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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김범수(47) ㈜카카오 이사회의장의 독서에 대한 글이 한 일간지의 일면 톱으로 실린 기사를 읽었다.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의 공동대표였고, 카카오톡의 창업자인 그가 ‘검색보다 독서’를 강조하는 책 예찬론자고, 자신의 성공비결이 ‘독서’에 있다고 했다. 그는 오전 7시면 어김없이 거실 겸 서재로 쓰이는 공간에서 매일 40분~1시간정도를 온전히 책 읽기에 할애한다고 한다. 김 의장은 “책이야말로 나의 멘토”라며 “독서에서 얻은 울림과 이를 통한 사색이 나를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어제는 버리고 가라’는 멋진 제목 때문에 선택한 책이지만 책속의 내용은 제목에 부합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기에 자연스럽게 김 의장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과연 이 책은 김의장의 말대로 ‘울림과 사색을 제공하는 책인가?를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결론은 “아니다”였다 그 이유는 이 책은 저자가 지은이의 말 중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 잡지에 연재한 글 중에서 골라내었기에 88개나 되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고 그 내용도 약 2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들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저자 스스로 말한 것처럼 가벼운 철학적 계시와 에피소드이기에 독자들에게 가벼운 상식을 제공하는 수준으로 끝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만 가지고 이 책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겠지만 이런 가벼운 내용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책은 아니란 점에서 조금 실망이 있다.
이 책이 상식선에서 수많은 성공사례를 독자들에게 제공해줄 수 있지만 사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책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중의 하나는 인용하기 좋은 내용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에 자료 용도로 사용하면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콜럼버스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사에는 위대한 발명가와 발견자가 많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어떤 일을 성공하기 전에 동시대 사람들에게 정신병자나 과대망상증 환자 등으로 취급당했다. 이른바 망상(delusion)이란 사회의 절대 다수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신념(conviction)을 가리키는 말이다. 발명가나 발견자 쪽에서 보면 이러한 사회적 압력에 항거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는 종종 엄청난 고집과 변치 않는 의지력을 가진 자만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217쪽) 저자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동력을 고집과 의지력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인생사를 꼭 하나의 방법으로 풀 수는 없다. 반대로 잘못된 고집과 의지력 때문에 실패하고 왜곡된 역사를 가져온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콜럼버스의 고집도 성공했기에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받는 것이지 실패했다면 그의 지도력이 비판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 어떤 상황이 발생할 때 그 당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혜가 올바른 길로 인도해준다. 하지만 그 결정이 자신의 삶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정을 믿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 소중하기에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어제는 버리고 가라’는 단호함으로 표현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 아이들은 가끔 “아빠는 현실을 몰라요”라고 말한다.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그들을 보며 아픔을 느낄 때가 이때다. 아직 꿈과 이상을 말할 시기에 아이들은 벌써 현실이라는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고 있다. 그들에게 더 필요하고 소중한 것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조그만 언덕일지도 모른다. 아무 근거 없이 너무 쉽게 긍정과 낙관을 말하는 책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 마치 인간의 모든 내면을 꿰뚫고 있는 듯이 말하는 심리학책이나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힐링에 관한 책들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는 버리고 가라’ 이 책도 왠지 그런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앞 사람들의 경험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그것들을 대할 때 자신의 지혜에 의지해 고르고 걸러야 할 것이다.’라는 저자의 당부가 이 책을 통해 도전받고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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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린 시계가 4시를 가리킨다. 그러고도 초침은 잠시도 쉬지 않고 다음 여정을 향해 힘찬 발자국 소리를 행진곡 삼아 그 걸음을 옮긴다. 60번의 발걸음 뒤에 묵직하게 분침이 그 기다란 몸을 4시 1분에 가져다 놓는다. 이제 시계는 4시 1분을 가리킨다. 흔히 우리는 1분전 시간인 4시를 과거라고 부른다. 하지만 돌고 도는 시계의 문자반 위에서는 방금 지나온 4시는 과거가 아니다. 시계의 문자반 위에서는 그건 다시 지나가야 할 미래가 된다. 정확히 11시간 59분 뒤에 시계의 바늘이 지나가야 할 미래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계의 문자반 위에선 과거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앞으로 지나가야 할 미래만 존재할 뿐이다. 지나간 시간이란 단지 우리의 뇌 속에 기억되는 기억의 편린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과거란 어쩌면 지나온 시간을 지칭하는 다른 말이며, 추억이라는 존재로 우리 뇌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기억의 조각일 뿐이다.
