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소설 <청 춘>을 읽고...... (sappho01 씀)
마광수의 소설 <청춘>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암울하다. 더구나 과거에 작가가 보여주던 섹스에 대한 낙관적 찬양은 이 소설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섹스 예찬에 대한 기대감에서). 그러나 이 소설을 작가의 변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는 세월의 풍파에 지쳐 자포자기한 늙은 투사의 체념의 산물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나도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나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고 전체적으로 새로운 주제가 등장함을 알 수 있었다. 작가는 그동안 그의 소설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자살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놓고 이 소설을 전개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 자체가 희극과 비극의 공존이라고 하지만, 사실을 따지고 보면 인간은 태어난 것 그 자체가 비극이다. 작가의 시 <자살자를 위하여>에서도 밝혔듯이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저 죽지 말라는 강요를 받으면서 참고 살아가야 한다는 무언의 최면에 걸려서 살아갈 뿐이다. 삶의 목적을 억지로 만들어가며, 그 목적이 휘두르는 채찍질을 받으면서 살아갈 뿐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마광수 작가의 이번 소설 <청춘>은 특이하다. 전과는 다르게 자살을 주제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구성에 있어서도 기존에 에세이 형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던 사랑에 대한 생각들을 녹여내고 있고, 과거에 자주 언급했던 이야기들을 소설 중간 중간에 삽입해 놓고 있다. 애독자라면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 않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래서 더 실화같이 느껴진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이 소설은 작가의 대학시절을 그리고 있다. 문학서클 동인회에서 다미라는 여성을 만나 그녀와 연애하면서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 줄거리로 된 자서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은 청춘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그리워함과 동시에, 다미라는 여성의 삶을 통해 인간의 무미건조한 삶과 삶의 권태로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주 뛰어나게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한 여성을, 남주인공이 유미주의적 시각으로 한없이 동경하는 모습을 조망자적 입장에서 서술한 이 소설은, 남주인공이 소설 속에서 말했듯이 사랑이 전적으로 에로스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작가가 이 소설 중간 부분에서 말했듯이 에로스(성애)는 필로스(우애)와 같은 말이기에, 남주인공은 여주인공 다미에게 탐미적 경탄의 시선을보내면서 그녀와의 진지한 사랑을 이어나간다. 이것은 작가의 애정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 (소설 후반부에서는 다미와 육체관계를 갖지 않았음을 밝힌다). 이 소설은 다미가 자살하기 전까지 이어진 두 사람의 사랑을, 남주인공 화자의 추억담을 중심으로 그림같이 선명하게 서술한다. 그리고 작가가 살았을 당시의 시대배경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는 회고담이다. 그러기에 소설은 전체적으로 느리게 진행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이제 노년의 나이로 접어들고 있는 작가의 추억담이며, 과거에 대한 그리운 향수이기도 하다. 다미는 작가의 분신인 남주인공를 만나 그동안 누려보지 못했던 가난하지만 진지한 사랑을 나누었고 (그녀가 부호의 애첩(愛妾)의 딸이기 때문에), 그와 함께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해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퇴폐적 향락을 결코 포기하지못하였다. 두 사람의 사랑은 남주인공에게는 새롭고 낯선 환희와 경탄이지만, 다미에게는 그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누려왔던 지루한 사랑과 삶의 연속일 뿐이었다. 아마도 남주인공은 다미가 그동안 사귀어왔던 수많은 남자 중의 하나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두 사랑에게 있어 청춘이란 말의 뜻은 서로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남주인공이 갖는 현재의 삶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 (종국에 가서는 우리도 죽는다) 와, 다미가 갖는 과거 시점의 태도 (삶은 권태로움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는 죽는다) 는 서로 맞닿아있다.그러기에 이 소설은 작가의 청춘시절 회고담이고, 다미는 이른 나이에 자살해버려 현재까지도 그때 청춘시절의 싱싱한 모습으로 정지돼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미와 북한강변의 주막에 가서 듣게되는 대학생 또래의 청년이 부르는 노래 가사에 잘 나타나 있다. [내 나이 아직 어렸을 때에/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 어른만 되면 모든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러나 나는 지금 꿈을 이룰 수 없네/ 나는 이미 어른이기에/ 안쓰럽게 푸른 새싹으로 올라와/ 한스럽게 다 자란 싹으로 피어났던 /애닯고 허무했던 나의 희망이여/ 어쨌든 내겐 아직 희망이 필요하지만/ 이 얄미운 목숨을 지탱하기 위한/ 멍텅구리 같은 희망이라도 필요하지만/ 나는 이제 자라나는 나무가 아니라/ 점점 죽어가는 나무이기에 /나는 벌써 어른이기에/ 뒤섞인 나날 속에 지쳐 누운 추억의 그림자/ 초라한 기억 속에서 안간힘 쓰며 꿈틀대는/ 이 사랑, 이 욕정, 이 본능/ 그러나 나는 사랑을 이룰 수 없네/아 나는 어른이기에/ 절망보다 오히려 더 두려운 희망을 믿기엔 /이미 너무나 똑똑해져 버린/ 서글픈 어른이기에.] 