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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등학생 시절 나는 아리랑사에서 펴낸 한국소년소녀명작선집의 열렬한 애독자였다. '명랑소설'이라고 불린 최요안의 《남궁동자》와 《개구장이 나일등》, 조흔파의 《얄개전》과 《에너지 선생》, 오영민의 《2미터 선생님》 등은 내가 보고 또 보고 또다시 본 책들이었다. 당시 용돈만 받으면 이들의 책들을 사모으기 위해서 발품을 팔곤 했던 것이다. 어릴 때 좋아한 책들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는 기쁨은 오로지 아는 사람만 누릴 수 있다. 일단 책 보관에 실패한 이들이라면 유년시절에 읽은 책들을 만나볼 수 없을 터, 설령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찾았다 해도 이미 표지와 판본이 바뀌어 당시 자신이 읽던 그 모습 그대로의 맛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일대 영문학자 퍼트리샤 마이어 스펙스의 말대로, 다시 읽기에서 독자들은 어렸을 적의 향수의 편안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 당시 알수 없었던 디테일한 부분의 묘사나 단서들 또한 눈여겨 볼 수 있다.
여기 《2미터 선생님》의 지은이 머릿말을 잠시 옮겨본다.
"이번에 세 작품을 한데 묶어 책으로 내놓는 기쁨과 보람이 크다. '2미터 선생님'은 키가 큰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하여 학교생활을 재미있게 엮은 것으로서 새소년 잡지에 연재할 때 독자들로부터 큰 박수와 많은 성원을 받았다. 이 소설을 읽고 웃고 웃고 또 웃으며 구김없는 마음이 곱게곱게 다져진다면 다행이겠다. 1973년 초 여름 지은이"
내가 무척 재밌게 읽은 이 책이 지금 청소년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이유를 깨닫을 수 있었다. 요새 아이들도 읽곤 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나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등과 비교해 볼 때, 작품성이나 소재면에서 유치한 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이 책을 읽었을 당시에도 좀 유치하다 싶었던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무척 낡았다는 인상을 준다. 공영칠, 신작달, 지방울 등 선생님들 성함부터 송사리, 맹응원, 민들레 등과 같은 학생들 이름들까지 죄다 구식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한편, 시대적인 풍경은 일견 낡았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왠지 모를 과거의 기억을 채록하는 느낌마저 주곤 한다. 가령 응원단장 응원이의 "이겨라, 이겨 이겨 이겨!"라는 응원이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 시장에 가면 커다란 문어를 목에 걸어메고 돌아다니며 그 다리를 가위로 조금씩 잘라 파는 사람"의 목소리를 본딴 것임을 알려준다. 그런 때가 있었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마치 외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요새 아이들은 이 책을 싫어한다 해도 나는 여전히 이 책에 애착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재미나 지식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기억으로 그려낸 추억의 풍경을 진실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끼던 그 책들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으면 아무런 조건 없이 마음을 달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내가 앞서 향수의 안개라고 부른 것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예상치 못한 통찰과, 친숙한 책들에서 우리가 처음 읽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다시 읽기의 가장 심오한 기쁨은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아를 재발견하는 흥분에서 비롯된다." (68쪽)
책을 다시 읽는 행위는 서랍에 넣어두고 잊어버린 빛바랜 기억과 오랜 추억의 편린을 다시금 끄집어내는 일이다. 그러고보니, 《2미터 선생님》과 연관된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초딩시절 나는 김치를 즐겨 먹는 편이 아니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김치를 즐겨 먹는다는 편견을 버려,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김치를 좋아하지 못했다. 하지만, 공영칠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이 김치를 즐겨 먹는다는 이야기나 학교 전체가 다같이 김장을 담아 먹는 이야기를 읽고서 부러 김치에 취미를 붙인 적이 있다. 왜 있지 않은가.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면 입맛이 살아나는 경우. 그래서 맛없어도 맛있는 척하면서 먹는 그런 경우. 