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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란 단어를 좋아한다. 조용하고 잠잠한 상태의 마음을 원한다. 나의 마음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한 게 좋다는 걸 아는데도 그게 참 어렵다. 내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하면서도 세상 일들이 내 마음 같지 않아 속상하고 힘들다. 친구나 지인도 마찬가지다.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면서 불만을 토로한다. ‘고요’를 만들거나 그것에 다가가려 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그것을 원한다. 이런저런 불평과 생각의 끝엔 결국 산다는 게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이토록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 란 질문으로 이어진다. 삶이란 허망한 것이구나. 결론을 맺다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는 살아 있음이 감사하다. 간사한 마음, 그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사는 게 평온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참선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스승인 송담 스님의 단호한 말씀처럼 말이다.
“참선은 진짜 인간이 되는 길이지. 진정한 인간의 삶을 사는 방식이기도 하고, 또 우리가 마음을 다스리고 단속하는 방법이지.” (1권, 158쪽)
살수록 어려운 게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상담을 받고, 강연을 듣는다. 뭔가 발견하기 위해서,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말이다. 미국계 한국인인 저자도 그러했다. 보통의 삶을 사는 20대 청년이었고 고민과 방황의 끝에서 한국의 송담 스님을 찾아왔다. 10년간 묵언 수행을 하고 참선의 대가로 알려진 스승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다. 처음부터 출가의 길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그저 참선에 대해 존재의 이유에 대해 알고 싶었을 뿐이다. 누구는 이 책을 통해 참선의 세계를 배우고 경험하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테오도르 준 박이란 사람의 인생 이야기이자 누구나 한 번쯤 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느꼈다. 존재와 동시에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사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계 한국인으로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한국의 사찰에서 스님의 길을 걸으며 스승인 송담 스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일, 그것은 힘들고 험난한 여정이었다. 그 안에서 참선의 기쁨을 찾는 일이야말로 수행은 아니었을까. 그가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느낀 것을 솔직하게 들려줄 수 있었던 건 그 과정에서 자신이 변화했기 때문에 ‘참선은 삶에 대한 일이다’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나는 참선을 시도했지만 그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없었다. 창피하지만 당연한 결과다. 그럼에도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고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그가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의 우리와 같았기 때문이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30년 가까운 시간을 수행자의 삶을 살면서 강연과 강의를 통해 얻은 명성을 유지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오히려 절을 떠나 세상으로 나와 여행을 하고 요가를 배우고 그 안에서 참선의 의미를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더욱 놀라웠다. 본연의 나로 돌아와 초심의 마음을 돌아보고 나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선택은 아니었을까. 일상에서 참선을 하면서도 꾸준하게 요가 수련을 배우고 깨달음을 얻는 그의 모습은 아무런 노력 없이 변화를 바라고 고요를 원하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생을 걸고 세상에 말할 수 있다. 방탕과 방황으로 채워졌던 20대를 알기에 지금의 청춘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참선의 어려움을 알기에 참선을 배우는 이들의 좌절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상처 입은 치유자였다.
치유를 해주는 모든 사람에겐 아픔이 있다. 어쨌거나 우리는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통해 공감과 연민을 배운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사라지기를 바라게 되는 것도 자신의 불행을 통해서다. (2권, 103쪽)
참선에 대해 몰랐다. 그저 심신수련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여겼다. 마음을 모으는 기도, 명상, 호흡, 요가, 이런 단어들이 함께 떠올랐다. 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테오도르 준 박의『참선』을 읽었지만 여전히 나는 참선에 대해 잘 모른다. 그가 안내하는 방법대로 참선을 해보았지만 집중도 쉽지 않았고 “이뭣고”를 반복하는 일도 어려웠다. 그러니 삶의 화두를 생각하는 일이나 감정을 다스리는 건 엄두를 낼 수도 없다. 수많은 반복과 노력의 있어야만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참선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참선으로 시작해 참선으로 끝나는 하루가 얼마나 충만할지 짐작할 수 있다. 삶을 긍정하는 즐거움 가르침이자 수행법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알게 되었다.
