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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보다는 기차 자체가 되고 싶었던 남자 찰스 뉴먼...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지만 생명체가 아닌 기계를 대할 때는 한없는 자유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머신맨'은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는 SF소설이다.
주인공 찰스 뉴먼 는 '더 나은 미래'란 기업체에서 공학박사로 일하고 있다. 그의 모든 생활과 관계는 핸드폰에 의존하며 사는 사람이다. 회사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던 도중 뜻밖의 사고가 발생하는 와중에도 그는 잃어버린 핸드폰 생각에 매달려 있을 정도로 사람보다는 기계와 더 친밀하다.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찰스는 재활치료 과정중에 아름다운 여인 롤라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녀와 친밀한 관계에 미쳐 빠져들새도 없이 조기 퇴원과 함께 다시 직장에서 일하게 된 찰스는 일을 하는 틈틈이 자신의 발을 대신할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다. 완벽한 한쌍의 새로운 다리.... 그것은 곧 한쪽 다리를 잃은 찰스에게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찰스는 완벽한 다리를 갖고 싶어 온전한 자신의 자리를 자르려고하는데.....
미래를 다룬 SF 영화에서는 흔히 기계와 인간이 결합되어 있는 것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미래 사회가 어떤 식으로 흘러 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기계와 인간이 결합되어 새로운 인간이 탄생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섬뜩하고 무섭다.
찰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롤라가 기계와 하나가 된 자신의 모습에 반했다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더욱 기계화 시키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다른 부분 역시도 기계로 교차할 생각까지도 갖게 된다. 허나 이런 그의 생각을 회사에서 차단을 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찰스가 자신을 위해 만든 완벽한 한쌍의 팔은 자발적으로 온전한 팔을 기계팔로 교차하려는데 참여한 경비원에게 부착되고 이는 찰스를 격분하게 한다. 여기에 회사는 찰스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들을 더욱 발전시켜 커다란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허나 회사가 원한 것은 뜻밖에도.....
현대사회는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생명연장은 물론이고 좀 더 젊어지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성형수술이 결코 흉이 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보니 TV이에 출현하여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아직 신체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성장기 어린 소년, 소녀들까지 성형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가지고 무분별하게 하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이 가진 내면적인 아름다움보다는 겉모양이 더 중요하고 사람들간의 정이 흐르는 관계보다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한 관계에 더 친숙하고 편한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가까운 미래 사회의 우리의 모습을 소재로 한 SF소설이지만 갈수록 삭막해지고 메말라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들여다 볼 때 결코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다. '머신맨'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염두해 만들어진 작품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스토리의 이야기가 저절로 영상처럼 머리속을 맴도는데 이미 이 책이 영화화 되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블랙스완'이런 아주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어 낸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다고하니 얼마나 사실감 있게 그려질지 벌써부터 기대하게 된다. 또 한명의 기대되는 SF작가를 만난 작품 '머신맨' 저자 맥스 배리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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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어릴 적 꿈은 기차가 되는 것이었다. 기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기차 자체가 되는 것. 그러나 인간이 사물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다. 남자는 『머신맨』의 주인공 찰스 뉴먼이다. 의학과 과학, 기술의 발전은 불가능한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분명 휴대폰이,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간이 있었던 것 자체가 상상이 되질 않는다. 예뻐지기 위해, 신체적으로 완벽해지기 위해 얼굴을 바꾸고 몸을 바꾼다. 그렇게 바꾸는 이유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바꾸기만 하면 현재의 삶이 달라지리라 믿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폰을 보고 습관적으로 인터넷을 검색한다. 극히 드물지만 어쩌다 휴대폰을 두고 외출한 날에 마음이 불안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엄마와 함께 길을 나섰다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세상은 넓어 내가 모르는 존재하는 건 당연한데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정보의 바다를 헤맨다. 온종일 헤매도 늘 불안하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기계에 종속되어 살아간다. 분명 아주 예쁜데 만족하지 못하고 또다시 성형을 감행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확신하며.
