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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원하지 않아도 여러 가지 배경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가진다. 제일 크게는 성별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고, 성씨에 따라서(전주 이씨나 경주 김씨 등)도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다. 이 사회에서는 부모의 경제력과 학업성적 그리고 직업 등이 아마 정체성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리고 고향과 현재 사는 지역에 따라 갖게 되는 정체성도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서른이 되기 전까지는 ‘부산싸나이’였지만, 지금은 그저 평범한 서울남성이다. 말투도 바뀌었고,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가끔 고향 친구나 가족과 전화할 때는 예전의 그 억센 말투가 다시 나오곤 하지만, 평소에는 부산 사투리를 쓸 일이 없다. 빠르고 거친 말투가 차분하고 느려지니까 성격도 확실히 바뀌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인간관계를 맺게 되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가장 자주 들었던 얘기는 ‘해산물’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이다. “부산에서 왔으면 회 좋아하겠네. 다음에 회 먹으러 같이 가자고. 내가 한 잔 살 테니.” 한때 내 직속상관이었던 분은 본인의 부산출신 친구 얘기를 몇 번이나 하면서, 그 친구가 그렇게 해산물을 그리워했다고 과장해서 말하곤 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일부러 데리고 가준 횟집이 나는 영 별로였다. 요즘은 새벽에 잡은 해산물이 곧바로 서울로 온다지만, 그래도 바닷가에서 먹는 거랑 서울 시내에서 먹는 거랑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건 아무리 말로 설명해줘도 직접 먹어보지 않고는 알기 어렵다. 확실히 맛은 그저 혀로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이 바로 그런 점이다. 그냥 그저 먹는 것과 잘 알고 먹는 것은 다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단순히 술안주로 먹어왔던 수많은 해산물들이 다르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겨울에 즐겨 먹었던 굴이었건만, 실은 그때가 가장 맛있는 때였다는 사실은 몰랐다. 사람들이 ‘가을 전어’라고 말할 때에도 그저 맛있게 먹었을 뿐, 왜 가을에 맛있을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뿐인가 올겨울 과메기를 맛있게 많이 먹었건만, 왜 구룡포 과메기가 유명한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 외에도 이 책을 통해 다양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밴댕이가 사실은 반지라는 이름의 생선이라는 것. 오징어가 기후변화 때문에 동해를 떠나 남해안으로 내려왔다는 사실. 잡초로 여겨지던 함초(퉁퉁마디)가 사실은 부작용이 없는 명약이었다는 것. 김 양식장에서 김값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 웬수로 여겨졌던 매생이가 요즘은 청정무공해 음식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 등 처음 알게 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지적 호기심을 마구 자극했다. 안타까운 사실들도 많았다. 드넓었던 갯벌을 게판으로 만들었던 칠게가 무분별한 개발과 어민들의 과욕 때문에 사라져버렸고, 그래서 철새들도 발길을 끊었다는 것. 과메기의 원조였던 청어가 더는 잡히지 않아 이젠 꽁치로 과메기를 만든다는 사실. 그 흔했던 명태를 더 이상 구경하기 어려워 현상금까지 걸렸다는 사실 등을 읽으며 언젠가 우리가 즐겨 먹었던 음식들을 다시는 구경하기 어려운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책에 의하면 전어도 몇 해째 어획량이 감소하고 있다고 했다. 흑산도 홍어도 남획으로 어장이 사라졌다가 간신히 회복되는 중이라고 했다. 과메기는 다행히 비슷한 맛이 나는 꽁치로 대체되었지만, 이제 청어 과메기는 더는 맛보기 어렵다. 이 책에는 다양한 해산물에 대한 지식도 들어있지만, 그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도 들어있다. 이게 또 무척 흥미롭다. 과연 우리 조상은 언제부터 이들을 먹었던 건지. 당시에는 어떻게 먹었던 건지 하는 것들 말이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이 바로 정약전의 [자산어보]다. 정약용의 형으로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어부들에게서 듣고 배운 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덕분에 지금 우리가 해산물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다.조선 시대에도 서울 사람들이 전어를 많이 먹었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전복이나 밴댕이를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해 따로 관리를 파견하여 관청을 두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단순히 바다생물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점이 무척 반갑고 좋다. 바다맛 기행은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여행 책이 아니다. 생물에 대한 지식과 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다. 다 읽고 보니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라는 부제를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저자가 말한 대로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해산물을 찾아 먹어봐야겠다. 여름에는 양반들만 먹었다는 민어복달임을 꼭 먹어보고 싶고 또 송도에서 된장빵으로 병어도 먹어보고 싶다. 칼로 썰지 않은 전복을 그대로 베어 먹으면 진짜 더 맛있는지도 궁금하다. 아! 생각만 해도 자꾸 입에 침이 고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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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맛기행이 아니기에 더 멋진 기행>
책의 제목이 주는 느낌은 사람을 대할 때의 첫인상과도 같다. 아마 여행 전문지에서 바다맛기행이라고 나왔으면 맛집기행으로 생각했을 게다. 그런데 자연과 생태의 책이기에 맛집 기행이 아니라 인간이 바다생활을 통해 얻는 것들에 대한 기행이 되리라 짐작했다. 역시 책을 읽으면서 생동감있는 바다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곳곳에 담겨 있어서 바다내음이 물씬 나는 듯했다. 단지 출판사 성향을 보지 않고 맛집 여행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기우를 해본다.
