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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맘에 들어 구입하여 읽은 책이다. 제목 밑에 쓰여있는 폐사지 답사기 라는 글은 미처 보지도 못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에 수많은 갈등이 빚어지는 요즘 세상, 그 세상을 향하여 누군가 쓴 소리를 던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반가움에 덥석 지른 것이다. 헌데 책을 받고서 읽으니 생각했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혀 아닌 것도 아니다. 교종과 선종이 충돌하던 시절 산사에서도, 옛 것이 새것에 의해 밀려나던 나말여초, 혹은 여말선초 변혁기에도, 지금과 같이 같음과 다름에 따른 갈등과 충돌이 벌어졌을 터이니 말이다. 폐사지하면 우선은 쓸쓸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적막감 또는 무상함을 느낀다. 폐사지를 찾아볼 요량으로 가본 적은 없지만, 산에 오르다 혹은 여행길에서 폐사지를 만난 적은 있다. 널려있는 돌무더기 사이로 서 있는 탑 하나, 그리고 잡초로 뒤덮인 평평한 초지가 그곳이 한때는 절이었음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불교에 대한 소양이 없어 그곳에서 생활하던 승려들이 느꼈을 해탈이나 깨달음을 떠올리지는 못했지만, 인생무상을 생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저자가 충청도에 널려있는 폐사지를 답사하고 쓴 글이다. 단지 한,두번 가본 것이 아니라 틈만 나면, 그리고 생각이 날 때마다 찾아가서 그곳에서 수양했던 고승들을 떠 올리며 그들의 행적을 알려주고 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절들이 언제 창건되고, 언제 폐사 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저자가 찾아가는 이야기는 궁금증을 풀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폐사지를 찍은 사진은 비록 그곳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바로 그곳에 서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더불어 불교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글 솜씨는 글에도 감각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충청도에 있는 폐사지들은 주로 사통팔달의 교통요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는 중국과 백제, 그리고 고려시대 왕이 기거하던 개경과 지방 호족인 충주의 왕래가 만들어낸 독특한 불교문화의 한 단면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강유역에 존재하는 제천의 월광사, 사자빈신사, 충주의 미륵대원사, 청룡사, 김생사의 5개 폐사지를, 바닷가에 위치한 보령의 성주사와 당진의 안국사 그리고 산중 교통요지에 위치한 충주의 숭선사와 서산 보원사 등 총 9곳의 폐사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 폐사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대부분이 신라 말과 고려 초에 걸쳐있다. 곧 교종과 선종이 치열하게 대립하던 시기이다. 왕족의 보호를 받는 화엄사상의 교종이 보수라면, 지방 호족들이 선호하던 선종은 진보를 표방하고 있었다. 나와 다른 무엇을 내치거나 외면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아우르고 머금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들 폐사에서 주석했던 스님들은 그것들을 모두 아울렀다. 성주사에서 주석했던 낭예 화상이나 보원사에서 주석했던 탄문 스님은 교종과 선종을 나누지 않았다. 그 경계에 서서 모두를 품에 안았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대로 믿고 따를 뿐, 갈림길 속의 샛길은 보지 마라’고 한 낭혜 화상의 음성이 글 속에서, 폐사지의 사진 속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과 마주칠 때 대립하기도 하지만 겸손해 진다고 한다. 그리고 옛 생각과 새로운 생각을 통합하여 더욱 완전함에 이르고자 한다. 이를 불교에서는 너와 나의 분별이 없는 경지, 즉 해탈, 깨달음의 경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어떠한가? 나와 다른 생각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고, 아니 다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 속에서 모두들 저만이 옳다고 아우성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들 폐사지들은, 아니 이들 폐사에서 주석했던 스님들은 오늘날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