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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평전』 by 피터 폽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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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레 '민주화 운동의 꽃'이란 수식어 외에도 '철의 난초(Iron Orchid)', '더 레이디(The Lady)'로 불렸던 버마(미얀마) 아웅산 수치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지도자이다. 버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과 국회의원, 인도 첫 여성 대사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폈던 킨 치의 고명딸로 태어난 수치는 열다섯 살부터 시작된 삼십여 년에 이르는 외국 생활 동안 학자이자 두 아들의 엄마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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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레 '민주화 운동의 꽃'이란 수식어 외에도 '철의 난초(Iron Orchid)', '더 레이디(The Lady)'로 불렸던 버마(미얀마) 아웅산 수치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지도자이다. 버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과 국회의원, 인도 첫 여성 대사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폈던 킨 치의 고명딸로 태어난 수치는 열다섯 살부터 시작된 삼십여 년에 이르는 외국 생활 동안 학자이자 두 아들의 엄마로서 살아왔다. 그러나 운명의 1988년, 영국에 머물던 수치는 어머니 킨 치가 병으로 쓰러지면서 병간호를 위해 조국 버마(미얀마)로 찾아오고, 그 해 8월 버마 8888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버마의 국민들은 건국의 아버지 아웅산의 딸 수치가 자신들의 행동을 대신하기를 소망했고, 그것은 그녀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자 의무가 되고 만다. 이로써 버마의 민주화 운동 현장을 접한 수치는 개인의 삶에 막을 내렸고, 안온했던 사십대 중반의 삶 대신 가시밭길을 기꺼이 선택했다.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웅산 수치는 버마 국민들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소망을 품은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이자 상징이 되었다.  

 

 

 

바깥세상으로부터 단절된 가택연금의 삶을 오래도록 살았지만 수치는 그 존재만으로도 상당히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었다. 사프란 혁명 당시, 수치의 집 앞까지 행진하여 존경을 표하는 승려들의 행진(항쟁)과 부친의 후광 못지않게 그녀만이 지닌 신뢰와 애정은 인간적이면서도 지도자의 면모를 물씬 풍긴다.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이후 1000회 이상의 연설을 하며 민주화 불씨를 지펴낸 수치가 조국에 준 가장 큰 선물은 외부 세계에 버마의 현실을 알렸다는 점이며 동시에 버마를 향한 세계의 이목을 끈 점이다. 수치가 1989년 7월 가택연금을 당하면서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던 당신 수천여 명의 국민이 죽고 추방되고 감옥에 갇혔으며 빈곤과 공포의 삶으로 퇴보했다. 그러나 수치가 1989년 초반 6개월 동안 전국 곳곳에 뿌린 씨앗은 수천만 명의 버마 국민이 수치의 정당에 투표하게 만드는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냈다. 수치가 버마인의 가슴을 뛰게 한 메시지가 여전히 살아남아 울려 퍼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수치는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연설을 통해 "부패한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공포다. 권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키고, 권력의 폭력에 희생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복종하는 사람들을 타란시킨다."고 규정했다. 세계적 여성 리더들을 분석한 저서 ‘미즈 프레지던트’는 수치의 리더십을 ‘어머니 정부론’으로 대변한다. 어머니는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늘 제공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어머니의 이런 역할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듯이 정부 역시 어머니처럼 자연스럽게 역할과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치는 이에 대해 "가장 나쁜 정부는 민중으로부터 두려움과 혐오를 일으키며 증오의 대상이 되는 정부이고, 그보다 조금 나은 정부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정부"이며 "가장 좋은 정부는 사람들이 (어머니처럼) 그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정부"라고 역설한다. 수치 자신이 인정하듯 버마의 민주화는 아직까지는 미완성, 진행 중에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담금질된 자유와 인권 수호를 향한 그녀의 굳건한 의지는 조국 번영의 물꼬를 트는 단초가 될 것이다. 수치의 이름은 ‘희귀한 승리의 찬란한 집합’이란 뜻을 지니고 있듯 그녀의 정치 운명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진배없다.

 

수치가 1989년에 처음으로 가택연금을 당한 이후부터 15년 동안을 비좁은 정치적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녀의 상황은 민주화라는 과제를 이루기 위한 심지이며 견지였다. 남편의 임종 대신 조국을 선택하는 결단을 보여주었고 자식들과 생이별한 시련과 용기는 민주화 도약의 상징이었다. 2010년 11월 13일 마침내 가택연금에서 완전히 해제된 이후 지난 해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고 21년 만에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을 하는 등 자신이 창설한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이끌고 활발한 정치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한 그녀의 관심사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연대로 향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에서의 광주와 버마의 결속을 강조하면서 인권과 평화 등 세계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 협력하여 아직까지 완벽한 세상에 살고 있지 못하지만, 후손을 위해 안전지대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취지 하에 모든 생명체를 위한 인류의 지속적 노력을 역설했다.

 

이 책은 마치 다큐를 읽는 듯하다. 저자 피터 폽햄이 감금된 수치를 인터뷰하기 위해 5년 동안 버마를 은밀하게 방문하지만 정작 수치의 협조와 승인을 받는 것조차 힘들었고 외부에 이 책을 쓴다는 사실조차 조심스러웠으며, 버마 정부로부터 추방을 당하는 등 어렵사리 집필을 마쳤다고 후기에 전한다. 대신 수치의 선거 유세 기간을 함께 했던 마 떼잉기의 일기를 통해 수치의 인간적인 고뇌와 혁명에 대한 열정과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버마의 공식 국명은 미얀마지만 이 국명은 국민적 동의 없이 1992년 군부에 의해 정해졌을 뿐이다. 개칭된 미얀마라는 국명을 민주화세력들은 인정하려 들지 않고 여전히 버마라는 국명을 쓰고 있다. 민주화 세력의 구심점인 아웅산 수치 평전인 만큼 미얀마라는 유엔 공식 국명 대신 버마라는 국명을 쓰고 싶다. 