그동안 자연과 생태의 잡지를 몇 권 본 독자이기에 이번 책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다. 아마도 바다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먹거리들에 대해서 그들만이 알고 있는 지식은 물론 삶의 모습도 담기겠지 하면서 말이다. 첫번째 접하는 이야기부터 생소해서 갸우뚱하면서 책을 펼쳤다.
자연산 명품 미역 진도곽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갱번이라는 철학에 대해서 논한단다. 진도곽은 뭐고 갱번은 뭔지 생소하기만 한 말들이다. 친정어머니가 아이 낳은 딸을 위해 혼수품으로 넣고 80만원 정도되는 돈을 지불하고 첫손자를 낳은 며느리를 위해 사다줄 정도로 명품 미역이란다. 거친 조류에서 건져올린다는 진도곽. 한번도 맛보지 않았지만 그만큼 귀하고 값나가는 미역인가 보다. 사실 난 진도곽을 먹고싶다는 생각보다 진도곽처럼 거친 조류에서 건져올리는 갱번이라는 곳에 관심이 갔다. 처음 들어보는 갱번은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어장이란다. 외지 사람들이 사고 싶어도 그 마을에 주민으로 살고 마을 기금을 내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갱번에 들러갈 수 있는 진짜 주민이 된단다. 도시에서 이런 마을 공동체에 관심이나 갖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지만 바닷가 주민들이 그들의 삶의 터전을 가꾸고 공동으로 생활해가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러하기에 이들이 살아갈 수 있구나 싶고 그렇기에 갱번이 유지되고 바다가 지켜지겠구나 싶다.
이렇듯 몇월에 어디에 가면 뭐가 맛있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제를 달고 삶의 철학을 논하기도 하고 얽힌 이야기가 주가 되기도 하기에 이 책에서 바다향이 물씬 느껴지는 것 같다. 바다에서 필요한 삶의 먹거리를 건져 올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생생한 사진이 인상적이다. 물론 바다에서 건져 올린 먹거리로 만든 음식 사진도 있지만 한 귀퉁이에 담긴 작은 사진을 보면 이 책이 주려는 것을 맛난 음식점을 알리고 드세요~라는 것보다 삶의 터전을 바다로 삼은 사람들이 그곳에 동화되고 살아가는 모습을 더 담아냈구나 싶다. 그렇게 건져올린 제철의 먹거리들에 대해서 이름을 지어주고 봐가면서 잡고, 크기에 따라 다른 이름을 짓고 물고기 성깔도 구분하고...그러니 바다맛이 나지 않겠는가?
사진과 더불어 마음에 든 또 한가지는 저자가 자주 인용하는 자산어보의 이야기들이다. 흑산도에서 유배를 하면서 검은 바다가 무섭고 두려우면서도 그곳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바다에서 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쓴 자산어보. 그것이 맛기행 책이 아니듯이 이 책 역시 단순한 맛기행이 아니라 다행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어디에 무슨 계절에 먹으러 갈까 라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맛난 것들 먹을 수 있는 자연에 감사하며 단순히 생태체험이라고 맛소금을 잔뜩 뿌려가면서 갯벌의 조개를 캐던 행동, 슈퍼에 가서 돈만 주면 당장에라고 살 수 있는 해산물들보다 더 싱싱한 이야기에 우리가 접하는 맛과 멋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참, 이 책을 읽는 동안 신문기사에 실린 자연과 생태의 출판사 이야기를 보았다. 아는 얼굴을 하나도 없지만 책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다음에도 더 멋진 책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자연과 생태를 느낄 수 있었으면 싶은 독자의 마음을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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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연한 바닷가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바다가 지척인 곳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내게 바닷내음은 낯선것이 아니건만 나는 비린것을 먹지 못한다. 어릴때부터 편식이 심하고 - 사실 편식이 심했다기보다는 접했던 음식이 그리 많지 않아서 먹는 음식이 한정되어버린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바다의 비린 것은, 특히나 날것은 먹기도 힘들뿐더러 그 맛도 모르고 살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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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 저녁에 TV에서 하는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연기자인 최불암 님이 진행자로 나와서 우리나라 곳곳의 먹을거리와 그것으로 만든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제철 재료 또는 테마에 따른 재료들과 더불어 그것을 생산하고 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어서 풍성하다.
