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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의 코는 제이슨의 추모 소식을 타고 크게 길어졌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2012년 7월 15일 발매가 되고, 2013년 현재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투브 조회 수 10억 건을 넘어섰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영국, 덴마크, 뉴질랜드 등 여러 세계에서 강남스타일과 말춤을 즐기는 것이다. 고작 6개월만에 일어난 일이었고, 가수 싸이는 순식 간에 월드스타가 되어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2012년 7월 14일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이, 20년 전이었다면 가능했을까?
이 책의 주인공 에드바르트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페이스북을 통해 엄청난 거짓말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 대신 제이슨 마일즈라는 미국의 교환 학생을 만들고 심지어 그의 가족까지 만들어 페이스북을 이용한다. 사진 사이트에서 저작권이 없는 쿨해 보이는 남자아이 사진을 자기 모습 대신 올리고 주변의 사람들과 친구과 되어 소식을 주고 받았다. 모두 그가 좋아하는 콘스탄체라는 여자아이때문이었다. 그녀는 '나'와 다른 제이슨을 사랑하게 되었고, 더이상 제이슨이 필요없어진 나는 식중독으로 오진한 의사때문에 알레르기로 제이슨이 죽게되었음을 그의 가짜 형의 아이디로 올렸다. 이후 더 이상 제이슨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콘스탄체를 비롯한 그의 페이스북 친구들이 젊은 남자아이의 슬픈 사망소식에 장례식에 동참하거나 도움이 되길 원했다. 놀랍게도 다소 어이없게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꾸며진 제이슨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그의 사건에 무료로 소송을 도와주겠다는 변호사부터 그의 이야기를 기사화한 기자들까지 생겨나 하루가 다르게 그의 추모 사이트는 커져갔다. 급기야 그가 실제로 죽어가는 장면을 지켜봤다는 간호사부터 그를 후송했다는 119대원까지 증거로 떠오르고 있었다.
모두 에드바르트의 거짓말로 시작된 일인 동시에 인터넷의 힘이다.
사춘기 소년 에드바르트의 이야기는 현실의 '나'와 가상의 '나'의 이야기를 꽈배기처럼 꼬아가면서 그려진다. 독일과 영국에서 자란 조에 백이란 작가의 청소년문학이기에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정서에는 닿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세심한 '소년'으로서의 마음은 솔직담백하게 드러난다. 그 한마디에서 이 책이 청소년 문학으로 자리하는 힘이 보였다. 이 책을 통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주고받는 심리의 경계와 페이스북의 사용 실태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또한 제이슨 추모단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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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청소년,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가족보다 친구가 친구중에서도 여자 친구가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법이다. 이제 열일곱 살이 되는 에드바르트 그레고리 발터 드비니(정확히 말하면 6개월이 지나야 열일곱 살이 된다)는 큰 키와 마른 체격을 가지고 있는 정상적인 청소년이지만 아직 변성기가 오지않은 목소리 탓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친해지고 싶은 콘스탄체와 사귀기 위해 '제임스'라는 이름으로 가짜 페이스북을 만들었고 자신을 꾸미기 위해 시작한 거짓말이 자꾸 커져만 갔고 거기서 헤어날 줄 모르고 있다. 개학하기 전에 전학을 가든지 죽든지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니! 어째서 날 살렸단 말인가? 왜애애애애애애애? (p.38) 그 나이 또래의 청소년들이 그러하듯 에드바르트 또한 자신의 주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않아 불평을 일삼는다. 왜 콘스탄체는 에드바르트와 친구되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이웃집에 살고있는 이상한 할아버지도 싫고 그가 기르는 푸들 똥개도 싫다. 굳이 이유를 대야 한다면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에 함부로 똥을 싸는 푸들이나 그것을 치우지 않아 주변 사람들(특히 에드바르트가 그 똥을 자주 밟는다)에 피해를 주는 그 할아버지가 싫다는 것이다. "그래도 인사를 해야 한다. 가끔은 어렵더라도 '고맙습니다'와 '죄송하다'를 할 줄 알 때에 인격이 성장하는 거란다." (p.70)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에 감사할줄 모르는 세상에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되새겨 봄직한 말이 아닐까 싶다. 어쩐일인지 그 할아버지가 에드바르트에게 신발을 그것도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신발을 사다주었다. 혹시 에드바르트가 푸들이 싸놓은 똥을 밟은 것이 미안해서 사과의 뜻으로 사다주신 것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감사의 인사를 하긴 해야 하는데, 그것을 미루는 에드바르트에게 엄마가 한 말이다.
