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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소중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소중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 내용보기
시간이 되면 딸과 함께 유럽 여행을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늘 그립고 함께하지 못해 아쉬워서다. 딸과 단둘이 하는 여행은 굉장한 즐거움을 줄거라 여기는데 아마도 그건 내 생각 뿐일 지도 모른다. 무조건 좋을 것 같지만 여행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딸은 엄마를 위해 많은 걸 준비했을테고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다는 생각이 크지만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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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되면 딸과 함께 유럽 여행을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늘 그립고 함께하지 못해 아쉬워서다. 딸과 단둘이 하는 여행은 굉장한 즐거움을 줄거라 여기는데 아마도 그건 내 생각 뿐일 지도 모른다. 무조건 좋을 것 같지만 여행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딸은 엄마를 위해 많은 걸 준비했을테고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다는 생각이 크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은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엄마의 입장에서 소설의 한 꼭지를 읽으며 엄마가 좀 딸의 요구를 들어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네 명인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곤 한다. 시간이 되는대로 일정에 맞는 나라에서 함께 자고 함께 먹고 마시며 그 시간을 즐긴다. 올해에도 벌써 다른 나라를 향해 떠났을텐데 코로나 때문에 모든 하늘길이 막혀 아쉬울 뿐이다. 


백수린 작가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물론 젊은 작가상에서 혹은 다른 책에서 읽은 적은 있지만 백수린 작가만으로 된 책은 읽은 기억이 없다는 거다. 마음산책의 짧은소설 시리즈는 이기호 작가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느낌이 상당히 좋다. 마치 에세이를 읽듯 무난하게 읽히며 소설 속 상황들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총 13편의 짧은 소설이 수록되어 있고 주정아 작가의 그림이 삽입되어 소설의 내용을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든다. 작가가 말하길, '나는 오랫동안 나의 소설 작업이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일과 닮았다고 생각하곤 했다. 내가 언어로 그린 그림이 진짜 그림으로 재탄생되는 것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근사한 일이었다.' 했다. 언어로 그린 그림은 우리의 삶을 대변한다. 주변에서 보았음직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나타나 익숙한 느낌을 준다. 


결혼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의 시선을 느끼는 것처럼 짜릿함이 또 있을까. 「어느 멋진 날」에서는 아이와 함께 바닷가 파라솔에 누워 책을 보는 한 여자를 비춘다. 한 남자의 시선을 느끼는데 그는 자신의 발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그 시선을 무심코 즐기는 한 여자의 마음에서 설렘을 느꼈다. 그는 여자에게 발이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그와 짧은 대화를 하며 여자는 얼마나 설렜을까. 자기에게 아름답다는 표현을 해주는 사람이 이제는 드물 듯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더위나 추위를 피해 도서관이나 은행 등에 가곤 한다. 아마 집에서 공항이 가깝다면 공항처럼 더위나 추위를 피하는데 좋은 장소도 없다. 휴가 기간,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전기세 때문에 잘 때만 켜기로 약속한 진우와 주희는 휴가기간에 공항으로 향한다. 냉방이 잘된 공항에서 음식을 먹고 각자의 노트북을 챙겨 테이블에 앉아 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주희는 문득 어렸을때 아빠와 떠났던 어느 여름 휴가를 떠올렸다. 텐트 사이로 멀리 보이는 바다에서 머리를 내밀고 수영하는 아빠를 바라보는 마음. 이거야 말로  「완벽한 휴가」가 아닌가. 