다미는 청년의 노래가 끝나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이미 그녀는 어른이 다 되어버렸기에, 정신적으로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두 사람간의 이러한 감정의 대칭은, 작가의 현재 시점과 다미의 과거 시점이 종국에서 가서 만나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남주인공은 이 노래를 듣고서, 이 노래는 대학생이 아닌 늙은 사람이 부르는 게 더 제격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미는 노래의 모든 의미를 이해하고 있기에 오히려 서로를 이해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미의 자살 이후 남주인공은 마음의 아픔을 겪고서, 자살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다미가 쓴 <자살자를 위하여>라는 시를 보자.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마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마라 /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마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마라/ 바람이 부른 것은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이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이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다 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마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마라/ 그는 가장 솔직한 자/ 그는 가장 용기 있는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자] 다미의 자살과 남주인공이 노년에 가서 느끼는 죽음에 대한 생각의 귀착점은 서로 이렇게 맞닿아 있다. 남주인공은 결국 노년에 들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다미가 자살하게 된 심정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는 자살에 대한 긍정이요 죽음에 대한 긍정이며, 삶의 권태에 대한 자각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자살을 실존적 문제로 다루고 있으며, 한 개인이 자살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나중에 가서 다미의 자살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사실 작가 마광수의 삶에 대한 회의론적 시각과 인간 육체에 대한 유미적인 시각은 그동안 그의 모든 저작들에서 끊임없이 보여주었던 주제들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작가가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다는 생각을 들게 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살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조명한 것인데, 이것도 일부 시(詩)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소설 장르에서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소설 형식으로 그러한 주제를 한 매혹적인 여자의 삶에 투영시켜 서술해 나갔기에, 이 소설을 독자가 받아들이기에는 꽤나 충격적일 것이다. 이 소설의 결말은 남주인공이 다미의 친구에게서 다미의 자살 소식을 듣고 울었다는 것으로 끝나며, 그동안 작가에게 보내왔던 다미의 시들을 부록으로 소개하고 있다. 분명 마광수의 기존 성애소설과는 다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새로운 주제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오히려 부각되는 참신한 스타일의 소설이라서 나는 오히려 이 소설이 읽기 좋았다. 특히 <자살자를 위하여>라는 시가 소설을 통해 등장하여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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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얼마 전 [모든 것은 슬프게 간다] 라는 시를 통해 처음 만난 마광수 작가의 소설 청춘. 이 소설은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본인의 경험담과 생각을 풀어쓰는 식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그가 돌아간 과거는 제목의 청춘의 시기라 불리는 대학시절이다. 대학생때 여자를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 모임을 만든다. 그는 그 모임 통해 굉장히 예쁜 '그림 같은 미인' 다미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런 그녀와 사귀게 되면서 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을 통해 그때 -청춘이라 불리는 그때의 그가 바라보고 느끼고 경험했던 이야기와 그로 비롯된 그의 가치관(혹, 신념)등과 같은 이야기 들려주는 형식으로 내게 있어서는 조금은 독특한 소설이었다. 약간은 에세이류같기도 하고 이리 보면 일기 같기도 하고 저리 보면 자서전(전기문)같기도 했다. 그만큼 실제 경험담(인 것 같다)으로 느낄 만큼 사실적은 묘사들은 책을 읽는 흥미를 더 돋아줬다
이제 62살이 된 그에게 스무 살의 대학생의 그는 어떤 모습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그때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묻어나는 거 같았다. 더구나 소설을 읽으면서 아직 청춘을 추억할 나이가 아닌 나에게는 청춘을 그리워 한다는것음 참으로 부럽게 느껴졌다. 고작 몇 년 전의 기억도 드문 나에게는 더욱. 물론 소설이지만 (아닌 것 같지만) 주인공이 지금은 추억으로 기억된다는 그때의 소소한 경험들의 그의 과거-청춘을 더 빛나게 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흔들어 보아도 손에 잡히지 않지만 아픔도 잊고 세월도 잊고 사랑도 잊고 포플러는 오늘도 안타깝게 손을 휘저어 본다.
