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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앞에 모피어스가 앉아있다. 그렇다.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다. 파란 알약과 붉은 알약이 앞에 놓여있다.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그냥 지금처럼 살 것인가, 진실을 볼 것인가. 진실에 직면한다는 것은 훨씬 더 고통스럽고 잔인하다. 매트릭스 속 네오는 진실을 볼 수 있는 붉은 알약을 삼켜 the one이 되었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 책은 그 붉은 알약과 같다. 시뻘건 육즙이 흐르는 두툼한 스테이크를 SNS에 올리며 마블링이 얼마나 많은지 감탄하면 그만이었던 행복한 식탁, 그 작은 스테이크 덩어리가 식탁에 올라가기 전의 이야기이다. 그 고기가 한 때 살아있는 눈망울이 맑은 작은 송아지였다는 것을, 태어나자마자 어미소와 헤어지고 좁은 우리에서 오직 식탁에 오를 용도로 키워지고, 학대당하다 한 번도 사랑받지 못 하고 도살장으로 끌려가 죽은 한 생명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몰랐거나, 모른 척 하고 있다.
작가는 경매장과 축산농가, 가공 공장 등을 다니며 보고 들은 것을 적고 있다. 책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죄책감이 아니다. 가축을 이용해 살았던 인류의 역사는 너무나 길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식과 질 좋은 가죽신발과 멋진 가죽 가방, 따뜻한 오리털 파카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네오가 진실을 보는 것을 택했듯, 이것이 어떻게 내 앞으로 오는지는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비록 ‘고기’가 될 운명일지라도 살아있는 동안 최소한의 생명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들을 누리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이 책 한 권에 간절히, 너무나 간절히 담겨 있다.
이 책 제목이기도 한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의 이야기이다. 사육되는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이 태어나서 한 번도 생명으로서 가져야 할 권리를 갖지 못 한 채 학대받고 죽음을 맞이한다.
캘리포니아 ‘애니멀플레이스’라는 곳은 학대와 방치를 당하다 온 구조되어 온 동물들을 보살펴 주는 곳이다. 농장에서 태어나 꼬리를 잘리고, 귀 인식표를 단 채 생후 18개월 만에 인공수정으로 처음 임신한 암소 ‘세이디’는 매년 같은 방법으로 임심을 반복하고, 자신이 낳은 송아지와 한 번도 같이 있어보지 못 한 채 매일 하루 세 번씩 우유를 짰다. 유선염에 걸려 경매를 통해 동물병원에 실습용으로 팔려 20주 동안 목의 정맥을 찔러 피를 뽑아 내는 채혈실습에 사용되다 도축장으로 끌려갈 처지에 다행히(?) 수의학과 학생의 구조요청으로 애니멀플레이스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미 극도로 몸이 약해져 송아지를 사산한 세이디는 처음으로 자신의 새끼와, 정확히는 죽은 새끼와 함께 몇 시간을 지냈다. 그리고 그 뒤 이곳에 들어오는 송아지들의 엄마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도 돼지독감의 두려움 속에서 수만 마리의 돼지들이 살처분을 당했다. 지금은 서식지를 잃은 맷돼지가 산에서 내려온다는 이유로 10만 마리를 죽일 계획이라고 어제 뉴스에서 보았다. 지구온난화로 사육되지 않은 수없이 많은 동물들도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고, 가축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취급을 당하며 고통을 당하고 있다. 매트릭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은 정말 지구의 ‘바이러스’인가. 나를 포함해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최소한 노력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기본적인 이야기들이 이 책 안에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 그래도 꽤 많은 책을 읽었는데 단 한 권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이 책을 꼽을 것이다. 네오가 진실을 택했듯, 이 책을 통해 진실을 한 번 직시해 보았으면 한다.
yes24의 서평단으로 책을 받았으며 이 책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저도 개인적으로 책을 구입하고 리뷰를 씁니다.
덧붙임. 제가 자주 가는 카페에 책에 대한 소개글을 올리고 받은 댓글 중 일부를 이 글에 보탭니다. 함께 공감하는 분들이 많아 무척 아팠지만, 행복한 책읽기였습니다.
알면 알수록 미안해집니다. 우유는 송아지껀데 소를 인공으로 끔찍한 방법으로 계속 임신을 시키고 송아지를 떼어놓고 우유를 계속 짜는 것... 25년은 살아야하는 젖소는 계속된 강제임신으로 5년밖에 못산데요. 너무 슬픈 현실입니다 <미니멀 신>님
똑똑한 돼지라는 인식이 잘 안되죠. 이게 실제 육가공업체들의 마케팅 방식이라고 배운 기억이 나네요. 단지 고기라는 개념은 있지만 소, 돼지를 도살해 얻은 거라고 잔인하게 안 느껴지니까요. < Regina S> 님 젖소들은 계속 젖을 짜기 때문에 유선염을 달고 살아요. 그걸 치료하려고 항생제를 계속 투여하죠 <새노래> 님
제가 채식하는 이유입니다 <럭키비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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