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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모를 사고로 여객선 엠프레스 알렉산드라호가 침몰했을 때, 라이프 보트 14호에 올라탄 사람은 여객선의 숙련선원 존 하디를 포함해서 모두 서른아홉 명이었다. 하지만 약 3주간 바다 위를 표류하던 과정에서 열네 명이 희생되고, 마침내 아이슬란드의 고기잡이 배의 구조를 받았을 때에는 스물다섯 명만 남았다. 구조되기 전까지 희생된 자가 몇 명인지는 사실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열네 명 가운데 죽음을 강요당한 자나 살해당한 자가 있다는 점이다. 논의의 전개를 위해 그들의 죽음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이 3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희생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죽음이다. 보트에서 미끄러진 것인지 자발적으로 물에 뛰어든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런 사전예고 없이 쿡 부인이나 보트 뒤쪽에 조용히 앉아 있던 자매의 경우처럼 조용히 사라지거나 표류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매리 앤과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좀더 범위를 넓혀보면 해나 웨스트와 더불어 저녁 배급량을 늘려달라는 요구를 하려다가 갑작스런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졌다가 끝내 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죽은 레베카 프로스트나 존 하디가 여자들에게 살해되자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한 그의 충실한 지지자였던 호프만 씨의 경우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경우에는 사실상 그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물론 쿡 부인의 죽음에 대해 해나 웨스트와 그랜트 부인이 존 하디의 명령에 의해 빚어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어디까지나 근거가 없는 음모론에 불과하기 때문에 존 하디에게 쿡 부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유형은 다수의 생존을 위해 소수의 죽음을 강요 받는 것이다. 이 유형에는 표류한 지 열 번째 날 폭풍우를 앞두고 초과된 정원으로 인한 침몰을 방지하기 위해 제비 뽑기에 의해 뽑힌 가장 나이가 많았던 마이클 터너 씨와 남은 나무 조각 두 개를 모두 뽑아 스스로를 희생한 성공회의 부제(副祭; 목사 바로 아래 지위)를 들 수 있다. 다만 스스로 희생한 부제(副祭)에게 “돌아와요! 그게 내 거였을 거예요!”를 외치고 강인한 두 팔로 자기 몸을 스스로 들어올려 바다로 뛰어든, 장애인 싱클레어 씨의 최후는 여기에 포함시켜야 할 지 약간 애매모호한 경우이다. 이 경우 제비 뽑기를 주도한 존 하디는 유죄인가? 이 소설의 화자(話者)인 윈터 그레이스의 변호사인 라이크먼 씨의 변호를 들어보자. “정원이 초과된 라이브보트에 탄 사람이 모두 가라앉기로 결정하거나, 또는 모두 살기로 결정하는 게 유죄 평결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입니까? 정원이 초과된 보트에 탄 사람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어떤 조치도 취해서는 안 되는 겁니까? 만일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일부나 모두가 죽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십시오. 일부라도 살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 만약 당신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나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존 하디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행위의 도덕성은 전적으로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에 달렸다는 시각이다. 모든 것을 고려해 최선의 상황을 도출하는 행위가 옳다.2)”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사람은 고귀한 존재이기에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자발적으로 라이프보트를 떠날 만큼 고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지원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 결과로 라이프보트에 탄 사람 모두가 죽을 지라도. 세 번째 유형은 살해당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있어 유일하게 살해당한 존 하디의 경우를 살펴보자. 존 하디를 이어 라이프보트 14호를 지배한 해나 웨스트와 그랜트 부인 측 변호사는 법정에서 그녀들의 행위를 “하디 씨를 죽인 것을 일종의 폭군이라 할 수 있는 사악한 지배자를 물리친 것으로, 작은 공국에서 백성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든 포악한 독재자를 타도한 것으로 보면 안 되겠습니까 3)”라고 변명한다. 그렇다면 당시 상황이 그들 가운데 유일하게 배와 해류에 대해 아는, 숙련선원인 존 하디의 죽음이 필요한 비상상황이었을까? 