명백히 놓쳐버린 그 무엇이라도 있다는 듯이 -우리들의 포플러 中 -
나이가 들어 점차 감정이 메말라간다는 그가, 지금의 자신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는 그가 그리고 다미를 통해 값진 성장의 눈물을 보인 그가, 이후 그때만큼 울어본적 없다는 그가 나는 안타깝게 느껴지고도 했다. 결국 그녀도 그에게 단지 추억의 존재로만 남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참 슬픈 생각-은 나쁜 거겠지?
시를 읽고 겁을 냈지만 야하지 않아서 다행이면서도 실망했던 묘한 기분을 안고 그녀가 보냈다는 시를 다시 읽어본다. 그녀의 우울함이 느껴지는 시가 나에게도 우울함이 물드는 불길한 기분은 버리는 게 좋겠다. 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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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자유문학사에서 펴낸 마광수교수의 에세이집제목인 이책을 읽었던 그시절을 생각해본다... 일단 내가 생각나는건 참 세월한번 빠르다.....
나는 한생전 청춘인줄 알았고 나이 안먹을줄 알았는데... 이렇게 세월이 흘렀다니... 그당시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읽고 받았던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잊지못하겠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나 유명했던 교과서에 실리기까지했던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장희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이상의 <오감도> 등의 시를 저자의 독특한 시각으로 풀이해놓은게 넘넘 신선해서 지금까지도 깊게 각인되었다. 프로이드, 리비도, 관음증 등의 이야기에도 잔잔한 충격을 느끼게 햇다^^* 근데, 그때당시엔 이런 류의 책이 드물었기에 초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책은 정말 불티나게 팔렸었다.
시선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통해서는 긴 손톱에 진한 매니큐어를 바른 여인에 대한 느낌 등도 독특했고 그후 마광수교수님의 책은 가급적 놓치지않고 읽게되었다. 그러다가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를 출간했는데 외설스럽다는 검찰의 판단에 따라 전격구속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약 2개월간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셨던데 그 2개월이 마교수님께는 20년같이 느껴지는 가장 길었던 2개월이었던걸로 기억될 것이다.
아무튼 문학계의 풍운아이기도 했던 마광수교수님의 신작소설 <청춘>은 그런 의미에서 어떤 책일까 궁금증을 유발케했고 나는 이책을 기대를 하며 읽게되었다.
읽은 소감은 한마디로 즐겁게 읽었고 소설도 재미있었다. 소설은 마교수가 예전에 대학다녔을때 다미라는 여학생을 만나면서 전개 되는 이야기를 그렸는데 소설의 전개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생동감이 느껴졌다.
글고 역시 마광수교수 특유의 박식한 지식의 편린이 곳곳에 스며있어 마치 옛친구를 만난듯한 느낌이었다. 또한 예전의 명동이나 종로거리풍경과 낭만을 이야기할때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그시절로 돌아간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특히, 박인환시인의 걸작 <세월이 가면>이라는 시에 대한 설명에 무릎을 탁치기도 하였다. 명동의 어느 주점에서 술한잔하던 박인환시인이 즉석에서 <세월이 가면>이란 시를 창작하자 옆에 있었던 이진섭극작가가 즉석에서 작곡을 했고 임만섭성악가가 즉석에서 노래를 불러 제꼈다하니 참으로 멋과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구나 그걸 느꼈다^^*
참 그때는 정말 운치있고 낭만이 있던 시기였던거 같다... 아무리 21세기 최첨단시대를 살고있는 시대에 있다지만 오히려 그때그시절의 멋과 낭만이 그리운건 나뿐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리하여 이책은 막걸리와 시위와 전두환 군부독재타도를 외쳤던 나의 대학시절, 청춘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했고 또 민태원의 청춘예찬이라는 고등학교 1학년 국어시간에 배운 수필도 생각나게 하였다. 또 <젊음과 청춘은 그절정의 시기엔 가장 아름답게 만개하지만 늙어서 쇠락해진다면 가장 비참한 것>이라는 이문열의 <레테의 연가>인가 그소설의 첫머리를 떠올리게도 한다. 거기에다가 청춘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통해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청춘 지고 또피는 꽃잎처럼~~>이라고 불렀던 산울림의 노래도 떠올리게 하였다...