아무튼 김치를 괜히 맛나게 먹는 시늉을 하며 바보같이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또한 아이들이 싸온 도시락에 번호를 붙여놓고 제비를 뽑아서 당첨된 도시락을 먹는다는 소설 속 이야기를 실제로 교실에서 한번 해보려고 작심했던 기억도 피어난다. 도시락 바꿔 먹기나 친구들의 반찬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다 같이 먹는 일은 언제나 기분좋은 추억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대목은 겨울날 눈싸움 장면이다. 가뜩이나 이 책을 추운 겨울날에 읽었던 터라 친구들과의 눈싸움과 오버랩되면서 "목련 꽃잎처럼 소담스러운 하얀 눈"이 내리던 운동장에서 집단 눈싸움을 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리리딩》(오브제, 2013)은 '다시 읽기'의 가치를 깊이 있게 알려주는 멋진 책이다. 지금이라도 남녀노소 막론하고, 전에 자기가 재밌게 읽거나 감동깊게 읽은 책들을 다시금 꺼내어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 책을 다시 읽으면서 그 시절의 내 모습과 더불어 변화된 지금의 모습을 모두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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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딩. 제목 그대로 이 책은 다시 읽기에 대한 책으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던 저자가 은
퇴 후 소설 수십 권을 다시 읽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그 결과를 집필한 것이다. 다시 읽기.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읽기란 좀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새로운 읽을거리들이 쏟아지는 요즘에는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언젠가 다시 읽어야지...라는 생각을 드는 책들이 있다. 보통은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들이 대분분이지만 개중에는 한번의 독서로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다시 읽어본다면 처음과는 다른 느낌이 들것이라고 생각되는 책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책속의 내용은
그대로지만 읽는 내가 변화함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다. 책에서도 다시 읽기에 대해 비슷한 정의를
내린다. 하지만 책을 읽기전에는 알지 못했던 다시 읽기의 장점은 생각보다 많다. 그것은 책에서 항상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즐거움과 변화하는 책의 해석을 통해 나 자신도 성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독자들이라면 그 변화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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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까지 ‘다시 읽기’(rereading)를 한 것은 어떤 책들인지 살펴보았습니다. 학생 시절 시험을 위해 교과서들을 다시 읽었고, 「데미안」, 「레미제라블」, 한 두 권의 시집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중 「레미제라블」은 학생 시절 문고판으로 읽고 얼마 전 무삭제판으로 읽은 것이니 엄밀히 ‘다시 읽기’라 할 수 없을 것이네요. 그리고 시험 준비를 위한 교과서 다시 읽기는 주도적인 독서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고 보니 기독교 성서는 몇 번 다시 읽었습니다. 저는 왜 성서를 여러 번 읽었을까요? 그리고 성서를 다시 읽어서 얻은 유익은 무엇이었을까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니 영의 양식으로 자주 읽어야 한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의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여러 번 읽으면서 새로 발견한 내용들도 많았습니다. 또 ‘성서 다시 읽기’를 통해 마음의 평안 혹은 안정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성서 다시 읽기’를 통해 제가 가장 크게 얻은 유익은 아마도 나의 인생관의 변화일 것입니다. 「리리딩」의 저자 퍼트리샤 스팩스는 어린아이들이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떼를 쓰는 것을 예로 들어 ‘다시 읽기’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을 내 놓습니다. ‘다시 읽기’는 안전함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읽음으로 정서적 안전감을 얻습니다. ‘다시 읽기’는 때로 잠을 부르거나 머리를 식히는 도구가 되기도 하죠. 