그런 에드바르트가 어떤 계기로 변하기 시작했는데, 작은 거짓말이 눈덩이 처럼 불어나 눈사태를 불러일으키고 더 이상 제어할수없는 수준이 되버렸다면? 왜 제목이 <죽고 싶은 날은 없다>였는지 책을 읽어가며 이해가 되었다. "에드바르트는 유명한 예술가 이름이야. 이를테면 화가인 에드바르트 뭉크, 작곡가인 에드바르트 그리그 같은 분. 오빠들한텐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p.130) 콘스탄체와 사귀기 위해 만들었던 페이스북을 제이슨을 의료사고로 가장해서 죽임으로서 문을 닫으려 했던 시도는 '제이슨 추모 페이지'가 만들어지며 실패하고 말았다. 제이슨이란 가상존재를 알고있는 사람이 있을리 만무한데도 그를 안다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 오히려 희귀한 현상이 아닐까 싶지만 어쨋든 '제이슨 추모 페이지'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십만을 넘기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져왔다.
참 이웃집에 사는 이상한 할아버지가 한때 대학에서 강의 하시던 교수였으며 에드바르트가 가장 좋아하는《별》을 쓴 타넨바움 교수라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너 때문이었어. 네가 행동을 했으니까 내가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거지. 그래 고맙다, 에드바르트야." (p.195)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은 함께 온다고 했던가? 좋은 소식이 좋아하던 교수님께 과외를 받게 된 것이라면, 나쁜 소식은 할아버지 교수님이 오래도록 살던 그 집에서 빠른 시간안에 쫓겨나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제이슨 페이스북' 사건도 해결해야만 하고 할아버지가 그 집에서 오래도록 살아가게 도움의 손길을 펼칠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17살의 에드바르트 과연 어떻게 해야만 좋아하던 여자친구 콘스탄체와 좋은 연인관계로 이어질수있을 것이며 교수 할아버지와 이웃으로 오래도록 살아갈수 있게 될까?
《죽고 싶은 날은 없다》는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살고 싶은 욕망에 불타오르는 10대 청소년들의 진실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열여섯 나이에도 변성기가 오지 않고 가슴에 털 한 가닥도 나지 않는 등' 에드바르트의 고민은 발육이 늦은 10대의 청소년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했음직한 그런 것들이었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더욱 공감대를 형성할수 있겠지 싶기도 하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해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고 고민하는 에드바르트를 옳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역활을 해준 사람이 그가 이상한 할아버지라며 피해왔던 사람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오늘부터 우리집 주변에 사는 분들을 자세히 살펴볼까? 어쩌면 그중 내가 좋아하고 닮고 싶어하는 그런 작가분이 살고 있을런지도 모르지.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라 말하지만 끝 못지않게 시작과 과정 또한 중요하다. 자~ 이제부터 에드바르트가 어떻게 잘못된 일들을 마무리 해가는지 지켜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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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날은 없다』를 읽고 내 자신 자칭 구세대 사람인지 몰라도 요즘 너무 빨리 변하는 추세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면 내 자신 자랄 때와 너무 다른 모습에 어쩔 때는 기가 막힐 정도의 내용도 많다. 특히 학생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보면 학생들을 다루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 학교도 예전과 다르게 많은 변화가 있다.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임할 수 있도록 보장하다 보니 이 상황을 이용하려는 학생이 있어 주변 여러 학생들에게 끼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는 점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체벌이 나 기합 등이 거의 없어지고, 주로 대화로써 많이 지도하려 하지만 그 자체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가장 충돌하는 매개체가 바로 스마트폰이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가지고 있어서 적극 활용하는 것 자체는 매우 바람직스럽다 할 것이다. 그러나 기기를 수업시간에 이용한다든지, 유익한 내용보다는 게임 등을 즐기거나 친구들 간에 이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보이지 않은 많은 문제점들이 야기되기도 한다. 이 소설도 바로 이런 청소년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가 우리 청소년을 위해서 쓴 첫 작품이라고 한다. 사춘기 시대에 든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은 아주 민감하다. 특히 이성 문제에 관해서는 그런 것 같다.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우리 청소년들이 더 바람직하고 건전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중요한 청소년들이 과연 지금 어떤 생각들로 살아가고 있는지 확실히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청소년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SNS 소셜네트워크인 것 같다. 