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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에 앞서 '몸문화연구소'라는 낱말이 생소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문학, 철학, 미학, 정신분석학, 역사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문화, 권력, 기술, 규범, 의료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몸과 관련된 문제'를 이론화하고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소라는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그것도 무려 2007년에 설립되어 활동을 해왔다는 이야기에 그동안 나의 독서이력이 참으로 편협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몸문화연구소'의 책을 읽은 기억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쓰는데 참여한 분들의 저서들 또한 읽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암튼, 그건 그거고...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더는 자연을 인간중심적인 사고로 못살게 굴지 마라'는 내용이다. 그동안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자연을 함부로 파괴하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마치, 일제의 731부대가 생체실험을 하던 '한국인과 중국인'을 '통나무(마루타)'라고 부르며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하나뿐인 생명을 함부로 해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 책은 이런 식의 '과격한 비유'가 곳곳에 적혀 있다. 때로는 분노가 느껴질 정도의 격한 표현을 읽으면서 '얼마나 빡치면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 '격한 표현들'이 읽다보면 수긍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지구가 병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인간 때문에 말이다.
46억 년의 역사를 간직한 지구는 7차례의 '대멸종'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생명을 품어 왔다. 태양계는 물론이고 온 우주를 살펴보아도 지구만한 생명을 품은 행성이 발견되고 있지 않기에 정말정말 소중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거기다 '골디락스 존'이라고 불리며 '지구형 행성'처럼 생명을 잉태시킬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조건'이 참으로 아슬아슬하기 그지없어서 더욱 소중하다. 다시 말해, 태양이 조금 더 크거나 작아서도 안 되고, 태양으로부터 거리가 조금만 가깝거나 멀어서도 안 되며, 지구의 공전궤도가 거의 완벽한 원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서 웬만한 행성에 비교해서도 전혀 꿇리지 않을 거대위성 달이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 셈인지 알면 알수록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인류는 불과 300년 만에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으며 자연을 회복불가능할 정도로 훼손하고 있다. 오직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말이다. 분명 과학자들이 경고를 했는데도 이를 가뿐히 무시하고 외면하는 정치인과 경제인, 그리고 우매한 군중들이 문제일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지구온난화', '미세먼지', '플라스틱 공해'와 같은 것은 인류의 생명 뿐 아니라 '인류문명' 전부를 말살 시킬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공포다. 이런 공포들의 공통점은 바로 일단 시작되면 멈출 수 없고, 회복불가능하다는 점이 무서운 법이다. 그런데도 '기후변화'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미국은 자국의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환경오염'과 '자연훼손'을 계속 하겠다고 선언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뿐인가. 인류가 살기 위해 먹는 것들이 온통 '독극물'과 다름이 없다면, 또 그 사실이 '언론'을 통해 전세계로 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름 아니라, 현대인의 몸은 '화학물질 범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조사결과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디버든'이라고 하는데 지구에서 그나마 청정지역에 살고 있다는 북유럽 스웨덴의 성인 여성의 혈액을 검사한 결과 '독극물'이기 때문에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화학물질들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결과였단다. 지금도 어느 나라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아 '수은 함유량'을 조사하면 '치사량'이 넘는 수치가 나온단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이 먹으라고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음식물 전부가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해로운 음식들'이었다는 얘기다.
특히, 온 인류가 좋아하는 고기도 '배양육'이라고 해서 '화학물질 범벅'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귤을 까서 먹으면 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속에 소화가 되어 귤이 우리 몸의 '일부'로 변하는 과정을 거칠 뿐이다. 마찬가지로 고기를 먹으면 소, 돼지, 닭 등이 우리 몸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맛있는 고기가 '화학물질 범벅'이 된 채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걸까? 비유적인 표현으로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해양생물의 몸속을 가득 채운 '플라스틱'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 몸에 한 번 들어오면 좀처럼 배출이 되지 않는 '화학물질 범벅'이 죽을 때까지 우리 몸을 아프게 만들고 병들게 만들어 끝내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있다고 말이다.
