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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사와 궤를 같이 해온 기업을 따져보면 삼성, 현대,LG가(家)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여건과 상황이 극히 좋지 않은 환경에서 우리는 이 대기업의 창업자가 어떤 상황에서 기업을 창업하였고, 어떤 실패의 상황을 맞으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살펴보면서 지혜를 얻기 위하여 관련 책을 펼쳐보고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결과를 보고 잘 되었나 못 되었나를 이야기 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을 가만히 살펴보게 되면 그 안에 스며있는 실패와 극복의 과정이 들어있음을 자주 간과하곤 합니다. 어떤 결과물이든 그것이 있기까지 어려움은 상존하기 마련입니다. 처음부터 성행한 것은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한국 대기업의 창업자들도 처음부터 우뚝 솟아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척박한 경제 환경에서 소비자의 필요를 간파하여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능력으로 성공을 했다가 사회 환경 영향으로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무슨 업종이 나에게 맞을지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전개함이 본인 의지의 날개를 펴야만 되는지에 대한 능력이 키워지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발전의 시금석은 이런 창업자들이 있었기 가능했을 것입니다. 불도저 같은 의지로 아무것도 없는 바닷가 사진과 오백 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으로 차관을 빌려오는 정주영회장의 능력은 꼭 이루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고, 소비재를 기본으로 해서 제조업을 진행하는 초기에 방대한 자료를 수집 분석하여 철저한 준비를 통하여 모직사업과 아울러 전자사업을 전개했던 이병철회장의 철두철미한 관리가 현재의 삼성전자가 있는 기반이고, 여성용 화장품과 플라스틱사업에서 소비자에게 싸고 품질 높은 소비재를 공급하고, 더 나아가 석유화학과 아울러 우리나라 전자사업의 효시가 된 LG의 구인회회장의 직관력과 선견력이 대기업을 이룰 수 있는 요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는 의지는 현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도 본받아야할 마음의 자세가 분명함을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봅니다. 희망과 꿈을 안고 미래를 위해서 한 발짝 한 발짝이 쌓여 태산이 되듯이 그와 같은 생각들이 모이면 글로벌위기 상황에서도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201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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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신
대기업 총수의 일대기를 쓴 책들은 시중에 너무나도 많다. 이러한 서적들의 단점은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경영의 신'은 대기업 총수들을 객관적으로 또 서로 비교하면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불도저와 같은 정주영회장, 과묵하지만 치밀한 이병철회장, 많은 사람들은 60~70년대니깐 이러한 그룹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단정하지만,
시대가 흘렀어도 삼성 이병철회장의 다섯가지 지침은 현대사회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통용될 수
첫째, 사업은 시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통찰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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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영 1세대에 관한 책이 발간 되었다. 바로 현재의 삼성,현대,LG를 탄생시킨 그들은 바로 이병철,정주영,구인회 바로 이 3인방이다. 그들은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언젠가는 다가오는 기회를 잘 찾아서 현재의 기업들을 탄생시킨 것이다.
제목 그대로 그들은 경영의 신이라 불리우는 사나이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총 5장으로 구성하였다. 각 장마다 기회포착 능력이라는 경영의 키 포인트를 남겨 그들을 통해 얻은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젊었을때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수없이 실패를 거듭하였었다. 그 실패를 기회로 삼아 다시 일어섰다.
현 시대에서도 창업을 시작하며 새로운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몇 미터도 되지 않은 지역에 수없이 많은 점포들 그리고 똑같은 프랜차이즈들을 볼때면 저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자영업자의 수는 늘어나며 그에 따라 그들의 빚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최근들어 정년에 대한 보장이 없다보니 직장인들의 정년나이가 계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사오정, 오륙도라는 신조어들이 생겨났으며 그에 따라 본인의 사업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것이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들을 탄생시킨 3인들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가 끌고 가야 하는 것들은 무엇이며 새로운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것 같다. 이들의 경영방식은 공통점도 있었으나 닮은 꼴 모습은 아니었다. 그 만큼 본인만의 스타일로 새로운 시대에 맞춰 경영을 한 것이다.
