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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좋아하던 글귀 중에 “오늘도 일용할 굶주림을 주시옵고…”라는 말이 있었다. 프랑스의 철학자였던 G.바슐라르가 한 이 말은 짐작하다시피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에 빗대어진 말이다. 그 구절을 읽었을 때가 아마도 한참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라 그랬던 걸까? ‘열심히 하라’는 뻔한 격려보다 오히려 역설적인 그 말이 가슴 깊이 더 와닿으며 좋은 자극을 주었던 것 같다.
이번에 읽게 된 프란츠 카프카의 <절망은 나의 힘>도 그런 역설적인 의미에서 읽게 된 책이다. 대개 어둡고 슬프고 절망적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거기에 동화가 되어 한동안은 그 책을 읽는 이의 기분도 한참 다운되기 쉽다. 그래서 그런 종류의 책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조금 피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절망은 나의 힘>은 그런 책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책의 부제이기도 한 ‘카프카의 위험한 고백’을 들으며 작은 위로를 받고 잠시 미소짓게 되는 책이다.
카프카의 편지와 일기 등에서 추려진 이 책은 그의 독백과도 같은 자전적 기록이다. 그 중에는 약혼녀인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낸 편지와 아버지에 대한 기록 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엉뚱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은 내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미래를 생각하고 걸려 넘어지는 일이라면 가능합니다.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은 넘어진 채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게도 이 내용은 카프카가 약혼녀 펠리체에게 보낸 편지다. 청혼을 한 여자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다니, 이 내용만 놓고 보면 ‘뭐 이런 남자가 다 있나?’싶을 정도다. 또 우유를 마시다가 눈앞에서 컵이 깨질까봐 두려워하기도 하고, 자신의 작품 <변신>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기도 한다. 얼핏 보면 마치 ‘일어서면 넘어질 테니까 난 그냥 누워있을래’하고 억지를 쓰는 아이가 연상되기도 한다.
책 중간중간에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고뇌가 곳곳에 드러나 무척 안타깝게 느껴진다. 유달리 감성적이고 예민했던 소년 카프카에게 지독할 정도로 엄격했던 그의 아버지는 카프카를 더욱 주눅들게 하고 자기 혐오를 일으키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던 듯하다. 또한 카프카의 말처럼 그의 어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사냥에서 몰이꾼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면서 아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아버지와 아들의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한 채 암묵적 동의로 일관했던 어머니, 그러한 가정적 배경 속에 카프카는 평생을 자기 혐오와 건강염려증, 소심한 번뇌와 나약한 고민 속에 지낸 것은 아니었을지. 물론 거기에는 유난히 여리고 예민한 그의 감성도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카프카 본인은 평생을 불만족과 부정적인 시각 속에 살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순수한 감성과 예민한 통찰력이야말로 카프카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요소가 되었을 터다. 사르트르는 그를 ‘현대의, 몇 명 되지 않는 최고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하였고, 밀란 쿤데라는 그를 일컬어 ‘거대한 미적 혁명, 예술적 기적 그 자체’라고 할 만큼 높이 평가했다.