참선은 우리 내면에 있는 해와 달의 빛을 모으고 주위의 구름에 초점을 맞춰 다 태워 없애버린다. 참선을 하면 더욱더 많은 빛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뚫고 나와 우리의 마음을 환히 비추고 몸을 가득 채운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두 눈과 얼굴에서 빛이 난다. 마침내 그 빛은 우리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빛이 비치는 대로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2권, 280쪽)
우리는 제대로 살기를 원한다. 그것은 나를 지키면서 타인과 함께 공존하는 일이다. 나의 내면을 수시로 들여다보고 주위를 살피는 일은 쉬우면서도 힘들다. 그래도 놓쳐서는 안 되는 걸 안다. 참선의 삶을 사는 일도 그렇다. 이제 겨우 참선에 대해 알아가는 내가 거들 말은 아니지만 참선이 주는 위대한 감동을 당신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1,2권 통합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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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EBS는 송광사와 자연의 사계절에 관한 다큐를 2부로 나눠 방영했다. 타이틀을 보면 1부는 시절인연, 2부는 제생무상이었다.
▲조계산에 스미듯 자리한 송광사의 풍경
나는 테오도르 준 박 작가가 쓴 《참선》을 읽으며 송광사의 모습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렇듯 《참선》은 송광사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참된 삶인지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송담 스님(가운데)은 ‘남진제 북송담’이라는 말이 있듯 종정 진제 스님과 한국 선불교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오른쪽은 스님의 시자를 맡던 저자의 모습(2014년). "내가 알기로 송담 스님은 죽음과 인생 무상이라는 고통을 초월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참선을 가르치는 유일한 불교 스승이었다."
책은 2권으로 이뤄져 있다.
“그 시절 절에서 보내는 하루는 무척이나 길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 아내 시작되는 새벽 예불부터 해가 뜨고 중천을 지나 오염된 도시 위로 석양빛을 물들이고 다시 어둠이 찾아와 절의 모든 불빛이 사라질 때까지 엄청난 노동과 치열한 좌선을 계속하는 굉장한 여정이었다." (1권 75쪽)
그렇게 스님을 뵙고 몇 달을 지냈을 때, 불명 환산(還山)을 얻었다. 산으로 돌아오라. 진리의 산봉우리에 오르라. 마침내 1990년 5월 승려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환산 스님!
진짜 네 모습으로 돌아가라.
1권을 보면 목차 앞에 저자의 부모님, 박종성님과 이종숙님이 독자에게 띄우는 글이 나온다. 이는 저자가 그간 부모님과 함께 하지 못한 불효를 조금이나마 덜고자 당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도 부모님을 생각하고 모시는 저자의 마음을 본받고 싶다.
“우리가 스스로의 변화를 제어하고, 애초에 우리가 만들어진 목적에 맞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참선과 같이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되려면 말이다.” -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은 다음과 같이 5개의 부로 이루어졌다. 1부 ‘모든 일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는 저자가 어떻게 승려가 되었는지 들려준다.
“참선이 마음을 정화하고 치유하여 일상생활이 보다 즐거운 경험이 되도록 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되고, 마침내는 모든 사물의 실체와 그 속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를 꿰뚫어보는 더 나은 통찰력을 얻게 해주는지 스스로 느끼게 된다. 결국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필요 없이 스스로 배워 각자의 인생 방향을 찾게 될 것이다.” (1권 226쪽)
특발성 폐섬유증이라는 폐질환을 앓는 부친과의 애틋한 일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일류 명문대를 나와 유명 로펌을 다니던 아들이 한국에서 출가한다니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을까. 결국 부친도 아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용서와 화해, 그리고 참선으로 남은 생을 사랑으로 함께하는 모습은 불초자(不肖子)인 나를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었다.
“참선은 삶을 긍정하는 즐거운 가르침이자 수행법이다.” (2권 125쪽)
이런 인연으로 저자는 절을 떠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인도 로나블라에 있는 카이발랴다마 요가 연구소를 찾았다. 이 연구소는 스와미 쿠발라야난다가 41세 되던 1924년에 설립한 카이발랴다아 아쉬람이 발전한 것이다. 쿠발라야난다는 1883년 인도 구자라트에서 태어나 40세 넘어서 요가에 헌신하다 1966년에 생을 마감했다.
저자는 대학생 1학년 때부터 알게 된 전 세계은행 김용 총재와의 일화도 들려준다. 김용은 하버드의대 박사과정과 일반대학원 인류학 박사과정을 동시에 수료했던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다.