현재의 경영방식에 접목시켜도 전혀 낡은 것이 아닌 마인드라고 생각이 된다. 우리는 과거의 것중에 우리가 얻어갈 것은 얻어가되 요즘 트렌드에 맞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영의 신은 우리 주위에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두려워하지말고 도전하자.
정주영 -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다." 이병철 - "가장 위험한 것은 처음부터 실패 여지가 있다는 불안을 갖고 시작하는 것이다." 구인회 - "남이 안 하는 걸 선택하라.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기반을 닦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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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진주하면서 미제 화장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을 때였다.
-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현대그룹, 정주영 창업주) - 수신제가치국평천하(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 재벌 창업주들의 대표적인 명언들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압력을 받는 수가 있다. 물건을 달라는 것은 바로 주었으나 내가 길러온 사람을 달라는 것은 주지 않았다. 기업은 바로 사람이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이 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1982. 2 용인 회의에서(삼성 이병철 창업주) 사람은 보통 적당히 게으르고 싶고, 적당히 재미있고 싶고, 적당히 편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런 ’적당히’의 그물 사이로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빠져나가게 하는 것처럼 우매한 짓은 없다. -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현대 정주영 창업주) 이 책의 저자인 정혁준은 기자출신으로 한겨례신문 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자를 처음 만난것은 '기업가정신을 찾아서'는 제목의 블로그를 통해서 였다. 이 블로그는 국내외 기업가들의 기업가정신과 창업정신에 대한 글들이 유독 많았던것으로 기억된다.
이 책은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 회장, 현대그룹을 세운 정주영 회장, 오늘의 LG를 있게 한 구인회·구자경 회장 등을 소개하며 그들의 창업부터 도전적 경영과 혁신적 생각까지 많은 내용들을 담은 책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기업가 정신’의 의미로 ‘창업 정신’을 떠올리곤 한다. 이른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식’의 창업 정신 말이다.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뿐만 아니라 1950년대 이후 한국 경제 1세대 주역들은 대부분 창업을 통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했다. 수많은 기업들을 만들거나 인수하고 국내가 포화 상태가 되면 해외로 달려 나가 돈을 벌었다. 1960년대 월남전과 1970년대 중동 붐을 통해 달러를 벌어들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은 사회정의 실현과 영리추구를 함께 조화롭게 추구해야 합니다. 장사하는 기업이 이윤추구를 못한다면 존재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윤추구 과정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국민과 사회에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말이 특히 가슴에 오래토록 남았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많은 개척정신이 사라진 것 같다. 환경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교육적인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고 많은 기업가가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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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건, 제목과 줄거리는 아는데, 내용을 모른다는 거라고 누가 말했다네요~~
구인회, 이병철, 정주영의 이름은 아는데 그 사람들이 뭘했는지는 잘 몰랐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게 됐어여. 격동의 시대에 어떻게 기회를 잡는지도 흥미로웠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요~ 경영의 신들이 활약했을 때처럼, 현재의 경제는 어렵다고 합니다.
경영의 신들이 어떻게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지를 보면, 나 역시 기회를 잡는 방법을 어렴풋이 알게 됐습니다.
뭐든지 기본이 중요한데. 경영의 기본을 알게 해 준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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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상이 혼란스럽고 앞이 캄캄할 때, 혹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와 마주쳤을 때 책 속에서 길을 찾는다. 따라서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그들이 ‘무엇을 고민하는가’를 헤아리는 일과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기회를 찾기가 매우 힘든 시대다.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서도 기회는 온다. 다만, 기회는 똑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기회는 늘 변신한다. ‘경영의 신’은 누구보다 기회포착 능력이 강했고, 위기도 기회로 바꿔놓았던 ‘자기경영’의 원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이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한국ㆍ일본ㆍ미국의 1세대 창업주들의 이야기를 흡입력 있는 스토리를 통해 본격적으로 다룬 경영 에세이다.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선 현대, 삼성, 엘지(LG)의 창업주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의 삶을 조명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시대를 관통하며 기업을 창업했고 키워나갔는가? 그 끊임없는 기회모색의 순간들이 당대의 경제적 상황과 역사적 사건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가듯 풀어내며 입체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도록 했다.
