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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를 통해 본 근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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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끔씩 100여 년 전의 외국인의 조선 여행기를 읽었다. 단순한 관심이다.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른, 그들의 생각과 시각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조선의 민중을 아끼고, 그 저력을 인정하는 책도 있지만, 더럽고, 도무지 가망 없는 조선을 비아냥거리는 책도 있다. 다들 자신의 시각에서, 제한된 경험을 통해 서술했다. 그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통적으로 헐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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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끔씩 100여 년 전의 외국인의 조선 여행기를 읽었다. 단순한 관심이다.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른, 그들의 생각과 시각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조선의 민중을 아끼고, 그 저력을 인정하는 책도 있지만, 더럽고, 도무지 가망 없는 조선을 비아냥거리는 책도 있다. 다들 자신의 시각에서, 제한된 경험을 통해 서술했다. 그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통적으로 헐벗은 산하(山河)를 언급하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이 책에서도 바로 그것을 지적한다).

 

최성락은 그런 개인적인 경험을 통한 근대 조선의 모습 말고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본 근대 조선의 모습을 알아내고자 이코노미스트지를 뒤졌다. 1943년에 창간한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의 잡지이지만 당시부터 전 세계의 상황을 전하고 있었고, 특히 자유주의적 입장이지만, 대단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는 장점이 있다. 최성락은 바로 그 이코노미스트를 통해 근대 조선의 단면을 그리고, 그들의 시각이 우리와 어떤 점이 달랐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를 뒤졌다고 했는데(일본 등에서), 그래서 조선에 관한 자료를 무더기로 찾아낸 것은 아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들의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청이나 일본, 러시아를 다루는 데 곁다리로 가끔씩, 아주 가끔씩 등장하는 경우가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그 작은 실마리를 통해 본 조선의 모습은... 솔직하게 비루하다. 조선 관리의 부정부패야 인정할 수 없다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의지도 없었다는 인식에는 절망적이다. 그러니 한일 강제병합 시 오히려 조선 민중에게는 도움이 될 거라고 쓰지 않았겠는가? 이래도 저래도 폭압적인 정권에 시달릴 바에야 좀 더 근대적인 시스템을 만들어간 일본에게 혜택을 볼 것이라고 봤던 것이다. 물론 그런 시각은 당사자의 시각이 아니니 무시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한일 강제병합 시에 처절한 저항이 없었다.

 

이코노미스트를 통해서 본 조선은, 아니 조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각축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냉정한 세계 질서를 깨닫게 한다. 그러니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도 안중근의 이름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이토 히로부미의 삶만 길게 소개하는 상황이 된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계 정세에 의도적이든, 어쩔 수 없었든 눈을 감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 통치자, 조선 지식인의 실수와 무지를 반복할 수는 없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n*****m 2023.02.13. 신고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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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내용보기
역사는 기록하는 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했던가. 어떤 사실은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로 펼쳐지기도 한다. 한 때 나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외국인들의 눈으로 바라봤던 조선에 대한 책들을 탐독했던 적이 있다. 비숍여사,스웨덴 기자의 책, 고종의 의사였던 독일인 의사의 기록, 독일인 부부의 조선 신혼여행기까지 그 당시 외부인들의 시선으로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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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록하는 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했던가. 어떤 사실은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로 펼쳐지기도 한다. 한 때 나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외국인들의 눈으로 바라봤던 조선에 대한 책들을 탐독했던 적이 있다. 비숍여사,스웨덴 기자의 책, 고종의 의사였던 독일인 의사의 기록, 독일인 부부의 조선 신혼여행기까지 그 당시 외부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 사회는 어땠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서구 열강 중 하나였던 영국 언론인 이코노미스트가 본 근대 조선은 어땠을까? 책을 읽으면서 느낀 바를 간단하게 정리해보려 한다.