▲폴 파머, 오필리아 달 그리고 김용(왼쪽부터)
“매일 참선을 함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행복해지고 싶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열망에 에너지를 불어넣자. 그러면 이 열망이 점점 자라서 아주 강력해질 것이고, 우리는 인생을 바꿔보려는 용기와 인념, 열정을 얻어 마침내 중독된 행동의 사슬을 끊고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1권 377쪽)
저자는 송담 스님을 처음 만났을 무렵 자신이 매우 염세적인 사람이었고, 세상을 어둡고 고통스러운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인간은 폭력적이고 잔인한 존재이며 인류사로 참혹한 역사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때 송담 스님의 말씀이 자신을 깨우쳐 주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몇 주, 몇 달, 몇 년이 흐르면 참선이 자연스러운 의식 상태가 된다. 참선과 평범한 일상을 구분하는 경계가 점점 흐려지다가 아예 사라진다. 마침내 ‘영적 변혁(spiritual transformation)’을 이룬 것이다. 이제 깨달음을 항해 나아가게 된다.” (2권 256쪽)
저자는 우리가 흔들림 없이 꾸준히 참선 수행을 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기준 세 가지를 든다. 첫째, 참선은 윤리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둘째, 참선의 기본 상태인 맑고 평화로운 마음을 서서히 늘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참선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깨달음을 얻겠다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연민이다. 우리는 사랑이다. 카르마(업)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우리는 늘 이렇게 행동한다. 우리의 사랑도 한결같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신지식과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난 저자의 자유와 용기에 내심 감탄했다. 참선은 깨달음을 구하는 불자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도의 길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깨달음을 위한 자신의 지난한 여정을 흥미롭게 들려주면서 독자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참선법도 상세히 알려준다.
최근 저자는 ‘어쨌든 참선 TV’를 시작했다. 나는 얼른 달려가 구독신청을 했다. 저자는 차분한 목소리와 신뢰감 가는 자세로 참선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어쨌든 참선 TV’와 함께 여는 아침은 분명 보통과는 다른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유튜브 ‘어쨌든 참선 TV’에서 강의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
저자는 학교나 직장, 심지어 대중교통 안에서도 참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음은 저자가 소개하는 활구 참선(活口參禪)법이다. 초보자인 내가 여러 번 해 보니 의의로 쉽게 따라할 수 있고, 머리와 마음이 점차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올바른 자세, 올바른 호흡과 올바른 생각 등 3가지는 참선의 3요소다.
* 올바른 자세
* 올바른 호흡 (복식 호흡)
* 올바른 생각 (“이뭣고?” 화두 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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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제법 긴 시간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수술을 하고 몸이 회복되는 시간을 지루하고도 길었다. 그 힘든 시간을 곁에서 머물며 나를 지켜준 일들이 많았다. 작은엄마도 그중 한 분이셨다. 당시 작은엄마는 절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계셨는데 항상 내게도 마음공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그 말씀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렸다면 어렸고 젊었다면 젊었기에 그러했다. 테오도르 준 박의 『참선』을 읽으면서 그때가 생각났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는 작은엄마의 말씀까지. 한 권의 책으로 꺼내보는 어떤 장면, 어떤 마음, 그리고 어떤 다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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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부쩍 힘이 들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느끼는 중이다. 사람도 싫고 동물도 싫고 그냥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싫다고 느껴지니 내 삶은 왜 이럴까 회의감마저 생긴다. 그래도 예전에는 나름 뒤끝도 없고 화가 나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금방 잊어버리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꾸 곱씹어지고 떨쳐내지 못하고 스스로 억울하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있으니 내 마음은 여유없이 항상 지쳐있다. 역시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했던가? 마음이 이러니 몸도 금방 회복되지 못하고 이유없이 아픈 느낌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에는 긴 잠을 청하곤 한다. 그게 유일한 내 탈출구다. 하지만 꿈에서조차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꿈에서도 난 끝없이 돌고 도는 수레바퀴 속에 갇혀버리고 만다. 오랜만에 찾은 온라인 서점에서 책 한권을 만났다. [참선]이라는 책이었는데 평소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제목에 계속 꽃혀 머뭇거렸다. 