이 책 『어제는 버리고 가라』는 이렇듯 지나온 삶에서의 어제는 버리라고 요구한다. 어제란 단순히 과거의 기억과 추억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란 과거 삶의 연혁들이 내게 제공한 지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판단 등 모든 것을 얘기한다. 또한 거기에는 과거에 대한 미련, 고정관념들도 포함된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의 편견으로 세상을 본다. 그 편견과 자기만의 기준에 의해 짜여진 편협함이란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판단하고 재단한다. 그러한 편견은 과거 삶의 과정에서 축적된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런 편견이란 색안경은 세상을 보는 순수함을 가린 채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편견의 색안경을 벗고서 올곧이 순수함으로 세상을 보란다. 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지식과 내가 살아온 경험, 그리고 나의 편견 등 모든 것을 버리라고 얘기한다. 편견을 제거한 순수한 시선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을 발굴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사실상 잠재능력은 인체 내에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환경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력이 물체와 물체 사이의 관계인 것처럼 잠재 능력은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물체 사이의 관계다(182쪽) 저자는 그러한 예로 11년간 선장이었다가 편지조차 거의 쓴 적이 없던 원양선 선장이 출항이 없는 날 무언가를 쓰기 시작해 유명 작가로 변신한 폴란드 출신의 영국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Joseph Conrad, 1857~1924), 〈풀밭위의 점심식사〉등의 작품으로 미술계의 이단아로 불렸지만 인상주의를 탄생시킨 예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교수가 되었으나 세속에 얽매여 사는 대신 월든 호숫가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자연의 가르침을 따라 살며 강한 용기와 신념으로 과거와 단절하고 사회 전체와 맞서 자연을 노래한 은둔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 초등학교 시절 교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학생의 수업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자퇴를 강요받았으나 훗날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알려진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1850~1894), 성학性學의 대가가 된 보수주의 학자 앨프리드 찰스 킨제이(Alfred Charles Kinsey, 1894~1956), 등 과거로부터 이어온 자신의 직업이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남긴 이들의 예화를 들고 있다. 이 외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 또한 이 책에 담겨있다. 저자는 이러한 편견을 털어버리고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상의 전환으로 수직적 사고법이 아닌 수평적 사고법을 제시한다. 어제는 버려야 할 기존의 고정관념이다. 그러한 고정관념을 벗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을 통한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과거는 그저 추억 일뿐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기존의 살아온 삶에서 얻은 지식과 그 경험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시간의 수직적 사고에 갇혀서 살고 있다. 이러한 수직적 사고에서 벗어나 언제나 무에서 시작하는 수평적 사고로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만이 우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기성세대의 시각과 관찰에서 벗어나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야 한다. 저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세상을 보란다. 어린아이가 순수한 것은 기존의 고념관념이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에서 내가 무엇을 이룰 것인가는 오로지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인생도 세상적인 잣대에 의지해 거기에 맞춰 삶을 재단하고 살아간다. 내 삶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는 타인의 말이 진리인 듯 믿고서 말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현실에 적응하여 순응한 사람들이 아닌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접근한 이단아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1963년 루게릭병으로 장애인이 된 스티브 월리엄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 현재)박사는 그 장애라는 편견을 깨고 아인슈타인 이후로 최고의 물리학자가 되었다. 그가 그 장애에 굴복하고 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회적인 통념에 사로잡혔다면 그로 인해 풀린 우주의 비밀은 아직도 영원히 해결되지 않은 미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15세기말 유럽을 출발해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면 인도에 닿을 수 있다는 이론을 확신하고 굳센 신념으로 선원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항해하여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Christopter Columbus,1451~1506) 그가 아니었으면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역사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만의 시선으로 삶을 영위해간 자들에 의해 쓰여지고 이루어졌다. 