 

1. 오페르트

우리나라는 물론 자국에서도 쌍놈 취급받은 오페르트가 조선 정부는 무능하다 욕했지만 조선 자체, 조선인들의 숨겨진 저력이나 국민성 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2. 중개무역

영국과 조선 사이에 중국과 일본의 상인들의 중개무역은 30여년 동안이나 이루어졌다. 물론 그 긴 세월동안 중간에서 엄청난 이득을 취했음은 두 말 할 나위 없다. 예전에도 문득 '우리나라 상인들은 왜 직접 수입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이제서야 새삼스레 아주 간결하고도 명확한 진실을 알았다. '상인들이 마음대로 외국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

쇄국정책에 대해 배웠으면서도 시험에 나오는 부분만 생각했지, 이렇게 연관지어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면직물이 생산되는 멘체스터, 인도의 봄베이에 가는 것이 우리 상인들은 아예 불가능 했던 것이다. 덕분에 중국과 일본 상인들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되었다.

 

3. '조선인들은 무기력하다'

예전에는 이러한 관점을 제국주의 열강이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시선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그러한 부분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는 '관료들의 부정부패'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 우호적인 기록을 남겼던 비숍여사도 처음에는 조선과 조선사람에 대해 비관적이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만주에 여행을 갔을때 그곳에 이주한 조선인들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들은 본국에서와 달리 성실하고 빠릿빠릿함을 자랑했다. 심지어 조선에서 이주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조차도 말이다. 조선에서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관료들이 다 수탈해가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니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거나 빼앗길 뿐이었다. 그리고 대가족사회였던 조선은 관료가 친척을 가두고 인질삼아 돈을 수탈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주에서는 자신이 버는만큼 모두 나의 자산이 되었다. 조선인들 역시 관료만큼 지혜롭고 합리적이었다. 그들은 합리성을 발휘한 결과 아무일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중요한 시기를 맞이했던 구 한말 부정부패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허비하게 되다니... 백년이 넘은 지금에도 안타깝고 통탄스러운 일이다.

 

4. 서양의 동양 시장 개방에 대한 새로운 시각

기존의 시각 : 아시아 국가의 완전한 시장 개방을 목적으로 삼고 그에 따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진행함. 처음부터 완전한 시장개방을 요구하면 엄청난 반발을 받을 수 있음. 따라서 하나 또는 두개의 항구를 먼저 개방한 뒤 점차 늘려가거나 무력을 동원했다.

이코노미스트의 시각 : 군대를 동원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생김->군대 동원에 의한 손해를 메꿀 이권을 요구함-> 또 다른 사건 발생->군대 파견->또 군대 파견에 의해 일어난 손해를 메꿀 이권 요구 따라서 의도적인 시장 개방이 아니었음

이 시각에 입각하여 좀 더 살펴보면 서양은 법치주의가 잘 지켜지고, 서로 정정당당하게 누가 물건을 많이 파는가로 경쟁했지 국가가 개입하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동양은 국가를 개입시키고, 자신들의 룰 대로만 하려고 했다. 그렇기에 서구 열강도 군대를 파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상인들은 정부의 뒷배와 보호를 고수하며,

자신들의 방식을 막무가내로 적용하려 든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의견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으나 서양 열강들의 눈에 보이는 뻔한 꼼수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당시 서구 열강은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좋은 물건을 가져가려고 했을 것이고, 동양권 문화나 감성에 익숙하지 않았으니 그에 대한 반발과 충돌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물건을 팔거나 사길 원한다면 배고픈자가 능력껏 상대를 설득하여 이득을 취하는게 시장 원리가 아닌가? 저들의 항변은 '너네가 너무 막무가내여서 어쩔 수 없었어'같은 알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5. 중국, 이홍장

