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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부재... 현대사회의 가정에서 <아버지의 부재>가 가지는 의미는 어떻게 다가올까? 이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게한 책이 이책 <길에서, 길을 보다>였다. 특히, 이소설들에서 느껴지는 아버지의 부재는 나에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현대 사회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그가정에서 심각하게 다가온다. 바로 대부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아버지의 입장에선 그부재가 가지는 의미는 첫째, 경제적 고통의 가중과 빈곤층으로 전락될 수 있고 둘째 정서적 심리적으로 불안과 공허감에 시달려 아이들이 자칫 비뚤게 자라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 세째, 그러한 아버지의 부재는 자칫 사회적으로도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의 부재를 의미하고 그것은 사회적으로도 건강치못한 흔들리는 사회의 한단면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기에 어쩌면 정신적으로 황폐해지는 사회로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일 수가 없다.
그것은 특히 재개발 지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불안한 모습을 형상하고 있는 <샛강>은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1970년대 최고의 소설중 하나인 조세희작가의 걸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소설에서도 아이들은 재개발지역에서 철거로 그곳에서 쫓겨나는 슬픈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아버지는 악당보다 못해. 악당은 돈이라도 많은데...>라며 현실을 비관하고 아버지의 무능을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아버지가 존재함에도 아버지의 무능으로 아이들이 크나큰 상처를 받기도 하는데 그부재가 갖는 의미는 심히 더 큰 충격과 공허함으로 다가오지않을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이소설집을 통해 <아버지의 부재>가 갖는 현실적 문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한 좋은 기회가 되준 소설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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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소설집의 평론은 존재의 불안을 아버지의 부재와 연결짓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버지라는 거목이 사라졌기 때문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 채. 자기 자신에게 닥쳐온 사건에 정면으로 마주하며 불안을 느낀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아닌 것 같다. 정수남 작가의 단편들에서 아버지의 부재가 선명하게 드러나긴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를 거꾸로 돌려 생각해봐도 그들이 겪는 불안은 쉬이 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기엔 존재의 불안이라는 문제는 좀 더 근원적인 부분. 즉, 대가족에서 핵가족화하면서 일어나는 개인들의 원자화 때문인 것 같았다. 쉽게 말해서, 소설에서 잡고 있는 사회의 틀은 여전히 공동체 사회의 형태지만 그 속의 사람들은 "우리가 남이가?" 라는 마인드가 아니라 "니 누꼬?" 라는 마인드로 급속하게 변화하기 때문에 불안이 시작된다는 생각이다.
2. 단편 <야곱의 노래>는 탈북한 소시민인 강 노인에게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주인공이 느꼈던 아버지의 부재가 존재의 불안감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그리움을 강 노인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우를 만들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교조주의적 관점. 단편 <연착>에서도 드러나는 그 관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강 노인을 아버지 같다고 느끼는 주인공. 주인공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인공을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아들 같다고 생각한 강 노인. 그러한 감정의 교류를 연결하는 것은 아버지의 부재를 통한 내면을 공유할 수 있는 자의 존재라는 이유 덕분이 아닌가 싶었다. 3. 이러한 감정 공유의 부재는 중편 <회색과 쥐색>에서도 마찬가지로 등장했다. 마치 카프카의 <소송>의 요제프K의 사례처럼 어처구니없는 함정(?)에 빠져 뺑소니 누명을 쓴 주인공.(주인공의 내면 묘사를 통하여 이야기가 흘러가므로 이쪽에 가깝다.) 그러나 누구도 주인공의 편에서 주인공이 처한 위기를 같이 해결해 나가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주인공의 부인은 "그러게 왜 저번에 블랙박스 설치하라 할 때 하지 않았느냐" 핀잔을 주고, 주인공의 친구들과 주변인들은 "그가 정말 뺑소니를 쳤을까?" 아니면 "피해자가 고의로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수작을 부라는 게 아닐까?"의 문제에만 집중한다. 그들은 멀찌감치 서서 구경꾼의 재미를 누리려고만 한다. 주인공이 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의지해야 할 존재가 거짓말 탐지기가 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비판의식을 상징화하여 드러낸다.
4. 그런 의미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서로에게 느끼고 있었던 일말의 불안감을 둘만의 낚시 여행을 통해 떨쳐낸 단편. <길에서, 길을 보다>의 마무리는 흥미로웠다. 그들은 대화를 통하여 내면의 공유를 일궈낸다. 그리하여 특히. 할아버지 쪽에서 손자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아무렇게나 여자를 만나고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손자의 행동에 진실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길에서, 길을 보다>의 묘사를 빌어 정리하자면. 아버지의 부재와 개인화된 원자가 존재의 불안을 안고 걷는 길은 명주실을 아무렇게나 길게 늘어뜨린 길이 될 것이요. 원자화된 개인의 내면을 서로 이해하여 함께 걷는 길은 명주실 같은 위태로운 길이 아니라 2차선으로 폭도 제법 넓었고, 시멘트로 포장까지 되어 있는 길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