우리 같은 구세대도 여기에 빨리 적응해야 할 텐 데 아직 전혀 익숙하지 못해 내 자신 탓해보기도 하지만 될 수 있으면 빨리 구입하고 열심히 준비해 나가리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이 책에서도 주인공이 바로 이런 페이스북을 통해서 일어나는 친구와 이성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바로 현장에서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단점을 커버하면서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려 했던 것이 전혀 엉뚱한 일들이 일어나는 내용을 다룬 추리기법을 사용하고 있어 흥미가 있었다. 즉 요즘 청소년들의 발랄한 일상을 통해서 속마음을 알 수가 있었고, 이와 관련한 우리 부모 등 어른들이 가져야 할 자세 등도 느낄 수가 있어 유익하였다. 배경이 유럽과 미국 등 서구쪽이어서 우리와는 약간 다른 모습도 엿볼 수 있지만 이제 세계는 하나의 모습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현대의 빠른 변화와 함께 청소년들이 느끼고, 행동하는 모습들을 통해서 앞으로 더욱 더 바람직한 학생들을 위한 지도 방법에도 더욱 더 신경을 써서 연구 개발해야겠다는 각오도 다졌던 매우 유익한 독서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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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청소년소설이 꽤 재미있게 읽힌다. 처음에는 아이와 함께 읽기 위해, 또 요즘의 10대를 비롯하여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자신들의 고충을 어떤식으로 해결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가고 있던 중이라 애써 챙겨보려 하는 편이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딱히 어떤 이거다!라는 교훈을 남겨주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여섯이라는 나이대의 소년이 어떤 고민이 있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신체적 변화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갖고 있는지를 비롯하여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의도로 시작된 거짓말이 나중에는 커져 걷잡을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때 느껴야 하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했다. 또래친구보다 신체적 성숙이 좀더딘 편이었던 것 같다. 이책의 주인공인 16살의 에드바르트는. 변성기도 아직 오지 않았고, 가슴에 털이 나지 않는 것 마저도 고민인 에드바르트. 꼭 이런 아이를 놀려먹는 친구가 있다. 또 자신이 저질렀지만 정말 감추고 싶고 공개되지 않았으면 하는 사건들은 꼭 말썽꾸러기 친구의 눈에 띄기 쉽다. 에드바르트가 토하는 사진이 찍혀 그게 일파만파로 커졌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는가. 거기다 자신이 좋아하는 콘스탄체는 계속 그의 친구요청에 대해 묵묵부답이고, 그녀의 일상생활과 생각이 궁금해 제이슨이라는 가짜이름으로 가짜 페이스북을 만들게 되고, 바로 친구요청을 수락하는 콘스탄체. SNS는 이제 연령무관하게 모두들 세상과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결코 문명의 발달이 우리네에게 이기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로 인해 발생할수 있는 폐해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요즘 우리들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걷잡을수 없이 커져가는 거짓말과 또 그를 덮기 위한 또다른 눈속임들을 일거에 제거하기 위해 에드바르트는 제이슨을 죽는것으로 만들었건만, 급기야 제이슨의 추모사이트가 생겨나고, 분명 가상의 인물인데 이를 알고 있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이 이야기의 다른 한축은 옆집 할아버지다. 처음에는 그 할아버지네 강아지가 인도에 똥을 싸놓는 바람에 피해를 자주로 입엇던 에드바르트. 그렇기에 결코 좋은 눈으로 바라볼수 없는데, 어느날 그 할아버지가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신발을 선물하게 되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의 저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특별수업을 받게 되어 좋다 생각했는데, 할아버지가 집을 빼앗기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그대로 할아버지를 몰라라 할수 없는 에드바르트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할아버지의 집과 할아버지를 지키는 방법인지를 모색하게 되고, 점거농성이라는 초강수를 놓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에드바르트의 부모의 교육관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서라도 남의 집 아이가 다닌다는 학원이나 받는 수업을 우리아이도 받게 하려 노력중이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사교육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행여 나의 이런 생각이 우리 아이에게 마이너스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싶어 이성을 억누르는 선택을 하곤 한다. 그런데 에드바르트의 부모는 아이에게 공부의 1,2등이 중요한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주지시키고 있었다. 은연주에. 그리고 성적의 순위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세상을 살아낼수 있다는 것과 함께, 아이의 생각은 무시한채 한결같은 주장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충분히 생각하며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사고관을 보여주는 것 같아 듬직했다. 