이 책을 저술한 저자 왕이지아의 이력도 그의 논리를 대변한다. 타이완의 최고 명문의대를 졸업하였으나 의사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문화 사업가와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안정된 의대 졸업장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길을 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감동은 거기까지이다. 《심령잡지》에 연재되었던 칼럼 중 88가지를 가려내서 기술한 때문인지 아주 짤막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제목이 주는 감동을 끝까지 일관되게 밀고나기지 못한다. 너무 짤막한 얘기는 감동을 배가시키지도 못하고 뭔가 하고자하는 얘기들이 많이 감춰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제목이 주는 여운과 첫 단락에서 주는 어제를 버리라는 그의 논리가 중간에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제목과 맞지 않는 칼럼들이 들어와 책을 채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초반에 느껴진 감동은 후반으로 갈수록 약해져 갔다. 어디선가 들었음직한 얘기들은 책이 주는 신선함을 반감시킨다. 하지만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 나름의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 왔다. 한해를 시작이 되면 우리는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미래를 계획하면서 언제나 지나온 시간을 거울삼아서 설계한다. 하지만 최근 티비의 어느 유명한 탈렌트가 나오는 광고에서 “왜 사람들은 다 지난 얘기만 하죠 ? 사실 중요한 건 내일인데~ ” 라는 멘트처럼 우린 언제나 과거에 얽매여 미래를 결정한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미래이다. 즉 과거로 상징되는 어제는 버리고 새로이 출발해야 한다. 매일 돋는 해가 어제와 다르듯이 우린 언제나 하루라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만큼 그만큼 새로운 모습으로 하루를 맞을 일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르는 말이다. 한해를 시작하는 지금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과거의 영광이나 과거의 불행이나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새로이 내일의 그림을 그리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 아닌가 한다. 사람은 누구나 바뀔 수 있다. (Anybody can be changed) 그리고 그렇게 바뀐 자들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애벌레의 과거에 연연하기 보다는 죽음으로 상징되는 “고치”의 과정을 겪고 나서야 나비가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애벌레이기를 주장하는 한 그는 나비가 되지 못한다. 아무리 그의 꿈이 위대하다고 해도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틀을 깨지 않는 한 그에게 나비는 한여름 밤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우리도 애벌레의 과거를 잊고서 고치로 변신해야 한다. 그럼 우리의 미래도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땅을 기어 다니던 애벌레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미래가 바로 당신의 삶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누군가 먼 훗날 당신의 그 도전의 기록을 이렇듯 책에 남겨 많은 사람의 귀감으로 삼을지 누가 알겠는가! 공부는 사실 어떤 눈을 사용하여 어떤 각도에서 대상을 보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중략) 사람은 또 학습과 경험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고정적이면서도 경색된 관념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자각하지 못하는 관성慣性으로 대상을 관찰하거나 사고하는 것이다. 역사상 위대한 발명과 발전은 모두 누군가가 이런 자각하지 못하는 관성을 타파하고, 남과는 다른 눈으로 대상을 본 결과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한다.(22쪽)
* 이 책은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기반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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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버리고 가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다. 이 순간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준다. 이런 순간들이 모여 나의 앞길을 밝혀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일, 이런 이들에 도전하는 사람들 누구나 가진 시간, 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고민하고 현명하게 사용하는 사람들. 많은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것인가? 수많은 사건들에 춤추는 것이 인간이다. 감정의 희노애락에 매여 사는 것이 보통 사람이다.
이 책을 보고 처음 받은 느낌은 리더스다이제스같은 책이다는 것이었다. 짤막짤막한 교훈적인 이야기와 간단한 사건에서 배움을 얻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중국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약간 빗나간 책이었다.
