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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라 하면 막연히 한글을 창제한 조선시대의 왕이라는 것밖에 별다른 지식이 없었던 나는 이 책을 접하면서 세종대왕의 여러 면모를 알 수 있었다.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세종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조선의 위대한 왕으로써 왕성한 활동을 하고, 마지막 생을 마감하기까지 이루어낸 업적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하고 신비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학문적인 발전, 문학적인 발전, 음악적인 발전, 예술적인 발전, 과학적인 발전 등등.. 다방면에 있어서 세종대왕이 일궈낸 일들은, 조선시대 이후로 모든 것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직도 어려운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세종대왕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한 주춧돌 같은 역할을 한 수많은 일들 중에서 제일 으뜸으로 꼽힐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우리나라 고유의 한글을 만든 것이다. 한글을 깨우쳐 알게 됨으로 인해 얼마나 우리 사회가 크나큰 발전을 이룩했는지 모른다. 세종대왕의 관심과 지지아래 많은 학자들의 땀과 노력으로 지금 우리가 이렇게 편안히 그 결실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쓰임새 있게 쓰일 한글이 창제됐다는 점에 새삼 감사할 일이다. 이렇게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에게도 인생은 그리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던 듯 싶다. 이책은 조선실록에 씌여진 기록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지만 독자들에게 읽힘으로 있어 더욱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 엮어내었다. 복잡한 왕족의 구조를 어떤 사건을 토대로 빗대어 이야기하고, 또 세종대왕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므로 그 시대적 상황과 그에 따른 행동 반영에 대한 이유를 예측하고 있기도 하다. 세종의 주변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가진 특성들로 역사적인 변동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이해도 돕고 있다.
이제까지 세종대왕이라면 한글을 창제하고, 만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인자하게 보이는 조선의 왕이라고만 대략 단정짓고 있었던 내가, 세종대왕의 깊은 은덕을 입고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그나마 깨닫게 된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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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주 당연하게 왕재로 여기는 세종이 사실은 셋째아들인 탓에 그저 무던하게 인생을 보낼 준비가 된 왕가의 사람일 뿐이었다는 사실은 생각할 수록 놀랍다. ‘정통성이 없는 셋째아들이 살아있는 두 형을 제치고 왕위를 계승했지만 이를 계기로 반란 한번 일어나지 않았다. 가뭄이나 홍수등 자연재해와 외적의 침입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세종의 시대가 다른 왕의 치세에 비하면 훨씬 안정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문화,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의 업적도 바로 이런 정치적 평화를 기반으로 하여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의 시대는 조선초유의 평화로운 시기였고, 후대의 사람들에게 태평성대로 일컬어진 것이다.’(p.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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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 보면 간혹 흘려들었던 선인들의 말이 새삼스레 가슴에 와닿을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말, 지겨우리만치 당연한 말에 담긴 뜻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너무 당연하여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가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자신은 항상 낮은 곳에 둡니다. 결코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다투지 않기 때문에 허물이 없습니다. 지극한 선은 마치 물과 같아, 노자는 일찌기 上善若水라 했습니다. 말은 쉽지만 알기 어렵고, 알기 쉬워도 저리 살기는 힘듭니다. 저리 살지 못하면서 알았다고 하는 것은 진정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올 한 해, 제 삶이 물과 같기를 바랍니다. ![]()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사극의 인기는 줄 것 같지 않습니다. 사극이 인기를 끌다보니 과거에 다루지 않았던 시대를 다루게 됩니다. 올해 주목할 만한 주제는 '세종대왕'과 '선덕여왕'입니다. 세종대왕은 <대왕세종>이라는 이름으로 1월5일 첫방송을 한다고 하고, 선덕여왕은 MBC에서 준비중이라는 데 언제쯤 볼 수 있을지는 미정입니다. 그 외에도 홍길동, 평강공주, 일지매, 허난설헌, 신사임당, 호동왕자와 관련된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극이 준비중인 것은 어정쩡한 소재보다는 고정 팬이 많은 사극을 다뤄 시청률을 확보하겠다는 방송사의 계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사를 다룬 책들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습니다. 