이 소설의 화자(話者)인 윈터 그레이스는 “해나와 그랜트 부인이 하디를 죽일 의도가 있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디가 우리 모두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는 두 사람의 주장에 대해서는, 그러한 견해가 두 사람의 주장이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그게 사실일까? 우리가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긴 했지만, 하디의 행동이 그렇게 위협적이었단 말인가? 두 여인이 하디에 맞서기로 결정한 뒤에 보트 안에 위험한 기류가 형성된 것은 맞지만, 그게 정말 하디의 잘못일까? 아니면 반대 의견을 밀어붙인 두 여인의 잘못일까? 그리고 만일 두 여인의 잘못이라면, 구조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한 채 보트 안에 수동적으로 앉아 지시에 따르기만 해야 했을까 4)”라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다면 폭풍우 속에서 ‘생존’을 위해 라이프보트의 초과 정원을 제비 뽑기로 보트 밖으로 추출하기 위한 두 번째 경우나 이 소설의 모태였던 “구명보트 사건 – 더들리와 스티븐스 재판 - 5)”과는 달리 ‘공리주의(功利主義)’의 측면에서도 세 번째 경우는 명백한 범죄로 보인다. 단지 여성들에게 위협이 될 지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만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존 하디의 죽음은 라이프보트 14호의 주도권 다툼의 결과가 아닐까?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어린 아이를 구하자며 나선 첫날 이후로 그랜트 부인은 여러 가지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돛을 달자고 처음 제안했고, 돛을 달고 가기에 보트에 사람이 너무 많긴 했지만 그건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제비 뽑기를 아예 하지 말자고 반대한 것도 아니면서 그 일 전체를 소리 높여 비난했다. 남자들이 희생함으로써 우리 모두 득을 보긴 했지만, 그랜트 부인은 그 사건으로 도덕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6)”는 원터 그레이스의 증언(?)을 살펴보아도 해나 웨스트와 그랜트 부인의 행동은 그러한 의심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본다면 존 하디의 살해에 참여했던 원터 그레이스뿐 아니라, 그의 죽음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던 다른 사람들, 특히 그의 죽음에 반대했던 남자들도 살인을 방조했으니 유죄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존 하디가 죽지는 않았을 테니까. 끝까지 읽으면서 뭔가 미진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지만, ‘나의 생존이라는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이라는 수단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나아가 ‘나의 생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의심만으로 그 위협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등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것만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옥의 티 p. 219 우리가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면, 이 말만 하겠수다. 훔치고는 싶었다고. ⇒ 우리가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고. 이 말만 하겠수다, 훔치고는 싶었다고.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샬럿 로건(Charlotte Rogan), <라이프보트>, 홍현숙 옮김, (세계사, 2012), pp. 264~266 2)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정의란 무엇인가>,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 p. 54 3) 샬럿 로건, 앞의 책, pp. 268~269 4) 샬럿 로건, 앞의 책, p. 276 5) 1884년 표류하던 구명보트의 선원 3명이 구조선을 기다리다 굶주림과 목마름을 견디지 못하고, 함께 동승한 사환을 살해, 인육을 먹고 연명하다가 구출된 사건. 6) 샬럿 로건, 앞의 책, p. 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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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일엽편주에 공포스런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바다와 하늘이 눈길을 끌었다. <이책은> 세계사의 서평 제안 도서다. <저자는>
<책 내용 맛보기>
<책 읽은 소감> 요산요수라.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고, 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던가. 죽었다 깨어나도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는 글렀다. 바다나 물을 끼고서 살지 않은 탓인지 난 물이 무섭다. 산이 좋다. 표지를 보는 순간 아름다운 색상에 황홀한 느낌마저 드는데 점보다는 큰 보트 한 척이 그리도 위태로워 보인다. 결코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았던건 제목 탓만은 아니리라. 한편으론 역동하는 힘과 밝고 힘찬 희망으로도 보이는데 싯푸런 물결은 암튼 무섭다.