잠시 나의 20대로 되돌아가게해준 멋진 소설 청춘... 마광수교수님의 일련의 저작들에 비해 순수의 나라로 돌아가게해준 소설 청춘...
참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그리하여 이책은 예전의 청춘시절로 잠시 돌아가고싶은신 분들이나 그때그시절의 낭만의 세계에 젖어보고싶으신 분들은 부담없이 편하게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지금도 기억나네... 마광수교수님이 가장 좋아하는 시라면서 이책에서도 언급했던 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이란 시구절이...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눈동자입술은 내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때면 나는 저 유리창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벤치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해도
그눈동자입술은 내가슴에 있네 그서늘한 가슴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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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소싯적 겪었던 일들을 적었던 일기를
몰래 다락방에 훔쳐보는듯한 느낌이었다.
20대 펄펄 끓는 청춘의 남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아름답고 부유하고 컴플렉스라고는 전혀
없을것 같은 백옥같이 아름다운 여자
'다미'
다미에 대한 묘사는 단어 하나하나를 읽어 갈 때 마다
눈을 감고 상상하고 한 글자 보고 다시 상상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새 다미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초중반 상상했던 다미의 이미지와
작가가 묘사한 다미의 이미지는 어딘지 모르게
같으면서도 달랐다. 묘하게 슬프면서 화려하고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느낌이랄까?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때 나에게도 이런일이 있을까? 했는데
대학생활의 절반을 넘긴 지금
그런 상황은 없었다. 그러기에 주인공이 겪은 상황과 속마음이 더욱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딱 주인공 또래의 남자이기 때문에..
여학교 학생들과 적절한 비율로 동아리를 만들고
주 목적은 뒤로 한채 그저 로맨스에 푹 빠지게 되는
아름다운 상황을 한 번 쯤은 아니 수없이 생각 했었는데
대리만족으로 이룬것 같아 잠시나마 황홀했다.
Y대 학생들과 E여대 학생들이 처음 만났던 일
둘이서만 따로 만났던 일
다미가 부잣집 딸내미인걸 알게된 일
남산식물원에서 소나기를 맞으며 있었던 일
북한강 북유럽풍의 술집에서 있었던 일
북한산 세검정길 깊숙히 올라가 군인들에게 벌칙받은 일
그리고 다미가 그렇게 되었다고 들은 일
모두 다 내가 겪은 일 같았다.
주인공에 대한 감정 및 정서 이입 외에도
탁월한 단어선택과 정밀한 거리와 상점 그리고 시간적 배경의 묘사는
눈을 감으면 그 시절 그 곳에 와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그 때 서울은 이랬구나 싶었다.
며칠 전 다녀온 남산과 명동 그리고 이태원의
그 당시 모습과 최근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여기가 그 자리였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작가분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성에 관련된 단어들이 때때로 쓰이기는 했으나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하게 써서 그런지 자극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연스럽고 솔직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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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이상하게 '청춘' 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온 몸에 전율을 느낀다. 내가 바로 푸르른 봄과 같은 시대를 보내고 있구나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참 소중하면서도 무언가 뜻 있는 일을 해야할 텐데 자꾸만 한 곳에 정체되어 있는건 아닌가 하는 염려도 든다. 그래서 인지 자꾸만 청춘과 관련된 서적을 찾게 되고 또 그 속에서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갈구하려 하는 지도 모르겠다.