다른 한편으로 ‘다시 읽기’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실상 다시 읽기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책은 그대로 있어도, 그 책을 읽는 독자는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안정과 변화 사이의 역동적 긴장이야말로 다시 읽기의 핵심”(p. 11)입니다. 다산 정약용이 독서에 관해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책을 읽은 후의 나’는 다른 존재이어야 진짜 책읽기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읽기’는 ‘첫 읽기’가 줄 수 없는 그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p. 23). 저자는 어린이 책들, 제인 오스틴의 책들, 여러 시대의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다시 읽는 것에 관해 많은 것들을 말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서 특히 ‘다시 읽기’가 지극히 인간적이며 동시에 위대한 행위임을 느꼈습니다. ‘다시 읽기’를 통해 작품을 좀 더 진지하게 대하게 되고, 그 작품들은 내 삶에 들어와 나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때로는 ‘다시 읽기’를 통해 책에 실망하기도하고 자신에 대해 실망하기도 하겠지만 그 또한 자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생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책은 우리를 만들고, 우리는 책을 만든다”(p. 320)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의 서재에 있는 책들을 휙 둘러봅니다. 어떤 책들을 다시 읽어 볼까요? 책꽂이에 조용히 꽂혀 있는 몇 몇 책들이 손짓합니다. ‘저요. 저요’ 조 녀석들 다시 만나봐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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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읽었던 책은 교과서와 수험서, 그리고 아이들이 읽어 달라고 요청한 그림책과 동화책이 주류를 이룬다. 맘에 드는 시나 경구나 책 속에 발견한 문장 몇 개를 음미하는 차원에서 여러 번 읽은 경험은 있어도 일개 독자로서 특히 소설 장르 중에 다시 읽은 책은 많지 않다. 원전으로 만들어진 영화에 감동을 받거나 새로운 부분을 발견했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그 순간을 복기하게 위해 여전히 갖고 있는 세월의 흔적을 알 수 있는 너덜 너덜해진 문고판 책 몇 권들을 다시 읽었을 뿐 내가 감동받았던 책들 대부분은 다시 읽히지 못한 채 책꽂이에 꽂혀있다. 언제가 다시 읽을지도 모른다는 강박 때문에 버리지 못한 책들이 먼지와 함께 빼곡하게 쌓여있다. 다시 읽은 책조차 텍스트 전부가 아닌 특정 글귀나 특정 페이지에 한해서기 때문에 장서 보관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학창시절의 맹목적인 수동적 다시 읽기에 대한 저항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게 있어 다시 읽기는 낡은 방식이면서 동시에 아주 새로운 읽기 방식이다. 다시 읽기는 전공서적이나 수험서적같이 테스트에 대비한 목적을 두고 수행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하는 읽기 행위이다. 특히 수험생들에겐 여러 권의 책보다 한 권의 책을 다독하고 정독하기를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그런 점에서 전혀 새롭지 않다. 그러나 한 권의 소설을 다시 읽는 독서 방식은 아주 새로운 독서 방식이다. 리리딩(다시읽기)에 대한 저자의 인문학적 고찰이 참 흥미롭다. 내게 있어 다시 읽기는 회피가 아닌 그 책에 대한 적극성인데 저자는 회피, 방종이라는 인문학적 수사를 사용한다. 처음 도입부를 접했을 때 리리딩에 대한 수사학적인 표현들이 많아서 핵심적인 내용에 접근하고 싶어 애가 타기도 했다. 영문학 교수이자 도서광인 저자가 수십 권을 다시 읽는 1년짜리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얻은 결과물을 [다시읽기]로 집필하여 깊이 읽기의 기술을 인문학도의 전문성으로 세밀하게 고찰한 책이라고 하겠다. 그녀가 무수히 많이 읽은 책 중에서 선별한 사례의 영미 소설들은 몇 권들을 제외하곤 태어나서 처음 저자를 통해 알게 되는 생경한 소설들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문학 중에 [오만과 편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도]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반가울 만큼 그 이후에 비평문학으로 등장한 낯선 영미소설들을 작가의 눈으로 함께 읽는다는 건 고문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리리딩에 대한 저자의 문학적 감수성과 섬세하고 날카로운 글들은 평소에 다시 읽기를 통해 어렴풋이 느꼈던 나의 얄팍한 감상(재미,감동에 의한 다시 읽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리리딩의 중요성을 여러 각도에서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한다. 다시 읽기는 곧 누적을 의미한다. 