첫 문단에서도 밝혔지만   「비포 선라이즈」는 딸이 엄마를 위해 기획한 프랑스 파리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를 위해 여행 계획을 세웠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엄마가 좋아했던 영화  「남과 여」에서처럼 해주고 싶었으나 파리의 에펠탑도 줄서서 기다리느니 그 앞에서 사진만 찍고 가자고 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절대 저런 엄마가 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여행 준비를 위해 얼마나 애를 썼겠는가. 그저 딸이 하자는 대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행복한 여행이란 멀리있지 않다. 낯선 도시에서 함께 해 지는 석양을 함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 일도 없는 밤」에서는 간병인으로 일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강설량이 최대치로 오른 날 주인공이 돌보고 있는 노인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다. 보호자들에게 연락했으나 폭설 때문에 노인은 홀로 죽어가고 있었다. 노인에게 무심했던 여자는 혼자 죽어가고 있는 노인에게 조금만 참으라며,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라고 귓가에 속삭였다. 




소설들은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인다. 죽어가는 노인과 그를 돌보는 간병인, 아이를 가진 나이 어린 부모, 예쁘다며 키스 한 번만 하자고 조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바라보는 한 남자의 시선. 일본어를 배우며 사귀게 된 남자와 5년후 다시 한번 도쿄를 여행하게 되는 연인들의 모습들. 아내가 죽고 딸이 살고 있는 프랑스로 오게 되는 여정을 말하는 글들. 본인은 아무리 젊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나 우리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모습에서 세대 간의 격차를 느끼게 된다.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우리 주변의 삶을 엿보게 한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으며 다양한 삶을,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여기게 된다.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이렇듯 우리가 겪지 않았다고 해서 모르는 채로 있다면 삶은 얼마나 단순하겠는가. 


#오늘밤은사라지지말아요  #백수린  #마음산책  #주정아  #짧은소설  #소설추천  #책추천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20.04.16. 신고 공감 1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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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더듬고 싶은 오늘이 될...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언젠가 더듬고 싶은 오늘이 될...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내용보기
누구나 과거를 뒤로하고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는 밤.실패보다는 희망을 말하는 밤.누군가에게는 과오를 덮어줄 축복처럼,위로처럼 눈송이가 내리는 밤. (5페이지)짧은 단편 속의 이들에게 공감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 어쩌면 나와 다르지 않을 일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처받고 아픈 시간을 보내는 상실의 감각을 드러낸다. 언제나 그 시간의 끝은
"언젠가 더듬고 싶은 오늘이 될...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내용보기


누구나 과거를 뒤로하고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는 밤.

실패보다는 희망을 말하는 밤.

누군가에게는 과오를 덮어줄 축복처럼,

위로처럼 눈송이가 내리는 밤. (5페이지)


짧은 단편 속의 이들에게 공감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 어쩌면 나와 다르지 않을 일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처받고 아픈 시간을 보내는 상실의 감각을 드러낸다. 언제나 그 시간의 끝은 있고, 오지 말라고 밀어내고 붙잡아도 기어코 우리 앞에 다가오고야 마는 순간은 또 묵묵히 받아들여야 할 운명 같다. 그러다가도 문득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순간을 불러온다. 알게 모르게 잊고, 잃고 살아왔던 것들. 현실에 치여서, 겁나고 무서워서 포기하던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꺼내게 한다. 무심하고 무뎌지려 애쓰던 감각들이 되살아날 때마다 조금씩 두근거리는 가슴.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보다 하고 걸어왔는데, 어느 날 문득 멈췄을 때 비치는 지나온 시간이 인생의 또 다른 길을 열어주는 건 아닐까 기대가 생기기도 하는 나날.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더 시선이 머무는 이유다.


대학교 행정조교로 일하는 여자는 오늘의 삶이 불안하다. 언제나 꾸었던 꿈은 항상 궤도수정을 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애인과의 관계도 위태롭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그녀의 시간이 맞는 건가 싶으면서도 선뜻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도 못하는 일상. 언제까지 이런 삶이 계속될까 궁금하면서, 걱정과 근심이 앞서는 오늘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옳은 걸까? 「언제나 해피엔딩」의 주인공은 박 선생의 한 마디에 기운을 얻는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불행한 시간이 아닌 오늘 여기에 집중하며, 그래도 다른 의미가 있는 인생을 걸어가는 희망을 품는다. 그래, 괜찮겠지, 괜찮아지겠지, 나아지겠지. 우리가 오늘의 불안을 안고 살며 언제나 외우는 주문을 여기서도 본다. 어쩜 이렇게 비슷한 인생들인지, 안쓰러우면서 안도한다. 이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위로받는 기분이다.