2. 마광수 작가의 '청춘' 이라는 소설은 작가 본인의 일기와도 같은 소설이었다. 꿈 많던 20대 초반, 친구들과 옆 학교 여학생들이 연합하여 만든 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다미' 라는 한 여인과의 추억을 상기시키며 쓰여진 이 소설은, 내가 찾던 청춘에 대한 지침서로는 조금 터무니 없이 부족할 지는 모르나, 마음속에 쾅 하고 깊은 여운을 주었다. 내가 바로 '다미' 와도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3. 소설 속 '다미' 는 문학 동아리 내 여학생들 중에서 최고 미인으로 꼽힐 만큼 매우 매력적이면서 아름 다운 여자다. 그리고 그녀는 남부럽지 않은 유복한 생활을 즐기며 살고있다. 그런데 그녀는 대체 뭐가 부족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해야했을까? 그녀에게 있어서, '청춘' 이란 단어는 아마도 무겁기만 한 짐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녀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였다. 자신의 나이는 아직 푸르르기만 한데도 불구하고 이미 세상을 다 산 사람이라고 해도 무색할 만큼 그녀는 삶에 지쳐있었다. 지친 삶을 그녀는 유쾌하게 승화시키지 못해, 스스로를 더럽혔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허무함을 이기지 못해 결국 자살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4. 나도 살면서 삶의 무게에 내가 눌리며 살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좀 가벼워 졌지만, 한동안 나도 참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 이대로 사는게 과연 옳은 삶인가 하는 고민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또 무언가 허무한 상태가 지속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상담 치료도 받아보았고, 또 무수한 남자들을 만나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럴 수록 내 마음속에 허무함만 더 커질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다미와 같은 삶을 살았지만, 다미처럼 삶에 무게에 결국 패배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를 제대로 이해해줄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고, 또한 나와 너무나도 닮은 친구를 옆에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작품 속 다미에게는 그녀의 몸만 탐하는 남자들 뿐이었다. 작가 조차도 다미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였다. 작가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도 다미의 외적인 모습에만 끌렸던 것이지,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 볼 만큼 성숙했던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5. 하지만 나는 내 내면의 모습까지도 사랑해줄 남자친구가 옆에 있고, 언제나 만나면 힐링이 되는 좋은 친구가 있고, 또한 무엇보다도, 내 얘기를 즐겁게 들어주는 부모님과 형제 자매가 곁에 있다. 한동안 세상이 외롭다고 느껴왔던 나였지만 내 주변에는 나를 바른길로 인도해줄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의 무게를 스스로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6. '다미' 의 자작시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면 어찌나 우울하던지, 결국 끝까지 읽지 못하였다. 참 아쉽다. 작가가 그녀의 자작시들을 받아보았을 때, 그녀의 내면의 상처를 보듬아 주었다면 '다미' 는 아마도 참으로 큰 위안을 받았을텐데... 나는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모르고,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 만약 이 때 내가 그녀의 친구였다면.. 그녀를 따듯하게 안아주고싶다. 그녀의 청춘을, 잔인하게 아프기만 했던 그녀를 그저 말없이 안아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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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청춘은 어떠한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까?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마광수의 청춘, 그떄 당시의 마광수의 사상 또한 엿볼 수 있다. 낮과 밤의 괴리를 통해 꿈과 현실의 괴리는 너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던 그.. 그 가운데 마광수의 고민과 생각등을 대학시절 만났던 다미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다름아닌 유미적 경탄으로.. "게다가 그 눈썹 밑에는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가 커다란 눈망울 속에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말로만 듣던 진정 그림같은 미인이었다. 그녀의 얼굴 피부색깔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흔하디흔한 비유대로 우윳빛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겠다. 마치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야들야들하고 속이 비쳐보이리만치 투명했다." 언뜻 출판사의 서평에서와 같이 청춘을 읽을 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떠오르기도 했다. 끝에선 마광수의 청춘이 싱그럽게 초록빛을 내게 해준 자양분은 다른 무엇도 아닌 다미였음을 고백하며, 연애시절 그녀의 편지속 시를 작품의 끝에 실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사랑 때문에 울긴 울었으되 그때만큼 절실하게 슬프게 울어보진 못했다. 다미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너무나 값진 성장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사랑의 감정에 점점 무디어져 갈 수 있게 만든 신호탄이기도 했다." 푸른 잎이 거센 바람을 맞고 점점 색이 변하여져 떨어져 가듯, 온갖 서투르고 치기 어린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 되어 점점 감정이 무디어져가 청춘을 지나 어른이 된다. 혹자는 기존과 다른 마광수의 소설에 변절이라고도 하지만, 이 책을 덮은 뒤 나는 생각한다. 변절이 아니라 진짜 알맹이 마광수를 본 것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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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마 교수가 쓴 소설을 그의 빼놓지 않고 읽었다. 마교수는 그의 긴 약력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의 소설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동시에 많은 관심을 모았다.
