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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듯한 시선이 불편할 때가 잦다. 왜 저들은 나를 저토록 지긋이 바라보는 걸까. 그들의 머릿속에서 떠도는 생각을 도통 읽을 길이 없다. 외모에 대해 공개적으로 평하는 건 금기이므로 아마 그들은 영원히 침묵할 것이다. 적어도 시선이 머문 대상자 앞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를 외치는 장소로 적합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이는 극히 적다. 숭배와 혐오. 극에 해당하는 두 단어가 만났다. 물과 기름이 결코 섞이지 아니 하는 것처럼 이 둘 또한 하나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사람들은 말한다. 어느 쪽이 되었건 극은 위험하다. 이유불문 숭배하는 것과 인간 이하 취급이 정당화 될 정도로 혐오하는 것 모두 우리 사회에선 지양 대상이다. 안타깝게도 서로 어울리지 않는 양자가 공존하는 영역이 있으니 바로 여성의 몸이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시선에의 변화도 일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의 몸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소재다. 단순하게는 겉으로 보여지는 외모부터가 화두다. 누구는 너무 뚱뚱해서, 누구는 너무 마르다 못해 굴곡 없는 몸매를 지녀서 지탄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외모만 놓고 보아도 이러한데,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책은 그보다 더 광범위한 영역이 평가의 대상이라는 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화두를 대하는 시선의 각도가 사뭇 다르다 보니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학창시절, 나는 내 자신을 “수학의 아메바”라 칭하고는 했다. 아무리 파고 들어도 이해를 할 수 없는 게 수학 과목이었다. 사정이 무엇이건 시험 점수는 획득해야 했으므로 전략이 필요했다. 문제와 해설을 통째로 암기하는 나의 무식한 방식은 구세주처럼 내게 구원을 선사했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앞지른 지는 여러 해 됐다. 어쩌면 내가 학생이던 시절과 달리 더는 여성들이 수학이나 과학을 두려워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뇌 구조에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게 입증됐고, 남녀에게 서로 다른 기대를 품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혁신적인 변화가 없음을 감안한다면 나의 생각은 희망사항에 불과할 수도 있다. 여성이 수학을 못하길, 아니면 반대로 남성이 수학 영역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과시하길 바라는 마음이 작용한 결과(?), 우리 사회는 정말 바라는 대로 사람들이 성취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나는 사회의 이중적인 시선을 엿보게 됐다. 여성의 하이톤 목소리는 친절을 상징했는데, 단지 목소리가 높기만을 기대하진 않았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높으면서도 귀염성 있는 목소리가 각광받았다. 그런데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남성이면 곤란했다. 반대로 낮은 톤의 목소리로부터 신뢰감을 얻는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말은 여성의 귀염성 있는 태도는 말 그대로 귀엽다는 평가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고로 조직 생활에 임한 여성이라면 자신의 노선을 확실히 정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목소리 톤을 높일 것인가, 낮출 것인가. 어느 쪽을 택하건 일정 부분은 포기해야 한다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아예 성적인 대상으로 전락한 거 같은 유방이 상대적으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심장의 경우에는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였다. 남성과 여성의 심장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체 무슨 차이가 존재한단 말인가. 여성의 질병은 대개가 소소한 것으로 여겨지고는 한다. 이는 심장 질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응급실을 찾았을 땐 남편이나 자녀의 등쌀에 밀려 억지로인 경우가 잦으며, 참다 참다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경우(다른 말로, 병색이 완연해 고치기 힘들어질 정도로 악화된 상황)인 경우가 잦다. 심장 질환이면 다 증상이 같지 않겠느냐는 나의 무지 또한 책을 읽으며 들통났다. 저자는 여성에게서 전형적이지 아니 한 증상이 발견되는 경우가 잦다고 보았다. 남성의 증상이 진단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외부 세상이, 여성 스스로조차도 여성들의 질환은 가벼운 통증에 불과하다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신체의 많은 부분을 난 보듬지 못하고 이제껏 살아왔다. 꾸민들 크게 개선될 거 같지 않은 외모라며 포기한 탓이 컸는데, 어째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일었다. 독서는 의도치 않게 남들의 생활 방식을 나에게 알려 주었다. 내가 평균치로부터 얼마나 많이 벗어나 있는지는 곧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나의 조직 생활의 원인인 양 느껴졌다. 이와 정 반대로 세상 시선으로부터 한껏 벗어난 상태인 내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됐다. 화장 않는 나, 상대적으로 낮은 음색을 구사하는 나, 그래서 친절하지 않다는 평을 듣고 있으니 마냥 자유로운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숭고하다면서 욕한다. 아리땁되 외간 남자(!)에게는 결코 아리땁지 말아야 한다. 참으로 어려운 과제. 더는 수행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무언가다. 그저 그런 여성, 그저 그런 남성이 그득한 사회. 지탄과 찬미의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 서로가 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세상. 감히 꿈꿔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