이 책은 틀에 박힌 말로 ‘힘내! 넌 할 수 있어’하며 격려하는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어둡고 음습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자기 연민 가득한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의 소심함에 때로 웃음이 나기도 하고, 별별 고민을 다해대는 그에게서 오히려 긍정적인 힘을 얻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세상엔 나만 힘들고 외로운 게 아니구나’하는 공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종일관 비관적이던 카프카지만,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그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내 책이 당신의 사랑스러운 손에 들려 있다는 것은 나에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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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는데 다소의 망설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프란츠 카프카라는데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그러나 문학을 좋아한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작가를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편견이겠지만, 나 같은 경우 카프카의 작품은 중학교 때 처음 접해보고 왠지 넘지 못할 산맥같아 읽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그 난해함과 우울함, 약간의 괴기스러움은 내 취향은 아니지 싶었다. 그리고 거기에 굳이 한 가지 이유를 더하자면, 작품의 분위기 못지 않게 그의 삶이 그리 유쾌한 삶은 아니었다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차라리 순탄치 못했다면 그를 이해했을 것 같다. 스스로를 유폐시켰던 삶이 뭐 그리 알고 싶고, 본받고 싶을까? 사람은 어떤 사람을 사귀느냐에 따라 그 삶도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책도 그런 것 같다.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을 읽느냐에 따라 기분뿐만 아니라, 사고나 영혼까지도 좌우하기도 한다. 실제로 난 그런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가령 에밀졸라의 <작품>이란 책을 읽다가 주인공의 불행한 삶이 가위에 눌리는 기분이어서 결국 그 책을 다 읽지도 못하고 덮어버렸던 적이 있다. 그후 난 에밀졸라의 책은 선택하기를 주저하게 됐다. 이처럼 책 한 권을 읽어도 사람의 기분을 좌우할 때가 많은데, 이책을 읽는다는 건 나에게 얼마만한 모험이 될런지 알 수 었는 일이었다. 오죽했으면, 이 책을 엮은 가시라기 히로키도 그를 가리켜 '실패의 달인'이라고 했을까?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이책은 그리 가위 눌릴만큼 기분이 안 좋아지는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카프카를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고 할까? 그러리만큼 이책의 저자는 카프카를 아주 잘 소개해 놓았고, 카프카를 빌어 절망이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주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 놓았다. 솔직히 읽으면서도 저자가 이 정도로 쓸 정도라면 카프카에 대해 상당히 통달해 있지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저는 에필로그에서, 학창 시절 <카프카 전집>이 간행 되었을 때 한 권, 두 권 모으는 일이 작은 즐거움이었고, 현재하는 일도 카프카의 작품을 번역하고, 그에 대한 평론을 쓰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카프카는 어떤 사람이였나?
이책을 읽어 본 바에 의하면, 카프카는 무척이나 소심한 사람 같다. 오죽했으면 그가 약혼자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에 "우유 컵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조차 두려워집니다. 그 컵이 눈앞에서 깨져서 파편이 얼굴로 튀어 오르지 말란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24p)"라고 했을까? 사실 이 정라면 거의 신경증 환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뿐인가? 그는 평생 부모로부터 작가의 꿈을 인정 받지 못했고, 아버지 앞에서는 기 한 번 제대로 펴 보지 못했다. 게다가 한 작가의 애인이라면 흔히 우리가 생각하듯 아름답고, 지적인 사람일 것 같지만 카프카는 사람을 볼 줄 몰랐던지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집에서 일해주는 하녀였다고 한다. 그런 여자와 결혼할 생각을 했던 건 단지 그녀가 카프카에 비해 큰 덩치를 가져서였는데 바로 그점이 왠지 자신을 보호해 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두 번의 청혼에도 불구하고 끝내 결혼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도 용기와 책임의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너무나 나약한 사람이었기에 그도 쉽지는 않았으리라.
또한, 사람이 너무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 해도 안 되지만, 과소평가해도 안 되는 법이다. 하지만, 카프카는 늘 자신이 글을 너무 못 쓴다고 학대에 가까우리만치 자책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 저마다 잘 하고 싶은 일이 있을텐데 과도하리만치 잘 해야한다는 강박 때문에 오히려 못할 거란 생각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러기에 그는 손대는 작품마다 끝을 본 작품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확실히 나에게 새삼 놀라운 부분이긴 했다. 미완성 작품도 작품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니. 물론 그런 작품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작가의 작품이라면 미완성은 미완성일뿐 그것을 작품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나름 그것도 작품이라고 인정해 주는 문단의 풍토가 약간은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카프카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이 오늘 날에도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을 보면 말이다.