마교수는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논란을 불러일으키며 92년 10월 검찰에 구속되어 두 달 동안 수감생활을 한 후 95년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연세대에서 해직되고 98년 복직됐다. 하지만 2000년 재임용탈락의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연세대학교 교수로 있다.
이 소설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불안한 청춘 시절의 한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늘 우리들의 일상이 될 수도 있을 수줍은 고백을 통해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청춘이라는 한 시절의 소중한 의미를 되짚어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노래가 끝나자 그녀는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박수를 쳐준다. 노래에 감동했기 때문에 치는 박수가 아니라 그저 의무적으로 치는 박수인 것 같았다. … 나는 다미가 박수 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그녀가 갖고 있는 ‘우울증’의 미학을 확인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큰 소리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면서 힘껏 박수를 쳐줬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성(性)문학 작가로 상징되는 마 교수의 기존 작품들과는 전혀 다르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격이다. 책의 제목 만큼 풋풋한 문학 세계를 엿 볼 수 있다.
청춘이란 누구에게나 딱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봄날의 신록처럼 파릇 파릇한 생명력이 화려하게 꽃 피는 시절. 상큼하면서도 애틋한 그 무언가가 이끄는 시절은 현재 그 가운데를 지나가는 사람이나 그곳을 멀리 떠나온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찬란한 그 무엇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인생이란 사실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을 통하여 청춘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은 작가의 대학시절을 회고하면서 전개하고 있다. 다미라는 여성을 문학서클 동인회에서 만나 그녀와 연애를 하면서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내용으로 된 자서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청춘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그리워하며, 다미라는 여성의 삶을 통해 인간의 무미건조한 삶과 삶의 권태로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다미가 내게 몸을 찰싹 들러붙이고서 내 손을 잡은 후 춤을 리드해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발을 안 밟으려고 애쓰면서, 진땀을 흘려가며 구색을 맞춰 보려고 어기적어기적 스텝을 밟아나갔다.”고 말한다.
우리가 청춘 속에 있을 때는 젊음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함을 느끼다가 그 시절이 지나간 다음에야 청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인생이란 무엇이며, 청춘이란 무엇인가를 깊책은 인생 너머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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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는 오래 전부터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인물이었다. 그의 긴 약력이 보여주는 것은 마광수의 글들이 얼마나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동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모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92년 10월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으로 전격 구속되어 두 달 동안 수감생활을 한 후 95년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연세대에서 해직되고 98년 복직됐다. 하지만 2000년 재임용탈락의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연세대학교 교수로 있다. <구속>, <해직>, <필화사건> 등의 말이 등장하는 마광수의 이력은 극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광수의 소설은 무조건 야하다는 편견이 있다. 혹자는 외설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가 소설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이 책은 어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불안한 청춘 시절 한 젊은이의 이야기다. 대표적인 성(性)문학 작가로 통하는 마 교수의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섹스에 대한 낙관적 찬양은 이 소설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작가의 책을 읽는 독자는 은근히 좀 야한 듯한 내용을 기대할는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살다가 보면 먼 수평선 너머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가 지나온, 혹은 지나가고 있는 이 청춘 시절이 가장 빛나는 그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해준다. 특히 이 소설에서는 ‘자살’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스스로 죽은 자를 위한 시 ‘자살자를 위하여’를 썼다.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말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말라.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말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말라. 바람이 부는 것은 바람이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비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다 속 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 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말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말라. 그는 가장 용기 있는 자 그는 가장 자비로운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
이 책에서 작가는 “대학 시절에 나는 세 명의 여자와 연애를 했는데, 끝은 대개가 ‘눈물’뿐이었다.”고 회고 하면서 “내가 여자한테 이별 당하였을 때도 물론 울었지만, 내가 여자를 떼어버렸을 때도 울었다. ‘사랑’이란 것이 너무나 정체불명의 감정이요, 허무한 신기루같이 생각되었고, 당시로서는 그것이 곧 절망이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의 내용 일부분은 나의 지나온 일상이랄 수도 있다. 작가의 수줍은 고백을 통해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청춘’이라는 한 시절의 소중한 의미를 되짚어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젊음’은 지나가버린 후에야 그 소중함을 알 수 있는 반면, 그 속에 있을 때는 청춘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기 마련이다. 젊음은 불안을 잉태하지만, 그 불안은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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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의 신작 소설『청춘』은 이 책을 읽는 독자 그 누군가의 일상이 될 수도 있을 수줍은 고백을 통해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청춘’이라는 한 시절의 소중한 의미를 되짚어 보여준다.