자존심강한 중국이 왜 문호개방을 했을까? 이에 대한 의문은 학창시절 역사시간에도 가졌던 의문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잘난 것이 자기들이라고 믿는 민족인데, 뭐가 아쉬워서? 물론 서양의 과학 기술 도입의 필요성을 느껴서 일 수도 있지만, 산업혁명 이전에는 동양권이 서양보다 앞선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의 개방 이유는 '이거 먹고 떨어져라'였던 것. '이런 것을 내어줄테니 우리말 잘 들어라'라는 선민의식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부분 때문에 자멸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당시 조선인들이 모두 무식했기에 일본의 침략은 당연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들의 잘못이라면 세계정세에 어두웠고,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는 이들이 너무나 적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일본, 러시아 등 세계 열강들과 인접한 국가로서 "외교"가 가장 중요한 나라인데, 그 당시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배불리기에만 급급했다. 이러한 안일함이 결국 우리가 잘 아는 근대사회를 만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서구열강의 시각에서 쓰였기에 그 한계가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객관적으로 당시 조선과 정세를 살펴볼 수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 않던가 우리는 백 여년 전의 교훈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b*****0 2021.04.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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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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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근대 조선을 바라볼 때, 우리의 역사로서 바라본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 자료들도 우리의 시각이 반영된 결과다. 마찬가지로 근대 조선을 바라본 주위 나라, 일본과 중국에서 발행된 자료들 역시 우리와 이해 관계가 강하게 얽혀 있는 국가의 시각이 투영되어 자신들의 이익을 담은 결과이다. 물론 이 책에서 소개하는 영국 언론지인 ‘이코노미스트’ 또한 제국주의 국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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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우리는 근대 조선을 바라볼 때, 우리의 역사로서 바라본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 자료들도 우리의 시각이 반영된 결과다. 마찬가지로 근대 조선을 바라본 주위 나라, 일본과 중국에서 발행된 자료들 역시 우리와 이해 관계가 강하게 얽혀 있는 국가의 시각이 투영되어 자신들의 이익을 담은 결과이다. 물론 이 책에서 소개하는 영국 언론지인 이코노미스트또한 제국주의 국가의 시점에서 근대 조선을 바라본다. 하지만, 앞선 국가들보다는 근대 조선과 이해관계가 밀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보다 객관적이고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부터 책 속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도 세계에 영향력을 갖는 언론지이며, 우리 역사나 일본 등의 시점이 아닌 제3자에 가까운 나라의 시점에서 바라본 근대 조선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몹시 궁금했다. 당연하게도 이코노미스트라고 해서 완벽히 객관적이지도, 정답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말처럼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을 살았던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조선이 어떤 모습이었는 지에 대한 정보는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옛 우리 나라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이코노미스트에 실렸던 조선에 대한 영어 기사문을 보면서 교과서 속 실린 사진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영문기사와 함께 실린 우리 역사를 바라보게 되는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근대 조선과 달리 더 이상 세계와 고립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 다행스러웠다. 제국주의 국가인 그들의 시점에서 조선은 우선적으로 경제적 가치가 있는 지겠지만, 그 과정을 보면서 무역으로 세계화가 진행되던 시대적 배경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뤘던 것인지 확인하면서 절로 분노가 치밀었다. ‘조선의 수입은 주로 청나라와 일본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수입품 중 상당수는 영구에서 만들어진 뒤 조선으로 다시 수출된 것이다조선의 전근대적 조치들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입게 되는 중계무역으로부터 개항 초기에서부터 식민지배까지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조선은 차라리 외국으로부터 현대적 행정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조선 국민들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씁쓸한 사실이지만 당시 서양인에게 조선 또는 대한제국이 그런 모습으로 바라보였다는 것이 현실이었을 것이다.

