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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가 불행하다. 앞서 달려가는 사람은 그 위치를 뺏기지 않으려 바둥거리고 그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끊임없는 열등감에 시달리며 자신의 삶을 들러리 인생으로 전락시키면서 바둥거린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같은데 도데체 무엇이 어떻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고 또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또한 세상은 쉽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그냥 남들이 이리 뛰면 같이 뛰어가 보고 저리 뛰면 저리로도 뛰어가본다. 줄곧 왠지 불안하고.. 항상 지쳐있다. 따뜻한 경쟁이라…… 일단 제목이 맘에 든다. 요즘 한국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추운데 뭐든지 좀 따뜻한 게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소제목들이 매력적이다. 딱딱하고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의심을 접기에 충분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혹시 스위스 특파원인 저자가 스위스의 상황과 한국의 현실을 즉자적으로 비교하며 한국사회의 현실을 다시 되새겨주는 것에 그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살짝 있었으나 그것 또한 기우에 불과했다. 문제점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도 함께 얘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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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는 글을 만났습니다. 언젠부턴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화약냄새가 가득하고, 피비랜내가 진동하는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의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남을 밟아야 하는 비정한 승부의 세계.. 오늘의 승자가 내일은 언제든 무너질수 있기에 한순간도 방심해선 안되는 목숨을 건 사각의 링.. 승자도 패자도 모두가 불행하고 두려운 세상... 저자는 이 세상이 치유될수 있는 희망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뜻한 경쟁이 우리 모두를 살리고 행복하게 할수 있음을 따뜻한 시각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감동이 있네요.. 스위스라는 스펙트럼을 통하여 대한민국이 치유되기 원하는 따뜻한 저자의 마음을 느낍니다. 당신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해 지는 비밀을 깨닫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더불어 사는 삶으로 아름다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하여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으로 강추하는 바입니다 늘 가슴속에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행복찾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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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찬형의 《따뜻한 경쟁》은 현직 일간지 기자가 쓴 르포이다. 한동안 말랑말랑한 에세이만 읽은 것 같아서 시사적인 책을 찾다가 발견했다. SNS가 발달하면서 해외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는 데에 언젠가부터 익숙해졌다. 요즘은 책도 SNS에 올라온 것을 추려서 출판하는 풍토가 대세의 흐름의 하나인 것 같다. 이런 프로세스는 현장성이 느껴지고 수신자와 소통하는 메리트가 있다. 불현듯, 한 발짝 떨어져서 쓴 글이 읽고 싶었다. 쉽게 써서 즉각 발행된 글이 아닌. 이 르포르타주는 그런 면에서 보면 나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한 책이다.
현직 기자였던 맹찬형은 스위스에 한국 특파원으로 주재하게 되었다. <따뜻한 경쟁>은 이런 부제를 달고 있다. 패자 부활의 나라 스위스 특파원 보고서. 언론에 나온 기사나 칼럼을 모은 것이 아니고 책을 위해서 따로 쓰여진 글들이기도 하다. 책이 쓰여지는 과정에서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큰 일이 있었다. 이 채프터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단 여덟페이지의 글에서 이렇게 실체를 고발하면서 사실에 충실한 글을 쓴 작가에 감탄했다. 지난 여름에도 어떤 책에서 동일본 지진 때 도쿄전력이 크게 문제가 있었다는 내용을 접했었다. <따뜻한 경쟁>에서는 한국인의 시각이어서 더 와닿았고 새로운 사실들에 충격적이었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졸렬하게 처리했다. 실시간으로 발전소 지붕이 날아가는 엄청난 장면이 노출되었음에도 도쿄전력은 자기네들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했다. 원전에서 필수적인 일들을 처리해야 했어서 직원이 필요했는데 회사는 일당 40만엔에 잡역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다. (40만엔은 560만원 가량이다) 당시에 우리나라에도 이 소식이 전해져서 한국 청년들 중에도 응시하려는 사람이 있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어찌어찌 500명의 인력을 모아서 원전 뒤처리를 감당했다. 실제로 알아보니 생계가 달려 있어서 어쩔 수 없었던 직원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과반수가 비숙련자 비정규직이었다. 도쿄전력은 위험한 진실을 최대한 은폐하고 바깥에 일본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한 애국자들로 직원들을 포장했다. (500명도 회사 측의 주장이라 확실하지는 않다.) 저자가 책 앞부분에서 이 일을 거론한 이유는 일본과는 상이하게 대처한 유럽과 스위스의 정책을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전 유럽에서는 반핵운동이 일어났고 원자력 전력을 추가로 건설하려던 계획을 줄줄이 취소하기 시작했다. 가장 신속하게 대응한 나라가 바로 스위스 그리고 독일이다. 독일 정부는 17기의 원전을 하나씩 없애서 모두 퇴출하기로 했다. 스위스는 후쿠시마 참사가 발생한 직후에 원전에 대한 정책을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두 달 후에 정책을 수립해 공표했다. 2034년까지 5개의 원전을 점진적으로 퇴출한다는 것. 원전을 퇴출하고 다른 발전 방식으로 대체하는데 드는 총 비용은 38억 스위스 프랑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약 4조 7000억원이다. 기존에 이미 스위스 국내에서 원전에 의존하는 정도가 40퍼센트였는데 의회 표결은 순조롭게 가결되었다. 일본은 평상시에는 평화롭고 사람을 존중하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지도자와 권력자들이 보이는 행태는 야만스러웠다. 지난주에 체르노빌 사태에 대한 책을 읽고 기겁을 했었기에 동일본 지진에 대한 책임자들의 모습에 막 쌍욕이 나오려 했다. ㅠ 다행히 유럽 여러 나라의 발빠른 원전 대처 이야기에 곧 정서가 순화되었다. 독일같은 나라의 행보야 익히 알았는데 스위스도 올바른 대처를 했음을 처음 알았다. 비용이나 효율성보다는 인간의 생명을 중시하는 스위스의 모습에 이 때부터 반하기 시작했다. (일본과 비교되어 더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한편 스위스의 관광 산업은 상당히 영리한 계획 하에 이루어짐을 알았다. 스위스는 알프스와 마테호른 외에 수려하고 장엄한 자연을 갖고 있다. 스위스인들은 뛰어난 기술력으로 산 정상까지 가는 철도를 연결하고 케이블카를 건설했다. 이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비용은 싸지 않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을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부대 비용을 지불한다. 스위스가 합리적인 점은 관광에서 얻는 막대한 수입을 다시 철저하게 자연에 재투자한다는 것이다. 어떤 지역의 관광지는 우리나라 제주도의 올레길과 협약을 맺은 데도 있다고 한다.
