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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왜 말하여질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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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의아했다.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라는 이 제목이 노자의 도덕경과는 무슨 상관이며 어떠한 이유에서 이 제목이 채택된 것일까. 공자의 논어만 살짝 건드려봤을 뿐, 철학과는 담을 쌓고 지낸 사람이었기에 노자의 도덕경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있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도덕경의 첫 줄을 읽자마자, 그리고 그 문장 속에 담긴 참뜻을 발견해내자마자, 아! 하고 깨달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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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의아했다.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라는 이 제목이 노자의 도덕경과는 무슨 상관이며 어떠한 이유에서 이 제목이 채택된 것일까. 공자의 논어만 살짝 건드려봤을 뿐, 철학과는 담을 쌓고 지낸 사람이었기에 노자의 도덕경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있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도덕경의 첫 줄을 읽자마자, 그리고 그 문장 속에 담긴 참뜻을 발견해내자마자, 아! 하고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이 책의 제목이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고, 이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참다운 이름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꽃은 꽃이 아니며, 그것은 단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인위적으로 갖다붙인 허울에 불과한 것으로서, 우리는 꽃 너머에 있는 참된 모습을 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노자의 '도(道)'라는 개념 역시, 단지 우주의 근본을 언어로 표현하려 한 것 뿐이지 그 실재는 아니며, 우주의 도는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으며, 만질 수조차 없는, 즉 그 어떤 이름도 붙일 수가 없는 신비로운 것이다. 이러한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뿐만 아니라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라는 제목에는 노자 도덕경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다. 노자가 강조했던 허(虛)정(靜), 즉 빈 공간과 고요함 또한 난잡하지 않고 시끄럽지 않기 때문에 말하여질 수 없는 것과 같고 불언지교(不言之敎), 즉 노자는 자신이 깨달은 도에 대해서 떠들어대지 않았고 으스대지 않았으며 가르치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역시 말하여질 수 없다와 관련될 수 있다. 이밖에도『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는 노자 도덕경의 20장 까지만 다루고 있는데, 그 20장 속에 담긴 뜻을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그 역시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노자를 알고 노자의 도덕경을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게되고 모든 것을 비우고 싶어 진다. 노자는 각복귀기근(各復歸其根), 즉 결국은 모두 그 근원으로 되돌아가므로 인위적인 것, 번잡한 것, 시끄러운 것을 싫어했고 귀근왈정(歸根曰靜), 즉 道에 이르는 길은 靜에 이르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虛와 靜을 강조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인 현지우현 중묘지문(玄之又玄 衆妙之門) 역시 사물과 사물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어둠 속에 道가 있다고 말하면서 이분법적인 사고를 버리고 마음을 비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현지우현 중묘지문은 참으로 소중한 것을 발견하게 해준다. 현지우현 중묘지문을 깨우치면 부유함과 가난함, 아름다움과 추함같은 구분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되고 내가 가난하다고 해서, 내가 추하다고 해서 우울증에 빠져 있을 필요도 없게 된다. 동시에 부유해지기 위해, 아름다워지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가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은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간다는 깨달음을 얻게 하여 모든 욕심을 비우게 해줌으로써 근심과 걱정을 사라지게 해주는 묘약 같은 문장이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다면 이 현지우현 중묘지문을 꼽고 싶다.

 

