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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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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보 1호는 남대문인 숭례문이다. 중국과 일본과 비교해 볼때 우리나라의 옛 건물들은 귀족적인 느낌이기보다는 자연친화적이면서 사람과 가까운 느낌이 많이 든다. 그럼에도 도성안에 건물들은 은근히 웅장한 느낌이 들고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차를 타고 짧게 지나치는 남대문은 주변의 만천루만큼이나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국보 1호라서 우리나라의 가장 소중한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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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보 1호는 남대문인 숭례문이다. 중국과 일본과 비교해 볼때 우리나라의 옛 건물들은 귀족적인 느낌이기보다는 자연친화적이면서 사람과 가까운 느낌이 많이 든다. 그럼에도 도성안에 건물들은 은근히 웅장한 느낌이 들고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차를 타고 짧게 지나치는 남대문은 주변의 만천루만큼이나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국보 1호라서 우리나라의 가장 소중한 상징물이라 알기는 알되 친하지는 못한 건축물. 그래도 뭔가 애틋한 느낌. 그것은 사랑하기엔 너무 멀고 가깝게 느끼기엔 부족한 어정쩡한 사이같다.


그런 남대문이 최근 들어 많은 수난을 겪었다. 아무나 가까이 하지 못하는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같은 상징물이라 여겨졌던 남대문이었는데 난데없이 커다란 화재소식이 들려오고 보수된 남대문은 시멘트로 치덕대어 놓고, 이를 두고 또 여러 부서에서 서로 탓하며 미루고 있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런 소식들을 보며 드는 것은 안타까움과 더불어 퇴색되는 남대문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러다 최근 정도전에 대한 책과 <역사저널 그날>을 보면서 한양 도성이 어떻게 계획된 도시였는지 얼마나 커다란 의미를 품고 있는지를 알게되었고 남대문에 대한 호기심어린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드는 중에 이 책을 만났다.


<남대문의 봄>은 남대문을 의인화해서 남대문이 화자가 되어 남대문이 처음 생겨났던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질곡의 시간들을 그려내었다. 하지만 딱딱한 학문적인 근접이 아닌 남대문을 드나들던 백성들과 시대적 사건들을 겪어내는 1인칭의 시점은 따듯하고 남대문이 단순히 물리적인 생김새때문에 단지 상징성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님이 쉽게 다가온다. 퇴락한 불교가 아닌 성리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아 건국된 조선의 가장 대표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의를 숭상한다는 의미의 숭례문인 남대문은 남쪽을 향해 있다는 의미도 커다랗게 다가온다. 정도전이 한양의 도읍을 계획할때 화려하고 위엄을 내세우기 보다는 백성친화적인 의미로 지었다는 도성의 의미를 안지 얼마 안되어서인지 숭례문이 거친 시대적인 여러 변화가 가볍지않게 다가왔다. 


(그림출처 yes24 책 페이지)


