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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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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고전을 다시 읽어 보자는 계획을 나름 세우고 두번째 읽은 책이다. 한달에 한권은 꼭 읽어야지 하던 참에 고려대학교 김재혁교수님의 번역으로 새로 나온 '갇힌 혼을 가로지르는 김재혁 교수의 아름다운 번역' 이라는 소개글이 표지의 띠지 같은 않은 띠지속 꽃과 함께 주인공 한스의 추웠던 마음같기도 하고 한스 고향의 풍경을 왠지 아름다운 번역이라면 자연이 자연스럽게 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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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고전을 다시 읽어 보자는 계획을 나름 세우고 두번째 읽은 책이다. 한달에 한권은 꼭 읽어야지 하던 참에 고려대학교 김재혁교수님의 번역으로 새로 나온 '갇힌 혼을 가로지르는 김재혁 교수의 아름다운 번역' 이라는 소개글이 표지의 띠지 같은 않은 띠지속 꽃과 함께 주인공 한스의 추웠던 마음같기도 하고 한스 고향의 풍경을 왠지 아름다운 번역이라면 자연이 자연스럽게 녹아 눈 속에 시들어 가는 민들레 같아 보이는 저 불쌍한 풀에 갇힌 영혼 까지도 자유를 줄듯한 끌림에 책을 펼쳐 읽게 되었다.

 

 

수레바퀴 아레서가 정식발표된 1906년 독일의 교육환경을 대충은 엿 볼 수 있다. 학교에서 소위 천재로 불리던 소년들은 정서적 소양과 인성보다는 천재니까 다른이들과 다른 특별한 교육 아마 딩시 성직자가 되는 길이 국비로 이루어 지는 최고의 길이라 생각한 학교나 부모들이 대부분 이었던 것 같다. 오직 한명만이 그런 길을 가게 되는 한스를 안타까워 할 뿐 모두 고삐를 조으고 채찍을 휘두르른 짓을 기꺼이 했다.

 

 

현재 100년 하고도 한참이 지난 시점에 달라진 것은 뭐가 있을까 싶다. 여전히 아이들은 학교에서 집에서 수학문제에 문법, 외국어와 고등교육을 위한 스팩을 쌓기에 여념이 없다. 내가 요즘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고전을 읽히고자 독서논술을 다시 시작하면서 몇가지 조사해본 결과 너무나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착각을 하고들 있었다. 학생과 어머니들의 말에 의하면 책을 많이 읽는 다고들 한다. 그래서 어떤 책을 읽었는지 물어보면 대게다 만화로 된 책과 지식습득을 위한 책이다. 동화도 글이 많으면 읽기 싫어하고 고전은 아주 어릴때 어머니가 읽어 주신 명작외는 별로 읽지 않는 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렇다면 한스가 살던 시절과 달라진건 더 삭막하고 지식습득 위주의 학교 교육과 부모들의 성공 채찍밖에 없다는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불안하고 안스러운 마음이 마지막 한스의 운명을 말해 주듯이 늘 1등만을 강요당하던 아이들은 결과가 어떻게 되던 인간다운 삶이 아닌 기계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고 한스같은 힘든 시기와 결과가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청소년들의 잘못된 선택들은 기성세대의 잘못 닦아놓은 길과 어긋난 기대가 주는 결과라 생각한다.

 

 

작품해설에서 인간의 기본속성을 악한 것으로 보고 하느님의 품에 들기 위해서는 이런 악한 것을 버려야 한다는 원칙과 이로 인한 자연적 재능과 개성의 저해는 가장 문제시 되는 대목이었다. 라는 글을 읽으며 이글이 자전적 소설이며 헤세의 고뇌가 이런 대작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고맙기는 하지만, 만약 헤세가 글을 쓰지 않고 첫번째 자살이 미수로 끝나지 않았다면 한스의 마음은 아무도 모르고 덮어 졌을 것이다. 한스는 헤세이기 때문에 소설 속의 주인공은 파멸해도 그것을 쓴 작가는 또 한 단계의 발전을 이루어 낸다. 말이 딱 맞는 말인 듯하다.