노자의 도덕경은 종교적인 행위도 부정한다. 노자는 자신이 깨우친 道만이 진리다, 나만이 현인이다, 그러므로 나를 따르라와 같은 내세우기식의 행위를 전혀 한 적이 없다고 한다. 화기광 동기진(和其光 同其塵), 광채를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도 하나가 된다말했던 그이기에, 또 물(水)의 덕, 즉 고집을 내세우지 않으며 높은 곳을 싫어하고 낮은 곳으로 흐르려 하는 물의 그 덕을 칭송했고 20장에서는 자신을 우매하고 촌스럽고 어리석다고 표현했던 그이기에 그의 그러한 태도가 더욱 수긍이 간다. 그리고 그는 천지불인(天地不仁), 즉 천지는 편애하지 않는다는 아주 핵심적인 말을 했다. 지금의 종교들은 모두 자신이 우상으로 모시는 신(神)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들이 믿는 신에게 나와 내 가족이 잘 되기를 기도한다든지,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니 하는 원망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자비를 베풀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자비를 베푸는 것, 이것은 인간적인 면모다. 저자는 이러한 행위들을 신을 인격화하는 것이라 비난한다. 신을 신으로 대하지 않고 신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존재로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지불인은 현지우현 중묘지문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반성거리를 제공해준다. 나 역시도 나의 불운에 대해서 하늘을 탓했고 나에게만은 저 하늘이 자비를 베풀어줄 것이라는 자기위안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이 책의 천지불인 부분을 읽다보니 내가 참으로 미련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누군가에게 소원을 빌기 보다는 내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만드는 것이 더 나은 치유의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노자는 현대의 정치인들에게도 좋은 본보기를 제공해준다. 특히 총욕약경(寵辱若驚)이라 하여 욕을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총애를 받을 때 역시 놀라야한다고 말한다. 이에 저자는 도연명과 이백의 시를 소개하면서 총욕약경을 실천함과 실천하지 않음에 따른 두 사람의 인생의 결과를 들려주는데, 한 마디로 '박수칠 때 떠나라'와 같은 정신을 취하도록 권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좀처럼 뚜렷한 '가르침'을 주지 않는 노자가 17장과 19장에서는 훌륭한 임금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노자가 말하는 훌륭한 임금은 물(水)과 같이 조용해서 백성들이 그의 고마움을 알지 못한다. 바로 노자철학의 핵심인 무위자연을 체득한 사람이 가장 훌륭한 임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성공을 드러내지 않고 잘난 체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공(功)을 숨기고 홀연히 떠날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노자가 생각하는 훌륭한 임금인 것이다. 이는 지금의 정치인들에게도 크나큰 가르침이 될 수 있는 진리다. 하지만 노자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을 정치인이 한 명이라도 있을지 의심스럽다. 아니, 그 정신을 인정조차 안할 듯싶다. '학문은 중요치 않고, 예술도 중요치 않다, 모든 것을 비우고 모든 인위를 버려라'고 말하는 노자는 이익에 눈이 먼 자들에게는 전혀 달갑지 않은 인물일 것이고, 노자의 道는 그저 저 옛날 할아버지의 헛소리일 뿐이라며 폄훼하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사람들이 노자의 도덕경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정으로 노자의 道를 알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철학을 읽음으로써 유식해보이고, 멋있는 체를 하기 위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도덕경을 제대로 읽었다는 것, 노자를 잘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노자를 읽고 더 유식해진 사람은 노자를 잘못 읽은 것이다. 노자를 읽었으면 오히려 먹물이 빠져야 한다. 또 노자를 읽고 더 똑똑해진 사람도 노자를 잘못 읽은 것이다. 노자를 읽었으면 당연히 더 어눌해져야 한다. 노자를 읽고 더 근엄해진 사람도 노자를 잘못 읽은 사람이다. 노자를 읽었으면 당연히 더 자유로워져야된다. 노자를 읽고 더 논리적이 된 사람은 정말로 노자를 잘못 읽은 것이다. 노자를 읽었으면 직관적으로 변모되어야 한다.

 

 - 123p 중에서 -

 

 

실제로 노자는 위학일익 위도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이라 하여 학문은 하루하루 더해가는 것이고 도는 하루하루 덜어내는 것이라 했다. 노자의 도덕경을 '공부'하려고 하지 말라, 외우려고 하지 말고 밑줄을 그으려고 하지 말라,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지 않을까 싶다. 虛와 靜, 불언지교, 현지우현 중묘지문. 모두 꽉 차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이 아닌 고요하고 텅 비었으며, 어둡고 어두운 암흑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바로 근본, 道임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우주의 근본적 실재라 함은 그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마음을 비운 상태, 그리고 마음을 비웠다는 그 의식 조차 없는 무위자연의 상태에 도달하는 길, 그것이 노자가 말하고자 했던 도에 근접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저자는 노자의 도덕경 20장에서 멈췄다. 도덕경은 총 81장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노자의 도덕경에 반에 반 정도만 다가간 것이다. 하지만 여기 까지만 살펴보아도 노자의 핵심에 다가선 듯한 느낌이 든다. 이는 저자가 도덕경을 차근차근, 그리고 여러 참고자료를 첨가하면서 흥미롭게 설명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노자의 도와 인도의 브라흐만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성경과는 또 어떻게 다른지를 알려주었고, 서양의 철학자들까지 끌어옴으로써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를 더욱 풍부하고 가치 있는 책으로 만들어 주었다. 저자가 풀어주는 도덕경은 단 한 번도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노자의 도덕경을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다고 하는데 노자의 도덕경을 이 책으로 가장 먼저 접한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노자의 도덕경을 쉽게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선택하기를 자신있게 권하고 싶다. 하지만 읽기가 쉽다는 것이지 道를 알기가 쉽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노자라는 사람은, 그리고 道라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어렵다. 공자도 노자를 만나고 돌아온 후, 제자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노자라는 사람은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용(龍)과 같아서 전혀 그 속을 종잡을 수가 없다고.

 

 