찰스는 휴대폰이 없다는 사실에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그에게 휴대폰은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이자 정보제공자였다. 우리의 삶 역시 다르지 않다. 휴대폰은 가족보다 친구보다 더 오랜 시간 같이 있는 대상이다. 찰스는 휴대폰을 찾으러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 ‘더 나은 미래’ 연구실에 갔다가 한쪽 다리를 잃는다. 인공다리를 달아야 하자 그는 직접 인공다리를 만들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가 만든 인공다리, 컨투어는 한 쌍이었다. 한쪽 다리가 잘린 우연한 사건은 그로 하여금 완벽한 다리를 갖고 싶은 열망을 품게 했다. 그의 회사 ‘더 나은 미래’는 그의 인공다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길 원했다. 더 나아가 연구를 발전시켜 완벽한 인공신체를 만들어 팔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더 완벽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 신체를 만들어 팔면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사람들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병약했던 그는 잠재적 의식 속에 강한 신체를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었다. 완벽해지고 싶은 찰스의 욕망과 사람을 지배하고자 하는 회사의 욕망은 점차 커졌다.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찰스도, 의지보조기 기사 롤라도, 중간관리자 카산드라도, 찰스를 ‘감시’했던 칼도 그러했다. 그들에겐 강해져야 할 이유가 있었다. 찰스는 어릴 적부터 신체가 약했고 롤라는 심장이 약했고 카산드라는 치아의 틈이 벌어진 치극이 있었고 칼은 힘이 약해서 교통사고 당한 약혼녀를 구하지 못했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욕망을 나쁘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기에. 다만 어떤 순간에도 ‘나’를 잃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공으로 된 몸을 갖게 된 찰스에게 내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은 뇌뿐이었다. 그 후엔 그 뇌마저도 사라졌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우리가 ‘머신맨’이 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로봇이나 사이보그는 존재하겠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을 찰스와 ‘그들’만의 이야기로 규정할 수 없었다. 그들의 모습 속엔 기계에 종속되어 기계 없이는 살지 못하는 우리가 있었기에. 약간의 자신감과 좀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닌 문제에선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실험이 성공하여 부작용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그렇게 변한 ‘나’는 진짜 ‘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완벽해지려다 ‘나’는 사라진, ‘나’라고 규정하기 모호한 괴물의 ‘나’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머신맨』은 어떤 위기 앞에서도 끝나지 않았던 찰스와 롤라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겐 완벽해지려다 진짜 나를 잃어버린 이야기, 끝나지 않는 욕망에 관한 이야기였다. 가짜 ‘나’와 진짜 ‘나’의 경계에서 길을 잃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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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과학소설을 읽은지 너무 오래 된 나에게 제목마저 흥미로은 [머신맨]이라니,,,거기다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소재인 기계가 되어버린 한 남자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란다...캬~~ 읽고잡은 마음이 파팍 든다. 책표지마저 흥미롭다,,어떻게해서 저렇게 온 몸이 기계로 대체되어간 것인지,,기계가 된 남자가 어떤 가슴아픈 사랑을 하는지 과연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 질런지,,궁금타,,그렇다면 책속으로 고고~~~