칼칼한 바람이 부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상준은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해 생각할 조금의 여유마저 우리에게서 박탈하는 것은 대체 무얼까 생각했다. 우리로 하여금 끝내 자신의 고통에만 골몰하게 만드는 그것은. (중략) 이 세계는 사람들을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고 끊임없이 비참하게 만들며 타인에게 잔인해지도록 종용하지만, 이런 세계에 살더라도 그가 아내에게 주고 싶은 것은 오직 사랑뿐이니까. (101~102, 누구에게나 필요한 비치 타올)


공항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지만, 정작 그곳에 사는 동안 공항에 가본 적은 없다. 「완벽한 휴가」의 주인공은 주변 사람들에게 공항 가까운 곳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여행을 자주 갈 거로 여겨지지만, 그들에게 공항은 언제나 계획에만 있는 장소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던 탓일까. 그런 이들이 어느 날 공항으로 향한다. 어딘가로 떠나기 위함이 아닌, 말 그대로 공항에 다녀오기 위한 목적이다. 여름휴가 기간이었다. 폭염이 기승이었고 전기세를 아끼고자 에어컨도 쉽게 틀지 못한 나날. 그들은 공항에서 휴일을 지낸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각자의 일을 하고, 공항 안에서 음식을 먹는다. 시원한 곳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여름의 더위를 식히는 일이 괜찮은 것 같으면서 여자는 어릴 적 아빠의 모습을 떠올린다. 기억하지 못하고 지냈던 어떤 날 속의 아빠는 그리움이자 애틋함이다. 공항에서의 휴가는 완벽한 날이었다. 비슷한 느낌으로 「어느 멋진 날」은 더운 날의 해변에서 마주친 한 남자의 시선이었다. 여자는 기혼이었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책장을 넘기던 그때 무심코 마주친 시선. 남자는 여자의 치마 밖으로 나온 발을 보고 있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여자는 묻지 않았다. 대신, 남자와 가벼운 몇 마디를 나누었을 뿐이다. 남자는 여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말했고, 그때부터 여자는 자기 발에 신경이 쓰인다. 은근히 설레면서 자기 발을 바라본다. 언제였던가, 자기에게 아름다움을 말해주거나 그런 시선을 보낸 사람이 있었던 게. 낯선 곳에서의 낭만 같은 느낌으로 여자는 그날을 기억한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혼자만 오래 간직하고 싶은 수줍은 추억으로 말이다.


「참담한 빛」의 어린 부부는 배 속에 아이를 품고 침몰하는 배의 뉴스를 듣는다. 처음 아이를 갖고 아이를 잘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용기는 배의 침몰 소식에 불안이 앞선다. 그러면서도 희망이 기적이라는, 희망이 불처럼 번진다는 말에 또 한 번 용기를 낸다. 부모가 된다는 건, 이 세상 살아가는 걸음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다짐 같은 게 아닐까. 우리가 어떻게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자라며, 또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가는지 그 시작을 보는 듯하다. 마지막 단편이었던 「아무 일도 없던 밤」처럼 죽음을 앞에 둔 노인을 바라보는 요양사의 시선과 대조적이다. 곧 운명할 것 같은 노인의 상태, 멀리 있는 딸들이 엄마의 마지막을 보고자 달려오고 있지만, 폭설이라는 기상이변으로 시간이 지체된다. 무심하게 환자들을 대하며 감정을 배제하고 살아온 요양사는 고요하게 누워 딸을 기다리는 듯한 노인을 보며 자기 이야기를 한다. 남편이 그렇게 갑자기 죽을 줄 몰랐다고. 남편이 돈을 벌겠다며 떠나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면서,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에 또 죄책감을 느꼈다고. 애틋한 부부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부부의 모양새를 하고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서로가 조금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떠난 것은 두 사람의 관계를 다시 쌓는 좋은 기회였을지도 모르지. 여자는 다시 만나게 될 남편과의 감정에 뭔가 기대하지는 않았을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조우할 남편과의 모습에 괜찮은 가족의 모습을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혹여 사지로 가는 남편을 붙잡지 않았던 것에 죄책감을 느낀 걸까 싶기도 하고. 우리 앞에 닥친 불행에 스스로 갖는 어떤 감정이 떠오른다. 혹시 나 때문은 아닐까? 그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걸까? 언제 어느 때고 우리 삶에 끼어들 기회를 엿보는 불행이란 놈에게 지지 않기 위해, 매 순간 불안과 자책과 싸워가는 게 우리 아닐까.