역사 이야기는 이미 결론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전혀 모르는 것을 알게 될 때보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것, 잘못 알고 있던 것을 제대로 알게 될 때의 지적 흥분이 더 크고 잘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모르는 것을 새로이 익히면 모든 것을 학습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반면, 어느 정도 줄거리를 알고 낯익은 인물들이 등장하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나 책이나 역사에서 많은 소재를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세종대왕은 새롭습니다. 너무나 많이 듣고 배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익숙하지만, 정작 그 면모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훈민정음 창제로 대표되는 여러 업적들의 일부를 알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위대한 업적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여러 원인을 분석하여 배우는 것입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될 때 그 의미가 있으니까요. 제 목 : 나는 조선이다 지은이 : 이한 펴낸곳 : 청아출판사 / 2007.12.10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12,000원) 세종대왕을 다룬 책은 대개가 어린이용입니다. 어른을 위한 책은 정말 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세종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작년말에 출간된 <나는 조선이다>가 돋보입니다. 세종에 대해 특정한 관점에서 분석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매우 대중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세종과 그 주위 사람, 세종 시대와 그 후의 명암에 대해 쉽게 풀어 쓰고 있습니다. 세종에 대한 입문서로 적당할 것 같습니다. 곧 방영될 드라마 <대왕세종>을 보기 전에 가볍게 읽어봄직합니다. 출판사에서도 이것을 염두에 둔 듯 띠지에 '2008년 1월 5일 KBS 1 TV <대왕세종> 방영!' 이라고 표시해두었습니다. <대왕세종>의 원작이 아니면서, 그래도 이 분위기에 묻어 가려는 생각인 것 같은데, 밉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상업적이라고 비판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대중적으로 읽히길 목적으로 만든 책들은 그 속성상 원래 상업적입니다. 내게 필요한 책, 즐거움을 주는 책이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조금 아쉬운 것은 이 책이 온라인서점에서 '세종' 또는 '세종대왕'이라고 검색해도 검색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목에 그런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검색이 안 된 것입니다. 세종대왕이라고 검색했을 때 제일 위에 노출되면 더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보면 제가 이 출판사 직원인 줄 알겠습니다^^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독자의 입장에서 한 마디 한 것 뿐입니다. 책 내용을 간단히 말씀 드리면, 앞부분에서는 인간 세종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왜 첫째인 양녕대군을 선택하지 않고 셋째인 충녕대군(세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버지 태종이 그렇게 공들인 양녕대군을 폐하고 "너는 할 일이 없으니 편하게 좋은 것만 마음껏 해라"고 했던 충녕을 세자로 책봉하게 된 사연이 주된 내용입니다. 그 전까지 세종대왕은 실록에 기록조차 거의 없었습니다. 수많은 왕자들 중 하나였을 뿐이니까요. 다음으로 세종과 함께 한 전문가들을 소개합니다. 명재상 황희, 소를 타고 다녔다는 맘씨 좋은 재상 맹사성, 제3이 정승이자 꼰대 허조, 바람과 같이 일처리를 했던 도승지 안숭선, 천민 출신으로 조선의 시간을 발견한 조선 유일무이한 과학자 장영실, 양반 출신의 공돌이 이천, 음악의 대가 박연 등. 나머지는 세종 시대와 세종 사후의 어두운 면을 조금 다루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세종이 죽고 아들 문종이 즉위 후 3년도 되지 않아 죽고, 그 아들 단종이 세종의 동생 수양대군에 의해 쫓겨나게 됩니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멧돼지 한 마리가 30년 동안 세종이 키워왔던 인재의 꽃밭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데 채 3년도 걸리지 않았다. (p.294) 물론 여기서 멧돼지는 수양대군, 즉 세조를 가리킵니다. 세종대왕에 대해 '가볍게' 훑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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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한글을 창제한 것으로 유명한 세종대왕은 22세의 어린나이로 태종의 뒤를 이어 조선의 4대왕으로 즉위하여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였는데 이 때의 세워진 많은 제도들이 현재 살고있는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니 이 분의 업적은 우리역사의 빛나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1443년 한글 창제 후 1446년 반포하였는데, 대소 신료들의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킨 부분에 대해서는 왕으로서의 많은 고뇌속에서 결단력 있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세종대왕은 스스로 끈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면서 당대의 최고의 인재들한테도 뒤지지 않는 리더십을 보이면서도 신하와 백성들에게 군림하지 않고 항상 나라의 위해 헌신하였다. 또한 나라의 지존이지만 민주적으로 국정을 운영하였고, 항상 토론을 통해 신하들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본인의 생각과 달라도 합당한 내용이라면 수용할줄 아는 유연성을 통해 당시 신하들의 존경을 받았고, 이로인하여 많은 업적들이 여러 분야을 통해 분포되어 있는데, 집현전을 통한 학문연구, 능력위주의 과감한 인재등용, 측우기, 간의, 칠정산 등을 탄생시킨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 백성의 생활을 돌보기 위해 편찬된 서적인 농사직설과 향약집성방, 전분6등법-연분9등법 시행, 또한 김종서의 4군 6진 개척과 이종무의 쓰시마섬 토벌까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세종대왕의 활약은 실로 대단하다. 