사실 나는 책을 무척 좋아하지면 절대 책 속에서 정답을 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을 만난 건 우연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긴 하지만 외국인인 그가 한국 불교에서 출가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것도 아무나도 아닌 그 어렵다는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 석사를 , 뉴욕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어머니는 나를 가졌을 때 항상 절로 가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비록 그것이 내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진 못했지만 어머니는 지금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절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나는 사실 학창시절 종교에 있어 어머니 관점에서 보면 탈선인 행동을 잠깐 한 적이 있다. 비록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서 나는 편견없이 종교를 알고 싶고 받아들이고 싶다. 이 책의 저자인 테오도르 준 박 역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미국이란 사회 속에서 그는 영원한 이방인이었나보다. 차별이라는 굴레 속에서 겪었을 고통이 "그"라는 사람의 시작에서 부터 함께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책에서 승려가 되기 전에는 건강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고 밝혀두었다. 내 안에서 화, 공포, 수치심, 불안이 계속 들끓었고 내면의 갈등 때문에 늘 고통스러웠다고, 그리고 중독적인 결핍을 가지고 애정에 굶주리고 외로움에 젖어 있었노라고. 무언가가 필요했다고 했다. 내 가슴 속에서 더 커지고 깊어져만 가는 듯한 구멍을 메워줄 뭔가가 필요했노라고. 하하하. 나는 웃음같은 뭔가가 났다. 그의 내적 갈등 속에서 나또한 무수히 느꼈던 상처들이 되살아났고 가슴이 더욱 허해지고 커져있는 구멍이 시리고 간질간질하게 아팠다. "깨달음을 얻으면 마음이 하늘처럼 맑고 깨끗하고 한없이 행복하단다."-p191 깨달음이란 내 아이와 같은 모습일까? 내 아이가 티없이 밝게 웃으며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린시절 그러하질 못했지만 내가 내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과 끊임없이 심어주고 싶은 모습, 그리고 방해요소들은 제거를 해서라도 남겨두고 싶은 맑고 깨끗한 모습 그것이 깨달음의 참모습일지도 모른다. "겨울나무가 되어라. 바람이 분다고 그게 어째서 신경 쓸 일이더냐?" -p297 책을 읽으며 나는 사실 어려웠다. 저자는 참선이란 종교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리고 불교를 믿으라 이야기 하지도 않았는데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마음을 먹자먹자 하면서도 생각 만으로도 내 안에 있는 무수한 악을 제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나를 나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라는 말을 무수히 되내인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수박 헛핥기 식으로 읽었음을 밝혀둔다. 그것은 내 안의 무수한 악들의 방해로 제대로 된 속뜻을 간파하지 못하고 좋은 글을 읽고 있음에 치중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두번째 이 책을 다시 읽을때에는 나 또한 참선의 세계에 입문해 있기를.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책 속에서 절대 정답을 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몸에 좋은 영양제를 먹은 기분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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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담 스님의 말씀은 지금 나의 불행하고 혼란스러운 마음 상태로는 내 존재의 본질을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내 인생에거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거라는 얘기였다. 또한 내 마음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는 깊은 내적 고통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말이었다. 그 순간 내게 필요한 건 참선이라는 생각이 분명하게 들었다. 나에겐 어지러운 마음을 깨끗이 씻고 차분하게 진정시키며 투명하게 만들어 줄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완전한 자기 변혁의 길이 필요했다. 인간의 으식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 길 말이다. 그 길을 걷는 것이 내 인생을 걸고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참선은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 당신의 생각과 감정, 말과 행동을 관리하고, 청신적 고통에서 빠르게 회복하도록 돕는 완전한 자기 변혁의 길이다. 송담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정한 참선은 일상생활을 벗어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것이다."
그들을 통해 나는 참선이 단지 불교 신자나 스님들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알게 되었다. 고통에서 벗어나 더 행복한 삶을 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말이다.
"혹시 너 자신이 우 우주에서 한 마리 개미 같다는 느낌 든 적 있어, 셉?"
내가 물었다.
"항상 그렇지."
"한국에서 하숙집에 살 때 가끔 방바닥에서 개미를 발견하곤 했거든. 개미가 방바닥을 가로질러 열심히 가는 모습을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저 작은 더듬이로 얼마나 멀리까지 감지할 수 있을까? 저 작은 개미의 지각 범위가 얼마나 될까? 아마도 어느 방향으로든 0.5밀리미터쯤? 그 개미는 자기가 내 작은 방바닥에 있다는 걸 몰라. 경계가 보이지 않는 끝없는 평원에 있다고 생각하겠지. 나라는 이 거대한 존재가 자신을 발견하고 확 밟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하며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우리는 봉사하는 삶을 살라고 부름 받은 것이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게 봉사하고 끝없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이들을 도와야 했다. 참선을 하여 우리으 ㅣ번뇌와 망상을 극복해야 했다. 그 번뇌 때문에 우리는 심각하게 파괴적이고 스스로를 해치는 습관에 사로잡혀 우리 자신뿐 아니라, 이 가련하고 연약한 지구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형태의 생물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깨달음을 얻어 다른 사람들을 돕고 이 세상을 구하는데 기여할 힘을 가져야 했다.