벌거벗은채 집안에서 휴대폰을 찾아 헤메는 한 남자가 있다,,, <더 나은 미래 주식회사>에서 일하는 찰스 뉴먼 박사이다. 휴대폰을 분실한 그는 몇시간 동안 주요 뉴스도 일기예보도 교통정보도 얻지 못해 정보 결핍 상태로 상당히 불안해 하며 휴대폰 생각만 간절해 안절부절하며 회사로 서둘러 출근한다. 병원에서 재활을 받던 찰스는 의지보조기 기사인 아름다운 여인 롤라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진심어린 '힘겨울 거라고 하지만 그런 일을 겪으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던' 말과 마음에 그의 가슴엔 서서히 사랑이 싹튼다. 찰스의 절단지 밑으로 최신식 의족이라는 엑시지시를 달았지만 과학자인 찰스가 보기엔 금방 떨어져 나갈듯 볼품없고 조잡해 보이기만 하다. 게다가 이동하기에는 어느정도 만족하지만 의자에 앉기위헤 몸을 낮출때는 힘들어 정상다리에 무리가 가서 짜증스러웠다 엑시지시를 벗어 분해한뒤 미친듯이 일에 메달려 데이터를 저장하고 GPS 역활도 하고 무선랜 기능까지 있는 혼자 힘으로 움직이는 의족을 만들었다. 개선 업그레이든 된 의족다리에 비해 생체다리가 따라가 주지 않는 것을 깨닫고 이전보다 개선 보완해 두다리가 세트로 만들어진 최첨단 의족을 제작한것 까진 좋았는데 천재들의 광기였을까? 인공다리가 한쌍이면 더 좋을 것이라는 완벽한 다리에 대한 열망으로 찰스 스스로 다리를 절단하는 사고를 저질러 나머지 한다리마저 절단하고 만다. 그런 찰스의 집착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하지만 찰스가 만든 인공다리를 회사에서는 관심을 가지게 되고 더 나은 인공기관들이 제품으로 출시된다면 엄청난 상업적 이윤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회사의 판단아래 인공적으로 기능이 강화된 기관들, 생체 능력이 증가된 그런 기관들을 만들라는 지시와 함께 찰스 아래 연구원을 100명이나 보충하며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만들어져간다. 찰스의 관심은 오로지 저 나은 다리를 만들어 갖는 것이였는데 ..무관심의 존재였던 찰스가 이제는 많은 연구원들 사이에 우상으로 떠오르고 과학을 위해 목숨을 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으로 생각되어진다. 철저하게 통제된 환경안에서 움직이여 하는 찰스에게 롤라의 신체적인 비밀도 알게 되는데......
이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때 가슴이 묵직해오며 씁쓸하고 안타깝다,, 이책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다..처음엔 단순히 자신의 다리를 좀더 완벽하게 만들어서 사용하고 싶었던 과학자가 어리석은 연구에의 욕구로 인해 자꾸만 더 나은 신체로 교체되어 가고, 오직 이윤추구가 절대적인 기업의 탐욕으로 인간의 존재성 상실이라는 크나큰 문제점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아주 어릴때 재미있게 보았던 은하철도999가 생각난다,,처음엔 철이가 메텔과 함께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과정이 즐거워서 즐겨 받던 만화영화가 결말쯤에 가서 그 여행의 종착역 프로메슘행성에서 기계인간이 되기 위해 그 머나멀고 힘든 여행을 했다는것에서 어린나이였음에도 실망을 했었다,,영원한 삶을 살기위해 기계인간이 된 수많은 사람들과 흥청망청 술에 취해 어떤 목적도 없이 유흥에 빠져 있던 기계인간들의 모습이철이와 같은 여행을 하던 사람들이 원했던 삶의 모습이였던가? 하면서 말이다 이책을 읽고 난후의 느낌이 그때의 느낌과 같다. 더 편리아고 더 발전된 기계에 이미 우리모두는 중독되어 버렸다,,머신맨과 같은 일이 머지않은 미래에 꼭 일어날것만 같다. 머신맨이 영화로 만들어질것이라니 영화로 그려진 이야기는 확실히 더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 같다,,그리고 우리들에게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실랄하고 풍자스럽게 이야기할것 같아서 영화로도 꼭 만나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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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분명 우리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고 예전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이루어내었다. 곧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라 한다.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그리는 소설과 과학 기술의 도움을 빌어 화려한 영상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서로 다른 매력이 있어 소설만큼 빠져들도록 재미있을까 궁금해진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생겨나는 현재, 멀지 않은 미래에 이 소설과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을 누가 할 수 있을까. 변화와 발전이 좋다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 소중한 그것, 인간다움은 잃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현대 문명에 대한 경고. 기계가 된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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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다!!! 이 내용이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니 그 영화 또한 보고싶단 생각이 절로 든다.
