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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가난한 소년이 있다. 거친 파도와 바람이 떠도는 섬에서 나고 자랐다. 그에게 뭍에서 전학온 소녀가 다가온다. 어둠이 무서운 소녀가 하교길을 함께 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들은 필경 어둠과 시간의 힘을 빌어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사이로 나아간다. 소년과 소녀가 성장하는 모습이 풋풋하다. 첫 입맞춤의 순간이다.
걸음을 멈추며 승미를 돌아본다. 승미도 발길을 멈춘다. 두어 숨을 그대로 있는다. 숨과 숨 사이를 바람이 불어간다. 두 손으로 승미의 머리를 감싼다. 승미의 입김이 얼굴에 와 닿는다. 숨을 가눈다. 입술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심장의 박동이 입술로 전해 온다. 내 심장의 박동도 승미에게 건너가겠다. 입술을 빤다. 부드럽다. 두어 번을 더 빤다. 아침에는 승미가 내 입술을 빤다. 감미롭다. 맞닿은 입술들이 서로 부드럽고 서로 감미롭다. 처음 맞추는 입술이다. 냇물은 소리 내며 다리 아래로 흐르고, 밤은 소리 없이 들을 따라 흐르고, 별은 밤을 따라 하늘가로 흐르고, 우리들의 입맞춤은 팔딱거리며 가슴으로 흐른다. 달콤한 바람이 둘 사이를 불어가는 별빛 내리는 여름 들녘의 밤이다. (26-27쪽)
잔뼈가 굵어지면서 꿈도 구체화 된다. 섬을 벗어난 두 사람. 각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광주로 구미로 떠나 열심히 살아간다. 방학 때나 가끔 만나는 처지이지만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준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제 소년 아닌 청년은, 5년간의 군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훈련소에 면회 온, 소녀 아닌 처녀와, 한 몸이 되는 첫날밤의 의식을 치른다. 성년식이다.
둘은 날몸인 채로 나란히 누웠다. 잉큼잉큼 뛰는 심장의 박동이 살갗에 느껴진다. 두 개의 심장이 같은 속도로 팔뜨락댄다. 얼른 몸을 돌려 승미를 안는다. 벗은 스무 살이 벗은 스무 살을 안는다. 뜨거운 스무 살이 뜨거운 스무 살을 안는다. 불의 입술이 불의 입술을 핥는다. 입술들이 불이 되어 서로를 핥는다. 입술을 내려 젖꼭지를 빤다. “아!”하는 신음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더 세게 빤다. 더 커진 신음이 더 세게 머리를 안는다. 몇 번을 빨고는 승미 위에 몸을 얹는다. 승미가 다리를 벌려 나를 받아준다. 조심스럽게 가랑이를 더듬는다. 승미가 주춤거리며 내것을 잡더니 제 속에 넣어준다. “아!”하는 탄성이다. “아!”하는 신음이다. 불구덩이 속이다. 불구덩이가 불기둥을 품었다. 스물의 여자와 스물의 남자가 불이 되어 겹쳐 있다. 깜깜한 어둠이 두 스무 살을 덮어준다. (47-48쪽)
몸도 마음도 건강한 처녀와 총각이다. 이들이 세상에 심은 소중한 꿈의 씨앗이 알찬 과실로 무르익어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들을 덮친 역사의 광풍이 너무 안타까웠다. ‘우리 절대 변하면 안돼!’(39쪽)라고 다짐했던 이들이지만, 결국에는 변하고야 만다. 청년은 자학에 빠진다.
될성부른 떡잎이 아니라 애당초 쭉정이로 만들어진 종자였다. 과장되게 자신을 절망함으로써 스스로를 헤어나기 어려운 지경에 빠뜨리는 족속이자, 세상의 절망이란 절망은 다 짊어진 듯 잔뜩 폼은 잡지만 실은 제 일인분의 절망조차도 제대로 책임 못지는 유약한 인간이었다.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 성장이 멈춰버려 그 후로는 일 센티도 못 큰, 삶의 어느 지점에서 정지해버려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간, 정신의 난장이이자 인생의 앉은뱅이였다. (149쪽)
처녀가 1980년 오월 광주에 있었던 탓이다. 시대가 이들의 꿈을 허락하지 않았던 탓이다. 아니 그보다 이들이 가난했던 탓이다. 자신을 뒤덮은 어둠을 벗어날 수 없다. 라고 좌절한 청년은 생각한다.