아이들이 보기에도 친숙한 글도 좋았지만 따듯한 느낌의 수채화 그림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새벽을 여는 남대문의 느낌이나 계절에 따른 남대문의 풍경이 예쁘고 소담스럽게 다가왔다. 영화 <모던 보이>에서 옛 도성의 느낌이 생생하게 인상적이었던 것처럼 <남대문의 봄>속의 그림들도 남대문에 대한 느낌을 그렇게 살아있는 느낌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남대문의 화재를 계기로 남대문을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엇다는 작가의 말처럼 남대문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시멘트로 볼썽사납게 치덕대고 옛 모습 그대로가 아니더라도 남대문의 의미를 잊지 말아야지. 봄이 되면 남대문을 보러 가야지. 멀리서 스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가서 봐야지. 책장을 덮으면서 남대문이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2***s 2014.02.28. 신고 공감 4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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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마음에 건강한 역사가 움트길...
"아이들의 마음에 건강한 역사가 움트길..." 내용보기
우리의 역사 중 조선은 고려에 비해 훨씬 우리에게 친숙하다. 아무래도 고려는 그 시대의 많은 유물들이 우리가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북한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아가지 못하기에 막연하게 생각된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와 함께,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의 우리 후손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 역사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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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 중 조선은 고려에 비해 훨씬 우리에게 친숙하다. 아무래도 고려는 그 시대의 많은 유물들이 우리가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북한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아가지 못하기에 막연하게 생각된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와 함께,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의 우리 후손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 역사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조선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 남대문. 너무 친숙해서 눈여겨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국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옆에서 항상 말없이 서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어서 우리는 남대문의 가치를 그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 불이 났고 그 불 속에서 사람들은 남대문의 눈물, 조선 역사의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2013, 우리는 다시 불길 속에 울고 있던 남대문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한양 도성의 문, 언제까지나 한 자리에서 백성들이 들고나는 것을 지켜볼 수 있기를 소망했던 남대문, 차별 없이 사람들을 들고나게 하는 남대문의 눈을 통해 조선 왕조의 희노애락을 볼 수 있다. 조선의 초창기 개혁의 기운, 찬란한 융성기부터 외세의 침입에 백성들을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가는 임금과 관리의 뒷모습, 백성들의 고통, 일본의 까만 속내까지 남대문은 묵묵히 서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기억한 채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남대문과 함께 하는 600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모두 품고 그 모든 것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남대문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역사,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도 없이 오직 스마트폰에 고개를 묻고 사는 요즈음 우리 아이들에게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그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자부심이 싹트길.... 남대문이 새로운 봄을 맞이한 것처럼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도 건강한 봄이 오기를 바란다. 그 봄의 기운으로 나를 바로 알고, 역사를 바로 알기를 기원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a****q 2013.02.27.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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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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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tv를 통해 남대문이 불길에 휩싸인 모습을 보고 우리 국민 모두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새 봄이 모면, 불길에 상했던 남대문이 새모습으로 단장을 마치고 다시 국민의 곁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 책은 남대문을 의인화해서 남대문의 입장에서 쓴 아름다운 책입니다. 한양을 조선의 수도로 삼아서 사대문과 사소문을 두어 성곽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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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전 tv를 통해 남대문이 불길에 휩싸인 모습을 보고 우리 국민 모두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새 봄이 모면, 불길에 상했던 남대문이 새모습으로 단장을 마치고 다시 국민의 곁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 책은 남대문을 의인화해서 남대문의 입장에서 쓴 아름다운 책입니다.

한양을 조선의 수도로 삼아서 사대문과 사소문을 두어 성곽을 두르고 그 사대문에 인,의,예,지(대신 정)이라는 4개의 한문으로 대문의 이름을 정해서 현판을 써서 붙이게 됩니다. 남쪽은 불의 기운이 승한 곳이라 이것을 누르기 위해 현판을 세로로 걸었다는데, 아마 그런 이유로 남대문이 그렇게 큰 불길에 쉽싸였는지..십기도 하네요.

 

봄,여름,가을,그리고 겨울 이렇게 사계절을 지나면서 우리 조선의 역사와 함께 한 남대문의 역사는 참으로 다양하고 친숙하면서 가슴이 아픕니다.  서울은 조선의 도읍이고 그러한 서울의 정문이 바로 남대문입니다.

명나라의 사신이 조선의 궁궐에 들어가기 위해 지났던 문, 작은 백성들이 한양에 볼 일이 있을 때 드나들던 문, 그리고 세종임금 때에 와서 남대문은 높이 그리고 더 멋지게 새로 단장을 하게 되지요.

역사는 계속 되어 일본군에 의해 한양이 함락되기 직전 선조는 비를 맞으며 초라하게 새벽에 피난을 떠납니다. 백성들만 놓아둔 채로 말이지요. 그러나 다행히도 의병에 의해 전세는 다시 승리의 기운을 얻고 무사히 한양을 되찾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근대에 들어오면서 일본은 다시 조선을 점령하고 많은 아픈 역사를 만들어내지요.

 

이러한 영욕의 세월을 함께한 보물이 바로 우리의 남대문입니다.

그간의 감정과 감동이 그대로 뭍어나는 아름다운 '남대문의 봄'을 읽다보면 어느덧 조선의 역사를 가슴으로 읽어내려가게 됩니다. 삽화도 수묵담채화로 아름답고 담백하며 정감어리게 그려져 있어서 책의 재미를 더하는군요~

초등 4학년 이상이라면 재미있게 읽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s*****n 2013.02.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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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 화전놀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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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면 복원된 남대문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고모, 어떤 모습일까?” 5년 전, 유치원생이던 조카는 요즘 부쩍 남대문에 관심을 보인다. 남대문이 불타던 그날의 기억이 너무 생생했기 때문이다. 그 날, 나는 조카와 텔레비전을 보며 저녁을 먹고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활활 타고 있는 남대문을 보고 망연자실해졌다. 남대문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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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면 복원된 남대문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고모, 어떤 모습일까?”

5년 전, 유치원생이던 조카는 요즘 부쩍 남대문에 관심을 보인다. 남대문이 불타던 그날의 기억이 너무 생생했기 때문이다. 그 날, 나는 조카와 텔레비전을 보며 저녁을 먹고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활활 타고 있는 남대문을 보고 망연자실해졌다. 남대문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듯 보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붕이 무너지는 순간, 남대문이 비명을 지른 것 같았다.