<바다맛 기행> (2013, 김준 지음, 자연과생태 펴냄)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바다에 집중한다. 삼 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각 바다에서 철에 따라서 특색 있는 해산물이 생산된다. 전남 진도에서는 여름철 물이 빠지는 사리에 돌미역을 채취하고, 5월에 강화도에서 잡히는 밴댕이가 진짜배기다. 갯벌이 발달한 서해안에서는 쭈꾸미가, 천일염과 함초가, 칠게가 자랐고, 청정 바다가 풍요로운 제주도에는 잠녀(해녀)들이 바닷속에 들어가 전복이며 문어, 해삼과 소라를 잡고 물 위로 올라오면서 숨비소리를 길게 뿜어냈다. 동해는 북한한류 때문에 수온이 낮아서 오징어와 문어, 명태가 잡혔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와 우리나라 전역에 걸친 개발, 오염, 남획, 4대 강 사업 등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때문에 바다 환경이 많이 달라졌고, 이제는 동해의 북쪽에서는 불을 환하게 밝힌 오징어배들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저자는 미역과 쭈꾸미, 젓새우, 천일염, 전복, 오징어, 매생이, 가시파래, 과메기, 홍어 같은 바다 생물들의 생태를 소개한다. 쭈꾸미는 쭈꾸미 단지나 그물을 써서 잡고, 멸치는 그물로 잡거나 죽방렴을 놓아 잡는다. 이렇게 잡힌 물고기나 해초 들은 날것으로, 구워서, 쪄서, 말려서, 튀겨서 요리가 되고, 제철의 싱싱한 맛을 내는 것을 보여 준다. 사진도 실려 있어서 군침이 절로 넘어간다. 여기에다 그것을 잡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 놓는다. 미역을 공동으로 키우고 채취하는 갱번이 섬 사람들을 보듬는 것을, 60세 이상 노인과 병약자만 입어할 수 있는 마라도의 '할망바당'을 소개하면서 더불어 살아온 지혜를 이야기한다.
어촌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떠나고, 전 세계에서 냉동 어류들이 수입되면서 이제 제철이라는 개념이 무색해져 버렸다. 러시아산 동태와 북한산 황태포, 칠레산 가오리, 태국산 새우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바다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한 계절이 가고 다른 계절이 옴을 눈과 입으로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생생할 수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잘 살기 위해서, 앞으로는 가격이 아니라 가치를 기준으로 소비하자고 다짐한다. 이 싱싱한 바다 맛을 오래오래 만나고 싶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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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란 소개에 걸맞게 책에서는 갯벌에서, 어촌에서, 바다에서 만날 수 있는 맛있는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음식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그 음식에 얽힌 사연은 무엇이 있는지, 음식들의 역사와 문화를 논하고 있다. 총 천연색 사진들은 마치 1박2일의 여행을 떠나온 듯 하다.
아직도 아들을 조금 더 선호하는 뭍의 사람들과 달리 제주도에서는 딸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딸이 다섯이면 부자되고 딸을 낳으면 돼지 잡아 잔치를 벌이고 아들을 낳으면 궁둥이를 찬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엄마는 회는 안 드시지만 푹 삭힌 홍어회는 좋아하신다. 하지만 난 전라도 사람이면서도 홍어를 못 먹는다. 전라도 사람들이 잔치를 벌일 때 홍어가 빠지면 뭔가 허전하다. 난 서울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그 때도 해남에서부터 공수해 온 홍어를 손님들에게 대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홍어가 빠지지 않았었다. 작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홍어는 문상 온 손님들 상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만큼 전라도 사람들에게 홍어는 꽤 귀한 음식인 셈이다.