이렇듯 수많은 업적을 토대로 창업 초기의 어수선한 조선을 안정화시키고 그 위에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세종대왕은 조선의 후대 왕들도 본 받기위해 세종시대의 많은 법들을 참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세종대왕에게도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실수들이 있었지만 그 가 이루어 놓은 업적에 비하다면 저자의 지적대로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 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세종때 문종의 왕위계승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국정이 안정되었다면 피의 얼룩진 왕조가 아닌 찬란한 조선문화를 꽃피우지 않았을까란 생각이든다. 오늘날까지 세종대왕의 창조적인 지도력과 인재양성은 끈임없는 투자가 어떻께 나라를 부흥시킬수 있는지 알수있는데 오늘날 나라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많은 이들에게는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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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린아이들까지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존경받는 인물이다. 세세한 업적이나 그 시대의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한글하면 세종대왕이 떠오르고, 어떤 면에서든 다 훌륭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나부터가 그 시대의 역사에적 사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은 당쟁이나 사화 등의 사건들이 다른 시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이루어 졌거나 발생하지 않아서 일것이고 최근의 사극에서 다루어지지 않아서 일것이다. 그만큼 세종의 시대는 왕권을 흔들만큼의 큰 사건이 없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인데, 세종의 다스림이 훌륭한 이유도 있지만 어느정도 시대의 운을 탔다고도 생각을 한다.
세종대왕하면 한글, 집현전, 측우기, 만원권 지폐 정도밖에는 떠오르지 않은 나에게 '나는 조선이다'는 꽤나 유용하고 의미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어느때보다 CEO의 능력이 중요시 되고 대통령의 능력이 중요시 되고 있는 요즘, 세종은 지도자에게 뿐만아니라 현대인들의 복잡한 사회생활과 인맥관리,관계에 대해 생각을 하게끔 하는 인물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 시대의 태평성대를 세종과 함께 이룩했던 주변인물들, 각 분야에서의 전문가들을 한 챕터를 할당하여 소개 할 만큼 한 인간에게나 한 사회에서나 인간관계 또는 인재의 중용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 내용 중 가장 흥미롭게 읽고 관심 있었던 부분도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세종의 태평성대를 거론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세종의 정책 을 같이 고민하고 실행에 옮겼던 여러분야의 인물들이기 때문에 세종의 회자는 이들과 함께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나 황희, 맹사성, 장영실과 같은 인물들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거의 몰랐었던 허조나 이천 등은 세종의 시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재미까지 있었다.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집현전이다. 세종의 시대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했던 기구로 훈민정음 창제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훈민정음 창제의 자세한 과정이나 원리 등은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해 처음 알았고 많이 놀라게 되었다. 2008년부터 새롭게 대한민국을 이끌고 갈 대통령에게도 집현전의 학자들 만큼의 열정과 능력을 가진 인재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세종대왕이 후세에 그 많은 것들을 남기기 위해, 지금 이렇게 한글의 우수성을 알고 사용하기 까지 정말 많은 노력과 고통이 함께 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알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인들의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당시의 세종대왕도 32년간의 집권기 동안 항상 끌어 안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노력으로 인해 지금 우리가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종대왕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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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네 번 째 왕 세종. 세종은 어떤 인물일까. 막연히 조선 초기 기틀을 다졌으며, 한글을 창제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왕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세종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 이상으로 능력있는 왕이자, 배울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서 막연히 보고 들어 애매하게만 알고 있었던 것을, 하나의 정리된 활자를 통해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들이 많이 풀렸는데, 거기서 오는 즐거움은 이루말 할 수 없다.