각각의 새로운 반응은 지금까지 누적된 통찰에 보태져 그 책에 대한 지식은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고 이전의 기억에 새 반응을 보태어 진다. 이런 다시 읽기의 과정으로 독자는 처음보다 소설의 많은 측면들을 알아챈다. 소설은 내게 행동의 모델을 제공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나의 이상을 형성하고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같은 이야기, 같은 문장, 같은 인물들을 거듭 만나면서 생기는 반복과 강화는 독자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내면화 할 수 있게 하고 소설을 독자의 일부로 변화시킨다. - 314p 인용 안정과 변화 사이의 역동적인 긴장이야말로 다시 읽기의 핵심이다. -본문 인용 독서광인 저자는 3살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해서 6살 때 읽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셀 수 없이 많이 읽었다고 한다. 학창시절에 활동하지 않고 지나치게 책에 몰입하여 시력을 상실할까 걱정해서 책을 하루에 한 권만으로 제한한 부모 때문에 제일 두꺼운 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젊은 시절 책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집착과 애정이 곳곳에 느껴진다. 아동들을 위한 문고판 책으로 번역된 존 테니얼의 그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어릴 때 그 우스꽝스런 사건과 말이 되지 않는 엉뚱한 시를 보며 배꼽을 잡았던 기억이 난다. 후에 성인이 되어 다시 읽어 보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언어적 유희는 내게 매우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 주었고 이 책에 대한 별도의 두꺼운 해석에 대한 책까지 나와있음을 통해 이 책의 인기를 실감하게 된다. 아동과 성인 모두 사랑을 받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저자는 주인공 앨리스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바라본다. “같은 책을 두 번째 읽을 때 예전만큼 재미있지 않은 것은 뇌가 평생 동안 변화하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처음 그 책을 읽었던 사람과 문자 그대로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한다.- 316p 지금 내가 의미를 둔 책들이나 별다른 감흥을 갖지 못했던 책들이 다시 읽을 때 이전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책을 모으고 버릴 수 없게 한다. 이 책에선 어떤 책을 다시 읽을 것인지 제시하지 않는다. 전문가의 지침은 내가 저지를 실수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적이고 매력적인데 저자가 다시 읽기를 위해 선별한 책들에 대한 비평을 통해 텍스트 대한 반응은 같은 책을 다른 시기에 읽은 개인도 다 다르기에 무의미함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다양한 책읽기 유형을 통해 다시 읽기라는 독서행위가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구체적 체험을 보여준다. 한편, 오락거리(TV, 인터넷, 휴대폰 각종 미디어 매체)가 많은 현대인들에게 낡지만 새로운 책읽기 방식인 다시 읽기가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인문학 비평에 종사하는 직업적인 전문가나 혹은 애서가가 아니라면 다시 읽기는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바쁜 현대인들에겐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주기적으로 신상품들이 쏟아지고 계속 새로운 것을 욕망하는 현대인들에게 다시 읽기에 대한 자기만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한편 이 책에 대한 아쉬움도 많다. 이 책에 소개된 19 20세기 영미 소설들의 작가와 제목을 치면 국내 유명 서점에서 조회조차 되는 책과 작가는 대부분이다. 한국에서 평생 접해보기 힘든 책을 저자가 자세히 비평했기에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이 아니면 어디서 접하겠는가? 그러나 이 또한 리리딩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텍스트 다시 읽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데 그 인용 책이 한국 독자들은 제목 조차 들어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포인튼의 전리품], [금발의 공주], [아일랜디아]는 국내에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 아놀드 베넷은 1차 대전 전후의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지만 우리나라에선 시간관리에 대한 책들이 주로 출판되었고 별로 인지도도 낮은 작가이다. 그리고 국내에 출판되었어도 판매지수가 대체로 300~400정도의 저조함을 보인다. 