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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각종 권력이 만들어 낸 무수한 장치와 제도, 법규 같은 시스템에 그 어느 때보다 잘 길들여져 살고 있다. 더구나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물질의 풍요와 소비, 향락의 물결은 이러한 시스템에 도취케 하여 마치 자유와 평등에 어떠한 제약이나 폭력성에 노출되지 않은 듯한 착각으로 몰아넣는다. 약삭빠른 이들은 자본과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혹여 권력과 부의 대열에 승차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이 시스템의 강화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것이 마침내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동료, 이웃, 그리고 타인들을 향한 잔혹한 비수인 것을 알지 못한 채.
특히 CCTV, 지도, 명함, 전단, 다이어그램, 주민등록증, 인터넷사이트의 이미지, 이정표 등 시각적 언어들의 조각들을 재료로 하여 지배 시스템이 은폐한 새로운 의미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기획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하겠다.
이러하다보니 전화번호와 메일주소를 필요로 하는 성매매 비즈니스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까지 깊숙이 침투하는가하면, 노출된 개인을 등급화하여 신용점수를 매기고 개인의 정체성을 그들의 잣대로 결정해버린다. 사람들은 이제 시스템이 처 놓은 제한된 그물을 벗어날 수 없다. 그 범주화된 경계 내에서 시스템의 입맛에 맞는 행위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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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보통 눈을 통해서, 즉 '보는' 행위를 통해서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한다. '본다'는 행위는 대상을 '읽는' 행위이자 동시에 대상을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읽고', '느끼는' 것들 그러니까, 우리의 눈을 통해 전달되는 상(像, image)들은 때때로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압도하곤 한다. 그것은 보는 이가 가진 인식 틀-일종의 편견-을 순식간에 깨부수고, 그 너머에 있는, 어떤 ‘전체’, 말 그대로 '존재' 그 자체로서의 본질에 순식간에 다가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들은 대개 영속적이지 않고 일시적이며, 언어로서 결코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에, 타인에게 전달하기 어렵다. 그리고 타인에게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은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 즉 그 의미가 매우 위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온’ 시-공간 속의 이미지들을 어떻게든 설명하기 위해서, 때로는 명확하고 간결한 표현들을 포기해야만 할 때도 있다. 언어는 명확하고 분명한 개념들을 추구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영속된 시공간을 자르고 개념들을 쪼개어 따로 따로 나누어 정의한다. (무지개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무지개의 색깔은 5개인가? 아니면 7개인가?) 즉, 언어는 필연적으로 '전체' ‘존재 그 자체’로서의 세계를 파괴한다. 2. 《이면의 도시》에서 소개되는 작업들은 위에서 언급한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미지가 가져다주는 스펙타클을 또 다른 이미지들의 스펙타클을 통해 재현해내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그 시도는 우리가 ‘언어/관념’를 통해 인식했던,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벌어져 있는 그 물리적 · 관념적 공간들의 틈새들 사이를 잇고-조합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간과했던 여백의 공간들을 보다 강렬한 이미지도 나타낸다. 위와 같은 의도 속에서, 지상으로는 고층빌딩들이, 지하로는 거미줄처럼 이어진 지하철들로 이루어진 콘트리트 도시 서울은 새로운 의미들-또 다른 인식틀을 통해 재구성된다. 촛불집회, 지하철의 지하상가들, 주민등록증, 성매매 등 우리가 간과하거나 금기시했던 도시의 이면은 더욱 강력한 이미지로 노골화됨으로써 오히려 그 모습들이 이 도시의 숨겨져 있던 본질임을 파편적으로(물론 이 작업을 통해서도 우리는 본질에 완전히 다가설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전보다 더 다양한 의미들을 생산한다. 예컨대 이것은 일종의 영구적인 게릴라전이다.) 드러낸다. 그리고 그러한 드러냄은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숨겨진, 그러나 이제는 드러난 것들'의 의미에 대한 사유를 요구한다. 《이면의 도시》가 겨냥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의도적으로 또는 의도하지 않게 숨겨졌던 질문들은 이제 우리 앞으로, 결코 ‘피할 수 없는’ 강력한 이미지로 놓여졌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답을 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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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방문이라곤 휴가 때 동서울터미널과 서울역을 들르는 게 전부였던 지방사람인 나에게 택시 안에서 보는 서울은 환희 그 자체였다. 저 다리, 저 강변, 저 차량행렬, 저 지하철, 저 사람들. 우리 나라에 이런 도시가 있다는 게 참으로 경탄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골목들은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거주민들의 수많은 사연과 역사를 품고 있는, 그 자체로 문화가 되는 그 공간들이 이 도시에서는 왜 이렇게 홀대당하는지 궁금했다.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궁금해지고 있을 때 이 책에게 선택당했다.