 

 

나는 한스같은 인물이 줄어 들어 종내는 사라지길 바라면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의 부모들에게 아이들은 흙을 밟고 자연을 느끼고 인문, 고전을 읽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세뇌시킬 것이다. 그 결과가 빨리 보이지 않는다고 자꾸 비료만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자연의 바람, 비, 태양의 기운을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맘껏 느끼게 하고 싶다.



y*****i 2013.02.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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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영혼의 울림 [수레바퀴 아래서]
"순수 영혼의 울림 [수레바퀴 아래서]" 내용보기
줄거리는 간단하다. 자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른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만들어진 길을 걷게 되는 여린 소년 한스 기벤라트. 따라서 단순 획일화된 공부에 전념하여 수도원에 들어가 엄격한 주입식 교육을 받게 되다가 그곳에서 만난 자유로운 영혼, 하일러를 통해 사고의 전환을 맞게 되며, 그로인해 사춘기 속에서 조율되어지지 않는 내적 갈등과 끊임없는 번민을 낳고, 그 결과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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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간단하다. 자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른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만들어진 길을 걷게 되는 여린 소년 한스 기벤라트. 따라서 단순 획일화된 공부에 전념하여 수도원에 들어가 엄격한 주입식 교육을 받게 되다가 그곳에서 만난 자유로운 영혼, 하일러를 통해 사고의 전환을 맞게 되며, 그로인해 사춘기 속에서 조율되어지지 않는 내적 갈등과 끊임없는 번민을 낳고, 그 결과로 수도원을 자퇴해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한 번 원치 않는 대장간의 견습공이 됨과 동시에 자신의 의지를 억누르는 비관적인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여 꺾여진 순수를 부여잡고 하얀 영혼 한스 기벤라트는 자살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미 획일화에 고착된 어른들에 의해 권력과 부조리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잣대가 만들어지고, 꿈과 창조로 한껏 부풀어야 할 소년의 개성에 권위적 칼날로 가해져 한스의 마음 곳곳이 보이지 않는 선혈로 낭자하다. 그리고 철저히 그 순수를 뭉개버리는 과정은 한스의 자살과 수도원 밖으로 내쫒겨진 하일러의 싯귀의 처지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번민과 갈등 속에서 자살을 택한 한스 기벤라트를 통해 작가는 개인에 부합한 능력이나 개성을 말살하는 사회의 권위적인 흐름에 경종을 울리게 하며 오랫동안 작가 자신이 품어왔던 고통의 짐을 해소했다. 그리고 한스의 친구 하일러를 통해 헤세의 자아가 추구하는 이상형을 뚜렷히 드러냈다.

 

한스의 자아의 내적 갈등과 심리의 이동, 그리고 순간순간의 감정 변화를 한스가 바라보는 자연 상태와 주위 배경을 통해 세밀하고 촘촘하게 처리했는데, 이 작품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풍경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남다른 통찰력, 자유자재로 표현과 비유를 마음껏 주무르는 헤르만 헤세가 얼마나 뛰어난 작가인지를 여실히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대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난해하다고 이야기 하며, 또 있는 그대로, 묘사와 묘사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고 정확하게 번역해 내기란 여간해서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번역가가 그만큼의 문장력과 철학적 뒷받침이 수반되어야만 원문에 가깝게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번역은 독문을 전공하였고 오랜 기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세계 속에서 한 세월을 보낸 저력을 자기고 있는 고려대 교수가 맡았는데, 헤세의 쏟아져 내는 온갖 형용과 수식을 최대한 그대로 받아서 펼쳐낸 듯 싶다. 그로인하여 보다 섬세하고 밀도 있는 해석에 의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헤세의 신선한 산소를 맡게 되었다고 생각을 한다.

 

죽음의 올가미를 뒤집어 쓰고 마침내 영원한 평온을 갖게 되는 한스 기벤라트, 줄거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스의 무덤가에 모인 사람들 중에 구두장이 플라이크가 한스의 아버지에게 내뱉은 의미 심장한 말이 이 책, [수레바퀴 아래서]에 담은 작가의 핵심 전달 내용이다.


" 저기 저 양반들이(어린 한스의 생각에 강제로 자신들의 꿈을 투영시킨, 그리고 이제 와서는 손을 놓은 채 한스의 죽음을 애도하러 온 교장선생, 마을목사, 선생들) 한스를 이 지경으로 만든 공범자들이에요. 그리고 한스의 아버지 당신과 저도..."