"이 계율을 잘 지키겠는가?"
이 신성한 계율을 잘 지키겠는가
너희 인생과 정신, 몸과 마음, 영혼을 다해 참선 수행을 하겠는가
이번 생에서 깨달음을 얻겠는가
모든 중생을 끝없는 고통의 바다로부터 구해내겠는가
"속상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답을 가르쳐주지 않아." "속상할 때나 화가 날 때나 슬플 때나 두려울 때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때는 어떻게 해야 해?"
"참선이려. 참선은 진짜 인간이 되는 길이지. 진정한 인간의 삶을 사는 방식이기도 하고, 또 우리가 마음을 다스리고 단속하는 방법이지. 속상할 때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알고 싶어도 이 세상의 어느 대학에서도 가르쳐주지 못해. 선불교의 선원으로 와야만 되는 거여."
정말 희한하게도 절에서 생활하는 것에 적응하고 나자 내면이 무감각해지고 열정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스님이 권태와 무감각, 절망과 무의미함 그리고 좌절의 시기를 겪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를 포함해 스님들 대부분이 선방 생활에 지치고 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스림들이 이런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님들도 그런 감정을 느낀다.
대부분의 인간은 끝없이 이어지는 통제 불능의 생각과 감정, 머릿속의 이미지와 소음에 덮이고 완전히 가려진 채로 세상을 살아간다. 참선의 목적은 이렇게 왜곡되고 망상으로 가득한 마음 상태를 몰아내고, 송담 스님이 어린아이에게 설명했던 맑고 행복한 본연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처럼 인식이 왜곡되지 않고 더없는 행복을 느끼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서이 원래 우리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보았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선사들이 참선을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라고 불러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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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인연처럼 책과의 인연도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다가오는 것 같다. 신간도서 소개에 '참선'이라는 책을 보자, 문득 읽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명상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참선은 많이 낯설고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었는데, 의외였다. 내용전개가 쉽고 재미있어 술술 읽혔다. 깨달음을 얻고자 스님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이 떠오르며, 많이 공감하면서 읽게 되었다. 특히 이 부분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자기 몸과 마음을 적절히 조절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면 돈이 많든 적든 직업적으로 성공을 했든 못했든 세상에 무감각해질 것이다. 그러면 우울해지고, 결국은 희망을 잃게 된다. (중략) 우리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마음을 더럽히는 것은 외부의 오염 물질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쌓아놓은 생각과 감정으로 이루어진 내면의 먼지다. 마음을 건강하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해본 가장 어려운 일일 테지만, 우리가 무시해버릴 수 없는 도전이기도 하다."(p.327)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삶에 무감각해지는 의식을 다시 일깨우고 감옥에 갇힌 듯 답답한 일상을 해결할 답을 찾기 위해 우선 현재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p.450) 몸이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과 이미지, 음성, 기억, 환상 등이 서로 연상 작용을 일으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낸다. 그 영화를 보면서 감정과 신체 반응이 계속 일어난다.(p.452) 이럴 때 참선으로 의식을 일깨우면 몸이 다시 생동감을 찾게 된다. 참선으로 깨어난 의식을 통해 매일의 삶이 새롭게 인식되니 똑같은 일상을 살아도 지루하지 않고 반복된다는 느낌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게 되고, 매 순간 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발견하고 체험하고 기억하고 인식하게 된다.(p.453) 이 부분들을 읽으면서, 무언가 간절히 원했던 것들을 성취했을 때의 만족감과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고, 또 다른 새로운 길에서 행복을 찾고자 헤매게 되는 일이 반복이었던 날들이 떠올랐다. 생각을 제대로 통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그 동안 내내 방황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되었다. 참선을 접하게 된 과정에 몰입되어 읽게 되니까 참선의 필요성이 더 많이 와닿았다. 책의 주제인 참선을 요약하면, 참선은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다. 참선의 3요소는 올바른 자세, 올바른 호흡, 올바른 생각이다. 참선의 핵심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올바른 자세와 호흡은 그 훈련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참선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고 참선을 실천하고 싶어졌다. 찰나의 행복이 아닌 영원한 행복을 찾고, 나 자신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나 자신을 찾는 방법에 참선이 도움이 될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이뭣고?"를 화두로 끈기를 갖고 참선을 매일 훈련하고 싶어졌다. 매일 몸을 깨끗이 하듯이, 매일 마음도 깨끗이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과거에 머물지 마라. 미래를 꿈꾸지도 마라. 오직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그 마음에 집중하라." - 송담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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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은 종교가 아니다”
이미 뉴욕 등지에서는 ‘명상’이 유행을 넘어 심리치료를 대신하는 유력한 마음 운동의 일환으로 자리를 잡았고 우리나라 번화가에도 명상용으로 운영되는 살롱이나 스튜디오들이 제법 들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나에게는 인도발(發) 명상법이나 불교식 명상 수련이 여전히 종교 행위로 인식되었다. 뉴요커에서 선불교 승려가 된 테오도르 준 박 스님이 쓴 [참선 1,2]는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편견이나 선입견을 허물고 선불교식 명상인 참선이 왜 현대인에게 반드시 필요한지를 명료하게 증언한다.