d********4 2013.01.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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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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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사상은 접할수록 그 깊이가 깊음을 알 수 있다.수천년전의 사람들이 만든 사상인데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아마도 사람들의 삶은 더 단순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든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이 대화를 하고 자동차를 타고 전화를 통해서 만남을 가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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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사상은 접할수록 그 깊이가 깊음을 알 수 있다.
수천년전의 사람들이 만든 사상인데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아마도 사람들의 삶은 더 단순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든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이 대화를 하고 자동차를 타고 전화를 통해서 만남을 가지면서 직접 인간과 인간이 얼굴을 마주보는 횟수는 줄어든다. 즉 편리함의 추구로 인간관계의 철학은 점점 얇아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천년전의 철학이 오히려 오늘날 우리 삶에 주는 영향은 더욱 막강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는 노자의 도덕경을 잘 표현해준 대표적인 책이다. 사실 도덕경을 재해석하는 책들은 많이 있지만 그 깊이때문에 일반인에게 알려주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원문을 너무 깊게 해석하다보면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고 반대로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하자면 원문을 많이 훼손하게 된다. 하지만 본 책은 도덕경의 원문을 최대한 살리며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깊이까지
아주 적절히 책의 깊이를 맞추었다. 특히 오늘날의 현대인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답변의 지속성에서 깨달음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으며 또한 내가 도덕경을 어떻게 응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줄여준다.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의 가장 큰 특징은
매우 광대한 분야에 모든 것을 소화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사회,우주,자연등에 있어서까지 그 영역이 매우 넓다.
그렇기에 책을 통해서 '나'라는 중심인물이 어디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렇기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 잘 표현되어 있다. 마음이 얇아질때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갑작스런 길을 잃은 느낌이 든다면 책을 통해서 다시금 길을 찾고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먼 훗날 다시금 책을 펼쳐보고 싶다. 그리고 '진리'의 삶에 대해서 다시금 정의를 만나보고 싶다.

변화되지 않고 있으며 없고 없으며 있는 삶인 '진리'
왜 저자가 말하여 질 수 없다고 말하는지 그 의미를 이제 알 것 같다.

 

 

a******m 2013.02.0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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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흔히 인생의 선배의 주장과 인생론을 지침삼아,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여왔다. 그러한 의식은 점점 역사의 세월을 거치면서, 체계화 되고, 복잡화 하면서, 교육의 질과 양을 늘려왔고, 어느덧 노하우는 지식으로, 지식은 학문으로, 학문은 실용, 철학, 기술, 과학, 기타 여러가지 배움의가치로 나누어져, 오늘날을 사는 현대사람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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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흔히 인생의 선배의 주장과 인생론을 지침삼아,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여왔다.

그러한 의식은 점점 역사의 세월을 거치면서, 체계화 되고, 복잡화 하면서, 교육의 질과 양을 늘려왔고, 어느덧 노하우는 지식으로, 지식은 학문으로, 학문은 실용, 철학, 기술, 과학, 기타 여러가지 배움의가치로 나누어져, 오늘날을 사는 현대사람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한 수많은 지식의 가치중에서,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 가치를 가르치는

학문' 즉 철학의 의미는 어떻게보면,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방대한 역사를 거치면서, 동&서양의 지식인들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어떻게

살야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또 나름대로 답을 내놓았으며, 그 답은 종교가 되고,

도덕적 개념, 법치주의적 사상으로 발전해 사회에 전반적인 영향력과 더불어, 마땅한 강제력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란, 어느 환경과 현실적 전파의 한계에 의하여,

변형되고 또 특수한 가치가 추가되기도 하였는데,  그 "다름"이 인류의 갈등 아니, 인류의

크나큰 재앙 (전쟁, 종교&민족적 갈등) 을 불러온 제일의 이유가 되어 왔다.  

 

하지만  특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동&서양의 그러한 인식은이제 세계화에

발 맞추어 과거와 달리 상당히 완화된 것이 사실...  이제 서양인들이 공자나 일본의 무사도를

배우고, 동양인들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탐독하고, 플라톤의 저서를 읽는 것이 당연해지고

또 흔한 광경이 된지 오래이다.      이제 우리들은 동.서양의 가치에서 어떠한 것이 세계평화와

나의 정서적 함양에 더 좋은 지식인가? 하는 광범위한 비교를 하고 또 나에게 적합한 마음의 스승을 찾을 특혜를 가졌다.   어떠한 가치가 좋은 가치인가?   이 책의 저자는 절대적으로

노자의 '도덕경'을 추천한다.

  

하지만, 도덕경이란 하나의 주제로 다루어지기 보다는, 한비의 '법치주의'와 비교 대립 할 수

있는  지식인의 주장.. 즉 '비교대상'으로서 더 존재의 가치를 누리는 지식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현대의 사회에서 성공하고 또 효과적인 바이블(교훈적 가치)을 습득하기위해

좀 더 가혹하고, 현실적이고, 써먹을 수있는 가치를 원하기 때문에, '무위'를 주장하는 도덕경이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효율적인 지식이 될 수 없다..' 라는 인식이 거의 지배적인 형편이다.

 

그러나 저자는 주장한다.   자신만의 가치를 절대적인 선으로 주장하지 않는 도덕경, 

삼라만산 모든것을 아우르는 도덕경, 사람을 능력과 가치로 꽉꽉 채우기보다는, 조금

어눌하면서도 모자람이 있는 사람을 더욱 이상적인 사람으로 보는 도덕경.... 이러한 도덕경의

가치가 세계인 아니, 적어도 한국인의 정서에 깊숙히 남아있게 된다면, 그만큼 이 나라와

민족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라면서...

q*******a 2013.01.28.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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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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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마 가장 어렵고 실천하기 힘든 책이 아닐까? 무위란 진정한 의미에서 유위이다.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절대 말장난이 아니며, 어떻게 보면 수긍이가기도 하지만 뜬구름같기도 한말. 아마 이 책에서 말하는 전반적인 내용이 아닐까? 난 무위에 대해 쉬운말로 고쳐보면 '어른스러움' 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일단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어떤걸까? 시기심 질투심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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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마 가장 어렵고 실천하기 힘든 책이 아닐까?
무위란 진정한 의미에서 유위이다.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절대 말장난이 아니며, 어떻게 보면 수긍이가기도 하지만 뜬구름같기도 한말. 아마 이 책에서 말하는 전반적인 내용이 아닐까?
 
