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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아나키즘의 정수《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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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읽은 《안나 카레니나》이후 십년 뒤의 작품이다. 부활의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레빈과 매우 흡사한 캐릭터이다. 레빈의 청교도적인 사고와 노동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모습이라든지 삶에 대한 애착, 도덕적인 신념들을 <부활>의 주인공 네흘류도프에게서도 똑같이 볼 수 있다. 이 주인공들을 통해 작품 전반에 흐르는 기독교적인 사상과 삶을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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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읽은 《안나 카레니나》이후 십년 뒤의 작품이다. 부활의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레빈과 매우 흡사한 캐릭터이다. 레빈의 청교도적인 사고와 노동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모습이라든지 삶에 대한 애착, 도덕적인 신념들을 <부활>의 주인공 네흘류도프에게서도 똑같이 볼 수 있다. 이 주인공들을 통해 작품 전반에 흐르는 기독교적인 사상과 삶을 깨달아가는 과정들이 바로 ‘톨스토이주의’ 즉, 기독교적 아나키즘이라 평가하는 톨스토이의 사상적인 면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톨스토의주의’가 가장 잘 표현되어진 주인공이 바로 부활의 주인공 네흘류도프라 여겨진다.

 

고모 집에서 반은 하녀, 반은 양녀 같은 존재로 자란 카튜샤. 이런 어정쩡한 신분은 어린 카튜샤가 반은 상류사회, 반은 하류사회에 익숙하다는 말이다. 충분히 독립할 수 있음에도 고모 집을 떠나지 않았던 것도, 고모 집을 떠나서 하녀로서만 살아가기 싫었고, 나이가 차 혼담이 들어 올 때마다 하류층 사람들의 삶이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그러던 중, 고모들의 조카 네흘류도프는 완벽하고 멋진 상류층 남자로 보이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순수하고 깨끗한 그리고 도덕적인 청년이었던 네흘류도프는 카튜샤와 사랑에 빠지고 순전히 정신적인 사랑을 나눈다. 그 뒤 3년, 군대에 간 네흘류도프는 변해 있었다. 모든 훌륭한 일에는 자기의 생명도 돌보지 않을 정도로 순진하고 헌신적이었던 그는 몇 년의 군대생활로 자기의 쾌락만을 사랑하는 타락하고 세련된 이기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이 모든 무서운 변화가 그에게 생긴 것은 그가 스스로를 믿지 안하고 남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자기를 믿지 않고 남을 믿게 된 것은 자기를 믿으면서 산다는 것이 너무나도 괴롭기 때문이었다.-p71

 

 

이런 변화는 네흘류도프에게 정신적으로 깊은 사랑으로 연결되어지곤 하던 카튜샤를 쾌락의 도구로 삼으면서 타락해간다. 네흘류도프는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카튜샤를 범하지만, 이후 100루블을 전해주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잊고 살게 되고 이후 카튜샤는 크나큰 불행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는데, 네흘류도프와의 하룻밤으로 카튜샤는 임신 하게 되고 몸이 무거워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고모들은 카튜샤를 쫓아낸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아이는 죽고 예쁘고 아름다웠던 카튜샤는 자연적인 수순을 밟아 유곽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그곳에서 7년을 살았다. 타락한지, 8년이 되는 해에 카튜샤는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사건으로 법정에 서게 되고 배심원으로 참여한 네흘류도프와 조우하게 된다.

 

 

카튜샤와 네흘류도프의 만남은 네흘류도프에게 커다란 정신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데 타락했던 영혼이자 대지주였던 네흘류도프를 순진하고 헌신적인 , 곧은 기질과 정열의 네흘류도프로 바뀌게 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너무나 순결하고 아름다웠던 카튜샤가 자신이 첫날 밤 희롱하고 버린 인생의 잔인함을 카튜샤에게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네흘류도프에게 더욱 큰 죄책감과 고통을 준 것은 카튜샤에게 선고 된 ‘시베리아 유형’이라는 형벌이다. 이성적이었고 높은 신분의 네흘류도프는 고아였고 여자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몰아가는 법의 이면으로 죄책감만이 아닌, 사회의 부조리한 모든 것에 대해 고통을 느낀다.