 

아웅산 테러 사건을 기억하는가? 북한이 1983년 당시, 버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겨냥해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킨 사건이 아웅산 테러 사건이다. 이 테러로 인해 서석준 부총리와 이범석 외무부 장관 등 17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버마 정부가 자국 영토 내에 아웅산 테러 추모 시설 건립을 허용했다고 한다. 버마는 자국을 방문 중이던 외국 사절이 북한의 테러로 숨진 사실을 수치스러운 역사로 여겨 우리 정부의 제안을 내켜하지 않았다. 더욱이 버마의 독립 영웅인 아웅산과 그의 동료를 추모하는 아웅산 국립묘지는 버마엔 성소와 같은 곳이라 평소엔 일반 국민에게도 개방되지 않으며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추모객을 받는다. 이런 곳에 다른 나라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시설을 세운다는 것은 버마 측으로선 통 큰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추모 시설 건립사업이 예정대로 추진만 된다면, 사건 발생 30주기가 되는 올해 10월 9일에는 테러 현장인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추모 행사를 열 수 있게 되어 유가족에게는 위안이 되리라.



d******7 2013.03.05. 신고 공감 21 댓글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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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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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좀 웃긴 대목을 발견했다.   수천 명의 자국민을 살육한 군사정권과 선뜻 무역에 나서지 않는 서방국도 있기는 했지만 태국, 싱가포르, 한국 등은 별로 개의치 않고 값싼 목재나 옥, 보석, 해산물 수입 계약을 재빨리 체결했다. 특히 한국의 유공(지금의 sk주식회사이다-편집자)이 외국 회사로는 처음으로 유전 탐사를 위해 내륙 진입을 허가받은 이후..(p.472-473)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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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좀 웃긴 대목을 발견했다.

 

수천 명의 자국민을 살육한 군사정권과 선뜻 무역에 나서지 않는 서방국도 있기는 했지만 태국, 싱가포르, 한국 등은 별로 개의치 않고 값싼 목재나 옥, 보석, 해산물 수입 계약을 재빨리 체결했다. 특히 한국의 유공(지금의 sk주식회사이다-편집자)이 외국 회사로는 처음으로 유전 탐사를 위해 내륙 진입을 허가받은 이후..(p.472-473)

 

한국이라는 이름이 나와서 반가워서 그런것이 아니라 마치 서방국들은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간절하게 원하는데 독재를 실시하고 인권을 탄압하기에 미얀마를 배제하지만 아시아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물불을 안가리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지금의 미얀마는 군부독재로서의 문제도 있지만 카렌족과 같은 다양한 민족들이 엉켜서 살고 있고, 그에 따른 민족적인 갈등은 무장투쟁으로서 표출되고 있다. 한마디로 내우외환이 끝이지 않고 있으며 다양한 갈등이 표출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얀마인데 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바로 미얀마를 통치하면서 자신들의 멋대로 국경을 정해놓은 영국에 있으며, 영국이 서방국가의 대표적인 국가임을 이야기하고 싶다. 

 

또 한가지 지금의 버마(1992년 미얀마로 국명변경)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것 같다. 2010년 미얀마의 군부정권은 민간정권에 권력을 이양하기로 합의했으며, 헌법을 개정함으로서 아웅산 수치여사가 선거에 입후보할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 아웅산이 버마에 남게된후 그녀가 군부독재저항의 상징으로 입후보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군부는 그녀가 선거에 입후보 하지 못하도록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에게 입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법을 제정했다-  2012년 아웅산 수치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미얀마는 단계적으로 민주화절차를 밟고 있고 개혁개방의 문을 조금씩 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미얀마의 정권은 군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버마의독립영웅 아웅산의 딸로 태어난 수치가족은 정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아웅산 수치는 인도대사로 부임한 어머니를 따라 인도로 건너갔고, 이때의 외국 생활은 그녀가 1988년 버마로 돌아오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녀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와 경제,철학을 공부했으며 뉴욕에 있는 유엔에서 일하다가 영국 학자인 에어리스와 결혼하고 두명의 아이를 낳았다. 국적을 미국으로 바꾸고 미국에서 엔지니어로서 영화로운 삶을 살던 그녀의 큰오빠처럼 그녀의 외국생활은 영원할 것만 같았고, 버마의 민주화는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인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988년 어머니가 노환으로 위독해지자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버마로 돌아왔고, 1988년 8월8일 있던 8888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던 군부독재가 보여준 잔혹한 모습들은 그녀를 영원히 버마에 남게 만들었고 군부에 의해 15년의 기간동안 가택연금에 처해지게 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버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버마국민들의 희망이 되었다.

 

수치가 정치 활동을 시작했을 때, 버마 국민은 수치가 내세운 어떠한 원칙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에 열광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수치의 가문과 상징성에 환호하고, '작고 예쁜' 그녀의 용기에 감탄한 것이다.

