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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책장을 훑어보다 내가 좋아하는 모딜리아니 표지를 보고 끌려 가져온 책이었는데 한동안 읽지를 못하고 책장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몇년이 지난후 나는 아이를 낳고 기르며 이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육아를 하니 엄마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면서도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겨서 다툼이 있을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도대체 뭘까 이러한 생각들에서 내가 내린 답은 애증의 관계가 아닐까라고 했던 것들 또한 작가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엄마의 책이라 엄마가 이걸 읽고 엄마도 할머니의 딸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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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이렇게 듣기만 해도 마음이 아파오는 단어가 있을까.. 이 책을 받아들고 너무나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천천히 읽고 싶었다. 읽는 내내 눈물 흘릴 것만 같은 예감.. 역시나 한참이 걸려서야 이 책을 다 읽게 되었다. 내가 느끼면서도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이 책을 읽으며 차분히 정리할 수 있었고 엄마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나는 30년이 넘게 딸이기만 했었다. 그러다 이제 엄마가 되었다. 엄마이기도하고 딸이기도하다. 이 사실을 새삼 느끼고 내가 아이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을 엄마도 똑같이 느끼셨다니 새삼.. 너무나 감사하고 마음이 아파온다. 엄마를 생각하면 너무 좋지만 어느 마음 한 구석 불편한 곳이 있었다.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래.. 내가 그동안 엄마에게 잘못한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춘기부터 지금까지 내 감정대로만 행동해서 엄마 마음을 아프게 했다. 엄마는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여주시기만 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래도 끝까지 나를 믿어주시는 엄마였다. 그 믿음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속의 엄마처럼 각을 세우며 대립하다가도 "그래도 마 니는 될끼다."하며 믿어주는 엄마가 있기에 우리 모두는 지금 이렇게 잘 살아있는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감정검진을 받아라"는 말씀도 마음에 와 닿는다. 혼자 마음속으로 아파하고 힘들어하니 감정의 암이 작가분의 신체의 암을 만든 것이라 여기시는데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이말이 아닐까 싶다. 내 마음의 말들을 모두 들어주고 이해해줄 사람들은 가족뿐이다. 처음엔 한마디씩.. 가족끼리 소통하며 마음을 풀자.
다음은 엄마로써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는 말들을 하고 다이애나 루먼스의 시처럼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아이를 더 많이 바라봐주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은 같이 있다가도 시계를 바라보고 화도 곧잘 내는데.. 아이를 다 키우고나서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가져야겠다. 말대답과 말대꾸가 살아있는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이게 어서 말대꾸야! 하지 말자. 아이도 생각을 이야기하는거니까..
신달자님의 에세이는 처음 읽어보는데 담담하면서도 마음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이 분의 어머니는 35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한다. 35년간 엄마 없이 살았다니 나는 지금 전혀 그런걸 상상할 수 없다. 돌아가신 후 35년이 지나도 그리움이 이럴진데 옆에 계실 때 잘하고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표현해야하는걸 왜 몰랐을까.. 처음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되서 마지막은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끝난다. 딸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과 여러가지 감정들을 읽으며 내가 엄마로써 한 가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파왔다. 내 속을 다 들여다보는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딸로써, 아이의 엄마로써 어떻게 살아야할지 돌아보게 해주는 책이었다. 두고두고 읽으며 엄마에게, 가족에게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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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도 싸우고 엄마와 딸도 싸운다. 부부도 서로 무시하고 얕보고 벌레 취급까지 하면서 인간의 선을 언믐 강도 높은 말로 골수에 사무칠 막말을 한다 엄마와 딸도 서로 무시하고 "네까짓 게 뭘한다고?" 