‘젊음’은 지나가버린 후에야 그 소중함을 알 수 있는 반면, 그 속에 있을 때는 청춘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기 마련이다. 젊음은 불안을 잉태하지만, 그 불안은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이 책은 인생이란 먼 수평선 너머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기대하면서 살지만, 사실 우리가 지나온, 혹은 지나가고 있는 이 청춘 시절이 가장 빛나는 그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해준다.
청춘이라는 한 조각의 소중한 의미를 되새겨 본다는 것은 인생의 실체적 진실에 우리를 보다 가까이 인도할 것이다. 이 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홍역처럼 겪어낼 인생이라는 숙제에서 가장 보석 같은 한 순간인 ‘청춘’의 의미를 한번 되새겨 보자는 기획 의도로 탄생되었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이 소설에서 기억해내거나 혹은 거울 속에 현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中-
![]()
살아있는 독수리는 무섭지만 박제된 독수리는 멋이 있다.
살아있는 호랑이는 무섭지만 박제된 호랑이는 멋이 있다.
살아 있는 사랑은 무섭지만 박제된 사랑은 멋이 있다.
우리들의 삶은 '죽고 싶다'와 '죽기는 싫다'사이에 있다. 우리들의 사랑은 '자유롭고 싶다'와 '자유가 두렵다'사이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삶은 마치 박제된 독수리와도 같은 감미로운 가사상태이다.
우리가 바라는 사랑도 박제된 독수리와 같은 가사상태이다.
죽어가는 생명은 애처롭지만 박제된 생명은 멋이 있다.
-다미가 보내온 시 중에서-
![]()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 역시 인생을 조바심내며 보내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빨리 무언가 되고싶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 진짜 나의 목표는 어디일까 ?
안정을 추구하는 삶을 피하려고 하지만 종착지는 안정적일것이라 생각하며 ...
:탐탐이의 생각: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던 20대 초반, 문학동아리에서 만난 다미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애틋했던 그 시절의 빛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다미와의 사랑은 끝내 그녀의 자살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저자는 그녀와의 추억을 소중히 여기며 청춘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듯 하다.
청춘의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는 나는 과연 잘 보내고 있는 것인지, 시간이 많이 흘러 뒤돌아보았을때 회상할만한 청춘이 있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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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제목과, 표지에 나와있는 사진이 특징인 이 책은 소위 '야한' 내용을 잘 쓰기로 유명한 마광수 교수의 소설입니다. 기존에 읽었던 같은 저자의 몇 권의 다른 책을 통해 저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의 범위와 시각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이 저자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저자에 대한 인식을 살짝 다시 보게한 작품입니다. 야하다기 보다는 약간은 인간의 심리를 그대로 찍어놓은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요 200쪽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분량에 작은 크기의 이 책을 끝까지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책을 덮고 난뒤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작가에 대한 약간의 편견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책도 쓸줄 아는 작가였구나 라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습니다. 작가에 대한 제가 가진 편견으로 인해, 작가의 능력마저 의심했었다는 것이 약간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 저자의 작품을 많이 보지 못한데다가 작가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가 작품 그 자체 보다는 다른 미디어 매체를 통해 얻은 것이어서 그런지 자극적인 내용들이 먼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청춘이라는 시기를 지난 사람이나 지금 청춘의 시기를 살고 있는 모두에게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공감이 이 책의 큰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기계발서 처럼 어떻게 고치라는 식의 가르침을 주지는 않지만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청춘이라는 시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짧지만, 괜찮은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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