오만과 편견은 국내에서도 경이롭게 판매지수가 5만이 넘으니 참 대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미문학을 전공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읽기 힘든 영미소설이 리리딩의 비평서로 대부문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 일반 독자들 입장에선 많이 난감하다. 방대한 플롯과 복잡한 인물들간의 관계와 갈등, 숨겨진 주제와 상징들을 찾는 것은 내게 너무도 어려워 기피 대상 책이 소설인데, 소설의 다시 읽기를 통해 크고 작은 발견의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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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량이 늘어나면서 속독에 관심을 갖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책을 빠르게 읽는데 집착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독서를 하고나니 어느 순간 책을 읽는 깊이가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때로는 책의 느낌만 기억할 뿐 내용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천천히 읽기 좋은 고전문학과 기존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느낌이 좋았던 책들을 위주로 다시 읽어보고 있다. 자기계발서나 인문서도 다시 읽었을 때 또 다른 감흥과 지혜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다시 읽었을 때 느낌의 격차가 좀 더 강하고 때로는 새로운 지적 유희까지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소설 쪽이었다. 특히 고전문학은 그 느낌이 더 강했다. 고전소설 중에는 젊은 시절 너무 길고 지루해서 유난히 힘들게 읽었던 소설이 몇 편 있는데, 신기하게도 수년이 지나 읽었을 때 느낌은 전혀 딴판이었다. 재미는 물론 내용에 대한 강한 인상까지 남겼고 삶에 대한 통찰도 얻을 수 있었다. 이렇듯 과거에 읽었던 책의 느낌이 시간이 흐른 지금 읽었을 때 남다르게 와 닿는 책이 분명 적지 않았다. 개인적인 삶의 경험과 성장이 반영되어 과거에 읽었던 책의 느낌이 이후에 다시 읽었을 때와는 달라지기 때문에 과거에는 몰랐던 새로운 깨달음과 앎을 얻기도 한다. 한편으로 그 책을 읽었던 과거의 감상이 떠오르면서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과 추억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같은 책을 열 번 이상, 수십 번 읽게 되면 내용적인 분석을 넘어 캐릭터와 구성을 분리해내고 저자의 가치관과 심상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영문학 교수이자 열정적인 독서가인 저자가 ‘다시 읽기’를 통해서 발견한 독서의 본질적인 고찰이자 ‘다시 읽기’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하루에도 수백 권씩 신간이 쏟아져 나오고 새롭게 읽어야할 책들이 쌓여가는 현실에서 자신을 비롯하여 많은 독서가들이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는 이유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 이 의문을 시작으로 나온 결과물이 이 책이다. 그녀는 은퇴 이후에 50~70년대 소설 중 수십 권을 정하여 다시 읽는 1년짜리 프로젝트를 계획하여 실천했고, 이 책에 그 경험과 사유를 담아냈다. 그녀는 과거의 자아를 다시 찾는 것이 다시 읽기의 매력 중에 하나인 만큼 다시 읽는 프로젝트의 시작점으로 어린이 책을 선택했다. 저자가 수십 번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납치’에 대한 어린 시절 감상과 배경, 이후 성인이 되어 펼쳤을 때의 감흥 등을 통해서 소설이 자신의 자아에 미쳤던 영향을 분석했다.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제인 오스틴의 소설인 ‘오만과 편견’, ‘에마’ 등에서부터 1950~1970년대의 다양한 소설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각 소설에서 다시 읽기를 통해서 느꼈던 감상적인 포인트와 변화, 다양한 통찰에 대해서 분석하며 독자들과 사유를 나눈다. 특히 ‘순수한 즐거움과 직업을 위한 다시 읽기, 누구나 좋아해야만 하는 책, 남몰래 좋아하는 책, 함께 읽는 책’을 다루는 단락은 저자가 읽은 책을 기준으로 한 사유를 바탕으로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흥미로웠다. 다시 읽기를 하다보면 한때 간과했던 풍경이 새롭게 보이고, 이해할 수 없던 인물의 성격이 분명해지며,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다시 읽기는 과거를 인식하게 하고 그런 인식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준다. 다시 읽기가 제공하는 즐거움은 다시 읽기가 주는 통찰만큼이나 다양하다. 자아에 대한 관점과 통찰은 다시 읽기의 또 다른 선물이다. 다시 읽기는 누적된 사유를 통해서 책을 읽을 때마다 또 다른 많은 측면들을 찾아내게 한다. 그렇게 얻은 각각의 새로운 반응은 지금까지 누적된 통찰에 보태지고 그 책에 대한 지식은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게 된다.