하는 선을 넘는 막말에 치닫지만 엄마와 딸은 부부보다 쉽게 말들의 내용에 대해 잊어버린다 엄마가 가난할때 병들었을때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때 외로울때 딸은 신경질 나고 울화가 치민다 비로소 엄마가 죽었을때 엄마의 고통과 시시련이 백배로 가슴을 누른다 그때 똑똑히 엄마의 상처와 눈물 젖은 가슴이 보인다 딸이 가난할때 병들었을때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외로울때 엄마는 딸의 고통보다 천배로 앓는다 온몸이 찢어지는 아픔을 삭여 내는 것이다 이세상에 엄마라는 존재의 소화력보다 더 큰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슬픔의 뼈까지 눈물의 뼈까지 고통의 뼈까지 천둥도 벼락도 폭풍도 폭우도 다 가슴으로 삭여 내면서 침묵하는 이 세상의 엄마들 바로 딸의 행복을 온몽으로 빌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딸이며 그딸은 다시 엄마가 된다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엄마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 어떤 표현으로도 불가능한 죽음 이후에 엄마가 보이는것은 인간이 겪는 가장 큰 불행이다 정말 맞는말인 것 같다 그 어떤 말로 어떤 뭔가로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딸들의 고해성사를 읽으면서 엄청 울었습니다 뭘로 표현할까요 정말 우리 모든 딸들이 엄마에게 저지르고 있는 행동들 아닌가요 나또한 이런 딸이였습니다 엄마는 딸의 함정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 주지 못한다것을 알기에 스스로 그 강을 건너는 힘을 쌓아 두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문질빈빈(文質彬彬)이란 공자말씀이 문은 외양을 질은 내면을 말하는 것인데 외양도 아름답고 내면도 충실해 모든 것이 조화로운 상태를 말한다 엄마와 딸이 외양과 내면을 두루 합쳐 살아가노라면 조화로운 하나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유독 엄마와 딸사이에 폭력적 대화가 제일 많다고 한다 엄마와 딸은 서로 상대를 자기 자신으로 보기 때문에 어떤 실 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새를 참지 못하고 소아붙이는 것이다 경멸스럽게 말하기도 하고 도무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울고 마음 아파하고 자기혐오에 빠져 괴로워 하고 그러면서도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서로 상대가 잘못해서 생긴일이라고 단정한다 서운하다고 생각하는 것 남을 탓하는 화내는 것 모두 다 엄마가 가르친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 속에 있었던 감사의 마음을 어쩌면 엄마가 지워 버렸는지도 모른다 엄마 식으로 이끌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리적 엄마가 아니라 질 좋은 교육과 사랑을 준 엄마가 되기 위하여 여자들은 진정한 사랑을 배워야할 것이며 엄마라는 이름은 거저 얻는게 아니다 청소년 가출하는 이유 세가지를 꼽는데 이해 간섭 구속 이라고 한다엄마나 딸이나 모두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두사람이 같은 무게로 힘들다면 결국 엄마가 먼저 딸의 방황과 혼란을 껴안아 줘야 마땅하다고 어른이니깐 빈곤을 이유로 대는 사람도 있지만 먹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의 마음을 껴안는 일이다 마지막가지 모두 잃었어도 가족의 마음을 잃지 않았다면 희망이 있는것이다 부모는 책임,,,자녀는 신뢰가 필요하다 끝까지 눈물로써 읽게 되는내용입니다 딸이라고 하면 엄마라고 하면 꼭 읽어야 할 책 울 친정엄마는 연세가 많으신데 반해 딸은 귀하게 키워야한다고 항상 말씀 하셔 결혼전까지 정말 손에 물한방울 안 묻히게 딸들을 귀하게 예쁘고 멋지게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게끔 커리우먼으로 키워주셨다 나또한 결혼전에 이런 친정엄마의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고자 20대에 남들도 생각하지 않은 엄마에게 매년 생일 선물로 패물세트를 해드렸다 패물이라기 보다 매년 엄마생신때 목걸이 반지 세트로 종류별로 큰 사이즈로,,,왜 나중에 엄마가 나이가 더 들면 작은 것은 보기 싫을 것 같아 어린 나이이지만 오팔,호주등 다양한 것으로 선물을 해드렸는데 그때 생각에 나는 뭘 해도 예쁘지만 엄마는 나이 들면 더 예쁘게 하기 위해 큰것이 좋겠다고 싶어 어린 나의 생각이 맞았다 엄마는 지금도 어느 행사때 그것을 하고 가신다 그래서 마음이 훈훈하다 울친정엄마는 딸들을 위해서 항상 낮이고 밤이고 뛰어다녔어요 항상 곁에서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담주에 내생일인데 이책을 읽으면서 내생일 당일날 엄마를 위해 점심을 맛나게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지역이지만 거리가 멀다보니 자주 못 가봤는데,,,이번 생일날을 위해 엄마에게 수고하셧다고 함께 점심을 먹어야겠어요 하지만 나또한 신달자선생님처럼 세딸을 둔 엄마이다 그런데 울딸들이 나를 계모라고 불러요 그만큼 독하게 하겠죠 하지만 울큰딸에게 이런 말들을 해주지도 않았는데 울큰딸 초등4학년입니다 쌍둥이로 1분차이로 큰딸이 되었는데 엄마 생일날 빕스에서 밥을 사겠다고 하네요 아빠 생일때도 빨간 겨울 잠바를 큰딸이 사주겠다고 해 동생들도 함께 돈을 모아 선물을 했고 가족들 생일등 모두를 챙기는 큰딸을 보면서 어린 나이인데도 이렇게 가족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했나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나와 똑같이 맏이의 역활을 하는 모습에 가슴이 쨘 합니다 엄마와 딸,,,내가 지금 그런 구조네요 오늘 하염없이 눈물로 보냈지만 뭔지 모를 따뜻함이 묻어나고 정말 그큰 우주속에서 나의 위대함을 인정해주는 나의 엄마,,,뭔지 모를 나의 디딤돌이요 나의 힘인 나의 딸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엄마때문에 내가 살고 또 내 딸 때문에 내가 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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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아니 글자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울컥해진다. 늘 마음 한켠을 아리게 만드는게 엄마와 딸 사이인데도 딸에게는 한없이 약자가 되어버리는 엄마, 엄마에게만은 강자가 되는 딸처럼 오묘한 관계가 아닌가 싶다. 딸과 엄마의 입장에 놓여있는 내게 이 책은 많은 공감과 감동을 전해주었다. 딸로 70년, 엄마로 45년을 살아가고 있는 작가는 그 어떤 관계보다 복잡하고 미묘하면서도 끈끈한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이 책에는 70년동안 가슴에 품어 둔 작가의 가족사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작가의 전작인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에서도 여자로써 구비구비 힘든 인생여정이었는데 '엄마와 딸'에서는 더많이 힘들어 했고, 아파했던 가족이야기가 펼쳐진다.