그녀는 허기가 져 병실에 비치된 냉장고를 뒤지다가 누군가 사놓은 딸기를 찾았다. 향긋했던 딸기는 뭉개지고 짓물러 있었다.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딸기의 뭉개진 부분들을 과도로 도려내고, 얼마 남지 않은 과육을 입속에 허겁지겁 집어넣었다. 딸기가 달았다. 히터를 세게 튼 병원은 창밖의 세계와 완벽히 단절된 듯이 비현실적이었다.

"오늘 밤은 죽지 말아요."

그녀가 노인에게 말했다.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226~227페이지, 아무 일도 없는 밤)


엄마와 딸의 여행을 그린 「비포 선라이즈」는 누구나 한번은 경험했을 여행의 의도를 보는 듯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딸은 엄마와 프랑스 여행을 계획한다. 엄마가 고생하지 않고 좋은 것을 보고 다닐 수 있게 여행 일정을 잡은 딸은 출발하기 전부터 엄마와 의견 충돌을 겪는다. 여행 다니면서도 서로 여행 스타일이 다른 것에 당황하며 급기야 짜증이 나기도 한다. 엄마를 이해할 수 없던 딸은 어느 날 숙소의 창가에 앉아 일출을 기다리는 엄마를 본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해 뜨는 것을 기다리자 싶었던 엄마는 창가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여행 일정에는 없던, 엄마와 숙소의 창가에 마주 앉아 부모님의 세월을 듣는 일. 아버지를 생각하며 애틋한 표정으로 부부의 젊은 날을 이야기하는 엄마의 표정에는 여행보다 더 좋았던 시간이 그대로 묻어 있다. 해 뜨는 것을 보겠다며 기다리던 엄마는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고, 서서히 드러나는 해의 눈부심에 찡그리는 표정마저 행복하게 보인다. 엄마의 낭만을 이뤄주겠다고 시작한 여행은 뜻밖의 장소와 시간에서 행복한 여행이 된다. 여행의 의미가 바로 이런 거겠지. 우리가 꿈꾸는 여행도 같다. 같이 먹고 걷고 보고, 그러다가 좋은 것을 함께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진짜 여행인 거지.