 

사냥터에서 상처 입은 새를 죽여버려야 할 때 경험하는 몸서리치고 불쌍하고 괴로운,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p98 

 

카튜샤가 시베리아 유형을 받은 날, 카튜샤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첫사랑 네흘류도프에게 버림받으며 이후 만난 모든 남자들이 자신을 쾌락의 상대로만 대했으며 남자들 모두 자신의 아름다움을 칭찬했건만, 자신을 모두 유죄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남자'들이라는 사실에 그녀는 처음으로 환멸을 느낀다. 그런 그녀에게 매일 같이 찾아와 용서를 빌고 희생을 무릅쓰고 결혼하자고 졸라대는 네흘류도프를 따라 변화된 삶을 살게 되지만, 카튜샤에게 네흘류도프는 넘지 못하는 큰 벽이 있었다. 이후 네흘류도프와 카튜샤의 눈부신 내면의 변화가 일어난다.

 

《부활》의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보다 더욱 종교적이고 더욱 도덕적인 관점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다. 또한 매우 영적이다. 톨스토이는 끊임없이 인간의 자아를 영적인 자아와  물질적인 자아로 나누어 두 자아가 네흘류도프의  내면 세계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선택해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는데 이런 내면 심리에 대한 탁월한 서술방법은 '인간'의 자아와 욕망에 대해서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힘이 있다. 이런 두 개의 자아는 기독교적인 사상에 바탕을 둔 것으로 영혼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편으로는 네흘류도프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매우 인상적으로 느꼈는데 ‘Cogito’(나는 생각한다)라는 데카르트의 근대적 세계관이 아닌  ‘우리는 생각한다’라는 세계관을 <부활>에서도 발견하게 되었다. 오로지 인간만이 유일한 세계상이 아닌 각자의 세계로터 우리의 공통세계를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Cogitamus’ 세계관을 부활의 주인공에게서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바로 이 부분 ' 이 세상 모든 것은 생명이 있으며 생명이 없는 것은 없다. 우리가 생명 없는 무기물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물체는 우리가 꿰뚫어 볼 수 없는 거대한 유기체의 한 단위인 사람의 사명은 이 유기체와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지켜나가는 데 있다.(p529) 이런 행위의 중심에 카튜샤와 네흘류도프가 있다. 이기적이었던 대지주 네흘류도프가 회개한 후 이웃에게 희생하며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모습과 카튜샤가 7년동안 화려하게 치장하며 타락해가는 모습보다 고난과 노동에 길들여지며 이웃에게 봉사한 2개월을 더욱 보람되고 가치있게 여기는 모습에서 이들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었는지를 떠올려보는 시간들이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모든 것’만 찾고 있다. 그러므로 발견될 까닭이 없는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3.01.31. 신고 공감 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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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는 부활, 그 행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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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알려진, 그래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소개되었고, 많은 이야기들이 산재한 책을 다시 읽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책은 선지식을 너머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지워졌던 내용들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내 가슴 언저리에 들어앉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톨스토이 마찬가지다. 우리는 학창시절에도 그에 관해 많이 공부했고,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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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알려진, 그래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소개되었고, 많은 이야기들이 산재한 책을 다시 읽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책은 선지식을 너머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지워졌던 내용들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내 가슴 언저리에 들어앉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톨스토이 마찬가지다. 우리는 학창시절에도 그에 관해 많이 공부했고, 그의 작품은 몇 가지를 외울 정도로 기억에 항존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여기는 사람의 그리고 그의 글이란 생각을 하면서 잡은 책이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진 않는다. 아마 너무 많은 기억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랴 생각되어 진다. 다시 읽는데 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번역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번역자에 의해 독자들의 시선이 열리고 닫혀 진다. 문학은 더욱 그렇다. 시도 소설도 그 표현에 매우 매력적인 포인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번역은 무난한 듯하다. 우리 정서에 그리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으면서 잘 수용이 된다. 잘 읽힌다는 뜻이리라. 표현이 거칠고 수사가 매끄럽지 못하면 읽기가 용이하지 않은데 말이다. 이 책은 표현 면에서는 잘 다가갈 수 있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는 행복하게 읽히는 글이다.