저자는 세종에 대한 다방면의 분석을 하였다. 먼저 세종의 어린 시질의 모습은 어떠했고 어떤 위치였는지를 둘러 보았다. 그리고 중반에는 세종을 주축으로 하여 조선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데 공을 세웠던 여러 전문가들을 살펴보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세종의 건강 악화와 세종 말 시기에 대하여, 그리고 세종 이후 시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세종의 생각과 업적을 보면서 한 왕에 대한, 그리고 멋있는 지도자에 대한 하나의 모델링을 잡고자 한다.
이런 인물에 대한 분석은 많은 도움이 된다. 피상적으로만 아는 것과 한 인물에 대한 세부적이며 다각면의 고찰을 차이가 난다. 더구나 애정을 갖고 인물을 대했다면 그 차이는 더욱 클 것이다. 세종의 리더쉽 중 좋았던 것은 '공론의 장' 마련과 혈연주의에 얽매이지 않은 '인재의 등용'이다. 그와 함께 조선을 이끌어 나갔던 유명한 황희, 맹사성, 허조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인재등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세종의 장점만을 나열한 것은 아니다. 세종의 좋았던 점을 고찰하려 한 것은 분명하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을 통하여 변질시키지는 않았다. 세종은 어린 시절 어머니 원경왕후 민씨와 아버지 태종의 사랑을 그리 많이는 받지 못한 듯하다. 당시 왕의 여러 아들 중 셋째 아들이었던 충녕대군은 그다지 큰 사랑을 독차지할 수도 없었으며 행동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은, 나름 어려운 위치였던 것 같다. 더구나 큰 형 양녕대군과 둘 째 형 효령대군 사이에서의 충녕대군은 날때부터 '왕'의 후계자가 아닌 그저 그런 셋 째 아들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저 그런 위치 였지만 '책벌레' 였으며 생각이 깨여있었던 인물이었다. 후에 왕위에 올라 그가 했던 정치적 업적을 보면 그의 생각이 얼마나 '조선시대'답지 않은가를 알 수 있다. 관노 출신이었던 장영실의 등용이나 집현전 설치에 대한 그의 집념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어불성설 같지도 하지만, 조선시대 답지 않은 생각을 지녔지만 아울러 다분히 '조선시대' 답기도 하였다. 진보적인 성향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급진적인 혁명을 꿈꾸지는 않았다. 아버지 태종 시대의 것을 배우려고 무던히 노력 했으며 그의 개혁도 한 순간에 이뤄낸 것이 아니라 벽돌을 쌓아 올리듯 하나 하나씩 일궈낸 결과물이다.
책을 다 읽고, 지금의 한국을 일궈낼 '지도자'와 한국을 쌓아 올릴 '전문가'를 기대해 본다. 이 기대감에 부흥할 모델링 중 하나가 '세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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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역사소설을 들여다 보며 다시금 역사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조선이다.' 라는 책을 받아보며 조선의 왕중에서도 최고의 성군으로 뽑히는 세종대왕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 지식인지 느끼게 되고...더 깊이있는 역사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나의 욕구는 세종에 대한 이 책이 더욱 반갑다.
조선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루고... 과학, 음악, 활자등 문화 또한 최고로 전성기를 누린 것이 세종의 치세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번쯤 사극에서 다루어졌을 법도 하건만 의외로 조용한 것이 참으로 의아하던 참에 요번에 드라마로 '세종'이 반영한다는 것을 알고는 세종이 어떻게 그리질지, 이 책의 세종과는 어떨지 앞으로 비교해보며 볼 생각에 '나는 조선이다.' 속으로 들어간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장에는 세종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나온다. 충녕대군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적장자가 아님에도 왕위에 오르게 된다. 세자인 양녕대군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그가 세종을 위해서 왕위를 포기했다는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무엇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여러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얽혔겠지만 태종은 양녕대군이 워낙 사고를 많이 친데다가.. 어리 사건을 계기로 양녕을 세자 자리에서 단호하게 내치고, 충녕을 세자로 삼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시대가 시대인만큼 자신의 성격을 닮은 양녕보다는 충녕으로 하여금 내실을 다지는 방향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2장에서는 세종의 업적으로 손 꼽히는 많은 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많은 위인들이 세종을 보필하여 세종이 성군이 되는데.. 일조한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황희정승, 맹사성과 김 종서, 장영실과 성삼문, 신숙주등 집현전의 학사들, 박연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위인들이 이 장에서는 인물별로 소개가 된다. 세종은 세자교육을 받지않고 왕이 되어 그가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이 각 분야의 전문가를 확보하는 것이였다. 능력이 있다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혹여 잘못이 있더라도 능력이 된다면 그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들을 등용했다. 