엄마를 떠나보낸지 35년이 된 작가는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해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어느 집이나 엄마와 딸의 사이는 비슷한가보다. 티격태격을 뛰어넘어 다시는 안볼것처럼 무섭게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에게 더 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마음 아파하는 관계..참 알다가도 모를 관계가 아닌가 싶다. 나와 내 딸의 모습만 유별난가 했는데 작가와 엄마, 작가와 딸의 관계도 마찬가지였고,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집의 엄마와 딸의 모습도 대동소이했다.
작가가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며 과거를 회상할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울컥해졌다. 늘 병석에 누워계셨던 엄마를 대신해 어린나이에 집안일을 해야만 했던 나는 엄마를 많이도 미워했었다. 그런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했던 딸인데도 지금까지도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엄마의 사랑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해도 부족할 정도로 한이 없다.
'딱! 너 같은 딸 하나만 낳아봐라' 내가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이다. 사춘기 들어서면서 엄마에게 못되게 굴었던 나에게 엄마가 화를 내시며 뱉어내시던 말..난! 엄마처럼 내 딸한테 안그럴거야..라며 반문하던 나~지금 되돌아보니 나는 엄마에게 못되고 부끄러운 딸이었다. 과연 내 딸에게 나는 몇점의 엄마일까? 엄마처럼 안살거라던 나는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딸의 미래를 위한다는 이유로 내 욕심을 딸에게 강요하며 딸의 인생에 사사건건 개입하며 딸을 힘들게 하는 내가 엄마의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이 책을 읽다보면 엄마에겐 죄송하고 딸에게는 부끄러운 존재가 바로 나인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딸과 엄마는 서로 자기 자신이기때문에 그렇게 모질게 말하고 질책하는데 인색함이 없다는 말에 백퍼센트 공감한다. 가끔 딸의 말투와 행동을 보면 흠찔 놀랄때가 있다. 내 모습을 딸에게서 보고, 내 엄마의 모습이 나를 통해 보여질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 모든게 자기자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니..이 책을 읽다보면 공감가는 내용도 많고 가슴을 울리는 내용도 많아 읽는내내 행복해하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70년 생을 되돌아보며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엄마와 딸에게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에게는 죄송함 딸에게는 미안함이 가득했으니까..엄마 생각이 날때마다, 내 욕심으로 딸을 아프게 할때마다 이 책을 펼쳐보면서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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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대학교수인 신달자의 삶은 여유롭고 평탄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ㅣ 민음사ㅣ 2008>를 읽고는 질곡많은 세월을 견디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삶의 이야기는 <여자를 위한 인생 10강 / 신달자 ㅣ 민음사 ㅣ2011>에서도 또다시 읽을 수 있었다. ![]() 시인이 전해주는 10가지 메시지는 자신의 힘겨웠던 경험담과 많은 사례들을 통해서 여성들에게 외로움과 실패에 두려워하지 말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 나가라는 희망을 주었다. ![]()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 중의 하나는 사랑을 읊조리고, 인생을 읊조리던 시인이 지나온 삶의이야기를 여과없이 속속들이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산문집을 통해서 그들의 아팠던 가족사들을 털어 보일 적에 그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용기있는 글들에 혹시라도 상처받는 가족들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은 해 보았는데, 시인의 글들도 그런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 이번에 시인은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책 뒷표지의 글 중에 이런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엄마처럼 살진 않을 거야 !", "딱 너 같은 딸 하나만 낳아 봐라!" 많이 들어온 말이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그만큼 엄마와 딸은 애증관계로 맺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시인은 '딸의 이름으로 70년, 엄마의 이름으로 45년 을 살았다. 그 세월 속에서 딸의 역할을 하면서 엄마와의 관계, 엄마에 대한 추억들, 엄마의 역할을 하면서 딸과의 관계, 그리고 딸과의 추억들. 간단하게 말한다면, 엄마에게는 고마움을, 딸에게는 미안함을 느끼는 딸이자 엄마였던 것이다.