 

어쨌거나 한스는 죽고 그의 영혼은 섬세하고 치밀하게 묘사되었던 한스 주위의 자연 풍경이나 여러 배경에 포근히 감싸여 저 멀리로 떠났다.

 

주관적으로 봐서, 헤르만 헤세는 완벽주의에 가까운 심미주의자이고 순수의 결정체처럼 깨질 것 같이 투명하고 여리며 치밀하고 섬세하다. 본인 스스로가 자살 시도로 인해 인간의 한계를 뚫고 나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을 경험했을 것이며, 자아 속에서 온갖 사투를 벌이며 영원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으리라.

s**********4 2013.02.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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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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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지성 헤르만헤세의 아픈 성장소설이다.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마을에서 자랑이 된 한스 기벤라트라는 소년의 성장을 통해 무엇이 진정한 교육인가를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전국 수재들이 모인다는 수도원에 입학하여 아버지, 교장선생님, 고향마을 어른들이 원하는 꿈을 꾸게된다. 같은 기숙사방을 사용하게 되는 헤르만 하일너를 만나고 또다른 친구의 죽을 맞게 되면서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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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지성 헤르만헤세의 아픈 성장소설이다.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마을에서 자랑이 된 한스 기벤라트라는 소년의 성장을 통해 무엇이 진정한 교육인가를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전국 수재들이 모인다는 수도원에 입학하여 아버지, 교장선생님, 고향마을 어른들이 원하는 꿈을 꾸게된다. 같은 기숙사방을 사용하게 되는 헤르만 하일너를 만나고 또다른 친구의 죽을 맞게 되면서 모든것이 변하기 시작한다.

 

누구에게 무엇을 배워하는가? 누구와 만나 친구가 되고 누구를 존경하고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아마도 살아가면서 수없이 자신을 향해 던져온 질문들일 것이다. 정해져 있는 것은 없다. 성장하며 스스로 배우고 마음이 이끄는 그런 성장이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게 놔주질 않는다. 무언가에 묶여 그들이 원하는 이미 정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 한스 기벤라트는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된다. 

 

누군가를 성장시켜 올바른 인간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환경들이 작용한다. 이는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반영되기 일쑤다. 바로 올바른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육은 그 시대상을 대표하는 너무나도 중요한 자화상이다. 무엇이 진정으로 사람을 일깨워주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참교육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아이들을 가리치고 있는 현실속에서 해법이 나오길 기대해 보는것은 나만의 걱정거리가 아닌가 생각 된다.

 

헤르만 헤세의 또다른 작품인 데미안의 이야기를 빼놓을수 없을것 같다. 수레바퀴 아래서와 같이 헤르만 헤세의 대표적인 성장소설이기에 서로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단숨에 읽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색채가 강하게 배어나온다. 보다 내면적이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친구로 등장하는 데미안과 헤르만 하일러를 만나고 이를 통해 깨닭고 성장해 나간다는 전개 방식이 유사하다. 이것이 두 작품을 이어주는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장을 덮으며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를 떠올려 본다. 진정한 교육을 실천하고자 했던 키팅 선생님의 마지막 얼굴모습과 죽음을 선택할수 밖에 없었던 꿈을 읽은 학생, 한스 기벤라트의 모습이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n******s 2013.02.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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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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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아주 유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제목은 익숙하지만 내용을 처음부터 일독하지는 못해서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접해 보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내용을 읽으며 오래된 작품임에도 현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책속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모습 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놀라웠다. 학교에서의 개성을 말살한 획일적인 교육과 권위주의적인 교육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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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아주 유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제목은 익숙하지만 내용을 처음부터 일독하지는 못해서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접해 보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내용을 읽으며 오래된 작품임에도 현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책속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모습

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놀라웠다.

학교에서의 개성을 말살한 획일적인 교육과 권위주의적인 교육제도가 헤르만 헤세가 살아온 시대와

현시대가 별반 다르지 않음이 안타까웠다.

 

이 책의 이야기는 슈바르츠발트의 조그만 산골 마을에서 선생님과 온마을 사람들에게 천재라 인정받는

이 책의 주인공인 한스 기벤라트가 어른들이 정해놓은 틀에 맞추어진 인생을 살다가 비참한 생애를 마

치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사춘기에 접어든 주인공의 내면의 심리상태를 잘 묘사하고, 주위의 자연풍경에 대해서도 섬세하

게 잘 표현하였다.

