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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이름을 남긴 이들의 묘택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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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면 유명한 분들의 묘를 볼 기회가 많습니다. 유럽의 경우는 교회에 유체를 모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프랑스 여행에서는, 툴루즈의 자코방 수도원에서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묘를, 지베르니에서는 클로드 모네의 묘를, 생폴드방스에서는 폴 세잔의 묘를 보았습니다. 오래전에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는 성모성당에 안치된 바스쿠 다 가마와 시인 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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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면 유명한 분들의 묘를 볼 기회가 많습니다. 유럽의 경우는 교회에 유체를 모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프랑스 여행에서는, 툴루즈의 자코방 수도원에서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묘를, 지베르니에서는 클로드 모네의 묘를, 생폴드방스에서는 폴 세잔의 묘를 보았습니다. 오래전에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는 성모성당에 안치된 바스쿠 다 가마와 시인 루이스 카몽이스의 관을 보았습니다. 그 다음해에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리콜레타 묘지에 안장된 에바 페론의 묘를 보았습니다. 더블린의 성 패트릭교회에서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묘를 참배했다. 칼리닌그라드에서는 철학자 칸트의 묘를 참배했고, 베를린에 출장을 갔을 때는 병리학의 효시 루돌프 비르효의 묘를 참배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저도 위인의 묘를 찾아 참배한 적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는 여행 작가 이희인님이 젊은 날 많은 영감과 가르침을 준 사람들의 묘를 찾아 참배하고 그들의 업적을 되새겨보는 일종의 묘지인문학여행을 정리한 책입니다. 작가님이 묘지을 찾는다는 착안을 한 것은 책이 묘지이듯, 묘지는 책이다라는 명제를 세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망자들이 세상에 남긴 생각들의 결정체라고 할 책은 사실 그가 평생을 써내려간 일종의 유언장이자 한기의 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묘지를 방문하게 되면 망자가 세상에 남긴 바를 되새기게 되므로 묘지는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셈입니다.


묘지를 찾아가는 작가님의 여행은 그 범위가 생각보다 넓은 느낌입니다. 1부에는 영국/스위스/러시아 등지에 있는 셰익스피어, 카를 마르크스, 헤르만 헤세, 표도르 도스토엡스키, 니콜라이 고골/안톤 체홉/미하일 볼가코프, 레프 톨스토이의 무덤을 찾은 소감을 정리했습니다. 2부에서는 독일/오스트리아/체코 등지에 있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게오르크 헤겔/베르톨트 브레히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프리드리히 니체, 루트비히 판 베토벤/프란츠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요하네스 바람스, 프란츠 카프카, 안토닌 드보르자크/베드르지흐 스메타나 등의 무덤을, 3부에서는 프랑스에 흩어져 있는 짐 모리슨/에디트 피아프/마리아 칼라스, 자크 루이 다비드/오노레 드 발자크/마르셀 프루스트/오스카 와일드/기욤 아폴리네르/프레데리크 쇼팽/조르주 비제, 사데크 헤다야트/이을마즈 귀네이, 스탕달/프랑수와 트뤼포, 수전 손택/시몬 드 보부아르/마르그리트 뒤라스, 샤를 보들레르/사무엘 베케트/외젠 이오네스코/만 레이, 볼테르/장 자크 루소/빅토르 위고/알렉상드르 뒤마/에밀 졸라, 빈센트 반 고흐 등입니다.


무려 49명이나 되는 유명인사의 묘역을 찾아다닌 셈입니다. 파리처럼 대규모 묘원의 경우 여러 분을 만날 수 있었지만, 독특한 이력을 가진 분들은 아주 시골이나 심지어는 산골 구석에 묘를 쓴 경우도 많습니다. 사진까지 넉넉하게 챙기다보니 무려 448쪽에 이르는 두툼한 결과물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어갈수록 작가님의 독서범위가 돌아가신 분이 남긴 대표작은 물론 평전, 심지어는 죽음이나 묘지와 관련된 총설 등도 두로 섭렵하여 이 책에 담아낸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묘역에 이르는 여로는 물론 묘역 주변 풍경까지 세심하게 그려낸 점도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49명이나 되는 분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희곡작가, 철학자, 소설가, 음악가, 평론가, 시인, 화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입니다. 물론 소설과 시 등 문학 분야의 유명인사가 많기는 합니다. 작가님의 말씀대로 젊은 날 영감을 받은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아무래도 대상이 산만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습니다. 차라리 분야별로 나누어 연작으로 처리했더라도 좋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방문한 묘지에 안장된 알로이스 알츠하이머박사의 묘는 언젠가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아쉬운 점은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문장이 눈에 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꼼꼼하게 목록을 일별하니 까맣게 잊었거나 그새 묘지에 묻힌 인물들, 책이나 영상 등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유명인들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258)”는 부분입니다. ‘일별하다1. 한 번 헤어지다, 2. 한 번 흘낏보다, 등의 의미입니다. 꼼꼼하게 목록을 일별하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런 문장이 더러 눈에 띄어 읽는 흐름을 흐트러놓는 것 같습니다. ‘망자가 묘역에서 고단한 몸을 눕히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문장을 윤색하려는 의도가 지나쳤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y*****2 2020.10.12.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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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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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곳에 묻히길 바라시나요? 제대로 살아보지도 않아놓고 죽음을 논하는 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라고는 하나 살아 있는 존재라면 겪어 본 이 하나 없기에 그렇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삶에 집중하고, 죽음은 죽은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는 식의 사고는 죽음을 가급적 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최근 들어서는 마냥 회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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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곳에 묻히길 바라시나요? 제대로 살아보지도 않아놓고 죽음을 논하는 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라고는 하나 살아 있는 존재라면 겪어 본 이 하나 없기에 그렇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삶에 집중하고, 죽음은 죽은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는 식의 사고는 죽음을 가급적 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최근 들어서는 마냥 회피해야만 하는 주제는 아니라는 인식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지만. 