난 무위에 대해 쉬운말로 고쳐보면 '어른스러움' 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일단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어떤걸까? 시기심 질투심많고 참을성없고 떼쓰고.. 머 그런 종류일 것이다. 그럼 이런것들이 생겨나는 근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욕망이다. 이 욕망을 절제할 수 있고 최소화할 수 있고 시기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바로 어른스러움 아닐까? 이 책 도덕경은 나에게 이런 어른스러움을 체득할 수 있는 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이 책은 일단 나같은 보통 사람들이 읽기 정말 편해서 물흐르 듯이 읽혀진다. 한마디로 쉽게 쓰여졌다. 이 어려운 책을 이렇게 쉽게 풀어낼수있다는 건 저자의 도덕경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통찰력이 있지 않으면 쓰여질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내공이 이 책에서 느껴진다. 또한 그는 논어, 사기 등 동양고전을 비롯해 스피노자, 에크하르트 등 서양철학자와의 비교를 통해 노자와 도덕경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읽기 전엔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가 뒷내용이 더 궁금해서 계속 읽혀진다고나 할까? 이는 마치 몇 시간짜리 특강을 듣는듯하다. 나는 맨 앞자리에서 저자의 열강을 듣고 있는 청중이고..

사실 챕터하나하나 중간부터 읽어도 큰 무리가 없을거같다. 저자가 각 챕터마다 이전 챕터를 한번 언급하곤해서 중심이 흩틀어지는 것을 최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 챕터하나하나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켜있어서 처음부터 읽어야 이 책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화광동진(和光同塵) 너무 번쩍거리지마라. 그건 유위이다. 오히려 티끌과 되라. 만물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것과 하나될 수 있는 도만이 진정한 도이며 그때의 텅 비어있는 도만이 세상 만물을 다 포용할 수 있다. 즉 인간만사에서 동기진(同其塵) 해야 함을 노자는 말하고 있다. 인간이 행할수있는 최고의 소통이 바로 동기진이라 설명한다.

 

위정자들이 늘 가슴에 품고 살아야 될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선거철만 되면 시장에서 국수한그릇 오뎅하나 먹으며 서민인척하지말고, 서민이 돌려가면서 먹어 고춧가루가 묻어있어 더럽혀진 냉수 한 그릇을 같이 나눠 먹으며 소통 해야한다. 그리고 당선되어 그들을 위한 진정한 행복을 위해 힘써야하는것이다. (나는 이책을 이렇게밖에는 이해하지못했음을 이해해주시라..)

 

도덕경을 다 읽고나면 오히려 먹물이 빠져야하고, 근엄해지지 않아야 하고 논리적이지 않고 직관적이어야하며, 똑똑해지지않고 어눌해져야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직 그 액면의 의미도 제대로 해석되지않고 있지만 비운다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이제 조금이나마 알것같다. 의미하는정도는..


그렇다면 내가 비울수있는 그릇의 크기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음.. 이런 생각자체가 그릇에 대한 욕심인 것인가?

n*******0 2013.02.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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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차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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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는 노자의 <도덕경> 일부를 쉽게 풀어낸 책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정작 어떤 책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도덕경>에 대해 제대로 배웠습니다. “과거 2,500년 전 중국에 노자(老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살아생전에는 별 이름 없는 미미한 인물이었는데, 그가 죽으면서 많지도 않은 81편의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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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는 노자의 <도덕경> 일부를 쉽게 풀어낸 책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정작 어떤 책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도덕경>에 대해 제대로 배웠습니다. “과거 2,500년 전 중국에 노자(老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살아생전에는 별 이름 없는 미미한 인물이었는데, 그가 죽으면서 많지도 않은 81편의 시를 남기고 떠났다. 그것이 전부다. 그는 떠났고, 얇은 시집 한 권이 남았을 뿐이다. … 그의 시집의 특징은 딱 두 가지, 표현은 간결했고 사상은 심원했다.”(p. 182). “<도덕경>은 시이며 철학이다!”(p. 318, epilogue 제목). <도덕경>의 본질과 특징을 이보다 어떻게 더 쉽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1장에서 절대불변의 도(道)를 말하는 노자의 사상을 붓다, 예수와 비교하고 심지어 현대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까지 언급하며 언어의 한계를 지적해 줍니다. 초월적 세계의 본질에 들어가려면 고정된 종교나 철학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가르침인가요? 노자(老子)는 귀가 컸는데, 그의 이름(이이, 李耳)’과 자(字)(담, 聃)조차도 큰 귀와 관련이 있답니다. 성인(聖人)의 성(聖)은 귀(耳) 옆에 입(口)과 사람(壬)이 있는 형태로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귀담아 듣거나, 신의 응답과 계시를 잘 듣는 능력이란 뜻입니다(p. 134). 이렇게 성인(聖人)은 귀가 밝아 온 세상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탁월한 사람을 뜻한다면, 노자는 분명 성인입니다. 그리고 <도덕경>은 이것을 읽는 자들에게 도(道)에 귀를 열어 놓으라고 도전하는 듯합니다.