정치면 정치, 군사면 군사, 과학, 음악 분야의 최고 인재를 선택해서 실무를 맡기고... 이들에게 물질적 원조를 아끼지 않아 마음껏 작업하게 하였다. 모든 일의 발안은 세종이 하였고, 최고의 전문가들이 일을 하였고, 또한 세종은 총감독의 역할을 맡아 일을 추진해 나갔다. 한글을 창제하려는 세종의 입장에 더욱 관심이 갔다.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위해 세종이 글을 배우게 하면 부모에 효도하고... 나쁜 짓을 안할것이다. 하여 한글을 만드나 한자의 위상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한글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한자의 위상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한글은 공부 못하는 상놈이나 쓰는 말이라며 언문이라고까지 했던 것이다. 세종이 중국의 사대주의 사상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그의 생각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장영실을 시켜 조선의 시간인 자격루를 제작하게 한 점이나 조선 본래의 음악인 향악을 쓰고자 하였으나 당시의 음악 제도 대부분이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었고.. 음악의 이상에 다가갈수록 중국의 것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세종은 중국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을 사용하려고 했다는 거. 그 점에서 볼 때 세종은 중국의 글자가 아닌 우리 글을 더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3장에서는 '빛이 강할수록 어둠도 짙은 법'이라고 하여 세종의 치적에 가려져 있는 부분들에 대해 쓰여져 있다. 세종이 운동은 싫어하고 책만 좋아하는 책벌레이다 보니 비만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지만 그 외에도 잦은 병치레를 했었나 보다. 낫지않는 눈병, 그리고 임질등 그의 병력과 22명의 자식들을 거느린 세종의 여자들, 내명부의 일에 대해 언급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세종이 승하한 후 문종이 즉위하나 일찍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지만 다시 골육상쟁이 일어나 조카를 죽이고 수양대군이 왕 위에 오르게 된다. 세종이 죽은 뒤의 골육상쟁은 이미 세종 시대 때부터 뿌려졌던 재난의 씨앗이 자라난 결과였다.
숨가쁘게 세종에 대한 면면을 읽어나갔다. 감히 이 얄팍한 지식으로 세종을 평한다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 좀 더 지식을 넓히거나 아니면 지식있는 분들에게 ㄱㅡ 부분은 양보한다. 나는 다만 세종에 대해서 단지 위대한 임금이니 성군이니 대왕이니 하며 그에 대해 좋게만 생각하는 게 다였는데... 다른 부분에 대해 더 많이 알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을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 드라마를 통해 만나게 될 세종의 모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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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종대왕일까? 왜 책 제목이 ‘나는 조선이다’일까? 저자가 생각하는 조선 시대를 대표할만한 왕이 세종대왕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시대가 원하는 지도자로 세종대왕을 닮았으면 하는 바램에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세종대왕의 업적만이 아닌 인간 세종과 업적뒤에 가려진 그림자를 이야기 하고 싶어서일까? KBS 에서 대왕세종을 방영 한다는데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보니 내가 알고 있는 앝은 세종에 대한 지식 외에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드라마 내용까지 궁금해진다.
설날 아이들이 받은 1만원권 지폐에 초상화가 있기에 국민 모두가 아는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왕이기에 세종 대왕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세종에 대한 지식으로는 단연코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음에 새삼 놀랐다. 아이들 위인전으로 함께 읽은 세종 대왕은 너무나 책을 많이 읽어 ‘전하, 쉬셔야하옵니다’라고 했다는데 정말 많은 책을 읽고 생활에 도움되는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겨주신 고마운 왕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세종이 어떻게 왕위를 이어 받게 되었는지 왜 말년에 갖은 병으로 고생하다가 막내 아들의 집에서 쓸쓸히 돌아가셨는지에 대해서는 뛰어난 업적에 가려 알려주는 책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인간 세종에 대하여 상세하게 알려주고 세종이 훌륭한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을 가졌기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대로 그 능력을 대신할 전문가들을 길러내어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업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로 걷다 보면 화단과 가로등 옆에 키 작은 비석을 본 적이 있는데 그냥 이 곳에서 세종대왕이 태어났구나 했는데 비석이 내용이 이러했는지 몰랐다.. “서울 북부 준수방에서 겨레의 성군이신 세종대왕이 태조 6년(1397년) 태종의 셋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셨다.”
