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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다니는 중에 또래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찾기 힘든 것도 아니다. 지난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생각보다 죽은 친구들이 많다. 세 명.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녀석도 있다. 한 명. 그때마다, 언제나 나와 주변 사람들은 그 죽음의 의미를 고민하고 낯선 충격에 빠져 침묵을 지키...기는커녕, 솔직히 말해서 그저 떠들기 바빴다. 충격은 충격이었지만,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흥분이 더 컸던 것 같다. 연예인의 죽음처럼. 그렇지만... 친한 사람이, 그것도 자살이라면 나는 어땠을까. 난 신이걸처럼 자살한 아이에 대해 고민했을까, 아니면 똑같이 떠들기에 바빴을까. 실제 벌어지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긴 하다. 그래서 신이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녀석 입장에서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그 안에 상처받은 아이들. 겉으로 봤을 때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갈리기도 하지만, 이 소설을 보면서, 우리가 몰랐던 이면의 진실들, 현상을 관통하는 실제 원인들을 고민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바르게 살아가기를 권유하기에는 너무 휘어진 기준과 선의를 가정하고 강요되는 폭력들. 그럼에도 주인공은 다시 내일을 꿈꾼다. 현실이 변한 것도 아니고 변할 예정인 것도 아니지만, 막연하다면 막연한 희망을 본다. 그런데 정작 나는 고민하게 된다. 이 막연함에서도 꿈꾸는 것이 정말 맞을까. 하지만 희망을 보고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항보의 선택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섣부르게 결정하기에는 모자라지면, 저 멀리서 어렴풋이 희망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신이걸의 기분도 이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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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이라고? 아니, 소설이면 소설이지 청소년소설이 따로 있나? 남자소설이나 여자소설, 직장인소설이나 실업자소설? 21세 소설과 47세 소설도
따로 있나?’
처음 이
책을 ‘청소년소설’이란 낯선 용어로 접했을 때 의아해 했던
내 감정이다. 이런 딴지
아닌 딴지를 서두부터 걸어두는 것은, 이 책은 ‘청소년’들만의 세계를 그린, 그들만을 위한 책이 절대 아니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작가는 청소년이란 불안하고 약한 그 시간을 통해 인생의 모든 것들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결국, 이 책은 모두를 위한, 그리고 모두를 향한 외침이다.
책은 무겁고
음산하게도 ‘항보’라는 아이의 ‘자살’이라는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곧
그 죽음은 황보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신이걸’의 눈으로
세상을 재해석하게 만드는 힘을 가져다주고, 황보는 죽은
후에도 신이걸과 무언의 대화를 이어나간다. 블로그를 통해 남긴 그의 글들을 통해, 그리고 신이걸이 또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는 세상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씁쓸하고, 사실을 이야기 하기엔 잔인하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 앞의 인생들이 슬프지만은 않다. 하루하루를 그 순간에 충실하며 ‘살아내는
것’. 그것이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가 아닐까? 하고 신이걸은
생각을 마무리 짓는다.
이 자그마한
책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톡톡 튀는 케릭터들, 그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넘어지고 깨지면서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 또 그들의 생각이 나로 하여금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인생, 사랑, 우정, 교육, 가족, 죽음, 선택, 돈, 자신의 길..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생각하게
한다. 돌아보게 한다. 두껍고 어려운
철학서는 집어치우고, 신이걸과 항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들이 곧
나고, 당신이고, 이 넓은 세상에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버텨 서있는 우리 자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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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보가 죽었다. 한번 비가 오면 영원히 비가 오는 게 아니라 비 오고 개이고 비 오고 개이고 때로는 눈도 온다. 꿈은 몇 개의 가면을 쓰고 있다. 쉽게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만나주지도 않는다. 꿈의 거처는 가시철조망 너머다. 항상 대가를 요구한다. 그러나 한번 잡으면 내 가슴에 엔진을 달아준다. 온몸을 뒤흔들며 가슴 뛰게 한다. 질주하게 한다. 내가 가는 길이 길이다. 힘든 고난을 이겨내면 반드시 해가 뜬다는 것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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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GO
있잖아... 나 고백할 게 있어... 이제서야 지금 너가 느꼈었던 절망을 조금은 알 것 같아. 이렇게도 힘든 현실 속에서 너가 품고있던 그 희망이, 그것만 바라보고 왔던 그 희망이, 현실에서는 생각만큼 행동으로 따라주지 않을 때... 그것이 자꾸 반복될 때...그래도 어쩌겠니 이게 진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인 걸... '황보'가 자살했다. 흥미를 잃고 더 이상 할 것 없는 컴퓨터 PC의 종료버튼을 누르듯이 황보는 스스로 삶의 종료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황보'는 학교 교과서가 만들어 낸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용기 있게 행동하며, 자신에 삶에게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며, 진실로 행동하길 원하고, 사랑으로 한 여자를 지켜주길 원한다. 