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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도 하지만, 십오 년 후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과 더불어 거대한 흥행 실패를 기록한 작품 중 손꼽히는 예이기도 하다. 작품의 성취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리즈 테일러의 추한 노출 때문에 쉬운 찬사를 보내기에 많이 꺼려지는 면도 있지만, 볼거리가 풍성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나는 1990년대 초 가을 즈음 MBC 주말의 명화 시간에 틀어주는 걸로 이 작품을 처음 보았다. 노출 씬 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노컷이라 해당 방송이 끝나고는 새벽 3시에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대단히 긴 러닝 타임을 자랑하는 장편 영화이며, 당시 기술과 자본 수준으로 투입 가능한 모든 자원을 다 쏟아 부어 볼거리를 만들었고, 소속 장르의 특성을 감안해도 유독 많은 시간에 걸쳐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삽입된 영화다. 그제 내가 리뷰를 적은 영화 '세이빙...'에도 나오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입지전적 성공을 거둔 사업가 월트 디즈니와는 달리, 명문 유태 가문 출신으로 할리웃에서 제작자로 큰 영향을 끼치던 월터 웽어가 주도한 프로젝트로서, 배우나 감독, 제작진 모두가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작업에 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패주한 폼페이우스를 쫓아 이집트에 상륙한 시저가 건들건들한 모습으로 파라오를 알현하는 장면은, 개인주의적 로마가 전제적 오리엔트와 상이한 개성으로 대면하는 역사적 순간이다. 사실 이때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그리스 계였지만, 노르만 정복자들이 브레타뉴 반도에서 모국어를 잊고 프랑스어를 말했듯, 지배자들-본디 군국주의 기풍의 마케도니아 출신이기도 하였으나- 은 수백 년 간의 오리엔트 지배에 보다 알맞은 체질로 바뀌느라 페르시아 못지 않은 경직된 일원체제에 뼈속까지 물든 지 오래였다. 여기서 렉스 해리슨이 분한 시저(카이사르)는, 장황한 스타일로 파라오를 호칭하는 시종의 말을 끊고 '에트 세테라 에트 세테라'를 뇌까리며 거두절미 비즈니스 모드로 분위기를 전환한다. 로마의 장군이라기보다는 이차 대전 승전 후 열도에 상륙한 카우보이를 보는 느낌이다. 잘 아는 것처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혈통의 순일성 보존과 왕위 쟁탈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근친혼을 즐겨 행한 악습이 있었다. 유명한 장면, 카펫에 돌돌 말려 시저의 거소로 잠입한 클레오파트라와의 설전에서, 그는 마침 이 폐단을 직설적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클레오파트라가 '선진 문명을 지닌 유구한 전통의 왕국'이 로마에 대해 가지는 우월성을 거론한 데 대한 반박으로 나온 말이다. 이 대사는 우리말 더빙으로 가감 없이 번역되어 그대로 한국의 가정에 방송을 탔었는데, 당시 어린 나는 큰 충격을 받고 한동안 마음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써야 했다. 여성 황제가 주인공인 영화지만, 창칼의 살벌한 부딪힘과 대함대, 기마 군단 사이 격돌이 전개되던 시대라 거칠고 투박한 남자들의 활약을 빼고는 진행이 안 되는 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눈에 띄게 유약한 남성상이 중요 비중으로 등장하는데, 하나는 초반부에 잠시 등장한 소년 파라오(와 그 옆에 있던 내시)이고, 다른 하나는 순전히 비주얼상으로 비실비실하게 보이는 옥타비아누스이다. 이 역은 로디 맥도웰이 맡았는데, 우연이겠으나 이 영화가 하나의 기점이 되어 이후에는 그런 모습을 많이 떨쳐낸 분위기로, 엄청난 다작을 한 배우이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의 리처드 버튼과 거의 동년배인데, 실제로는 옥타비아누스가 거의 아들 뻘 정도로 연하였다. 버튼은 아직 이른 나이라 할 시점에 갑자기 사거하여 당시 한국에서도 제법 화제가 되었는데 KBS 1TV는 당시 특집으로 미니시리즈 '아메리카'를 편성하여 방영하기도 했다. 로디 맥도웰은 그보다야 오래 살았지만(그리고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동년배라 할 안젤라 랜스베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천수를 다했다는 느낌은 적다. 두 배우에 비해 거의 아버지뻘이라 할 렉스 해리슨의 시저 연기가 돋보인다. 영화는 시저의 죽음을 전후로 거의 반분되다시피하는 구성인데, 이게 극적 완성면에서 좀 약점이라 할 수 있다. 통일성 없는 드라마로 그 긴 시간을 잡아먹으며 관객을 붙들고 있는다는 게 어떻게 생각해도 흥행에 무리였으며, 처음부터 컨셉 자체가 잘못 잡혀진 탓이 크다. 이후로 이런 초호화 스펙터클 대작사극은 좀처럼 발주되지 않았으며, 다만 때로 현실적 제약을 도외시한 채 큰 그림과 비전만을 보며 폭주하던 이런 낭만적인 시절이 그 냉혹한 자본주의기에도 존재한 적 있었구나 하는 감상을 전폭적으로 불러일으킬 만은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