“국보 1호인데 왜 불이 나요?”

조카의 물음에 내가 방화범이라도 된 듯 마음 한 편이 께름칙했다.

“그러게……”

조카에게 남대문은 ‘국보 1호’니까 소중히 해야 한다고 알려준 사람은 나였다. 그러나 정작 나는 남대문에 무관심했다. 남대문 근방을 오갈 때도 투명한 물건 취급을 하며 눈길조차 건네지 않았다. 잃어봐야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내가 그꼴이었다. 그냥 거기에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던 게 사라지자 새삼 안타까웠는데 더 나은 모습으로 복원된다고 하니 다행이다.

 

이전의 무심함을 반성할 겸, 남대문이 복원되면 남대문을 만나러 가기로 조카와 약속했다. 약속을 하고 나니 남대문 앞에서 조카가 이런 저런 질문 할 것이 걱정이었다. 국보 1호란 것 말고는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조카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을 찾다가 때맞춰 출간된 『남대문의 봄』이란 책을 구입했다.

이 책은 일종의 역사서이지만 남대문이 화자가 되어 600동안 지켜보았을 법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지붕의 잡상(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들의 수다가 맛깔스러워 아이들이 읽기에 전혀 지루하지 않다. 파스텔 톤의 삽화를 보며 남대문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와 떠들썩한 잡상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600년 역사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삶이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남대문 복원 문제를 놓고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복원되는게 옳다는 생각이 든다. 남대문이 화자여선지 남대문은 오래된 사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삶이 저장하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남대문은 과거에도 여러차레 개보수 되며 살아났듯이 이번에도 다시 살아나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삶을 지켜봐야할 존재인 것이다.

남대문을 다시 만나는 날, 이 책을 들고 조카와 화전놀이라도 가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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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우리의 국보1호 남대문을 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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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이 불타던 날을 기억한다. 2008년 2월 11일, 내 생일이었고, 내가 태어난 시간과 거의 같은 시간 남대문이 불길에 휩싸였다. 17대 대선이 있고 두 달도 안 돼 이게 무슨 징조인가... 마음이 많이 착잡했던 게 생각난다. 그 날이 내가 남대문에 대해 생각한 첫 번째 기회였다는 건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남대문이 복원되었다고 한다. 때에 맞춰 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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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이 불타던 날을 기억한다.

2008년 2월 11일, 내 생일이었고, 내가 태어난 시간과 거의 같은 시간 남대문이 불길에 휩싸였다.

17대 대선이 있고 두 달도 안 돼 이게 무슨 징조인가...

마음이 많이 착잡했던 게 생각난다.

그 날이 내가 남대문에 대해 생각한 첫 번째 기회였다는 건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남대문이 복원되었다고 한다.

때에 맞춰 남대문에 관한 책 <남대문의 봄>이 출간된 건 기쁜 일이다.

무엇이든 제대로 알아야 소중히 생각하게 되는 법이니까.

16년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국보 1호 남대문에 대해 공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이 책은 남대문 600년의 역사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펼쳐나가면서 조선 왕조 500년 역사와 근현대사를 풀어나갔다는 점이 흥미로우며, 교육적 효과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남대문은 단지 하나의 성문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증거하는 상징이라는 걸 이 책은 옛날 얘기를 들려주듯 재미있게, 조근조근 알려주고 있다.

남대문 추녀마루의 잡상들이 꼭 필요한 양념 같은 조연들처럼 글에 생동감을 더한다.

남대문을 중심으로 당시의 풍습이나 생활상을 펼쳐 보인 점도 흥미로웠다.

아, 남대문은 조선의 역사와 생활의 변천사를 한몸에 간직하고 있는, 그야말로 국가의 최고 보물이구나, 싶었다.

도심 한가운데, 우리와 동떨어진 존재로서 서 있었던 남대문...

그렇게 무심히 지나치곤 했던 남대문이,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 바짝 가까워지는 같았다.

2008년 남대문 화재는 충격이었지만, 그것은 남대문의 소멸이 아니었다.

복원으로 다시 태어났으니까.

저자는 말한다.

'남대문에겐 복원되고 고쳐진 흔적마저도 역사다.'

크게 와 닿는 말이다.