...초장기에는 약간 흔들림도 있었지만 가택연금 기간에 명상을 수련한 이후부터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비폭력 투쟁을 전개했다. (p.645)

 

책에서도 이야기 하고 있듯, 수치가 애초부터 버마의 민주화에 관심을 가졌던건 아니었다. 오히려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경제적,정서적으로 안정된 가정을 가지고 있으며 두아이의 엄마로서 이것은 당연한 모습이었다고 생각된다. 버마의 국부로 추앙받는 아웅산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버마의 민주화를 앞장서서 이끌어야 할 책임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40여년간의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버마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소망을 받아들였고 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버마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해내었다. 국제적인 압력속에 가택연금을 일시적으로 풀어준 시기를 제외하고 버마에 체류중인 20년중에 대다수의 기간을 가택연금속에 보내야 했던 수치여사. 남편이 임종을 맞이하였을때도 버마군부독재의 입국금지조치 명령이 내려질까 영국에도 갈수 없었던 그녀의 안타까운 마음이 심금을 울린다. 대한민국 역시 30년간의 군부독재를 겪어왔기에 미얀마의 상황이 충분히 이해된다. 조용하지만 꾸준히 그리고 때로는 강하게 군부독재에 항거하고 있는 그녀에게 무한한 찬사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평전을 리뷰로 쓴다는게 이렇게 힘든일인줄 몰랐다. 저렴한 관광지,베트남 전쟁, 킬링필드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져 있는 동남아에 대한 무지함과 책의 주제가 아웅산 수치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기때문에 미얀마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더욱더 어려움이 있었다.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면서 동남아에 관련된 서적들을 찾아 읽었고, 미얀마에 관련된 연구서적이 굉장히 적다는 것을 알고, 한국의 미얀마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얀마는 중국과 인도의 완충지이자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의 한 지역으로서 지정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한다. 이제 세계를 향해 개혁의 문을 열고 있는 미얀마, 아직은 상징적인 존재로서의 역할이 더 큰것 같지만 미얀마의 국부인 아웅산의 딸 수치여사가 그들을 어떻게 인도해 나가고 지도할지 기대된다.

 



b******n 2013.02.27. 신고 공감 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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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평전 - 민주화 운동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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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키고, 권력의 폭력에 희생당할지 모른다는 공포는 복종하는 자를 타락시킨다"  아웅산 수치여사가 집필한 책 『공포로부터의 자유』에서 수치여사는 권력이 아닌 '공포'가 사회와 사람을 부패시킨다고 말한다. 정확하게 버마의 상황은 '공포'에 휩싸여있다.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잃게 될까 두려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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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키고, 권력의 폭력에 희생당할지 모른다는 공포는 복종하는 자를 타락시킨다" 


아웅산 수치여사가 집필한 책 『공포로부터의 자유』에서 수치여사는 권력이 아닌 '공포'가 사회와 사람을 부패시킨다고 말한다. 정확하게 버마의 상황은 '공포'에 휩싸여있다.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잃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고, 그 지배를 받는 민중들 역시 군부가 자행하는 무자비한 학살에 신음하며 떨고 있는 것이다. 


<아웅산 수치 평전>은 한 여성의 담대하고도 처절한, 자국의 민주화를 향한 비폭력 저항과 열망 에 대해 다루고 있다. 버마의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세계에 알려진 것은 2007년 외신에 의해서다.  




'사프론 혁명'이라고 칭하기도 하는 반정부 시위는 군부가 예고도 없이 경제적인 조치를 취함으로 국민이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든 일을 배경으로 일어났다. 당시, 아무런 무기도, 정치적 선동도 없던 승려들을 향해 군부는 총과 수류탄으로 억압을 자행했고, 일본인 기자 나가이 겐지가 사망하게 되면서 버마의 만행은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군부에 의한 무자비한 행태는 이미 수십년간 지속되어왔고, 철저한 폐쇄정책을 통해 세계사회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수치여사를 중심으로 민주주의를 향한 비폭력 저항운동은 군부의 통치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 왔다. 


1988년 전국적인 민중 항쟁이 일어났고, 군부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며 버마를 '미얀마 연방'으로 교체하기에 이른다. 1989년에도 민주화를 열망하는 민중들의 항쟁이 이어졌지만 군부 독재정권은 수천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키며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이 역사적 시점에서 수치여사의 정치적 참여가 시작된다. 


아웅산 수치여사는 버마 독립 영웅 아웅산의 셋째로 태어났다. 아웅산 장군은 영국의 지배하에서 버마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군인이자 민족의 영웅이었고, 세계2차대전 이후에는 일본군에 의해 지배당하는 조국의 상황을 타계하고자 연합군과 협력을 맺는 과감한 행동으로 지금까지 버마 국민의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는 인물이다. 1988년 민중 항쟁에서 군부의 독재에 신음하던 민중은 자신들을 하나로 결집시켜 줄 지도자를 찾고 있었고, 수치여사는 한 가정의 어머니에서 버마 민중을 위한 영웅으로 정치에 참여하기에 이른다. 


20년이 넘는 세월의 가택연금과 동료들의 체포, 구금, 억류, 사망 등의 시련과 고통 가운데서도 수치여사의 민주화를 향한 의지와 비폭력 저항에 대한 확신은 식을 줄 몰랐고, 버마 국민도 수치여사를 잊지 않고 기다리며 여전히 수치여사를 민족의 지도자로 우대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이다.