개인적으로 독서를 좋아하다보니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다시 읽는 독자가 많다고 하니, 그런 면에서 신간을 자주 찾아 읽고 다시 읽기에 게으른 나는 아직은 열정적인 독서가는 아닌 듯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다시 읽기를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전문학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왜 저마다 고전을 강조하는지 조금은 알기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서 많은 부분 공감했던 것 역시 고전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 느꼈던 개인적인 느낌과 상통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아쉬웠던 것은 저자가 읽고 소개했던 책들의 일부만 빼고 많은 책들이 아직 내가 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가 이미 읽었던 책들이었다면 저자의 사유에 흠뻑 빠져서 좀 더 공감하고 통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저자가 읽었던 책들을 하나씩 찾아서 접해보고 이후에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개인적으로도 재미있는 독서가 될 듯싶다. 이 책은 독서법에 하나인 ‘다시 읽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매력을 책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풍부하게 풀어냈다. 덕분에 그동안 쉽게 실천하지 못했던 ‘다시 읽기’에 대한 실천을 좀 더 수월하게 지속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고, 읽어보고 싶은 책들에 대한 추가적인 선별을 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다시 읽기’라는 측면에서 초보 독서가들에게는 저자의 사유가 쉽게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독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좀 더 추천해주고 싶다. 이 책을 통해서 좀 더 유익하고 지적인 독서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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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깊이 읽기의 기술 리리딩: 리리딩>의 읽기가 추구하는 바는 다시 읽기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읽어보자는 것이다. <리리딩>은 과거와 현재.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은 같지만,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쌓아올린 역사, 문화, 지역사회에 대한 지식의 성장과 변화를 통하여 책의 감상을 다르게 하고 새롭게 만든다는 것이 핵심이다.
2. 독자 가운데는 소박한 성향의 독자와 성찰하는 성향을 가진 독자가 있다고 했다. 소박함과 성찰하는 특성을 고루 갖추어 균형을 유지하는 독자가 훌륭한 독자라고 했다. 누가 그랬냐면 오르한 파묵이 그랬다. 그리고 제인 오스틴은 이것을 이성과 감성. 문명과 감정에 대한 균형으로 설명했다.
<리리딩>.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텍스트는 독자와 친밀해진다. 그리하여 주어진 텍스트를 읽으려 애를 쓰지 않아도, 억지로 이해하려 애를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에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이 자연스러움은 아주 소박한 성질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리리딩>은 소박한 읽기를 말하는 책인 것 같다.
그런데 또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다시 읽기는 깊이 읽기라고도 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친밀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은 맞다. 그런데 그 친밀함을 통하여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작가가 쓴 책의 문장의 숨겨진 뜻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책을 더 많이 읽으면 문장을 뛰어넘어. 단어 하나를 읽으면서도 새로운 생각과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하여 리리딩의 결과물은 엄청난 성찰을 통해 일궈낸 글처럼 고차원적인 사유가 숨 쉬고 있는 성질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소박한 마음으로 나에게 익숙하고 재미있는 책을 읽었을 뿐인데, 그 책을 반복해서 읽다 보니 성찰적인 결과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3. 안락하고 편안하고 재미있어서 계속해서 그 책을 읽었더니 안 보이던 것이 계속해서 보이더라. 그것이 뭐냐면.... 솰라솰라. 이런 결과물들을 퍼트리샤 마이어 스펙스는 <리리딩>을 통하여 공개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도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와 마찬가지로 작가가 평생 읽어낸 결과물을 담아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리리딩>은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처럼 전체를 다루는 과정은 살짝 생략하고, 온전히 리리딩에 의해 우려낸 이야기들만 설명한다. 그러므로 소박함의 행위는 생략되고(그것은 이미 작가가 해낸 상태고), 성찰적인 결과만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다루는 책의 핵심으로 곧바로 파고들어 간다는 인상이 짙었다. 그리하여 <리리딩>은 책을 다시 읽자는 권유에 관한 목적과 유용성으로 시작했지만 그 목적의 결과는 내면의 울림을 담아내는 형태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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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마이어 스펙스는 예일대학교 20여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온 영문학 교수이자 열렬한 독서가이다. 그녀는 은퇴를 하면서 자신이 어린시절부터 읽었던 책들에서 다시 읽고 싶은 작품을 골라 읽는 1년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책을 다시 읽음으로서 책을 깊이 읽을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속에서 얼마나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지를 담아낸 책이 바로 리리딩이다. 사실 풍부한 지식과 지혜가 담겨있는 책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On Re-reading.. 영문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한글제목으로 바꾸었으면 어땠을가 하는 생각이 조금 들기는 한다.