감각이란 묘한 것이다. 민감하기 그지없지만 너무나 쉽게 둔감해져 버린다. 모든 걸 다 아는 듯하지만 제대로 아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쉽사리 무뎌지는 감각기관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감각을 다시 날카롭게 벼릴 수 있게 해 준다. 국회의원 선거구별 주소를 보면 자신의 지역구에 집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서울에 집을 소유한 사람은 지역구 의원 244명 중 80명에 달한다. 나라를 위해 멱살잡이도 마다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이 부동산 분야에서는 이토록 수준 이하이다. 이 자료가 아니었으면 그들의 교활한 행태를 어떻게 이리도 구체적으로 개괄할 수 있었을까.
저자들은 날것의 데이터를 잘 익은 자료로 정제해내는데 성공했다. 우리 주변을 떠다니는 자료는 무수히 많지만 그 자료들을 하나로 꿰어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해 내는 건 쉽지 않다. 마음에 품은 주제에 대한 끊임없는 천착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작업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끌어들이는 시각언어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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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디자인으로 보는 사회학. 우선 이런 프로젝트 좋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미술ㅡ디자인ㅡ과 사회적 시선을 합쳐서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들. 통계청의 숫자 데이터. 막대기나 선 그래프로 보던 것들을 조금 더 시각화해서 비교해 보여준다. 비엔날레전시작품같은 느낌의 시각디자인으로 등장한 통계숫자의 진실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비교가된다. 촛불시위대의 숫자별 움직임을 밝기로해서 일자별 비교해본다거나. 서울 지하층(깊이) 변화나 국회의원 자리배치도. 서울 지하상가의 길이면적변화. 텍스트로 아무리설명해뒤도 딱히 ?? 이해가 안될 부분을 그래픽으로 비교해주니 확실히 재미있게 볼 수있다. 언제부터인가 신문도 통겨나. 수치를 그래픽화해서 보여주더니 이제는 우리도 그것에 익숙해졌다. 재미와 흥미가 가득한 시각화된 자료들. 새로운시도로 제작한 책이라 신선한 시도가 느껴졌다. 마지막 성매매특별법 관련 디자인은 너무 복잡해서 집중이 안되었지만 몇몇 시작점의 단어와 최종부분의 단어만 봐도 이해가 되기에 씁쓰름하기도하다. 복잡한 방식들에비해 결국 원하는건 그거니. 이래저래 그래픽이 텍스트보다 많다보니 처음에는 이책 뭐지였지만. 텍스트와 그래픽을 계속 보다보니 이 디자인프로젝트가 기록으로. 시각화하여 남기려는 의도가 마음에 쏙 든다. "혼란스럽게 편재하는 장소와 정보의 가닥들을 더듬거리며 엮어 어려운 이야기의 조각조각을. 정보의 잔재들을 다양한맥락으로 살피고 재현하며 우리의 일상에 암묵적으로 관계하는 것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_분문중에서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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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에서 나오는 책들 중 이 하이브리드 총서 시리즈를 가장 관심깊게 보고 있다. 모든 시리즈를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어떤 책들이 나오는지, 읽게 되는 책들은 어떤 구성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피는 편이다. 그 중 가장 매력있었던 책이 바로 5번 이면의 도시인 것 같다. 아직 안 읽은 책들이 더 많지만. 다른 시리즈들과 비교했을때 좀 더 가벼운 느낌을 많이 받았다. 굉장히 읽기 어려웠다고 기억에 남아있는 사유의 악보부터 하이브리드 시리즈를 읽었는데, 그때 좌절의 기억을 어느 정도 상쇄시켜줄 만큼의 가벼움과 흥미를 만날 수 있었다. 가볍다고 해서 내용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읽기에 편하다고 생각되는 명료한 문장과 이해가 쉬운 용어들로 되어있다는 것을 단지 가볍다고 표현한 것 뿐이다. 이면의 도시 안에 있는 내용들은 각각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사회현상, 문화, 도시 구획, 사건, 유기적이면서 분명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 안에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이 읽는 이의 흥미를 끄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정말 독특한 시도를 통한 자료 제시에 있다. 하이브리드 시리즈가 좋긴 하지만, 지식의 기반이 약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읽기 편한 책은 아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형식으로 자료를 제시해놓은 것을 보면서 몰입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독서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로 재미를 꼽는 개인적 취향이 반영되었다. 책에 다루고 있는 주제들도 한번쯤은, 어쩌면 그 이상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졌을 법한 것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 이상으로 사회와 언론, 여론이 불타올랐던 주제이기도 하다. 네비게이션과 CCTV를 매개로 한 개인정보유출, 공익을 위한다는 말로 포장된 기득권을 위한 보호체계에 대한 현실 인식, 촛불 시위를 통해 바라본 광장, 일견 교통망과 연결된 상권으로 보이지만 사실 대피처의 용도를 가지고 있는 지하상가의 구조, 구제역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정보의 공개와 비공개 완급의 조절 등을 마치 고정된 시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주기 위해 신호를 보내놓듯이 언급하고 있다.
