세력이 임정에 합류하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좌익 계열은 조선을 썼다. 물론 좌익 계열이 대한에 처음부터 거부감을 보인것은 아니다. 처음에 임정이 결성될때도 큰 문제가 없었고 한국인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을 창립했을때 이름은 한인사회당이었다. 그 뒤로도 좌우합작을 할때는 대한을 쓰는데 큰 반대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좌익은 우익이 사용하던 한을 버리고 조선 그것도 봉건 왕조였던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려고 했을까. 그것은 대한제국을 계승할려고 했던 우익에 비해서 좌익은 계승 의식이 없었고 인민대중의 국가를 지향하던 그들에게 당시 조선이라는 이름이 친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외로 당시 일제하 민중들에게 대한이라는 이름은 그다지 친숙하지 않았고 일제 전의 왕조였던 조선에 친숙했던 것이다.
좌익으로서는 우익에 맞서는 선명성을 가질수 있고 민중에게 더 익숙한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독립 운동에 대한 주도권을 쥐려는 의미도 있었을꺼 같다. 그러나 이렇게 국호에서부터 분열된 모습은 나중에 진짜 분단이 되는 단초가 되었다고도 볼 수가 있다. 치고 박고 싸워도 임정 내에서 했어야 하는데 서로 딴 살림을 차리는 순간 다시 합쳐지기는 쉬운일이 아니었다. 당시 임정을 보면 우익쪽의 민족주의계열이 더 주류였는데 이들이 좌익을 더 포용했다면 독립 운동사는 달라졌을것이고 분단의 역사도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분열된 독립 운동을 했지만 어쨌든 이들의 공통된 목표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는 것이었다. 어쩌면 독립이 되지 않았을때의 국호 논쟁은 큰 문제가 아닐수 있다. 본격적인 문제는 해방후였다. 남과 북에서 모두 통일된 국가가 아닌 단정을 만들려는 분위기가 이루어졌고 좌우의 분열속에서 통합은 쉽지 않아 보였다. 좌우 합작을 하려는 중도세력은 여운형의 암살을 계기로 급속히 세를 잃었고 김구의 임정이 분단을 막아보려고 애썼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남한에는 이승만이, 북한에는 김일성이 대표가 되는 나라가 각각 세워졌던 것이다. 당시 정세가 미소냉전의 기세가 완연히 강해지고 있었는데 그 소용돌이속에서 끝내 분단이 된 것이다.
지은이가 말했듯이 대한이던 조선이던 분단을 가정하고 만든 나라이름이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통일된 조국을 생각하고 지었던 이름인데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고 각각의 나라 이름이 된 것이 참 안타깝다. 그저 '임시'이름이었는데 그것이 임시가 아니라 70년이 흐른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라이름을 지었던 그들은 이렇게 분단이 오래갈줄 상상했을까.
책은 남북한의 국호가 어떻게 정해졌고 또 어떤 맥락에서 정해졌는지 전후 사정을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독립운동의 방향 설정에서 비롯된 국호 논쟁이 끝내 분단으로 귀착되었고 그 과정의 논의 과정과 이름의 의의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적고 있다. 내용은 읽기 무난한 수준이나 현대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질수 있을듯도 하다. 그러나 나라이름 국호를 통해서 복잡한 남북 분단의 역사를 조망할 좋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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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해 하나의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다. 왜 북한의 정식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사실 북한은 전혀 민주주의 체제도 아니고 인민을 위한 나라도 아니며 심지어 아무리 자신들을 공화국이라 칭한다 해도 3대나 혈통으로 계승된 왕국으로 볼 수 밖에 없지만 아무튼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말 자체는 좋은 뜻이니 자신의 실체를 가릴 포장으로서라도 이런 국호를 채택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북한은 조선을 봉건제 국가로 매우 나쁘게 보는데 왜 국호에 조선이라는 말이 들어가는지 의문이었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번에 국호로 보는 분단의 역사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단순히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국호도 실제로는 매우 깊은 논쟁이 벌어지고 각 세력들의 정체성과도 직결되는 매우 중대한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좌파가 조선을 선호하긴 했지만 이것이 결코 조선왕조를 긍정해서 선호한 것이 아닌 대한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대한제국이 성립하고 일본에 병합되기까지 10년정도에 불과한 시간이었고 그 후에 일본이 조선이라는 명칭을 식민지에 다시 사용하면서 수백년간 익숙해진 조선이 단지 민중에게 더 친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우파가 대한을 선호한 것도 대한제국이라는 체제를 긍정하는 것이 아닌 일본에 의해 빼앗긴 대한을 독립하면서 다시 찾고자 하는 의지로 대한을 선호한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합의하고자 하면 합의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안타깝게도 독립운동 과정에서 서로의 분열이 너무나 심해져서 이렇게 국호조차 매우 달라지게 된다. 