지구의 한편에서 아직도 독재정권에 의해 신음하는 인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안타까운 마음과 인간의 한계에 대한 깊은 한탄이 공존하게 된다. 수치여사의 비폭력 저항 운동이 실패했다고 판단하는 외신들도 있지만, 버마의 민주화를 향한 꿈은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다. 

s********8 2013.02.28.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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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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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미얀마와 우리나라가 비슷한 역사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고,비슷한 시기에 해방을 맞았으며 군부 정권의 독재와 민주화 항쟁 시절을 겪었다. 그리고 직급은 다르지만 최근 여성지도자가 탄생했다는 사실도 두 나라가 가진 공통점이다.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미얀마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책을 통해서 알게 된 북한의 테러사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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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미얀마와 우리나라가 비슷한 역사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고,비슷한 시기에 해방을 맞았으며 군부 정권의 독재와 민주화 항쟁 시절을 겪었다. 그리고 직급은 다르지만 최근 여성지도자가 탄생했다는 사실도 두 나라가 가진 공통점이다.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미얀마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책을 통해서 알게 된 북한의 테러사건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에 <아웅산 수치 평전>을 읽게 되면서 미얀마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독재 정권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고,아웅산 수치 여사를 포함하여 국민들 대부분이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아웅산 수치를 다룬 최초의 전기물이라고 한다. 이전에 나온 책 대부분은 미얀마의 역사나 정치 등 주변 이야기를 다루었고,아웅산 수치도 직접 자서전을 출간한 바 있지만,외국인이 쓴 전기는 이 책이 처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미심쩍기도 했지만,7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내용을 다 보고나서 든 생각은 저자가 정말로 목숨을 걸고 쓴 책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가 직접 아웅산 수치 여사와 측근,심지어 군부 정권의 인물들 일부까지 만나면서 대화를 기록한 걸 보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이 책에서 아웅산 수치의 어린시절에 대한 비중은 그리 많지 않고,남편이었던 마이클 에어리스와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중간 이후에 갑자기 튀어나오고 또한 1988년부터 약 20년 동안의 이야기가 전부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웅산 수치가 왜 남편과 아들을 해외에 두고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냐 하는 것이다. 한 남편의 아내이자 아들의 어머니로 살아갈 수 있는 평범하고도 행복한 기회가 있었는데 굳이 목숨을 거는 행동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첫 장을 통해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바로 아웅산 수치 여사의 부모 때문이다. 아버지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때부터 독립을 위해 일본군과 협조한 척 하면서 뒤로 해방을 꿈꾼 장군이었다. 아웅산 수치의 나이 2살 때,아버지는 반대파 세력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그 이야기를 전해준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본격적으로 미얀마에서 민주화운동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그녀의 나이가 벌써 40을 넘은 나이라는 걸 고려해본다면 한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놀라웠다. 그리고 1989년부터 시작된 가택연금은 그녀에게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전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됐지만,자신 때문에 감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동지들을 생각하면서 연금 1년 동안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 부분에서는 동지들보다 편한 현실이 오히려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아웅산 수치의 진정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그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아웅산 수치의 비폭력은 그녀가 존경해 마지 않는 간디의 비폭력과는 다르다면서 그녀의 온건한 노선에 대한 비판도 하고 있다. 즉,간디가 살았던 시대에는 영국정부가 온순한 편이었던 데 반해,아웅산 수치가 살았던 시대의 군부 정권은 아예 아웅산 수치의 선거 출마를 막았으며 가택연금에다가 집회 금지 등 철저하게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막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웅산 수치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 때문에 그녀가 목숨을 잃을 뻔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의 입장은 그게 다가 아니다. 바로 이 부분이 당시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결말이 아직 열려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앞으로 그녀의 행보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라도 그녀의 가택연금이 풀려서 정말 다행이다.

 

2013/3/6

l*****3 2013.03.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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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평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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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여사는 오래 전부터 나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버마 민주화의 어머니요 오랜 가택연금이란 것에서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더구나 그녀는 이번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되어 내한을 하므로 더 더욱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그에 때라도 맞춘 듯 그녀의 평전이 나와 주었다. 궁금하던 차에 알 수 있게 되어서 잘 된 일이긴 하지만, 조금은 이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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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여사는 오래 전부터 나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버마 민주화의 어머니요 오랜 가택연금이란 것에서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더구나 그녀는 이번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되어 내한을 하므로 더 더욱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그에 때라도 맞춘 듯 그녀의 평전이 나와 주었다. 궁금하던 차에 알 수 있게 되어서 잘 된 일이긴 하지만, 조금은 이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래 현존해 있는 사람의 평전은 잘 안 쓰지 않는가? 하지만 그것도 이젠 편견인가 보다. 오래 전 현존해 있는 에코의 평전이 나와 준 걸 보면 말이다.       

 

아마도 아웅산 수치란 이름이 아니었더라면 버마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그다지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과연 아웅산 수치를 빼놓고 버마라는 나라를 얘기할 수 있을까? 버마라는 나라를 빼놓고 아웅산 수치를 말할 수 있을까? 지금 그 나라는 아웅산 수치를 정확히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그녀로 하여금 버마의 과거와 오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나라의 저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흡사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왜 국가와 그 지도자들이 시민을 위협하는가 하는 것이다. 나라가 있어야 개인이 존재할 수 있다. 과거 나라 없는 국민 아니 개인이 어떤 운명에 처해지는지는 우린 역사로부터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지도자는 나라를 번영케도 하지만 나라를 도탄에 빠지게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권력과 개인의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안정되고 번영된 삶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아웅산 수치가 그토록이나 학식이 출중하고 똑똑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고백하기는 우리나라 보다 못한 나라의 국민은 학식도 그다지 뛰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무의식적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은 또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생각 밖에는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새삼 드는 생각은, 많이 배우고 뛰어난 학식을 가진 사람이 무슨 일을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배운 사람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은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 되지 말아야 한다. 배운 사람은 반드시 국가에 봉사하고 헌신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위해 더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지 못한 나는 참 부족한 사람이란 생각을 해 본다. 