시인은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자신의 경험담과 '엄마와 딸'이란 주제로 학생들과 수업을 하였던 당시의 학생들의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시인의 이야기는 거침없다. 누군가에게는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까지도 적나라하게 써나간다. 자신의 '엄마를 말하는 것이 수치였고, 부끄러움이었다'고 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엄마에게서 느꼈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풀어 놓는다. 그리고 딸에 대하여 엄마로서 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이쯤에서 독자들은 누구나 자신의 엄마를 생각하게 될 것이고, 자신이 딸로서 엄마에게 어떤 존재였던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자신이 딸에게 어떤 엄마인지도. 엄마는 딸이, 딸은 엄마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니, 때론 가장 편안하고 가까운 상대방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말과 행동도 서슴없이 할 수 있다. 그런 사례들은 이 책 속에 가득 담겨 있다. 그러나 나의 엄마를 생각했을 때에, 엄마에게 있어서 나를 생각했을 때에 우린 그런 관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편안하기는 했지만 단 둘이 있으면 엄마와 딸이지만 때론 어색하기도 했던 관계였다. 서로가 마음 속 깊이있는 찌꺼기까지 다 뺃어낼 정도는 아니었다. 마음을 모두 거침없이 표현하기 보다는 때론 가슴에 그대로 남겨 놓는 그런 모녀관계였던 것 같다. 엄마와 딸이지만 격은 있었고,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학창시절 등교할 때에 뭔가 마음에 거슬리는 일이 있을 때에 엄마가 차려준 아침상을 손도 안대고 대문을 꽝 닫고 학교를 갔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대문을 나서는 순간 머릿속은 후회로 가득 찼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의 그 발걸음을 무거웠고, 집에 들어선다는 것이 쑥스러웠지만, 그때의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던 그 모습 그대로 였으니, 엄마와 딸이 부딪힐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홀로 남으신 엄마가 아버지의 묘소를 일주일이 멀다하고 다니시던 모습은 아직도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힘드실 때에는 목놓아 꺼이꺼이 우시던 모습을 여러번 뵐 수 있었으니, 엄마는 내 마음 속에 아픔으로 남아 있다. 결혼 후에 내가 아들을 낳으니, 그 기뻐하시던 모습. 그리곤 그렇게도 열심히 다니시던 교회를 4주간이나 안 나가시고, 산후 뒷바라지를 해 주셨다. 딸만 낳았던 엄마의 설움이, 그리고 출가한 딸들이 손녀만 안겨주니 주변 사람들에게 '아들', '손자'라는 단어 앞에서 기가 죽으셨던 그 마음이 눈녹듯 사라지셨던 것 같다. 엄마 돌아가시고, 교회에서 장례식을 할 때에 교인들은 '아들 낳은 딸이냐?'고 물었었다. 대학입시에 떨어지고 후기 대학을 갈 때에 단 한마디의 꾸지람도 안 하시던 엄마, 직장생활 초기에 자취하던 딸에게 반찬을 싸들고 오셔서는 함께 연탄가스를 마셨는데, 딸을 살리겠다고 그 와중에 방문을 열고 나갈 수 있도록 해주셨던 엄마, 새벽 6시 30분 고속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딸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지어 주시던 엄마. 나에게 엄마는 가슴에 박히는 유리조각처럼 아픔으로 다가온다. 좀더 오래 사셨다면 맛있는 음식도 많이 사드리고, 여행도 함께 하고, 아버지 산소도 함께 가고, 성장한 손자 자랑할 수 있게 해 드렸을텐데.... 그래서 나는 또 눈물이 주르룩 흘러 내린다. 책 속에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을 본 시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도 그 연극을 몇 년 전에 보았다. 그때 연극 도중에 여기 저기에서 훌쩍거리던 울음 소리, 안 울려고 참고 참았지만 목이 콱 메이면서 어느순간 하염없이 쏟아지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 빠알간 토끼 눈이 되어서 공연장을 나오던 사람들의 모습. 책 속에 담겨 있는 엄마와 갈등을 빚는 딸들의 이야기는 나에겐 사치스러운 응석이나 복에 겨운 앙탈로 다가온다. 그러나, 실제로 엄마와의 사이가 좋지 않은 딸의 이야기는 우리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들이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와 딸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된다. " 엄마와 딸, 기본적인 사랑이 있으니 서로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삶의 기후를 보다 맑게 만드는 일, 엄마와 딸 모두 공부해야 할 일이다. " (p. 169) " 엄마는 결코 영원히 딸의 인생 코치로 있을 수 없다. 엄마가 바라는 그 성공에 닿지 않더라도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가 먼저 깨닫고, 스스로 맨 사슬과 매듭을 완전히 풀 수 있을 때, 엄마도 딸도 행복할 것이다. 엄마가 행복하기 위해서도, 딸이 행복하기 위해서도, 강압적인 모든 행위는 금지다. " (p. 178) 나는 엄마의 딸로는 살아 왔지만, 딸의 엄마로는 살아 오지 않았으니, 그 관계의 반쪽 밖에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엄마와 딸들에게 이 책은 서로가 어떻게 아픔을 주고, 어떻게 화해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는가 하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서로는 너무도 소중한 관계임을 일깨워준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나의 엄마를, 나의 딸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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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이름으로 70년, 엄마의 이름으로 45년을 산 시인에 대한 소개와 제목만으로 가슴속에 뭉클함을 주는 책이다. 