정교하고 탄탄한 스위스 관광산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것이다. 느긋할수록 돈이 된다.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사진을 찍고, 식사를 금방 하고 차에 올라타는 관광을 스위스는 지향하지 않는다. 천혜의 자연을 가진 혜택이 있지만 스위스는 이를 관광산업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스위스 관광지는 중동과 러시아 갑부들의 1순위 여행지로 자리잡기도 했다. 대자연의 원본을 해치지 않게 노력하는 모습은 단순한 산업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도 하다. 작가 맹찬형은 자신이 겪은 일상의 일부터 국제관계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면서 글을 써나간다. 잘 쓴 에세이가 다 그렇듯이 말을 전해듣는 느낌이다. 책 부제처럼 스위스 특파원의 보고서를 보고받는 느낌. 중간중간에 자신의 생각을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 스킬들 덕분에 책이 단조롭지 않다. 스위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한 과정을 거쳤고, 작가의 색깔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공존과 경쟁은 서로를 배척하는 개념이 아니라 한 사회를 끌고 가는 쌍두마차다. 성장 만능주의가 한계에 부딛혔다는 반성과 함께 분배를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수많은 패자를 재기할 수 없는 나락에 방치하는 무한 경쟁보다 약자를 배려하고 패자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경쟁 체제가 더 효율적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좁은 경로에 많은 이들을 한꺼번에 몰아넣는 식의 무한 경쟁은 그 치열성만큼이나 과도한 비용을 유발한다. (p.75)
스위스의 타인을 존중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문화는 읽을수록 존경심이 들었다. 이러한 내면과 정신의 공유가 문화에 그치지 않고 정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서로를 존중하는 철학에 바탕한 체제가 실제로 공동체를 구성하는데 필요하단 합의를 이뤄서 가능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으며 같이 살아가는 이웃으로 여기는 정신은 우리나라가 배워야 한다. 물론 그들도 제도화 하는 과정을 거쳐서 공동체 삶의 철학을 정착시킬 수 있었다. 무조건 서유럽의 체제와 복지를 떠받드는 내용인 건 또 아니었다. 수완있는 경력 기자답게 스위스와 유럽의 복지를 냉철하게 분석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최애하는 유럽 국가인 영국에 대해서는 특히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았다. 다른 서북유럽 나라들은 대학 등록금이 없거나 굉장히 저렴하다. 독일의 다섯 개 주에서 한 학기 60만원을 받는 것을 제외하고 스위스, 스웨덴, 프랑스, 독일이 대학 등록금이 없다. 2010년에 런던에서 대학생들이 격렬하게 시위를 한 적이 있다. 1년에 등록금이 3,290파운드가 상한선이었는데 정부가 이를 폐지해서 9,000파운드로 인상할 수 있게 법을 바꿨다. 1년 600만원에서 최대 1,650만원을 내게 되었으니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영국이 대학 등록금이 주변 국가보다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스위스의 대학과 교육 시스템은 읽을수록 의문의 패를 무수히 당해야했다. 무료라고 해서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학자들을 배출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대학 입학율이 높지도 않은 것이다. 맹찬형 작가가 글을 쓴 당시에 대학 진학률이 27퍼센트였다. 대학을 가지 않는 학생들은 무료인 전문 직업훈련 학교에 진학한다. 스스로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하고 과정을 이수해 기술을 익히면 사회에 진출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철저히 실력에 따라 평가를 받고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사회적 지위로 존중을 받는 데에도 대학 졸업장이 특별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 자주 접하는 꿈같은 얘기인데 스위스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다시 들으니 또 놀라웠다. 문화충격이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이러한 직업교육과 대학 교육이 실현될 수 있을까 저자는 스위스를 재치있게 표현했다. 면적으로 보거나 지형적으로 보면 ‘바다 없는 강원도’라고. 인구는 820만명이며 국가 공용어가 4개이다. 독어, 프랑스어, 이탈리아 어가 있고 토착어인 로망슈어를 쓴다.