이탈리아의 북부 토리노 박물관에는 ‘기회의 신’이자 제우스의 아들인 카이로스의 조각상이 있는데 그 밑에는 내가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함이며, 또한 나를 발견했을 때는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어깨와 발에 날개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이다. 내 이름은 바로 기회이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젊은 시절 실패자였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빚을 지며 인수한 자동차 서비스 센터를 화재로 몽땅 날렸다. 빚더미에서 시작한 사업에 또 다른 빚더미를 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특기이자 장기인 도전정신은 오히려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이대로 주저앉으면 영감님 빚을 못 갚게 생겼으니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자금을 더 빌려주십시오.” (p.28)라고 말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는 땅 투기에 나섰다가 중일전쟁으로 한순간에 몰락했다. 그는 “어느 날, 밤늦게까지 노름을 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밝은 달빛이 창 너머로 방 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문득 악몽에서 깨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너무 허송세월했다. 뜻을 세워야 한다.’ 그는 그날 밤 한잠도 잘 수 없었다.”(p.54)고 했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자는 포목점을 열었다가 고향집 땅문서에 손을 대기도 한 일화는 이들의 수많은 실패 앞에서 소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해방과 전쟁의 격변기 속에서 40대까지 좌절과 실패의 쓴잔을 마시면서도 국내 굴지의 기업을 키워낸 그들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통해서 주인공들이 보여준 모험과 도전정신, 시장을 창출하고 위험을 관리하는 방법, 조직을 건설하고 성장을 지속시키는 방법,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은 오늘의 경영 환경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원칙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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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정주영,이병철 위 3명의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끈 대기업을 만들고 키워낸 1세대 기업주들이다. 물론 대기업들이 이렇게까지 글로벌한 기업으로 키워질수 있었던 건 단순히 기업을 만든 기업주들의 역량탓으로 돌릴 수 없을 것이다. 국가의 선택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을 이끈 수장들의 역량과 경영방식에 물음표를 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인생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기회를 본능적으로 잡았고 그 기회를 잘 활용 하여 오늘날 성공적인 기업으로 만들어냈다. 이런 기회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흘려보내는 사례는 훨씬 많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위 3명의 기업인들의 일대기를 그려냄으로써 이들이 실패와 성공을 거쳐서 어떻게 큰 기업을 일구어나갔나 조명해보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 험난한 기업 생태계 속에서 경영자들이 어떤 마인드로 기업을 이끌어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준다. 각 장 끝부분에 등장하는 '실패가 성공의 밑천이다', 시대 변화가 주는 기회를 활용해라', '도전이 성공의 증거다','기회를 자신만의 가치로 만들어라','누구의 인생도 닮지 마라' 라는 멘트는 꼭 한번 되새겨봄직한 어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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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박물관에는 제우스의 아들인 카이로스의 조각상이 있다. 카이로
스는 무성한 앞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앞 머리카락을 쉽게 붙잡을 수 있지만 그냥 지나치면 다시는 붙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뒷머리가 대머리인 데다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어 빨리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왼손에는 저울을, 오른손에는 칼날을 들고 있어 정확한 판단과 빠른 결단을 요구한다. 그는 '기회의 신'이다.
한국, 일본, 미국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창업주 아홉 명의 이야기를 담은 경영에세이다. 그들이 언제 어디서 기회를 찾고, 어떻게 그 기회를 붙잡고 도전했는지 많은 자료를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먼저 나온 1권 "누구의 인생도 닮지 마라"는 한국의 1세대 기업가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 등 3인의 생애을 조명하고 있다.
젊은 시절 현실을 불평하며 가출을 일삼던 정주영,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모두 중퇴로 점철된 막내아들 이병철, 몰락해가는 선비 집안의 맏아들 구인회, 그들이 어떻게 비즈니스의 기회를 잡았는지를 추적한다. 2권은 일본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소이치로, 이나모리 가즈오를, 3권은 미국의 헨리 포드, 존 데이비슨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를 다룰 예정이란다.
