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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 가진 아름다움을 통해서 문화를 배운다. 한옥은 단순히 옛조상들이 기거했던 집에서 벗어나 문화를 반영하고 삶의 방식이 나타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옥이 가진 효율성이 매우 우수하고 놀랍다는 글을 예전에 본 기억이 있다. 화려한 서양 건축양식들의 건축물과는 달리 한옥은 이 땅의 사람들이 뿌리 내리고 살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과학적이고 효율적이며 안전한 생활 방식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우리의 뛰어난 건축물로 불리워도 좋을 공간이다.
'한옥과 함께하는 세상여행'은 우리네 한옥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서양의 여러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풀어내면서 서양의 건축물에서 발견할 수 없는 한옥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측면과 장점들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책이다. 한옥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왜 한옥이 우리의 생활과 맞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으로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한옥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지형적으로 서양의 건축물은 꼭대기에도 성을 짓고 생활했지만 풍수리지리적으로 우리네 한옥이 산꼭대기 위에 있는 경우는 없다. 허나 한옥은 주변 자연환경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사는 구조를 갖고 있다. 보기에 아름답고 화재에 강하지만 기본적으로 추위에 약한 서양의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벽난로를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다. 허나 우리의 한옥은 열효율이 뛰어난 건축물이며 화재를 대비해 집 밖의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책은 크게 두 개의 주제로 한옥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한옥으로 세상 읽기와 한옥 밖에서 세상 보기를 통해서 안에서 보는 한옥이 효율적이고 우수한 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한옥을 한 발자욱 떨어져서 한옥을 바라보기에서는 중국이나 로마 등의 문화를 들려주면서 한옥을 이야기한다. 특히 정조를 원만한다는 글에서는 왜?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정조 임금님이 좀 더 오래사셨으면 하는 아쉬움을 담은 글이란걸 알 수 있었으며 그 이유가 정조임금님의 실용적인 정치로 인해서 당대의 천재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을 통해서 한옥을 짓는 순서, 용도 등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한옥의 가치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나도 그렇지만 요즘 사람들은 경제적 가치와 편리함을 이유로 성냥갑 상자라고 불리우는 아파트를 선호한다. 무엇보다 갈수록 험하고 무서워지는 사람들을 피해 조금 더 안전하고 경비가 잘 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아파트가 생활하는데 편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허나 반상회를 비롯해 몇몇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귀농이나 전원주택, 아니면 작은 텃밭이나 정원에 꽃을 키울 수 있는 주택을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고 과감하게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귀농을 한 분도 계시고 넓은 정원은 아니지만 아이에게 흙을 만지게 하고 싶고 흙 속에서 새생명이 움트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개인주택으로 이사한 분도 계시다. 자신만의 공간을 중요시 생활하고 있는 현대인들도 이제는 나와 타인의 경계가 모호한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옥은 활짝 열린 싸리문만 들어서면서 바로 타인과 나라는 경계가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가만히 사극을 보면서 한옥의 싸리문을 떠올려보니 이 말이 저절로 이해가 된다.
한옥에 대한 이야기라 다소 딱딱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책의 분량이 조금 작은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한옥이 가지고 있는 우수성과 호율성, 가치를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였으며 한옥의 디자인이 한옥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효율성이 세계 여러 건축물에도 활용될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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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사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나는 한옥에 산다. 무슨 거창한 집에 사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은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로서는 살기에 좋은 공간에서 산다는 이야기다. 태어난 곳은 아니고 지난해 시골에 조그마한 한옥을 구입하고 이사했다. 물론 대도시에 집은 그대로 있고 주생활이 공간은 아직도 대도시 그곳이지만 주말이나 틈만 나면 시골집으로 내려온다.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나무기둥, 마루, 툇마루, 조금은 넓은 마당 그리고 서재까지 있어 그야말로 혼자 즐기는 공간이다.