 

 글에 들어가기 앞서, 왜 이코노미스틀 통해서 당시 조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을까하는 동기도 구체적으로 작가는 밝히면서, 100여년 전 이코노미스트에서 발행한 기사들을 보면 우리가 중요시 배우고 의미있었던 조선의 사건들이 국내에서만 요란하고 국제적으로는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것,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보다 열강들의 관계 속에서의 조선 등이 중요했다는 사실이었고 이는 한국 사람들이 기존에 조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시각과는 분명히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기사가 객관적으로 진실인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보다 우리 역사에 관해 관점을 달리 할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발견하고 보다 객관적인 우리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코노미스트에서는 서양 제국이 아시아 국가들에게 조금씩 침투해가는 과정을, 동아시아의 전근대적 시스템으로 인해 군대를 동원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의 발생 군대 동원에 따른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더 많은 이권 요구 또 다른 사건 발생 군대 파견 군대 동원에 따른 더 많은 이권 요구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봤다는 점은 사실 제도적 시스템이 완비되어가던 제국주의 국가 시점에서 바라본 지극히 서양인 관점이라는 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신선한 시각이었다. 영국은 외국과 무역 거래를 할 때, 상인을 보호하는 조치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아시아 국가와 무역 거래를 하다보면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다. 그 나라 정부가 상거래에 간섭을 하고 정부가 나서서 영국 상인들을 규제하고 억누르는 사태가 일어나기에 부득이하게 군대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경제규모가 동등하지 않은 국가 간의 자유 무역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며, 이를 막기위해선 국가의 개입이 불가하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자유주의 무역이 득세하던 당시 시절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고, 그들과 같이 우위에 있던 역사의 시점에서 바라본 경험이 없기에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들의 논리는 그들과 힘과 경제가 비슷한 국가 간에서만 적용되었고, 식민지에선 그들의 사업이 손해를 볼 때, 국가가 암암리에 나서서 개입하고 도왔던 게 진실에 보다 가깝지 않을까.

 

 또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의거 이후, 이코노미스트의 기사에서 동양인을 지배하는 일은 그들과 완전히 다른 서양인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서로 비슷하다면 이런 어려움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이 한국인을 지배하는 건, 서양인이 동양인을 지배하는 것만큼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라는 기사의 관점을 보면 당시 영국에선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시선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던 것임을 보여주며 그만큼 제국-식민지의 관계에 무지했다는 것을 보여주며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들의 힘의 논리 뿐만 아니라 무관심까지 느껴지는 듯하여 서글프다.


YES마니아 : 골드 b****4 2019.12.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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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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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실학자이자 역사가였던 유득공 선생은 그의 저작인 발해고를 통해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라는 교훈을 줍니다. 역사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기록자의 주관이 담겨진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록자의 배경에 따라서 같은 사실이 약간씩은 다르게 보이고, 느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역사책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역사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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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실학자이자 역사가였던 유득공 선생은 그의 저작인 발해고를 통해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교훈을 줍니다. 역사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기록자의 주관이 담겨진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록자의 배경에 따라서 같은 사실이 약간씩은 다르게 보이고, 느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역사책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역사는 하나인데, 기록은 다양하고, 그 기록을 다시 또 서술하는 자들에 의해 역사의 사실은 어쩌면 조금씩 왜곡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 서는 새로운 제3자의 시선에서의 조선의 역사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왜곡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부여보다는 새로운 관점에서의 역사서술을 존중하며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책의 제목에서처럼 100년 영국 언론이 본 조선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역사입니다. 특별히 이코노미스트라는 경제잡지가 다루는 조선의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그 기사들을 토대로 주변의 열강들과 조선의 관계, 국제정세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저자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희생양이 되었던 은자의 나라, 조선의 이야기를, 또한 주변 열강들에 치여 국가의 주권을 빼앗겨 버린 조선에 이야기를, 이코노미스트의 시각으로 풀어내며, 신선한 충격과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관점이 많이 부각되고 있으나, 국제 정세나 정치적인 입장에 대해서도 충분한 역사적 안목들이 발견됩니다. 무엇보다 저자가 역사를 사랑하고, 역사적 사실들과 당대에 인물들을 향한 아쉬움이 묻어났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역사를 거울삼아 이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좀 더 밝아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d******t 2019.12.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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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00년 전 영국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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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남연군 묘지 도굴 사건, 일명 오페르트 도굴 사건의 오페르트.<이코노미스트>잡지는 오페르트를 모험가 오페르트라 소개하였다. 무덤 도굴을 시도한 오페르트는 분명 범법자이다. 이것은 조선만이 아니라 서양인의 시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묘지를 파헤치고 시체를 인질로 삼는 행위는 조선처럼 법으로 정해놓지 않더라도 인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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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남연군 묘지 도굴 사건, 일명 오페르트 도굴 사건의 오페르트.

