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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제법 긴 시간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수술을 하고 몸이 회복되는 시간을 지루하고도 길었다. 그 힘든 시간을 곁에서 머물며 나를 지켜준 일들이 많았다. 작은엄마도 그중 한 분이셨다. 당시 작은엄마는 절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계셨는데 항상 내게도 마음공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그 말씀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렸다면 어렸고 젊었다면 젊었기에 그러했다. 테오도르 준 박의 『참선』을 읽으면서 그때가 생각났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는 작은엄마의 말씀까지. 한 권의 책으로 꺼내보는 어떤 장면, 어떤 마음, 그리고 어떤 다짐. |
![]() (이 책을 처가에서 쌍둥이 육아중에 정말 짬을 내서 읽었고, 이 책을 읽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참선의 한 방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마무리는 본가 집에 와서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다 서가에 참선과 관련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월든과 또다른 깨달음을 주는 주역강설이 같이 보인다)
하루하루 바쁜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두 달 전 기다리던 아버지가 됐다. 그것도 육아지옥이라 할 수 있는 쌍둥이의 아빠로. 살면서 30여년간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아버지의 무게까지 생겼다. 밖에서 볼 때 나는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은 것처럼 보인다. 좋은 부모님 밑에서 지방 명문고에 서울로 대학을 가서 극심한 취업난에서 또 우리나라 재계순위 1,2위 기업체에 다 다니고, 또 나같은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착하고 예쁜 아내와 이제는 쌍둥이 아이까지. 곱게 포장된 길만 걸은 것 같이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나 역시 길을 잃은 것 정도는 아니지만 방황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재수, 직장 이직, 조금은 늦은 나이의 결혼까지와 아이를 얻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마다 많은 생각과 참선까지는 아니지만 걸으면서 내 몸에 땀을 흘리면서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하면서 나는 어느 정도의 묵상을 즐기면서 살아왔다. 내가 대학교때나 직장생활 중에서 힘들 때 나는 몇몇의 내가 좋아하는 스팟이 있었다. 명상과 참선의 중간정도라고나 할까? 혼자 생각에 잠기기 좋은, 세상의 묵은 때를 벗어 던지고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을 찾는 과정을 하는 장소말이다. 재수할 때와 대학교 때는 노량진 사육신 묘를 자주 갔다. 자신이 믿는 진리나 정의를 실천하다가 희생당한 사람들이 묻혀 있는 한강변이 보이는 그 장소에 앉아서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힘든 일, 슬픈일을 잊었다. 다음으로 좋아했던 곳은 그때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운현궁이었다. 흥선대원군이 한말 정국구상을 하면서 생각에 잠겼던 운현궁 노락당에 앉아서 두어시간을 바쁜 서울 도심에서 앉아 있으면 그야말로 너무나 좋았다. 다음으로는 선정릉, 융건릉 같은 왕릉이었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지금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오는데 그때만 해도 도심속에서 잠시 세상을 잊게 또는 시간을 정지 시켜주는 장소였다. 마지막으로 수원화성이나 제주도 올레길, 동해안 길 등 조용히 걸을 수 있는 곳을 걸어다니면서 생각에 잠기고는 했다.
이 책 참선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내가 하는 것이 바로 참선의 일종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1권 『참선 :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는 부모님의 이민으로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저자가 흔히 우리나라 1등 심리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명문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인천에 있는 용화사를 찾아 송담 스님의 제자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출가 수행자로서의 고뇌와 갈등, 결국 어렵게 터득하게 된 참선의 원리와 방법, 참선을 일상화하기 위한 전략을 이야기 했다면, 2권 『참선 :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은 그 이후 20년 동안 대중의 관심을 피해 살아온 저자가 스승인 송담스님의 조언에 따라 TV에 출연해 참선을 가르치기 위한 전략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이 담겨 있다.