그의 과소 평가는 그의 작업 태도에도 영향을 미쳐, 이미 방대한 양의 원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늘 작업 양이 부족하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은 늘 전업 작가가 되길 원했지만, 빵을 위한 직업에 불만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그가 가난하게 살았던 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하긴, 아버지가 부자인 것과 자신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걸 카프카는 일찌감치 깨달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그가 원치않는 일을 한다고 업무 능력이 형편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능력을 인정 받아 출세가도를 달리기도 했단다. 그럼에도 그는 늘 행복하지 않았다면 그는 확실히 자아상에 적지않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인간관계는 원만했을까? 인간관계도 서툴고, 기피하여 자신의 작품을 의뢰할 줄도 몰랐다고 그래서 브로트라는 당대 유명한 대중작가 겸 그의 친구가 대신 출판을 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왜 그는 그처럼 한사코 당당하고, 적극적인 자기 자신을 인정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걸까?
절망의 카프카에서 공감의 카프카로...
사람이 이해가 가면 연민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연민이 느껴지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카프카를 좋아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또 어느틈엔가 그를 공감하기도 하고,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그는 학교에 절망하면서, 그는 자신이 받은 교육은 해로운 독에 지나지 않았다(106p)고 일기에 토로하곤 했는데, 나는 왠지 깊은 공감이 갔다. 나 역시 중학교 2학년 때를 제외하고, 어떤 시기에도 학교를 결코 좋아해 본적이 없었으니까. 그나마 중학교 2학년 때 잠깐 학교도 어쩌면 다녀 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 시절에 알았던 친구들이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입시 한파에, 더욱 깊어지는 고질적인 사춘기 병(?)이 학교를 불신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또한 카프카는 친구 관계에 희망은 없다며, 그가 친구관계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한 것은, 그것은 허무한 도움닫기였다(178p)고 단편에서 고백하기도 했는데,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다. 솔직히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친구관계를 유지해 나간다는 게 쉽지 않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지난 번 만났을 때만 해도 까르르거리며 잘 지냈던 친구가 오늘 다시 연락을 해 보면 이유없이 화를내고, 으르렁 거리는 것이다.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다면 이 친구는 그동안 나를 만나오면서 가졌던 불만을 참고 있다가 표출을 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문제에 빠져 누가 건드리기만 폭발 일보직전의 찰라였는지, 그걸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 후 이내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있으며, 멀어져간 친구가 몇 명 된다. 그러면서 나는 친구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으며, 새롭게 누구를 만나게 될지라도 현재 만나고 있는 것에 충실할 뿐 거기에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하긴, 그런 일이 없던, 있던 친구는 한때 친구일 뿐 한번 멀어지기 시작하면 좀처럼 다시 가까워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나마 지금도 오랜 세월을 두고 변함없이 만나는 친구가 두어 명 정도 있는데 그만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아닌가? 물론 그들도 언제 연락이 끊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카프카는 친구 관계를 허무한 도움닫기로 표현했는데, 그건 맞는 말 같다. 카프카는 심약한 자신을 자책하곤 했다. 왜 그런지에 대해선 여러가지로 생각해 봐야겠지만, 아무래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부유한 환경에서 문학을 좋아고, 생각이 많은 사람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아니었을까? 또한 그는 당대 훌륭한 필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로 인정 받는 것. 작가가 돼 제대로 된 돈을 벌며 산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자주 툴툴거렸다고 한다. 그건 그때나 이때나 작가라면 하나 같이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또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바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겠지.
그는 삶 모든 부분에서 다 절망을 했다. 미래에 대해서, 직업에 대해서, 결혼이나, 자식 또는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학교나 직업, 음식 등, 하다못해 꿈이나 진실에 대해서까지도 절저하게 절망했다. 과연 이런 사람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왜 그리도 절망함으로 자신을 철저히 짓밟았던 걸까? 그건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기인한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했다시피, 그는 아버지에게 인정 받지 못했으며, 어머니나 다른 형제들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했으니 그럴만도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카프카의 절망은 무엇이었을까?