모든 것이 잠들어 죽음처럼 고요한 밤, 어둠이 세상을 채우고 있다. 사람의 것들은 저 멀리에 있고 어둠만이 친구가 되어 밤의 길을 걸어 준다. 돌담을 손으로 더듬거려 집으로 가야 했던 어릴 적의 칠흑 같은 어둠이다. 똥을 누러 통시에 가야 하지만 배를 싸쥔 채 끝내 참고 말았던, 귀신처럼 문 밖을 지키고 섰던 깡깡하디 깡깡한 어둠이다. 어디서 바스락 소리라도 나면 온몸에 솔잎 같은 소름이 돋던, 밤의 산길을 가득 채우고 있던 먹물 같은 그 어둠이다. (191쪽)
하지만 또 한편 그 어둠에서 어린 시절 할머니의 품처럼 편안함을 느낀다.
함께 밤을 걸어주고 있는 사물들이 다 옛날의 것들이다. 뺨을 스치는 밤의 바람이, 바람에 쓸리는 솔잎의 소리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봐야 했던 공동묘지가, 낮에도 도깨비가 나온다는 ‘도깨비골창’이 다 내가 키우던 소나 토끼처럼 정답게만 느껴진다. 밝고 환한 데서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이 이 어둠에는 있다. 할머니의 품같은 포근함이 여기에는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다 이렇게 어둠에 익숙해지는 건가. 어둠이란 게 본래 이런 것이었는데 나만 그것을 모르고 있었는가. 어둠이 밝음보다 훨씬 편안한 품인데 나는 그걸 모르고 밝음으로만 향했던 것인가. (192쪽)
이제 장년인 나는 고향에 돌아와 여자의 품에 안긴다. 오래전에 외면하고 돌아섰던 자신을 너그러이 품어주는 여자. 하지만, 다시 꿈 많은 소년시절로 돌아가지는 못하리라.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꼭 별을 꿈꾸지 않았어도 좋았다. 애초에 어둠이 되는 꿈을 꾸었어도 괜찮은 것이었다. 빛나기보다는 빛내주는 삶을, 드러나기보다는 드러내주는 삶을 생각했어야 했다. 어둠이 없이 어찌 별이 있겠는가. 어찌 별 저 혼자서 밤의 하늘을 빛날 수 있겠는가. 별은 어둠이 밝혀주는 빛이자 어둠이 피워주는 밤의 꽃이다. 어둠이 없으면 별도 없다. 그러니 어둠을 보았어야 했다. 드러나지 않아도 좋은, 결코 화려하게 빛나지 않아도 좋은 그런 존재가 되려 했어야 했다. 그게 진짜 꾸었어야 하는 꿈이었다. 그게 정말로 우러렀어야 하는 나의 별이었다. (193쪽)
지나온 날들에 대한 아쉬움과 자책이 없는 이가 어디 있으랴. 하물려 5.18 빛고을을 겪었음에랴. 아우슈비츠를 겪은 이가 서정시를 볼 수 없듯, 1980년 광주를 겪은 이가 소년의 꿈을 곱게 간직할 수는 없는 법. 전라도 말로 ‘짠하다’는 게 바로 이런 마음일 것 같다. 아무쪼록 그의 어둠이 죽음 같은 절망이 아니라 따스한 품이 되어 그를 보듬었으면 좋겠다.
작가는 ‘결’로 등단하여 ‘품’을 출간했다. 다음 소설의 제목도 단음절의 고유어가 될는지 궁금하다. ‘별’, ‘흙’, ‘봄’, ‘꿈’, ‘섬’, ‘혀’ 등은 이미 본 적이 있는 소설 제목이다. ‘삶’, ‘집’, ‘길’, ‘밤’, ‘딸’은 수필 제목으로라도 쓰였음 직하다. ‘낭’이나 ‘넙’ 같은 토속어도 좋고‘똥’이나 ‘꼴’ 같은 말도 그럴듯하다. ‘손, 발, 눈, 코, 입’이 안 될 까닭이 없고, ‘몸’과 ‘숨’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보면 단음절의 고유어가 생각보다 적지 않다.
‘결’은 좀 별로였다. 토속어 잔치라 할 만큼 어휘의 발굴과 활용에 전념한 정성은 인정되나 전체 얼개가 조화롭지 않았던 것 같다. ‘품’은 86세대의 감성에 맞는 시대성을 지녔고, ‘가난한 사랑 노래’라는 보편성에 호소한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소년 소녀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 소략하다는 느낌이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가 한두 편이라도 소개되었다면 이들의 성인식이 더 개연성이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디테일은 약한데, 감정은 넘치는 서사라는 점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의 폭력성에 분노하고, 그들의 가난한 마음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기에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