"인류 역사상 새로운 사업기회는 끊임없이 생겨났고, 진정한 기업가는 보통사람들이 볼 수 없는 기회를 찾아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다" - 안철수 교수/서울대
경영의 신은 기회포착 능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도 했다. 시대적 격변기에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나갔다. 오늘날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세계를 변화시킨 것처럼 그들도 걸음마 수준의 한국 경제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청년 백수는 이제 사회적인 이슈다. 그만큼 취업이 힘든 세상이다. 어렵게 취업해도 평생직장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 되었다. 한달에 한번 받는 월급이 생활하기에도 빠듯하다. 그래서 막연하나마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 경영의 신은 한 줄기의 빛이다. 희망의 메세지를 던지기 때문이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에겐 시장과 환경의 변화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또한 위기가 되기도 하는 두 얼굴을 가진 괴물이다. 기회를 잡으려면 주변의 변화에 대해 움직임과 흐름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또한 경쟁자의 움직임도 포착해야 한다. 이런 점들을 한 수 배울 수 있는 경영의 신은 마치 한 줌의 소금이다.
도전하려는 생각은 누구나 갖는다. 하지만 실행으로 옮기기엔 쉽지 않다. 심심풀이 고스톱에서도 자신있게 '고Go'를 부르지 못한다. 그런데 경영의 신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고Go'를 외치는 능력과 일반인들이 찾지 못하는 기회를 그들은 어떻게 포착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고 경영의 신들이 성공만 한 게 아니다. 그들도 20대엔 사업 실패를 맛보았고, 30대엔 재기를 위해 정신없이 뛰었고, 40대에는 사업에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묘미가 될 것같다.
수리를 맡은 자동차가 불타버렸고, 부속품도 잿더미로 변했다. 빚더미에서 시작한 사업에 또 다른 빚더미를 안게 되었다. 이런 경우라면 사람들 대부분은 실의에 빠져 그냥 주저 앉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정주영은 그의 특기이자 장기인 도전정신이 오히려 더욱 빛을 발했다.
"이대로 주저앉으면 영감님 빚을 못 갚게 생겼으니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자금을 더 빌려주십시오"
어린 시절 정주영은 번번히 가출을 감행한 문제아였다. 그가 가출한 당시의 시대상을 살펴보자. 1931년부터 3년 동안 매년 가출을 감행했다. 경제교육연구회가 출간한 <뜻으로 읽는 한국경제사>를 보면, 당시 매년 6만 명의 농촌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유입되었다고 밝힌다.
그는 6만 명 중의 1명이었다. 고향을 떠난 이들은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날품팔이, 지게꾼, 공사장 막노동 등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척박한 삶을 영위해야만 했다. 그가 가출한 이유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농사의 성과는 너무도 적었기 때문이라고 자서전인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말하고 있다.
그는 쌀가게에 취직했다. 배달을 위해선 자전거가 필수였다. 내리 사흘 동안 밤잠도 안 자고 타는 법을 익혔다. 얼마 후 그는 한꺼번에 쌀 두 가마를 싣고도 제비처럼 날쌔게 달릴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일등 농사꾼이 되길 바랬지만, 지금 일등 배달꾼이 되어 있었다.
가출하고 3년쯤 지나 그의 1년 월급이 쌀 20가마가 되자, 22살에 16살 아가씨를 배필로 맞았다. 쌀가게 주인의 아들은 게으른 난봉꾼이었다. 아들에게 노름 돈을 대주는 꼴이 되자 가게를 그에게 인수해달라고 요청했다. 성실한 그였기에 인수대금 결제도 벌어서 갚아달라고 했다.
1938년 1월, '경일상회' 간판을 내걸었다. 가출 4년 만에 그는 쌀가게 주인이 되었다. 나날이 번창했다. 단골을 늘려나간 탓이다. 그러나, 사업 시작 2년 남짓 되었을 때 일본이 대공황을 타개하려고 침략전쟁을 벌이자 '전시체제령'이 발동되어 더 이상 가게를 운영할 수가 없었다.