이코노미스트잡지는 오페르트를 모험가 오페르트라 소개하였다. 무덤 도굴을 시도한 오페르트는 분명 범법자이다. 이것은 조선만이 아니라 서양인의 시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묘지를 파헤치고 시체를 인질로 삼는 행위는 조선처럼 법으로 정해놓지 않더라도 인간이라면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짓이다.오페르트는 자신의 견문을 바탕으로 조선에 관한 책을 썼다.오페르트는 조선에 자연 자원이 풍부하다고 소개했는데, 그래서 서양인들은 조선과의 통상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어떻게든 조선에 접근하려 했다. 오페르트가 묘사한 조선의 모습 역시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그는 조선 정부에 대해서는 악감정을 숨기지 않았지만, 조선 그 자체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극찬 일색이었다.조선 사람들은 결코 창의성이나 기량이 부족하지 않으며 능숙한 중국과 일본의 기술자처럼 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교육과 격려가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억압적 정치 체제의 통치를 겪고 인접 국가들과의 교역이 전면적으로 단절되면서 조선에서 산업 정신이 무너진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31~37)

19세기 말은 진정한 세계화 시대였다. 21세기 현재보다 훨씬 더 자유무역이 보편화되었고,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런 세계화 시대에 오직 한 나라가 그 추세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개항 당시 조선은 세계 여러 나라의 관심을 받았다. 결국 일본과 처음으로 통상 조약을 맺기 전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에게도 계속 통상 요구를 받아왔었다. 이렇듯 조선이 세계 각국의 관심의 대상이 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이때 전 세계는 이미 거미줄 같은 통상 망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세계화 된 시대에 오직 한 나라만이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바로 조선이었다. 다른 나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조선은 그 초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조선 땅이 빤히 보이는데도 서양의 여러 국가들은 조선과는 통상을 할 수 없었다. 서양 제국들은 열리지 않는 조선의 문을 계속 두드렸다. 금단의 조선은 그렇게 세계 각국이 도전하는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45)

조선의 운명은 미국, 러시아, 영국, 일본, 청 간의 국제 관계에 달려 있었다. 일본이 한일합방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많은 애를 쓰는 동안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런 것들에 별 관심이 없었다.미국,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적극적으로 막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았다면, 이런 조치가 미국, 영국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러시아에 대해 회의를 베풀었고, 결과적으로 전 세계 최강대국들과 대치되는 길을 걸었다. 조선 조정의 황제와 신하들은 국제 정세에 어두워도 너무 어두웠고, 군신이 일체로 무능했다. 조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영국은 일본과 동맹을 맺었고, 미국은 일본의 한국 침략을 인정해 버렸다. 서양 제국들은 조선이 러시아 한 개국의 편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른 바 세계 최강대국들은 일본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대외정세, 국제 정세 파악이 얼마나 중요하고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1900년을 전후에서 조정의 생각 있는 중신 가운데 한 명이라도 외국의 여러 나라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를 알고 이해했다면, 그리고 제대로 알고 대처했다면 최소한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간혹 서울 출장을 갈 때면, 일을 보고 나서 시간이 되면 꼭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고궁이다. 경복궁과 창경궁. 조선왕조 오백년 왕이 머물면서 나라를 운영하였던 공간. 이곳은 불과 100년전만 하더라도 나와 같은 평민, 서민은 언감생심 들어갈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고궁은 숲과 나무, 정원이 있고 인왕산과 북악산이 인접해 있어서 그나마 서울 도심에서 공기가 맑기 곳에 속한다. 잠시나마 궁궐의 안팎을 거닐면서 도심의 먼지 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다. 궁궐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면서 과연 일제의 침략이 없었다면, 아직도 조선왕조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1900년대 전후 조선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다. 그 시대 유럽의 열강 가운데 한 나라였던 영국은 이역만리의 조선을 어떤 시각을 보았을까? 그 내용이 궁금하다면,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의 일독을 권한다.