이제 우리는 더는 자연환경을 훼손하거나 파괴해서는 안 된다. 당장 먹고 살기 어려우니 좀 더 이득을 취한 뒤에 '환경복원'을 하면 될 것이라고 낙관적인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다. 허나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꼴랑 '1만 년 전'이고 산업혁명 등으로 급속히 자연환경을 파괴하기 시작한 지는 불과 '300여 년 전'일 뿐이다. 그런데도 회복불가능할 정도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하면서 '환경복원'에도 열심이라고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당장 멈춰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경고는 이미 늦은 건지도 모른다.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한계점' 혹은 '임계점' 또는 '특이점'...암튼 뭐든 간에, '그것'을 이미 넘어버렸다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결과는 '인류 멸종' 밖에 없다. 그것이 100년 뒤가 될 지, 20년 뒤가 될 지, 아니면 바로 내일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연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모르긴 몰라도 '지금'처럼 계속 살면 끝장 날 것이 틀림없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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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인류세’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접했다. 인류세라는 의미는 ‘인류라는 존재가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를 급격하게 변화시킨 탓에 지구가 새로운 지질학적인 사태를 맞게 되었다는 사실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지구의 역사를 측정할 때, 퇴적된 지질의 특징을 통해 구분하던 지질학적 시대 구분 단위로 평가하여 명명했다. 그래서 빙하기가 끝나고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던 시기부터 지금까지를 신생대 4기의 홀로세로 규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류세’로 규정하는 저변에는 인류의 등장으로 거대한 지질학적 변화를 겪고 있고, 그 결과 인류 문명과 지구 생태계 전체가 과거와는 다른 불균형과 부조화로 뒤흔들릴 만큼 위험한 시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아직 공식적으로 이러한 용어가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지질시대를 규정하는 '국제 층서위원회'에서 진지하게 채택 여부를 논의 중이라고 한다. 바로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진단을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기획한 주체가 바로 ‘몸문화연구소’라고 하니, 결국 삶의 방식이 사람들의 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시각이 전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구는 어떻게 내 몸이 되는가?’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최근 환경문제와 관련해서 심각한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주제들이라 할 수 있다.
모두 10명의 필진이 참여해서, ‘21세기 인류세의 도래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1장)이라는 주제로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최근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인식되면서 그 배출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이산화탄소의 문제에 대해서, 2장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포기할 자유, 인간에게 있다’는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세먼지와 미세 플라스틱, 그리고 인류의 육식문화가 초래하는 환경적인 측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인류세’의 특징들을 짚어나가고 있다. 나아가 ‘자연은 권리를 가지는가’(8장)에서는, 사람만이 권리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이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4장에서 논하는 ‘바디 버든, 내 몸은 어쩌다 화학물질 칵테일이 되었을까?’라는 주제가 가장 절실한 문제로 나에게 다가왔다. ‘바디버든이란 일정 기간 몸속에 쌓인 유해물질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가습기 살균제와 라돈 침대 등이 모두 바디버든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새집증후군’으로부터 야기되는 아토피나 초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도 사람의 몸속에 축적되는 바디버든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과학기술의 혜택으로 편리함을 얻었지만, 신체적으로 이러한 유해물질을 몸속에 쌓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전지구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단순히 ‘환경을 지키자!’라는 당위의 차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면,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환경들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왜 ‘인류세’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저자들이 주장하듯이 ‘내 몸과 지구를 살리는 생각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환경과 개발이라는 가치가 충돌하고,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파헤쳐진 환경은 다시 복원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이미 충분히 늦었지만, 자연과 공존해야만 하는 당위를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러한 주장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그에 대한 대응 방법들도 더욱 진지하게 논의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차니)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사실 우리는 현재 지구가 우리에게 주는 사인을 무시한 채, 무분별한 일회용품 사용과 더불어 우리가 편하게 쓰고 버린 플라스틱으로 동물과 식물들이 그 플라스틱을 먹고 죽고 병들어 가고 있다. 또한 300년동안 무분별하게 화석연료를 태워 발생한 그 많은 양의 이산화 탄소는 어떤가? 이렇게 우리는 지구에 살면서 "인간 중심적 사고"로 쭉 살아왔다. 하지만 이 "인간 중심적 사고"가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기후붕괴(global climate disruption)'가 시작되었다. 오늘날의 기후변화는 더이상 예측하기 어렵고, 인간이 적응하기 어려운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지구기후붕괴는 사막화의 촉진과 더불어 '기후난민'으로까지 문제가 퍼져가고 기후난민은 잠정적으로 '내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선진국에서 내뿜은 이산화 탄소와 버린 일회용쓰레기와 무분별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죄 없는 개발도상국에 피해를 주고 있는 상황이다. 언제까지 선진국이 만든 환경오염을 개발도상국에게 떠 넘길 것 인가?