이런 나를 두고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자기도 시골로 가고 싶은데 언제 갈지 모르겠다고 하며 부러워하는 부류와 불편한데 시골은 무슨 시골이라고 하는 부류다. 그것도 이사한 곳이 한옥이라고 하면 이 반응은 더 증폭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옥은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몸이 불편하고 조금 더 움직여야 하는 것을 감내하면 마음은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그 넉넉한 마음이 한옥을 선택하게 만든 주요한 이유이니 나로서는 몸이 조금 불편한 것은 그리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이곳의 한옥을 구입하기 전까지 인근 마을을 수 도 없이 돌아다니며 새로 생기고 있는 한옥마을들을 둘러 봤다. 새로 지은 한옥들은 하나같이 그곳에 살 사람의 기운을 압도할 만큼 큰 덩치를 자랑했다. 무슨 궁궐의 전각마냥 덩치 큰 집에서 주인인 사람이 왜소해 보이며 위축된다면 그곳에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마음 편안하게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양반대가집도 이처럼 사람을 누룰 정도의 모양새는 아닌데 말이다. 또한 모양은 한옥이면서 실내는 도시의 아파트를 그대로 옮겨온 구조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집이 조금은 낡았더라도 내가 그 집으로 들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말 그대로 살림집 한옥이 좋다. 4계절을 살아보니 더 정감이 가는 것이 한옥에서 사는 것이다.
이상현의 책 ‘한옥과 함께 하는 세상여행’은 그런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한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집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것 중에서 기본이 되는 의식주(衣食住) 중에 주(住)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이것만으로 한정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집은 문화를 품고 있다는 말이다. 한옥을 중심으로 우리들의 문화를 살핀다는 시각이 이 책을 더 돋보이게 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한옥을 바라볼 때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집의 영향력에 대해 살피고 있는 것이다.
‘한옥과 함께 하는 세상여행’은 한옥이라는 집, 즉 건축물인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집의 구성요소나 건축 재료에 중심 시각을 두고 한옥의 이야기를 살피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과 수 천 년을 함께해온 주거공간으로 이 속에 담고 있는 삶의 가치와 그 가치를 담보하는 집으로써의 한옥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한옥 이야기에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 빗살무늬 토기와 중국 역사를 함께 이야기 한다.
저자의 시각이 한옥이라고 해서 구시대적인 시각에 매어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차 벨로스터에서 읽는 한옥의 디자인’이라는 부분에서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소통과 통합’이라는 화두를 한옥과 연결시켜 보여주고 있다. 가장 현대사회적인 것이 디자인이고 이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이 창의성이라고 볼 때 한옥에서 살아온 한국 사람들의 창조적인 사고방식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확인하고 있다.
한옥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오는 동안의 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담보된 건축물이다. 사람이 사는 곳의 지형이나 날씨와 생활 방식에 대해 집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개방된 마당, 시원한 대청, 따뜻한 구들처럼 자연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해요구가 반영된 집이 한옥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옥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통해 완성된 집이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인의 정서가 곧 한옥의 정서이고, 한옥이 품은 문화가 곧 한국인의 문화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사람들의 주거형태는 변할 것이다. 하지만, 수 천 년의 우리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한옥의 기본정신은 그대로 이어져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주거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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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시골 한옥에서의 기억은 이제 콘크리트로 에워싸인 아파트처럼 밀봉되어 점점 사라져 가는것 같다. 학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면 멀리 집의 굴뚝에서 밥을 지으시는 구름보다 더 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이런 기억은 거의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것이다. 