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훙장 같은 사람을 영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시대가 만든 영웅일뿐, 시대를 만든 영웅은 아니다. 리훙장같은 영웅은 그야말로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시대를 만든 영웅은 천년 동안 단 한명도 찾을 수 없었다. 우리 중국 역사에서 우리가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기만 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 p.29 "일본은 결코 중국과 전쟁을 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리훙장 한 사람과 전쟁을 한 것이다." - p.188 "국가의 위태로움이 경각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 평화를 성사시키는 일이 늦춰져서는 안된다. 내가 어찌 시간을 지체해 국사를 그르칠 수 있겠는가? 죽을지언정 탄알은 뽑지 않겠다." - p.204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19세기 동아시아 정치를 주도했던 리훙장은 청말 이른바 4명신(증국번, 좌종당, 장지동, 이홍장) 중의 한 사람이자 열강의 침략 앞에 쇠락해가는 청나라를 마지막까지 지탱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중국 근대사에 남긴 족적은 매우 큽니다. 태평천국의 난에서 증국번과 함께 의용군을 지휘하여 태평천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하는 공을 세웠고 청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한 양무운동을 주도했으며 청일전쟁을 지휘하였고 청나라 최강의 군대인 북양군을 조직하였습니다. 태평천국 이후 청나라 조정의 실권을 쥔 한족 관료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안목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던 그의 존재로 청나라는 지탱될 수 있었고 그가 죽자 10년이 되지 않아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나라는 멸망하였습니다. 리훙장은 평생 조정 관료로서 사심없이 나라를 위해 일하였지만 그의 후계자인 위안스카이와 북양군은 야심을 드러내어 만주족의 시대를 끝장내었고 중국은 북양 군벌들의 치열한 권력 투쟁 속에서 오랜 내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중국 근대 사상가 량치차오가 쓴 《리훙장 평전(李鴻章 評傳)》은 후대의 관점이 아닌 같은 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리훙장을 평가한 책입니다. 량치차오는 변법자강을 이끌었던 캉유웨이의 제자로 캉유웨이와 함께 무술변법을 주도하여 청나라 내정을 개혁하려 했지만 권력을 위협한다고 여긴 서태후와 보수파들의 반격으로 몰락한후 일본으로 망명하였습니다. 신해혁명이 일어난 뒤 위안스카이가 황제가 되려고 하자 반대 투쟁을 벌였고 위안스카이 사후 북양 정권에 가담하기도 했지만 결국 실망하고 정계를 떠나 죽을 때까지 저술 활동에만 집중하였습니다. 혁명가이자 사상가로서 량치차오는 리훙장이 양무운동을 벌이고 있던 1873년에 태어나 청말과 민국 초기를 살면서 자신의 위대한 나라가 열강들에게 침탈당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고 중국 사회의 온갖 병폐와 부조리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1901년 리훙장이 죽자 이 책을 썼습니다. 당대 최고의 사상가답게 매우 냉철하게 리훙장의 공과를 평가하면서 청나라가 청일전쟁에 패배하고 몰락한 일차적 책임은 리훙장에게 있지만 근본적인 책임은 어느 한 사람에게 떠넘길 수 없으며 중국 그 자체에 있다고 말합니다. 리훙장은 개혁가이면서도 동시에 전형적인 보수파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야심은 어디까지나 관료로서의 영달에 있었을 뿐 조조나 마오쩌둥처럼 자신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의 개혁 또한 기존 질서 속에서만 성립될 수 있었고 북양 대신으로서 그의 지위는 사실상 황제 다음이나 다름없었지만 항상 반대파의 공격에 시달리며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청나라의 실권자로서 권력을 누리며 많은 공과가 있지만 청나라의 운명은 물론, 중국의 운명 또한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서구 열강들의 공격 앞에 한없이 무력했던 청나라의 모습은 단순히 일시적인 정치적 혼란이나 무기의 열세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중국 사회에 누적된 온갖 병폐와 부조리함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설령 리훙장보다 열배 더 뛰어난 인물이 등장했어도, 혁명이 일어나 왕조가 교체되었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중국 사회를 바꾸지 않는 한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리훙장이 아무리 발버둥 치고 백가지 계책을 내놓는다고 해도 스스로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마찬가지였다는 것이죠. 뛰어난 식견을 가졌으며 스스로 유럽을 방문하고 세계의 변화를 자신의 눈과 귀를 통해 체감했던 리훙장조차 이럴 진데, 하물며 우물안 개구리마냥 조선땅을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좁은 궁궐 안에서 소수의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흥선 대원군이나 고종, 명성황후 민씨가 무슨 수로 국운을 바꿀 수 있을까요. 당연히 바꿀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들을 재평가한다고 해도 그들이 가진 근본적인 모순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의 침략이 없었다고 해도 조선 왕조는 오래 지탱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책에는 중국의 무력함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울분과 답답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왜 거대한 나라가 1/10도 되지 않는 작은 나라들에게 침탈을 당하면서도 변변한 저항을 하지 못하는가. 태평천국의 난과 청일전쟁에서 관료들은 그야말로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무책임하고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일부 지휘관들은 겁쟁이마냥 도망쳤지만 정여창을 비롯한 많은 군 지휘관들은 끝까지 싸웠고 전사하거나 자결하여 명예를 지켰습니다. 대다수 관료들은 항상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습니다. 문제는 개개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체제 그 자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애초에 그런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힌 관료 시스템의 잘못이죠. 이 책에서 리훙장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박하지도,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미화하지도 않습니다. 량치차오는 당대 최고의 관료이자 실권자였던 리훙장을 통해 중국이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병폐를 비판합니다. 흔히 어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하려면 적어도 수십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하지만 후대의 시각이라고 반드시 객관적이지는 않습니다. 역사란 정치와 이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언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평가하는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식견이 부족한 이들은 자신의 입맛대로 멋대로 역사를 왜곡하거나 한쪽면만을 내세워 미화하고 깎아내립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100년도 더 전에 나온 책이지만 어느 평전보다도 뛰어난 식견과 냉철한 평가로 당사자를 바라본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중국이 가지고 있던 병폐와 부조리함은 오늘날 중국도 크게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오쩌둥은 "구시대를 부셨다"고 자랑했지만 실상 그는 장제스 정권만 부셨을 뿐 지배-피지배라는 수천년간 이어져온 중국의 봉건적인 전통 질서를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중국 공산당은 기존 질서를 교묘하게 활용하여 권력을 유지하고 있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중국 근대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일독하기를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