핸드폰이 없이는 옷도 제대로 입을수없는 찰리.. 잠에서 깨어난 그가 핸드폰을 찾지못해 애타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염려되는 현재, 혹은 미래의 모습이다.. 바깥날씨를 고려하지않은채 아무렇게나 스웨터를 입고나간 그가 회사에 도착해 또 역시 핸드폰의 부재로 인해 무슨일을 해야할지 막막한 상황에서 실험실에서 맞딱뜨린 핸드폰.. 반가움에 벌인 그의 행동이 예기치못한 사고를 불러오고, 이로인해 그가 변화해가는 과정이 담긴 이야기는 과장됨으로 인해 처음엔 가벼이 느껴지다가 점점 그 무게감을 느끼게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기능적'인 다리를 만들겠다는 욕구가 인간 본래의 다리를 거추장스러운것으로 느껴지도록 만들어가는 과정과.. 처음엔 그를 두려워하던 이들이 점차 그를 경외시하며 우상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과학의 의미는 무엇인지 다시 생각지않을수없었다.
사실, 이런류의 소설을 아주 오랫적 접한 일이 있다. 인간이 자신의 신체를 불필요한것으로 느끼고 필요로하는 기능만 남겨 결국엔 인간이 아닌 그 무엇이 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 아마도 20년이 좀더 지난 옛날.. 어른들이 보는 책장에 꽂혀있던 일본작가가 지은 책.. 거기선 남자주인공이 감각만을 남긴채 제 몸을 없애버리고는 결국 뇌와 신경다발만이 포르말린용액에 들어가있으면서 지속적인 전기자극에 의해 극도의 오르가즘을 느끼는것으로 이야기가 끝났었다..
처음엔 사라진 신체일부에 대한 상실감에 괴로워하다가 결국엔 제 신체를 거추장스러워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주인공.. 또 이런 주인공의 열망을 이용해 '더 나은' 신체조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욕망을 보이는 회사를 보면서 상상한 것이 결국엔 현실이 되는 모습을 보아온 나로선 두려움을 느끼지않을수 없었다.
누가 아군인지? 누가 적군인지? 제대로 구분할수없는 상황에서 의지가 먼저인지? 신체가 먼저인지? 어느새 모든것들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기계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네 모습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소설이라 생각했다~
작가의 전작 시럽.. 아직 번역본이 나와있지않은듯해 아쉬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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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아이들이 멋진 로봇이 되는 꿈을 꿀 때 그런 효율적이지 않은 것보다는 실용적인 기차가 되길 꿈꾸던 아이가 있었다. 그는 자라서 과학자가 되었고 [더 나은 미래]사에 입사해 능력을 발휘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사람이 바로 주인공 찰스 뉴먼이다. 그는 연구실에서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는다. 병원에서 의지보조기(의족)기사인 롤라를 만나 그녀에게 반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허접한 의족을 보며 자신의 다리를 새로이 멋지게 만들어내게 된다. 그의 새로운 다리는 회사의 눈에 들게 되고 찰스는 회사내에서 유명인사가 됨과 더블어 자신의 연구진을 가지게 된다. 자기가 '만든 몸'에 자신을 갖게 된 찰스는 스스로 한쪽 다리를 자르게 되고 그의 몸은 점점 로봇이 되어간다. 하지만 그가 연구를 계속할 수록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바꾸려는 그의 생각과 달리 회사는 그러한 연구들을 이용해 무기와 병사를 제작하는데 이용하게 되고 찰스는 이를 막으려 점점 로봇이 되어가다가 결국에는 모든 걸 막아내지만 깡통속에 갇혀버리게 된다. 소설이지만 사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남은 다릴 스스로 다릴 자르다니; 실제 그런 짓을 했다간 과다출혈이나 쇼크사가 당연하지 않을까? 어쨌든 많은 것을 시사하는 블랙코메디같은 소설이다. 그저 효율성만 추구하는 인간을 꾸짓는 듯 하기도하고 과학만 맹신한 나머지 그 부작용은 생각지 않는 점은 우리사회에 경고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장 경제발전을 위한 무분별한 개발이 망친 부작용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기계적인 오작동은 차지하고라도 찰스는 그의 다리가 편리해진다고만 생각했지 환상통을 겪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또한 그가 없어도 연구진은 스스로 활동하여 더나은 신체 시리즈들을 만들고 회사는 찰스 몰래 그것들은 다른사람에 실험하여 무기로 제조하려고 한다. 롤라의 심장에는 EMP폭탄을 만들어 놓기까지 한다. 아무리 훌륭하다해도 공짜의 유혹은 위험이 따리기 마련이다. [더 나은 미래]사가 찰스에게 그저 그의 꿈을 실현시키거나 그저그런 대체 장기를 만들려고 그 많은 투자를 할리는 만무한 것이다. 과학자들이 기술연구에만 치중하지 말고 나무보다 더 넓은 숲을 보는 생각을 키워야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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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뉴먼'은 '더나은 미래 주식회사'에 근무하는 공학자. 커뮤니케이션이 서툰 탓에 사회생활 스킬은 제로. 어느 날 그는, 회사에서 기계 조작 미스에 의한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어 버린다. 의족을 달고 재활을 이어나가던 찰스는 문득 번뜩인 생각으로 자작 의족, 이라기 보다는 로봇에 가까운 다리를 제작한다. 이 로봇다리는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데에 그치지 않고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이동할 장소를 지정하면 마음대로 이동이 가능한 대단한 물건. 오히려 나머지 다리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게 된 찰스는 스스로 한쪽 다리마저 잘라낸다. 회사에서는 이 사실을 눈치채지만, 그 상품성을 알고 새로 로봇 의족 팀을 꾸려 찰스에게 리더를 맡긴다. 그리고 찰스는 자신의 몸을 개조해 나간다.