  정말 많은 것은 배우고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노자의 무위(無爲) 사상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에고(ego)의 소멸을 뜻하는 것으로 진정 존재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마치 잠을 잘 때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듯! 그래서 저자가 지적했듯이 잠은 우리에게 커다란 휴식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6장의 곡신불사(谷神不死)와 공곡정음(空谷正音), 8장의 상선약수(上善若水), 9장의 계영배(戒盈盃)와 금옥만당(金玉滿堂), 10장의 포일사상(抱日思想), 20장의 절학무우(絶學無憂), 등. 참 많은 가르침들이 마음에 남네요.

  이 책에서는 노자의 시 20편을 해설했는데, 나머지 61편의 해설은 언제나 나올까요? 무척 기다려집니다. 동양철학으로 세상을 밝혀 보자는 깊은 뜻을 갖고 있는 저자가 잠자는 노자의 시(詩)들을 빨리 깨웠으면 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고백처럼 아직 동이 트지 않았는지도 모르죠. 억지로 깨우기보다 동이 트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저도 다시 한 번 노자의 시를 한 편 한 편 차근차근 읽어가 보렵니다.

l******y 2013.02.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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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말하여질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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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말하여질수 없다(도덕경) 차경남 글라이더 / 319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중에서 <논어>를 다룬 책은 수십종이 넘는다. 논어만 못하겠지만 <노자> 역시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중 김용옥의 노자 해설서는 내게도 있다. 차경남의 이 책 <진리는 말하여질수 없다>도 노자를 다룬 해설서다. <노자>는 다른 이름으로 <도덕경>이라고도 하는데 81편 5000자의 간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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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말하여질수 없다(도덕경)

차경남

글라이더 / 319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중에서 <논어>를 다룬 책은 수십종이 넘는다. 논어만 못하겠지만 <노자> 역시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중 김용옥의 노자 해설서는 내게도 있다.

차경남의 이 책 <진리는 말하여질수 없다>도 노자를 다룬 해설서다. <노자>는 다른 이름으로 <도덕경>이라고도 하는데 81편 5000자의 간략한 책으로 유명하다. 지은이인 차경남은 변호사이고 장애인관련 일을 하고있으며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 이 방면에 몇권의 저서를 낸 사람이다. 처음에는 이 책이 노자 전체를 번역한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그게 아니고 81편중 20편만 번역한 책이다.

 

이른바 아마추어 고전연구자들이 많다. 이 노자만 해도 몇 년전 김용옥교수에게 반론을 던지며 책을 낸 여성독서인이 화제가 된적 있다. 작년에 읽은 <신도림역에서 공자를 만나다>는 신분도 불분명한 중국인 아마추어가 쓴 책이다. <신도림...>을 읽고는 상당한 실망을 했기 때문에 이 <진리는...>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좀 다른 해석이 있겠지 정도로만.

 

그런데 읽어보니 썩 괜찮다 이책. 바로 직전에 너무 난해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어려운 책과 씨름한 뒤라 그런지 몰라도 대단히 간결하고 쉽다. 쉬운 책을 어렵게 만든 현학(衒學)적인 현학(玄學)도 아니다. 비근 - 낮고 가까운 예를 들어서 이해와 수긍이 가게 해설한 책이다.

 

노자를 안 읽어본 사람이라도 자주 들어본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현묘지도 玄妙之道” “천지불인 天地不仁” “천장지구 天長地久” “상선약수 上善若水” “금옥만당 金玉滿堂” 등 익숙한 어귀를 볼수 있다. 아주 오래전 어릴 때(少時的) 외국영화가 개봉되면서 퀴즈가 붙었다. 영화제목이 Straw Dog인데 기억나는게 “이 제목은 노자에서 따왔다 원문에서 straw dog을 한자로 뭐라고 부르는가” 뭐 대충 그런 퀴즈였다.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때인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수 없었다. 나중에 발표된 정답이 추구였는데 더 알수 없었다.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 에피소드의 의문은 한참 후 노자를 보고서야 비로소 풀렸지만 영화제목이 왜 추구인지는 작년인가 재작년에 리메이크된 <어둠의 표적>을 또 봤는데도 이해를 못했다.

유덕화 주연 영화 천장지구 역시 틀림없이 봤는데 내용은 기억이 안난다. 여주인공이 예뻤다는 정도. 그저 제목을 어찌 철학적으로 붙였나 생각한 정도.

