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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받지 못한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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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역사를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그리스와 로마이다. 그 중에서도 기원전 8세기 중엽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여 4~5세기에 전성기를 이룩한 그리스 문명은 철학, 과학, 문학 등 다채로운 문화가 융성하게 발달했으며 폴리스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질서를 구축했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이러한 찬사에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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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역사를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그리스와 로마이다. 그 중에서도 기원전 8세기 중엽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여 4~5세기에 전성기를 이룩한 그리스 문명은 철학, 과학, 문학 등 다채로운 문화가 융성하게 발달했으며 폴리스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질서를 구축했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이러한 찬사에는 오늘날 인류가 기독교, 서양, 백인 등을 중심으로 한 시선을 고수하고 있는 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반대로 몽골제국이나 이슬람 문명 등은 세계사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바로 아랍 문명이다. 그 중에서도 750년경부터 1258년까지 동방 이슬람 세계를 지배한 것으로 알려진 압바스 왕조의 통치기 초반 200년을 저자는 주목했다. 11세기 말부터 시작한 십자군전쟁을 통해 기독교 세계와 직접적인 마찰을 빚기 전부터 아마도 이슬람 문화권은 비잔틴 제국의 존재에 대해 알았을 것이다. 독자적으로 기독교 문명권보다 더욱 뛰어난 무언가를 이루어낸 아랍 문명이었지만 비잔틴 제국을 무시할 순 없었을 것이며, 이 제국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로마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그리스 문명에 대한 관심 역시 막무가내로 뿌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굳이 기독교 측의 힘을 빌릴 필요는 없다. 짧은 생애 그러나 어마어마한 흔적을 남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향으로 인해 이미 경제적, 문화적 경계는 희미해진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년이 넘도록 지속된 압바스 왕조의 번역운동은 분명 독특한 일이었다. 오래도록 지속된 것과 함께 주목해야 하는 점 중 하나느 바로 번역의 광범위성이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비잔틴 제국 동부와 근동 전역에서 손에 넣을 수 있던 거의 모든 비문학적이고 비역사적인 세속 그리스어 책들이 아라비아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 말은 번역이 비잔틴 제국에 국한된 무언가를 뛰어넘었음을 의미한다. 그 시기까지 전해 내려온 그리스의 문헌 다수가 번역의 대상이 되었음을 뜻한다.

이러한 번역에는 일종의 ‘의지’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저자가 언급한 소수 기독교도의 학문적 열정 역시 물론 맞다. 종교적으로는 그리스에 가까웠으나 아랍 문명권에서 살아갔을 그들은 아마도 그리스어와 아라비아어 모두에 정통했을 것이다. 자연스레 양 문명의 연결고리가 되었을 것인데, 이 연결고리를 활용할 것인가에는 통치자의 결단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스스로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존재하는 모든 문명을 수용키로 통치자가 결정했을 경우 번역은 자연스레 행해지기 마련이다. 혼란을 틈타 절대자의 지위에 도달한 알-마문이 내전을 마무리 짓고 번역운동을 장려한 것은 꽤나 의미심장해 보인다. 방대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그 영토를 생활권으로 하는 이들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 아니겠는가. 페르시아인 어머니를 두었으며 사산 왕조의 조로아스터교를 접하며 성장한 그는 아마도 이질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이 남들보다 덜 했음이 분명하다.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면 할수록 그가 번역운동에 더욱 깊이 관여했으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다.

절대자의 의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무언가가 없다면 힘이 들었을 것이다. 우선 후나인 이븐-이샤크와 그의 동료들이 이 시기에 존재했다는 것은 압바스 왕조에게 있어 행운이었다. 무슬림이 아닌 네스토리우스교 신도였던 후나인 이븐-이샤크는 오늘날까지도 위대한 번역가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히포크라테스, 갈렌 등의 의학논문도 번역해 아랍에 독자적인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 적절한 때에 도입되기 시작한 제지 기술 역시 번역 열풍에 일조했다. 중국의 전쟁포로들에 의해 도입되었다는 제지 기술로 인해 이제까지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보유할 수 있었던 지식이 보다 많은 수의 엘리트들에게 퍼져나갔고, 그들끼리 교류함에 있어서는 다시 한 번 제지기술과 번역의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 기독교 사회는 격렬한 교리 논쟁 끝에 조금의 다름도 용납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슬람 사회가 취한 창조적이고도 융통성 넘치는 모습은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움직임에 번역운동은 불을 지폈고, 제 스스로도 지적 흐름의 탄력을 받아 더욱 번성했다. 이 모든 성취를 이슬람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취해 외면해왔던 것은 아닐지. 이슬람권마저도 근본주의적인 색채가 짙어짐에 따라 압바스 가문이 행한 위대함을 놓치고 있는 듯해 아쉽다.

 

이달의 사락 q*****2 2013.02.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