아니 지금도 경험하고 보자면 얼마든지 볼수도 겪을수도 있다. 하지만, 멀리의 기억이 아닌 이런 경험은 이제 쉽게 만나기 어렵다. 도시에서의 삶과 생활의 편리함, 그리고 부의 척도는 예전의 한옥을 떠나 콘크리트로 지어진 집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늘 편하고 좋을줄 알았던 그런 편리함의 집은 예전의 한옥과 초가집에서의 삶의 향수를 잊을수 없다. 이책의 저자는 한옥연구소를 운영하는 한옥 연구가다. 뉴스를 통해 이제 우리나라도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전통 가옥인 한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접했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한옥의 과학적 우수성을 높이 평가를 하고 있는것을 보고 뭔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의 말대로 많은 사람들이 한옥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막상 살것이냐고 묻는다면 관심만큼 쉽게 현재의 편한 삶을 버리지 못한다. 자라면서 겪은 한옥의 모습, 누구나 자신 있게 알것이라고 생각했던 한옥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책에 펼쳐진다. 한옥이 얼마나 우수했던가. 과거 중국의 문화 영향으로 한옥이 생겼을거라 생각했지만, 보기좋게 생각이 틀렸다. 우리나라만이 가진 독특하고 우수한 구들장 이 이렇게 과학적인줄 미쳐 몰랐다. 또 저자는 한옥의 공간구성 원리를 '소통'이라고 적으며, 신과 함께하는 한옥,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옥, 그리고 낮은 담장을 예로들어 이웃과 함께하는 한옥으로 분류해 아파트가 가지지 못한 장점을 두루 가진 것이 한옥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저자는 전통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에서 우리 전통의 한옥을 연구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홍도의 풍속화 '기와이기'를 살펴 이것이 집이 아닌 조선정부의 쉼터,정자였을 가망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 외국의 돌집과 비교해 우리나라 한옥의 구들에 대한 우수성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 한옥에 외국에 벽난로와 같은 형태의 고콜이라는 것이 있었다는것에 놀라웠다. 외국의 벽난로는 불이 많이 났지만 구들로 인해 난방시설이 따로 필요치 않았던 한옥은 조명겸 화로 역할을 고콜을 만들어 이용했다고 하니 얼마나 과학적인가. 한옥의 우수성은 구들과 마루를 통해 겨울과 여름을 동시에 대비할수 있었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한옥을 이제 쉽게 볼수 없다. 일부러 발품을 팔아야 볼수 있고 어디서나 사진에 담을수도 없다. 삶의 편리함만 추구했던것이, 과학발달의 척도가 우리의 과거를 잘라내는것이 아니었는지 다시한번 반성해 볼 일이다. 우리의 한옥을 지키려면 다시금 많은 사람이 그것에 대해 우수함을 알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안에서 살았지만 몰랐던 한옥에 대한 우수함, 그리고 편안함, 그 모든것들이 소중한 우리것이다. 작지만 큰 한옥의 내용이 이책에 담겨있다. 많은 사람이 이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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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책답게 내용도 아담하며 아기자기했다. 한옥의 부흥을 다시금 조명하게 된 계기는 조선시대에 해외에서 선교 등의 업무로 한국에 온 외국인들에 의해서 였다. 당시 선조들은 우수한 기술을 갖고 지혜롭게 한옥을 지어 주거지로 삼고 있었지만, 그 위대함을 실감하기에 어려울 만큼 한옥과 밀착된 삶을 살았다. 당시부터 시작된 관심이 현재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개방 소통형, 에너지 고효율, 지구환경과 생태계를 고려한 구조와 재료 사용 등은 세계 어디에 한옥을 내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탁월한 지혜가 살아 숨쉬는 삶의 역사다. 저자는 1부와 2부로 한옥을 바라보는 시각을 나누어 놓았다. 한옥 외부에서 바라본 시각이 재미있었는데, 특히 외국의 건축물과의 비교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외국에는 유명 건축물들이 많다. 반면, 한국은 경복궁, 사찰 등이 전부다. 대신 삶의 근거지인 한옥은 일반 주거지로써 최고의 가치를 지닌 채 외국의 유명 건축물과 비견될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서양 건축물은 미적 가치가 꽤 높은 건 사실이다. 동양과 서양의 미에 대한 관념이 다른 까닭에 비롯된 차이겠지만,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세계의 계몽성과 관대함이 한옥의 가치를 발굴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옥에 살아본 적이 있어서 편의성과 불편함을 모두 알기에 마냥 좋다고 할 수도 없다. 아파트가 편하긴 하다. 그런데, 한옥은 한옥만의 특별함이 있다. 한옥이라고 다 똑같진 않으니, 설계가 잘 된, 그리고 문화적 가치가 높은 한옥은 진정한 한옥이다. 요즘 개량된 한옥을 보면, 좀 창피하다. 게다가 한옥같지 않은 이상한 한옥도 많이 보인다. 저자가 설명한 내용대로 한옥의 가치를 재조명하여 다양성과 창의성을 살린 한옥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한옥을 외국에서 볼 수 있다면 더욱 흥겨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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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과 함께하는 세상 여행 - 한옥에 꼭 살아보고파....