 

이책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아웅산 수치와 같은 입장이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곤했다. 남편이 죽어가는데 과연 나라를 지키겠다고 그의 임종을 지켜보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가택연금으로 억류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된다. 무엇을 위한다는 건 그만큼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다. 공교롭게도(?) 버마나 우리나라나 여성이 한 나라는 짊어지고 나가는 지도자가 되었다. 그들이 이끌어갈 나라의 미래는 어떨까 나도 심히 궁금하다.

 

이 평전은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일 수도 있는데 어렵지 않게 읽히는 것이 장점이긴 하다. 하지만 보다 엄숙한 마음으로 읽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위한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m****9 2013.03.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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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철의 난초란게 노벨 평화상은 정말 그냥 받는게 아니구라는 느낀 아웅산수치 평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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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평전 저번주말에 샀는데 워낙 두꺼운지라 아직 다 못봤다. 산 주말에 조금 보고... 나두었다가 어제 아웅산 수치 여사의 내한으로 이슈가 되고 그녀의 단아하고 뭔가 포스있는 모습을 보니 궁금해져서  단숨에 반 정도를 읽었다.   요즘 근 현대사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면서 (이이제이탓...) 민주화라던가 이런것을 조금씩 알아가던중 아웅산 수치를 읽으니.. 왠지
"아..철의 난초란게 노벨 평화상은 정말 그냥 받는게 아니구라는 느낀 아웅산수치 평저" 내용보기

아웅산 수치 평전

저번주말에 샀는데 워낙 두꺼운지라 아직 다 못봤다.

산 주말에 조금 보고... 나두었다가

어제 아웅산 수치 여사의 내한으로 이슈가 되고 그녀의 단아하고 뭔가 포스있는 모습을 보니 궁금해져서

 단숨에 반 정도를 읽었다.

 

요즘 근 현대사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면서 (이이제이탓...)

민주화라던가 이런것을 조금씩 알아가던중 아웅산 수치를 읽으니..

왠지 모르게 우리나라와 비슷한게 너무 많다.

 

많은게 다르지만  또 많은게 닮았다.

 

장군의 딸로 일제치하의 버마를 독립시킨 독립영웅의 딸이었다.

그 아버지의 치열한 삶이 그녀가 아주 어린시절에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음에도

그녀의 삶 전체에 버마와 아버지가 거의 하나로 인식되어 조국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가진 수치여사

나는... 우리 나라에대해서 혹은 나 자신에 대한 사색과 나만의 시선이 없었음을 반성하게 된다.

 

나는 외국에서 2년정도 살았다 각기 다른곳에서 1년씩

그렇게 외국에 있다보면 우리나라에 대해 묻는 현지인과 그들이 보는 한국에 대해 들으면서

내가 참 모른다와 내가 별 생각이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살다보면...

나는 그냥 살고 있었다.

 

솔직히 수치여사는 버마에서 귀족처럼 자랐고 좋은 교육을 받고

큰 어려움 없이 살았으며 아버지덕에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따른 책임이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그녀를 결국 버마로 이끌었다.

사랑하는 자녀와 남편과의 이별까지 하게 할 민주화의 소용돌이속으로...

 

그녀의 자제력과 깊은 생각은 나를 반성하게 했고

남편의 사랑과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평전을 읽는건데 왠지 연애가 하고싶고

결혼하면 난 성숙한 아내이자 어머니 그리고 한 사람의 여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린시절과 유학생활 부분을 읽을 땐 구부리고 있던

허리가 절로 펴졌다.

항상 꼿꼿한 바른 자세의 수치 여사

나도 그렇게 우아하고 싶어졌다.

 

이번 주말이면 다 읽을 것 같은 여사의 평전

그녀의 내한에 맞춰 이 책을 읽으며

같은 하늘 아래 그렇게 멋진 여성이 당당히 살아가는 것을 가슴에 새기고

나도 지금부터 허리를 꼿꽃이 새우고...살아가야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w**d 2013.01.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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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수치 평전 - 그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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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웅산은 다른 이유로 더 익숙해졌던 이름이다. 바로 아웅산 테러사건이 있었기 때문인데.. 아웅산 테러사건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버마를 방문중에 아웅산 묘소에 참배중에 일어난 사건이였다. 그래서 버마 민주화 운동의 어머니라는 아웅산 수지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때.. 앗.. 그 사건.. 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 묘역에 계신분이 바로 아웅산 수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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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웅산은 다른 이유로 더 익숙해졌던 이름이다. 바로 아웅산 테러사건이 있었기 때문인데.. 아웅산 테러사건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버마를 방문중에 아웅산 묘소에 참배중에 일어난 사건이였다. 그래서 버마 민주화 운동의 어머니라는 아웅산 수지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때.. 앗.. 그 사건.. 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 묘역에 계신분이 바로 아웅산 수지여사의 아버지임을 알 수 있었다.