제목처럼 어제의 집착은 버리고, 내일의 나로 서야겠지만, 과거없는 현재는 없는지 모른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총아가 아닐까? 어제의 나를 변화시켜가는 것이 우리의 발전인것 같다. 상처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상처를 잘 극복하고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뭔가 다른 무엇이 있다. 인간의 의지.어떤 사건을 마주하고 그 결정을 내릴때 과감히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힘이 필요하나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 배움 등등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똑같은 시간, 다른 활용 그러기에 어떤 이에게는 너무 짧은 시간이 어떤 이에게는 아주 긴 시간이 될 수 있다.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신을 중심으로 만들어가라.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금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을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만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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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한다. 마치 TV 써프라이즈를 책으로 읽는 듯한 기분이다. 2-3페이지로 이어진 위대한 사람들의, 혹은 평범한 사람들의 놀라운 일생을 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신문에 연재된 칼럼을 모은 것이라 필요상 가끔씩 겹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얼마나 상식하고는 거리가 먼 지에 대해 깨닫게 되는 책이다. 우리는 누구나 성공한 사람들을 존경하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이 보낸 어려운 시절, 혹은 비난 받던 시절에 대해서는 잊거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인슈타인이나 다윈처럼 학문적인 성과를 많이 낸 사람이나 램브란트와 같은 위대한 화가도 이 책에서 접할 수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누구나 성공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노력이나 대가는 있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또한 "될성 푸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꼭 들어맞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게 하는 것도 이 책이 보여준다. 또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불변의 진리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책을 한권 쓰려면 2백권 이상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수백권의 책을 한 권에 담아 읽은 듯한 생각도 들어 뿌듯했다. 역시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올 한해도 꾸준한 독서를 이어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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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어제는 버리고 가라는 강렬한 제목 때문인지 이 책을 꼭 읽어야할것만 같았다. 우리들은 현재를 직시하지 못하고 지나온 어제라는 시간에 연연하며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한다. 가장 중요한 현재라는 시간의 소중함을 잊은체 우리는 늘 다른 생각들을 하며 그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알면서도 매번 그런 어리석음을 보이기에 이 책을 읽으며 다시한번 나를 돌아보고 부족한 면을 채워나갈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평범함이 아닌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나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하는 거리감을 가지며 책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작가가 <심령잡지>에 연재한 글에서 골라낸 이야기들이라고 한다.
4부로 이루어진 이야기의 소제목만봐도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질지 대강의 내용을 추측할수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들이 소제목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질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책 속에서 만나는 에피소드들 중에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내용들도 있어 익숙할수도 있고 식상할수도 있다는 두 가지의 생각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책이 우리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가고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현재의 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 행복하게 살아야하는 것은 아닐까?
어떤 사건을 직면할 때 우리는 흔히 마음 속으로 헤아리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억측하고 의심한다.(중략) 생각을 바꾸면 인식도 바꿀 수 있고, 그리고 생각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새롭게 체험하는 것이다. - 본문 27쪽
책을 읽고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그런 능력이 나에게 주어졌다면 바랄 것이 없지만 한가지도 찾지 못하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다. 다른 이들처럼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실천하지는 못하겠지만 책이 나에게 주는 한 가지 메시지는 확실하다. 생각의 전환.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들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여 진실을 왜곡하여 받아들이는 어리석을 범하지 않고 싶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지금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불행이 될수도 행복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그걸 안다면 그 일을 불행으로 만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지나간 시간이 되어버린 어제는 버리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재라는 시간의 소중함을 안다면 행복을 놓치는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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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신가요?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시는지... <어제는 버리고 가라>, 왕이지아 저, 김영수 역, 위즈덤하우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행복할까? 아니 내 자신 스스로 지금 행복한지 자문해본다. 아마 2013년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은 아마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아마 그 대부분은 경제적인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행복하지 않다면 나 스스로도 행복해질 수 없는 건 사실이다. 즉, 아무리 먹고 사는 것 때문에 하는 일이지만 그 일이 고통스럽거나 즐겁지 않다면 그건 필연 행복할 수 없음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잘사는 조국이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들은 그리 행복하지 않은, 그래서 매일 듣게 되는 자살소식은 이제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건 왜 일지. 가장 행복한 나라는 그리 잘살지도 않은 부탄이라는 나라이고 태평양의 섬 산타카랄리나의 주민들은 행복도가 높은 곳이라는건 한편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와 슈퍼자본주의로 인해 지금의 대한민국은 양극화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는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요즘 출판계는 행복에 대한 트렌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아울러 힐링 즉 치유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는건 그만큼 우리가 상처받고 행복하지 않음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하지만 이책은 여는 힐링서나 행복관련 도서들과는 좀 다르다. 역자가 서문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사이비 힐링서와는 다른 우리의 병리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해법의 실마리를 조용히 이야기해준다. 특히 이 책의 역자는 대한민국에서 중국의 살아있는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 사마천의 <사기>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김영수교수님 아니던가.. 특히 나의 경우는 전공이 중문학이라 <사기> 작품도 원전으로 독해도 했었고 교수님 저서들을 탐톡해와서 더욱 반갑기만 하다. 휴넷의 사기 강의도 정말 재미있게 들었던..