'라이프보트'. 무슥하게도 이게 뭔지 잘 모르기에 검색부터 했다. 구명선, 구조용 보트라 할 수 있는데 구명보트(http://terms.naver.com/entry.nhn?cid=200000000&docId=1221924&mobile&categoryId=200000944)라는 유명한 영화도 있다고 한다. 그러자니 표지의 위태로워 보인 배 한 척이 일엽편주의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영화로 익히 알려진 타이타닉 호의 전경이 잠시 떠오른건 사실이지만 그건 잠시에 불과했다. 정원을 태울 수 있는 사람이 탔음에도 배가 힘겨워하는 이유가 배 자체가 작게 만들어져 실은 정원초과라는 사실. 자연히 정당한 방법이 아닌 새치기 식으로 태워진 여주(그레이스)에게 화살은 쏘아진다. 기실, 여주도 남편이 태워줬기에 탔을뿐.
프롤로그의 시작은 그레이스가 감옥에 갇힌 상태서 회상하는 씬으로 전개가 된다. 즉, 라이프보트 14호에 탔었던 사람들이 오랜 표류끝에 구출되었는데 거기서 살인이 있었다는 조건하에 재판이 열린 것이다. '하디'가 지휘했던 부분에서 제비뽑기로 뽑힌 사람들은 다수를 위해 바다에 투신했는데 그 뽑기가 정당했는가. 며칠만 더 견뎠어도 되는데 서두른건 아닌가. 그런 하디의 체제를 붕괴시키며 하디를 목조르고 바다에 밀어넣은 여인들은 살인자인가. 그레이스가 자발적으로 참여한건가. 강권에 의해 살해위협을 받은 상태라 어쩔 수 없었는가.등등.
세세하게 파고들며 심리를 압박하는데 기억과 회상은 다름을 분명하게 일캐워준다. 어떤 충격에 의해서 기억되는것과 일시적으로 기억을 못하거나 생각이 안나지만, 다른 많은 것들을 차분히 떠올리다 보면 연상작용으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미쳐 놓쳤거나 기억하지 못했던 것들이 자연스레 떠오르는데 그래서 회상하는 게 더 현명하게 보인다. 물론 그 회상도 정확하다 말할 수는 없겠으나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그랬겠다 싶은 마음이 들도록 글은 매우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그런 심리를 잘도 표현해 낸다. 참으로 매력있다. 번역하는 사람이 잘 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날의 분위기부터 둘째 날...열네 번째 날까지 나온다. 큰 배가 침몰해 가까스로 라이프보트에 태워졌건 기어올랐건 당당히 승선했건 간에 그들은 공동운명체였다. 배의 균형을 위해 몸집 위주로 자리배치를 하고, 몇 일이 될 지 모르는 막연한 날을 위한 물과 식량배급은 엄격했다. 적어도 인간의 의지력으로 참을 수 있는 한계는 비슷비슷하다. 첫 날엔 암담하지만 불편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잠이라도 대부분 잔다. 둘째 날엔...세째 날엔...일곱째날과 여덟째 날엔...열흘이 넘어가고... 자신이 배 안에 갇혀서 생사를 넘나드는 느낌에 같이 동화되는 느낌은 괴로움이다.
술을 먹여보거나 화투를 쳐보거나...그럴때 인간의 본성이 쉽사리 나타난다고 한다. 자신이 돈을 잃고 있을때 반응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라는데, 그건 평소 모르던 행동양상의 표출이기에 적나라하고 결코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좁은 배 안에서의 생사의 갈림길이라. 배 안에 들어온 물을 열심히 퍼내는 조, 노를 저어야 하는 조, 교대로 눈을 잠시 붙일 수 있는 장소로의 이동 등. '하디'라는 선장 아닌 선장의 리더십으로 한동안은 그런 체제가 원활하다. 하디에게 잘 협조하고 손발이 맞는 남자들과 여장부 스타일이며 놀라울 정도의 뚝심과 자애로움으로 여자들의 영향력을 흡수하는 그랜트 부인.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필두로 여전히 표류하는 그들.