d*****h 2019.1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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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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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방 안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네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이나 영국의 유럽 연합 잔류 여부를 묻는 투표에서 탈퇴 찬성표가 더 많았다는 등 한밤중에도 많은 뉴스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과거에는 사람을 통해야 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었는데 제국주의 시대에 유럽 각국이 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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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방 안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네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이나 영국의 유럽 연합 잔류 여부를 묻는 투표에서 탈퇴 찬성표가 더 많았다는 등 한밤중에도 많은 뉴스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과거에는 사람을 통해야 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었는데 제국주의 시대에 유럽 각국이 전세계로 진출하면서 자기 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소식에 대한 요구도 높아졌습니다.

영국에서 발간되는 이코노미스트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데 많은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이 구독하고 있다고 합니다. 1843년에 창간을 하였다고 하는데 벌써 170여년이 넘었네요.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기사의 품질에 대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는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기사들을 통해 100여년 전 조선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홍콩,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여러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해가 지지 않은 나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에 대한 정치, 경제, 문화, 역사, 언어 등 다방면에서 정보가 필요한데 이코노미스트가 이 역할을 담당하였네요. 하지만 조선은 영국인의 시각에서는 중요성이 낮았기 떄문인지 1년에 한두건 기사가 실리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대해 처음 언급되는게 오페르트의 도굴 사건이라고 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서양의 선교사나 상인들이 들어와 교류를 시작하면서 비교적 많은 부분들이 서양에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의 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에 모든게 베일에 쌓인 신비로운 나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무덤을 도굴하려고 했던 오페르트도 아니라 범죄자보다는 모함가로 언급하고 있네요.

이 외에도 관세를 담당한 외국인의 업무 능력에 대한 칭찬, 자국의 궁궐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의 아관파천,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손잡은 일본과의 동맹 내용 등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기사 및 이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우리나라 지배에 대한 기사도 있는데 경제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네요. 우리에게는 비분강개할 일이지만 영국을 포함한 유럽 나라들이 동일하게 다른 나라들을 지배하고 있어서일까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의 대표들이 들어갈 수 없었던 것도 이해가 되네요.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최근 호들은 볼 수 있지만 초창기에 나온 잡지는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일본은 몇 호를 제외하고는 전부 소유놓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하나하나 확인한 저자의 열정이 대단하네요. 유럽 열강의 눈을 통해 우리의 역사적인 상황과 평가를 읽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달의 사락 p***s 2019.12.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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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서양의 근대를 풀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이에 필연적으로 거론하는 단어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제국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제국주의의 성장과 그 과정의 역사에 있어서, 흔히 서양사회는 오늘날까지 계승되는 전통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행정(금융) 시스템을 통하여,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격동적인?) 문화권을 형성한 사실 등을 인식하고 또 자랑하기도 한다. (물론 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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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서양의 근대를 풀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이에 필연적으로 거론하는 단어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제국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제국주의의 성장과 그 과정의 역사에 있어서, 흔히 서양사회는 오늘날까지 계승되는 전통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행정(금융) 시스템을 통하여,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격동적인?) 문화권을 형성한 사실 등을 인식하고 또 자랑하기도 한다. (물론 부끄러워 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와는 반대로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에 이르는 많은 문화권과 민족(국가)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제국주의는 학살과 수탈, 지배라는 부정적인 인식으로 남아 배척되기도 한다. 실제로 각 많은 민족들이 '통상요구'를 거부했고, 또 무력행사에 저항했으며, 또 소위 군대에 맞서 저항하고 점령당하고, 약탈당한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에, 결국 그것에 대하여 증오하는 것을 계승(또는 학습)하는 것 역시!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허나 적어도 이 책 속의 가치관에 따르자면 그 수많은 '저항'에 대한 사실에 있어서, 분명 '지금껏 교육받은 것과는 다른' 어느 생소한 가치관이 드러나는 것 같은 감상을 받게 된다.