고향에서 지내다가 다시 상경했다. 가진 돈은 250원. 작은 자본으로 할 수 잇는 사업을 구상하다가 우연히 쌀가게 단골이었던 사람을 만났다. 일본인이 '아도서비스'란 자동차 수리 센터를 매물로 내놓았다며 인수를 권했다. 애프터서비스의 일본식 발음이 아도서비스다.
운송 수단이 달구지에서 자전거, 자전거에서 오토바이, 오토바이에서 자동차로 발전해가고 있는 트렌드를 읽은 그는 전쟁 바람에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화물차가 많아서 자동차 수리업이 괜찮을 것으로 판단했다. 문제는 3,500원의 인수 자금이었다.
그는 쌀가게를 할 때 일고 지내던 오윤근 영감을 찾았다. 그 노인은 정미소를 경영하면서 돈놀이를 하고 있었다. 신용이 좋았던 그는 3천 원을 빌릴 수 있었다. 이 경험은 훗날 '신용이 곧 재산이다. 신용만 있으면 돈은 얼마든지 있다'라는 그의 경영 신조가 된다.
1940년 2월 계약금을 치르고 인수했다. 직원은 50명, 사업은 순조로웠다. 한 달쯤 지난 새벽 밤늦도록 일하다 숙직실에서 혼자 잠을 잣다. 새벽에 세숫물을 데우려고 시너를 붓는 순간 불이 확 옮겨 붙었다.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수리를 의뢰받은 자동차가 불타버리고 외상으로 사 둔 부속품도 잿더미가 되었다. 빚으로 시작한 사업인데 또 다른 빚더미를 안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 오히려 도전정신이 빛을 발했다.
책은 이병철과 구인회의 젊은 시절로 이어간다. 이병철은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2남 2년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흉년이 들어도 1,500 석을 추수하는 부자였다. 아버지는 실패한 혁명가였다. 이 사실은 그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어린 시절은 함 마디로 '중퇴 인생'이다. 보통학교에서 와세다대 전문부 1년 중퇴까지, 여러 학교를 다녓지만 그에겐 졸업장이 하나도 없었다. 부적응의 연속이었다. 용두사미였다. 어떤 일을 시작해도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곧 싫증내는 스타일 대문에 친구도 거의 사귈 수 없었다.
와세다 유학 시절, 이순근이라는 사회주의 학생 운동가와 같은 자취방 룸메이트로 지냈다. 그는 고향집에서 매달 200원이라는 거금을 송금박고 있었다. 이순근은 그에게 학생운동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앗다. 친구 이순근을 통해 '인재제일주의'와 '전문경영인 체제'라는 기회를 얻었다. 이순근은 삼성물산의 지배인으로 임명되었다.
사회주의자 이순근에 대한 그의 신뢰는 사람과 인재에 대한 이병철식 경영철학의 뼈대가 만들어졌다. '의인물용 용인물의 疑人勿用 用人勿疑'가 바로 그것이다. 즉 '의심이 가거든 고용하지 말고, 일단 뽑았으면 의심하지 말고 일을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일찌감치 도입한 것이다. 이순근은 해방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기획부에서 일하다 월북했다.
이병철은 일본유학 2년 만에 또 공부를 포기했다. 각기병을 핑게 삼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 시앗을 들여와 채소도 재배해보고 개량 돼지와 닭도 길러보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무위도식하는 날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남는 게 돈과 시간, 그는 이내 노름에 빠져들었다. 달그림자를 밟으며 귀가하기 일쑤였다. 그는 폐인처럼 5년을 보냈다.