기존에 확고하게 갖고 있던 통념을 무너트리는 내용도 꽤 읽을 수 있었다. 예컨대 한국이 IT 산업만큼은 경쟁력이 끄덕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책이 나온 2012년에 이미 그러한 아성은 허물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경제학에서 파이를 먼저 키우라는 말이 있다. 우선 성장부터 해야 나중에 분배할 때 몫이 커진다는 논리의 하나다. 한국 경제에서 파이의 크기가 짧은 기간에 경이적인 속도로 성장했다는 것은 다들 인정한다. 그런데 맹찬형에 따르면 산업화와 무역수출로 그렇게 커진 파이가 현재는 생산 과정에서도 부서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파이를 감소시킨 주요인 중 하나는 일자리 분야였다. 대기업은 더 이상 투자하지 않/못하고 일자리가 발생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기업이 보유한 현금 자본은 또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현금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다. 경제가 활력을 얻으려면 성장이 아닌 분배를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맹찬형이 스위스와 선진유럽국가들을 보고 내린 결론이다. 우리의 고용 통계는 허술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 대기업이 인턴을 채용한 것을 포함시키는 데 이는 실상을 왜곡한다. 대기업은 대학 나온 청년들을 단기 인턴으로 고용해 서류 복사와 잡일같은 소모적인 일을 시키는 게 관행이다. 이러면 통계에는 임금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줄어든다. 임금 소득으로 생활하는 소비자의 지갑은 얇아지고 소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위축된다. 신규 고용 현실은 이런 눈가림으로 급급하고 비정규직이 줄지 않고 양산되어 간다. 그래서 소비 침체가 지속된다. 대기업이 투자할 공간은 다시 줄어든다. 만성적인 악순환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서민이 파이 맛을 볼 날이 언제나 오겠는가. (p.127) 작가 생각에 파이를 넓히려면 정규직의 양보 역시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고 한다. 스위스인들의 기대 수명은 2011년 당시 세계 2위였다. 그런데 은퇴를 하는 나이는 OECD 회원국 평균보다 낮다. 스위스인들은 장수를 하고 은퇴하면 공적인 복지를 확실히 받는 것이다. 노인 은퇴자들은 제2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다수이며 작가는 그러한 노령층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세대 간의 갈등이라는 측면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어려운 경제 현실, 복지의 미비함 속에서 젊은이와 노인이 마치 서로 대적하는 것 같은 경제 논리가 팽배하다. 젊은이와 노인층이 어느 쪽이 이익이면 다른 쪽이 손해라는 이런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다닌다. 스위스의 안정한 경제는 젊은이와 노인 양 계층을 끌어안는다는 점에서도 무척 바람직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한 생산력을 초월해서, 같은 땅에서 살아가는 동등한 인격체로서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 거다. 이런 풍토는 경제와 복지가 안정되어 있다는 기초적인 토대 하에 가능할 수 있었다. 책에서는 다양한 주제 속에 이런 부분이 나왔는데 기회가 된다면 자세히 알고 싶어 졌다.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노인의 경륜을 인정하고, 젊은이가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구조가 되면 좋겠다. 마지막 5장 시민참여가 명품 국가를 만든다 편. 이 장에서는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를 상세하게 분석하여 들려준다. 막연하게 알은 스위스의 정치를 흥미롭게 알 수 있었다. 맹찬형 기자의 <따뜻한 경쟁>은 저널리즘에 바탕한 글쓰기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게 했다. 살면서 겪은 에피소드들, 유럽 선진국에서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과 중국, 아시아에 대한 생각. 2011~2012년에 쓴 글이기에 MB 시절의 막바지를 바라보는 기자의 시선. 이런 것들이 딱딱하지 않고 또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스위스를 중심으로 하면서 북/서유럽의 정치와 사회, 외교를 친절하게 분석해준다. 보고서 라는 타이틀을 부제로 하는데 편안하게 읽히면서 팩트를 전달해주는 최적의 보고서이다. 지금은 2017년 인데도 전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스위스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작가의 주장은 무척 흥미롭고도 동감이 가는 측면이 많았다. 최근에 행복난민 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나왔던데 같이 곁들여서 읽으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위트가 살아 있고 시적인 비유를 만날 수 있었다. 사회의 병폐를 이야기하면서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탁월한 문장가인 작가를 발견해서도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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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면, 지금 돌아가는 현상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할 수 있다면, 그러한 예측들이 투명하고 정당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결과를 보인다면, 그러한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우리가 이상으로 바라는 사회가 그런 게 아닐까, 내 생각이기만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생각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 혹은 민주화와 비민주화의 차이, 합리적 지성의 실현과 그렇지 못함의 차이,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이루어내지 못한 이상적인 제도의 실현 등등에 대해서.
작가는 스위스 제네바에 머물고 있는 기자로서의 이점을 확실히 활용하여 스위스와 우리의 상황을 사회 각 부분에서 비교하여 말해 주고 있다. 스위스는, 스위스 국민은, 스위스에 사는 사람은 좋겠다 정도로 그칠 일이 아니었다. 스위스도 완벽한 나라,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되도록 모든 사람들이 집중하고 애쓴다는 점, 그게 아직은 우리와는 차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내 이익도 중요하지만 남의 이익도 중요하다는 자각, 남의 이익이 결국은 내 이익이 된다는 자각, 이 자각에 이르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우리 사회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내 가족, 내 자식, 내 것이 더 소중하기만 하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는 한, 힘든 것이다. 노력하는 사람들의 용기마저 무색해질 정도로 지독한 이기심의 한계. 얼마나 더 시행착오를 거쳐야 마음이 열리게 될까. 나는 어떤 상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나.