아웅산은 버마인들에게 있어서는 희망의 상징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방향을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자부심 그리고 자존감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였다. 그리고 '버마인은 태어날 때부터 삶의 주인이 될 권리를 가진다.'라는 생각으로 버마가 독립할 수 있게 진두지휘한 인물이였다. 비록 버마가 공식적으로 독립하기 1년전에 암살당하지만.. 그래도 그의 정신을 그의 딸인 아웅산 수지여사가 전승하고 있다.
물론.. 버마는 독립했지만.. 그 후,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한때는 아시아의 곡창지대였던 나라가 이제는 유엔에 최빈국의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요청을 보낼정도의 상황에 이르게 된다. 아웅산 수지여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독재정권의 견제에 의해 인도의 대사로 임명된 어머니를 따라 떠난다.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그녀의 나이는 고작 두살이였다. ㅎ 그 후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그녀는 어머니의 병환으로 인해 버마로 돌아갔다, 약조차 구할수 없는 조국의 현실에 당황한다.


그리고 그 시기.. 군사독재정권에 항의하던 학생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었고 민주주의에 대한 외침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때 사람들에게 아웅산이라는 이름은 잃어버린 기회와 희망을 상징하고 있었고, 그녀는 매우 신중하게 버마 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어쩌면 그녀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식적으로는 독립했으나, 여전히 독재정권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버마를 위해 그녀는 아버지의 뜻을 이은 2차 독립운동을 선언한다. 하지만 오만한 독재정권은 국민을 향한 선전포고로 답을 하고 만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남의 이야기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과 시민들의 희생이 점철된 민주화 운동.. 그리고 그녀 역시 민주화를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그녀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길고 긴 20여년간의 가택연금이다. 연금이라고 하나 그녀는 그곳을 떠날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면 다시는 조국에 돌아올 수 없었기에 그 곳을 지킨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던 아웅산 수지여사는 버마인들에게는 희망이였다. 랑군시 대학로 54번가.. 그녀의 집에 켜져 있는 불은.. 그녀의 신념처럼 버마인들의 마음속에서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연금에서 풀려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우리나라를 방문해 독재자가 마음대로 바꾸어버린 미얀마가 아닌 버마로 그리고 자신의 이름은 아웅산 수지로 표기해줄것을 요청했다.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국가에 대한 자존감의 표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버마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고 근대 세계의 발전과 조화를 이루게 만드는 것'이라는 그녀의 꿈이 앞으로 버마의 빛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a******e 2013.03.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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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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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민주화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얼마전 방안을 했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민주화운동의 어머니 또는 레이디 라고 불리우는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너무 늦게 알아서인지 더욱 그녀를 알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이 결코 쉽거나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인터넷이나 일부 서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최근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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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민주화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얼마전 방안을 했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민주화운동의 어머니 또는 레이디 라고 불리우는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너무 늦게 알아서인지 더욱 그녀를 알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이 결코 쉽거나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인터넷이나 일부 서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최근 근황과 노벨평화상 그리고 창살 없는 감옥 생활 등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대략적인 내용뿐이였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아웅산 수치 평전>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터 폽햄은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아웅산 수치 평전>을 통해 전세계 민중이 주목한 아웅산 수치의 삶을 5부로 나눠 들려주고 있습니다. 1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 아웅산 수치를 알 수 있는 큰 틀에서 접근하며 그녀의 영향력이 정치분야뿐만 아니라 버마의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분야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의 탄생, 신념, 20여 년 동안 가택연금에 대한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2부에서 5부까지는 그녀가 정치 아니 조국에 헌신하게 되는 과정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녀의 신념에 대해 연설과 주변 배경을 곁들인 설명은 그녀를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준 것 같습니다. 또한, 마 떼잉기의 일기를 통해 수치 여사에 대한 인간성과 성격을 사실적으로 접근하여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45년 6월 19일 태어난 아웅산 수치는 '희망찬 승리들을 특별하게 모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희망찬 승리가 어쩌면 현재이거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더 낳은 승리를 위해 그녀가 탄생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아웅산 수치. 그녀 개인의 삶이 민주화 역사의 물결을 바꾸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직 민주화가 필요한 곳에 그녀가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저자는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책 마지막에 '더 읽을 책들'을 소개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수치는 결코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의 딸인지를 잊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반드시 언젠가는 조국이 자신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도 않았다. - p. 62

 

"제가 외국에서 살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외국인과 결혼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조국에 대한 저의 사랑과 충성을 약화시키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약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 진실입니다. 조국에 대한 저의 헌신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p. 126 

 

"제가 감옥으로 끌려간다고 해도 그게 나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감옥에 끌려가게 된다 해도 폭력으로 맞서서는 안 됩니다." - p. 160

 

"무장 투쟁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그런 투쟁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 p. 222

 

"수치는 항상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아버지를 존경하는지 말했어요.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자신도 걸어가야 한다고 얘기하곤 했지요. 그리고 글자 그대로, 아버지의 길을 걷는 것이 수치의 첫 번째 야망이었어요." - p. 324

 

"수치는 조국에 대한 확고한 의식과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윤리적으로 엄격했거든요. 윤리 의식이 거의 드러나 보일 정도였죠.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았어요. 그냥 하지 않았어요! 순진하다 싶을 정도로 윤리적 기준을 적용했어요." - p. 356

 

"어렸을 때 저는 아버지와 조국을 결코 분리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너무 어렸고 항상 조국과의 연관 속에서 아버지를 떠올려왔으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저는 조국의 개념과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힘듭니다." - p. 430

 

"권력이 아니라 공포가 사람과 사회를 부패하게 한다" - p. 453

 

수치는 자신이 지은 시에서 민주화 운동 세력을 이렇게 비유했다.

 

우리의 두 손에 담긴

에메랄드 처럼 차가운 물,

오, 그러나 우리는

두 손에 담긴 물속의

유리 조각들이리라.