고백컨대, 나는 이 책을 읽기를 잘 했지만, 동시에 이 책을 읽기를 또한 잘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잘한 것은, 이 책으로 인해 그동안 외면만했던 카프카에 대해 다소나마 관심이 생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책의 작가의 의도처럼 과연 카프카가 절망만 했던 사람이었을까에 의문을 가져본다. 그것은 저자가 테마를 그렇게 잡았기 때문에 그런 스펙트럼에서 보자면 카프카는 실패의 달인이고, 절망의 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르긴 해도, 저자는 요즘 너무 팽배해 있는 하면 된다는 식의 지나친 낙관주의나, 반대로 염세주의를 경계하기 위해 이책을 썼던 건 아닌가 싶다. 뭐든 지나치면 모자란만 못하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카프카가 절망만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절망을 했다면 왜 절망할 수 밖에 없는지도 알아야 하고, 힘이라고 얘기했던 것처럼 그는 이 절망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는 거의 모든 것에 절망했지만 한 가지 절망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문학이었고, 자신이 작가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작가는 어떤 족속이냐는 것이다. 만일 정말 우리가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면 그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직업은 바로 작가일지도 모른다. 불만이 없는 완벽한 세계. 여기에 불만 많은 작가가 필요할까? 역대로부터 작가들은 끊임없이 인간과 세계의 불일치에 대해 그 불만을 끊임없이 들춰냈던 족속들이다. 거기에 카프카도 존재해 있었다. 누구는 불만이 나의 힘이라고 했다. 작가는 바로 이 불만과 불일치를 글로 쓰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세상의 변혁을 가져온다고 믿는 것이다. 인간이 불만을 토로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안에 이상적인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불만을 갖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작가는 혁명가가 아니다. 다만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하며 문제제기만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카프카의 절망이란 건 그 나름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어떤 사람 보기엔 절망하는 것처럼 보여졌던 건 아닐까?
더불어 그가 절망하지 않고 불만으로 삶지 않았던 유일한 삶의 분야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러니 하게도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살면서 그는 늘 불면중에 시달렸는데, 죽음을 생각하자 마음에 편안을 느끼며 비로소 잠을 잤다고 했다. 사람이 너무 염세주의에 빠져 죽음만을 생각하는 것도 문제긴 하겠지만, 오늘 날의 세대는 건강 염려주의의 세대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이냐에만 온통 관심이 가 있지 죽음에 대해선 통 관심이 없다. 거기에 죽음을 오히려 기대했다던 카프카는 오히려 기이하기까지 하다. 그가 너무 이른 나이에 죽어서 그렇지 죽음에 대해서도 좀 기대하며 사는 것도 살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아닐까? 아무튼 그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이내 결핵으로 절명하고 만다. 아마도 그제서야 그의 이 세상에 대한 불만과 절망이 끝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저 세상에서도 그가 타고난대로 절망을 했을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작가에게 문학은 구원이다
나는, 카프카가 다른 모든 것을 배신했지만(난 왠지 그의 절망이 세상에 대한 등돌림 곧 배신처럼 느껴졌다), 끝까지 자신이 작가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든다. 그 절망을 문학으로 승화시킬 줄 알았던 카프카는 진정한 작가고, 작가에게 있어 문학이 구원이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카프카를 알고 싶어졌다. 그래도 기왕이면 그를 알고자 원했다면 순수하게 그의 작품으로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너무 게을렀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에서만은 절망하지 않고 희망했던 카프카. 이제 그를 만나러 가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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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계획과 새로운 기대, 바램 들에 의욕을 잃어가고 있을 때 만나게 된 절망이라는 단어가 참 친근하게 들려왔다. 성공을 말하는 필수 조건으로 빠지지 않는 긍정, 모든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긍정을 부르짖는 ‘긍정의 시대’에 누군가의 내면 속에 깊이 자리한 절망과 부정을 보고 있으니 내 부정적인 감정들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때로는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졌었던 무한 긍정의 주장보다 훨씬 더 단어 하나하나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었다. 카프카의 절망적인 단어들 안에는 그가 바라던 삶의 모습과 태도를 볼 수 있어 더 공감이 갔다. 되고 싶고 바라는 희망이 있기에 거기에 도달할 수 없을 때 절망을 맛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카프카는 절망을 마주하지만 그 뒤에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그 속에 푹 파묻혀서 절망을 더 깊이 오래 느끼며 자기만의 생각이나 감정을 더 잘 전달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런 생각들이 그의 문학 작품 속에 드러난 걸 보면 진정 절망이 그의 힘이 되었다. 책에서 카프카의 일기나 편지 글 속에서 절망적인 글들을 모아 옮겨 놓고 옆에 엮은이의 생각이 첨부 되었는데, 그 당시 카프카의 상황과 지금의 우리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겹쳐져 읽는 재미가 더해진다. 