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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건 어찌 보면 죽어간다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은 횟집수족관 안에 갇힌 물고기들을 통한 한편의 우화로 이런 우리의 삶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바다에서 잡혀와 횟집수족관 안에 갇혀버린 고등어 파닥파닥, 그곳을 탈출해 바다로 돌아가려는 파닥파닥은 그곳 생활에 순응해버린 물고기들과 그런 그들의 대장 올드넙치와 대립합니다.
자유로운 바다로 돌아가고픈 파닥파닥과 횟집수족관 안에서의 생활을 강요하는 올드넙치, 이 둘은 서로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다르지만 살고 싶다는 공통의 의지를 가지고 있죠.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위험과 목숨을 걸어야 하는 반면 수족관 안에서는 요령만 지키면 안정된 삶을 영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족관 또한 언제든 약간의 실수만으로도 횟감이 되어 죽을 수밖에 없고 끝까지 버틴다 해도 언젠가는 기포기에 의해 폐가 망가져 죽을 수밖에 없는 곳 입니다.
이런 수족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올드넙치가 만들어낸 규율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법과 같은 일종의 규율에 있어 함께 동반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개인의 자유의사에 대한 존중 아닐까요? 물론 개인의 자유의사 또한 스스로의 책임과 행동에 필요한 용기가 수반되어야 할 테죠.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통제와 규제, 살아있기 위해 필요한 자유의 열망, 서로 다른듯하지만 너무나 닮아 있는 이 둘은 결국 서로가 같다는 것을 깨닫지만 운명은 이 둘을 갈라놓고 맙니다. 하지만 고등어 파닥파닥의 의지는 올드넙치에게 이어져 그를 희망이라는 자유의 바다로 떠밀죠. 고등어 파닥파닥이 그랬듯 파닥파닥 거리는 몸부림으로 말입니다.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몸부림 파닥파닥.
우리의 삶이란 희망이라는 것을 바라보며 파닥파닥 거리는 몸부림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떤 평론가가 이 영화에 대해 말한 것처럼 한동안 회 먹기가 힘들듯합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추천요. 영화 좋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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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의 시작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조금 더 쉽게 받아
들이게 하기 위해서 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솝 우화의 시작도
그런 것이었고, 그 외에도 많은 우화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른 것들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서 조금 더 쉽게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이야기였
다. 애니메이션인 파닥파닥도 그런 우화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마지막에는 우리
가 보통 생각하는 이야기의 전형을 벗어나는 우화를 들려주는 특별한 우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집으로 옮겨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고등어인 파닥파닥은 그렇게 횟집에서 새
로운 삶을, 아니 죽음을 향한 유예기간을 보내게 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자
유롭게 살았던 바다로 돌아갈 방법을 고민하고 끊임없이 시도를 한다. 하지만 그
횟집의 수조에는 오랫동안 살아남은 올드 넙치가 존재하고 있고, 그 올드 넙치는
긴 시간을 수조 속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 새롭게 횟집의 수조로 들어오는 다른
생선들을 지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새로운 생선들은 양식장에
서 옮겨온 것들이라 다른 세계를 모르기에 오로지 올드 넙치가 이야기하는 세상이
모든 세상이라는 생각을 갖고 올드 넙치에게 복종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여기
에서 이 작품 파닥파닥이 갖고 있는 우화가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하
나의 사회가 만들어지고, 그 사회를 지배하는 하나의 구조가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다른 더 나은 혹은 새로운 구조가 존재하거나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
하고 그 구조 속에서 계속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이 우화가 보여주려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한 사실상 작은 수조 속에 완성된 하나의 구조 속에
던져지 바다에서 살았던 고등어 파닥파닥의 존재는, 그 수조만이 세상의 전부인
다른 생선들에게 위협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더구나 끊임없이 자유로운 바다를
이야기하며 탈출을 시도하는 파닥파닥의 모습은, 수조를 지배하는 올드 넙치에게
는 자신이 지배하는 세계를 파괴하려는 반역으로 보였을 것이다. 더불어 올드 넙
치의 지배에 순종하는 다른 생선들에게는 안정적인 세계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
하는 파닥파닥이 불만분자로만 보였을 것이다. 여기에서 이 우화는 바로 우리 사
회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아주 오랫동안 이 사회의 문
제점을 외면하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들을 올드 넙치와 다른 생선들이 그대로 사
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이 여기에서 멈추었다고 이 이
야기는 단지 보통의 다른 이야기과 같아졌을 것이다. 그렇게 이 애니메이션을 보
는 이들이 대충 이런 이야기이고, 이런 메시지를 던져주려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
한 그 때에 이야기는 반전을 시작한다.
당하게 된다. 마치 우리가 우리의 역사에서 발견하게 되는 진실을 이야기한 이들이
당하는 그 모습과 그대로 닮아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파닥파닥에게 동
조하는 놀래미가 등장하고, 이 양식장 출신의 놀래미는 자신도 바다로 갈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수조는 올드 넙치의 지배 아래에 있기에 파닥
파닥의 시도는 여전히 비웃음과 공격을 받게 된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이 애니메이
션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파닥파닥이 불가사리의 발은 다섯개라고 이야기
하자, 올드 넙치는 오십개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올
드 넙치와 다른 생선들은 우리는 합의를 통해서 정답을 만들었다는 말을 한다. 결국
그 생선들은 진짜 진실이 아닌 자신들끼리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서로 합의를 통해
서 진실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애니메이션은 바다 출신이라던 올드 넙치의
과거를 통해서 그에 대한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파닥파닥에게
동조해서 탈출을 시도하던 놀래미의 죽음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가 흔하게 만나게
되는 그 모든 진실을 위한 시도들의 실패를 보게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 작품은 전
혀 다른 결말을 향해서 나아간다. 결국 바다로 나아가는 것은 양식장 출신의 수조의
지배자였던 올드 넙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말을 통해서 파닥파닥은 바로 우리사
회의 나아갈 길도 이야기한다. 결국 변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에 동조해서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자유로운 바다로 나아가
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노력에는
먼저 진실을 알고, 전하고, 죽어간 이들의 응원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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