이제 남의 나라를 부러워하거나, 제도 좋은 남의 나라로 이민을 가고 싶다거나 하는 꿈을 꾸는 나이는 아니다. 나는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답답하면 답답한 대로, 지금의 우리나라에 우리나라 국민으로 살고 있는 데에 만족하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더 다행스럽게 고마워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다만, 맑고 투명한 정신만큼은 유지하며 더 키우며 살았으면 좋겠다. 스위스의 맑고 투명한 알프스 공기가 샘나지 않을 만큼.
이 책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언론에서는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방편이 되고, 독자에게는 남의 것만 부러워하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 나 자신부터 실천할 수 있게 용기를 주고,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는 제발...... 하는 심정으로 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따뜻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국민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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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 살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스위스를 다시 알게해주었던 좋은 책입니다. 모든 자료는 최근에 수집된 (2009-2011년)것들로 현실성 있는 조언을 바탕으로 스위스는 이러하다! 라는 메세지가 아닌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조심스레 제언하는 책이라 읽는 내내 작가의 비판의식과 폭 넓은 시각을 공유 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스위스의 교육, 국가 참여 방식, 환경에 대한 대국민적 관심, 실용성을 우선하는 정책 등을 소개해주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함께 비교해보며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어 신문도 평소에 잘 읽지 않고 스위스에 살아도 그 나라의 정치가 어찌 돌아가는지 전혀 관심없었던 저에게 다시 또 다른 시각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대북 관계 및 현 정치에 대해 오랜 기간 기자로 현장에서 뛰어 왔던 작가의 냉철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의미있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막연히 스위스가 좋은 나라라고만 생각하셨다면, 꼭 한번 가봐야지! 했던 분들께 강력 추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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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이라는 단어와 '경쟁'이라는 서로 모순된 느낌을 주는 단어가 결합된 책 제목을 보니 호기심이 일었다.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나의 아이들에게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그 경쟁시대를 살도록 강조하고 있는 나이기에 무척이나 이상적 단어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스위스'라는 나라가 주는 느낌 또한 이상적이다.
작지만 알찬 재정으로 잘 사는 나라, 정밀기계 산업과 금융산업의 부자나라, 천혜의 자연 환경을 발판삼아 관광산업을 주산업으로 하고 있는 나라...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나였기에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책을 펼쳤다.
읽어나가는 글마다 수치적 뒷받침과 명확한 근거들이 세세하게 나열되어 있어 저자소개를 읽어보니 아니나 다를까...기자생활을 오래하고 스위스 특파원으로 지낸 이력을 가지고 있는 저자였다.
그래서, 책의 내용들이 훨씬 더 사실적으로 와 닿았다. 사실적으로 와 닿았기에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그네들의 환경과 생활방식이 우리와 많이 다른 모습임을 인정하고라도 우리의 생활과 사고방식이 그네들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 변해가야 함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본다.
.....공존의 기술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면적 사고다. - 132페이지 ......공존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각자의 몫을 감당해야 한다. - 133페이지
이렇듯 저자가 표현한 '공존'에 공감하면서도 서글픈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공존'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스위스의 교육이나 보육, 복지, 급식, 대학등록금, 정치체제, 반려동물문화까지 두루 소개하며 우리 사회의 올바른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은 무한경쟁에 지친 우리들이 한 번 쯤은 읽어야할 책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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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공존, 상생, 인권... 이런 단어들이 눈에 띈다. 얼마전까지 힐링, 안식, 자기개발등이 자주 보였는데. 따뜻한 경쟁이라니 제목이 참으로 난해하다. 어울릴것 같지 않은 두 단어. 스위스는 아니 유럽이라고 해야겠지 여러모로 부러운 나라다. 하지만 마냥 부러워만 하면 뭐하겠나 우리도 열심히 바꾸며 가꾸어 나가야 겠지요. 재능이 만개할 수 있도록 실패를 용인하고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시스템과 문화들, '슬로' 관광개발들, 대학 안가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라는 스위스 패러독스, 생산성 을 증대시키는 복지 정책들, 출산과 육아에 관련한 부러운 정책들, 젊은이와 노년층을 위한 일자리들, 여러 산업부문의 공존과 국가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한 정책들, 농업을 보호하는 정책들, 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들 등등 이 모든 이야기들이 우리 삶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속에서는 뜬구름 같은 정책이야기들보다는 스위스에서 살면서 직접적으로 알게 되고 느끼게 된 이야기들을 예로 들기에 쉽고 재미까지 느낄수 있게 해줬다. 사람이 먼저이고 그 사람의 행복이 먼저이고 물론 나의 행복과 남의 행복도 같이 소중하다고 말하는 이가 많기에 누구나 살고 싶은 나라가 되는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공존하려면 나의 불편함과 약간의 어려움을 참아내야 한다는것을 알게 되었고 어떤 경우에서는 나보다 남을 먼저 챙겨봐야한다는 것도 느낀다. 편리함보다는 자연을 먼저 생각하고 함께를 먼저 생각하는 멋진 내가 되도록 노력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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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속속들이 살펴보려면 그것으로부터 한발 떨어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여행이란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새롭게 만나는 일이다. 우리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면 유럽을 보는 것 못지않게 한국을 보게 된다. 무엇이 같은지 무엇이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실감하는 일은 여행이 삶에 보탬이 되는 대목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오락과 휴식을 목적으로 비행기에 올라탔다고 할지라도 낯선 공기가 몸 안으로 스미기 시작하면 여행의 참다운 발견은 절로 눈을 뜬다. 그런데 그 풍경들이 내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나름대로 답을 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먹고 마시는 일처럼 그때그때 이색적인 정보를 머릿속에 꾹꾹 눌러담기도 어렵고 특정 문화와 연결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물론 저자처럼 특파원으로서 다른 나라에 머물며 비교적 긴 시간 동안 그 나라의 문화를 꼼꼼이 살필 수 있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를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이런 종류의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관계가 깊다. 정보와 사실을 바탕으로 하든 주관과 감상을 중심으로 하든 기행문은 그 사람이 서 있는 곳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인문 서적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스위스 기행문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는 스위스에서 '따뜻한 경쟁'을 보고 들었다.