어릴때부터 이유없이 궁을 좋아했고 옛 것이 좋고, 역사가 좋고 과거를 배워가는 그 과정이 좋았습니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말이 이 책을 읽다가 와 닿았습니다. 한옥 이야기를 하는데 왜 서양의 건축물 사진들이 나오는 것일까? 신혼여행을 스위스로 갔었는데, 스위스라는 곳의 자연의 아름다움도 함께 보긴 했는데, 정말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을 많이 본것 같아요.
정조 임금이 조금 더 조선을 다스렸었다면... 하는 생각의 공통점을 가지고 시작된 글. 한옥의 공간구성 원리를 한마디로 말하면, '소통'이다. 신과의 소통, 자연과의 소통, 타인과의 소통, 그리고 자신과의 소통. 결국, 사람이 사는 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그래서 한옥에는 우주의 모든 것이 어우러질 수 있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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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내 머리속을 맴돌던 건 두가지였다. 하나는 '자긍심(또는 자부심)'이라는 말이었고, 또 하나는 다산 정약용이 지냈다는 '여유당'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한옥 (혹은 고택)을 돌아보면서 이 집에서는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느꼈던 곳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여유당'이었다. 지금 찾아가보면 그 옛날의 풍취는 느껴지지 않는다. 집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홍살문도 그렇고 느닷없이 펼쳐지는 배다리 모양이라니... 우리문화를 사랑하자 하면서 있는 것 없는 것 모두를 한데 합쳐놓는 걸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억지스럽다고... 두번째로 '여유당'을 찾았을 때 그 뜬금없던 배다리를 보면서 얼마나 당혹스러웠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허황하다. 긍지를 느낀다는 말은 자신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가지는 당당함을 말함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자긍심'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던 이유는. 책 속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느낌을 전해받기도 한다.
한옥으로 세상 읽기 와 한옥 밖에서 한옥을 본다 는 주제로 우리의 한옥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이제 막 한옥에 대한 호기심에 눈을 뜬 내게는 멋진 여행이었다. 소소하게 느껴질수도 있는 중국사나 세계사를 들춰내며 우리의 한옥을 다시한번 바라보고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 주고 있음이다. 잘 몰라서 그랬겠지만 내가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구들에 관한 부분에서 그토록이나 커다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따로이 지면을 할애하면서까지 들려주었던 '여담'은 큰 울림을 주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나를 찾아왔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꿀 수 있게되어 나름대로는 좋았던 부분이기도 했다. 토기 하나, 그림 한점을 보더라도 우리의 정신을 찾아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지은이의 말은 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 같다. (그정도가 되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나야할테지만 말이다)
아파트에서 자란 아이와 넓은 마당이 있는 곳에서 뒹굴며 놀았던 아이는 분명 다를 것이다. 집이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한옥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조차도 한옥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는 말에도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속에서 끝없는 우리의 욕심을 보게 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처음 '여유당'을 찾았을 때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바로 그 '여유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던 사랑채였었다. 세상사는 것이 살얼음판을 밟는 것과 같으니 항상 조심하라는 뜻으로 지었다는 그 이름과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이었던 까닭이었다. 그토록이나 힘겨운 삶의 여정을 지나왔으면서도 저렇게 활짝 열린 사랑채를 갖을 수 있다는 자체가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세상사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해도 '타인'과 어울어지지 않으면 그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뻔한 진리를 내가 놓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자연스러운 소통의 공간을 한가득 안고 있는 곳이 한옥인 것이다. 