그 좁은 보트 안에서의 갖가지 감정 표현이나 행동은 전세계 각기 다른 성격의 사람을 모아놓은 집합체 같았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평소엔 그다지 충돌을 덜 일으키며 사는구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애만도 못한 사람이 있구나...나는 과연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류에 가장 근접할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건만, 이 책을 읽는 독자로 이 책에 몰입이 되다 보니 어느새 나도 라이프보트의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비스킷 한 조각에 한 모금의 물은 초반의 너무나 훌륭한 성찬이고...믿음으로 이겨내자는 설법을 하는 사람도 있고...삶은 이렇게 처절히 살고자 해도 결국은 순번인지 죽는 사람이 생겨난다. 바다로 던져지는 시신들. 바다로 어쩔 수 없이 뛰어드는 사람들.
바다에 빨려드는 경험은 모른다만, 흡인력있게 끌려 들어가는 이 책은 실화에 바탕을 두고서 씌여진 글이라서다. 또 저자가 선원이 많은 가정에서 자랐으며 어린 시절 모든 휴가를 배에서 보냈을 만큼 바다와 친숙한 생활을 했다는데 이런 경험들이 라이트보트에서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나타났지 싶다. 그건 생활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가능했을게다. 무조건적으로 나 살기 위해 죽이거나 죽임을 당한 게 아닌, 자연스런 흐름처럼 견디다 버티다 그 상황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여론대로 진행된 일. 그 여론이 전적으로 옳다는 건 아니다만, 그런 상황에서의 그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뭐를 정당하게 판가름할 정도로 분명하지 않았다는걸 참작해서라도 그건 난해하다. 마찬가지로 그레이스를 변호한 변호사의 테크닉이 배심원들로 하여금 더 이로운 결정을 이끌어냈다고 보는데, 그건 그레이스가 가벼운 형량을 받았다고 해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다. 라이프보트에 탔다고 생각하면 하루가, 한시간이 그리도 소중한 삶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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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보트] 인간의 본능과 정의를 파헤친 문제적 소설
살아남은 자들의 광기 어린 생존 게임 <라이프보트>
국내에서 100만 부가 넘게 팔린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화제가 되었던 실화가 있다. 1884년, 선원들과 소년이 한 배에 타고 대서양을 표류하던 중, 다수의 의견에 따라 소년을 살해하여 식량으로 삼았던 사건이 일어난다. 한 선원이 이 사건을 일기에 기록했고, 나중에 그 일기가 발각되어 살인에 가담한 선장과 선원들이 기소된다. 일명 ‘라이프보트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실화를 뿌리로 소설 『라이프보트』가 시작됐다.
석연찮은 제비뽑기로 사람들을 희생시킨 하디의 행동은 옳은가? 그런 하디를 맹비난하며 죽음에 이르게 한 그랜트 부인의 주장은 인정받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들을 말없이 지켜보았던 사람들에게는 책임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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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보트를 호감가게 읽었다. 한정된 공간에 모이게 된 인물들. 그 안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알력과 인간성의 바닥, 그리고 터져나오는 파국. 이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서 주로 발견되는 미덕으로, 라이프보트는 그 배경을 무한한 야외공간으로 하고 있으나 역설적으로 세상 어디보다 협소한 공간의 고립감을 창조해냄으로써 새로운 심리극을 그려간다.
영화 <타이타닉>의 고전적인 향취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영화 내에서는 반절을 할애했던 난파과정이 생략됐다. 대신 난파 이후의 단촐한 라이프보트 위에서의 심리변화는 그 못잖은 스펙터클을 제공한다. 생존을 위협받는 중에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인물들의 언행이 설득력을 가져 자못 흡인력이 있다.
특히 그레이스 윈터라는 여주인공은 흥미롭다. 보통의 히로인과 달리, 이 사람은 머릿속 어딘가에 차가운 물이 흐르고 있다. 이 사람의 눈으로 지켜보는 다른 이들의 양상도 흥미롭지만, 그레이스 윈터라는 인물 자체의 심리도 재미있다. 구조되는 순간 헨리와의 결혼 따위를 갈등하는 엉뚱함은 읽는 이로 하여금 주인공에 대한 이입이나 애정을 훼손되게 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인간의 한심할 정도로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측면을 우리는 실제로도 수없이 경험하고 있잖은가.