대만 작가 출신인 와이지아는 생소한 작가인데, 원래 의사출신으로 작자 스스로 새로운 행복찾는 방법으로 작가가되어 인간의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해부하고 인간의 존엄한 생명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즉, 작가 스스로 실제 체득한 경험의 체험치라 더욱 의미가 깊은게 아닌가 싶다.
<어제는 버리고 가라>는 분명 원제목이 아닐터 원작의 제목이 몹시도 궁금했는데, 책 전면부에 世說心語 : 100個生命的啓示라고 되어 있다. 해석하면 ‘세설심어 : 100개 생명의 계시’이다. 원작은 100개의 글인듯하나, <어제는 버리고 가라>는 88개의 계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계시라고 하면 종교적인 색채가 나지만 이 책과는 관계는 없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작고 사소한 인식의 전환이 얼마나 큰 행복과 가능성을 맛보게 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우리가 익히하는 화가 마네, 램브란트, 피카소, 월든의 데이비드 소로, 작곡가 바그너, 아인슈타인, 조지오웰, 철학자 러셀,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 데카르트,칸트 등 철학자는 물론이고 독일의 문호 헤르만헤세, 카뮈 그리고 엘빈토플러까지 또한 많은 무명씨들과 일반인들의 이야기까지 저 아득히 먼 그리스시대부터 고전시대, 근세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공을 초월하고 인물을 초월하여 다양한 인간 群像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의 새로운 면면이 흥미롭고 또 때로 놀라운 그래서 그 위대한 인물들도 그리고 내주변에 있는 평범한 인물들조차도 상상할 수 없는 고귀한 것들로 충만한 삶을 위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고 있다. 때론 뜻하지 않은 우연으로 작은 생각하나로 하나의 결정으로 인하여 새로운 삶 그리고 행복한 삶, 그리고 스스로 진정한 삶을 개척해 나간 그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는 분명 자기가 하는 일에 행복함을 느끼고 새롭게 시작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그너의 13이라는 숫자에 얽힌 이야기, 아인슈타인의 양말과 조지오웰의 수염, 벌의 성행위를 연구하던 킨제이보고서의 킨제이,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에 얽힌 일화, 입센과 바그너의 강박관념, 헤르만헤세의 심리치료, 캐네디의 실수 등등 다른 책 어디서도 볼 수 없는 88개의 일화들은 이책을 곁에 두고 하나씩 하나씩 사탕을 꺼내 즐기는 즐거움으로 하나씩 두 개씩 읽는다면 여타 다른 힐링서들은 읽고나면 공허하기 짝이 없는 뒷맛 개운치 않은 느낌과는 차원이 다르다. 행복 관련 책들이 더 행복을 어렵게 만들고, 힐링 관련 책들이 더 괴롭게 만든다면 이 책은 가볍게 하지만 마음으로 읽어낼 수 있는 그래서 진정한 치유가 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아마 정혜신의 <홀가분>을 읽어본 독자라면 의사출신이 작가가 뿜어내는 아우라 같은 것을 함께 음미할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도 작은 생각의 변화 그 시작이 이 책에서 비롯되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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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작은 틀을 바꾸면 종존 큰 수확이 뒤따르기도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꾸준함이다. A씨는 일생 최대의 희망을 첫 전차를 타고 출근하는 일에 걸었고,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결과 그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인생을 누릴 수 있었다.-54
2013년 새해를 맞으면서 읽으면 좋을 책을 만났다. 우리는 저마다 연말을 보내면서 한해를 정리하고, 다가올 새해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 시간이 바로 어제같건만 벌써 1월이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매순간 열심히 살겠노라 현재를 즐기며 살겠노라는 내 다짐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 내 마음을 두드렸던 것이다. 우리는 꿈과 희망을 기대하며 살아가면서도 또한편으로는 지난 일들에 대한 반성, 후회하느라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리처드 파인먼, 칸트, 피아제, 헤세, 소로, 피카소, 렘브란트, 콜럼버스 등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딩당하게 자기 앞에 펼쳐진 삶, 기회, 길을 충실하게 걸어갔음을 보여주었다.