 

 

수치는 이 시에 대해서 "파괴적인 통치자의 힘에 저항하여 스스로를 지키려는 유리 조각들, 작은 존재들이지만 그 날카롭고 반짝이는 힘으로 저항하는 민중, 억압의 손아귀에서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용기의 불꽃 같은 것을 상징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 p. 454 ~ 455

 

"국민은 수치 여사를 도덕적 나침반이자 사태의 목격자로 생각했어요. 수치 여사의 존재는 도덕적인 본보기로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 p. 663

 

 

h******w 2013.0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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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질 수 없는 길을 걷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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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할 자유가 있듯 책을 읽을 자유 역시 본인에게 있다고는 해도, 평전을 읽는 행위는 좀 더 고차원적인 독서에 속한다. 한사람의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는 일은 삶이 그런 것처럼 어느 정도의 희비극을 온전히 체험하게 하기 때문인데, 그런 면에서 수치 여사의 삶은 과거에는 물론 지금 현재까지도 버마라는 작은 아시아국가의 자유이자 희망이다. 수치는 1945년 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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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할 자유가 있듯 책을 읽을 자유 역시 본인에게 있다고는 해도, 평전을 읽는 행위는 좀 더 고차원적인 독서에 속한다. 한사람의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는 일은 삶이 그런 것처럼 어느 정도의 희비극을 온전히 체험하게 하기 때문인데, 그런 면에서 수치 여사의 삶은 과거에는 물론 지금 현재까지도 버마라는 작은 아시아국가의 자유이자 희망이다. 수치는 1945년 버마가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탈출하려던 태동기에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버마 독립 영웅 아웅산이었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난 곳은 한 병원이었다. 어머니 킨치는 간호사였고, 독립운동 중 다친 아버지는 어머니의 간호를 받다가 자연스럽게 사랑과 믿음이 싹텄다. 그런 수치에게 아버지는 곧 조국이자 자유이자 그리움이다. 그녀는 두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한참 응석부려야 할 나이에 군부독재로부터 조국 버마에서 쫓겨나 살았다. 아웅산과 독립운동을 함께했으나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네윈이 곧 독립이자 자유인 수치네 가족을 견제한 나머지 킨치 여사를 인도와 네팔 주재 버마 대사로 임명한 것이다. 한자리 주고 지켜보겠다는 심산이 컸다.

 

수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인도 상류층 아가씨와 함께 자라며 같은 식민지로서의 인도와 버마의 차별적 대우를 확연하게 깨닫는다. 이후 인도와 옥스퍼드에서 대학을 다니며 공부하다가 티베트 연구가 남편 에어리스를 만나 살지만 그녀에게 조국 버마는 언젠가 돌아가야 할 품이자, 평화와 민주를 이룩해야 할 사명감을 주는 마음의 고향이었다. 1987년 어머니 킨치 여사의 병환으로 여느 때처럼 버마로 돌아온 수치에게 들이닥친 조국의 민주화 혁명 물결은 갑작스럽게 다가온 기회이자 수치의 일생을 뒤바꿀 전환점이 된다. 작은 시발점으로부터 촉발된 자유와 민주에 대한 열망이 학생과 승려들, 일반인들에게까지 퍼지면서 군부와 경찰-시민의 대전투가 시작된다. 아웅산 장군의 딸로서 평화와 자유의 상징이던 가족들은 작은 오빠가 어렸을 때 죽고, 큰 오빠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며 버마의 시국과 상관없이 지냄으로서 수치에게로 쏠렸다. 고민하던 수치는 1987년 언론과 정계의 수많은 민주 열망자들을 만나 힘을 축적하고 이 물결에 동참하게 된다.

 

네윈의 반격은 상상이상으로 강하고 질겼다. 일시적으로 타도된 군사정권은 계엄령 종결과 민주를 강조한 타협안을 깨부수고 다시 집권하며, 이후 이뤄진 선거의 결과를 억압하고 뒤집어버린다. 수치 여사는 이미 뽑힌 국회의원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오랜 기간 가택연금에 처해진다. 이후 이십 년의 세월에 갇힌 수치 여사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이 책이 생생히 복기한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일화가 남편 에어리스, 두 아들과 떨어져 생활해온 것과 전립선암으로 투병중이던 남편의 마지막을 보지 못한 것인데, 이는 강제가 아니라 의지로 행한 점이어서 수치와 그 가족 그리고 버마 국민들에게 민주와 평화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수치는 언제든 버마를 떠나 가족들이 기다리는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한 번 가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할 조국에 대한 의리와 끈기로 버텼다. 떠나서 전혀 상관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뼛속에 흐르는 조국의 피를 걷어낼 수 없으며, 아버지의 길을 가는 것이 필연이자 숙명이라 여겼다. 그녀 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감당해야 했을 아픈 시간이 떠오르면 지금까지도 험난한 길을 멈추지 않는 수치 여사가 존경스럽다. 울면서 아내를 돌아오지 못하게 하면서까지 마지막을 응원했다는 남편의 이야기는 수치 여사가 감금에서 풀려난 이후 가장 핫하고 감동적인 사연이 되었다.