세종은 1397년 태조 6년, 4월 10일에 태어났지만 태종 실록에 바로 실리지 않고 세종실록에 실려 있다니 참 의아했다. 이미 세자로 책봉될 형 양녕대군이 있기에 세종은 그저 왕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부모의 관심 밖이라 오히려 편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양녕대군이 ‘어리 문제’로 태종 18년 6월 6일 폐세자가 되고 충녕대군 세종은 세자로 책봉된지 두 달만에 왕으로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어느 시대이건 훌륭한 인재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세종의 시대에는 신분에 상관없이 인간관계가 나쁘든, 부정축재를 했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정책을 기획하는 사람은 세종이고 그걸 실행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조화로움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건국 이래 평화로운 시대였기에 문화 진흥 정책과 집현전의 육성은 가능했으리라 여겨진다. 세종의 시대는 왕조의 시대가 아닌 초보적인 민주주의 정치 시대로서 왕 혼자 결정하는게 아니라 신하들에게 열린 의견을 묻고 최종 의견을 결정했다. 그러다 세종이 나이가 들어 각종 병에 시달리게 되면서 토론 정치에서 세종이 말도 안되는 고집으로 밀어 부치는 일이 생기면서 독재자라는 말이 혹시나 나오게 된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또 세종을 가장 많이 닮은 문종이 좀 더 건강하게 오래동안 살았더라면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게 되었을까? 상상해본다. 말이 없는 역사 속 인물의 업적이 아닌 가족사와 그 시대의 여러 인물에 대한 이야기, 후대가 평가하는 입장을 들여다본 시간이 즐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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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사람, 삶, 그리고 여인들
그 시대는 피흘리고 격변의 시기였겠지만
역사속에 만나는 이야기들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틈틈히 나타나는 저자의 생각들도 재미있었고,
이야기 구성도 쉽고 편하고 좋았다
사람을 아우르는 정치를 한 왕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것 자신의 주변에
뛰어난 인재를 많이두는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들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그래, 요즘말하는 누구줄 잘서서가 아니라
능력이있다면, 과감히 인재로 쓸주 아는 그런왕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고 찬란하게 지키게 만들어 준 왕
그래서 세종대왕으로 불리우고 또 영원히 그렇게 기억될 왕
우리 시대는 어떠한가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가!
후세 2010 역사서의 어떠한 책제목을 보게될까..
궁금하기도해지기도 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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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왕국 대한민국에 사극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정조와 세종대왕을 중심으로 한 문화방송 <이산>과 한국방송<대왕세종>은 시청률에서 상위에 올라있다. 이런 열풍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서도 이어가고 있다. 책과 드라마가 서로 이끌어 주고, 밀어주면서 열풍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조와 세종을 다룬 역사서는 어떤 왕들보다 인기를 누리면서 끊임없이 방행되고 있다. 이제는 조금 식상한 생각마저 들 정도다.
<세종, 나는 조선이다>은 이런 열풍에 동참한 책이지만 마지막 부분에가면 세종대왕에 대한 조금 다른 시각을 담고 있어 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실 세종대왕을 한 권으로 다룬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으로 많이 알려졌고, 다른 이들이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비슷하게 썼다가는 식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가 적어도 쓰기 힘들지만 자료가 너무 많아도 쓰기 힘든 것이 책이다.
세종대왕을 말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태종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종, 나는 조선이다>는 태종을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불행한 아들"이라고 말한다. 아버지 태조가 그토록 사랑했던 세자 방석을 무참히 살해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했지만 완전한 회복은 하지 못했다.
세종 어머니 원경왕후는 강한 여성이었다. 남편 이방원이 두 번의 왕자난을 통하여 정권을 잡는데 원조했고, 동참했던 여성이다. 하지만 네 명의 동생들은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태종의 외척 제거 논리 때문이다. 남편이자 동지였던 태종은 외척이 왕권을 도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세력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척에는 세종 정비였던 소헌왕후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심온이 "나라의 힘은 한 곳에 나와야 한다"는 말 한마디로 비명에 죽어갔다. 사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당시 왕은 세종이지, 태종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종은 처남들처럼 사돈인 심온을 제거했다.
세종은 애초에 왕이 될 수 없었다. 국본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양녕대군이 충녕이 왕이 될 재목으로 알고 스스로 미친척 했다고 말을 하지만 <세종, 나는 조선이다>는 조금 달리 본다.