 

1장과 2장은 김용옥의 책과 원문번역을 비교하면서 읽었다. 전공학자라 그런지 김용옥의 책은 고증과 훈고가 정확하고 근래에 발견된 <노자> 죽간과 백서 까지 검토해서 노자도덕경의 본뜻을 전달하려 애쓴 점이 돋보인다. 원문번역도 김용옥이 치밀하다. 그러나 차경남의 이 책도 정밀하지는 못해도 해설은 위에서 밝힌 것처럼 쉽게 쉽게 머리에 들어갔다.

 

저자에 따르면 도란 달을 의미하는데 달을 본 사람이 없으니 쓸데없이 문자와 언어에 매달린다는 것. 진리와 언어의 문제는 서양에선 비트겐슈타인에 와서 문제제기되지만 동양권에선 노자가 맨처음 지적하고 우리도 원효의 <대승기신론>에서 이 문제를 검토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즉 진리란 결코 언어로 설명될수 없다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노자에 접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노자를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노자를 통해 인식의 변화를 겪는다는 것인데 노자를 읽고 유식해졌다면 그건 노자를 잘못 읽은 것이라 한다.

 

무위(無爲)를 설명하는 대목은 이렇다. - 너의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라. 삶에 있어서의 온갖 억지와 인위의 배제, 그리고 자연스러움에 대한 찬미, 이것이 바로 무위이다. 인간의 행위중에서 가장 창조적인 것들은 사실 무위에서 나온다.

 

간결하지 못하고 만연체 문장으로 써진 글을 경계하라는 말도 나온다.

 

이름(名) - 경계와 구획, 이것이 다름아닌 노자가 말하는 이름이다. 노자는 이미 1장에서 이름이 지닌 허상을 지적하며 그 위험을 경고했다. 14장은 1장과 내용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노자의 도를 체득한 이의 모습은 확실히 유교에서 말하는 군자의 모습과는 달라보인다. 유교의 군자는 어딘지 잘나보이고 씩씩해보이며 아는 것도 많고 나서기 좋아하는데 반해 도가의 인물은 어딘지 못나보이고 우물쭈물해 보이며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앞에 나서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그 안에 새로운 리더십의 특질이 고스란히 들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미래형 리더십의 근본이념은 소통이다.... 신중과 경청,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궁극의 진리는 이성적으로 파악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위와 허정(虛靜)을 아는 것인데 호흡법이나 만트라나 명상비법도 좋지만 그 어떤 것도 허와 정을 벗어나면 안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자 장자를 ‘연구’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저 노자 장자를 훑어보고 확인할 뿐이라고 한다. 궁극의 경지에 도달한 자만이 말할수 있는 지혜가 들어있는지를.

 

인용하고 싶은 보석같은 말들이 너무많다. 그러니 직접 보시라 할 수밖에 없다. 진리는 말해질수 없다고 하니까.

k****n 2013.01.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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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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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은 81편 오천자로 표현된 책이라고 한다.  평범한 사람이 원문으로 읽기는 어렵고 어떤 해설서를 읽는가가 중요한데 지난 번에 차경남 저자의 책을 읽은 적이 있어 이 책을 봄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노자의 사상은 한마디로 멋지다.   노자의 사상을 통해서 삶의 이야기를 만나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무엇을 생각해야할지 지금 나는 어떠한지 생각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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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경은 81편 오천자로 표현된 책이라고 한다.

 평범한 사람이 원문으로 읽기는 어렵고 어떤 해설서를 읽는가가 중요한데 지난 번에 차경남 저자의 책을 읽은 적이 있어 이 책을 봄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노자의 사상은 한마디로 멋지다.

  노자의 사상을 통해서 삶의 이야기를 만나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무엇을 생각해야할지 지금 나는 어떠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2500년전에 살았던 노자의 사상이 오늘날까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누리고 있지만 정신은 궁핍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 를 읽으며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뭔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진다.

  노자의 사상은 이해하기 쉽지는 않다. 현재의 나로서는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긴 어렵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면서 생각해봐야한다.

 

   하지만 이 책의 목차만 쭉 훑어보더라도 노자 사상의 핵심을 엿볼 수 있다.

   절대불변의 도, 세계는 상대적이다, 도 하나를 꼭 껴안아.

   마음이 복잡할 때 노자의 사상을 다시 만난 것은 나의 갈길을 정립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건과 범죄들이 끊이지 않는 것은 올바른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고

   일단은 나만 편하고 보자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많은 리더들은 일반 사람보다 더 많이 마음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노자의 사상 속에서 리더의 조건을 만나고 나눔의 의미와 많은 이들을 통솔함에 있어 알아두어야할 점 등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은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 최고의 경지임을 뜻하는 것인데 그 경지를 몰라서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이 책은 편안한 느낌이 든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는 느낌이 든다.