무엇하나 부족하지 않은 '황보'가 의문스럽게도 자살했다. '황보'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교과서를 뛰어넘어 끊임없이 경쟁하는 현실 사회로 나왔을 때 가장 어리석은 인간상으로 인식된다. '황보'는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사는 것이지 영화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니까), (해변의 백사장에 그 무수히 깔린 모래알들이 처음엔 다 크고 단단한 바위였어)' 단순히 어린 고등학생이 지쳐 한숨쉬며 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엔 진심과 세상이 바뀌길 원하는 황보의 간절한 희망이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황보'의 외침에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윤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2가지 사는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사는 것, 두 번째는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를 따지면서 살아가는 것. '황보'는 혼자였다. 그 누구도 자신과 함께 희생하면서까지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결국 더 이상 할 것 없는 컴퓨터 PC의 종료버튼을 누르듯이 황보는 스스로 종료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가 죽은 다음부터 그의 단짝 친구 '신이걸' 이야기한다. "있잖아 이제야 너의 절망을 조금은 알 것 같아" 감춰왔던 소리가 나타나듯, 점점 황보가 외쳤던 소리를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희망적인 사회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게 된다. 그들은 말한다. '황보'가 무책임하게 자살이라는 성급한 판단을 하였는지를 증명해보이고 싶다고, 세상은 아직 차갑지만은 않다고. 스스로 증명해줘 하늘에 있는 '황보' 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황보'와 '신이걸'의 세상에 대한 소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마 힘들어하는 당신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경험 속에서도 피하지 않고 소중한 것을 끌어내는 것이 그것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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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항보가 죽었다로 시작된다. 항보는 죽었고, 이걸이는 친구의 죽음으로부터 친구를 알아간다. 항보는 왜 죽었을까? 요즘 하루가 멀다가하고 자살 소식이 들리는 사회에서 왜 죽었을까를 묻는 건 유치하다. 하지만 항보의 죽음을 따라가 보면 삶의 이면을 보게 된다. 가족, 친구, 우정, 사랑, 신, 돈 등등 항보는 정말 대단한 아이였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 따윈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로 부숴버려야 해.” 항보는 <레미제라블>로도 메꾸지 못한 2%의 허전함을 메꿔줬다. 그리고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신의 블랙홀’ 챕터를 읽다가 울컥 했다. “제가 이 교회에 다니는 거 다들 불편하시죠? 아, 교회가 아니라 여긴 종교문화센터지. 저도 더 이상은 이런 데 다닐 생각이 없어졌거든요. 사라져드릴게요. 아무리 생각해도 종교문화센터치고는 회비가 너무 비싸요.” 항보는 문을 열고 나갔다. 김 목사는 허둥지둥 항보를 따라 나갔다. 항보의 손으 잡고 애원하듯 말했다. 네가 참아라, 네가 이해해라,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등등. 그러나 항보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목사님 그동안 고마웠어요. 앞으로 다시는 사람들한테 하나님 믿으라고 말씀하지 마세요. 자기도 못 믿으면서 뻥치지 마시고요!” 김 목사는 빙그레 웃고 있던 항보의 눈가가 촉촉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저는요, 지금 당장 죽어서라도 보고 싶어요. 진짜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지 정말로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항보는 진짜 신을 믿는 사람은 채 열 명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정말 신을 믿는다면 그 사람의 삶으로 그 증거가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진짜 신을 믿는 사람은 채 열 명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걸도 알게 됐다. “만약 기독교 인구가 모두 사실로서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다면 전쟁, 폭력, 기아, 빈부 격차, 인종 차별, 범죄는 다 사라질 것이다. 혁명적으로 인류의 역사가 달라질 것이다.” 요즘 애들이 싸가지가 없다고 항보가 말했다. 개 사육장에서 사육된 아기는 결국 개 소년이 되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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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 꿈조차 꾸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신작 달리GO!는 어딘가 흥미롭다. 꿈을 꿀 수 없는 상황이 아님에도 자신들이 꿈을 꾼다는 것에 어딘가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차츰 꿈을 찾는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않는 까닭이다. 누구나 분명한 꿈이 눈앞에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 꿈을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사치스러운가에 대한 혼란에 빠진 적이 있을 것이다. 또한 소설의 초반부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스스로 통조림이 되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던 시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통조림은 결코 영원하지도 않을뿐더러 결코 행복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통조림을 따면 행복할까? 분명 “뚜껑이 열리는 순간은 환희다. 어둠으로 가득했던 깡통 안에 빛이 들어온다. (중략) 하지만 빛이 들어온 순간 공기도 들어온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부패가 시작된다.”