책을 읽는 동안 카프카의 절망에 많이 공감하고 비슷한 생각을 나도 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보통 그런 속내를 누군가에 내보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카프카의 솔직함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자신의 이상과 기준을 굽히지 않고 끊임없이 괴로워하면서도 놓지 않은 희망에 대한 절망이 힘이 되어주었음을 느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글로써 먹고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나 싫어하는 회사 생활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 모습이 지금의 우리가 하는 고민과도 많이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면서 진정 자신이 해야만 하고, 또 하고 싶다는 것을 꾸준히 해내어 훗날 수많은 명작들이 되는 걸 보며 그의 절망은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을 끌었다. 사람은 절망에서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절망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생겨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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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허구를 바탕으로 쓰인다고 정의되지만, 결국은 작가의 생활, 경험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 책이었다. 프란츠 카프카는 작품 변신에서 주인공이 갑자기 벌레로 변한 경험을 그렸다. 이 책을 읽고 변신에서의 주인공이 느끼던 피해의식의 감정들이 작가의 순수한 상상에서 이루어졌던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읽었던 대부분의 책들은 지금은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가자는 발전적 내용을 담은 책들이 었는데, 이 책처럼 푸념과 자기비하적 내용이 있는 책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그 유명한 카프카라는 작가의 작품이라니..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푸념들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와중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구절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문학의 기능중 하나가 자신이 가진 생각을 읽음으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표면적 내용보다는 독자로 하여금 정화의 기능을 갖는다는 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보통 카프카 정도의 우울한 생각을 하다보면 타인 또는 자신에게 해를 입힐 만하기도하다. 그렇지만 그가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이나마 숨쉴 공간이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의 멍든 마음을 힐링해준 것은 글쓰기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절망에서 나온 그의 글은 전세계의 독자를 거느리게 되었다. 그에게 뿌리 깊은 절망은 책 제목 처럼 '힘'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표면적으로는 절망이라는 감정이 부정적인 면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크게 보면 결국 긍적적인 역할을 한 셈이 된 것이다. 카프카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통하여 절망까지도 긍정으로 승화 시킬 수 있다는 '희망'의 증인이 된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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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좌절,슬픔,실패라는 말들이 잘 어울리는 카프카의 글을 읽으며 그를 잠식하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을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꽤 부정적인 사람이기에,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라는 이야기에 질릴때도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막상 그 상황에 빠지면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답답했다. 머리와 가슴이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 밀어내고만 있는 듯 했다. 도리어 카프카의 절망적인 고백이 나에게 위로가 되는 기분이다. 적어도 난 이 정도는 아니잖아.. 라는 비교가 아니라, 내가 겪었던 절망과 좌절이 나만의 것이 아니였음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슬픔의 깊이를 스스로 더해가기만 해 결국 건강까지 해쳤던 카프카를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질효과라고 한다. 슬플 때는 슬픈 음악을 듣는 것이 좋다는 것인데.. 우울할때면 버릇처럼 우울한 음악에 한없이 빠져들면서, 늘 생각만은 밝게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괴롭혀왔던 것일까? 책을 읽다보면 쉽게 몰입하는 성격탓인지.. 카프카의 글을 읽으며 내 감정을 너무나 절묘하게 글로 표현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쉽게 하는 일이 나는 왜 안될까? 누군가에게는 단숨에 여러개를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일지라도 나에게는 단 한칸이 그렇게 어렵고 힘겹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 있다. "극복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극복을 위한 첫 시도조차 불가능 한 것입니다" 라는 이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았다. 난 눈물이 참 흔한 사람이였다. 특히 엄마에게 한소리 들으면 일단 눈물부터 시작했다. 그럴때면 원래 하고 싶으셨던 말에 운다는 지적이 늘 더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눈물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의지(意志)나 의도(意圖)와는 관계없이 나타나는 이상운동이라는 "불수의운동"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때 바로 엄마가 떠올랐던 것을 보면 꽤나 나에게는 컴플렉스였던 것이 아니였을까? 하지만 이 말을 엄마에게 했어도 큰 효과는 없었을 듯 하다. "내가 울고 싶어서 우는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일단 그 말을 울지않으면서 하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