노자의 사상을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핵심을 쏙쏙 뽑아 상세히 설명해주고 적절한 예시를 들어 이해가 빠르다. 저자는 노자의 사상 뿐 아니라 동양철학 서양철학 종교에 대해서도 연구를 통한 깊이있는 성찰을 한 것 같고 내가 읽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바가바드 기타'와 '대승기신론소' 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심오한 노자의 사상 도덕경을 통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돌아볼 수 있었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s*******5 2013.01.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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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노자의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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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道), 무위자연(無爲自然)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이미 들어봤을 내용이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만을 가지고 노자의 사상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논하고,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이정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노자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의 굴곡에서 생긴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며, 혹은 스스로를 고되게 단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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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道), 무위자연(無爲自然)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이미 들어봤을 내용이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만을 가지고 노자의 사상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논하고,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이정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노자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의 굴곡에서 생긴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며, 혹은 스스로를 고되게 단련하며, 인생의 목표를 향해 채찍질하고 있을지도 모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인생이 잘못된 인생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그 인생의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을 통해 그 정답을 나름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정답이 없는 것에 대해 늘 사고할 수 있도록, 나를 지적인 사유인으로 만들어주는 이러한 철학책이 참 좋다. 특히 철학 중에서 동양철학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노자의 사상이 특히 그러했다.

아직도 내가 노자의 사상을 ‘000다’ 라고 운운할 만큼 그것을 다 통달했다고 할 수 없지만, 지금껏 읽어왔던 적지 않은 몇 편의 동서양의 철학서를 통해 나는 노자의 사상을 접했고, 내 삶의 위로를 받았었다. 노자는 이 도덕경 관련 책에서도 그러했지만, 무위를 말하며, 텅 비우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하며 산의 우뚝 솟음보다 아래로 흐르는 물의 매력을 언급한다. 그리고 특히 모든 것에 순응하는 물에 대해 찬양하듯 언급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노자의 이야기를 통해 지난날의 나의 잘못에 대해 후회하며 자책아닌, 자책을 하고 있던 나를 위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여러 힘든 일들과 여러 다양한 사람들로 인해 힘들어하는 나에게 그 모든 것에 대해 유연해지는 물과 같은 태도를 갖게 하였다. 아직 인생을 많이 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물과 같은 인생이 아닌, 그 반대일 수 있는 내가 개척하는 인생은 참 고달프다는 생각이 든다. 개척하는 삶은 현실에 안주할 수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과거에 대한 반성은 필수일 것만 같다. 그래서 물과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과 같은 인생은 또 달리 말하면 무위(無爲)이다. 무위(無爲)가 진리라는 노자의 이야기는 내 손에 쥔 나를 향한 채찍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지금 껏 살아온 나의 삶도 내가 행한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닌 것이 되고, 지금 내 앞에 다가온 힘든 순간, 기분 좋은 순간 모두에 그저 순응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생각들로 나는 안절부절해하며, 온갖 고민에 휩싸여 있던 나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 책은 노자의 도덕경이라는 길지 않은 시를 저자 차경남의 해석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나는 노자의 도덕경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 그 내용을 접한 것은 이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노자의 도덕경은 참 매력적이었다. 노자의 도덕경은 앞서 말했듯이 시와 같다. 그래서 그 해석이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매력을 마음껏 이 책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온전히 저자의 시선과 사고에 100% 따르지 않았다. 나 또한 다시 해석하며 사유의 시간을 즐겼다. 특히 내가 저자와 조금 다르게 해석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현지우현, 중묘지문’ 부분이었다. 나는 이 부분을 먼저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서, 마음의 정화가 일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즉 ‘어둡고 또 어두운 가운데 신비로운 문이 있다.’라고 나는 해석했다. 저자는 짙은 어둠에서는 모든 사물의 경계가 없어지고, 나와 내가 없어진다. 바로 이러한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 도라고 언급했다. 이 의미 또한 그럴 듯했지만, 나는 내 상황이 힘들었던 탓인지는 모르지만, 삶이 힘들고 암흑 같고, 나날이 그 암흑 같은 삶이 짙어질지라도 그 안에서 신비로운 문은 열릴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나의 고난한 삶을 위안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암흑 뒤에 더 짙은 암흑이 올지라도 그것은 곧 신비로운 문을 열리게 되는 순간에 다다른 것이라고 내 인생의 진리를 찾아냈다. 이 외에도 세상은 공평하다라는 내용을 통해 인생의 기쁜 순간, 힘든 순간은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인생의 진리를 해석하게 되었고, 이후 그럼 나는 이러한 순간들이 다가왔을 때 어떻게 그 순간들을 대처해야 할까라는 또 다른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이 책은 이렇듯 인생에 대해 사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었고, 나를 위로해주고, 앞으로의 내 삶의 이정표를 세우게 도와주었다.

나는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행복한 삶, 올바른 삶은 무엇일까? 이것에 대한 답을 찾지 않은 채 살아가는 인생은 헛되지 않을까 싶다. 이것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고자 한다면 철학책을 두루 살펴 본인의 인생 이정표를 세우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혹 동서양의 철학을 조금 읽어 본 나에게 조언의 기회를 준다면, 노자의 도덕경에 관련한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봤으면 한다.