상자를 둘러싼 미스테리나 정확한 진상이 해소되지 않는 것도 사실은 마음에 든다. 옮긴이의 말대로 인생이란 명쾌하게 답이 떨어지는 퀴즈라고 할 수 없으며 진실은 어딘가의 사이에 있거나 또는 끝내 못 찾을 수조차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일어난 이유를 다섯 가지 찾았다 해도 진실은 늘 여섯 번째에 있더군요. 그러니 우리가 어찌 그 속내를 다 알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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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능을 담은 소설! 살인인가 희생인가 『라이프보트』
저항할 수 없는 매력. 무섭고도 강렬한 메시지. 죽음의 문턱에서 표류자들이 던지는 처참한 생존싸움 이야기
이번에 세계사 신간으로 『라이프보트』라는 책이 소개되었다. 이 책은 난파된 거대 여객선 엠프레스 알렉산드라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언제 누가 죽을지 모르는 극한의 환경, 그 속에서 보여주는 승객들의 불안한 심리. 정원이 초과된 라이프보트에서 이들이 벌이는 광기 어린 생존 게임은 독자들을 미묘한 매력에 빠트려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가져다 주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은 국내에서 100만 부가 넘게 팔린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화제가 되었던 실화가 있다. 1884년, 선원들과 소년이 한 배에 타고 대서양을 표류하던 중, 다수의 의견에 따라 소년을 살해하여 식량으로 삼았던 사건이 일어난다. 한 선원이 이 사건을 일기에 기록했고, 나중에 그 일기가 발각되어 살인에 가담한 선장과 선원들이 기소된다. 일명 ‘라이프보트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실화를 뿌리로 소설 『라이프보트』가 시작됐다.
그리고 잔혹한 사건 뒤에 벌어지는 흥미로운 재판이 이 소설의 메인 스토리이다. 사실 이 책과 비슷한 영화 한편이 있다. 바로 영화계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라이프보트>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탈룰라 뱅크헤드, 존 호디악, 월터 슬레작, 메리 앤더슨 등의 배우가 출연하여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히치콕의 흑백영화 <라이프 보트>에서는 소설 『라이프보트』와 비슷한 이야기 전개가 시작된다.
영화의 내용을 보자면 이렇다. 2차 세계대전 중 승객을 태우고 대서양을 횡단하던 여객선 하나가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다. 난파선의 생존자들이 한 대의 구명보트에 오르면서 간신히 살 길을 모색한다. 하지만 어디로 항해해야 할지 모르는 처지다. 사회 계급과 인종 구성이 절묘한 이들의 과계는 갑자기 독일 잠수함 u보트가 침몰하면서 탈출한 나치 해군장교를 배 위에 태우는 문제로 논쟁이 붙는다. 이때 배와 바다에 대해 잘아는 전문가인 나치 장교는 당장 급한 구명선의 위기를 극복하게 한다. 그리고 갑자기 선원이 그의 신분을 눈치채고 목적을 알아채자, 나치 장교는 그 선원을 살해하여 바다에 던진다. 다음날 그는 사람들 앞에서 그 선원이 자살했다고 말하지만 뒤늦게 그의 악독한 범죄와 저의가 노출된다. 사실을 깨달은 생존자들은 일제히 그에게 몰매를 가해 죽인다. 이미 독일 보급선 가까이 도착한 구명선의 사람들은 연답군 함대의 공격을 받고 독일군함이 침몰하는 것을 지켜본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영화와 소설의 내용을 보면 비슷한 전개지만, 결말 부분은 현저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국적과 나이, 성별, 그리고 계급의 차이를 뛰어넘어 인간 ‘본성의 극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것은 비슷하다. 각자 직업과 성별도 나이도 다른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뿜어내는 말과 행동은 우리에게 극적인 긴장감과 재미를 동시에 준다. 또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묘하게 던져보게 만든다. 영원히 논란거리로 남을 논제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물음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들에게 의문점을 남겨준다. 죽음이라는 본질적인 것을 제비뽑기로 정할 수 있을까? 영화의 나치 해군 장교처럼 선행을 뒤로한 채 본인의 목적만을 채우기 위한 살인은 정당한가? 대중소설과 대중 영화이지만 우리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책과 영화가 아닌가 싶다. 책과 영화를 비교해가며 『라이프보트』를 읽는다면 흥미가 배가 될 것이다. 지금 인터넷 서점등에서는 『라이프보트』를 선 예약판매도 하고 있으니 미리 책을 읽어보고 평가해 보는것도 좋을 듯 싶다.