이 색다른 구성 방식과 다양한 주제들은 마치 새로운 놀잇감처럼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이런 시도가 가능했다는 것이 이제와 새삼 놀랍고 재미있다. 하이브리드 시리즈를 읽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부터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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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의 도시, 도시의 이면. 그 사이의 사람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로, 왜 ‘도시의 이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가 대중매체에서 흔히 ~의 이면. 이라는 문구를 자주 접했던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면의 ~는 문맥상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내게는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면이란, 물체의 뒤쪽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뜻한다. 따라서 ‘이면의 도시’는 즉 보이지 않는 도시일 테고, ‘도시의 이면’이란, 도시의 보이지 않는 부분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얼핏 같은 말처럼 느껴지나 해석에 따라 실은 다른 말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라, 보이지 않는 도시와, 도시의 보이지 않는 부분. 전혀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가? 후자는 그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도시의 일부분일 뿐이지만, 전자의 경우, 보이지 않는 그것이 또 하나의 도시가 된다. 즉, 보다 거시적인 의미의 제목을 뜻하게 되는 것이다. 제목 이야기가 좀 길어졌는데, 『이면의 도시』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얇고 가벼운 책이지만 넓고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미처, 아니 감히 상상하지 못한 우리 생활반경의 루트를 도식화하고 구조화시킨 자료들은 실로 새로운 세계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인문학 혹은 사회학 저서가 문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인문학과 사회학의 중심에는 결국 사람을 중심으로 가지를 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더욱 극대화하느냐에 따라 분야가 나눠질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면의 도시』는 GPS와 내비게이션의 등장을 택시 기사들의 운전 역사와 연관 지었고, 나아가 CCTV의 번식을 지식인들의 정치성향과 자본주의 세력의 관계로 확장시켰다.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빤한 논리를 늘어놓을 거라고 짐작했던 내 예상에서 아주 멀리 빗나가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위대의 움직임을 곧 집회의 역사, 집회와 관련되어 새로이 탄생하고 죽음을 맞이한 법안들, 그 안에서 꼼수를 찾는 기득권과 내부의 모순들이 견고하게 엮여 우리의 발끝부터 감아 올라가기 시작한다. 종래에는 지하상가의 이야기로 책의 반 이상을 묶어버렸는데, 나는 지하상가를 들어 ‘어둠의 강을 건너 하데스의 왕국’이라고 설명한 파트가 굉장히 맘에 들었다. 이 파트에서는 유난히 가슴 뭉클한 인문학 저서로 변신한다. 대기업의 멈출 줄 모르는 도시 속의 침투에 경멸하면서도 그 교묘한 미로에 기대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시청 광장의 지하상가 입구는 장장 3.3킬로미터에 일는 서울시 최장 지하 공간의 시작이라는 사실은, 곧 이 책이 제목에서 암시하는, 이면의 도시를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했다. 시청에서 을지로까지 횡으로 잇는 이 지하 공간 또한 세부적으로 도식화한 페이지와 그 곳에서 오랜 업을 이어나가는 이들의 인터뷰는 (씁쓸하게도) 흥미로웠다. 실제로 그 분들조차 지하상가의 끝을 모르고 있는 분이 허다했다. 책을 집필하는 동안의 노력은 둘째 치고 이 한 권의 책을 펴내기 위한 처음의 발상이 얼마나 가치 있는 시도였는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지하‘상가’에서 지하‘세계’로 넘어가는 타이밍은 깜찍하기까지 했다. 위협 받는 개인정보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스팸문자, 그리고 그 어둠의 콘텐츠인 ‘대출’과 ‘성인’의 유통구조를 분석할 줄이야. 마치 별책부록 같았달까? 야무지게 4대강을 언급하며 매듭을 짓는 센스도 출간한 지 1년이나 지났지만 대선을 앞두고 읽으니 더욱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건축학 저서로 느껴지는 책은, 요즘 대선토론에서 볼 수 있는 논점들을 아우르고 있었다. IT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사생활에 미치는 영향, 정치와 자본주의, 지하상가와 지하세계의 상관관계, 그 안에서 핍박 받는 여성과 파괴되어가는 환경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수확물인 셈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맛깔 나는 글 솜씨와 암호를 해독하는 것만큼 생소한 색색깔의 지도는 덤이니,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