 

s******g 2013.0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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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에 대한 좋은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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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교와 공자의 유교.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기에 그 사상이 편하고, 옳다고 믿을 뿐이다. 그렇다면 유교와 도교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난, 주체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유교는 '사람'을 중심으로 사상을 전개하고 있고, 도교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자연'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유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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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교와 공자의 유교.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기에 그 사상이 편하고, 옳다고 믿을 뿐이다.
그렇다면 유교와 도교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난, 주체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유교는 '사람'을 중심으로 사상을 전개하고 있고, 도교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자연'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유교에서는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차별화된 존재이기에 좀 더 우월하고 나은 몸가짐과 생각을 요구한다.
반면 도교에서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 인간을 취급하기에 함께 잘 동화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후자인 도교의 장경이라고 할 수 있는 도덕경에 대한 책이다.

이 책 이전에 저자의 전작인 장자에 대한 책을 보았다.
노자가 '무위'를 강조하고 도교의 기본 사상을 담았다면 그 사상을 좀 더 체계화하고, 널리 전파한 것은 장자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이 책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조금 불온하게 보일 수도 있을 듯 하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관습의 이념에 빠지지 않았다면 상관없을테지만..
이 책은 저자가 도덕경을 그대로 옮긴 책이 아니다.
경전 자체가 그리 쉽지 않은 글로 되어 있기에 우리에게 쉬운 글로 전달하려는 책이다.
보다 다양하고 많은 지식과 예를 통해 조금은 더 쉽게 이해되는 듯 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저자의 주관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어 보이는 것 같다는 것이다.
분명 좋은 책이고, 맞는 내용이지만 이것으로 좋지 않게 보는 독자가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키고 있으면 달을 봐야 겠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손가락을 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심지어 그 손가락의 반지라도 있으면 오해를 사기에 충분할 것이다.
난, 저자의 이런 내용이 반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 책을 읽으며 '도교'에 대한 나의 감정은 좀 더 깊어졌다.
그 반면, 조금은 알 것 같았던 도교의 내용이 좀 더 어려워지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알던 도교는 그저 남들이 말하는, 겉에 보이는 모습만 보고 평가를 내린 것은 아닌지...
도교뿐만 아니라, 내가 진리, 정답이라고 알고 있던 그 모든 것에 대해 오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교에 대한 멋진 지침서 덕분에 내 삶은 한층 더 진중해 질 듯 하다.

 

l*****0 2013.01.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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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강의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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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를 읽었다. 제목이 다소 건조하게 느껴지는데 읽다보면 책에 담긴 뜻을 적절히 한문장으로 옮겨놓은 것임을 알게된다. 이 건조한 제목의 책을 꼼꼼히 새기며 읽으면 그것은 노자의 '도덕경'에 대한 긴 강의를 들은 것과 다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같다. 그만큼 '도덕경'의 심오한 내용과 뜻을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놓은 책인 것이다.   사실 '노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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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를 읽었다. 제목이 다소 건조하게 느껴지는데 읽다보면 책에 담긴 뜻을 적절히 한문장으로 옮겨놓은 것임을 알게된다. 이 건조한 제목의 책을 꼼꼼히 새기며 읽으면 그것은 노자의 '도덕경'에 대한 긴 강의를 들은 것과 다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같다. 그만큼 '도덕경'의 심오한 내용과 뜻을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놓은 책인 것이다.

 

사실 '노자'라고하면 역사시간에 배운 제자백가 혹은 철학 등이 떠오르고, '도덕경'하면 그저 고리타분하고 골치아픈 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한장 한장 읽어갈수록 '도덕경'은 퇴색하지 않은 책이며 오히려 미래적 가치까지 담고있는 사상서라는걸 느낄 수 있었다. 여러 종교와 철학을 넘어 궁극의 것을 말하고, 그를 통해 현실에서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라고 감히 정의하고 싶어진다.

 

지금까지 여러 종교와 철학들이 진리와 신을 쫓아왔지만 사실 그 궁극의 것이 여럿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여러 이름과 형태로 상상해보지만 그것이 우리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인간의 사고로 상상할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면, 또는 특정 지역이나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는 어떤 것이라면 어찌 궁극의 진리나 신이 될 수 있겠는가. 예수도 붓다도 노자도 표현은 달리 했지만 결국 진리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으며, 만질수도 없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제목 그대로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이나 군중들을 위해 비유와 형태 등을 빌려 설명해야 했던 예수, 붓다와 달리 노자는 이러한 궁극의 것에 대해 보다 함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져지는 것을 수용하고 처리하기에도 급급한 우리 범인들의 하루하루를 생각하면 먼나라 이야기같기도 하지만, 궁극의 것에 대한 탐구 이야기를 읽으며 잠시 마음을 쉬어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모호한 개념에 대한 저자의 명료한 설명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道'를 찾아 떠나는 잠시간의 여행을 하고 싶다면, 미움이 있기에 사랑이 있으니 '사랑하라'하지 않고 天地不仁이라 담담히 말하는 노자의 '도덕경'을 새기며 읽어볼 일이다.

 

가장 마음에 남는 11장

 

"前略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의 빈 공간(無) 때문에

그릇으로서의 쓸모가 있는 것이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의 빈 공간(無) 때문에

방으로서의 쓸모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有)로써 이롭게 하는 것은

무(無)에서 쓸모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t*****2 2013.01.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