나는 동물복지에 관심이 많다. 인도적 도축이란 말은 없다. 도축은 그저 잔인한 것이다. "육식의 종말<제레미 리프킨>, 동물을 먹는다는것에 대하여<조너선 사프란 포어>, 1398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캐스린 길레스피>" 등의 책을 보고나서는 우리는 암소를 보고는, "고기는 옳아요", 혹은 "기분이 저기압일땐 고기앞으로 가자"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중앙일보 2016년 4월11일자 '국가별 육류 소비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육류소비량은 90.3%인 호주와 미국을 비롯해 51.5%로 중국을 앞선 모습이다. 인구의 비례에 따르면 인구가 많은 중국보다 육류 소비량이 많은 것은 가히 놀랍다. 우리는 이러한 소비량이 과거 특별한 날에만 고기를 먹던 문화가 풍족해진 현재까지 이어져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비윤리적으로 길러지는 동물들과 그들의 비명과 같은 트림과 방귀, 그리고 고혈과 같이 배출하는 분뇨가 만들어 내는 문제들 위에서 구축되어싸는 것을 이제 기억해야 한다. 그 이외에도, 이 책에서는 현재 동물사육과 도축에 맞물려 인도적인 차원으로 개발되는 "배양육"이나 "플라스틱"의 문제 등의 다양한 관점을 다룬다.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현재 지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앞으로 우리는 "인류세"의 도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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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몸의 문제를 이론화하고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는 몸문화연구소의 ‘인류세와 에코바디’는 생소한 개념들이 관심을 부르는 책이다. 인류세는 인간에 의해 지구 시스템에 발생한 균열을 지칭하는 지질학적 개념이다. 책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의 고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150여년 전의 고래는 등불용 기름과 윤활유, 페인트, 가죽제품, 방직품, 비누, 양초, 코르셋, 양산, 향수, 빗 등을 만드는 원천이었다. 오늘날 고래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죽어간다. 인류세는 과거 1만년에서 1만 2천년 동안 지속되었던 온난한 신세(홀로세)를 대체하는, 인간이 지배하는 지질학적 시대다.
인류세가 아닌 에레모세, 쑬루세, 유럽세, 자본세 등의 단어가 적당하다는 주장들이 있다. 각자 의미 있는 말들이다. 인간은 자연 파괴의 주인(主因)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베이컨의 말, 인간과 자연,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을 이원론으로 파악한 데카르트의 철학 등이 오늘날 인간의 지구에 대한 무한 착취의 요인이 되었다.
오늘날 미국은 온실가스 및 쓰레기 최다 배출국, 에너지 최다 소비국, 최대 비만국이다. 미국 이전에 베이컨이나 데카르트의 사상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오늘날 사정은 달라졌을까? 기후온난화, 오존층 파괴, 이산화탄소 증가, 해수면 상승 등의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길은 생태적 전환에 있다.
김종갑은 지구의 위기는 나무, 돌 등에서 물질밖에 보지 못한 근대적 상상력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김종갑은 때로 무위가 인위보다 현명하다고 말한다. 김종갑은 원자력 발전소가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유일한 길이라는 ‘가이아’의 저자 제임스 러브록의 말을 언급하며 그 주장의 옳고 그름에 관심이 없고 다만 어떤 대가와 희생을 치르더라도 현재의 풍요와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안달하는 우리의 욕망을 안타까워 한다.
경제 문제이자 정치 문제여서 꺼려지지만 나눌 줄 모르는 것이 큰 문제다. 국가간에서, 개인간에서...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도 한 신문에서 인도양의 작은 섬 두 곳에서 매년 57만 마리의 소라게가 플라스틱에 갇혀 떼죽음을 당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에드워드 윌슨이 제안한 에레모세(Eremocene)란 개념이다. 이는 이 지구에서 다른 생명 없이 인간이라는 종만이 홀로 살아가는 고독한 시대라는 의미다. 도나 해러웨이는 쑬루세(Chthulucene)란 개념을 제안했다. 인류세는 인간의 힘과 능력을 터무니 없이 과대평가하는 개념이니 가이아, 메두사 등과 같은 다양한 이름을 통칭하는 쑬루세란 개념을 제안한 것이다.
앞으로는 기후 난민이 급증할 것이다.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기후 변화의 주요 원인이 온실가스 배출이고 그것이 소의 트림과 방귀 탓이라 해도 다수의 인간이 고기를 원하는 까닭에 빚어지는 일이기에 결국 인간의 행위와 무관하지 않다. 김운하는 지구까지 걱정해야 하는 시대로 우리 시대를 정의한다.
김운하는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을 의미하는 창발성이란 개념을 사용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푸른 행성 지구를 창발적 현상들이 가득한 특별한 세계로 정의한다. 지구와 사람의 몸, 고양이의 몸, 이 모든 것이 우주먼지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동일하고, 그런 점에서 이 모두는 이음새 없는 물질들의 그물망을, 아름다운 융단을 직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 모든 물질의 복잡한 그물망을 자연이라 부른다. 김운하는 물질도 능동적인 행위자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감한다. 김운하에 의하면 물질들은 인간처럼 의식적인 행위 능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능동적인 작용 능력 즉 생명을 만들고 유지하게 하고 생명을 죽이기도 하는 거대 작용능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다시 베이컨과 데카르트의 이원적, 인간중심적 사유를 극복해야 할 필요가 제기되는 것이다. 김운하와 이승미는 공히 스테이시 앨러이모라는 영문학과 고수를 언급한다. 그의 ‘말, 살, 흙’을 읽을 필요가 있다. 앨러이모는 스피노자의 횡단하는 신체라는 개념을 끌어들여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들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환경이라 부르는 것과 분리불가능하고 텅 빈 공간이나 자원 정도로만 여기는 환경이 사실은 그들 자신의 필요와 욕구, 행위를 지닌 살을 가진 존재들의 세계임을 강조한다.