 

하지만 번역가의 얘기가 전혀 없어 역자의 생각을 읽기는 어렵다. 보통의 역서가 역자의 소개서를 담고 역자의 생각에 의해 읽혀지게 마련인데 말이다. 이 책은 역자의 생각을 거세하고 독자들이 직접 톨스토이와 만나게 만드는 듯하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라면 또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많이 번역된 글이라는 점에서 역자의 생각이 들어가 있으면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보통 중국의 글들은 간주를 붙이는 것이 번역보다도 더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지기도 하고, 그러한 저서들이 번역자의 색깔을 표현하기도 한 것을 보게 된다. 헌데 이 책에서는 그런 맛을 느낄 수는 없다. 그냥 잔잔하게 꼼꼼하게 읽으면서 톨스토이를 따라가 보게 만드는 책, 그렇게 여겨진다. 허나 마음에 기쁨은 된다.

 

재판소 배심으로 나온 주인공 네흘류도프가 살인절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카튜사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청년 시절 자신이 정욕의 대상으로 유린한 한 순결한 여인이 어떻게 타락해 간 것인가 목도하게 된 것이다. 네흘류도프는 그 여인의 타락이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이었다고 뼈저리게 반성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신이 속한 귀족사회의 생활태도에 깊은 의혹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남들의 일한 대가로 호의호식하는 토지 사유제에 대한 회의로 연결되고, 카튜사의 감형운동을 위하여 감옥에 드나드는 동안 무고한 죄인들의 많은 불합리를 보게 된다. 또 영지에 내려가서는 농촌의 궁핍과 아울러 유력자들을 경박하고 부패한 삶을 보면서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과 규탄으로까지 연결된다.

 

1,2,3부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1부 재판소를 중심으로 사법 세계의 불합리가 그려지고, 2부는 영지의 농민들의 아픔과 상대적으로 부유하게 사는 상류사회의 부패한 삶이 잘 묘사되어 있다. 3부는 시베리아 죄인 호송을 다루고 있는 부분으로 감동적인 장면이 많이 연출된다. 귀족이 한 창녀를 따라 시베리아 유형을 자청하여 황막한 땅에서 끝없이 용서를 바라는 그 정신은 고귀함을 너머 처절함으로 다가든다. 그 정신으로 영혼의 부활을 발견하는 내용이 제목으로 연결되는 잘 다듬어진 고리다. 정말 시베리아의 황야, 죄인들의 생활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되어 읽는 자들의 감동을 자아내게 만든다. 당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귀족 계급의 허위적인 삶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이 독자들의 마음을 붙잡는다. 또한 크리스트교의 참 정신을 망각하고 외형적인 의식에만 집착했던 러시아 정교회의 공허함을 적나라하게 풍자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할 부분이다.

 

이 작품은 톨스토이가 러시아 정신의 표현자라는 이름으로 불려질 수 있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부조리와 죄에 대해서 행동으로 실천하며 속죄하려고 한 모습을 통해 러시아 정신의 일면을 볼 수가 있게 된다는 말이다. 거대한 사회를 예리한 시선으로 들춰내 그 문제점을 반성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힐링을 생각해 나간 작품의 내용을 통해 우리에게 거대한 러시아의 무한한 힘을 생각해 보게도 한다. 정말 굉장한 작품이다. 늘 우리 곁에 두고 읽어볼 가치가 있는 글이다. 그 표현 면에서도, 그 내용 면에서도 가치 있게 텍스트화 시킬 수 있는 책이다.