첫 만남에서 송담스님에게 완전히 매료됐으나, 스님까지는 될 생각이 없었던 테오도르 준 박은 2년여 고민과 방황 끝에 1990년에 출가해 환산(還山)이라는 법명을 받고 송담스님의 제자가 됐다. 사실 참선과 불교하면 교종과 선종이 생각나고 고등학교 때 배운 교관겸수, 정혜상수, 돈오점수 같은 시험에 나오는 단어가 먼저 생각났다. 사실 결국 참선이라는 것도 시작은 선종의 나 자신을 돌아보고 깨달음을 얻는 고행이나 수행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은 저자가 30여년의 출가 생활, 그 중 15년간 송담스님의 시자(비서실장 같은 역할이었다고나 할까?) 소임을 맡으면서 그가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가 담겨 있다. 특히 인생의 진리를 찾아 한국에 왔던 목적을 잃어버린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결국 2017년 환속해 다시 테오도르 준 박으로 돌아왔다. 승복은 벗었지만 그의 깨달음을 위해 참선하는 삶은 그대로 남아 있다. 책은 참선과 자기계발서 적인 성격을 동시에 띄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나를 다스리는 참선이 넓게 보면 자기계발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실패의 감정이 생기면 우리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할 때까지 자신을 밀어붙이고 할 수도 있는데 저자는 참선을 하면 잃었던 자신감과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5R : 실패에서 벗어나는 법 이다. 실패했다는 느낌이 들 때 그 어려움을 전략적으로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 대처법이 바로 5단계 좌절 극복법, 즉 5R이다. 5R은 회복(Recovery), 재충전(Recharge), 자기 성찰(Reflect), 전략 다시 세우기(Re-strategize), 다시 시작하기(Re-engage)로 이어진다. 5R은 나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해도 되지만, 내가 참선을 가르치는 동안 이 방식에 가장 관심을 보인 건 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었다. --- 2권 p. 11
결국 이것은 저자의 참선법이 자기계발적인 성격을 띄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방증이었다.
예를 들면 재충전(Recharge)에서 머리를 식히는 것과 휴식에는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보통 두 가지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휴식을 취한다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휴가를 떠나고', '유흥을 즐긴다' 이런 활동들은 우리를 재충전 시키는 진정한 휴식이 아니라, 그나마 우리에게 남아 있던 에너지마저 고갈 시킨다는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는 매일 5분씩이라도 좌선을 실천하라고 하는데, 한가지는 참선을 하려고 앉을 때마다 편안하게 자세를 취하고 긴장을 풀고 차분하게 호흡을 조절하고 온 마음을 다해 '이 뭣고?'를 읊으라는데 전라도 사투리가 진한 송담스님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나는 사람마다 다른 화두를 던져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고백한다. 송담스님과 만나서 받은 첫 느낌과 감동은 지금도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그 자신이 송담스님이 되고 싶었다고 할 정도였다.
사실 저자가 환속하게 된 계기는 이 책에서 다 밝힐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최근 얼마전에 있었던 벤츠를 음주상태에서 몰던 스님이나 종교병(宗敎兵)이었던 사람이 결혼을 해서 군에서 쫓겨난 최근의 일까지(비단 불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독교, 천주고 할 것 없이 모든 종교에서 다들 조금씩은 문제가 있고 대다수 선량한 참 종교인보다 이런 사람들이 부각되서 더 나쁘게 보이는 면도 인정하지만) 이 종교인과 세상 물욕이나 여러 일상에서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런 일을 통해 또 송담스님의 시자로 그의 총애를 받으면서 교내에서도 파벌 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처음에 책을 쓸 때 참선에 대한 교과서 형식의 글을 쓰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출판사와 협의 끝에(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많이 읽혀야 그 좋은 사상을 전달할 수 있기에)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가 더 많이 들어가면서 책이 조금 더 진솔해지고, 판매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음을 부정할 수 없겠다. 저자는 자신이 매료된 송담 큰 스님의 뜻을 담는게 올은 방향이라는 생각에 그 분의 삶과 가르침을 많이 담았는데 결국 여러 시행 착오 끝에 미국인으로 명문대학을 다니던 저자가 왜 이런 삶을 살게 됐고, 어떻게 참선법을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책의 방향을 바꾸면서 더욱 에세이에 가까워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참선의 가치를 알고, 왜 참선을 해야 하는지 이끌 수 있는 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30년의 구도생활동안 허리의 병을 얻었고, 마음의 병도 있었다. 결국 환속하고 나와서 다시 세상을 여행했지만 결국 참선과 요가의 접목 등 참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환속 후 요가를 배우면서 처음에는 허리가 안 좋아서 치료를 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이 요가를 배우면서 과학적으로 몸이 이완되는 자세를 이해하게 되고, 또한 호흡법도 더 정확하게 배워서 결국 참선을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데 효과를 봤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2권에서 꽤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데 결국 요가를 같이 하게 되면 참선이 더 쉬워진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자세를 연습하면서 이전의 참선에서 하는 허리를 펴고 앉는 것에서 벗어나 특별한 자세를 배우면서 나를 돌아보고 몸을 쓰면서 참선에 더욱 다가간다.
“참선은 망원경이 아니었다. 정반대로 참선은 현미경과 같은 것이었다. 현실 너머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 현실 속을 들여다보는 방법이다. 존재한다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작고 잠시 머무는 것으로 이뤄진 현실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것이다.” --- 2권, p.61
책을 읽는 목적은 결국 나이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내가 이 사람의 이야기를 그냥 듣고, 재미있을 수도 있고 할 수도 있지만 결국 책을 읽고, 내 귀중한 시간을 투입하고 한 것은 무언가 얻기 위해서다. 그럼 현대사회에서 바쁘게 살고 있는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진정한 배울점, 또는 그 깨달음은 무엇일까? 우선 사무직인 나에게 건네는 말이 책속에 나온다.
