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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소설에서 만난 성석제는 어려웠던 시기에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긍정의 힘을 떠올리게 한 고마운 작가였다. 그를 일컬어 언론에서는-정확히는 광고 문구에서-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말을 썼다. 내가 생각하는 국어선생의 이미지 가운데 그와 같은 것이 있기에 내가 한쪽으로 지향하고 있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이란 건 생각보다 치밀한 설정과 사건이 필요하기에 '각잡고' 써야 하는 것이지만, 산문이라고 흔히 일컫는 수필은 상대적으로 그 조건에서 자유롭기에 작가의 내밀하고 실제적인 생각에 더 가까운 것들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이 책을 구입했다.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첫 문단을 썼지만, 솔직하게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사은품 때문이 더 컸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근데 사실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라는 어절이 새겨진 소주잔을 하나 준다는 광고를 보고, 책 소개도 보지 않고, 내용에 대해 고려하지도 않고 곧바로 주문했다. 소주잔을 앞에 놓고 누군가와 한다는 이야기란 시덥잖은 일일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인생은 굵직한 사건들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 사이를 채우는 수많은 여백과 시덥잖은 이야기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라고 볼 때, 오히려 인생 전체에서 그 시덥잖은 이야기들은 오히려 비중이 더 큰,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표현이 새겨진 소주잔이라니, 그 절묘함에 감탄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술 마실 땐 즐거워도 지나고 나면 괴로운 숙취가 남듯, 이 글들에서 예전에 내가 만났던 재미는 찾기 힘들었다. 작가가 나이가 든 것인지, 소설적 재미를 빼고 나니 재미가 덜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간 중간 제목이 끌리는 몇 편을 읽고 나머진 그냥 덮어 두었다. 올해 읽은 책들을 따로 꽂아놓은 서가의 끝자리에 집어넣으면서 언제 다시 펼칠지 모르는 기약만 남겼다. 다만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제목을 단 한 편의 글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요점은 사람들이 나누는 '그 이야기의 본질은 내용이 아니고 이야기 그 자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를 하기 위해 적당한 화제로 '본체'를 등장시킨다. 중요한 것은 서로 이야기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대화는 지속된다. 세상이 두 쪽이 나도, 저녁을 먹은 뒤 여름밤의 산책과 카페에서의 나직한 이야기와 두런거림은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 그것은 얼마 전까지 서로 잡아먹을 듯 으러렁대던 두 나라 정상끼리의 역사적 회담 못지않게 중요하다. 비록 그것이 "아니... 진짜... 그래서... 그러니까... 아주 조금... 굉장히... 있잖아... 사실은... 말이지"로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사람과 사람 서로 간의, 지성체 간의 대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귀중하고 단 한 번, 한 순간뿐인 우리가 삶이자 비전이며 성스러움에서 비루함까지 인간세의 표리를 명경처럼 반영하는 것이니."(p183) 내가 이 책을 살 때 책보다도 더 탐냈던 그 잔이 소용될 때는 반드시 대화 행위가 전제될 것으로 생각하고 구입했으므로, 나는 글쓴이의 의도대로 행동한 것이 된다. 글 자체의 의미보다 사은품으로 그 의도를 독자에게 실현시킨 저자와 나와의 관계는 일단 지속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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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에 닿기까지 무수한 경로가 있지만, TV를 통해 저자를 만나고 책을 소개받는 것도 오랜만이다. 아니 이전 기억이 없으니 아마 처음일 수도 있겠다. 책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이 인기가 치솟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우연히 돌린 채널을 통해서 만난 작가와 책은 최소 나에게는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작은 기쁨이었다. 닮았지만 다른 그래서 새로운 남의 이야기가 나를 과거로 보냈다가 미래로 보냈다가 지구촌 먼 곳까지 보낸다. 팬더믹의 위험에도 아랑곳없이. 젊은 시절 떠나버린 친구의 기일을 기억하며 일 년에 한 번씩 모여서 비빔밥을 직접 해 먹고 헤어지는 친구들의 모습이 참 부럽기도 하고 짠하다. 소설가이든 시인이든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언어가 주는 마력에 빠진 채 인생이 주는 희로애락을 그것이 사소해 보이고 하찮아 보일지라도 계속 써 내려갈 것이다. "어떻든"이라는 부사가 그의 글쓰기에 대한 결연함과 의지를 보여준다. 여러 매체가 다양하게 쏟아내는 자극적인 주제와 달리 다소 힘들고 지루하고 외롭고 지치고 방황하는 이야기. 그렇지만 누구나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걸어가면서 마주치게 될 다양한 광경을 담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야기가 생뚱맞게 근데, 사실은,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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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성석제 님의 산문집.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한 원고를 엄선해 다듬은 신작이다. 우리 시대 해학의 아이콘이자 타고난 재담꾼으로 평가받는 작가답게, 그의 유머와 입담이 산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번 산문집은 기존 작품이 사진(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과 음식(소풍, 칼과 황홀)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인생'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가 살아오면서 느낀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세상사에 대한 통찰을 성석제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으로 전개한 글들이 담겨 있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처음 문학작품을 접했을 때의 경이로운 순간부터 소설가 성석제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 작가로 살아오면서 정리한 문학에 대한 사유 등을 보여주는 한편, 삶에서 만난 소중한 순간들, 기쁨과 슬픔, 애정과 그리움이 담긴 순간들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사회에 대한 작가의 성찰과 여행 속 내지 과정에서 돌아본 세상과 일상,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이야기들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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