 

영원한 고전, 제정 러시아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고 러시아가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는가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글이다. 20세기 전반기 동서 냉전의 시대가 만들어지게 된 상황에 대한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수작이다 다시 읽어볼 수 있게 되어 흥겨웠던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했으면 하는 책이다.

 

j****3 2018.01.27.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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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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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 톨스토이가 1889년 집필을 시작하여 10년만인 1898년 완성된 작품이 '부활'이다. 그의 작품들이 다 위대했지만 특히 말년에 심혈을 기울여 '부활'을 집필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녀와 집시남자와의 사이에 태어나 굶어죽을뻔했던 아이는 집주인 자매의 배려로 생명을 이었으며 양녀도 하녀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으로 성장한다. 마침 조카뻘인 청년 네흘류도프가 전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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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 톨스토이가 1889년 집필을 시작하여 10년만인 1898년 완성된 작품이 '부활'이다.

그의 작품들이 다 위대했지만 특히 말년에 심혈을 기울여 '부활'을 집필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녀와 집시남자와의 사이에 태어나 굶어죽을뻔했던 아이는 집주인 자매의 배려로 생명을 이었으며

양녀도 하녀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으로 성장한다. 마침 조카뻘인 청년 네흘류도프가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방문하였다가 열 여섯살인 그녀를 임신시키고 떠나간다.

결국 집에서 쫓겨난 카튜샤는 가난한 이모집과 할머니집을 전전하다가 아이를 출산 하지만 병으로

죽게 되고 그녀는 창녀의 길을 걷게 된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카튜샤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길이기도 했으나 그녀는 이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기를 처음 유혹한 남자와 자신을 버리고 나쁜짓을 한 남자들에게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그저 한 남자를 사랑했을 뿐이지만 자신을 이용한 남자들..상징적으로는 그녀를 이 지경으로

몰고간 사회의식에 대한 반항심이 아니었을까.

 

 

여자에게 소심했던 네흘류도프는 고모댁의 하녀였던 카튜샤와의 재회를 통해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을 깨닫고 억울하게 수감된 카튜샤를 구제하려고 하나 카튜샤는 거절하고 만다.

아마도 네흘류도프는 그녀를 구원함으로써 자신도 구원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여정에는 말년의 톨스토이가 고뇌했던 인간의 구원 즉 '부활'과 사회의식의 비판이 들어있다.

속죄를 통한 '부활'을 꾀하려던 네흘류도프의 고군분투를 약자인 카튜샤가 거부하는 것은

어쩔 수없이 나락에 떨어진 인간이지만 허접한 권력과 알량한 속죄심으로 보상받으려는 거대한

'의식'을 조롱하는 것이 아닐까.

사회 최하층으로 전락해가는 과정과 이용하려는 인간들의 군상.

더럽고 냄새나는 감옥에서도 밝게 빛나던 카튜샤의 의지는 밟히면서도 일어서는 군중의 모습을

닮아있다.

아마도 톨스토이는 성경의 죄와 벌, 도덕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답을 이 작품을 통해 찾으려 했던 것같다.

거의 40여년만에 다시 읽어보는 '부활'은 시간이 지나 대를 이어 읽어도 좋을 대작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명작이다.

