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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무슨 반미구호같다. 원제는 "Made in America: The Shaping of Modern American Evangelism"이다. 원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굳이 이 내용을 분류하자면 교회사책이다. 하지만 단순히 교회사를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현재 미국의 복음주의가 어떤 형태로 발전해 온 것이며, 그로 인해서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파헤쳐 놓은 아주 인상적인 책이다. 저자 마이클 호튼(Michael Scott Horton)은 현재 미국의 복음주의가 세속 정치지향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또한 상업주의적인 방향으로 흘러가 초대교회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에서 떠나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지적한다. 각 장의 표제만 봐도 그의 비판적 시각을 금방 알 수 있다. 여기 한 번 그 표제들을 적어보겠다. 1. 민주주의의 시녀가 된 하나님 2. 실용주의적 복음주의 3. 소비자 중심주의 4. 구원으로부터 자기존중으로 5. 감정 중심의 신앙 6. 이교도로의 복귀 7.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8. 공동체의 상실 6장에서 그의 비판이 절정에 달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저자는 지금의 미국 복음주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기쁨과 위로, 감정적 기쁨의 충족을 향해서 가고 있으며, 이런 행태는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라 영지주의적인, 이교도적인 행태라고 질타한다. 최근에 들어서 한국교회가 미국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따르고 있을 뿐 아니라 개혁주의적인 입장보다는 복음주의적인 입장을, 성경적, 신학적 원칙론보다는 실용적이고 정치적인 입장을 선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우리의 현실 앞에서 선지자적인 외침을 던지고 있는 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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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호튼의 글에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 탁월함이 있다. 신학적인 정리 뿐만 아니라 철학과 시대의 사조까지 함께 정리해가며 오늘날 복음주의가 어떻게 변질되어 가고 있는가를 잘 살피고 있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신앙과 역사의 근저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광맥을 발견하는 듯한 놀라움에 빠지게 된다. 사실 처음 알게된 내용은 아니지만, 책을 읽는 가운데 더욱 명확하게 정리된다. 민주주의, 실용주의, 감정주의 등을 살피며 이러한 사상의 흐름이 신앙과 교회 안에 들어와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 지를 알려준다. 아주 좋은 책이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역사적 근거를 들어서 시대의 조류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지만, 때로는 역사의 흐름에서 처음으로 태동된 운동 안으로 분류되는 수많은 현상들은, 분류되는 순간 그 어떤 논의나 재고의 여지없이 땅 속으로 묻혀버립니다. 역사적인 뿌리를 찾아 분류하는 데는 장점과 맹점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전혀 그런 뜻으로 출발한 것이 아닌데도, 나타나는 현상이 과거의 역사적인 운동들과 관련성이 있으면, 이것은 ~부류, 저것은 ~부류 나눠버리고 더 이상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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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인간의 선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에게 좋은 것들이 하나님께도 영광이다.
요약 。。。。。。。。
예수님과 함께 한 12명의 제자,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몇 사람의 평범한 사람들. 지리적으로는 지중해의 가장 동편, 팔레스타인의 한 작은 동네. 기독교의 시작은 작았다. 그 때와 비교하자면, 오늘날 기독교는 확실히 엄청난 성장을 했다. 수억에 달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서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엄청난 성장에는 부작용도 나타나기 마련.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소위 ‘기독교 국가’라고 부르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호튼은 오늘날 미국 기독교, 그 중에서도 복음주의라고 불리는 기독교의 한 분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호튼은 애초부터 미국은 ‘기독교적 정신’에 의해 세워진 국가가 아니었으며, 이는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대단히 인간적인 신앙의 모습들 - 이신론(Deism)과 같은 -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조나단 에드워즈 등이 주도한 1차 대각성운동 등을 통해 잠시나마 바른 기독교의 모습이 확산되기도 했으나, 점차 인간적인 기독교로 전락해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이라는 실용주의적 접근, 죄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단순한 자기의 존중을 위한 신앙, 감정에만 경도되는 신앙과 예배, 상대주의에 대한 맹신 등이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들이다.
저자는 신학적으로 깊이가 있으면서도, 매우 실제적인 예들을 사용함으로써, 오늘날 미국 기독교계가 안고 있는 심각한 질병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감상평 。。。。。。。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누구나 그랬겠지만, 여기에 지적되고 있는 문제는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른 많은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기독교계도 미국에서 한 번 크게 떠들썩했던 것은 곧바로 수입해서 최신의 유행을 일으키는 것이 다반사가 아닌가. 사실 이미 이 책에서 지적되고 있는 상당수의 문제들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거의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개혁주의적인 신학적 전통을 가지고 각각의 문제들이 전제하고 있는 신학적인 오류들이 무엇인지를 잘 지적하고 있다. 또, 이렇게 잘 정리해 놓았기에, 독자는 현실의 문제의 본질을 혼동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집어내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수많은 유사 기독교 사상들이 나날이 영향을 넓혀가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지적은 있는데, 대안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대안은 바른 기독교를 다시 세워나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이 부분은 큰 문제라고 할 수 없을 런지도 모른다.
신학을 배우고 교회를 섬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때로는 혼란스럽기까지 한 오늘날의 기독교계의 상황을 매우 잘 정리해 놓은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신학을 하지는 않더라도, 오늘날 ‘기독교’라는 이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이상한 일들을 우려하고 이를 고쳐나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다만 신학적 용어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은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