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제목을 누가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성공적이라고 하겠다. 책 제목에서 묻고 있는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은 높은 수준의 과학적 지식의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인문, 과학,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라도 궁금해할 만한 물음이다. 책 제목의 단순함에 이끌려 본문도 그러리라는 예상으로 책을 집어 들게 된 독자 중 막상 내용의 난해함에 길을 잃고 낙망한 이들이 나를 포함하여 대단히 많을 것이라는 데 배팅하겠다.
게다가 나는 이 책의 시리즈물로 보이는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를 세트로 함께 구매했기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어렵게 읽은 나로서는 '세상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알아볼 용기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얼마 전 완독한 브라이언 그린의 <엔드 오브 타임>에서 세상의 끝을 어렴풋이 간접 경험해 봤으므로, 전작은 책장에 장식용으로 고이 모셔두는 것도 고려해 볼 참이다. 출판문화의 꽃은 읽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구매하는 데 있으므로...
나는 책을 구매할 때 독자 평점과 목차, 저자 소개를 참고한다. 소개글에는 저자 크리스 임피를 '우주생물학계의 스타학자', '위트 있고 통찰력 넘치는 글 솜씨', '과학 대중화에 가장 공이 큰 학자'라고 쓰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쉽고,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쓴다고 생각하기에 딱 알맞은 소개다. 절대 속아넘어가면(?) 안된다. <코스모스>의 칼 세이건이나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수준의 친절한 글을 기대하면 안 된다. 훨씬 어렵고 전문적이다.
어려움의 전제는 나와 같은 대중 과학서를 일 년에 대여섯 권 읽을 정도의 수준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과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하늘의 별을 즐거이 관측하고 천문학 동호회에서 적극 활동했다거나 취미로 별보는 여행을 다니기도 하는 우주와 별과 외계 생명체에 관하여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나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좋은 책도 그에 걸맞은 독자를 만나야 하는 것이고, 아무리 명저라도 내 수준에 맞지 않으면 감흥이 없기 마련이니까.
|
| ...달은 우리의 긴 여행에서 첫 번째 경유지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달은 지구에서 던져진 돌맹이에 불과하다. 달에서 하늘을 보는 우주비행사들은 지구에서와 거의 똑같은 별자리들은 볼 것이다. 별들은 너무나 멀리 있기 때문에 바로 이웃에 있는 바윗덩어리에서 이들을 보는 것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알아차릴 수 없다. 이것은 극장 맨 뒷자리에서 한 좌석 옆으로 옮기는 것과 비슷한다. 달은 너무나 익숙하고 로맨틱한 곳이지만 매우 삭막하고 이국적인 곳이다. 한 숨의 대기도 붙잡아둘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바위여서 표면은 충돌과 우주에서 오는 강력한 방사선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 금단의 영역은 불과 지구 둘레의 10배 떨어진 곳에 있다. 40만 킬로미터라는 거리는 그렇게 다른 세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일생 동안 이 정도 거리는 날아다니고, 또 여행자들이나 사업가들은 몇 년에 한 번씩 날아다니는 거리다...하지만 대부분의 여행은 지구의 표면을 거의 벗아나지 못하고 지구의 강력한 중력에 묶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