이달의 사락 h********5 2013.02.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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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톨스토이의 명작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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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명작이다. 이 책의 저자 톨스토이는 더할 나위없이 말이 필요없는 작가이다. 그의 3대 저서 중의 하나인 이 책의 내용은 어느 정도 책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충' 알고 있을 듯 하다.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 바로 내가 그 '대충' 아는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통해 배운 톨스토이였기에 그의 인생에 대해, 그의 대표 작품 및 줄거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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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명작이다.
이 책의 저자 톨스토이는 더할 나위없이 말이 필요없는 작가이다.
그의 3대 저서 중의 하나인 이 책의 내용은 어느 정도 책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충' 알고 있을 듯 하다.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 바로 내가 그 '대충' 아는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통해 배운 톨스토이였기에 그의 인생에 대해, 그의 대표 작품 및 줄거리에 대해 알고 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문학 작품을 시험을 통해 만났다는 것이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줄거리에 대해 대충은 알기에 명작이라는 책들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마치, 스포일러를 보고 그 영화를 예매하기 싫어하는 마음이랄까..
그러다가 이 책의 '완역본'이라는 활자에 꽂혀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면서 이전에 알고 있던 줄거리가 대충은 생각나지만, 그 줄거리가 모두가 전부가 아님을, 그간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은 결코 중요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까지 들 정도다.
630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단지 2~3페이지에 압축된 내용으로 이해하다니...
톨스토이는 '부활'을 쓰면서도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오히려 이 책을 출간하고 나서 고생이 심하였다.
이 책을 통해 나타난 그의 종교관은 당시의 러시아의 종교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책을 단순히 '문학작품'이라고 치부하기에 힘든 많은 시대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작품을 위한 허구가 아닌 저자의 경험이 어느 정도 녹아든 대작이다.

인생은 선택과 사건의 연속이다.
카츄샤의 하룻밤의 사건은 그녀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네흘류도프의 인생 또한 그냥 하룻밤의 일로 묻어 놓고 지나갔으면 그냥 그런 귀족의 삶을 살았을텐데, 한 사건의 배심원을 맡으면서 그녀와 우연히 조우하게 된다.
이 조우로 인해 그와 그녀의 인생은 다시 한번 큰 소용돌이에 빠진다.
그녀의 삶이 그의 책임이라 믿고-사실 그러하긴 하다-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리려는 남자와, 지금의 삶을 유지하려는 여자.
과연 그 결말은? ㅎㅎㅎ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회적, 문화적, 인류애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서 지금까지 명작이라고 하는 것들을 '제대로' 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이 완역본을 단지 2~3페이지의 서머리로 과연 내용을 다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을 보면서 다시 명작들을 살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달의 사락 l*****0 2013.02.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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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부활'이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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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유명한 고전이다. 출간된지는 백여년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 책은 이 곳 저 곳의 필독도서 명단에 올라있다. 아동용 전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 역시 처음 만난 것은 금성출판사판 축약본이었다. 당시엔 그저 치정이야기로만 읽혔다. 뒷부분은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다. 왜 이 책의 제목이 '부활'인가에 대하여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불쌍한 카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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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유명한 고전이다. 출간된지는 백여년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 책은 이 곳 저 곳의 필독도서 명단에 올라있다. 아동용 전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 역시 처음 만난 것은 금성출판사판 축약본이었다.

당시엔 그저 치정이야기로만 읽혔다. 뒷부분은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다. 왜 이 책의 제목이 '부활'인가에 대하여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불쌍한 카튜사... 하면서 쓱쓱 읽었다. 오랫만에 읽어 본 부활은 좀 달랐다.

이 책의 줄거리를 매우 짧게 요약하면, 하녀 카튜사가 부유한 귀족청년 네흘류도프에게 임신당하고 돈으로 버림받는다. 이후 그녀는 이곳저곳을 떠돌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는 죽고 가지고 있던 얼마 안되는 돈도 잃어버린다. 삶에 지친 그녀는 공창 포주에게 스카웃되어 창녀의 삶을 살다가 형사사건에 관련되게 되는데, 결국 누명을 쓰고 고난의 땅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된다. 이 과정에서 공작이 된 네흘류도프와 배심원과 피고로 만나게 되는데, 네흘류도프는 순진한 처녀에서 창녀가 된 그녀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고 그녀의 유형을 쫓는다. 그는 결국 그녀의 누명을 지우고 특사시키는데 성공하는데, 카튜사는 시몬손과 결혼하겠다며 네흘류도프와 이별한다. 홀로 남은 네흘류도프는 성경을 읽으며 인간의 삶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다.