작년에 나도 스위스로 여행을 다녀왔다. 내 짧은 여행을 저자의 경험에 비하랴만 스위스가 다른 유럽 국가와 견주었을 때 뭔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구태여 땅의 경계를 인식하지 않았더라면 특별히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곳들과는 사뭇 다른 그 나라만의 독특한 풍경이 있었다. 아주 사사로운 것들조차 내 눈에 신기하게 비치는 것이 많았지만, 긴 여행길에서 귀한 정보를 살뜰히 읽거나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게으른 여행자가 으레 그렇듯 내일의 여정을 위한 휴식을 핑계로 미루거나 무시하기 일쑤여서 지금은 결국 어렴풋한 기억과 몇 장의 사진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행하는 곳에 대한 공부가 꼭 출발하기 전에만 의미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가 더러 있다. 책을 읽다가 그림을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영화를 보다가 문득 그때 그 기억이 스르르 떠오르는 순간의 환희가 그 자명한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만드는 때다. 이 책은 내가 스위스에서 물음표를 그렸던 일들을 하나둘 끄집어냈다. 그리하여 나로선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스위스 여행을 다녀와서도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궁금증을 풀어주는 이야기가 되었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문체와 어투가 예리한 지적과 확고한 주장까지도 편히 받아들이게끔 하는데, 그것은 내가 이 책을 여행기로 여겨도 크게 무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내가 품고 있었던 궁금증이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기차를 타고 도심을 이동하거나 그 유명한 융프라우를 오를 때 책에서나 봤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런데 스위스에서는 유독 개인 살림집에 있는 정원과 화단에도 다채로운 꽃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산을 알록달록하게 수놓고 있었다. 목가적 전원과 잘 어울리는 터라 처음에는 그저 그 화사하고 밝은 분위기에 한껏 취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하나같이 예쁘게 꾸며 놓았다는 것이 어쩐지 이상하게 생각되는 데가 있었다. 다들 집을 참 잘 가꾸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은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도시를 아름답게 설계하고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하는 데 시민을 활용한 셈이다. 정원을 매만지는 일이 곧 돈을 벌어들이는 일이라면 그들은 얼마나 즐거운 마음으로 정원을 가꾸겠는가. 스위스에서 농업정책을 도맡은 정부 담당자는 국토라는 큰 화폭에 조화로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넓은 공원에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는 정원사와 같다. 좋은 정책 하나가 사람들을 두루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저자는 책에서 스위스를 여행하다 보면 푸른 초원 위에 소와 말, 양과 같은 가축들이 햇빛을 받으며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내 경험으로 봐도 그것은 참말이다. 스위스에는 자연 상태로 방목하면 보조금을 주는 법률이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축을 들판에 마구 풀어 놓은 데서도 스위스만의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냥 노닥거리는 게 아니라 농가의 소득 증대를 위해 열심히 근무하는 것이다. 그 보조금 규모가 우리 돈으로 무려 가구당 연평균 5000~6000만 원 정도. 이곳과 그곳의 물가가 다르긴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상당한 액수인 것만은 분명하다. 심지어 소를 방목하는 산비탈의 경사도에 따라 보조금이 차등 지급된단다. 그러잖아도 여행길에서 그것을 보고 산비탈에서의 방목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는데, 이 정도로 꼼꼼하게 지원할 줄이야. 관광산업과 농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영리한 정책이 돋보인다. 역시 스위스로군!
매년 5월 1일부터 10월 말까지는 한 달에 최소한 26일 이상, 해가 짧은 11월 1일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는 한 달에 13일 이상 초지에 방목하면 연간 마리당 180프랑(약 22만 원)을 준다. 암퇘지 두 마리를 매일 서너 시간씩 밖에 내놓고 키우면 1년에 360프랑(약 44만 원)을 주고, 닭 200마리가 낮 동안 자유롭게 닭장 안팎을 드나들며 모이를 주워 먹을 수 있게 하면 280프랑(약 34만 원)이 지급된다. 생태 친화적인 축사 시설을 갖춰도 돈을 준다. 가축이 2개 이상의 생활 공간을 오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주고 최소한 15럭스 이상의 안정적인 자연광을 쬘 수 있도록 조명 설비를 갖추면 큰 소 한마리를 기준으로 연간 90프랑(약 11만 원)을 지급한다.