현대사회는 전 세계적으로 육체노동보다 머리를 써서 문제를 해결하는 직업에 더 많은 특권을 부여한다. 소위 말하는 사무직이 보수도 많고, 평판도 더 좋다. 반면에 손과 몸을 쓰는 일은 상대적으로 보수도 적고, 존경받거나 선망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릴 때 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이런 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현실이 몸에 베어 가능하면 신체 활동이 적은 생활 방식을 추구한다. 이는 곧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경쟁자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인생을 의미한다. 이렇듯 우리의 업무 환경은 최고조의 스트레스와 최소한의 신체 활동이라는 조건 속에 놓여 있다. 위협적인 상황에 처하면 우리 몸에서는 투쟁-도피 반응이 일어나 짜압고 강렬한 움직임을 준비한다. 현대의 업무환경은 우리 몸에서 이런 반응이 일어나도록 압력을 가하지만 몸을 움직여 그 에너지를 해소할 기회는 주지 않는다. (중략)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우리 사회는 마치 모든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주려고 과잉보호하는 부모처럼 신체 발달의 한계를 매우 잡게 설정한다. 우리가 종일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냥 앉아서 걱정하는 것 뿐이다. 내가 모든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참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고집스럽게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이다. --- 2권 p.174 ~175 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참선은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 줄 수 있는지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한 의식에 내재된 빛과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불교에서는 모든 감정이 파도와 같이 움직인다고 말한다. 파도처럼 일어나 정점으로 치솟았다가 부서지고 결국엔 사라진다. 영속성이 전혀 없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우리가 자주하는 또 한 가지 실수는 어떤 태도를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을 때 그 사람이 우리에게 그런 태도를 취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느끼면 우리도 그 사람을 다르게 대하기 시작한다. '네가 정말로 나를 사랑했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거야.", "나 그 사람을 정말로 사랑하나봐. 전에는 누굴 위해서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거든!"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사랑의 증거로 간주한다. 하지만 참선을 하면 어떤 태도를 취하든 사랑을 널리 확장하고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오직 참선을 통해서만 어떤 상황에서도 가슴에서 사랑이 꽃을 피우고 환하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참선이 다른 명상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다른 명상들은 ‘나’가 아닌 것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림, 촛불, 소리, 호흡 등이다. 하지만 참선은 나를 관찰한다. 즉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는 것이고, 조금만 연습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바로 적용할 수 있다. 보통 명상이라 하면 어떤 상황에서 탈출하고 벗어난다고 생각하는데, 참선은 그 상황에 더 집중하여 극복할 수 있게 만든다. 특별히 시간을 내서 하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참선을 ‘행복으로 가는 새로운 공식’이라 말한다. 수 많은 스트레스와 격무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참선과 같이 누구나 쉽게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 자기 제어 기술이 필요하다고 알려주고 있다. 참선은 온갖 정보와 자극에 쏠린 우리의 의식을 내면으로 돌려 마음의 힘을 기르는 방법이다. 저자가 알려주는 참선은 어렵지 않다. 저자는 결국 세가지만 제대로 알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올바른 자세와 복식호흡, ‘이뭣고?’ 라는 화두 That's it. 즉 이 세가지가 다다. 가부좌로 앉아, 복식호흡을 하면서, “이뭣고?”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내쉬면서 “이뭣고?” 하면 된다.
저자는 21세기 현대의 수행자답게 가부좌로 앉아서 하는 참선뿐 아니라 의자에 앉아서, 서서, 심지어 누워서 할 수 있는 참선도 알려주고 있다.
놀라운 영감으로 가득한 이 책은 21세기 인류의 진보를 위해 참선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고 살아가도록 도와줄 것이다라고 하는 세바스찬 승 교수의 추천사를 통해 이 책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책의 디자인이나 편집이 읽고 싶게 만드는 잘 만든 책이었다, 사실 참선이라는 어려운 책을 번역한 역자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이를 낳고, 바쁜 60일을 살았다. 아이에서 나 자신을 보기도 한 깨달음의 시간이기도 했다. 10년만에 처음으로 회사를 한달 떠나 있었다.(쌍둥이 출산휴가로 인해 28일 휴가를 얻었다) 참선까지는 솔직히 못했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2020년은 주말부부로 1년을 살아갸야 할 것 같다. 아내는 처가에 남아서 쌍둥이를 키울 것이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바쁜 육아에 지친 아내한테는 너무나 미안하지만 가끔 평일 혼자인 집에서 이 참선을 실천해 볼 생각이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이 리뷰를 고쳐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끝으로 컴퓨터와 오랫동안 앉아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는 현대인에게 참선이 꼭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무엇보다 격한 공감을 느낀다.