최근 읽은 요네하라 마리의 에세이에서 '다이제스트'의 불편한 점이 기억에 남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공산주의 국가에서 보냈는데, 학생시절 친구들과 사전을 찾아가며 원전을 읽어낸 경험을 회상했다. 언어를 공부하고 싶다거나, 문학소년/소녀가 되고 싶다거나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단순했다. 본능이 지시하는대로, 작품속에 표현된 성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이제스트 또는 축약본은 단순히 내용이 줄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아예 삭제되기도 한다. 그녀는 이 경험을 통해서 청소년들에게 축약본을 권하는 게 꼭 좋은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에세이였다.

완역본에 묘사된 카튜사는 흥미로웠다. 네흘류도프에게 버림받기는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상당한 교양과 미모 그리고 나름의 종잣돈을 가진 처녀였다. 하지만, 씀씀이가 헤프고 고생하기를 싫어하는 성격은 그녀가 가진것들을 하나둘 잃어가게 했고 결국 포주의 꾀임에 빠져 창녀가 되게 만들었다. 네흘류도프는 그녀의 모습이 그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여성을 남성의 행동에 끌려다니는 수동적 존재로 생각하는 당시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의미가 퇴색하지는 않는다. 상당히 두꺼운 이 책에서 톨스토이는 네흘류도프와 카튜사의 치정이야기를 모델로 여러 사색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과거'가 이 책의 테마로 느껴졌다. 내가 누군가에게 행한 과거의 어떤 일이 그 누군가에게 엄청난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하는 양심의 가책. 이 작품이 고전인 이유는 이처럼 1c가 지나서도 우리의 문제와 닿아 있다는 점인 것 같다.

어찌보면 이 책에서 네흘류도프와 카튜사의 치정이야기는 모델에 불과한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이 책은 네흘류도프의 '부활'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그는 거듭남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좋은 책은 사색을 낳는다고 한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고민을 끌어올렸다. 네흘류도프는 누구나 그렇게 하니까 라는 가면을 스스로 찢어내고 내면적 양심과 조우를 통해 거듭나려 했다. 우리는 어떨까.

어찌보면 불편한 책이다. 네흘류도프의 사색과 독백을 읽다보면 스스로도 사색과 독백을 피할 수 없으니까. 잊고 있었던, 또는 잊고 싶었던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 것들을 정당화시켜주던 핑계들을 양심의 준엄한 기준 아래 다시 꺼내놓고.

역시, 고전인 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a**l 2013.0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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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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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부활>을 처음 읽은 것은 여고 시절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그저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이라는 것과 전체적인 흐름정도만 기억하고 작품에 대한 교훈이나  감상적인 부분은 많이 잊고 있었다. 수 십 년이 지나 사춘기 아이를 둔 학부형이 되어 다시 <부활>을 읽으면서 고전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톨스토이'라는 작가를 왜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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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부활>을 처음 읽은 것은 여고 시절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그저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이라는 것과 전체적인 흐름정도만 기억하고 작품에 대한 교훈이나  감상적인 부분은 많이 잊고 있었다. 수 십 년이 지나 사춘기 아이를 둔 학부형이 되어 다시 <부활>을 읽으면서 고전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톨스토이'라는 작가를 왜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지 더 절실히 공감하게 되었다.  이 작품이 1899년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으로부터 벌써 100년도 훨씬 더 이전에 쓰여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작가가 작품에서 수없이  반복하는 많은 사회문제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아니 오히려 당시보다 또 다른 면에서 더 골이 깊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사회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에 대해  알만큼 알아버린 중년의 나이가 되어 읽는 <부활>은 고전명작을 읽는 즐거움을 넘어 많은 부분  우울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양심이라는 것에 대해,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시간을  넘어서서도 여전히 누구나 읽고 감동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고전 읽기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작품의 남자 주인공인  '네홀류도프'는  당시 사회의  상류층에 속하는  젊은 공작으로 모든 면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청년이다.  신분마다 따로 그들의 계층이 뚜렷이 정해진 사회에서  그는 모든 면에 유복한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그는  신분으로 인해 자신이 사는 지역의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하곤 하는데, 소설은  '네홀류도프'가  한 재판에 참석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죄인의 죄를 판단하는 배심원의 한 사람인 그는 어느 날 재판장소에서  자신이  젊은 시절에 잠시 스치듯이  사랑했으나,  잊고 있었던  '카추샤'라는 여인을 알아보게 된다.  '네홀류도프'는 배심원으로 '카추샤'는 살인 혐의를 받고  공범으로 지목된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재판을 받는 죄인의 입장이었다. 