사실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인간의 몸이 끝나고 어디에서부터 환경이라 불리는 비인간 자연이 시작되는 걸까?(104 페이지) 바디버든이란 말이 우리의 현실을 말해준다. 바디버든이란 사람이나 동물의 몸 안에 있는, 방사성 원소나 독성 물질 등 특정 화학 물질의 총량이다. 캐미포비아란 화학물질에 관한 불안과 공포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구가 3.5개 필요할 정도로 꽤 소비적으로, 부자인 양 살고 있다. 에어컨 온도가 조금만 만족스럽지 못해도 참지 못하고 민원을 제기하는 만원 전철 안의 시민들 아니 소비자들을 보면 영략 없이 3.5개의 지구를 필요로 할 정도로 낭비하며 사는 우리의 모습이 생각난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생태적 주체로 거듭나야 지속 가능성의 희망이 생긴다. 이지용은 고기 소비 자체는 문제가 아니며 다만 정도의 문제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이지용은 동물들을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로 존중하지 못하고 인간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만 인식하는 공장제 축산은 윤리적 문제 외에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한다.
항생제를 비롯한 약물 및 질병 문제다. 집단 사육으로 인한 문제다. 축산업은 세계 온실가스의 51%를 방출한다. 사료 조달을 위해 열대우림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벌목하는 문제도 그렇다. 주기화는 육식 습관은 자본이 길들인 습관이라 말한다. 인용된 바 맥켄지 워크는 18, 19, 20 세기의 해방 운동 가운데 하나만 무한정 성공했다고 말한다. 민족 해방도, 계급 해방도, 식민지 해방도, 성 해방도, 동물 해방도, 사이보그 해방도 아닌 탄소 해방이다.
주기화는 영장류 연구학자인 프란스 드 발의 실험을 소개한다. 실험에 의하면 동물들은 경이로운 지능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협력, 유머, 정의, 이타심, 합리성, 의도, 감정 등 인간적이라고 여겼던 특별한 가치를 동물들이 보인 것이다. 주기화는 배양육을 논한다. 배양육이란 가축을 사육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연구실에서 살아 있는 동물의 세포를 배양하여 조직배양기술로 세포증식을 통해 얻는 식용 고기를 말한다.
심지원은 만능물질에서 천덕꾸러기가 된 플라스틱을 이야기한다. 서윤호는 자연은 권리를 가지는가에 대해 논하며 최근 생태 헌법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법은 개인의 사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생태를 사전적으로 보호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자연훼손 위험을 예방할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에 책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철학자 심귀연은 ‘인류세와 포스트 자연, 그리고 여성’이란 글에서 아낌 없이 주는 자연을 아름답게 여겨온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필자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연이 스스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가 말했듯 근대적 자연관에는 문제가 있다. 근대적 자연관은 자연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듯 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연은 훼손되었고 인간 삶도 위기에 처했다. 필자는 이제 더 이상 가이아는 너그럽고 희생하는 여성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말한다.
문학평론가 임지연은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가 브뤼노 라투르가 말한 어스바운드란 개념을 소개한다. 지구를 떠날 수 없는, 무수한 지구적 존재와 살아가야 하는 지구부착자를 의미하는 말로 지구에 존재하는 무수한 인간 ? 사물들의 관계망 자체를 지칭한다. 임지연은 미세먼지는 우리 몸이라 말한다.
우리가 우주 먼지에서 비롯된 존재라는 말과 사뭇 다른 늒느낌을 갖게 하는 말이다. 임지연은 인간 종만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 지적한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생각한 것은 근대의 일이었다. 하지만 라투르의 말대로 인간은 근대인인 적이 없었다.
인간은 손상된 지구를 책임져야 한다는 우월주의부터 버려야 한다. 인류세란 명칭에는 인간중심주의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인간은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고 위계화하고 대상화하는 삶의 태도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공존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는 의미다. 여러 필자들의 글을 읽으며 조화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새로운 개념도 많이 알게 되었고 최신 흐름에 대해서도 접하게 되었다. 문학평론가 임지연의 논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인류세란 개념에는 인간 중심주의의 문제가 깃든 것이라는 말이 파문을 일으킨다. 인간은 미세먼지라는 말도 그렇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