농업 활동이 이뤄지는 현장 자체를 관광 상품화한 사례도 있다. 책에서는 대표적인 행사로 매년 9월 마지막 주 토요일과 10월 첫째 주 토요일 아침에 커다란 워낭과 화사한 꽃으로 장식한 소들이 목동들과 함께 알프스와 주라 산맥에서 내려오는 하산 행렬을 제시했다. 고산지대 외에는 치즈를 생산할 수 없었던 기술적 한계가 스위스의 수직적 유목을 낳은 것이다. 작은 규모의 행사도 많아서 여름에도 볼 수 있다. 내가 여행한 시기가 7월이었는데 숙소에서 그런 행사가 있다고 귀띔해준 덕분에 산지로 올라가서 맑은 공기와 햇빛, 신선한 풀을 마음껏 즐긴 소들이 내려오는 광경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하산 행렬이라 놓치기 일쑤인데 운 좋게 숙소 바깥에 있을 때였다. 화려한 꽃무늬 전통 복장을 한 목동과 소녀의 행진이 마을의 고요를 깨는 워낭 소리와 맞물려 여름날의 활기를 느꼈다. 이런 행사 역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꼭두새벽부터 소 떼를 기다리는 관광객이 있을 정도라니 관광 차원에서도 좋고 농사꾼에게 혜택을 줄 수 있어 농업 보호 측면에서도 유용하다.
마지막으로 스위스에서 내가 정말 의아했던 것은 마트들이 문을 하나같이 늦게 열고 빨리 닫는 점이었다. 늦은 시각까지 해가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가까운 상점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일찌감치 문을 닫는 터라 먹을거리를 미리 사놓지 않으면 야식 따위는 즐길 수 없다. 또한 여행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먼 곳으로 떠나고자 숙소를 나설 때가 많은데 간단한 요기라도 하려고 마트로 향하면 어김없이 문이 닫혀 있거나 영업을 준비하는 중이다. 작은 가게들은 크게 규정이 없지만 우리 식으로 말하면 대형 마트와 중소형 편의점의 영업시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어서 개점과 폐점이 철저하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불편을 느끼지 않을 리 만무하다. 2010년 대형 마트의 영업시간을 한 시간 연장하는 발의안을 놓고 제네바 시민들이 주민 투표를 했는데, 반대표가 찬성표보다 훨씬 많았단다. 희한한 일이다. 분명 그들도 마트가 늦은 시각까지 문을 열면 좋을 텐데 왜 반대했을까? 이럴지니 여행자의 입장에서 그것을 낱낱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2010년 11월 28일 제네바 시민은 대형 마트의 영업시간을 한 시간 연장하자는 발의안을 놓고 주민 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반대 56.2%, 찬성 43.8%로 부결. 우파 정당이 주도한 이 발의안은 미그로와 쿱 등 대형 마트의 평일 폐점시간을 30분에서 1시간 가량 늘리고 소비자 편의를 고려해 일요일에도 개점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한 시간 더 여유롭게 장을 볼 권리보다는 노동자가 현행대로 퇴근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쪽에 손을 든 것이다. 세상에나! 그러한 내용을 담은 발의안은 자주 나왔지만 번번이 부결되었다고. 이것이 이른바 똘레랑스 문화이다. 그들은 생산과 소비는 일관된 경제순환 과정의 두 측면일 뿐 각기 독립되어 있는 행위가 아니며, 소비자와 노동자의 관계 또한 각각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수시로 변한다고 인식한다. 한마디로 반대표를 던진 행위는 소비자와 노동자의 연대인 것이다. 만약 마트 직원이 한 시간 더 일을 해야 한다면 내가 장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연장되는 것이므로 나 역시 회사에서 일을 한 시간 더 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먼 미래까지 내다본다. 스위스의 대형 마트는 작은 동네 가게와 영업시간을 적절히 조율하기도 한단다. 우리로선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제네바 지역 대형 마트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오전 8시~오후 7시, 목요일과 금요일은 오전 8시~오후 7시30분, 토요일은 오전 8시~오후 6시까지 개점하고 일요일은 쉰다. 대형 마트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문을 열고 일요일에 쉬는 대신, 동네 가게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문을 열고 월요일에 쉰다. 같이 살자는 거다. 거기에 더해 토요일과 일요일엔 여기저지 마을 광장에서 우리나라의 5일장 같은 장마당이 펼쳐진다.
대형 마트 미그로와 쿱은 행정단위인 코뮌에 한 개씩 있는 게 일반적이며, 한국의 홈플러스나 이마트처럼 각종 편의 시설을 복합적으로 갖춘 매장은 도시 외곽에 있다. 그러니까 서울처럼 대형 할인점이 도심 곳곳을 차지하고서 소상인의 목줄을 누르는 일이 없다. 또한 우리의 편의점처럼 24시간 논스톱 운영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직원과 소비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지 않는다. 스위스에서는 장을 봐야 한다는 이유로 회사원이 정시에 퇴근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전혀 우스갯소리는 아닌 셈이다. 스위스의 평화로운 공기는 그저 하늘이 내린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국가와 시민 모두 따뜻한 경쟁을 통해 다양한 행복을 추구하는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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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경쟁’ 이데올로기와 ‘현실’ 이데올로기 우리 사회의 성공 공식은 매우 단순하고 일방적이다. “경쟁하라. 그리고 이겨라.” 그 공식에 대한어떤 도전이 있다면, 그것을 만류하거나 억누르는 것은 간단하다. “현실이 그렇다.” 기성세대만의 논리가 아니다. 부모 세대로부터 물려받았을 그 단순한 성공공식은 이∙삼십 대의 확신에 가득 찬 태도로 더 굳어지고 날카로워 진다. 이미 오래 전부터 경쟁에 뛰어 들었고, 그래서 언제나 남을 이기기에 바쁜 그들이다. 주위 친구나 후배들 중 누군가가 우리 사회의 경쟁 논리가 지나치다고 한다면 “현실이 그렇다.”고 쏘아 붙이면 그만이다. 스스로 말하는 그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이 없더라도 이미 그렇다. 일종의 ‘현실’ 이데올로기, ‘경쟁’ 이데올로기다. 가령 10대에게는 당연히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현실이 있고, 20대에게는 대기업이나 일부 전문직으로 한정된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현실이 있다. 넓게 보면 모든 세대에게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현실이 있다. 대학도, 직장도, 돈도, 한정된 기회이고 재화이니 그 모든 것을 얻기 위한 경쟁은 그저 당연하기만 하다. “경쟁을 해야한다”와 “그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가 있을 뿐, “왜”, “어떤” 경쟁을 해야하는지, “그 경쟁에서 밀려난 자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없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것이 이른바 ‘무한’경쟁인데, 그 본질은 ‘과잉’경쟁이다. 언제나 그렇듯, ‘경쟁만이 살길이다’라는 이런 막무가내식 현실 이데올로기에 가장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반대 논리는 ‘그렇지 않은 현실’을 제시하는 것이다. 굳이 경쟁을 하지 않거나, 경쟁에서 이기려 들지 않더라도 행복한, 경쟁을 하게 되었다면 승자를 축복하는 것 이상으로 패자를 위로하고 돌보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그러한 현실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넘어 이미 실현되어 있다는, 그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어느 스위스 특파원의 신 서유견문록 <따뜻한 경쟁>이 바로 그러한 모델 들을 제시하고 있다.