딸을 만나러 프랑스에 간 아버지의 낯선 시작이 펼쳐질 「여행의 시작」, 옛 연인과 이십 년 만에 추억의 장소에서 만나는 「오직 눈 감을 때」, 첫 키스가 무섭다며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연인이 귀여워 안아주던 「우리, 키스할까?」, 불면의 밤에 눈을 뜨고 외로울 그녀의 곁을 지켜주는 건 얼마 전에 구조한 유기견뿐인 「그 새벽의 온기」, 갑작스러운 누나의 동물원 방문이 어색했지만 언젠가 그리워질 날이 될 것 같은 「봄날의 동물원」, 여행지에서 만나 여행지에서 헤어지며 다음을 말하는 게 쓸쓸하다는 걸 알게 되는 이별의 순간 「어떤 끝」, 사랑을 위태롭게 하는 현실 속의 자기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될 「누구에게나 필요한 비치 타올」. 모두의 이야기이면서 또 각자의 이야기가 될 단편들이 서서히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건너가는 우리가 쉽게 돌이킬 수도 없는 시간. 그렇게 우리는 어떤 끝을 만나고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평범한 주인공들의 평범한 일상을 마주하는 느낌이 나쁘지는 않으면서도, 어떤 날을 살아가는 내 모습 같아서 씁쓸하기도 했다. 왜 누구나 바라는, 피해갈 수 있는 순간들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도 짙다. 다들 비슷하지 않나? 불행을 피해가고 싶고, 불안을 감당하기 무섭고, 행복을 기다리고. 어쩌면 그렇게 바라는 행복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당연하게 마주치는 일상 같기도 해서 무던해지고 싶은데 또 그게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 순간들. 우리가 사는 수많은 오늘이 그러하더라.


“……괜찮아지나요?”

박 선생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민주의 책상 위에 차가 담긴 종이컵을 다시 올려놓았다.

“그 시기만 지나면 그런 불안한 마음은 괜찮아지나요?”

민주의 질문에 박 선생은 아무런 말없이 웃더니, “엔딩이 어떻든 누군가 함부로 버리고 간 팝콘을 치우고 나면 언제나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 깨달으면 그다음엔 다 괜찮아져요” 하고 말했다. (155페이지, 언제나 해피엔딩)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불안하고 불행한 순간들을 맞닥뜨렸을 때의 우리 모습은 비슷한 것 같다. 지나간 어느 날을 꺼내 보며 애써 미소 짓기도 하고,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한다. 오직 그것만이 방법인 것처럼, 그게 최선인 것처럼. 하긴, 다른 무슨 방법이 있을까. 내가 아는 방법도 그것뿐인데. 누군가의 마음, 누군가의 하루를 들여다보며 찾아내는 이런 위안의 방식도 있다는 것을 이 짧은 소설들로 또 배운다. 오늘은 사라져버릴지 몰라도 언젠가 오늘을 기억하는 순간이 찾아올 테니. 또 어떤 불행과 불안의 순간에 기적 같은 희망을 바라며 오늘의 흔적을 더듬어볼 것 같다.


n******i 2020.11.17.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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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우리가 붙잡아 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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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봄 2019』에서 처음 접한 백수린 작가의 소설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가 내 마음속 어딘가에 파도처럼 밀려와 부딪히는 것 같았다. 작가의 다음 소설로 뭘 고를지 고민하다가 마침 이 책이 출간돼서 구매했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시리즈는 예쁜 일러스트가 있어서 야금야금 모으는 중인 데다 선착순 친필 사인본 증정이라는데 사지 않을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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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봄 2019』에서 처음 접한 백수린 작가의 소설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가 내 마음속 어딘가에 파도처럼 밀려와 부딪히는 것 같았다. 작가의 다음 소설로 뭘 고를지 고민하다가 마침 이 책이 출간돼서 구매했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시리즈는 예쁜 일러스트가 있어서 야금야금 모으는 중인 데다 선착순 친필 사인본 증정이라는데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제목은 마지막 소설 속 문장에서 따왔지만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문장이라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요즘 가장 많이 잃어버리는 게 '시간' 같다는 작가는 자신이 만든 인물들이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린 시간을 짧게나마 소설로 기록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며 잃고 있던 것은 무엇인지, 이대로 잃어버리기에는 아까운 각자의 순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선물한다.

-짧은 소설 13편은 누군가의 일기장처럼 담담한 기록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겉싸바리의 밤하늘과 그것을 확대한 속싸바리가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오늘 밤, 내가 붙잡아 두어야 할 시간은 무엇일까. 나도 모르게 잃어버린 시간이 아직은 사라지지 말기를.