원래 겨울철 영일만으로 산란하러 들어온 청어를 잡아 말린 과메기는 나중에 말린 꽁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고 하는데, 그 이유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어릴 적 엄마가 자주 해주셨던 매생이국, 잘못하면 입천장을 데이기 일쑤여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매생이가 국민음식으로 등장하게 된 이야기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병어도 나온다. 어렸을 때 엄마는 "벵치 구워줄께"라고 하셔서 병어의 원래 이름이 병치인 줄 알고 있었다. 서울에 와서야 서울 사람들이 병치를 병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공법, 잡는 방법,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명태, 마른 명태는 북어, 한 달이내로 말린 것을 흑태라 하는데 그 흑태를 코에 끼워 엮은 것을 코달이, 몸통을 엮은 것을 엮걸이라 한단다.
음, 난 지금껏 조기만 엮걸이라고 부르는 줄 알고 있었다. 엄마가 한 번씩 서울에 오실 때마다 엮걸이를 집집마다 들고 오시기 때문이다. '그렇담 말린 생선을 엮은 것을 엮걸이라 부르나보다.'라고 혼자 생각한다.
바다에서 나오는 맛있는 먹거리들과 사람들의 이야기, <바다맛 기행>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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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바닷가를 낀 도시다. 외할머니가 어시장에서 생선을 파셨다. 할머니의 몸에서는 늘 생선 비린내가 났다. 어릴 때 그 냄새가 싫었다. 지금은 그곳을 가도 바다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매립지와 건물들에 가려져 있고, 다른 곳에서 본 풍경은 어릴 때 배가 가득한 그곳과 너무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선창가를 뛰어다니며 놀던 곳은 이미 사라졌다. 그 친구들도 어딘가로 다 흩어졌다. 기억 속 단편만 살짝 남아 있는 바다, 외할머니, 생선들, 해산물들. 하지만 어머니의 눈과 손질에 그 생선들을 맛본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나라다. 동으로 남으로 서로 옮겨 다니면 그 지역에 맞는 바다맛이 있다. 사실 자라면서 생선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제대로 그 맛을 몰랐다. 생선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편식도 심했다. 아마 생선 맛을 알게 된 것이 서울로 오면서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그 전에도 좋아하는 생선들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고기를 맛보고 싶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을 모르니 어머니에게 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많은 바다맛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다.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제 맛을 모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요즘에야 제철 음식에 관심이 있었지 예전에는 양식과 하우스 재배로 철과 다른 음식을 많이 먹었다. 아마 사시사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즐겁게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면 늘 제철 음식은 상에 올라왔다. 그냥 한 끼 밥과 반찬으로 먹으면서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그중에서 지금도 겨울이 되면 집에서 대구를 사서 말린다. 시원한 대구탕과 말린 대구로 만든 된장찌개는 별미다. 대구 젓갈은 또 다른 맛으로 나를 유혹한다. 얼마 전 먹었던 그 맛은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계속 입속을 감돌았다.
책 속에 나오는 음식 중 찾아 먹는 것은 많지 않다. 앞에서 말했듯이 제철 음식이라고 찾아 먹지 않았고 그 맛을 몰랐기 때문이다. 김은 그렇게 귀한 것이 아니라 비교적 자주 구워먹었고, 국 속에 들어 있는 멸치는 그냥 맛을 내는 재료였다. 제사 때면 늘 탕국에 들어 있던 문어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파래는 반찬일 뿐이었다. 전복이 귀하다고 했지만 그 맛을 알지 못했기에 혹은 비쌌기에 그냥 그런 식재료 중 하나였다. 미역국은 생일이면 지겹게 먹는 국이었다. 일상에 늘 접하던 음식들은 그냥 하나의 반찬이었다. 이 음식들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만나기 전에는.
사실 제철 음식과 지역 특산물에 관심을 가진 것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때문이다. 과메기와 홍어와 매생이가 대표적이다. 과메기를 먹게 된 것은 술안주였고, 홍어는 수많은 사람들의 극찬에 맛보았다. 그리고 좋아하게 되었다. 매생이는 굴집에서 먹게 되었다. 명태가 동태나 북어나 황태가 된 후 탕으로 국으로 끓여지면 그것만으로 한 끼 뚝딱 해치웠다. 낙지는 매운맛과 어우러지거나 연포탕으로 속을 녹여줬다. 어릴 때 먹던 칠게를 이제는 특별한 식당에서나 맛보지만 아그작 잘 씹어 먹는다. 간장과의 조화는 오히려 간장게장보다 좋다.