너무 사랑하면서도 가장 예민한 부분을 긁어대는 복잡미묘한 엄마와 딸의 관계를 시인은 어떻게 표현하고 말해줄지 궁금했다. 특히, 아직까지 딸의 입장으로만 살아오고 생각했던 내게 두 역할을 모두 해낸 시인을 통해 엄마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이미 한 몸에서 같은 성(性)으로 출발한 관계이므로, 엄마 속에 딸이 있고 딸 속에 엄마가 존재한다. 그래서 그 어떤 관계보다 복잡하고 예민하며 죽도록 사랑하는 관계이다. 그 동안 내가 엄마의 잘못과 단점들을 왜 그렇게 모질게 꼬집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던 대목이다. 내가 닮고 싶지 않은 점들을 엄마에게서 보고, 또 내 안에서 그런 점들을 느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른이 되고 엄마에게 느낀 제일 큰 감정은 실망감이었다. 어렸을 때는 모든 것들 척척 해내고 항상 내 앞에서 든든하고 어른스럽게 느껴졌던 엄마가 어느 순간 결점이 너무나 많은 한 사람으로 느껴지면서 놀라움과 실망감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지금도 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엄마도 하나의 불완전한 사람임을 상기시키지만, 내가 세상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엄마로 존재한 사람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란 평생 머리로만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마침 책을 읽게 된 시기에 엄마에게 한 바탕 큰소리로 내 괴로움을 토해내고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다. 당시에 난 내가 힘들 때 엄마도 같이 힘들어 하길 바랬다. 기분이 좋을 때는 엄마에게 이것저것 좋은 것들을 가득 안겨드리고 싶은 마음이다가 또 어떤 작은 일에 심기가 상하면 금방 토라져 세상에서 제일 못된 딸로 돌변했다. 그런 내 감정상태를 매번 받아주는 것이 엄마에게도 참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걸 알게 되면서부터 엄마에게 감정에 치우쳐 상처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세 번 중에 한 번은 꼭 나를 드러내고야 만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엄마에게 뱉어낸 말과 엄마가 나에게 쏘아댄 말들이 일기장을 펼쳐보듯 가득했다. 학생들이 자신과 엄마의 사연을 들려주고 시인과 엄마 사이에 있던 작은 감정들까지 때로는 울컥하기도 하며 눈물을 머금으면서 속으로 마음껏 ‘엄마’ 라는 단어를 부르고 그려 볼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난 엄마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사랑을 매일 받아 먹고 자랐으면서도 왜 엄마는 날 더 사랑해주지 못하느냐고 떼를 쓰고 있었다. 나는 분명 사랑 받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자 며칠 전 엄마에게 쏟아 부은 독설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나는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은 곧잘 하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는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부터 엄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온통 미안함으로 가득하다.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 분명 울음이 말보다 먼저 밀고 나올 것 같아 쉽게 나오지 않는 것 같다. 현재 엄마가 내 곁에 살아 계시는 것 만으로도 가장 복된 일임을 순간순간 느끼게 되고 언젠가 꼭 엄마에게 내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 드리고 싶다. 그보다 먼저 앞으로 내가 엄마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내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맡은바 최선을 다하며 좋은 사람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사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려 꼭 엄마의 자랑이 되어드리고 싶다. 무엇보다 ‘엄마’ 라는 존재만으로 내 곁에 계셔줌으로써 나에겐 엄마가 내쉬는 숨결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큰 원동력이 되어 살아가는 힘이 되어 준다. 책에서 시인은 딸들에게 끊임없이 미안함을 토로한다. 내가 여태까지 맡아온 딸의 역할을 더 성실하고 다정하게 후회 없이 해내고, 앞으로 맡게 될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생각해보면서 꼭 나 같은 딸 낳아 우리 엄마가 겪었을 감정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맛보고 그 당시 엄마가 보여주지 못한 것들을 할 수 있는 더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은 소망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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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였나 아빠와 아들~ 그러면서 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똑같이 뚱뚱한 부자가 나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닮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랄까.
그렇지만 나는 엄마를 닮지 않았다. 엄마는 상꺼풀도 진하지만 나는 아예 드러난 쌍꺼풀은 없다. 어쩌다 피곤하면 살짝 지기도 하지만 금세 사라진다. 그리고 엄마는 피부도 하얀편인데 나는 하얗기보다는 씨스타의 효린처럼 좀 검은편이다. 입도 엄마는 적당히 크고 이쁜데 반해 내 입은 커도커도 너~무 크다. 엄마는 항상 그걸 내가 손가락을 빨고 입술을 뜯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 내 탓이라고는 하지만.