흥미로운 설정의 신체 개조 SF이지만 보다 큰 스케일의 SF를 기대했다면 조금 아쉬울만한 부분은, 사회상이 거의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 설정이나 전개만 보면,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사회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바꾸어 버리는 모습이 묘사되리라고 라고 예상하기 쉬운데, 이 작품은 그런 쪽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연구소의 멤버가 눈을 기계화 한다거나 하지만, 바깥사회 전체의 분위기는 알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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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자랑할 만한 성적 중 하나가 높은 성형율이란다. 아, 이건 자랑이 아닌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대단히 열성적이란 것만은 분명하다.
재밌는 소설을 만난 것을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이런 소설이 재밌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아쉬움을 던져야 할까. 아, 이런 생각들은 내려놓고 일단은 재밌는 이야기를 늘어놓도록 해야겠다.
세상에는 인간이 있고, 다른 한편에 공학자가 있다. 인간과 공학자를 굳이 분리한 이유는 그들의 사고가 원초적으로 다른 기준을 바탕으로 움직인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소설 속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현실의 공학자들이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도모한 결과 개발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용도로 그 기술이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비극들을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공학기술자이다. 과학자라고 하고 기술자라고도 하는 그런 사람이다. 얼핏 봤을 때 이 사람은 대단히 평범해 보이기도 한다. 조금 사교성이 부족하고, 약간 극단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대단히 호흡이 빠른 소설이다. 극도의 반전은 없지만, 그 반전을 대신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하는 그 무엇이 있다.
마치 우물가에서 혼자 노는 아이를 지켜보는 관심많은 행인이 느낄 법한, 관전자이긴 하지만 방관자가 될 수는 없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시대는 변한다. 세태도 바뀐다. 그리고 인간도 변해간다. 그것은 외양뿐아니라 내용까지를 포함한 변화이며, 긍정적인 변화와 부정적인 퇴화를 함축한 변화다.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나의 정의가 타인이나 세상의 정의가 될 수는 없으며, 세상의 정의가 나의 정의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혼동하게 되는데서 오는 혼란이다.
무엇이 인간을 규정하는가? 어디까지가 인간인가?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한 대답은 신중해야 하지만 세상은 그만큼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이야기 속의 생각해 볼 문제를 몇 개 적어본다.
기술의 진보는 인류에게 있어 무한한 혜택을 제공한다. 과학의 발전과 더 나은 인간 생활을 위해 하지 못할 것은 없다. 누구도 그에게 혹은 그들에게 "그것은 해선 안돼!"라고 말하지 않는다.
소설 속의 모든 일이 일어나는 건 '더 나은 미래'라는 회사다. 너무나 노골적인 이름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하는 의심과 의혹이 절로 일어난다. 동시에 '더 나은'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주요 등장 인물들에게는 저마다 고충이 있다. 그들은 연합하기도하고, 거부하기도하고, 미워했다가, 필요로하며, 증오하지만, 동경하고, 망설이지만, 정당화에 바쁘기도 하다. 결국 그들의 고충은 한 가지로 모아진다. "더 나아지고 싶다."