미국에서는 현재 『라이프보트』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제작사와 작가 사이의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라고 한다. 조만간 히치콕의 영화처럼 스크린 가득 라이프보트의 이야기를 만나 볼 날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흑백이 아닌 컬러 스크린에서 『라이프보트』 이야기는 사뭇 다른 긴장감을 줄 것 같아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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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는가 <라이프보트 - 샬럿 로건>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기 위해 널빤지를 잡고 있던 사람이 널빤지를 뺏으려 하는 자를 밀어낸다면, 그건 살인인가 아닌가에 대한 긴 토론이 이어졌다. 그런 널빤지에 두 번째로 도착한 사람이 먼저 와 있던 사람을 밀어냈다면 그 사람은 살인자인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살려고 몸부림칠 테고 널빤지는 한 사람만 지탱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획일적으로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하는가? 생존한 사람의 그런 행동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면, 그 생존자는 불행하게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가? - 263p 정의란 무엇인가? 바다 한 가운데서 약한 소년을 죽이고 다수의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실제 이 사건은 더들리 - 스티븐스 재판이라고 불리는 한동안 열풍이 불었던 <정의란 무엇인가> 책에서 논란의 여지가 되었던 실제 사건이다. 과연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람을 죽였다는 결과적 측면에서 정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극한의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원인적 측면에서는 정의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인육을 제공한 소년의 동의가 없는 채로 벌어진 일이었다면, 아니면 그 소년이 나의 가족이라면 우리는 그 사건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혹시나 인육을 먹는 것을 보기만 한 방관자가 있었다면? <라이프보트>의 작가 샬롯 로건은 위의 이 사건을 토대로 상상력을 키워나가 이 소설을 집필했다. 어느날 큰 여객선이 침몰하게 되고 승객들이 라이프 보트에 나눠탄 상황. 그 중 한 보트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망망대해에서 얼마나 많은 라이프보트가 떠다니고 있는지, 그 속에 나의 가족들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로지 '신과 같은' 상급 선원 존 하디의 명령 아래 4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흔들리는 라이프보트에서 항해하고 있다. 언제 살아날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바다 한 가운데서 '거대한 파도가 내던지는 작은 땅콩껍질에 불과한' 라이프보트의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갈까. 그 변화는 생각보다 잔혹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철학적인 책이다. 작가는 주인공 그레이스의 입을 빌려 철학적인 질문들을 계속해서 해나간다. 라이프보트가 하나의 세상이 되버린 상황에서 그 세상 속에 사소한 일들이 우리의 세상일과 닮아간다. 신 같은 존재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들, 그러나 슬슬 일어나는 의심의 불씨와 살인, 여성과 남성의 대립, 군림과 다수를 위한 희생. 모든 문제의 결과는 책의 마지막 부분인 법정 장면에서 보여진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어디가 진실이고 어디가 거짓말인지도 모른채 그 문제들은 혼돈 속에 남게 된다.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라이프 보트에서 일어난, 우리의 세상 속 문제들과 닮은 이 논쟁거리들에 대해 다시 우리에게 생각해볼 기회만 제공해줄 뿐이다. 옳은 일과 그릇된 일, 그 경계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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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라이프보트에 있다. 라이프보트는 망망대해 한 가운데 둥둥 떠있다. 하지만 이 라이프보트는 불량품이다. 선주가 돈을 빼돌리기 위해 규정 미달의 라이프보트를 샀다. 인원도 초과되어 위험하다. 구조선은 언제 올지 모른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상하게도 나는 물을 퍼내는 일이 마음에 들었다. 그 일을 하는 동안은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어쩌면 주변을 정리하고 싶은 여성적인 욕구가 발동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 일은 무섭도록 시커멓고 공허한 바다를 바라보는 것 말고도 할 일이 있다는 위안을 주었다. (p.154)
라이프보트는 바닥에 구멍이 났다. 그래서 물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바다에 떠 있고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공포속에서 배가 가라앉는 공포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열흘째 되던 날은 추위 속에서 돌풍과 함께 동이 텄고, 바닷물은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빙빙 돌았다. 파도는 컸지만 물살이 부서지지 않아서 보트 바닥의 수위를 겨우 몇 센티미터 차이로 힘겹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랜트 부인은 조용하면서도 확신있는 태도를 견지했지만, 분명 먼 해안까지는 가야 구조될 수 있는데 하디가 보트로 물이 들어올까 봐 돛을 달려하지 않는다는 한탄을 한두 차례 늘어놓았다. (p.164)
라이프보트엔 남녀 39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하디와 그랜트 부인이 중심 인물이다. 하디는 엠프레스 알렉산드라호의 선원이라 바다에서의 경험이 많았고 그랜트 부인은 탁월한 리더십으로 여자들을 이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와 긴장속에서 폭풍속에서의 하디의 대처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랜트 부인의 힘은 강해진다.