하지만 상처는 더 이상 입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대문의 봄은 이제 겨울 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a*******a 2013.02.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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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리릭~ 타임머신 남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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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즈의 타임머신은 어딘가로 날아가지 않고 그자리에서 시간을 거스르거나 흘려보낸다.꼼짝않고 한자리에서 600백년을 지냈을 남대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마치 남대문이라는 타임머신에 앉아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다.남대문이었기 때문에 보았을 사건들, 남대문이라서 느꼈음직한 상념이 촘촘하지는 않지만 징검다리마냥 600년의 시간을 건너게 한다.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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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즈의 타임머신은 어딘가로 날아가지 않고 그자리에서 시간을 거스르거나 흘려보낸다.

꼼짝않고 한자리에서 600백년을 지냈을 남대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마치 남대문이라는 타임머신에 앉아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남대문이었기 때문에 보았을 사건들, 남대문이라서 느꼈음직한 상념이 촘촘하지는 않지만 징검다리마냥 600년의 시간을 건너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도 알만한 문화재 중에서 가장 많은 이 땅의 사람들과 얼굴을 맞댄 문화재가 남대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성을 쌓고 문을 지으면서, 과거를 보기 위해서, 전란을 피해서, 장을 보려고, 물건을 팔려고, 말을 타거나 전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 광속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행렬 끄트머리에 완공을 기다리며 공사장을 기웃거리던 내 모습도 보인다. 이것이 남대문을 최고의 보물이게하는 이유일까?

역사는 결국 옛날 이야기이고 문화재 또한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묻어나야 생동감이 있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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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호의 자취를 찾아서 [남대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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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은 우리 대한 민국 국보 1호인 건축물입니다. 이 건축물이 국보 1호가 된 데에는 여러 사연이 있겠고, 예컨대 가토 기요마사가 임란 당시 그를 통과하여 한양에 입성한 일을 기렸다는 등 비판적 시각도 팽배합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그런 시각이야말로 패배주의, 타자지향적 자기 비하일 수 있습니다. 남대문, 즉 숭례문은 조선 초기, 어느 다른 동아시아국가에도 존재하지 않
"국보 1호의 자취를 찾아서 [남대문의 봄]" 내용보기
남대문은 우리 대한 민국 국보 1호인 건축물입니다. 이 건축물이 국보 1호가 된 데에는 여러 사연이 있겠고, 예컨대 가토 기요마사가 임란 당시 그를 통과하여 한양에 입성한 일을 기렸다는 등 비판적 시각도 팽배합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그런 시각이야말로 패배주의, 타자지향적 자기 비하일 수 있습니다. 남대문, 즉 숭례문은 조선 초기, 어느 다른 동아시아국가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독자적 미의식과 건축 스타일을 잘 살린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입니다. 이 건축물에는 외적인 미학 요소 외에도, 당시 한양 도성 설계의 그랜드 마스터였던 정도전의 웅대한 기백과 야망이 스며 있는, 유교 관료주의 시스템, 신생 국가의 참신하고 활력 있는 아우라가 고스란히 구현된 명품의 영조물이기도 하죠. 우리의 것을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돌보지 않으면, 그 누가 온전한 가치를 평가해 주겠습니까.

항상 어린이책을 보면서 느끼는 바인데요. 요즘은 아동용 도서에도 어른이 채 몰랐던 알찬 정보가 많이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공자님도 "사리를 모르면 어린아이한테라도 물어서 배울 일"이라고 가르치신 바 있습니다. 어른이라고 해도 공연한 체면 때문에 모르는 걸 모르는 채로 넘어가기보다, 이런 알찬 읽을거리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바를 채우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조카하고 같이 읽을 요량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지만, 조카보다도 오히려 제가 배우는 바가 더 많았습니다. 요즘은 수행 평가를 통해 전통 문화에 대한 교육이 내실 있게 이뤄져서인지, 아이들도 이런 사항에 대해 많이들 알고 있더라구요.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이현숙이라는 분이 줄글을 쓴 내용입니다. 이분에 대해서 저는 잘 몰랐는데, 조카 책장에 보니 <곰뱅이 텄다! 남사당놀이>라는 다소 생소한 제목의 책이 있던데, 그 책을 쓰신 저자이기도 하더라구요. 이현숙 님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이 책의 기본 참고 서적 구실을 한 이이화 선생의 <한국사 이야기>가 제게 대단히 친숙하기에, 더욱 반갑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그 책을 전에 제법 여러 차례 읽었는데도 모르는 정보가 많았다는 게 창피하기도 하지만요). 이이화 선생님은 다들 잘 아시듯이, 우리 민족의 지난 자취에 대해 학문적으로 명쾌하고 내러티브상으로 흥미진진한 많은 책을 저술하신, 존경 받는 역사학자이십니다. 근대 이전 역사이건, 현대사이건 불문으로요.