물론 여느 국가의 입장에 있어서, 가장 최우선적으로 요구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허나! 결국 그 질문에서 떠나, 공동체 속의 국민으로서 '너무나도 획일적인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조금이나마 한 독자가 있다면? 분명 이 책은 그 의심에 대한 가장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은 내용이 녹아있을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지금껏 배워온 '상식'에 따르자면? 결국 서양의 '개국요구'는 그 나름 침략의 A.B.C 그 과정의 첫 단추에 해당하는 것이다. 물론! 적어도 한반도 '조선' 과 '일본'사이의 역사로 따지면 그 플랜?이 완벽히 작동했기 때문에 이에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자가 참고한 '이코노미스트'의 논리에 따르면, 그 도입과 과정에 있어서 큰 차이점이 발견된다. 때문에 단순하게 '자유시장 경제의 논리로 바라 본 세계정세에 대한 예측'에 따르자면? 결국 '체제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엄격한 신분제와 (문화 사상적)규제를 강제한 '조선'이라는 그 나라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인식이 되어질까?

이에 대하여 당시의 '권위있는 중도언론' 이코노미스트는 그 조선을 두고 많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물론! 이에 비관적인 자원매장량에 대한 기사나 여느 시사성 있는 사건에 대한 기사를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했던 것은 그들이 진단하고 주장한 기사중엔 분명 조선이 가진 가능성에 대한 진단도 있으며, 특히 그 가능성의 성장을 위해서는 조정(조선의 정부)가 가진 낙후되고 부패된 행정력을 쇄신해야 한다는 그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격동의 변화를 가장 우선시 하는 서양과는 그 너무나도 모습이 다른 동양의 나라'

이것이 그 나름 서양사회의 척도와 가치관으로 판단한 당시 '조선의 현실'이였다. 그래서일까? 이에 역사적으로 한일 병합이라는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호의적인 내용을 드러내기도 했다. 보다 큰 효율성, 개선의 여지, 향후 개척될 시장의 규모, 그리고 극동아시아의 정세의 변화... 이에 당사자에 해당하는 '나'는 분명 그 당시의 해석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불편하고 또 불쾌한 마음이 들때가 있다. 때문에 위의 서양의 논리, 이코노미미스트의 사상과 가치관이 오롯이 세계사의 입장에 있어서 '정의'였나? 질문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역사 속에서, 바로 그러한 가치관에 의해 '아편전쟁'이 일어났음을 떠올려보자, 단순히 경제의 논리에 따르자면? 결국 아편이라는 상품이 가져올 '리스크'는 그리 큰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야만'을 겪은 오늘날은 분명 그 리스크에 대한 반성과 개선의 가치가 서로에게 반영된 시대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미 좌충우돌의 충돌을 겪고, 난항을 극복하고, 그 후유증을 감내하면서 '세계화'를 이루었기에, 결국족주의와 자유시장론은 비록 그 성질은 다르지만?로의 균형을 맞추어야 만 '오늘의 세계를 유지 할 수 있는' 균형의 잣대'가 되어버린 만큼!에 한번쯤 국민의 상식을 떠나, 시장의 상식에도 접근하는 것도 (지식을 쌓는 의미에서) 그리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이 된다.

q*******a 2019.12.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