![]() 새로 나오는 책들에 늘 열광하긴 하지만.. 어린시절부터 나는 다시 읽는 것에 꽤 익숙했다.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고전과 은하영웅전설, 토지와 조정래님의 삼부작, 그리고 로빈쿡의 책 등등.. 아빠와 내가 좋아하는 책은 상당히 겹치는 편이였고 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겨하는 아빠와 어울리기 위해서는 다시 읽는 것은 기본이였다. 삼국지의 '유비'와 은하영웅전설의 '얀웬리'를 좋게 보지 않는 나는.. 지금까지도.. 그 두인물의 매력을 찾기 위해 그 책들을 다시 읽어보곤 한다. 읽을때면 나의 정체성의 변화를 느끼는 것은 조금 힘들고.. 아마 즐거움이 가장 클 것이다. 여전히 날 설레이게 하는 장면들은 그대로이고.. 그 장을 향해 나아갈때면 지금도 어렸을때처럼 두근두근 하기 때문이다. 제인오스틴을 비롯하여 여러작가의 작품에 심오한 해설이 담겨져 있는 책이지만.. 의외로 나에게 인상깊었던 것은 어린이책을 다시 읽는 어른이라는 부분이였다. 어린시절 읽었던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가 다시 읽고 싶어졌지만, 제목이 기억이 안나 열심히 검색한 끝에 그 책들을 다시 손에 쥐었던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읽었던 책을 읽는건 확실히 특별한 경험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읽고 싶은 작품이 얼마나 많던지.. 그리고 그녀의 다시 읽기를 통해 볼수있었던 행간의 이야기들을 채워나가며 읽는다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읽을수 있을거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나도 다독을 조금 줄이고.. 다시 읽기를 통해서 나만의 책읽기를 만들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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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Re-reading’….. 깊이 읽기의 기술 근래에 시간을 잊게 만들어준 책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성격 탓도 있겠지만 이전에 한 번 경험한 것을 다시 반복해서 하는 것은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타의가 아닌 자의로 하기란…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독서를 주제로 하기에 더욱 관심이 컸다. 책을 읽기 전 과연 지금까지 내가 어떤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가? 만일 읽었다면 어떠한 기분으로 그렇게 읽었을까? 라는 생각을 문득 하였다. 유년시절부터 자라온 환경 탓도 있겠지만 책은 항상 주위에 있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책들을 읽었었다. 그 중에서도 삼국지, 수호지 등등 영웅과 역사에 관련된 책들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리고 술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먹게 된 나이 이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필두로 일본 문학을 주로 일었던 것이 기억났다. 이 책들은 이미 머리 속에 모든 줄거리가 들어 있으며, 삼국지 같은 경우는 몇 권에 어떤 내용이 있을거라는 것을 알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한 책들을 다시 읽게 만든 동기는 무엇보다 재미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함이었다고 지금 생각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읽었던 책 중 하나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예를 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린시절 그 책을 읽게 된 배경과 글을 읽는 주체가 성장함에 따라 읽혀지는 입장인 책이라는 객체는 그대로지만 주체의 여러가지 변화에 따라 책은 다르게 다가온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는 설명이라고 생각된다. 책이라는 한정된 분야가 아닐지라도 영화나 드라마, 어린 시절 자라온 동네 등등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게 되면 아련한 향수나 그리움, 편안함 등을 누구나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어떤 노래를 들을 때도 그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며 당시의 기분도 되살아 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끼던 그 책들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으면 아무런 조건 없이 마음을 달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내가 앞서 향수의 안개라고 부른 것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예상치 못한 통찰과, 친숙한 책들에서 우리가 처음 읽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다시 읽기의 가장 심오한 기쁨은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아를 재발견하는 흥분에서 비롯된다." 나 또한 심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위안과 향수, 편안함… 그리고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르게 다가올 때 느껴지는 일말의 당혹감과 예상치 못한 발견에 대한 작은 기쁨들.