![]()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했던 카프카의 아버지, 어쩌면 카프카의 절망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그가 36세때야 비로소 쓸 수 있었던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읽으며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열흘에 걸쳐서 쓴 그 긴 편지를 결국 아버지에게 전해주지 못했던 카프카.. 만약 그 편지가 전해졌다면 과연 그의 인생은 바뀌었을까? 아마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미 스스로가 만든 늪속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길을 걸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확립했고 현대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것이 흥미롭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고..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카프카는 그 존재 자체로도 매력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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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렇게까지 절망스러워질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처럼 불행하다 생각해보지 않았음에 큰 위안을 갖게 되기도 했고, 카프카에 대한 무한한 안쓰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상황을 벗어나려하면 할수록 그 자신을 더 옭아맸던 현실속에서 얼마나 절망했을지, 그리고 월급쟁이의 삶을 싫어했지만 정말 먹고 살기 위해 끝까지 그것을 놓지 못했고,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자 했으나 그는 끝까지 독신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중요하고 행복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요즘 나오는 책들은 거의 대부분이 현실이 얼마나 각박하고 괴롭더라도 분명 희망이 있다, 꿈은 언제고 이뤄진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분연히 일어서서 걷고 뛰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여타의 긍정적인 메시지보다는 삶이 결코 만만하지 않고, 내가 허우적거리면 그만큼 늪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제대로 된 부정어를 내뱉고 있다. 책에 담긴 부정적인 메시지가 강하게 울려올수록, 난 이정도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이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아낼 용기와 비전이 나에게 있음을 감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사랑할수는 있지만,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말이 있다.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몇번이고 곱씹어보면 이 말처럼 정확하게 사람의 관계,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묘사한것도 없지 싶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할때는 장점으로 보이던것이 함께 사는 그 순간부터는 고쳐야 하는, 고쳐졌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단점이 된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카프카는 그런 진리를 결혼을 통해 느꼈어야 하는데, 너무 이론적으로 파삭하게 알아버렸던것이 아닐까 싶은 아쉬움도 들었다. 사람은 그 누구나 결코 완벽할수 없고, 장점의 수만큼 단점도 있을수 밖에 없음을 알았어야 한다. 직장에 대해 묘사한 부분도 마음에 와 닿았다. 나 역시도 육아문제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퇴사를 생각했던 때가 있다. 물론 지금도 그 부분을 완전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그마저도 놓았을때 난 완전 나라는 인격체를 놓아버린채 누구누구의 무엇이라는 존재로 살아갈것임을 알기에. 카프카는 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가능한한 오랫동안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에 비유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안쓰러운가. 조금만 방심하면 한없이 추락하고 말 물속에서 살아보겠다고 목에 힘을 주고 최대한 뻣뻣하게 유지하려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겠는가. 말을 앞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것은 채찍의 힘만 빌려서도 안되고, 당근만 주어서도 안된다. 두가지를 적절하게 혼용하여 쓸줄 알았을때 최대의 효과를 볼수 있다는 말처럼 아마 우리 인간들이 앞으로 나아가며 성장할수 있게 하는 것은 긍정적인 메시지만 가능한 것은 아닐것이다. 