주인공이 자연을 통해 자유를 갈망하는 심리적인 표현법에 저자의 섬세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억누르는 주변세력에 반항할 줄 모르고 순응하는 주인공과는 달리 그런 환경에 도전하고 당당하

게 맞서는 한스의 친구 하일너의 강건한 모습은 주인공과 대비되지만 서로 절친한 사이로 발전하여 우정

을 쌓아가는 내용이 훈훈하게 와 닿았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내용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주인공의 이름인 한스도 자신의 동생이름으로 학교에서 척추가 부러진 뒤로 늘 수레바퀴 아래 머물러 있

는 동생의 모습을 통해 동생이 학교에서 겪었던 고통을 이 작품에 담았다고 진술한 적도 있다 하니 그래서 제목이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거나 현재나 청소년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과정에서는 크고작은 성장통을 누구나 겪는 과정인가 보다.

이 성장통을 어른들의 채찍질로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주기보다는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보듬어 주고 다독여 준다면 우리 아이들이 올바른 길로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주인공 한스의 모습을 우리는 가끔 주위나 매스컴을 통해 많이 접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정해 놓은 틀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다가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모른체 살아가는 일은 없어야겠다.

 

이 작품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꼭 일독하여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m******1 2013.02.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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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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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나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수레바퀴 아래 깔리는 학생들은 많을 것 같습니다. 어디 학생뿐이겠냐마는 학생에게 더욱 초점을 마춰놓은 <수레바퀴 아래서> 를 통해 이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영혼의 방황을 만나봅니다. 주인공 천재 소년 한스 기벤라트를 통해일방적인 교육 시스템이 천재들뿐만 아니라 우리네 청소년들을 무거운 현실 앞으로 내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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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나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수레바퀴 아래 깔리는 학생들은 많을 것 같습니다. 어디 학생뿐이겠냐마는 학생에게 더욱 초점을 마춰놓은 <수레바퀴 아래서> 를 통해 이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영혼의 방황을 만나봅니다. 주인공 천재 소년 한스 기벤라트를 통해일방적인 교육 시스템이 천재들뿐만 아니라 우리네 청소년들을 무거운 현실 앞으로 내보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는 것처럼 주인공도 자신의 길을 가고 싶지만 기성인들은 다른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수레바퀴는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어야 제대로 나아가는데 그냥 수레바퀴 아래 깔리도록 밀어부치는 것 같습니다.

 

전혀 의심할 것 없이 재능을 타고난 아이 한스 기벤라트. 천재 소년 한스는 기대 속에 입학하고 창백한 얼굴로 신학교에서 자퇴하기까지 자신의 길 보다는 누군가의 길 속에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아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버림받은 존재처럼 느껴지는 자신에 대해, 누군가를 향한 별을 찾아 나서는 한 마리 길 잃은 양인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삶과 모든 청춘이 소중하고 유일한 자기를 찾고자 할 때 좀 더 현명한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왜 앞서야 하는지,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만드는지 한스 자신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도 스스로 알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누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스는 스스로 모릅니다. 어쩌면 나도 그런 청소년 시기를 지나온 것 같아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천재 소년이던 그렇지 않던 모두가 소중한 삶인데 말입니다.  

 

<데미안>과 함께 자서전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느낌을 받았는데 해설을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유년기 시절 자신의 행적을 소설 속에 듬뿍 담아놓은 것 같습니다. 짧은 문장의 <데미안>에 비해 긴 문장으로 인해 좀 더 집중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헤르만 헤세가 이 작품을 남긴지 110여년이 지났는데데 불구하고 이 시대의 학교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종영한 텔레비전 드라마 <학교2013>가 생각나는 한 편의 소설이였습니다.  