폐세자되는 결정적 사건인 '어리사건' 때 국본은 충녕에게 "어리의 일을 네가 아뢴 게 틀림 없다"고 했다. 즉 국본은 기생 어리를 궁궐에 들인 것을 아버지께 아뢴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태종과 세종. 하늘 아래 두 태양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것도 4년이나. 하지만 조선 3, 4대 왕은 4년 간 하늘 아래 두 태양으로 존재했다. 이는 태종이 선택한 일이다. 세종은 세자가 된 지 불과 두 달여. 지금 우리 생각으로는 32년간 성군으로 살았던 세종을 생각하기에 집권 초기 권력기반이 탄탄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태종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알 수 있다. 4년 동안 그는 세종을 탄탄한 권력으로 세웠고, 가르쳤다. 대마도 정벌 같은 사건은 인턴왕이었던 세종에게는 중요한 배움이었다. 그리고 태종이 승하하자 그는 아무 어려움 없이 조선을 최고의 문화시대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세종' 우리는 그에게 '대왕'이라는 존칭을 올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진정 탁월한 군주였고, 성군이었다. 하지만 어떤 일도 혼자 할 수 없다. 하물며 나랏일이랴. 세종에게는 진정한 신하들이 있었으니. 바로 이들이다.
"세종시대 조종 안에서는 과감하게 결단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시무시한 일거리를 내려주는 사장(세종), 조금 싹수만 있다 싶으면 호되게 괴롭히는 부장(황희), 시시콜콜하게 원리원칙을 내세우는 고집불통인 과장(허조), 밑에서 막대한 일에 치이고 스트레스에 시달릴 조선의 관리들에게 오아시스(맹사성)."(본문 119쪽)
재능과 능력이 있다면 조금 있는 허물을 덮었다. 그 허물이 나랏일을 위하여 해가 되지 않는다면. 세종은 이들을 통하여 수많은 업적을 남긴다. 훈민정음, 자격루, 조선의 음악, 활자제조, 조선의 정체성을 세운 오례의 정리 등등. 이는 세종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재들과 함께 이룬 업적이다. 그 중 집현전은 세종이 직접 세운 것은 아니지만 세종은 집현전을 통하여 인재를 양성했다. 여기에서 <세종, 나는 조선이다>는 집현전을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본다.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지식의 요람이었던 집현전이었지만, 이들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그들은 학자였지 정치가는 아니었다. 최항이나 신숙주를 제외하고 집현전 출신의 많은 사람들은 크게 출세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큰 문제는 집현전이 어디까지나 세종 개인의 인재들이었다는 사실이다."(본문 265쪽)
공부는 할 줄 알았지만 정치력을 발휘하는 훈련은 받지 못했다. 아마 계유정난이나 단종 복위 사건 때 이들이 정치력을 발휘했다면 역사는 조금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세종은 이들에게 책에만 매진하게 했을까? 책과 현실 감각을 동시에 심어주지 못했을까? 집현전은 결국 세조 등장 이후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다.
<세종, 나는 조선이다>는 조선 시대 때, 가장 참혹한 비극을 계유정난과, 정축지변을 든다. 세조를 맷돼지 한 마리로 비유하면서 30년 동안 세종이 키워왔던 인재의 꽃밭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데 채 3년이 걸리도 않았다고 혹평한다. 조선은 이후 내리막길을 걷을 수밖에 없었다. 성종도, 정조는 세종을 닮고자 했지만 같을 수 없었다. 세조가 그토록 참혹하게 인재들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과연 달랐을까? 아비와 자식이 어찌도 이렇게 다른가?
그토록 뛰어났던 왕은 두 번 다시 조선에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세종 32년을 조선조 527년은 우려먹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중요하게 볼 것은 세종은 사람을 쓸 줄 알았고, 볼 줄 알았고, 기를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자신이 인재였고, 중심이었다. 우리 시대 사람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 <세종, 나는 조선이다>는 말대로 "세종은 나라가 자라나고, 문화가 자라나고, 사람이 자라날 수 있는 때를 마련했다. 그의 안목은 현재에만 머물지 있지 않았으며, 수백년, 혹은 그 훨씬 너머까지도 뻗어 있었다. 세종은 과거의 왕이되 동시에 미래의 왕이었으며, 그리고 조선, 그 자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