쨍하고 해뜰날이 있고, 쥐구멍에도 볕들날이 있고, 어둠이 가야 새벽이 오듯이 우리가 정말 하루하루 일상에 치여 너무 힘들때, 특별한 일이 없었는데도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때면 애써 긍정모드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하기 앞서 내 기분을 가라앉히는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볼 용기를 낼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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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이 작가를 제외하고 문학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작가들의 작가로 칭송되기도 하는 프란츠 카프카는 왜 그토록 예술가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토록 매력적일까? 아마도 그것은 솔직함일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이 자면 연민일 것이다 인간은 타인의 시선 때문에 그리고 주위의 기대와 환경으로 인해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은 욕망이 억제 당하곤한다 그리고 그런 연약한 자신의 마음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그런 연민은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적당히 가식적이고 출세와 성공을 위해 그런 연민을 도외시 해버리고 사는 사람이 있는데 대부분의 솔직한 예술가들은 연약한 심성을 지녔으므로 카프가의 무섭도록 솔직한 표현들에 동질감을 느끼고 감정을 이입시키는 것이다 시판되는 책 중에 베스트 셀러의 목록에 이름을 오르내리는 종류 중 한번도 빠지지 않는 책들이 처세술 관련 책들이다 ‘ 성공하려면 ~~~ 노력해라’ 류의 책이다 누구나 성공하고 싶고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것도 인간의 근원적 욕망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런 성공처세술 책과 자기계발서가 안내하는 것처럼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성공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성공이 정말 인생의 성공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렇게 카프카처럼 인생의 처연함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보잘 것 없이 사는 것이 인생이다 라는 것을 자각하고 절망을 철저하게 자각할 때 비로서 생의 기쁨과 희망이 보일 것이다 그래야 더불어 사는 작은 이웃에게도 감동할 수 있고 소박한 한 끼 식사에 만족하며 살아 숨쉬는 그 자체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판되는 성공과 처세술, 자기계발서대로 인생을 산다면 결코 그 인생은 만족을 모를 것이다 그런 책들이 말하는 인생의 성공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끝이 없는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노력하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경쟁해야 하는 삶은 그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노예로 살며 한 번도 자신에게 솔직해 지지 못하고 만약 솔직해 진다고 해도 처절한 패배감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세상엔 나보다 잘난 사람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능력보다 개성이 존중되고 모든 타인의 취향이 존중되고 협력하는 세상은 경쟁하는 세상보다 아름답고 그렇게 협력하는 세상에서는 모두 솔직해 져야 할 필요가 있다 카프카의 작품과 글이 위대한 것은 이런 것이다 그가 쓴 글을 보면 일상의 사소한 투정과 불평 불만 같지만 다 읽고나면 그런 사소함에서 인류애에 대한 감동이 읽혀지는 것이다 그런 위대함 때문에 예술가들은 물론 모든 지식인들에게 칭송받는 것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카프카가 짧게 노트한 것들과 사랑한 사람 밀레나와 공포의 대상이였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짧은 글귀를 모으고 그에 대한 해설을 저자가 덧붙이는 형식의 책이다 그의 글에 대한 해석은 읽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카프카처럼 절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절망을 솔직하게 나를 대신에 글로 남긴 카프카에게 존경을 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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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어찌보면 희망보다는 절망이 찾아올때가 많습니다. 그 절망 속에서 힘을 얻어 헤쳐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영원히 그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말로 위로해 줄수 있을까요?
절망은 나의 힘. 절망이 힘이 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 견디기 힘든 사람들에게 다들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희망을 가지라고,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절대로 절망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 책은 한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어두울수 있을까 할정도로 읽는 내내 우리의 마음까지 무겁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개인적으로 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우울하고 희망보다는 절망의 삶에 놓여있는 시간이 많았던 저인지라 이 많은 글들을 보며 공감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마다 특유의 향기가 있듯이 색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화사한 느낌의 색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정열의 색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이는 따스한 느낌을 주는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만나는 카프카가 아니라 그가 일상 속에서 남긴 이야기들을 보면서 그에게 무거운 느낌의 회색빛이 감돌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에게도 탁한 느낌의 색이 종종 보여서인지 이 책을 읽는내내 다른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할수 있는 이야기에도 많이 공감하는지 모릅니다.