 

 

 

  사람은 다 그렇지만, 네폴류도프의 마음속에도 두 가지 인간이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남에게도 행복이  될 수 있는 그런 행복만을 구하는 정신적인 인간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오직 자기만을 위해 행복을  찾고, 그 행복을 위해서 온 세계의 행복마저 희생시키려는 동물적인  인간이었다. 페테르부르크의 생활과 군대 근무에 중독되어 이기주의에 홀려있던 이 시기에는,  이 동물적 인간이 그를 지배해 정신적 인간을  꼼짝 누르고 있었다.  ( 본문 77쪽 )

 

 

 

 

 

  재판은 죄가 없이 모함을 당한 '카추샤' 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며 배심원들의 실수로 결국 유형에 처해지고,  시베리아로 떠나야하는 상황에 이른다.  '네홀류도프'가 처음 '카추샤'를 만난 것은 그의 고모 집에서다.  '카추샤'는  버려져 죽음을 당할 상황에 놓인 여자 아이를 불쌍히 여겨  두 고모들이 데려다 키우면서  집안일을 거들기도 하고,  혹은 글을 배우기도 하면서  완전한 가족도 그렇다고 하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성장한다.  그는  고모 집에서 만난  '카추샤'와 사랑을 하게 되지만 그것은 잠시 불장난 같은 짧은 만남이었다.  그들의 만남은 '네홀류도프'가 돌아가면서 끝이 나지만,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카추샤'는 고모  집을 떠날 수 밖에 없게 되고, 이후 아이는 죽고 '카추샤'는 창녀가 되어 거리의 여자로 살아간다.

 

  오랜 시간이 지나 예전에 순수했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재판장에서의 '카추샤'를 만나면서  '네홀류도프'는 그날 이전의 자신이 살아왔던 쾌락을 쫓던  상류층의  삶에 대해  반성하게 되고,  남은 시간을 '카추샤'를 위해  살겠다고 결심한다.  <부활>은  두 주인공의 이러한  줄거리를 풀어가면서 그 속에 담긴 당시 러시아 사회의 여러 모순들을 하나씩 들춰내고 비판해간다.  '네홀류도프'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카추샤'의  뒷바라지를 위해 감옥을 드나들면서  이전에 상류사회에서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작가는 주인공 '네홀류도프'가 만나는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당시의 법, 사회환경, 정치제도 등 많은 것을 고발해간다. 

 

 

 

  '따라서  우리는, 가령 단 1시간이라도, 또 무슨 특별한 경우에라도 인간에의 감정보다 더 귀중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죄를 짓고서도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 본문  502 쪽 )

 

 

 

 

   현재 우리 인류에게는 전 인류가 먹어도 충분한 양의 식량이 있지만,  아직 많은 곳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한 쪽에서는 식량가격을 조절하기 위해 많은 양의 식량을 버리기도 한다.  또한  아직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사회는  100년 전보다 더 '인간다움'을 잃고 이제는  양심이라는 것을 느끼며 방황하거나 고뇌하지도 않게 되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작품 속의 '네홀류도프'처럼   스스로  고뇌하고 눈물을 흘리며 행동으로 변화해 부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돌아볼 일이다.  작가가 말하듯이  동물적인 인간만이 남아 정신적인 인간을 꼼짝못하게 하는 가운데  사회는 점점 더 비열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YES마니아 : 골드 n***r 2013.02.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