신이 함께 하는 집이면서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우리의 한옥이었다는 말이다. 찾아갈 때마다 작든 크든 마당이 있어 좋았다. 흙으로 만들었든 돌로 만들었든 얕은 담장이 있어 좋았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소통'이라는 그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한옥,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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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성주신은 城主神이 아니라 星主神이다. 산으로 내려오신 하느님의 아들 단군이 이 땅에서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산신이 되어 사라져야 했던 우리의 역사가 아프다. 일단 자신의 하느님을 잃으면 세상을 자기 눈으로 보기가 쉽지 않다. 세상을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역사도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한다. 지금도 우리는 다른 나라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밖에 없다. 유대인이나 일본인이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건 그들이 한 번도 그들의 하늘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옛날 중국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던 우리는 이 시대에다시 미국이나 일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건 아닌지. 하늘을 다 내주고 겨우 돈벌이 굿판이나 벌이고 있는 건 아닌지. 한옥의 성주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8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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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한옥'은 어떤 모습일까요? 까만 기와로 지붕을 뒤덮고, 넓고 시원한 대청마루와 흙먼지가 나뒹구는 마당 그리고 굳게 닫힌 대문이 떠오르지 않나요? 나는 우리의 전통 주거양식인 한옥에 대해서 많이 알지도 못한채 이렇게 삼십년 가까히 살았다. 어린시절 뒷산에 있던 절을 놀이터 삼아 놀았었는데, TV나 책으로 수없이 봐왔던 한옥집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었다.
책에는 한옥과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처음에는 한옥연구가가 들려주는 문화이야기라 너무 어렵지는 않을지 고전느낌이 강해서 지루하지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한옥의 마당, 대청마루, 고콜(벽난로), 빗살무늬 하나하나까지 서양 주거양식과 비교해서 설명하다보니 이해하기도 쉬웠고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한옥이 왜 마당을 가질 수 밖에 없는지, 대청마루가 어떤 의미인지 책을 읽다보면 이런 질문들에 해답을 얻게 되는데, 한옥이 대단해보였다. 한옥은 그냥 집이 아닌 우리의 삶이 반영된 곳이었다. 외세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돌로 집을 짓고, 언덕 위 절벽 가까히 성을 짓고, 장사꾼이 중심이 되는 서양과 달리 우리의 한옥은 나무로 된 집이 많고, 산 아래 밭과 논이 가까운 곳에 집을 짓고, 농민 중심으로 주거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자연 속에 튀지않고 자연스레 하나가 되는 집을 가진 우리의 주거양식 그 속에 한옥이 있었다. 한옥이 이렇게 멋스러울 수가... 웅장한 서양식 성이 크기며 높이며 모든 면에서 놀라웠는데 한옥은 대문부터 지붕까지 뭐 하나 의미없이 지어지지않은 부분들이 없으니 더 놀랍고 뛰어난 건축물이 아닌가.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사실 너무 늦게 한옥의 진가를 제대로 배우게 된것 같아 아쉽다. 요즘은 한옥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고층아파트가 대신하기 급급하니 지키지 못했기에 씁쓸한 기분이 늦게나마 든다. 책을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한다. 한옥이 가지는 의미,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할 유산이 무엇일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책에 담긴 사진들을 흑백이 아닌 컬러사진으로 대체했으면 한다. 사진을 설명하는 부분들이 꽤 많았는데, 흑백이다보니 명확히 잘 보이지않아(사이즈도 작긴했지만) 보기 불편했다. 한옥이 멋드러지게 찍힌 사진들을 좀 더 자세히 보지 못한 점은 책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랄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되는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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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소박한 장정의 책, 왠지 '한옥 이야기'와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한옥이라고하면 거대한 궁궐이나 절보다는 작고 소박한 살림집이들이 옹기종기 어두운 기와를 맞대고 있는 북촌이나 전주의 나즈막한 한옥마을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인가보다.