아뭏든 그렇게 겉으로 보이는 차이 말고도 엄마와 딸인 나는 성격상으로도 잘 맞지는 않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대장이 되어야 맘이 편한 사람이고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한 것을 좋아하고 엄마는 교회나 영화 같은 것을 볼때도 누가 앞에 있음 답답해 하고 하고 앞에서 튀는 걸 싫어라 하고. 그러면서도 엄마와 나는 잘 어울려 다닌다.
여행 갈때는 같이 가기도 하고 엄마가 하는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싸우기도 자주 싸운다. 그렇지만 내 성격상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에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남 흉도 보고 그런다. 그게 엄마와 딸인것 같다. 애증의 관계. 좋아하면서도 사랑하면서도 또 물고 뜯고 싸우는. 아들과는 할수 없는 그런 일들. 그게 엄마와 딸인것 같다.
저자는 자신이 엄마이면서 또 딸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두 상태에서 다 자신을 돌아볼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딸이었을때의 엄마와의 관계. 또는 엄마를 지켜 보았던 감정들. 그리고 자신 또한 세 딸을 낳아서 자신이 엄마가 되어서 보는 딸들. 그리고 엄마가 된 자신의 모습. 여자라는 존재는 엄마 밑에서 태어나 자라고 결혼을 해서 자신이 또 다른 아이를 낳고 그러면서 엄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고 그럼으로 인해서 자신의 위치가 바뀌고 그 결과 자꾸 변해가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엄마 밑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그렇지만 나 자신이 엄마가 되지는 못했다. 엄마가 되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혼자고 요즘은 싱글맘도 많다고 하지만 그만큼 아이가 꼭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가끔 오는 조카들도 하루 놀아주고 나면 부대낀다. 남자아이들이라 더한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엄마가 된다면 엄마의 입장을 좀 더 잘 이해할수 있을까. 본문에도 나오듯이 엄마들이 딸들에게 해 본 말중에 이 말은 꼭 있을꺼다. 나중에 커서 너 같은 딸 낳아보라고. 그러면 엄마 맘을 좀더 잘 알수 있을 거라고. 아마 내가 나같은 딸을 낳는다면 나는 좋을까 싫을까. 언젠가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 하나님의 보트' 에 나오는 딸 같으면 정말 키울맛이 날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속에서의 딸은 너무 애어른이고 엄마는 철없는 엄마이긴 하지만.
본문속에는 아주 오래전 부터 많이 들어오던 말들이 있어서 아주 반가왔다. 그래서 더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엄마와 딸들 중에서 이 이야기들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정말 특이한 관계들 말고는 다 해당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엄마와 딸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일지도 모르겠다. 읽고 나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수 있지 않을까.
딸들의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사춘기의 딸을 가지신 엄마들은 조금은 남의 일 같게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같이 읽고 서로의 이야기들을 나누어 본다면 훨씬 더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엄마와 나는 투닥거리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정말 미워서가 아니라 그게 사랑임을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에도 깨닫고 있다.
하나더 책에 씨디가 같이 따라왔다. 무슨 씨디일까 궁금했다. 책의 포지와 똑같이 디자인 되어 있는 씨디. 책을 읽을때 들으라고 노래를 담아 두었나 아니면 엄마와 딸이 들으면 좋을 노래들일까. 직접 들으보니 책에 있는 이야기들을 읽어두었다. 전체의 내용은 아니지만 제일 앞에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부터 시작해서 가장 중점이 되는 이야기들 8편을 실고 마지막으로 딸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마무리가 되고 있다. 엄마가 눈이 안 좋아서 밤에는 눈이 아프다고 할때가 많다. 그때 이 씨디를 틀어주면 책을 읽을수 없는 엄마에게 도움이 될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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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책이 배송되어왔다. 그냥 목차만 대충 훑어보고 나중에 읽을 생각이었는데... 그만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그땐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읽느라 꽤 맘이 아프고 힘들었는데... 이 책은 그렇게까지는 아니었다.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일까... 그냥 덤덤하게 엄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자신과 딸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작가의 이야기를 나도 그냥 담담한 맘으로 읽어내려갔다. 읽다보니 작가는 나의 엄마와 작가의 딸은 나의 나이와 비슷하다. 그래서일까... 읽어가면서 울 엄마도 이런 맘이셨을까, 울엄마도 할머니를 이리 그리워 하셨을까, 난 엄마한테 어떤 딸이지? 하며 나도 모르게 나와 상황을 비교하고 대조해가며 읽고있었다. 