평범한 사건이 예외적인 사건이 되는 데는 역시 아주 사소한 차이가 필요할 뿐이다. 마치 사랑이 시작되는 원리가 그러한 것처럼. -p.214


s*****0 2019.12.16.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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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호흡의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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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이지만 보통의 단편들 보다 더 짧은 글들이 대부분입니다.이동하는 동안 가볍게 읽기 좋았어요.몇몇 단편은 장편으로 읽고 싶은 것들도 많더라구요.일상적인, 누구나 한번쯤 겪거나 상상해보았던 스토리가 많아서 공감가던 스토리가 많습니다. 항상 백수린 작가님의 글은 어딘가 감추고있었던 감정들을 되새기게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작은 일이라도 마음을 다해 반듯하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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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이지만 보통의 단편들 보다 더 짧은 글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동하는 동안 가볍게 읽기 좋았어요.
몇몇 단편은 장편으로 읽고 싶은 것들도 많더라구요.
일상적인, 누구나 한번쯤 겪거나 상상해보았던 스토리가 많아서 공감가던 스토리가 많습니다.
항상 백수린 작가님의 글은 어딘가 감추고있었던 감정들을 되새기게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작은 일이라도 마음을 다해 반듯하게 해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은 사람을 기쁘게 하잖아

희망이 기적이래
그리고 신처럼 형체가 없지만 들불처럼 번져너가는 것이 희망이래

s*****n 2023.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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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추운 땅에 비치는 한 줄기 따스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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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인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나 한 꼭지인 [참담한 빛]이 시사하듯 작가는 어둡고 추운 땅을 가리킨다. 그곳은 우리를 옥죄고 있는 구체적 환경인 물리적 장소이기도 하고 벼랑으로 내몰린 심리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막다른 곳까지 인도한 작가는 예정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파국에 대해서는 끝내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오히려 틈새로 새어들어오는 가느다란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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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인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나 한 꼭지인 [참담한 빛]이 시사하듯 작가는 어둡고 추운 땅을 가리킨다. 그곳은 우리를 옥죄고 있는 구체적 환경인 물리적 장소이기도 하고 벼랑으로 내몰린 심리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막다른 곳까지 인도한 작가는 예정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파국에 대해서는 끝내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오히려 틈새로 새어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에 대해, 유기견의 따스한 체온에 대해, 간병인의 죽지 말라는 간곡한 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고 하찮은 말 속에 담긴 위로와 희망의 에너지에 주목한다. 비록 참담한 땅이지만 사라지지 말라고, 사라져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뽀뽀를 하고 싶지만 처음이라서 두렵다는 여자친구를 지켜주려는 어린 남자친구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그려 보인다.


남자아이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말했다.

"아, 안 해봐서 무서웠구나."

그리고 여자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무서운 건 아니지만 알았어. 그럼 나중에, 너 안 무서울 때." (35~36쪽)


골목 어귀에 나가 엄마가 퇴근하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딸에게 엄마가 들려준 말은 무료하고 공허한 하루를 보상받고도 남았을 테다.


엄마가 왜 여기까지 나와 있어, 하며 혼냈겠지만 이내 환히 웃어주었겠지, 피곤한 얼굴을 감추고. 환하게. 사랑은 그런 것이니까. 아무리 고단하고 추운 날에도 우리를 잠깐이나마 웃게 하는 거니까. 꽃처럼 피어오르게 하는 거니까. (64쪽)


어린 꼬맹이 나를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돌봐주던 누나는 끝내 자신의 불치병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이별의 의식을 치른다. 언제나 지켜주기만 하던 포근한 눈빛으로.