(본문 104쪽) 우리 모두의 꿈이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순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굳이 통조림 뚜껑을 여는 것은 ‘공기’가 들어와야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부패’라는 두려운 현실과 마주해야 하더라도 살아가기 위해서 꿈을 꿔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소설을 끝내면서도 결코 이상적인 꿈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꿈꾸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전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결코 그것이 우울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부패’하는 현실을 직시할 때야 비로소 희망적인 ‘공기’를 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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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소설에 나오는 어떤 등장인물과도 비슷하지 않았다. 누구를 때린 적도, 맞은 적도 없고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반항적이지도 않았다. 자살한 친구도 없었다. 하지만 소설 속 이야기를 픽션이라고만 믿기에는 매일 그런 ‘사실’들을 언론에서 전해 듣는다. 그래서 읽는 동안 불편했다. 다시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직 왕따가 유행하기 전이었지만 우리 반에는 모두가 싫어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쉬는 시간이면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은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난 ‘널 친구로 생각하는 건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멀어지게 되었다. 나는 가식적인 겁쟁이였다. 지금 이 순간에 용기 없음은 나중에 다시 회복할 수 없다. 항보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이걸은 매순간 용감해야 할 것을 배운다. 거짓, 부정, 타락은 항보가 말하는 것처럼 오랜 세월동안 세계를 지배했다. 항보의 세계인식에 대한 이걸의 댓글이 지극히 당연한 소리임에도 울림이 있는 건 누구나 다 알아서 입에 올리지 않는 이야기를 다시, 뻔뻔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 때문이다. 살아 있어 행복하다는 너무도 당연한 말, 잊지 않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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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흔하다 못해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는 질문. 살아오면서 쉽게 볼 수 있는 문장이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 그 질문을 진지하게 한 적은 얼마 없는 것 같다. 물론 답도 찾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한동안 바깥 일로 정신없이 살던 요즘, 갑자기 책 한 권이 세상에 툭 나오더니 이 발칙한 질문을 던진다. 마치 올드보이의 한 장면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미지의 존재를 탐구하듯이, 이렇게. “누구냐, 넌.”
황보가 자살한 이유를 묻는 것은, 결국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다. 내 모습이 정말 내 것인지. 그리고 누구라도 그 질문을 시작하면, 자기가 지금의 모습이 된 이유를 추적하며 바깥 세계를 더듬는다. 자아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내면에서 탐구되어 세계로 확장한다. 주인공 신이걸이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 사회를 엿보기 시작하는 것도 같은 과정 아니겠는가. 주인공의 저항과 고민, 모험이라면 모험, 딴지라면 딴지. 결국 그 모든 몸짓이 우리에게, 독자인 나에게 보내는 외침이나 처절한 호소문 같은 것일 터. 피하면 피할수록 같은 문장이 지겹게 나타나 눈동자 위를 지나간다. 답할 수 있을까. 신이걸의 미래에 대한 다짐과 희망은 실제 나와는 상관없으니 일단 저리 치우고, 내 살 길 찾는 자문자답 생각의 시간이다. “누구냐, ‘나’는. 누구인 ‘나’는 어떻게 살아야 ‘나’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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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리go>라는 제목이 촌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는 '맞아, 달리 go!'라고 외쳤다. 총평을 하자면 강추! 공감되고 희망을 품게 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하게 하는 좋은 소설이다. 지루하지 않게 술술 넘어가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2.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다. "그렇게 기를 쓰고 살아야 되는 이유를 찾는 거 비굴하지 않아요?" "넌 왜 기를 쓰고 살지 말아야 할 이유만 찾니?"
3. 주인공 신이걸의 절친인 항보가 자살을 했다. 항보가 남긴 메세지로 인해 신이걸은 통조림 같다고 느끼는 자신의 삶에서 나와 항보의 표현대로 그가 파워오프한 이유를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간다. 그리고 내가 청소년기에 고민했던 문제들을 신이걸도 똑같이 고민한다.
4. 지금의 나는 진정한 나일까? 나의 꿈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없어서 동경하는 것이 꿈이듯, 사람도 신도 사실은 없기 때문에 동경하는 꿈은 아닐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세상감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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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많은 청소년들이 ‘당신은 행복한가?’라고 물었을 때, 불행하다고 답한다고 한다. 우리는 왜 불행한가? 몇 년 사이에 청소년들의 고통이 크게 이슈로 떠올랐다. 많은 전문가들이 해결책을 논하고, 매스컴들은 연일 자살, 왕따 등의 이슈를 떠들어대지만, 그 무엇 하나 진정 고통 받는 아이들을 구해주지 못하고 있다. 지금 사회의 시스템이 문제라며 모든 것을 바꾸자고 하는 사람들과 포기하는 아이들이 잘못된 것이라며 비판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고통 받는 청소년 중의 하나인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꿈 하나만을 갖고 살아가기엔 너무나 힘든 세상에서 꿈만을 좇기 위해 달리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 자신의 자유로, 세상을 따돌리고 자신의 에너지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청소년이었던 나에게도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가장 밑바닥의 절망에 빠지면, 두 가지 선택이 생기게 된다. 포기하거나, 혹은 위를 바라보며 그 위를 향해 한 걸음씩 올라가거나. 작가가 바랐듯 이 책을 보는 모든 이들이 희망을 보길 바란다. 상처 입은 모든 사람들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