매일 아침 붐비는 시간을 피해 첫차로 출근하면서 꾸준히 책을 읽고 업무처리를 했다는 A씨의 이야기나 학교도 선생도 없는 곳에 살았기에 읽을 책도 없었고, 달리 할일도 없었기에 자신의 집에 있는 책 한 권을 10년 동안 읽고 또 읽었다는 이야기는 사실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거리였음에도 나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별것 아닌듯보이던 시간과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서 놀라운 성과를 이루 어낸 것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란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주어진 상황이 비슷 하다고 모두 같은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을것이다. 분명히 저마다의 개성대로 자신만의 색깔로 다양한 모습과 결과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인생에서 만난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에서 자신이 결정한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있다. 저자 역시 의사를 포기하고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늘 같은 방향이 아니라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또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연한 기회가 때로는 인생에 큰 변화나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을 잊지말자. 오늘 내가 사는 모습이 내일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기를 바라는가? 그 누구도 절대로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내 인생이고 소중한 현재임을 기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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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첫 부분에 소개되는 글귀로 이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의 동반자와 같은 걸음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가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어제는 버리고 가라]의 저자 왕이지아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였다. 그래서 그의 책 곳곳에서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함을 말하는 부분을 많이 엿볼 수 있게 된다. 또한 그것이 그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왕이지아의 책은 [어제는 버리고 가라]가 처음 접하는 책임에도 그의 생각과 글들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가 바라보는 역사적 인식이나, 인간을 대하는 인식이 자못 신선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작가의 관점들이 획일화 되어가는 요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들의 삶 속에서 왜 그가 그런 삶을 살았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지금껏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결과물들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는데, 사람에 포커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그의 작가적 관점이 그를 타이완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그의 독창성을 인정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작가의 생각을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모든 사람이 바라고 계획하는 방향으로 "Yes"를 외치면, 나의 생각이 비록 남과 달라도 무던하게 튀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감히 생각한다면 당당하게 "No"를 외칠지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때만이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생각들을 만들어내고 실행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톱으로 나무 자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산더미처럼 쌓인 목재를 눈앞에 두고 모든 시간을 나무 자르는 일에만 써야지 조금이라도 낭비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쉬지 않고 나무를 잘랐다. 심지어 톱날을 갈지도 않고 자르기만 했다. 그러나 그는 톱날을 가는 시간을 생략한다는 것은, 결국 더 많은 시간과 힘을 들여야만 일을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 98~99
우리는 늘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고 들어왔고,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결코 절약하기 우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아껴두려고 해도 우리는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시간을 이용해야 할것인가? 우리의 사고를 시간은 절약해야 한다는 사고에서, 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할까라는 사고로 생각의 전환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말에 온전히 시간의 투자만을 고려해서 말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나 또한 많은 반성을 하게 되는 부분이다.