이 책의 제목을 보시면, "남대문의 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김동인의 소설 <운현궁의 봄>은 익히 들어서 알지만, 남대문의 봄이라니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저자의 의도는 이렇다고 합니다. 잠시 책의 본문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1. 남대문의 봄 - 조선이 세워지고 남대문이 당당히 열린 시기.
2. 남대문의 여름 - 조선이 무르익어 가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무렵.
3. 남대문의 가을 - 태평한 조선과
일본(여기서 일본은 제국주의 일본입니다)이 침략하기 이전의 시기.
4. 남대문의 겨울 - 성벽이 무너지고(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을 겪은 때.
5. 그리고 뜻하지 않은, 어이없는 사고라 할 화재 후
대략의 형태가 복원된 오늘날은 ‘다시 남대문의 봄’이라는 것입니다.


계절의 순환 그 주기와 양상에 맞추어, 어떤 도시나 국가, 문명의 성쇠 사이클을 논하는 건 어느 정도 확립된 관행입니다. 저자 역시 그런 기준에 맞추어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리고 깊은 의미를 담아 가며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내고 있는 계절이 "두번째의 봄"이라면, 서울과 남대문이 처음으로  그 햇살의 다사로움을 만끽한 시즌은 조선 건국 직후 정도전의 위대한 비전이 빛나던 그 시절입니다. 봄이란 계절의 속성이 그러하듯, 그 모든 파릇파릇한 가능성과 희망을, 아직은 미숙하여 속살과 피부가 연한 망울 안에 담아내고 있는 시즌입니다. 도성의 백성들도 새로 건설된 수도의 힘찬 기운을 받아 생산에 힘쓰고 여흥을 즐기며, 관료 등 지배층도 서무 처리와 공정한 행정 수행에 여념이 없을 무렵입니다.

신록이 어느 새 녹음으로 변하는 여름, 조선의 잘 정비된 관료 체제와 유능한 벼슬아치들, 부지런하고 생산성 높은 백성들이 그 의기가 투합하여, 조선은 당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세련된 국가 체제를 이룹니다. 그러나 일부 세도가(외척)와 훈구 세력의 비생산적인 정쟁 때문에 국가는 더 이상 내실 있는 성장과 기강을 유지하지 못하고, 치욕적인 외침을 겪게 되죠. 숭례문은 적장의 입성을 허용하는, 지극히 비례(非禮)스러운 역사의 순간을 제 한 몸으로 겪으며, 그 웅숭깊은 이름과는 반대되는 의미로 가득한 불명예를 입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 성경의 비(非) 인격 주인공은 바로 성전(the Temple)이다." 이현숙 저자도 마치 그런 태도처럼, 이 책 내내 그 장구한 6백년의 역사를, 다름 아닌 남대문을 살아 있는 화자로 하여, 의인의 내러티브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서울 동네 어귀 곳곳에 수백 년 수령의 나무가 존재하듯, 그리고 그 긴 지난 역사를 인간 몇 세대가 지나치는 동안 제 눈으로 다 보았다는 듯 침묵의 증언을 열거하듯, 이 남대문도 가상의 화자가 되어 진진하고 절절한 이야기를 구수한, 때로는 애상 어린 어조로 어린 독자들에게 들려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4대문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면서, 특히 북대문(사실 이런 이름은 없고, 대중들이 편의상 부르던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사대문은 각각 정동 정서 정남 정북 위치가 아니기도 하거든요)에 대해서는 지(智)를 빼고 정(정)을 넣어 肅靖門이라 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왜 인의예지의 순서대로 이름이 지어지지 않았는지 이해를 시켜 주는 좋은 내용이었어요.


v*****7 2014.02.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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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의 봄] 역사와 함께 국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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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0일 불길 속에 국보 제1호 남대문이 붙났다. 새로 복원한다고 떠들썩했었는데 개인적으로 현대 기술로 재단장되는 유적에 국보 제1호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머리 속에 들었더랬다. 이미 지난 날의 남대문은 사라졌고 남은 것은 현대인의 손길로 비슷하게 꾸며지게 된 남대문 형태를 띈 오늘날의 그 무엇이 아닌가! 이제 남대문은 국보 제1호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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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0일 불길 속에 국보 제1호 남대문이 붙났다. 새로 복원한다고 떠들썩했었는데 개인적으로 현대 기술로 재단장되는 유적에 국보 제1호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머리 속에 들었더랬다. 이미 지난 날의 남대문은 사라졌고 남은 것은 현대인의 손길로 비슷하게 꾸며지게 된 남대문 형태를 띈 오늘날의 그 무엇이 아닌가! 이제 남대문은 국보 제1호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다른 문화재를 국보 제1호 자리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던 그때가 생각난다.