모든 행위의 주체는 나 자신이다. 어떠한 것을 하는 것도 나이며, 어떤 행위나 결과에 대해 느껴지는 모든 것들도 나의 몫이다. 같은 것일지라도 그 당시의 나의 심리상황, 주변 환경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책이라는 것을 끝까지 읽는 것에만 몰두해왔고 내가 처음 느낀 부분이 전부라고 판단해왔던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비단 책뿐만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며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를 깊게 알려고 하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여 나에게 맞는 사람들만을 가려가면 만나왔던 나의 모습들. 그 사람의 지금까지의 인생에 대해 내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부분을 간과해가며 조금은 성급하게 판단하고 대해왔던 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었다.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배웠던 도돌이표라는 것이 생각났다. 음악에서도 강조, 전체적인 흐름에 따라 같은 부분을 다시 하기도 한다. 모든
책을 다시 읽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머리와 마음에 남아있는 책들을 Re-reading 하는 것도 그 책의 흐름상 완벽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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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누는 것은 굉장히 큰 지적 즐거움이다.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비교해 볼 수 있고, 책을 이해하는 방법이 다른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우칠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책들은 형식적인 면에서는 딱딱할 수 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극장의 액션 영화와 같은 흥미를 주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리리딩 : 깊이 읽기의 기술’은 내게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내가 읽었던 책과 저자가 읽었던 책 간의 교집합이 별로 없는 관계로 생각보다 싱거운 책읽기가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제목조차 생소한 영미 소설이었고, 그나마 알고 있는 책들도 제목과 간략한 내용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저자의 생각과 내 생각을 비교하면서 읽었던 부분은 ‘1950년대의 책’에 나온 ‘호밀밭의 파수꾼’이 유일하였다. 물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나 ‘나니아 연대기’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지만, 내가 직접 읽은 책이 아닌 관계로 아는 척하기에는 심적 부담감이 너무 컸다. 결국 이 책에서 내가 얻을 수 있었던 내용은 미국 영문과 교수의 독서 방법에 한정되었고,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은 호밀밭의 파수꾼 부분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저자의 평을 들으면서 나도 내가 예전에 읽었던 느낌을 되살려 볼 수 있었다. 내가 호밀밭의 파수꾼은 읽은 지는 10년도 더 되었다. 당시에는 책 내용은 모르고 유명한 고전이니 한 번 읽어보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호밀밭의 파수꾼 내용을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책을 읽는 것은 척 유쾌하지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욕설들을 참고 읽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용 자체로만 보면 이게 무슨 고전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호밀밭의 파수꾼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1950년대 미국의 미국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카시 시대에 대한 분노가 한 학생의 내면적 욕지거리로 표출되고, 그것에 공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기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고전이 될 수 있었다. 만일 당시의 시대 상황이 자유롭고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였다면 호밀밭의 파수꾼은 유명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관해서 내가 했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어느 정도 일치했다는 점에서 해당 부분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부분들은 책도 저자도 생소한 부분이 많아 별다른 흥미를 못 느낀 것이 사실이다. 제인 오스틴도 읽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영미 소설을 읽고 공감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서 제인 오스틴이나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읽어보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점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