누나는 틀림없이 그 시절 외로웠겠지? 하지만 나의 기억 속에서 누나는 울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너무 어린 막내 동생을 떼어놓고 해바라기가 피어 있는 이웃집 논두렁을, 하얀 연기를 뿜는 소독차가 지나는 집 앞 신작로를 우리가 뛰어다닌 날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저기 봐봐, 영수야 저건 무슨 색이야? 누나가 물으면 내가 노란색, 파란색, 소리를 지르던 날들. 바람이 불면 연초록의 강아지풀들이 흔들리고, 붉은 사루비아 꽃이 흔들리고, 누나의 단발머리가 검은 물결처럼 흔들렸다. 기억 속에서 사시사철 붉던, 누나의 볼. 달리다 넘어져 무릎이 까져 울면 다가와 상처를 불어주던 누나의 반짝이는 속눈썹. (82~83쪽)


간신히 빛 한 자락만 들어오는 반지하에서 참담한 삶을 영위하는 어린 동거부부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뱃속 아기를 지켜내려 안간힘을 다한다. 희망이 기적을 낳는다는 일념으로 버텨낸다. 냉랭하고 쓸쓸한 한숨과 포기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나도 몰라. 근데, 어디선가 들었어. 희망이 기적이라고. 그리고 신처럼 형체가 없지만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것이 희망이래. 근사한 말이지?"

여자아이의 말에 남자아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203쪽)


가족이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병실에서 이제 곧 숨이 넘어가려는 환자를 지켜보고 있는 간병인의 말.


자신이 노인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있어주는 유일한 사람이라면 그녀는 노인이 혼자 버려졌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으며 떠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나 여기 있어요."

그녀는 노인이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도록 노인을 향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노인이 좋았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노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인생에서 즐거웠던 일을 떠올려보려 애썼다. (228쪽)


그리곤 노인에게 "오늘 밤은 죽지 말아요."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라고 간곡하게 부탁한다. 특별한 인연도 없는 노인을 가족보다 더 살갑게 돌보며 남은 숨 한 자락이라도 부여잡으라고 독려하는 간병인, 작가는 그런 간병인의 심정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위로를 건네고 끝내 버려선 안 될 희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짧은 이야기들은 이 땅, 궁지로 내몰린 이들에게 건네는 생명의 메시지이다. 특별할 것 없지만 얼지 말라고, 스스로 포기하지 말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따스한 전언이다. 낮고 작은 자들의 입을 빌어 띄우는 이야기여서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추운 시절을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 작은 손난로 하나씩 쥐어준 것 같다.

a*****7 2020.02.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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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오늘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내용보기
백수린 작가의 글은 처음 접하였습니다. 두께감이 얇은 책인데 단편이지만 저렇게 많은 작품을 담고있다니라고 생각을 했어요. 확실히 짧은만큼 이야기에 밀도가 있고 쉽게쉽게 잘 읽히면서 재미있습니다. 이야기의 끝이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잘 읽었습니다.
"오늘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내용보기
백수린 작가의 글은 처음 접하였습니다. 두께감이 얇은 책인데 단편이지만 저렇게 많은 작품을 담고있다니라고 생각을 했어요. 확실히 짧은만큼 이야기에 밀도가 있고 쉽게쉽게 잘 읽히면서 재미있습니다. 이야기의 끝이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잘 읽었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b******3 2024.10.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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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오늘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내용보기
짧은 에피소드로 엮어 있는데 기대를 많이 한 탓인지 생각보다 별로였어요.(책 구매할 당시 신작이어서 후기가 없어서 불안했는데 역시나) 각 에피마다 엔딩 부분이 이게 끝이야? 라고 느낄 만큼 마무리를 안하고 끝낸 느낌이었어요. 아님 독자가 엔딩 부분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외국 여행에서 만난 앞이 안보이는 사진사 할아버지 에피
"오늘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내용보기
짧은 에피소드로 엮어 있는데 기대를 많이 한 탓인지 생각보다 별로였어요.(책 구매할 당시 신작이어서 후기가 없어서 불안했는데 역시나) 각 에피마다 엔딩 부분이 이게 끝이야? 라고 느낄 만큼 마무리를 안하고 끝낸 느낌이었어요. 아님 독자가 엔딩 부분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외국 여행에서 만난 앞이 안보이는 사진사 할아버지 에피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b********8 2020.05.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