또 민국이니 민주공화국이니 인민공화국이니 아니면 그 앞에 민주주의를 더한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체제를 나타내는 명칭도 서로 비슷비슷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한자한자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중대해서 이를 두고도 사회주의권 특히 소련의 정책 변화에 영향을 받아서 독립 후 꿈꾸는 나라가 어떠할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실 북한의 정식 국호는 너무 길기 때문에 아홉자 타령이라 해서 북한에서도 건국 초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최종적으로 채택된 것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데 당시 새로운 이상적 독립국가를 꿈꾸었던 당시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오늘날 북한은 저 국호를 모두 배신하는 결과가 된 것이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국호는 분단을 가정하고 정한 것이 아닌 통일국가를 목표로 하고 서로의 고민들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럴 수록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이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해야 했던 시기에는 보다 더 단결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함께 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중국에서도 쑨원이 보다 오래 살고 화합과 통합의 지도자가 다음 중국의 지도자가 되어서 우리 독립운동도 임시정부가 정말 모든 독립운동계층의 통합된 지도 역활을 다 할 수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국호 논쟁을 통해 일제하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어떤 국가를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들 사이의 치열한 논쟁, 결국 이런 국호가 가지는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일제시대와 건국초의 역사를 배우고 이런 국호가 어떤 역사적 과정과 의미를 알기 위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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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사'로의 조심스러운 초대 네이버 역사 전문 카페 '부흥'에서 책 [국호로 보는 분단의 역사] 서평 이벤트가 공고되었을 때 카페 회원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여러 책의 서평 이벤트가 겹쳐 공고되었기 때문에 관심이 분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책들을 제치고 이 책이 회원들의 관심을 끌어모으지 못한 까닭은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회원들은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남북한의 분단사에 관해 학교에서 이미 충분히 배웠다고 느꼈을 것이고,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 이상의 내용을 이런 종류의 대중 서적이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이 책의 제목으로부터 별다른 호기심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역으로 나는, 이러한 시장의 반응이 뻔히 예상되는 주제를 당당히 들고서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책이라면 반대로 기존의 교과서적, 이데올로기적 서술과는 차별화되는 어떤 새로운 읽을거리를 담고 있을 거라는 예상으로 이 책을 선택한 것이다. 내 생각에는 내 예상이 맞은 것 같다. 이 책은 교과서에서 이미 뻔질나게 주워섬기고 있는 뻔한 도식적 약사를 되새김질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해방 전후사에서 활약한 주요 인물들을 탈정치적으로 신격화하지 않고, 반대로 탈정치적으로 악마화하지도 않으면서, 구체적인 정치적 이해관계의 구도 속에서 각각의 '건국 준비 세력'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추적해가고 있다. 전문적인 역사학계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대중 출판시장에서 이 책의 관점은 최소한 어느 정도의 신선함을 갖는다고 생각된다. 특히, 아마도 기존 한국의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대한민국'의 건국사는 비교적 익숙한 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사는 자세히 접해 볼 기회가 적었을 것임을 고려해서 그런 듯한데, 이 책은 북한 쪽 정부의 수립 과정 및 그 과정에서 벌어진 정치적 아무들에 관해 약간 더 비중을 두어 설명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내 생각에 이 책은 한국 대중을 위한 좋은 '북한사' 입문서가 되어주고 있는 것 같다. - 거짓이 낳는 괴물에 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 과정, 그에 관여한 정치 세력들 간의 투쟁 과정, 그에 수반된 국호 논의 과정에서 새삼스레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정치 세력들 간의 암투 속에서 노동자 대중의 의지나 혁명적 열기 따위는 결단코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급 간 역학 관계에 관한 이론적 수사들은 이들 정치 계파들에게 있어서 명분 싸움을 위한 핑계로 동원될 뿐이다. 북한을 만들어낸 소위 '혁명가'라 하는 자들은 도무지, "어떻게 하면 노동자 대중의 분노를 선동하고 그들의 지지를 확보하여,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혁명적 동력을 그 존립 기반으로 하는 변혁적 권력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는 사고를 하지 않는 자들이다. 이들이 권력의 기반으로 삼으려 하는 것은 해방을 꿈꾸는 피착취계급의 열망과 용기와 연대가 아니다. 이들의 원동력은 정치공학이다. 강대국 외세들 간의 타협이고, 기존에 존재하는 정치 권력들의 순전한 재편성이다. 새롭게 건설될 공화국의 정치 체제가 과연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권력 의지를 잘 고무하고 반영하면서 보호하고 또한 발전시켜 갈 수 있는 성격의 것인가 하는 점은 이들의 토론 주제가 아니다. 단지, 스탈린은 신생 북조선 공화국의 정권이 친소 정권이면 되는 것이고, 김일성은 그 정권의 실질적 수반이 자신이면 되는 것이다. 구호와 실질적 의도가 괴리된 이들의 논의 속에서 "민주주의",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인민민주주의" 따위의 용어와 개념들은, 그 배경과 철학적 함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껍데기만 남은 죽은 단어들로 형해화한다. 이들의 건국사는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급진주의자들에게는 아무런 변혁적 영감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역사는 한국의 급진주의자들에게 분명히 어떤 교훈을 시사한다. '아래로부터의 자기해방'이 실제로 가능하리라는 전망과 열정을 상실한 자들이, 그럼에도 여전히 '혁명가'연하고 겉으로 변혁적인 체하며 운동의 주도권을 쥐려 할 때, 이들이 내뱉는 구호와 그 속의 의도 사이의 괴리가 어떤 괴물을 낳을 수 있는가 하는 경고가 바로 그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