사실 한창 개발의 시대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찬밥신세였던 한옥이었는데 요즘들어 새롭게 조명받는듯 하다. 아름다운 건축미와 우리 정서와 풍토에 맞는 설계, 과학적인 온돌구조 등등 눈이나 귀로는 익숙하지만 제대로 그 맛과 멋을 즐기기에는 조금 부족했다면 이 책을 통해 한옥 전문가의 꼼꼼한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읽는데에는 여러가지 코드가 있을텐데 건축도 그 중 한가지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한옥 한가지의 역사와 의미를 바르게 아는 것만으로도 역사를 바르게 보게 된다는걸 알수 있었다. 옛 중국 문헌이나 고구려 등의 고분벽화, 조선 풍속화 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주거 역사를 소개하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우리 문화 전반의 수준과 기술 등이 집짓기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국토의 풍토와 지리적 특징들이 어떠하며 그것이 어떻게 집의 구조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보다 소상히 알 수 있었다.
비움과 채움의 철학이 담긴 우리의 한옥은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비율이나 대칭 등을 중요시하는 서양 건축물에 비해 허술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옥이 추구하는 디자인은 무엇보다 그 집에 사는 구체적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어서 그 안에 변화성과 보편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덤덤하게 자연과 어울리는 자연친화적인 집인 것이다.
여전히 산정에 지어진 백조의 성이 멋져보이기도 하지만 이제 조금은 우리 한옥에서도 '아름다움'과 '의미'들을 찾아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것 같다. 여행중 만나는 '00고택'이나 '00사당' 등의 오래된 건물들을 만나면 애정을 가지고 건물들을 즐기고 그 집이 가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게 된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작은 내 땅을 가지게 된다면 넓진 않아도 나와 더불어 숨쉬는, 대청 앞 마당에서 바로 자연과 맞닥뜨릴수 있는 그런 한옥 한 채를 짓고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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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를 정기구독한 적이 있다. 이 잡지의 한 코너로 양반 가문의 종택을 소개하는 것이 있었는데, 길게는 수백 년을 이어 오는 종택에서는 세월과 문화의 향기가 흘렀다. 그렇지만 냉난방이며 방범 면에서 탁월한 아파트 생활에 길든 나는 한옥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여러 종가들이 빈집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이제는 전통 마을로 지정된 곳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한옥을 찾기 어려워졌고, 한옥은 이제 특별한 곳이 되어 '체험' 장소로 취급된다. 한옥이 사라진 것은 오래되지 않은데, 그렇게 빠르게 소멸한 것처럼 우리 머릿속에서도 빠르게 지워서는 안 된다. 그 안에 우리 문화와 전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옥과 함께하는 세상 여행> (2012, 이상현 지음, 채륜서 펴냄)은 그런 한옥에 담겨 있는 문화를 여러 각도에서 소개하는 책이다.
제1부 '한옥으로 세상 읽기'에서는 한옥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건축과 문화를 비교한다. 가장 먼저 나오는 꼭지에서는 마당과 광장을 이야기하는데, 한옥이 마당-소통-농민으로 이어진다면 중정이 있는 서양의 집은 중정-단절-상인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통의 공간인 마당은 동네 문화에 중심을 둠으로써 편 가르기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념과 민주화라는 광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우물, 벽난로, 굴뚝, 아궁이, 마루, 담장처럼 한옥을 구성하는 물리적인 요소들뿐 아니라 집을 지켜 준다는 성주신, 성리학의 이기론처럼 무형의 문화까지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다. 제2부 '한옥 밖에서 한옥 보기'는 그림, 책, 역사, 디자인, 풍수 같은 것을 통해 한옥을 바라본다. 심지어 자동차 디자인에서까지 비대칭의 미학이라는 면에서 한옥과 이어지니, 우리가 알지 못할 뿐 한옥에 담긴 과학과 역사는 엄청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한옥을 공부하고 한옥연구소를 운영하면서 한옥과 인문학을 엮어 저술과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한옥과 함께하는 세상여행>에서는 공자님 말씀부터 로마 시대의 목욕탕, 고조선 유적에서 발굴된 황금마차, 최인훈 작가의 <밀실>과 촛불꽃이 피어난 여의도 광장이 한옥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설명함으로써 한옥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문화적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한옥의 우수성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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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건 아니다. 