‘따뜻한
경쟁’이란 저자가 말하는 ‘따뜻한 경쟁’이란, “전체의 성과물을 독식하며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엘리트가 아니라, 창의적
에너지를 제공하고 맨 앞 줄에 서서 사회를 전진시키는 엘리트를 길러내는 경쟁”이고, “승패에 목매는 경쟁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장점과 개성으로 즐기는
경쟁”이며, 무엇보다 “결승선을
향해 일직선으로 질주하는 경쟁이 아니라 여러 번의 패자부활 전을 통해 다양한 기회를 갖는 경쟁”이다. 그러한 ‘따뜻한 경쟁’을
실현하고 있는 ‘현실 모델’들로서는, 저자가 3년간 특파원으로 거주하고 있는 스위스를 중심으로, 몇몇 유럽국가들의 사례들이 제시되고 있다. 책은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스위스의 어느 평범한 대학생이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되기까지, 그가 거쳐온 그 사회의 문화∙제도 등을 짚은 뒤, “한 사회가 천재를 길러내려면 그의 재능이
만개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실패를 용인하며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시스템과 문화가 필요하다. 또한 밥벌이
고민을 해결할 일자리를 확보해주고 그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실패를 용납하는 사회만이
천재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끝을 맺는다. 필자가 “따뜻한 경쟁”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패자부활”이다. 어떠한 경쟁에서 밀려난 자가 얼마든지 다른 기회를 통해 일어설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개인이 누리는 행복의 가치가 손상되어선 안 된다고 한다. “한 부문의 경쟁에서 탈락했다고 해서 인생 전체의 패배자로 몰아 붙이는 일이 없어야”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쟁’이
‘다양한 행복’을 만들고,
그로 인해 경쟁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경쟁의 획일화와 과열이 만들어내는
‘차별’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필자는 “무한경쟁의 다른 이름은 ‘차별’”이라고 하였다). 그 뿐 아니다.
“경쟁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사람은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이가 아니라, 예선으로
여기는 이다. 그러려면 다음 무대가 존재하고 쇼는 계속된다는 확신을 사회가 줄 수 있어야 한다.” 따뜻한 경쟁의 효율성 필자가 따뜻한 경쟁을 외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경쟁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만이 높은 수준의
성과와 함께 개인의 발전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기이다. 그런데 필자는, 한국식의 무한 과잉 경쟁이 아니라 스위스 식의 따뜻한 경쟁을 통하여야, 더
높은 수준의 성과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우선 ‘교육’의 문제를
놓고, “대학진학률이 높지 않은 스위스가 매우 높은 국가경쟁력을 유지한다”는 “스위스 패러독스”와
“대학진학률이 80퍼센트를 넘는데도 젊은이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코리안 패러독스”를
대비시켜 놓았다. “스위스 패러독스”의 핵심 배경은 “경쟁의 경로를 분산하는” 것이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대학 진입의 문을 높이는 대신, 비대학
출신자가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고 대졸자와의 임금격차를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사회 일반의 인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코리안 패러독스”에
대하여는 “국제사회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국내 산업의 실질 수요에도 부합하지 않는 학위를
따기 위해 부모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껴가며 학원비와 대학 등록금을 댔고, 학생은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며 공부했다”고 하였다. 두 가지 패러독스의 현격한
차이는, 두 국가에서 ‘공교육’이 차지하는 위상이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필자는 “공교육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어서 소중한 자녀의 진로에 대해서도 학교의 판단을 따르는” 스위스 학부모와 ‘공교육’을
믿지 못하는 탓에 사교육 시장에 “사회적 생산성에 문제가 있는 소비”를
퍼붓고 있는 한국 학부모를 비교하면서,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진로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되어 버린”, 우리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는, 한국의 교육현실을 드러내어 놓았다. ‘복지’에 대하여는, “복지는 소비가 아니라, 생산”이라며, 한국사회에서는 진보 진영에서 조차 복지 논쟁의 초점을 ‘재분배’에만 맞추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복지정책의 확대가 전문인력의
시장공급과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층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데 기여하고, 그것이 곧 ‘비즈니스 프렌들리’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는 사회일반의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련하여 소개된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연설이 인상적이다.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하는가.” 차별이 아닌 공존을 낳는 경쟁. 국가와 개인의 성장을 위해 치열한 경쟁은 벌어지지만, 그 결과 발생하는
승∙패의 구별이 ‘차별’이
아닌 ‘공존’을 낳는다는 것. 언뜻 현실성 없어 보이지만, 필자가 우리 사회에 요구하는, 또한 스위스 등 유럽 선진국의 사례로 소개되는, 경쟁의 모습이 그러하다. 가령 스위스의 경우도 ‘농업’은