 

버마의 역사는 여전히 어둠으로 얼룩져있다. 영국의 식민지로 인도의 속국에 편입되었던 기억까지 갖고 있는 버마의 열망은 단숨에 사그라드는 작은 불꽃이 아니었다. 아웅산의 헌신으로 독립했으나 오랫동안 군사정권 아래 타락되어 있던 국민의 힘이 여전히 들끓고 있다. 2010년 비로소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수치 여사의 새로운 시간과 함께 비로소 새 역사가 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독립과 민주화 역시 버마와 다르지 않은 계단을 밟아왔기에 민주화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과 의지의 열망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수치 여사 역시 아직은 십프로의 민주화를 달성했을 뿐이라며, 가야 할 먼 길에 대해 연설하며 버마의 봄을 촉구하고 있다. 오랜 독재를 거치며 타락한 국가적 위상과 아시아 최대 곡창지대라는 명성을 버리고 걸었던 최대빈민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 꽃봉오리를 틔우고 있는 버마를 응원한다. 버마와 미얀마는 한 국가를 지칭하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미얀마라는 국가명칭은 재집권한 군부세력이 새로운 정부설립의 정당성을 위해 억지로 갖다붙인 명칭이어서 올바르지 않고, 수치 여사와 각종 인권단체는 미얀마라는 명칭 대신 버마로 불리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독립과 자유, 평화와 민주 그 자체인 수치 여사가 아름답고 찬란한 버마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그날이 오면 버마에도 붉고 푸른 혹은 은근하면서 매력적인 색의 꽃들이 활짝 피어나겠지. 역사를 예측하거나 되짚는 일은 어쩌면 굉장히 무기력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행복한 미래라면 감히 점쳐보는 것도 기쁜 일이다. 권력을 얻는 데에서 만족하지 않고, 국민이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고 행하는 그런 대통령이 되기를, 버마 국민들의 간절하고도 오랜 열망이 이뤄지기를 바라본다.



s*****d 2013.03.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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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민주주의의 상징 아웅산 수지에 대한 기록
"버마 민주주의의 상징 아웅산 수지에 대한 기록" 내용보기
버마, 예전에는 미얀마로 불렸던 나라.  우리에겐 버마라는 나라 이름보다 아웅산 테러로 더 잘 알려진 나라.   오천 만의 인구에, 버마족이 68%, 샨족, 꺼인족, 친족, 카친족, 몬족 등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연방국가이자, 사회주의 노선을 걷고있는 세계 최빈국이며 군에의한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에 의한 최악의 독재국가(미국의 CIA의 기준) 로 알려진 나라. 그러나 지금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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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예전에는 미얀마로 불렸던 나라. 

우리에겐 버마라는 나라 이름보다 아웅산 테러로 더 잘 알려진 나라.

 

오천 만의 인구에, 버마족이 68%, 샨족, 꺼인족, 친족, 카친족, 몬족 등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연방국가이자, 사회주의 노선을 걷고있는 세계 최빈국이며 군에의한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에 의한 최악의 독재국가(미국의 CIA의 기준) 로 알려진 나라.

그러나 지금은 '아웅산 수지'라는 여인으로 더 유명한 나라.

(여기서 아웅산 수지라는 이름에 대해 쓰자면, 우리는 대부분 '수치'로 말하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녀는 유엔 인권대사 박경서 씨를 직접 만난 자리에서 '수치'가 아니라 '수지' 가 맞다고 책 '그들도 우리처럼 소중하다'에서 직접 확인해 주었다고 한다. 앞으로는 '아웅산 수지'로 통일했으면 싶다.)

 

버마에선 독립의 영웅으로 추앙받는다는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났으나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영국인의 아내로, 두 아이의 어머니로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버마로 돌아오지만 않았더라도.

그러나 그녀에겐 독재자에 의해 신음하는 버마 민중과 아버지와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

 

두 번에 걸친 15년 간의 가택연금과 암으로 죽어가는 사랑하는 남편의 마지막 조차 볼 수 없었고, 자식마저 만나지 못하는 강제 유폐, 군부에 의해 저질러지는 민주화 동지들의 탄압과 감옥에서의 동지들의 죽음, 그리고 버마 민중들의 민주주의 열망이 꺾이는 것을 지켜보아야했던 눈이 크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그러나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는 깡마른 여인.

 '서구식 정의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고, 악당에게 고통 받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이미지가 굳어져서 동정심을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변용될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지적대로 나 역시 그녀를 소비해왔다.

 

아웅산 수지의 삶을 오래도록 취재해 온 피터 품엔이 '민주화운동의 어머니 아웅산 수치 평전'을 통해 기록하고자 한 것은 '수지이 생애는 군사정권에 용기 있게 도전했지만 결국은 패배한 여인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수지의 스토리는 훨씬 복잡하고,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흥미롭다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저자의 이런 지적처럼 나 역시 이 한 권의 책으로 그녀의 비폭력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사상이나 철학을 알게 되었다고 속단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그녀의 삶을 통해 버마 민중들의 삶과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핍박받았던 우리들의 7,80년대 삶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된 것은 확실하다.

더불어 우리의 새 대통령과 그녀를 비교하는 글을 볼 때가 있다.

내가 비교하고 싶은 것은 그녀들의 부친의 삶이다.

아웅산 장군은 조국 버마가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일본과 협력했으며, 2차 대전의 말미엔 연합국과 협상을 통해 버마의 독립을 얻어냈다고 하는데, 우리의 전 박 대통령은 무엇을 위해 일본군이 되었을까?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일본군의 장교 출신이라는 점이 참으로 비교되는 두 사람이다.

 

버마 뿐만 아니라, 권력자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아웅산 수지의 말에서 해답을 찾아본다.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키고, 권력의 폭력에 희생당할지 모른다는 공포는 복종하는 자를 타락시킨다"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공포이다. 권력을 잃을 것이라는 공포가 그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타락시킨다."

---아웅산 수지의 '공포로 부터의 자유' 중에서---

 

 

h*****m 2013.03.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