 

여기 이 책은 그렇게 불타버려서 현대인의 손길로 다시 재단장되는 남대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조선 개국과 역사를 함께 한 남대문(숭례문)과 남대문 위에 장식된 잡상(!)의 대화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잡상이란, 잡상인 할 때의 잡상이 아니라 잡귀를 막거나 액을 쫒기 위해 목조 건물 지붕의 추녀 마루에 장식해놓은 조각들을 얘기한단다. 잡상 중에서도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을 내세워 흥미롭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야기의 처음은 조선 건국에서 시작된다. 한양 천도와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갈등이 남대문의 시각으로 묘사된다. 남대문을 비롯한 4대문의 형성과 유래가 설명된다. 유교 덕목인 인의예지에서 따와 정도전이 이름을 붙였다는데 그리하여 동쪽은 홍지문, 서쪽은 돈의문, 남쪽은 숭문, 여기에 북쪽은 글자를 살짝 바꿔 숙정(靖)문이라고 했단다.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다스리기 위해 현판글씨를 세로로 써 화(火)의 기운을 화(火)로써 막을려고 했다는 설명이 차근차근 이어지는데 남대문 방화 사건을 익히 알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로써는 새삼 가슴 아프게 와닿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남대문을 중심으로 한양의 풍경이 묘사된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조선 시대의 역사가 펼쳐진다. 이성계와 이방원,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 명나라의 고명을 받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시절의 이야기와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국가적 위기 속 이야기가 이어지는가 하면 파루 한 번에 울고 웃는 한양땅 민초들의 이야기가 녹아든다. 한양땅 민초들은, 서소문을 오가며 명화적의 칼부림 소문에 겁을 먹고 땅재주꾼의 재주넘기를 보며 손에 땀을 쥐더니 어느새 대원군과 왕비(명성왕후)의 다툼을 이야기한다. 대원군과 왕비, 왕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하던 캐릭터들은 남대문 주변을 오가는 전철 이야기에 빠져든다.

 

시대는 어느덧 흐르고 흘러 고종은 강제퇴위되고 일본군이 남대문 위에 시위진압용 대포를 설치하기까지 이른다. 역사의 아픔은 남대문까지 할퀴고 있었던 것이다. 남대문 위에 일본군이 배치되어 조선군을 향해 발포를 하게 되고 어두운 새벽을 틈타 살아남은 조선 군인들이 패주하게 된다. 남대문은 이제 조선의 대문이 아닌 일제 식민지의 일부분이 되어버렸고 성벽마저 헐리게 된다. 성벽만 헐고 대문을 남겨놓은 이유가 가관인 것이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남대문을 통과했다고 그 기념으로 남겨놓은 것이란다. 동대문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통과했다고 하여 성벽은 없애더라도 대문만은 남겨놓기로 했단다.

 

남대문과 그 위의 잡상들은 이제 일제시대를 본격적으로 맞이한다. 남산 중턱에 신궁이 지어지고 신궁 참배의 행렬이 이어진다. 남대문 주변 기와집과 초가집은 사라지고 일본식 목조건물이 들어선다. 한 편으로는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의사들의 의거가 이어진다. 학생들, 여인들 그리고 무수한 조선사람들이 일제의 폭거 속에 고생을 치르고 있던 중 해방의 순간이 다가온다. 일제에 의해 좌우 성벽도 잃은 남대문에게도 좋은 시절이 돌아오나 했는데 곧 이어 625의 비극이 다가온다. 남대문은 포탄에 맞아 만신창이가 되고 1961년이 되어서야 복원이 결정된다. 국보 제1호로 지정이 되고 새롭게 단장을 하며 축하 속에 몇 십 년이 자났을 때,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숭례문 방화사건 일어난다.

 

그리고 불 탄 남대문이 복원되어 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전통적인 방식이라면서 떠들썩하게 못을 만들고 기와를 굽던 일들이 지금에서야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 책이 만들어질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대장간의 망치질 하나하나에 남대문 전통 복원을 향한 국민들의 꿈이 풀무짓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복원되어 다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남대문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방화에 의해 불타 버리고 복원 역시도 마뜩찮게 된 남대문을 계속 국보 제1호로 둬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내 머리 속에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냥 머리 속의 질문에 그치고 마는 것은, 남대문이 민중과 함께 한 소통의 공간으로 우리와 함께 해왔다는 것 때문이다.