그런데 어떤 독서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관념들을 뒤집어 생각하게 할 때가 있다. 한옥연구가인 이상현선생이 쓴 이 책이 그랬다. 우리문화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한옥을 가지고 우리문화를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수 있다. 유형의 한옥을 통해 무형의 정신문화를 해석하는 것은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 생각의 다름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가에 대한 생각들을 해봤다. 내가 가지고 있던 관념이 고정화 되지 않고 또 다른 생각의 지평을 열 수 있어서 좋은 시간들이었다. 그 첫째가 광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광장하면 시청앞 광장에서 이루어진 민중집회가 가장 먼저 생각나다. 광장문화를 갖지 못한 우리 문화를 한탄하기도 했다. 광장만이 마치 열린 공간이고 소통의 공간이며 민주주의의 상징적 장소가 될 수 있다고 그런 문화를 갖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광장을 갖지 못한 민족성을 개탄하고 그것이 마치 민주주의를 더디게 한 우리 문화라고 단정했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마당이 갖는 다정다감함과 낮은 울타리가 주는 편안함은 광장에 밀려 있었던 것이다. 밥 때가 되면 마당의 평상에 펼쳐진 밥상을 지나가던 누구에게나 열어뒀던 어린 날이 생각난다. [광장은 단절을 기초로 한 문화이고, 그래서 상인들의 의심스러운 눈빛이 반짝이는 도시에서 생겨난다. 이제 우리 사회는 마당에서 도리깨질하는 농민을 더 이상 대접하지 않는다. 장사꾼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었다. 바야흐로 광장의 시대가 온 것이다. 숨길 것이 많은 장사꾼에게 마당은 위험하다. 마당은 길을 가다가 누구나 넘겨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이기 때문이다.] p18 저자는 광장을 단절을 기초로 한 문화라고 단정하지만 문화를 이렇듯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꼭 옳은 것만은 아니지만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내가 우리의 마당문화를 정에 치우쳐 사리분별 못하는 비민주적 문화라고 단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한옥이 모시는 성주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 문화의 근간이 샤머니즘에 대한 이야기와 중국과 대등하였다가 변방에 고립되게 되는 역사적 상황이 한옥에 성주신으로 연계되는 부분이다. 성주의 어원을 城主가 아닌 星主로 보아야 한다고 전제한다. [동양에서 성인은 태양보다는 북극성에 비유된다. 고려시대 궁궐에서 제사 지냈다는 태일太一 은 북극성을 말한다. 실제 북극성은 하늘의 중심이 되는 존재로, 우주의 중심이 된다. 고려가 조선보다 주체성이 강했던 배경이다. 이때 북극성은 단순한 별이 아니라 우리의 하느님이 되는 것이다. 즉 우리의 하느님이 집안의 성주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p84 하느님이 있지만 그 하느님이 개인에게 그대로 또 만들어진다는 개념이 재미있다. 유럽의 백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면서 인디언에게 강요했던 것도 그들의 신이다. 신은 살아가는 곳에서 함께하는 것이다. 만물에 신이 있다는 샤머니즘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고 밤하늘의 별을 그대로 품어 안은 그 서정성에 또 한 번 놀랍다. 한옥이 품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을 품에 안고 늘 가까이 할 줄 아는 한옥이 아름답다. 마지막 부분은 한옥과는 거리가 있지만 우리 문화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에 대한 화첩과 사진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도 오래 전 조선말 젖가슴을 들어내고 아이를 엎은 여인의 사진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을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 여인들은 가슴을 내 놓은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으며 아들을 낳은 여인은 자랑스럽게 내 놓고 다니기도 했다는 해석이었는데 읽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생각해보면 우리의 오랜 문화가 정조문화였음을 생각할 때 타당성이 떨어지는 주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말한 대로 일본인들의 설정에 의해 만들어진 연출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문화를 너무 왜소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라는 저자의 아쉬움 가득한 토로에 공감한다. 나 또한 그것이 왜소해 지는지 공룡이 되는 지 모르고 받아들인 부분들이 있으니 말이다. 타인의 생각과 주장에 좀 더 비판적 안목과 더불어 나와 다른 생각에도 열린 마음으로 이해할 때 자문화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가능해 지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