 

 

 

 

 

h******w 2013.02.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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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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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날 청소년기에 읽었던 '데미안'을 명확하게 기억하진 못하지만 우유뷰단한 친구에게 자유로운 영혼과 구원의 손길을 뻗치던 그 대단한 존재 '데미안'만은 잊을 수 없다. 어렵고 잔잔하고 깊이있는 문장들이 때론 어린 내게 무겁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틀에 박힌 교육의 현장 한 가운데서 사춘기를 제대로 겪을 겨를도 없이 스치듯 지나가는 과정에서 읽은 그 책은 영혼의 친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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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어린 날 청소년기에 읽었던 '데미안'을 명확하게 기억하진 못하지만 우유뷰단한 친구에게 자유로운 영혼과 구원의 손길을 뻗치던 그 대단한 존재 '데미안'만은 잊을 수 없다. 어렵고 잔잔하고 깊이있는 문장들이 때론 어린 내게 무겁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틀에 박힌 교육의 현장 한 가운데서 사춘기를 제대로 겪을 겨를도 없이 스치듯 지나가는 과정에서 읽은 그 책은 영혼의 친구를 만난 듯 했다.

그리고 그 책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불혹의 나이에 접하게 됐다. 이 뭉클함과 잔잔함 속에 녹아있는 사춘기의 애잔함!

명작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를 더해간다고 했던가! 중년으로 가는 이 시점에서 여유롭기는 커녕 그 두려웠던 사춘기 시절처럼 왠지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요즘 마음의 안정을 조용하게 되찾게 해준 책인 듯 싶다.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 외모상으로도 연약하기가 이루 말할수 없고 어릴 적 부터 두각을 나타내 아버지의 기대와 나아가서 마을의 유망주로 떠오른 하얀 얼굴의 공부벌레! 공부만 잘한다고 어른들이 전력질주해서 그쪽으로 밀어부치는 행위가 과연 정당하고 옳은 일인가? 그 시대가 그런 인간형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오랜 교육 방식에 개몽되지 못한 부모의 교육 방식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리화 해 본다면 지금의 우리시대는 어떤가? 한 세기를 넘어섰고 부모의 의식은 개몽에 개몽을 거듭해 부모가 자식의 스펙을 쌓아주는 경지에 이르렀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춘기의 아이들은 더 자유롭고 나름의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갖고 살고 있는가? 누가, 무엇이, 고귀하고 순수해야 할 나이의 아이들을 지독한 고독과 악독한 교육의 현장으로 내몰고 있단 말인가. 씁쓸한 기운을 책을 다 읽은 후까지도 못내 지울 수 없었다.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신학교를 들어간 한스는 자신의 본문에 맞게 공부에 온 정신과 마음을 쏟아 붓지만 자연을 벗하고 느긋한 그만의 세계를 잃어버리면서 마음이 병들기 시작한다. 마침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친구'헤르만 하일너'를 만나지만 어른들이 추구하는 세계가 옳은 길이라 믿고 있던 한스는 점점 문제아로 낙인 찍히고 친구와의 교류를 통해 사춘기를 관통하면서 새로운 사고를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물론 어디나 그렇듯 그 틀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인간유형도 많다. 하지만 다른 사고와 다른 생김새를 가진 무리를 가둬두고 모두 똑똑한 수재가 되기를 강요하는 그들은 누구를 위한 교육을 하는 것인가. 헤세가 하고픈 말이 그대로 들어난 문구가 있다.

 

아버지와 몇몇 옛 선생들의 야비한 야망과 학교가 이 연약한 인간을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왜 그는 인생에서 가장 민감하고 위험스런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 했던가?

 

 청소년기를 지나고 청년이 되어 가면서 한스는 어린 날 자신을 되돌아본다. 친구가 많거나 큰 사고를 일으킨 적은 없지만 조용한 가운데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의 소소한 일상을 사랑했으며 낚시를 즐기고 수영을 좋아했으며 풀밭에 누워 명상 하기를 좋아했다.

그랬던 그는 어느 날 푸른 옷을 입은 기계공이 되어 있었으며 이기지 못하는 술에 흠뻑 취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가 느낀 현실의 무게는 어떻게 다가왔으며 그 시절을 그리워할 여유도, 느끼지도 못하게 된 한스는 어떤 삶을 선택하기를 희망했을까. 한스를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은 눈물겹다. 자신이 의도한 적도 없고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닌데 물흐르듯 흘러와 버린 현재의 나와의 조우!

어른들의 냉혹하리만치 단절된 대화. 우리나라 창소년 아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그 오랜 옛날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일까. 가슴이 저리다.