자신에게 놓여있는 상황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매사 의욕이 없어보이는 그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런 무기력함 속에서 위대한 작품을 썼다는것이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문득 카프카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주위 사람들은 힘들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 절망 안에서 스스로의 삶을 찾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희망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살아갈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처럼 밝고 무엇이든 할수 있다는 희망으로 나 자신을 꾸며보지만 그 자체가 힘든 일이고 또 하나의 고민과 절망을 만들어 가기도 합니다.
인생에 필요한 능력을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인간적인 약점뿐.
카프카가 소설의 아이디어나 단상을 써 놓았던 8절 노트에는 자신의 허약함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놓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글을 읽으며 자신의 장점을 보지 못한다고 비난할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바라보고 인정하고 있는것이 아닐까 합니다. 정말 고민이 되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이런 것을 이겨내야 하는 것인지 채워질 수 없는 부족한 점을 인정해야 하는 것인지. 책을 읽는 동안이나 책을 덮고 나서도 참으로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카프카는 이런 마음들을 글로 남겨 후세에 있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작가가 되었지만 평범한 우리들은 어찌해야할까요? 지금 나의 이 절망들이 살아가는데 힘이 될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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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들어본 프란츠 카프카, 그의 소설 『변신』을 보았다. 한 남자가 어느날 갑자기 벌레로 변하고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는 모습을 보며 '대체 이 작가는 뭐하는 사람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한없이 절망스럽고 어둡고 우울한 소설을 쓰는것도 쉽지 않은 일일텐데, 이런 소설을 써내다니, 그는 천재일까? 아니면 인생 자체를 절망적으로 사는 사람일까? 항상 궁금했었다. 그리고 우련히 프란츠 카프카가 남긴 편지와 일기등을 토대로 한 『절망은 나의 힘』이라는 책이 나왔고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프란츠 카프카는 천재이면서도 인생 자체가 절망뿐이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절망은 끝내 카프카의 이름을 후대에 알릴 수 있게 해준 동력이 되었다.
그가 남긴 짧은 글들이나 편지들은 긍정과 희망보다는 절망과 좌절이 대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인 가시라기 히로키가 덧붙인 말들이 아니라면 카프카의 절망과 좌절들을 접하고 당황스러울 수 있다. 당황해할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친절히 설명을 덧붙여놓았다. 프란츠 카프카가 이렇게나 일생을 절망과 좌절로 살아왔는데, 그의 삶에 비하면 나는 정말 행복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두운 말들뿐이다. 그래서 일까? 지금 나의 고민이 조금 더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당장 내일 무엇을 먹어야 하는 고민부터 취업고민처럼 많은 고민들이 나를 옥죄어 오지만 프란츠 카프카가 남긴 글들을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자기위로를 한다. "이사람 참 힘들게 살았구나. 이 사람도 이렇게 힘든 삶을 살면서도 변신과 같은 작품을 남겼는데, 하다못해 나는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열정이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하며 자기위로를 한다. 요즘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힐링, 혹은 자기계발을 주로 다루는 책들은 그 책 안에서 저자가 끊임없이 우리를 위로한다. 그에 비하면 이 책은 카프카의 삶을 보며 내가 내 스스로를 위로하게 된다. 참으로 좋지 않은가?
나에겐 참 신선한 책이었다. 원래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도 않고, 힐링을 목적으로 나온 책들도 읽어보지 않았다. 그런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섭렵하며 유행을 주도하니 왠지 읽기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다. 하지만 『절망은 나의 힘』은 내가 나를 돌아보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무기력해진 나에게 동력이 되어주는 책이기에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든다. 프란츠 카프카, 그는 끝내 독신으로 생을 마감한 외로운 사람이었지만 그가 남긴 그의 자취는 후대에 나와 같은 이에게 오히려 위로가 되었으니 그는 참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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