울 엄마도 고생많이 하고 자라셨다는데...우리에겐 그런 내색 한번 안하고 정말 곱게 잘 길러 주셨다. 가끔 어릴적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집이 아주 부잣집인줄 알았다는 우스갯소리도 듣곤 할 정도로 우리에게 정성을 쏟으셨던 엄마...다 커서 철들고 나서야 그게 모두 엄마의 희생과 노력 덕분이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아직껏 그 고마움을 말로도 표현을 못하고 있으니...나역시 글쓴이 마냥 뒤늦게 회한으로 남을것인지... 엄마에게서 딸로 다시 또 그딸에게로 이어져가는 연결고리속에서 나역시 그 안에서 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음을 깨달으며 조금 맘이 아파오기도 했다. 아직 어린딸이긴하지만 그 딸에게 "이론으로만 똑똑하고 실제로는 멍텅구리"인 엄마모습을 보이고 있고, "엄마가 뭘 알아"하는 대못을 나 역시도 엄마 가슴 속 깊이 박아버린 적이 있는 듯하다.(물론 철부지 사춘기 시절 일이지만...ㅠ.ㅠ)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 고마움 맘을 표현할 줄 몰라서 그냥 "밥이나 사먹으라"며 돈봉투나 보낼 줄 알았지 정작 엄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위안을 받고 위로받고 싶어하는지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나역시 엄마보다는 내 딸을 더 많이 생각하고 돌보고 공감한다. 아님 그냥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너무 서툰가... 걱정되어 나오는 소리가 퉁명스럽고, 속상하고 미안해서 나오는 소리가 짜증이다. 어리석음이여... 멀리 살아 자주 얼굴도 못보는 엄마가 오늘따라 너무 그리워 책을 덮고는 전화통을 길게 붙들고 실없는 소리를 해가며 기회를 보았지만... 오늘도 엄마한테 낳아주고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다. 엄마...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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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에 자주 등장했던 ‘여성 상위시대’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모계사회라는 말 또한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 반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물고 뜯고, 그러면서도 위하고 사랑하는 관계. 엄마와 딸은 애증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 난 것처럼 으르렁대다가도 속닥거리며 목욕탕으로 향하는 걸 보면. 요즘 유행하는 농담 중 이런 게 있다. 아들 하나 인 엄마는 골방에서 죽고(며느리가 방치해서), 아들 둘인 엄마는 길거리에서 죽고(큰아들, 둘째아들 집을 왔다 갔다 하다가) 딸 하나 인 집은 고속도로에서 죽고(국내 여행하다가) 딸 둘인 집은 비행기에서 죽는 다는..(해외여행 가다가) 대신 아들 둘 키우는 엄마는 죽어서 천국 간단다. 살면서 너무 고생을 해서 그 대가로. 평생을 싸우고 살지만 엄마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은 딸이고, 챙겨주는 사람도 딸이다. 아들은 이해하지 못할 참 희한한 관계이다. 신달자 선생의 에세이 『엄마와 딸』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딸이라서, 싸울 수 있는 친정엄마가 아직 건강히 살아계셔서, 나 자신이 딸을 가진 엄마라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자애롭고 이해심 많은 엄마가 아니고 나는 살갑고 애교 많은 딸이 아니다. 선생의 에세이에 묘사된 엄마와 딸의 모습이 바로 우리 모녀 얘기다. 못 잡아먹어 안달이지만, 알고 보면 서로를 끔찍이 위하고 ‘딱 너 같은 딸 하나만 낳아 키워봐라’라고 말하다가도 ‘너는 나야’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는. “엄마와 딸 사이는 간단한 관계가 아니다. 미워하고 사랑하고, 창피해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아픈 곳을 할퀴고 무자비하게 상처를 주고, 다시 그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빌고 미안해하고, 울고불고 통곡도 마다하지 않는다. 눈물이야말로 엄마와 딸 사이에 핏빛으로 흐르는 강물이다. 격렬하게 분노하고 격렬하게 싸우고, 그리고 격렬하게 몸을 다 바쳐 사랑한다.” 이제 곧 딸 둘 엄마가 되는 내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양육 방식을 통째로 뜯어 고치는 일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엄마에게 의지하고, 엄마에게 의사 결정권을 넘기며 자랐다. 사사건건 엄마의 눈치를 봤고, 엄마가 아니라고 말하면 반항 하다가도 결국 엄마의 뜻을 따랐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분고분한 딸은 아니어서 악다구니를 쓰고 버럭 화를 내고,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었었다. 사이좋을 때는 꼭 붙어서 목욕탕도 다니고, 이런 저런 온갖 얘기들 다 하면서 별거 아닌 일에도 수틀리면 꼭 그랬다. 엄마와 딸은 모름지기 ‘싸우는 사이’여야 한다는 것처럼. 나는 다정다감하고 푸근한 엄마를 꿈꾸었고, 엄마는 애교 많고 함께 쇼핑 다닐 수 있는 딸을 원했는데 그러기에 나는 강한 성격이었고 엄마는 내성적이고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았다. 같은 혈액형을 가졌지만 정 반대의 성격인 엄마와 나. 첫 딸을 출산했을 때, 나는 이 아이에게 최고의 엄마가 되어 주리라 다짐했던 건 내가 갖고 싶던 엄마를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점점 내게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곧 둘째 딸이 태어나는데, 두 아이에게 ‘우리 엄마’같이 할 까봐 두려웠던 참이었다. 