겉이 상하면 병원으로 가면 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 고장나면 얼른 가서 CT를 찍든 MRI를 찍든 해서 약을 처방받든가 수술을 하든가. 그러나 속이 상하면 우리는 대부분 속수무책이다. 어젯밤에 상한 속이 오늘까지 아프다. 시간이 흐른다고 나을 것 같지만 천만에. 아픈 데가 바쁜 일과 속에 파묻혀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조금씩 도화선을 타고 불씨로 남아 있다가 어느 날 꽝! 폭발하고 만다. 그래서 [참선 1,2]의 저자인 테오도르 준 박도, 그의 스승인 송담 스님도 현대인에게 참선을 권한다.
이 책은 '참선을 하면 좋아요'라고 이야기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감수성과 공감 능력으로 세상이 ‘어떻게’가 아니라 ‘왜’ 존재하는지를 알고 싶어 애를 끓였던 저자의 생애가 오롯이 여기에 담겼다.
저자는 책 초반에 현대 지식인으로서 그가 왜 윤택한 성공의 길이 아니라 참선가로서의 생을 택했는지를 설명한다. 그가 살아온 시간을 털어놓으며 저자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부와 성공이 부질없다는 허무주의도, 철학적 사고를 하면서 살라는 훈계도 아니다. 그것은 완전한 체험담이었다. 안전과 행복이라는 인간의 두 가지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오로지 물질적 전략 하나만을 배운 현대인으로서 저자에게 참선이란 어떤 유익함을 주었는지 그리고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과 믿는 것을 구분하는 지식인으로서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찾는 참선법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저자는 생생하고 솔직한 자기 체험담을 들려준다. 그 체험담이 얼마나 공감이 되는지 읽어본 사람은 안다. 우주의 본질 수준으로 철학적이고 거시적인 질문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일생에 어느 한 지점에 이르면 ‘나는 대체 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자와 같은 고민을, 독자보다 먼저 혹은 비슷한 시기에 했던 저자는 ‘나도 당신과 같았다’라고 말을 꺼내며 답은 분명히 있으니 답을 찾고 싶다면 참선을 하라고 조언한다.
교리적 특성을 완전히 벗고 대중에게 큰 공감을 얻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종교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불교 교리를 믿는다 혹은 기독교 교리를 믿는다는 차원에서의 종교성이 아니라 참다운 종교라면 이런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싶은 이상적인 종교성을 제시했다는 면에서 그렇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참선에 임할 때 가져야 하는 자세에 대한 언급이다. 소크라테스는 파이돈에서 '사람이 자기 영혼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그 영혼을 마주보려고 할 때에는 몸이 방해를 한다'고 했다. 몸에 익은 습관과 몸이 받아 들여온 정보들이 몸 속에 있는 영혼의 의식을 깨우는 일을 훼방한다는 것이다. 참선 1권 227쪽에서 저자는 이 문제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마음 속 표상이 결국 무의식이라는 깊은 물 속에 잠겨 있는 나 자신을 비추는 일을 방해한다’고. 그래서 선불교에서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과 순수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했다. 아이들이 전제 없이 만물을 대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아! 그래서 예수님도 어린아이 같은 자가 천국을 간다고 하셨던가. 기존에 내가 알던 것을 내려놓고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이는 존재’에게로 눈을 뜨는 일이란 불교에서도 기독교에서도 어쩌면 모든 종교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사람됨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렇게 절절하게 공감과 동감을 사는 책의 후반부에서 나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서, 먹고 사는 일을 하면서 참선을 한다는 게 정말로 가능합니까? 가능하다고 해도 쉽지 않겠지요?