* 1권은 지난 12월 생일선물로 친구에게 받았고, 2권은 예스24에서 직접 구매해서 읽었다. 그래서 2권 위주의 리뷰를 예스 24에 기록하기 위해 작성했지만 바쁜 육아중에도 1,2권을 다 읽고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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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빛과 어둠처럼 성공과 실패도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은 관계다. 쌍둥이처럼 닮은 두 길을 제대로 여행하는 법만 안다면 인생은 희한하게도 어느 길로 가든 똑같은 자기 발전과 자각, 자아실현으로 이끌어준다.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침묵한다는 것은 사회와 문화 속에서 누군가와 연결되고 어떤 일에 참여하고 사랑하고 성취할 수많은 기회들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 속으로 가라앉아버리는 것과 같다. 어느 정도는 죽음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송담스님의 치열한 수행담도 들었다. 낮에는 생계를 위해 일하고, 밤에는 스승과 함께 밤새 정진하며 전국 산천을 떠도셨다고 한다.
외부의 기분에 기반한 마음속 상을 모두 내려놓고 우리의 내면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일단 관심이 내면으로 모아지면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와 같은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그 과정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자기만의 방식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꾸준히 참선을 하다 보면 나만이 가진 개성과 아름다움, 특별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 자신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실패와 패배가 정말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건 사실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유일하게 실패 또는 패배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포기할 때뿐이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실패한 것이 아니다. 아직 거기까지 가지 못한 것뿐이다.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시작하고 불과 몇 년 만에 나는 그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른바 철수 전략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해온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내 원래의 길, 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간단히 말해, 삶을 다시 시작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나는 다시 살기 시작했다. 내가 상상도 못 했던 방식으로. '나는 아무리 늙고 쇠약해져도 깨달음을 얻고하 하는 노력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정직하게 깨달음을 추구하지 않는 한 시줏밥을 먹지도 않을 것이다!' '깨달음을 얻으려는 진실한 열망을 아직도 품고 있는가?' '나는 더 이상 진리를 찾는 구도자가 아니야. 그저 세뇌되어 맹목적으로 따르는 추종자일 뿐. 나는 한 종교 단체를 대표하는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서서 내부의 병폐를 감추려고 애쓰고 있어. 이러려고 가족을 떠난 게 아닌데. 이렇게 늙어가지는 않을 거야. 절대 이렇게 살다 죽고 싶지는 않다.'
아주 작은 원룸이라 요가매트 한 장 겨우 깔 정도의 공간밖에 없었다. 슬프면 이상하게 그 슬픔 한가운데서 기쁨이 느껴진다. 온 힘을 다해 꽉 붙들고 있던 뭔가를 잃어버리고 나니 아니, 놓아버리고 나니 비로소 주위의 모든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는 자동항법장치에 의존해 기계적으로 살고 있었더. "강제수용소 생활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너도 기억하지?"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뭐라고 대답했는데?" "사람은 무엇에든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라고." "내가 맹목적인 추종자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어. 어느 순간 궤도에서 벗어났다는 걸 말이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이 없는 코마 상태에 빠진다면 겁이 나지 않겠어?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느껴본 게 언제야? 네 가슴이 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야? 넌 네 삶이 진정한 것이 되길 원하지 않아?"
'이 모든 사람이 비통한 일이 있어서 요가 수련을 하는 걸까? 비통하거나 후회스러운 일이 있을 때 치료법을 찾는 것 말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요리를 할 수도 있고, 직장을 그만둘 수도 있고, 여행을 가거나 타투를 할 수도 있다. 자원봉사를 할 수도 있다.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고 가지고 있던 종교를 버리기도 한다. 요가도 여기에 해당할까?' 시간을 내서 자기만의 철학적 시각과 모든 것에 대한 자기만의 관점을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고 숲과 산 그리고 도시 변두리에 살았던 전설의 수행자들 말이다. 부처님도 그런 떠돌이 수행자 중 한 분이었다. 당시 사문들은 부처님처럼 그 시대 지배계급의 주요 종교 전통이었던 베다Veda의 가르침과 수행을 거부하고, 어떤 공식적인 직함이나 지위도 갖이 않았다고 전해온다. 생사의 윤회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개인의 인생 목표로 삼았다.
마치 요가를 하며 그동안 흘리지 않은, 어쩌면 흘리지 못한 눈물을 피부를 통해 땀으로 배출하는 것 같다. 내 가슴과 내 눈 대신에 내 몸을 감싼 피부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오늘 죽을 수도 있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오늘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뭔가를 하러 가는 도중이었으니 다행이야. 외부의 기준과 기대를 따르려고 애쓰다가 죽고 싶진 않아. 내 마음에서 간절히 원하는 것을 따르다 죽고 싶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