집안이 쇄락해가고 있었다. 한때 천석꾼 소리를 들을 정도로 큰 부자였지만 가세가 기울었다. 구인회의 할아버지는 과거에 급제해 한양에서 홍문관 교리를 지낸 인물로 고종을 가까이 모시면서 일했다. 청일전쟁으로 나라가 혼란해지면서 고향으로 내려와 초야에 몸을 숨겼다.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서 구인회는 여섯 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이 마을에 맨 먼저 터 잡은 이가 바로 허씨 가문이었다. 허씨 집안은 정말 큰 부자였다. 마을에 신식 학문을 가르치는 보통학교가 들어서자 구인회와 이병철은 한 교실에서 앞뒤에 앉아 공부한 적도 있다. 이 학교는 허씨 집안이 기증한 땅에 설립되었다. 구씨와 허씨 집안 아이들은 모두 이 학교에서 공부했다. 두 집안의 평생 동업 관계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혼자 잘나서 위대한 경영자가 되지는 않는다. 개인 위주로 스토리를 보면 그 사람의 재능밖에 보이지 않는다. 개인은 시대와 등지면서 살아갈 수 없다. 시대와 호흡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당시의 시대상을 모르면 그 개인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경영의 신은 패러다임이 변하는 전환기에 사업 기회를 포착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어떤 나라, 그 어떤 시대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올 때마다 기회를 잡은 사람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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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 경영자로서 커다란 명성을 남긴 신화적인 존재 3인방의 경영 인생을 살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넉넉한 집안에서 성장한 분이 있는가 하면 빈궁한 집안에서 성장한 분도 있다.또한 이들 모두는 일제 강점기에 사업을 시작했다는 시대적 상황과 자수성가식으로 불굴의 투지와 용기,도전의식이 강하다는 점이다.
현대의 정주영,삼성의 이병철,LG의 구인회는 개성과 (사업)스타일 모두 다르다.현대의 정주영이 필드형이라고 하면 삼성의 이병철은 관리형이며 LG의 구인회는 창조형이라는 생각이 든다.청소년 시절 몇 번의 가출과 직장 생활을 통해 사업가의 꿈을 키웠던 정주영,학교 생활에 부적응자였던 이병철은 일본 유학 시절 여공애사(女工哀史)를 읽으면서 사업과 복지를 생각했고,천석꾼의 가문이었지만 가세가 기울어지면서 평범한 생활을 했던 구인회는 한 일본인 잡화상을 지켜보면서 석유,잡화 등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이들 모두는 사업이 탄탄대로대로 되지 않는다.실패의 연속이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뚝심과 오기로 딛고 일어나기를 반복한다.일제강점기 말엽부터 해방 이후 이 3인은 본격적인 사업의 사활을 걸고 부단하게 경영 수완을 발휘하게 되는데,정주영은 자동차 수리 센타를 시작으로 토목 사업을 병행하면서 현대 토건(현대건설 전신) 등으로 사업의 다각화,사업의 변신을 거듭해 나간다.이병철은 청과물,건어물,국수 등의 사업을 전개해 가는데 거점은 대구 <삼성상회>에서 시작된다.구인회는 포목(원단)으로 동생과 함께 사업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어제와 같은 오늘,오늘과 같은 내일을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다". 정주영
"가장 위험한 것은 처음부터 실패여지가 있다는 불안을 갖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병철
"남이 안 가는 걸 선택하라.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기반을 닦아야 한다". 구인회
재치있는 유머와 불굴의 용기,도전으로 현대 건설을 모태로 현대중공업,미포조선,현대상선 등의 대기업을 거느렸던 정주영은 120세까지 경영 인생을 살고저 했던 청년 경영인으로 각인된다.삼성상회를 모태로 제일제당,제일모직,삼성전자 등의 대기업을 일구며 철저한 관리자형의 화신으로 남아 있는 이병철,포목업에서 시작하여 플라스틱 제품,화장품,패션,정유 사업으로 명성을 날렸던 인화형의 구인회 이들 모두는 일제강점기,해방 이후,박정희 정권시절(경제개발 5개년 계획 1~4차까지,구인회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2차가 끝날 무렵 작고함) 정권과 마찰과 화해를 번갈아 가면서 위기를 기회로 삼았고 긍정적인 열정으로 오늘의 한국 기업을 일구었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