어떠한 형태든 여행은 즐겁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걸 마다할 이유는 없다. 이왕 떠나는 여행이라면 일종의 주제를 가져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남들 다 다니는 유명 관광지도 물론 나쁘지야 않겠지만, 남들의 기웃거림이 덜한 장소에서 나름의 의미를 느끼며 하는 여행은 아마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죽은 자들의 공간만 쏙쏙 골라 하는 여행은 어딘가 모르게 꺼려진다. 묘지는 특별한 날 아니면 굳이 방문할 이유가 있나 싶은 편견이 내 안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어서다. 생전 화려한 삶을 살았던 이들도 하나같이 몇 평 아니 되는 비좁은 공간에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광경을 여행 내내 마주치다니,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이를 실제 실천으로 옮긴 사람이 바로 저자였다. 취향 참 독특하다는 생각이 앞섰는데 그건 뭘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서구 사회의 경우 어떠한 연유에선가 묘지가 일상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공원처럼 꾸며진 경우가 잦다. 아침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무덤가에서 조깅을 즐기고, 저녁 무렵 반려견과 함께 나와 무덤 주변을 맴도는 행위를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해왔다. 아무리 무덤일지라도 매일 방문하다 보면 딱히 꺼려지지는 않는다. 수풀이 우거진 훌륭한 휴식 공간이라는 인식이 도리어 더 강할 테니 말이다.

일단 유명 인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라는 점이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듯했다. 고매한 인사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기쁨을 누리지는 못하나 그들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장소를 방문하면 가슴이 설레는데, 무덤도 마찬가지였다. 방문 장소마다 나름의 특색이 있었다. 볼테르, 루소,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피에르와 마리 퀴리, 앙드레 말로 등 이름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중압감을 지닌 위대한 사상가들이 잠들어 있는 프랑스 팡테옹(Pantheon)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계획의 산물과도 같았다. 망자의 위대함과 더불어 국가의 힘이 공존하는 이 공간에 마냥 감탄하는 이들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역으로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을 거 같다. 팡테옹은 부름(선택) 받은 극소수에게만 열린 공간이다. 팡테옹에 자리를 하나 할당 받은 이들이라면 매우 영광스러워 해야 마땅하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모두 죽어 말이 없다. 동일 선상에 두고 생각해도 괜찮으려나 조심스럽지만, 독재 정권 하에서 탄생한 불편한 묘역이 떠오르기도 했다. 가깝게는 북녘 땅의 김일성 부자가 그러했으며, 러시아의 몇몇 위정자들 또한 본인이 원했는지 여부를 떠나 영원히 박제된 형태로 오늘날에도 대중을 맞이하고 있다. 생전의 말끔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들의 영혼이 이를 과연 어찌 받아들일지. 죽은 이와의 대화가 가능하다면 한 번 즈음 물어보고 싶다.

장황하게 언급한 국가적 묘역보다는 아무래도 심리적 거리감을 덜 느낄 법한 형태가 낫다. 끊임없이 오가는 사람들 덕에 덜 긴장할 것이요, 탁 트인 공간이니 머무는 시간 등에 제약도 없을 것이므로 원하는 만큼 내 나름의 방식으로 망자를 추모하는 의식을 치를 수도 있을 거 같다. 우리나라에서부터 가져간 책을 무덤 위에 놓고 하는 나만의 추도식. 저자의 이 방식이 나에게도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이 땅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는 떠난 게 아니라고 하였다. 이역만리,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오로지 그를 만나겠다며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면 죽은 이 역시 감격스러워 할 거 같다. 생전 불운한 삶을 살다 간 경우라면 더더욱. 아, 모르겠다. 불꽃과도 같은 삶을 살다가 결국 스스로를 태워버린 고흐가 자신 덕에 화려해진 오늘날의 오베르를 바라본다면 마냥 행복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지금 난 삶을 이야기하는 중인가, 아니면 죽음을? 처음에는 불쾌까진 아니어도 다소 꺼려지는 소재라는 생각이 강했다면, 지금은 여느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여행기를 읽었다는 생각과 더불어 어디로든 떠나고픈 욕구도 강하게 일고 있다. 눈앞에 놓인 건 무덤이었으나 그건 그냥 무덤이 아니었다. 한 개인의 삶이 읽기고, 그가 살다간 시대가 보이는 무덤이었다. 동경하기에 안성맞춤인 이들을 가득 담아낸 책이라 그런지 한 편으로는 우리나라가 다소 못나게 보이기도 했다. 어딘가 모르게 경직된 사회 분위기, 고매하게 글자를 읊는 게 전부였던 삶. 우리의 지난날을 이리 단순하게 그려내는 건 일종의 폄훼와도 같을 테지만, 마음껏 노래하고 그림 그리는 일이 인정받지 못한 것만은 사실일 게다.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염상섭 묘라도 찾아뵈어야겠다. 여러 차례 방문했으나 내 눈에 그의 누운 자리가 들어오지 않았던 건 열정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영문 모를 바이러스가 조금 잦아들면 망우리 묘역이라도 가볼까 한다. 여전히 나에겐 난해한 박인환의 시를 더하면 금상첨화리라. 



이달의 사락 q*****2 2020.05.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