 

 인격 형성은 뒷전이고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가 쌓아주는 스펙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자신의 목적 의식도 없이 제 2차 성장을 치뤄내고 있다. 이 아이들이 더 불안하고 안쓰러운 것은 마땅히 대화의 상대도 들어줄 상대도 없다는 것이다. 불혹은 맞은 나 같은 사람은 심리적 불안을 겪고 있다곤 하지만 그 동안 쌓아둔 인생의 경험과 나름 관리해 둔 인간관계가 이 감정의 기복을 조용히 거칠지 않게 치료해 줄 것이다.

허나 이 아이들은 어떻게 그들만의 자유를 찾을 것이며 문득 찾아드는 자아의 존재감과 고독을 치유하고 성숙시켜 나갈 것인가?

학교에 밀어 넣고 눈가리고 귀를 막고 그 시기를 넘기면 된다고 얘기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고전적 문학 작품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감정을 치유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보다 중요할 것이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써 이 불타는 사명감을 어디다 쓸 것인가.

마지막으로 한스의 수도원 교장선생이 회유를 하면서 한마디 던지는 장면이 있다. 우리는 어떤 어른의 모습을 보일 것인가 생각해 볼 문제다.

 

"그래, 아무렴 그래야 해. 한스. 해이해지면 안 돼. 그랬다간 수레바퀴 아래 깔리는 거야."

w********8 2013.02.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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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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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책과는 거리가 멀어서 청소년 권장도서 한권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었는데.. 이제서야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어보게 되었다. 요제프 기벤라트는 중개업을 하지만 특별히 내세울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외아들 한스 기벤라트는 그 마을 슈바르츠 발트의 조그만 마을에서 촉망받는 마을의 자랑 기대주였다. 공부도 잘하고 마을사람들이 한스를 대견에하며 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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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책과는 거리가 멀어서 청소년 권장도서 한권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었는데..

이제서야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어보게 되었다.

요제프 기벤라트는 중개업을 하지만 특별히 내세울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외아들 한스 기벤라트는 그 마을 슈바르츠 발트의 조그만 마을에서 촉망받는 마을의

자랑 기대주였다.

공부도 잘하고 마을사람들이 한스를 대견에하며 신학교에 보내려고 노력했다.

한스도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공부를 하며 짬이 날때 산책하는 시간 외에는

공부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도 흐뭇해했다. 드디어 시험을 치르고 기대했던 신학교를 2등으로

합격해서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학교의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교육제도에 너무 어려워했다.

그러던중 헤르만 하일너를 만나 깊은 우정에 빠진다. 하일너는 한스와 전혀 다른면을 갖고 있었다.

자유분방하고 사고자체가 달라서 선생님들은 우려를 했고 수업시간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자

결국 하일너와 가까이 하지말라는 상담까지 받았지만 한스는 점점 하일너와의 시간이 좋기만 했다.

신학교에서의 수업조차 따라오지 못할정도로 성적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결국 정신병의 사유로

퇴학을 하게 된다. 무도병이라며 가정에 연락해 다시 한스는 고향으로 오게된다.

다시 마을로 오게된 한스는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보내게 된다.

아버지는 방황중인 한스에게 기계공을 권유하게 된다.

그러던중 동네 구두장이아저씨의 조카를 만나 반하게 되어 하일너와는 다른 깊은 사랑에 빠져버린다.

조카 엠마는 사랑의 깊은 기억만 남긴채 아무말 없이 떠나게 되고 또다시 방황하는 한스. 결국 기계공의 일을 배우며 작업장에서

직공들과 힘들게 일을 하게 된다. 직공들이 퇴근후 술을 마시자며 간곳에서 자신의 초라함과 자신이 가야할길을

헤매이며 끝없는 마음의 방황을 하는데... 결국 그날밤 바다를 보며 마치 바다가 부르듯 그속으로 빠져든다.

 

 

 

자연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예측 불허에 속을 알지 못할, 위험스런 존재이다. 인간은 미지의 산맥에서 굽이쳐

흘러내리는 강물이며, 길도 질서도 없는 원시림이다. 원시림을 벌채하고 깨끗이 정돈하고 무제한적으로 커 가는

것을 막아야 하듯이, 학교 역시 자연인을 부수고 억제하고 힘을 써서 아무렇게나 자라는 것을 막아야한다.