그래, 쉽지 않다. ‘정성과 인내가 필요하지만 틀림없이 가능하다’라고 이 책은 답한다. 이제 선택은 나의 몫이다. 쉽지 않으니 아예 시작조차,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가?
이 책이 필요할 어쩌면 심리상담이나 우울증 약보다 훨씬 더 이 책이 간절할 사람들을 위하여 이 책의 한 부분을 실어본다.
삶은 사건의 연속이고, 우리는 그 사건들로 인해 산만하고 속상해진다. 과거의 일이나 미래를 떠올리면 현재의 생각과 감정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관심을 되돌려 ‘이뭣고?’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대의심을 일으킬 수만 있다면 고통은 한순간 사라질 것이다. 동시에 관심이 자연스레 현재에 맞춰지면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내적 변화와 주변 상황을 좀 더 명확히 인식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서 내 몸과 마음 안에 있는 진정한 ‘나’, 경험의 주체를 왜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실은 내가 그랬다. 진짜 나 같은 거 몰라도 오늘 하루 먹고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난 지금은 비로소 알았다. 더 이상 나는 ‘내가 되고 싶다’ 혹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 살 필요가 없다. 나는 그냥 본래의 나로 살면 된다. 외부로부터의 자극과 내부로부터의 욕망이 빚은 ‘원하는 나’가 아니라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나로 살면 삶은 얼마나 자유롭고 후련하고 당당할까. 종교의 유무 혹은 여부를 떠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마 이 책은 든든한 동지이자, 가이드 그리고 응원군이 되어줄 것이다.
“시궁창에 빠진 사람이 거기서 허리를 쭉 펴고 앉아서 조금 더 있고 싶다고 말해. 한번 말해봐. 그 남자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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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참선 1 -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 125p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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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불교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테오도르 준 박 이라는 분의 특이한 이력도 왠지 신경이 쓰여 새해의 첫 책으로 <참선>을 골랐다. 나 역시 왠지 모를 공허한 마음, 내가 왜 나이고 살아가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답이 안 나오는 질문들과 무기력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기에 이 책에 무의식중에 강하게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초반부에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송담스님에게 이끌려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국으로 와 환산스님이 되기까지 있었던 일들, 그 과정에서의 생각과 감정들이 솔직하고 밀도있게 적혀있어 오랜만에 홀린듯이 책을 읽어내려갔다. 왜인지 읽는 내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중 후반부에는 활구 참선법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과 방법, 그 힘에 대해 적혀있다. 이부분은 리뷰에 적기보다는 직접 한번씩 읽어보는 걸 추천하고 싶다. 자기자신을 알아가고 스스로 사랑하는 훈련법이라는 참선. 내 인생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이뭣고"의 마음으로 나 자신을 매일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아끼고 사랑하다보면 나 역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무엇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지 아니면 허상인지 알고있는 건 결국 나자신일 수밖엔 없다. 참선의 효용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려면 각자 직접 시도해보는 것 밖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그 말씀 그대로이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달린 것.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만난 많은 우연한 사건과 만남들을 엿보게 되는데 이 책이 오늘 내 앞에 나타나게 된 것도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새해 첫 책부터 오래 두고 볼 좋은 책을 만나 마음이 흐뭇하다. 참선을 좀 더 내 삶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올 해 좀 더 시간과 마음을 들여 공부를 해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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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건 기본적으로 힘든 일이다 - 사는 게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한다면, 믿기가 조금 어려울 것 같다 나를 사로잡은 한 문장은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는 cover line 이었다 - A에 문제가 있을 때 A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 A에 문제가 있을 때 B로 가라고 한다면?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겠지만, 그런 방법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것도 같다 - A에서 답을 찾는다고 A의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다는 것은 경험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던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달관의 경지'에 다다른 마스터가 아니다 - 본인의 경험상 참선을 하면 불안과 분노, 우울, 자괴감 같은 내적 고통에서 벗어나 일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데도 그 방법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곳을 찾기가 어려우니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누고자 나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한 번 몸에서 방법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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