결과적으로 누가, 무엇이 더 나아진 것인지 소설의 결말 만으로는 알아낼 수 없다. 결국 독자에게 남겨진 숙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기술이 부족한 것을 안타까워해야 할 것인가, 기술의 과잉을 걱정해야 할 것인가. 소설 속에서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314쪽 자신을 다스리지도 못하면서 중요한 신체 부위들을 인공 기관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고요.
이 말을 읊어대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난 이 부분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중요한 시체 부위란 단순이 인간의 팔 다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크고 넓은 세계를 생각해 보면 세상의 구조, 혹은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것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현대는 '스마트 폰'의 시대이기도 하다. 스마트하지 않은 것은 업신여겨지고, 낙후되고 덜 떨어진 것으로 여겨져 좀 더 스마트한 것으로 교체된다. 인간이 하던 것을 기계와 시스템을 통해 효율적으로 처리해 나간다. 계산기가 발달했기에 인간의 계산력이 떨어진다. 휴대전화에 입력한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않는다. 아파트 입출차 관리를 경비원이 아닌 CCTV와 컴퓨터가 한다.
편안하다는 이유로 바꾸기 전에 우리는 한번 더 생각해야만 한다. 어떤 일들은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이 그렇기도 하다.
많은 부분에서 이제 인간은 '대체 가능'해 졌다. 애초에 인간이 다른 것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언제 시작된 것일까? 고전적인 전투에서 아직 인간을 방패로 사용하던 시대에, 왕을 둘러 싼 인간들의 목숨을 대체 가능한 방어물로 생각했던 폭군의 생각이 그 시초는 아닐까? 노예를 부리던 시절에 전쟁이나 약탈을 통해 공수해 온 노예를 그저 기계의 부품처럼 죽기까지 부리고, 목숨이 다하면 짐승의 먹이로 던져주던 야만이 만연한 시대의 이야기는 아닐까? 애초에 최대의 폭군이 나왔던 시기는 언제고, 진정 야만이 만연해 있는 것은 또 언제인가?
그것이 지금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괜스레 열을 올리고 말았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야겠다. 무엇이 진보인가, 무엇이 더 나은 삶, 더 나은 미래인가하는 문제들을 말이다.
어떤 책에서 이런 말을 봤다. 능률이란 일을 적절하게 하는 것을 말하고 효율이란 적절한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_토머스 K. 코넬란 능률과 효율을 오해하지 말자.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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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애니메이션의 영원한 고전 <은하철도 999>가 생각난다. 이 애니 속에서 돈 많은 부자들은 기계인간이 되어 영원한 삶을 살고자 한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병들면 죽을 수밖에 없다. 너무 오래전이라 희미한 이미지만 남았지만 그 당시 기계인간이 된 그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계로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든 인간들에게 끌리는 것을 경험했다. 사고로 신체 일부를 잃어버린 후 첨단 기술로 이것을 대체하고 악당을 무찌르는 영웅에 환호했다. 똑같은 기계인데 그들의 행동에 따라 나의 호불호가 갈라진 것이다. 이런 감정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계속되었다.
주인공 찰리는 뛰어난 과학자다. 하지만 그의 사회성은 제로에 가깝다. 한 번도 여자와 제대로 연애한 적이 없다. 이런 과거 이력은 그가 당한 사고 후 만난 롤라와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가 당한 사고는 모두 핸드폰에서 비롯되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핸드폰이 보이지 않는다. 집 어디에도 없다. 미친 듯이 찾는다. 차에도, 침실에도, 소파에도 없다. 결국 회사 책상에 두었을 것이란 추측으로 이어진다. 그곳에도 없다. 순간적인 강박증이 이어진다. 그러다 실험 중인 방에서 핸드폰을 발견한다. 그러다 그 방에서 기계에 끼여 다리 하나를 잃게 된다. 이것이 의족을 가져온 롤라와 만나게 되는 경위다.