오징어. 십 수 년 전 동해에 놀러 갔을 때 회를 시키면 정말 거의 무한정 공짜로 줬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징어회를 돈 주고 먹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 당시 오징어회가 원래 시킨 것보다 맛있어 다들 맛있게 먹었던 것이 기억난다. 전어는 사실 비교적 최근에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자랄 때 철되면 늘 먹었을 텐데 비교적 생선들이 귀한 서울에 오면서 서울 토박이와 방송 때문에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천일염이 얼마나 좋은지, 함초의 효능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아마 최근에 알게 된 맛의 대부분은 방송을 본 것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맛있게 먹은 기억만 나열했지만 저자는 그 맛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알려준다. 각 지역마다 다르게 불리는 이름과 특산물은 변해가는 환경 속에서 어떤 굴곡을 겪는지 보여준다. 갯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고 어촌 공동체가 어떤 식으로 생존하고 있는지 말한다. 공동체 삶이 그 마을의 경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인다면 대형화된 어선에 몰락한 어촌의 신산한 풍경도 보여준다. 죽어가고 사라지는 갯벌에 대한 경고는 단순히 맛을 넘어 미래로까지 이어진다. 역사와 사계절 바다 먹거리들을 발로 다니면서 알려주는 저자의 노력은 나의 입맛을 새롭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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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수많은 저술을 남긴데 비해 그의 형인 정약전은 실제로 만든 책은 '자산어보' 딱 한 권이라고 했다. 형만한 동생없다는 말을 뒤집어버린 케이스인데.. 어쨌든 자산어보는 실제 우리가 먹는 생선의 이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과거 공무원 국사 공부했던 것이 스키마가 되었다. 하하하!
어쨌거나, 산뜻한 디자인의 이 책은 부담스런 느낌은 주지 않았다. 내용을 들여다봐도 지역의 어류 요리 가 꼭 먹어야 한다는 투도 아니었다. 바다 근처의 식재료, 바다 근처의 일상을 담백하게 담고 있어 좋았다. 지역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되는 부분이 있다. 열독하고 나면 사십대 이상 아저씨들과 대화할 때 아는 척하기 좋을 도서라고 판단되어진다.
이런 도서를 만들어내는 출판사들이 간혹 참 신기하게 생각되어진다. 일반 대중소설도 안 팔려서 그 난리라는데.... 출판사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겠지. 배운 게 죄라며 이렇게 저렇게 책을 만들어 내지 않으려나.
오늘도 난 잡설만 가득한 책 평을 남겼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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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좀 다녀볼까, 하는 생각은 해마다 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일단, '도대체 어딜 왜 가야 하나'하는 것과 '가서 뭐가 달라질까'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나의 주말은..쉬는날은..혹은 휴가는...대부분 집귀신 모두가 되고 만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여행의 컨셉에 대한 영감을 준다. 굳이 바다맛 기행,이라고 하지 않았다면..그냥 바닷가 위주의...관광지가 아닌, 그곳의 일상에 대한 기록 같은..조금 더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 왔으리라.
그런데, 굳이 바다맛 기행이라고 하니, 이래 저래 은근 불편하다.
이건 책 보단 내 취향 때문이겠다.
나는 모 프로그램에서, 맛집을 찾아다니며, 거기 온 손님들이 입을 쩍 벌리고 ,이것 저것 입에 뭔가를 쑤셔 넣는 모습을 보면...혐오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어디 어디를 다녀서 뭘 먹었고, 어쨌고 하면서 냄비나 접시를 클로즈업 해 놓은 사진을 보면...그대로 사진 속에 들어가, 밥상을 뒤엎어 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나의 모순이겠는데...이 음식 사진이 또 집에서 쉽게 해먹는 반찬이나 국, 간식 같은 것이면 또 완전 좋아한다.--;;)
어쨌거나, 그런 면에서 이 책은...뻑쩍지근한 요리 소개가 없고...바다 근처의 식재료, 바다 근처의 일상을 담백하게 담고 있어 좋았다. 어떤 지역은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기도 하다.
대신, 아쉬운 점도 있다. 작가의 사진에 DSLR을 목에 걸고 있긴 했는데...뭔 생각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아니면, 사진을 발로 찍었는지...) 맘에 드는 사진은 하나도 없었고... 글과 사진의 구성이나 편집은 산만했다. 그리고, 작가께선 글쓰기도 고민 좀 하셨으면 좋겠다. 단어를 연결해서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만 연결한다고 해서 글이 되는 것은 아닐게다. 가전제품 사용설명서가 아닌 이상, 어떤 종류의 책이건 읽은 후에 내 마음에 어떤 여운을 남겨 줬으면 좋겠는데...이 책엔 글로써 주는 매력은 별로 없는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