 

귀한 도자기 한 점, 값비싼 보석 한 조각은 특정 귀족의 것에 불과하지만 남대문은 그렇지 않다. 한양 성내와 성외를 이어주는 공간의 통로였으며 유구한 역사를 조선 민중과 함께 숨셨던 시간의 통로이다. 전쟁과 침탈의 시기를 겪고 방화와 엉터리 복원의 순간을 겪으며 여전히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남대문, 그래서 더욱 소중한 존재가 아닐까. 조선의 혼이, 우리 민족의 얼이 소통의 공간 남대문 속에 함께 하고 있다. 비록 아쉬운 부분이 있게 복원이 되었더라하더라도 그 안타까운 순간들마저 남대문이 갖고 있는 길고 긴 역사 속의 일부분이 되지 않을까 싶다.     

 

 

 

 



j*********n 2014.02.12.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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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남대문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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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고,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기면서 적을 막고 백성들을 보호할 국가의 울타리인 도성을 쌓았다. 그리고 유교 덕목인 '인의예지' 네 글자에 맞춰 이름 지어진 네 개의 문은 그냥 편하게 동서남북의 대문으로 불린다. 그 중 남쪽의 숭례문은 완성되기까지 다른 문들보다 2년이나 더 걸린 공사 기간 뿐만 아니라, 불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현판까지 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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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고,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기면서 적을 막고 백성들을 보호할 국가의 울타리인 도성을 쌓았다. 그리고 유교 덕목인 '인의예지' 네 글자에 맞춰 이름 지어진 네 개의 문은 그냥 편하게 동서남북의 대문으로 불린다. 그 중 남쪽의 숭례문은 완성되기까지 다른 문들보다 2년이나 더 걸린 공사 기간 뿐만 아니라, 불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현판까지 세로로 걸렸으니 다른 대문들과는 확실히 남다른 구석이 있다. 새 왕조의 권위를 보여줄 위엄있는 한양의 정문이기 때문이다.

 

 

 

나라에 큰 변고가 없는 한 새 벽4시에 열려 밤 10시에 닫힐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통과시킨 남대문이기에 같은 자리에 꼼짝 않고 머물러 있으면서도 온갖 세상 소식을 보고 들은 목격자이자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남대문의 봄>은 남대문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600년 동안 한결 같이 지켜봐 왔던 역사 이야기를 들려 준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남대문 지붕 추녀마루의 잡상-삼장법사와 손오공 삼총사의 인자하면서도 장난 섞인 대화가 어우러져 당시의 시대상을 부연 설명해 준다.

 

 

 

사신 행렬,  일본군의 침입, 백성들의 피란 행렬, 정조의 화성 행차 등 역사적인 순간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비롯해 3일간 이어지는 과거 급제자들의 시가행진, 운종가와 시전에 오고가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600년의 희노애락이 남대문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왕자의 난 이후 이방원이 개성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6년간 비어 있었고, 남대문을 높이 짓고 싶어한 세종에 의해 지어진지 30년 만에 해체돼 터를 높였고, 또 30년이 흘러 성종 때 손을 보고, 연산군 때 공포 분위기 속에서 걸어 잠갔고, 임진왜란 때 성조의 피란, 병자호란 때 인조의 굴욕적인 모습, 영조와 정조의 치세, 고종과 흥선 대원군의 반목 등을 지켜 보며 조선 왕조와 삶을 함께 했던 남대문은 어처구니 없게도 일본 황태자의 방문을 계기로 성벽이 헐리면서 더 이상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문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 서울의 상징, 국보 1호이기도 했던 남대문은 또 다시 어처구니 없는 일로 불타버렸다. 남쪽에 불의 기운이 강해서였을까. 밤중에 뉴스 속보로 화재 순간을 지켜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수백년의 역사가 한 순간에 허물어지는 모습에 꽤나 무기력함을 느꼈었다. <집단 기억의 파괴>라는 책을 보면 건축물은 기억을 떠올리는 데 필수적인 유형물이고 과거를 일깨우는 촉매 구실을 하는데, 벽돌과 돌이 지닌 영구성과 불변성 때문에 한 장소에 뿌리박힌 느낌과 그 집단에 귀속되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필멸성의 한계를 가진데 반해 건축물은 개인보다 더 오래 살아남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파괴됐을 때의 고통은 개인의 죽음보다 크다는 거다.

