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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떠날 예정인 펀트래블의 중국근대문학기행을 준비하면서 읽게 된 라오서의 <마씨 부자>입니다. 1899년 베이징의 만주족 정홍기(正紅旗) 가정에서 출생한 라오서의 본명은 수칭춘(舒慶春)입니다. 출생 이듬해 부친이 사망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베이징 3중학에 입학했다가 자퇴하고, 국비장학생으로 베이징 사범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했습니다. 졸업후 소학교, 중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1924년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대학 동양학부 중국어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1929년 귀국길에 싱가포르에서 반년을 체류하면서 화교중학에 재직할 무렵 <마씨 부자>를 발표했습니다. 영국에서의 삶을 작품에 녹여낸 것으로 중국이 아닌 영국을 배경으로 한 중국인들의 삶을 그려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낙타 샹즈>를 비롯하여 대다수의 작품들이 중국 하층민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반하여 <마씨 부자>의 경우는 다른 작품들과는 기조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관리가 되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허송생활하면서 형님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던 마쩌런은 영국으로 이주하여 골동품상을 하던 형님이 죽으면서 물려준 가게를 운영하기 위하여 아들 마웨이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베이징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에번스 목사와 인연을 맺었던 덕에 런던에 도착했을 때 그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작가는 영국에서 체류할 때 목격한 영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처지를 기록해놓았습니다. “런던의 중국인은 대략 노동자와 학생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노동자 대부분은 런던 동부 지역에 살았다. 그곳은 중국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차이나타운이었다. 이곳을 찾는 유럽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아편, 무기밀매, 살인, 강간 등이나 저지르는 ‘세상에서 가장 음흉하고 더러우며 혐오스럽고 비천한 두 다리 동물’이라고 상상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작가는 “중국인이여! 눈을 부릅뜨고 보라! 눈을 뜰 때가 되었다! 허리를 곧추세워야 한다. 허리를 곧추세울 때가 되었다! 영원히 개가 되지 않고자 한다면!(24쪽)”이라고 절규합니다. <마씨 부자>의 창작 동기는 ‘중국인과 영국인의 다른 점을 비교하여 민족성을 드러내는 데 있다’고 합니다. 영국인과 중국인의 문화와 민족성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인종간의 대립이 이 작품에 담긴 핵심 갈등구조입니다. 에반스 목사가 마씨 부자가 거처할 하숙집을 어렵게 구하는 과정에서 중국인에 대한 영국인들의 편견이 드러나게 됩니다. 에반스 목사는 딸과 함께 사는 과부 웬델부인을 설득하여 마씨 부자가 입주를 하게 되는데, 아버지 마쯔런은 웬델 부인을, 아들 마웨이는 딸 메리에게 반하게 됩니다. 중국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두 사람 가운데 웬델 부인은 마쯔런의 선물공세에 넘어가 마음이 조금 기울게 되지만, 메리는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습니다. 마쯔런은 형님이 남긴 골동품 가게의 운영에 나서지만 장사를 해본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결국은 마웨이와 형님 생전에 가게에서 일하던 리쯔룽에게 가게의 운영을 넘겨주게 됩니다. 중국에서도 대충대충 살아가던 마쯔런의 버릇은 런던에서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형님이 남겨준 돈을 물쓰듯 하면서도 가게를 잘 운영하여 수입을 늘리려야 한다는 현실감각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저 체면을 유지하기에 급급합니다. 마웨이는 그런 아버지와는 달리 현실감은 있어 리쯔룽과 함께 가게운영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한편 에반스 목사의 딸 캐서린으로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또한 메리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캐서린에게 묻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식당에서 만나 식사를 하는데, 이를 본 중국인 청년들이 캐서린을 창녀라고 비난하고 나서는 바람에 마웨이가 나서서 사과를 요구하면서 싸움이 붙었고, 대마침 식당에 온 캐서린의 동생 폴과 치고받기에 이릅니다. 중국 청년들과의 싸움은 마쯔런이 에반스 목사의 처남 알렉산더의 주선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과 연관하여 런던에 사는 중국인들이 골동품가게에 몰려와 시위를 벌이게 됩니다. 웬델 부인과의 결혼도 장애를 만나게 된 마쯔런은 골동품가게를 팔아치우기로 합니다. 실망한 마웨이는 결국 런던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결국 마쯔런과 마웨이로 대표되는 신구 세대간의 갈등이 <마씨 부자>의 두 번째 갈등구조인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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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 서평단 선정에 따라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1차 세계대전은 결과적으로 각국 사람들의 경제적 토대를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도 바꾸어놓았다. (…) 그런 새로운 사상 아래서 결혼, 가정, 도덕, 종교, 정치 등 모든 것이 뒤집혔다.”(320p) 20세기 초 제국주의 열강의 등쌀 아래, 중국의 지식인 라오서는 개인의 가치가 “국력에 따라 평가”(360p)된다고 보았다. 그는 오래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국력을 키워내 가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를 그의 소설 『마씨 부자』에서 여과 없이 드러낸다. 작가는 마쩌런과 마웨이 부자(父子)를 주축으로 그만의 관점을 펼친다. 돌아가신 큰아버지가 남긴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영국행을 결정한 부자는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 속에서 골머리를 썩인다. “내일이라도 마웨이를 데리고 귀국해야겠어. (…) 방법이 없어…… 체통도 안 살고……”(189p) 오로지 체통만을 중시했던 마쩌런과 어떻게든 돈을 벌어 생활을 유지해야 했던 마웨이 간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져만 간다. 부자는 나름의 방식으로 영국에 적응했지만, 인종(국적), 세대, 개인 사이 간극이 끊임없이 그들을 옥죄어왔다.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 물결치는 대로 움직이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관여할 마음도 없었다. 그냥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할 뿐이었다. 심지어 부자, 형제 사이도 화합하지 못하는 참극이 벌어졌다.”(320p) 마씨 부자를 포함한 소설의 여러 인물은 각기 다른 생존 방식을 선택한다. 그들의 완고함은 서로를 다그치고, 원망하고, 혐오하는 결과를 낳는다. 사회와 개인이 상호관계하여 좀처럼 평안을 유지할 수 없는 때, 혼란스러운 세상은 삶의 본질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이는 비단 소설 속에서만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제국주의 열강의 영광 이면, 삶을 위해 애쓴 이들의 존재는, 이상을 향한 개인의 열망이 국력과 무관하게 발생한다는 점을 시사하지만, 그 열망이 매 순간 건강한 쪽으로 흐르진 않는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흥이 깨진 나뽈레옹은 뒤뜰로 달려가 말라버린 장미를 보며 입을 삐죽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이 왜 한자리에서 저러고 있는지 모르겠네! 아무래도 모르겠어!’ 사람이나 개나 입을 삐죽일 때 더 우스웠다.”(297p) “나는 마웨이의 고충을 알겠어요. (…) 나는 중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중국을 조금 안다고 할 수 있어요. 또 나는 영국인이기 때문에 영국을 안다고 말할 수 있죠. 양국의 다른 점을 비교해보면 종종 명확하고 적당한 결론을 얻을 수 있어요.”(135p) 국가 개선을 위해 뱉어진 라오서의 목소리는 21세기 현재, 인종뿐 아니라 세대, 성별 등 여러 논제를 향해 갈등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마씨 부자』를 특정 국가 간 갈등, 국력을 향한 열망 그리기를 넘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인물들의 생존기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이분법적으로 분리된 채, 서로를 혐오하는 일에 익숙해진 시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가는 방법을 라오서의 『마씨 부자』를 통해 물색해본다. #창비세계문학 #세계문학전집 #창비 #시크릿서평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