국내총생산의 딱 1퍼센트를 차지할 뿐이지만, 금융∙제약∙시계
산업 등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세수형태로 걷어들여 농업에 재분배하는 구조가 탄탄하다는 것이다. 시골농가가
소∙양 등이 들판에서 뛰노는 목가적 장면을 ‘연출’하면 국가가 그에 따른 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도 소개하였다. 그 목가적
장면을 통해 성장하는 ‘관광산업’과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업’의 공존을 정책적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FTA 협상 등을 할 때 마다 휴대폰∙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에 밀려 어쩔 수 없는 희생을 강요당하는, 그러고 나서도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방치되고 마는, 우리의
농업 정책과 쓸쓸하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책은 “대형 마트의 영업시간을 연장하자’”는 발의안을 놓고 제네바에서 실시된 주민투표 얘기도 소개하고 있다. 유사한
안건에 대하여 수 차례의 주민투표가 있었지만, 제네바 시민들은 결국 “자신들의
‘1시간 더 여유롭게 장을 볼 권리’보다는 노동자가 현행대로
퇴근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이 역시 24시간 편의점이 일반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와는 대비되는
모습인데, 관련하여 필자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연대’의 메시지는 신자유주의의 철학까지를 통찰하는 명쾌한 것이었다. “’아무도 다른 이를 돌보지 말라’는
것이 신자유주의 철학이다. 이 철학의 목적은 한배를 탄 사회 구성원의 연대를 부정하고 모든 이를 개인
단위로 고립시켜 무한 생존경쟁의 틀로 몰아넣는 데 있다. 그렇게 파괴된 개인 속에서 노동 유연성과 자본
이익이 거침없이 세력을 넓힌다. 숨막힐 것 같은 신자유주의의 철학을 부수는 간단한 방법은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것’이다. 제네바
시민이 대형 마트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한 것처럼, 평범한 시민과 학생이 홍익대 미화 노동자를 감싸 안은
것처럼 서로를 챙겨야 한다.” 사법연수원에서의 따뜻한 경쟁을 꿈꾸며 나는 현재 사법연수원에 있다. 이곳 사법연수원에서도 세 차례의 시험을 중심으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시험의
강도나 경쟁자들의 면면, 패자부활의 기회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동료들은
사법고시 보다 훨씬 힘들다고 신음하기도 한다. 법조인 양성시스템이 숨가쁘게 변하고 있고, 연수생 중 대부분이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판∙검사 실무
중심의 시험체제는 변함이 없다. 어느 교수님께서는 연수원 시험이라는 것이 결국은 법원∙검찰의
구성원을 뽑는, 그래도 가장 공정한 기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셨다. 현행 시험체제가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로서는, 가장 수긍이 가는 설명이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시험 취지에 어울리는 정도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다. 연수원내에도 ‘일단 경쟁이 벌어졌으니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곧 경쟁이 ‘이데올로기’화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백 명의 연수원생이 각자 ‘연수원 교육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바’나 ‘향후 나아가고자 하는 진로’가
다른 만큼, 각자 필요로 하는 ‘경쟁의 내용’도 다를 것인데 말이다. 자신에게 들어 맞는 경쟁의 ‘내용’은 돌보지 않고 수치화되고 서열화되는 경쟁의 ‘결과’에만 집착할 때, 주위 사람에게는 물론,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조차 소홀해져 가는 모습을 종종 본다. 스스로가
정말 원하는 바, 자신이 얻고자 하는 행복, 그러한 것들이
치열한 경쟁의 과정에서 점차 밀려나고 방치되어, 결국은 서서히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의 끝에 떠 안게 되는, 상실감과 박탈감. 이는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따뜻하지 못한 경쟁의 매우 일반적인 부산물이다. 그런데, 이미 ‘사법고시’라는 고된 경쟁을 이겨낸 이들이 더욱 치열한 경쟁에 던져지게 되면서, 그
상실감은 더 크게 터져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
연수원에서 벌어지는 이 치열한 경쟁이야 말로 ‘차별’이나
‘상처’가 아닌 ‘공존’과 ‘연대’를 낳는 ‘따뜻한 경쟁’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따뜻한 경쟁을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이 책에 나오기도 하는데, 그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조세 전문 변호사인 Y선배가 들려준 얘기가 있다. 요약해서 옮기면 다음과 가다. 사법연수원에서 100등 이내의 상위권 성적을 받고 로펌에 들어온 젊은
변호사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가장 자주 느끼는 점은 후배 변호사들에게 법률적인 쟁점에 대한 자기 의견이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후배 변호사가 작성한 법률의견서나 법원에 제출할 서면
초안의 내용을 검토한 선배 변호사가 작성자와 다른 의견을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작성자는 자신이
왜 그런 결론을 냈는지 선배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데, 아무런 질문없이
선배가 제시한 의견대로 곧바로 결론을 바꿔서 서면을 작성해 온다. 또한 함께 수행하는 사건과 관련해
후배 변호사에게 의견을 물어오면 입을 꼭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틀릴까봐 두려워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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