"일반 사람들은 장작이 불에 타서 재가 되는 것을 보면, 장작이 먼저고 재가 나중이기 때문에 장작이 소멸되어 재로 변했다고 한다. 재가 원래의 장작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뒤의 재를 이전의 장작으로 여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장작은 장작이요, 재는 재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p 266
모든 일은 찰나에 생겨났다 사라진다. 그 찰나 하나하나의 순간순간이 모여 끝없는 현재를 만들어내고 있다. 시간의 단선적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좀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원만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순간순간의 시간들이 결국 하나의 현재를 이루는 것이 되는데,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과 다르다고 해서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것 뿐이다. 남과 다름이 결코 틀림은 아니다. 이제부터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남들과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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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본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건 속삭이는 방법이다. 자존심 강하고 소리만 지르는 남자아이를 어찌할 줄 모르던 여자 선생님이 호통도 쳐보고 힘으로 제압하려고도 해봤지만 더 악을 쓰며 달려들 뿐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전문가 선생님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아이 귀에 속삭이자 아이 역시 소리지르지 않고 귀에 대고 소근소근 이야기했다. 선생님도 처음엔 자기에게 다가오는 아이를 보고 자신을 때리려는 건 줄 알고 놀라서 움찔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동안 아이 때문에 눈물 흘리며 마음고생했던 선생님에게 그런 쉽고 간단한 해결책이 있을 줄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생각해 보지 못했을 거다. 이 책 <어제는 버리고 가라>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병원에서 난동을 부려 골칫거리이던 소녀에게 어른이 그 소녀의 여태까지 행동을 그대로 흉내내자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내용이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거울처럼 보여주기만 했는데도 깨달은 거다. 매일 지각하던 아이에게 누가 지각하는지 적으라고 했더니 지각을 안했다는 이야기처럼 아무리 혼내도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전혀 뜻밖의 방법으로 풀리는 경우가 있다.
p.9-동서고금의 위인과 평범한 사람에게서 생활의 지혜와 생명의 계시를 얻고자 할 때면, 흔히 그 생명 자체에 각종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충만해 있어 어떤 간단하고 명확한 법칙 따위를 끌어내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앞 사람들의 경험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그것들을 대할 때 자신의 지혜에 의지해 고르고 걸러야 할 것이다.
명확한 법칙. 인생에 통일된 절대적인 법칙은 없다. 아이를 엄하게 키우라는 양육방식이 아이를 훌륭한 어른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늘 우울한 인간을 만들 수도 있다. 교과서에 적혀 있는대로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방법을 취사선택해야 하는 거다. 비록 그 결과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지만.
유명인들의 희한한 삶을 2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으로 총 88가지 에피소드를 읽고 나서 떠오른 건 새옹지마, 전화위복이라는 말이다. 인생은 참 변화무쌍 해서 인도에 가려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어디에 도착할지는 가봐야 안다. 다이어트에 실패해서 몸무게가 늘 제자리로 돌아오던 사람이 반대로 살을 더 찌워서 목표를 역전시키자 체중감량에 성공했다는 일화는 흔히 말하는 바닥을 치고 올라온다거나 배수진이라는 말처럼 때로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방법도 있음을 말해 준다.
p.63-절실한 고통 속에 자신을 던진 후 그것과 고별하고, 그것을 진정으로 단념하는 것이다.
찬물에 담갔던 손을 미지근한 물에 담그면 따뜻하게 느껴지고, 뜨거운 물에 담갔던 손을 미지근한 물에 담그면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불행했기 때문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거다. 반대로 성취감 뒤에 느끼는 공허함 때문에 중년의 위기가 다가오기도 한다.
p.61-자신의 일과 생활 방식을 되돌아보면서 날로 쌓여가는 불만을 어떤 행동으로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과거 익숙했던 모든 것과 인연을 끊어버리고 전혀 새로운 일과 전혀 다른 생활 방식에 뛰어들었다. 마치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인생을 사는 것처럼.