『엄마와 딸』을 읽고 가장 기뻤던 사실은 우리 모녀가 ‘불량 모녀’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다른 집도 엄마와 딸이 티격태격 하는구나, 나와 우리 엄마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깨닫고 나니 죄책감을 덜고 사실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엄마와 딸은 왜 그 어떤 관계보다 복잡하고 예민하며 죽도록 사랑하는 관계인가. 그것은 아마도 엄마는 딸이, 딸은 엄마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독립성이 없는 두 가지 생이 두 가지 얼굴이 겹쳐지면서, 자신이 싫듯 싫어하고 자신이 안쓰럽듯 안쓰러워하는 것 말이다. 그것은 엄마 속에 딸이 있고 딸 속에 엄마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엄마는 딸의 잘못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딸도 엄마의 약점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생리적으로 현실적으로 여자, 딸, 그리고 엄마라는 공통 이름을 가짐으로써 서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모녀가 함께 보낸 33년의 시간과 아이와 내가 보낸 7년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책장을 덮고 나니 참 후련하다. 딸이어서, 딸을 가진 엄마가 되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걸 느끼게 해준 에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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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엄마와 딸]이라는 그 제목부터 나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난 왠지 가슴이 울컥하면서 눈물부터 쏟아진다.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것도 없고, 잘한것도 없는데 그냥 그렇다. 엄마가 돌아가신것도 아닌데 글을 읽는 내내 그녀의 마음을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야기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본인이 딸의 위치가 아닌 엄마로써 세 딸들에게 서운했던 일들이나 미안했던 이야기들도 많이 나온다. 난 아직 엄마가 되어보지 않아서, 자녀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같은것은 공감할 수 없었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 그녀만큼 됐을때 딸에게 미안하고 서운한 일은 되도록이면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열이 높았던 엄마의 교육철학 덕분에 그녀는 지금까지 온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왜!!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가르치려고 했던 엄마의 말을 청개구리처럼 듣기싫어하고 퉁명스럽게 대하고 살갑게 대하지 못했는지 이제와 후회를 한다. 화목한 가정이 아닌 부모님이 매일 싸우는 집에서 자란 그녀는 그 소리를 너무 듣기싫어 했고, 졸업식이나 친구들이 있는곳에선 쪽머리를 하고 시골할머니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엄마를 챙피해 하기도 했다. 그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나의 어릴적이 떠올랐다. 나 역시도 어렸을땐 부모님께서 자주 싸우셨고, 친구들 앞에서 우리엄마를 챙피해했다. 다른집에 가보면 부모님들 사이도 좋아보이고 잘지내는것 같은데 왜 우리집 부모님은 매일 싸우는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빨리 독립을 해서 집을 나오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했던 그녀가 외로움이 깊게 찾아오는 날이면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를 "사랑해..나의 영원한 친구" 라며 애뜻한 마음으로 부른다고 했을때.. 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엄마라는 존재앞에서는 다 죄인이 되는것 같다.
친 자매처럼 잘 지내는 엄마와 딸도 있고, 서로 어색하고 어려워하는 엄마와딸도 있다. 사례를 통해서 보니 더 실감이 나고 와닿았다.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은 다이애나 루먼스의 시가 담긴 부분이다. 엄마들의 실수를 교본으로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다시 아이를 낳아 키운다고 가정했을때 현명한 엄마들로 재탄생 시켜주는 그런 내용의 시이다.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아 키운다면 이러한 후회를 하지 않도록, 집을 세우기보다는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 보다는 손가락 그림을 더 그려주고, 더 많이 아는데 관심갖기 보다는 더 많이 관심갖는법을 배우도록 가르쳐주는 좋은 엄마가 되고싶다.
앞으로 하나하나 작은것부터 엄마와 더 친해지고 가까워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인생 막바지에 가서는 한것을 후회하기보다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한다' 라는 말도 읽으며 공감이 많이 갔다. 이미 한것에 대한 후회, 미련보다는 하지 못한것들에 대한 후회나 미련때문에 그러한 내용들로 쭉 적지 않는가!? 내가 딸로서 엄마에게 잘하지 못했던 부분을 미래의 내 딸에게 바란다면 난 참 염치없는 사람이 될것 같다. 내가 먼저 엄마를 더 많이 사랑한다면 미래의 내 딸 역시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_^ 우리엄마에게 난 딸이고, 내 딸에게 난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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