학교의 사명은 나라에서 만든 기본 원칙에 의거하여 인간을 사회의 유용한 구성원으로 만들고, 또 그의 안에

들어 있는 재주를 일깨우는데 있다. ... 철저한 훈육을 통해 궁극적인 완성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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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아무리 뉘우쳐도 소용없는 죄악과 소홀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앞에 들것에 실려 가는 것이 재단사의 아들이 아니라 그의 친구 하일너이며, 그의 배신으로 인한 고통과

분노를 저세상으로, 성적이나 시험 또는 사회적성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양심이 순수한가 아니면

순수하지 않는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저 세상으로 함께 가져가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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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학교는 해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정신들의 싹을 꺾어 버리려 온 갖 애를 쓴다. 그런데

후세에 우리 민족의 보고를 풍요롭게 만드는 이들은 선생의 미움을 받은 학생, 자주 벌을 받는 학생, 학교에서 도망치거나

내쫒긴 학생들이다. 그러나 어떤 학생들은 이들의 숫자가 얼마인지 어찌 알까? 묵묵히 반항하다가

자신을 소모하여 몰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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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헤르만헤세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했는데 ~자신을 소모하며 몰락한다.는 부분은 학창시절 자기 자신에대한

후회 같기도 하다. 반항한번 못한 한스 그를 지켜보는 아버지는 아들이 신학교에서 정신병이 있다고 연락을 해왔는데도

도와지 않고 냉소적으로 대하기만 한다. 그리고 소설 첫 부분에서 아버지를 천박한 인생으로 표현한걸 보면

실제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느낄수 있었다. 시대가 변했지만 교육제도에 대한 반발은 여전하고 내가 학창시절에 겪었던

미스테리하고 부당차별받고 무시당했던 일들도 학교라는 작은 사회집단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주입식교육과 엄격한 신학교를 나온 작가도 결국 자퇴를 하고 다른 학교에 진학했지만 또 다시 자퇴하고 서점에서 일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스의 죽음은 자살한 동생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글속의 감정에서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일같다. 반항한다고 해소되는 일도 아니고 소설속 한스 자신도 좀더 용감했으면 좋았을텐데..

왜 주변의 기대에 맞추려 했을까.. 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 아쉬움이 아마도 친구 하일너에게 자신의 부족하고

답답했던 점이 투영되었던것 같다. 한스의 단짝 하일너가 아마도 한스 자신이 갖지 못한 이상적인 자아가 아닐까?

헤르만헤세의  학창시절의 암울하고 억압받던 기억이 상처로 크게 작용했던것 같다.

 

나도 예전에 티비를 보며 유명인이나 방송인이 나와서 은사님 , 학창시절 선생님을 찾는걸 보면 학창시절 참 아름다운기억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부럽기도 했다. 나의 학창시절은 선생님들의 차별과 무시속에서 보내왔던것 같다.

지금 같으면 논리적으로 반박할수도 있었지만 그때는 왜 복종을 하고 반항을 못했을까 라는 답답함과 선생님이 준 상처는

아직까지 남아있는것 같다. 세월지 지나도 학교라는 집단의 문제는 끈임없이 생기도 제도가 바뀌고 또 새로운 방안을

찾는다.  (변한것이 있다면 내가 보낸 학창시절의 문제점들은 요즘 보편화되고 이슈화 되고 수면위로 올라와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건 예전과 달라진 점이다.)

중요한 것은 한스는 너무 자신이 진짜 무엇을 원하지는 잘 모르고 방황만 하다가 그 상황이 너무 괴로워 비극적 선택을 한것이다.

난 한스처럼 공부를 미친듯이 안해봐서 솔찍히 떨어지는 기분이 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이 하일너와 친해지는것을 보고 한스에게 너 그러다가  나중에 수레바퀴 아래서 깔릴지도 모른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 억압에 어린나이에 얼마나 괴로웠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누군가 충분히 한스를 잡아줄수 있었을텐데 .. 누군가 한명이라도 한스를 사람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대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아는분 중에 소설속 신학교 처럼 새벽부터 밤까지 공부만 시키고 견디지 못한학생들 몇몇은 자퇴할정도로 엄한 학교였다.

하지만 학생들중 서울대를 간 학생들도 많았다. 그속에서 무엇때문에 공부했는지 조차 모르고 힘들게 보낸 

학창시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였지만.지금은 불행한 기억속에서 어느새 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다.

결국은 자기 자신이 환경보다는 신념을 갖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c***i 2013.02.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