마침내 포레스터부인은 의식을 잃었고, 조앤은 프레스턴 씨와 그랜트 부인의 도움을 받아 포레스터 부인을 보트 앞쪽으로 끌고 가 젖은 담요 위로 가능한 편안하게 눕혔다. 하지만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앞으로 가서 쉬거나 잠을 잘 수 없게 되어버렸다. 호프만 씨는 포레스터 부인을 보트 밖으로 던져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중략) 그날 밤 나는 옳은 일과 그른 일 또는 선과 악 사이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람들이 몸시 암울한 선택권 앞에 놓였을 때도 더 나은 길을 알려주는 분명한 이정표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목격했다. (p.185)
엠프레스 알렉산드라호는 1914년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던 유람선이었다. 몇년 전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사건도 있었다. 소설 '라이프보트' 약 100년전의 살화사건을 바탕으로 침몰 당시보다는 라이프보트에 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침몰 때 그들이 부상을 입었는지는 모르지만 바다에 떠 있었던 약 10일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공포와 배고픔과 병으로. 라이프보트에 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배 위에서 죽은 사람들을 바닷물속으로 던졌다.
그날 아침 하디에게서는 라이프보트 초기의 초인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디가 여전히 신 같은 존재였다면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 되었을 테고, 그런 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하디가 변했을 수도 있고 우리가 변했을 수도 있으며, 어쩌면 단지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었을수도 있다. 그러나 하디가 변했든 그러지 않든, 그랜트 부인은 라이프보트에서 초기보다 더 비중 있는 인물이 되었다. 믿음직하고 한결같으며 무한한 능력을 지닌. (p.227)
두 사람의 대립이 극에 달하고 주인공 그레이스의 눈으로 본 보트의 권력 구도는 배의 모든 일을 맡고 있던 하디에게서 리더십을 보이는 그랜트 부인으로 옮겨갔다. 아마 시대상으로 봐도 될것 같다. 배가 침몰한 1914년은 아직 여성들에게 투표권도 있지 않은 시기였다. 남자들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좁고 다수가 여자인 보트에서 점점 여자들의 목소리와 권한이 커지는 것을 보여준다. 남자와 동일한 조건하에 있다면 여자와 남자가 같다는 것이 아닐까. 극한 상황에 사람들은 모든 책임을 하디에게 돌리고 급기야 하야(?)를 시키고 물에 던져버린다.
"정말로 하디 씨가 살아깄기를 바라요!" 대신 있는 힘을 다해서 이 말을 되풀이했고, 그러자 글로버 씨가 내 팔에 손을 얹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p.274)
라이프보트에서 구조된 사람들은 라이프보트에서 일어난 하디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재판을 받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그레이스는 하디의 일이 군중심리에서 일어났던 일인것 같다고 생각한다. 당시엔 그 일이 잘못되었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 극한 상황이었고 살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재판과정에서 그때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며 실제 하디가 선원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레이스는 일기에도 썼지만 당시의 일이 자신의 정확한 기억인지 아닌지 구분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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