처음 그가 다리를 잃은 것을 알았을 때 다른 사람과 다른 차이가 없었다. 상실감이 그를 지배하고 불구자란 생각에 삶의 의욕마저 떨어졌다. 회사는 소송 문제로 발전할까 고민한다. 이때 다가온 의료보조기 기사 롤라는 여신처럼 그에게 다가온다. 그녀가 가져온 수많은 의족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의족을 한 그에게 그녀가 보여주는 반응은 그를 사로잡는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의 발에 맞는 기계 다리를 만들게 된다. 이 다리에 그녀는 엄청난 반응을 보여주고 이때부터 그는 기이한 열기에 휩싸인다. 남은 다리 하나를 자른 후 멋진 기계 다리로 바꿀 생각이다. 여기부터 예상한 전개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기계에 매혹된 남자 찰리와 자신의 심장을 기계로 대체한 롤라. 이 둘은 강한 연대감을 보여준다. 찰리의 기계 다리에서 사업성을 발견한 기업은 새로운 사업 분야로 발전시키려고 한다. 과학자들에게 자신의 분야가 새로운 연구와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보다 더 매혹적인 것이 있을까.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과학을 이용하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연구하고 발전시킨다. 이때부터 그들은 점점 인간성을 상실해간다. 기니피그 사이언티스트로 찰리를 착각하고 존경한 그들이 이제 자신들을 대상으로 실험한다. 인간의 신체가 기계와 결합하거나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이런 시도의 끝은 <은하철도 999>의 귀족들이 아닐까?
강인함과 효율성에 빠진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다리의 무게는 거의 1톤이다. 제대로 걷기만 하면 되는데 그들은 불필요한 장치까지 한 것이다. 처음 이 무게를 읽었을 때 이런 다리를 하고 일상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실제 그가 걷게 되면 타일이 깨진다. 좋은 점이라면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멀쩡하고 엄청 빠르게 달리고 힘이 무척 세다는 것 정도다. 물론 버그에 의한 부작용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팔 다리를 가진 군대를 생각하면 달라진다. 현대 무기가 이것을 당해낼 수 없다. 전투의 방식이 바뀌게 된다. 이 팔 다리를 가진 찰리가 보여주는 활약 몇 번은 갑자기 엄청난 힘을 얻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어설프고 황당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과학의 발전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세계와 미래를 보여준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누군가가 상상했던 세계를 현실화시킨다. SF소설이나 영화에서 본 것이 현실 속에 구현되고 있는 지금을 생각하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지만 누군가가 상상했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 이것은 자신을 위해 사용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위험과 한계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지 않다. 여기서 다시 효용과 효율을 생각하게 된다. 소설 속 설정은 극단으로 몰고 간 부분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재미난 부분은 이 모든 것이 사랑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다. 살짝 삐딱하게 본다면 집착일 수도 있다. 필요를 넘어 광기에 휩싸인 후 기계로 변한 한 남자의 사랑은 현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또 다른 풍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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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77페이지, 24줄, 26자.
찰리 뉴먼은 기계를 좋아합니다. 아,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기계처럼 되는 걸 좋아합니다. 어느 날 바이스에 다리가 끼어 절단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인공지능을 갖춘 의족을 달았는데, 마음에 조금 덜 찹니다. 그래서 개량형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한쪽용이 아니라 양쪽용입니다. 그래서 성한 다리를 역시 바이스에 물려 으스러뜨리게 됩니다.
의료진은 찰리를 자살충동이 있는 환자로 취급합니다. 회사에서는 획기적인 발명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병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퇴원시키고, 연구보조원도 대량으로 늘려줍니다. 그 뒤에는 확대재생산이 자가 발전식으로 일어나게 되고, 여러 가지 다양한 기계 부품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생깁니다.
찰리의 원 목적은, '자기'를 위한 부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통제되지 않는 연구소(회사)는 겉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찰리는 완전한 기계몸으로 바뀌어버립니다. 처음부터 두뇌는 보존해야 한다는 문장이 몇 번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완벽함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인간의 몸(자연의 몸)이 불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게 회복 가능한 대체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또 하나, 인간의 마음은 변덕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정반대의 것을 원한다고 외치기도 하니까요. 덧붙여서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남에게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뭔가를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뒷부분으로 가면서 폭주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조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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