 

 

 

복원에 의미가 있냐 없냐로 말들도 많았지만, 도시 한 가운데 불타버린 남대문을 남겨둔다는 건 꽤나 가슴 아픈 일이다. 결국 복원이 결정됐고 작년에 성벽 날개를 되찾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온 남대문. 그런데 남대문의 아픔에 관한 이 책을 덮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숭례문 복원에 관련된 뉴스가 나와서 관심있게 지켜봤다. 부실 복원도 모자라 '대국민 사기극', '문화재 마피아'라는 험한 말들이 쏟아지는 걸 보니 남대문이 또 한 번 슬퍼할 것 같다. 책 속 내용 중, 옛 방식대로 복원하겠다고 대장간 같은 것을 만들고, 고의적삼(남자 한복 바지와 저고리)을 입은 인부들이 발에는 구두에, 머리에는 파란 모자 빨간 모자를 써서 웃기고 어설퍼 보였다는 남대문의 말이 나오는데, 그 대장간도 쇼에 불과했다고 한다. 전통기법과 국산 재료 사용을 강조했지만 허술한 전통 기술과 외국 재료(러시아산 소나무)로 복원된 것을 놓고
대통령 임기에 맞추려고 시간이 없었던 것이냐, 기술이 없었던 것이냐 말이 많나 보다.

 

 

 

남대문의 희노애락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비유한 이 책에서 다시 남대문의 봄이 돌아왔다고 말한지 일년도 안돼 겨울이 돼버렸다. 쩍쩍 갈라진 나무와 벗겨진 단청만으로도 가슴 아픈데, 사람들의 이권 다툼까지 벌어지니 안타깝다. 지금으로서는 다시 공사를 하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고, 그런다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 새겨진 역사의 숨결만은 여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유형에서 무형으로 바뀌었을 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정한 가치임에 틀림 없다. 늘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우리의 나쁜 버릇 때문에 다시 겨울을 맞은 남대문이지만, 언젠가 다시 꽃피는 봄이 오길 희망한다.

 

 

 

YES마니아 : 로얄 d******k 2014.02.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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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은 국보1호이기전에 우리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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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의 공식 이름은 숭례문....예를 숭상한다는 뜻인데..그 현판은 세로로 길게 세워져있다... 그이유는 화기(火氣)를 다스리기 위해서라는데..... 남대문의 너머 보이는 관악산이 불길이 치솟는 것같은 형상을 하고 있고 음양오행으로 봐도 이 남쪽은 불의 기운이라거...게다가 숭례문의 '례'자는 불과 여름을 상징하는 글자라고 한다....   그래서 맞불 작전으로 세워걸어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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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의 공식 이름은 숭례문....예를 숭상한다는 뜻인데..그 현판은 세로로 길게 세워져있다...

그이유는 화기(火氣)를 다스리기 위해서라는데.....

남대문의 너머 보이는 관악산이 불길이 치솟는 것같은 형상을 하고 있고 음양오행으로 봐도

이 남쪽은 불의 기운이라거...게다가 숭례문의 '례'자는 불과 여름을 상징하는 글자라고 한다....

 

그래서 맞불 작전으로 세워걸어놓은 현판....

 

그렇게 예전부터 남대문은 불에 약했던 것이다...

 

그렇게 남대문은 임진왜란에 불에 타버리고...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건을 할고자 할 때도 두번이나 불이 나고......

그리고......................

2008년 2월 그렇게 불에 타버렸다........

그것이 남대문의 운명이였던가..

 

 

조선이 건국되면서 도성의 입구로 세워진 남대문...

그 남대문에게 작가는 생명을 불어넣어주었고 그 남대문은 도성의 정문 국보 1호 이전에

그는 조선이후 우리의 600년 역사였다.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듯 도성을 빠져나가는 모습도 지켜보고

왜군이 도성으로 들어오는 것도 지켜보면서도 남대문은 꿋꿋이 그자리를 지켰다.

그래서 아련하다..

그런 남대문이 오랜세월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서 얼마나 가슴아파했을까?하는 생각을 하니 아련해진다...

 

 

 

우리는 신궁을 가기 위해 여기 서 있었단다. 할아버지는 잔뜩 주눅이 들어 땅만 보고 서 있었는데, 참 이상한 게 그렇게 강제로 참배를 하고 온 날이면 내가 조선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곤 했지. 그땐 그게 왜 그런지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바로 남대문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

-본문 172 中-

 

 

차들이 길게 늘어선 도로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남대문이였고 그렇게 외면당하던 남대문...

2008년 불에 타고서야 그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지금 복구냐 복원이냐...

그런 남대문이 이젠 국보 1호로의 가치가 있냐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남대문에겐 고쳐지고 복원된 흔적마저도 역사다. 600년 동안 숱하게 망가지고 고쳐지고 하면서 지금까지 왔는데, 이번엔 좀 큰불이 낫을 뿐이다. 건축물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거지. 이런 일 있을 때마ㅏ다 남대문이 담고 잇는 역사적 의미마저 의심하면 안 된다. 남대문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이 어디로 가겠느냐

-본문 179 中-

 

 

y*****0 2013.03.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