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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병원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내 뒤에 앉아 있던 엄마와 아들이 하는 소리를 듣게 됐다. 가을이라서 날도 선선하고, 버스 안에는 바람이 불지 않아 햇살이 따사로운데도 창밖을 보며 지나가는 계절이나 오는 계절을 감상할 틈은 없었나보다.
"나 우리 선생님 짜증나. 시계도 안보나봐. 늦게 끝내준단 말이야." "선생님한테, 좀 일찍 끝내주세요, 하고 이야기를 해봐. 학원 가야 한다고."
아무래도 왜 학원을 자꾸 늦느냐고 엄마가 물었던 모양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담임선생님이 늦게 끝내주니 할 수 없이 늦었던 모양이고. 엄마 앞에서 자기를 변호해야 하는 아이는 선생님이 짜증난다고 했고, 아이 엄마는 학원 가야 하니 종례를 일찍 해달라고 하란다. 무슨 학원을 다니길래, 학교까지 빨리 마치고 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라는 걸까. 나는 좀 씁쓸해졌다.
초등학교 2학년때, 당시에는 국민학교였는데, 서울에서 살다가 아빠 고향인 시골로 내려가 살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 초반까지는 그곳에 있었으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는 호사를 누렸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초등학생이 가기엔 다소 멀었지만, 버스가 다닐만큼의 거리도 아니어서 늘 걸어다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친구 없이 혼자 길을 오고갔던 기억밖에는 없다.
그 길은 들꽃도 많고 강아지풀도 많고, 어떤 길은 포장이 안되어 있어서 비가 오면 질퍽거렸다. 키가 한참이나 큰 나무나 풀을 보면서 나름대로 이름도 붙여주고 또 노래를 지어 불러가며 지루하지 않게 오갔다.
어느 날 친구들은, 서울에서 왔기 때문에 자연에 대해서는 한참이나 무지한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어디에 가면 아카시아 나무가 많이 있는데 꽃을 따서 뒷꽁무니를 빨면 꿀이 나온다는 얘기였다. 지금 같으면 더럽게 꽃 뒷꽁무니를 빠느냐고 야단이겠지만 그때는 너무도 낭만적인 이야기라 아이들을 따라 우르르 몰려갔었다. 생각보다 달지는 않았어도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추억이 되었다.
김용택 시인의 [창우야 다희야, 내일도 학교에 오너라]는 마암분교에서 선생님으로 지낼 때 이야기를 엮어 낸 책이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일기를 쓴 것처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적은 짧막한 단편들을 모아놨다. 시골 학교 얘기라서 그런 지 옛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시인의 글은 좀 다르다. 아주 작은 것에도 감탄할 줄 안다. 잎이 돋아나는 것, 바람이 불어오는 것,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들에 예민하다. 그래서 그가 선생님으로 지내며 마암분교 아이들을 피어나는 꽃처럼 세밀하게 살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익혀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아이들만이 볼 수 있는 것을 함께 보기 원했다.
사는 일이 지겹다는 것을 가르치는 이게 교육인가
그래 정말 그랬다. 뭔가 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건 다 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그래서 더 독해져야 한다고, 착해서 바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더 많이 알고 그래서 남들보다 더 누리고 살아야 한다고, 우리가 살아도 지겨운 세상을 어린아이들에게도 살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암분교 아이들은 가난한 아이들이다. 가난을 행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교육이 그걸 불행하다고 강요하는 법도 없었다. 아이들이 겪는 그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 몸으로 부딪혀 살게 하고 배우게 하는 것이 그 학교의 가르침이었다.
남자, 여자 할 것없이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며 운동장을 뛰놀고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무 이름을 익히고 꽃을 보면서 시인의 말에 의하면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지긋이 바라보다가 자기 안에서 넘치면 그것을 글로 표현해보도록 했다.
아이들의 글은 너나할 것없이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박장대소하기도 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잘쓰려고 해서 쓰여진 글이 아니라, 서툴러도 솔직하게 쓴 그런 글이었는데, 아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시기(時機)적인 것이다.
강의 일이 달의 빛을 받는 것이란 생각을 어찌 했을까? 또 이런 시도 있다.
아이들은 정말이지 솔직하다.
그리고 꽤 괜찮은 시인 한 명도 나온 것 같았다.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 많다. 학교는 안보내더라도 생각하는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다는 게 우리 부부의 똑같은 꿈이다. 책을 많이 읽히자, 그것도 같은 꿈이다. 그런데 이제보니 그것만이 아니다. 산으로 들로 함께 가서 자연을 익히고, 말로 표현하기 아직 힘든 것들을 몸으로 말하게 하는 것. 사람도 자연도 모두 귀중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방법을 좀 더 고민하고 싶어졌다.
내 아이가 좀 손해보며 사는 것 같더라도, 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고, 같은 생각을 가진 부부들이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선생님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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