마음 속에 '박혀 있는 인상(accepted)'은 똑같이 일광욕을 해도 백인이 하면 여유롭게 보이고, 흑인이 하면 실업자처럼 보이게 만든다. 세상은 그렇게 편견으로 우리에게 쉽게 낙인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다윈처럼 세상의 잣대로 보면 잠재력을 기대할 수 없던 미운 오리 새끼였지만 위대한 업적을 쌓지 않았던가.
p.30-인류의 진보는 이단자heretic가 영웅hero으로 변하는 역사를 통해 이루어져 왔고 또 지금도 마찬가지다.
p.182-일반인들은 흔히 잠재능력을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어떤 구체적인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물건처럼 기분이 내키면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것으로 말이다. 사실상 잠재능력은 인체 내에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환경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력이 물체와 물체 사이의 관계인 것처럼 잠재능력은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물체 사이의 관계다. 우리가 잠재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외재하는 사람 또는 사물이 우리의 잠재능력을 불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래라 저래라 서로 자기네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심한 경우엔 당나귀를 타고 갈지, 끌고 갈지, 매고 갈지도. 인생에는 모두가 같은 곳으로 갈 수는 없다. 어떤 방식이 최선인지 쉽게 일반화할 수 없다. 지금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지금까지의 삶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p.12-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병리 현상의 진정한 치유는 그 현상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p.130-인간은 한계를 느끼고 자신의 한계를 자각해야만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p.266-시간과 사건 간의 단선적 관계를 깨면, 우리는 인생에 대해 좀 더 원만한 눈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반 사람들은 장작이 불에 타서 재가 되는 것을 보면, 장작이 먼저고 재가 나중이기 때문에 장작이 소멸되어 재로 변했다고 한다. 재가 원래의 장작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뒤의 재'를 '이전의 장작'으로 여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장작은 장작이요, 재는 재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무슨 뜻인가 하면, 무릇 모든 일은 찰나에 생겨났다 사라지지만 찰나는 그 하나하나 순간순간이 모두 독립적이며 끝없는 현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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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중독증에 걸린 나는 볼거리가 많은 책보다는 읽을거리가 많은 책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어제는 버리고 가라]는 그런 의미에서 너무나 알차게 읽게 된 좋은 읽을거리였다. 밤새 읽어도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다 예화나 일화처럼 재미난 이야기거리들. 그래서 밤을 꼴딱 새고도 전혀 시간이 아깝지 않은 그런 책이었다. 마치 세헤라자데가 밤새 나타나 머리맡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 자루를 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 보라색 포장의 커피가 팔리지 않는 이유 - 모든 물건에는 나름의 고유색이 있고 색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기 때문 -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기 -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보다 더 영리하고 유쾌했던 이야기. - 갖지 못한 것을 원하다 가진 것마저 잃지 마라 - 멘토가 되기 위해 남은 들오리가 집오리가 되어버린 슬픈 사연 - 뒤늦게 빛을 발산한 아인슈타인과 다윈 - 수줍음이 많아 자퇴당한 유대소년과 장차 가문에 누를 끼칠 방탕아가 된 것이라는 예 언을 들어야했던 부유한 영국아이의 미래
잠깐만 엿봐도 재미날 법한 이 이야기들은 일요일 아침 즐겨보는 서프라이즈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제는 버리고 가라] 속에서 발췌해낸 이야기의 일부이며, 88개의 이야기들이 삶과 행복, 인생을 깨알같이 채워나갈 수 있는 현명한 방법들에 대해 알려주는 지침적 내용중 소개되는 몇가지이다.
역사속 일화들이며 위인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분명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이 속에서 교훈을 발견하고 감동을 전달받는다면 인생은 어제와 다르게 변화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비단 론다 번의 [시크릿]만이 비밀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삶의 질을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책도 시크릿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5분씩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명언록처럼 한 페이지씩 읽어가며 하루하루의 반성과 화이팅을 다짐하게 되는데 딱 1년 동안 읽게 편집된 책이라 더할나위 없이 일기대용으로 좋아 몇년 째 이 시리즈를 활용중이다. 그런데 이 책도 이렇게 읽어도 좋다. 다만 그 분량이 1년을 읽기엔 좀 부족함이 있다는 점. 이 점이 약간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좋다. 좋은 이야기는 언제나 귀와 눈과 마음뿐만 아니라 뇌까지도 즐겁게 만들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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