에드바르트의 솔직담백한 일상들이 고스란히 들여다 보이는 책이라, 부담없이 마치 아이의 일기장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갖게 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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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열여섯 남자 아이의 성장 소설이다책 제목은 죽고 싶은 날은 없다 이지만 책을 읽어 보면 주인공 에드바르트 그레고리 발터 드비니는 매일 매일이 죽고 싶을 만큼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아 고민이다 아마 그 시절 누구나 다 그랬을 것이다 본인 스스로는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은데 그 누구도 어른도 아이도 아닌 대접을 하고 그런 대접을 받으며 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혼돈의 시기를 보내게 되는데 오래전 이와 유사한 소설이나 성장 소설이 일기체 혹은 일기 형식으로 쓰여져 있다면 이 책은 거기에 덧붙여 싸방향으로 소통하지만 결국 그 소통을 자신이 결정할수 밖에 없는 디지털 시대의 블로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세대와는 전혀 다른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의 청소년들이 디지털과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 타인과의 소통에 있어 실제 일상사와 인터넷 공간인 가상 세계로 분리되어 소통하는 두 개의 세계가 어떻게 분리되고 또 어떻게 합일화 되는지를 관찰하고 읽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읽는 재미가 좋았다그리고 그런 세계를 엿보는데 있어 그 시기에 가장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성에 대한 관심을 콘스탄체라는 또래 여자 아이를 등장시키고 그의 관심을 얻기 위해 가상 인물인 제이슨을 등장시켜 가상세계에서 상상속 가공된 인물을 마들어 콘스탄체에게 관심을 얻어 대리 만족을 하다가 현실 세계에서 들통 나려하자 그 인물을 죽이려 하는 작가의 설정은 돋보였다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마치 자신의 아바타인양 상상속에서 누릴 수 있느 것들을 누리다가 용도가 다하자 간단히 폐기하려는 생각이 미치게 되고 자신의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자 거짓에 거짓을 더해 걷잡을 수 없는 곳으로 치닫자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에드바르트에게서 실소를 금할 수 없고 책읽는 즐거움을 가지게 한 이런 이야기를 청소년 성장 소설로 즐겁게 다루긴 했지만 디지털 세상에 살아 가는 청소년들이 가상 세계에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즐기는 것을 쉽게 여기고 버리는 것 또한 쉽게 버리는 것들이 앞으로 성인이 된 그들의 감성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올린 글에 대한 반응을 실시간으로 살피고 그렇듯 좋아요 혹은 나빠요에 대한 반응에 따라 실제 자신의 행동과 생각도 수시로 바뀌고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반응과 댓글에 안절부절 못하는 에드바르트를 보며 지금 우리도 웹세상에서 작은 댓글 하나에 상처를 입거나 우쭐하는 소통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참으로 즐거운 책읽기가 되었고 실제로 이 책이 청소년 문학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발간 되었지만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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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날은 없다 단비 청소년 문학1 조에 백 지음 단비청소년
독일과 영국 사이를 오가며 자유롭게 성장했다는 조에 벡이 청소년을 위해서 쓴 첫 작품인 <죽고 싶은 날은 없다>를 읽고 깐깐한 독자인 아이의 별점은 ★★★☆☆ 고작 별 3개이다. 다소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창 사춘기 열병을 앓고 있는 아이이기도 하고 같은 반의 남학생들을 제일 이해 못하는 인간(?)으로 취급하고 있는 데다가, 극단적으로 남자 아이들과는 한 반을 안했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늘어놓는 까칠한 공주님인 탓이리라. 도대체 왜 변성기를 걱정하고 털을 끓탕하는 이런 남자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느냐고, 계속 투덜거리더니, 결국은 이런 혹평에 가까운 평점을 매긴 것이다. '평가 : 고민 많은 찌질이(굳이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주변 인물들은 그렇게 대하는 듯하다) 소년 에드바르트 (이하 에디). 이 에디가 남몰래 짝사랑하는 소녀 콘스탄체는 에디의 문자를 씹고, 같은 반에 있는 헹크는 '계집애' 라며 놀려댄다. 게다가 채식주의자인 부모님은 근검절약과 채식을 고집한다. 그런 부모님과 농가로 휴가를 가서 새롭지만 심심한 생활을 하던 에디에게는 두 가지 즐거움이 있다. 하나는 햄이고, 나머지 하나는 가짜 페이스북이다. '쿨 해 보이는(이는 에디의 표현)' 남자 아이 사진으로 '제이슨 마일즈'라는 가짜 페이스북을 만든 것이다. 독일인인 에디는 미국 교환학생 제이슨인 척 하고 콘스탄체에게 친구 신청도 한다. 그러자 콘스탄체는 바로 수락한다. 그렇게 '제인슨' 인 척 하던 에디는 결국 제이슨이 죽었다고 거짓으로 글을 올린다. 콘스탄체와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추모 사이트까지 만든다. 찌질이 소년이 가짜 페이스북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좋아 보였으나, 사춘기 남학생들에게만 공감가는 이야기이고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이야기라서 뜻 깊거나 인상 깊은 부분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인 것 같다.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를,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를 선택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라고 하지만, 딸만 둘을 키우고 있는 우리집의 상황을 보건데, 우리 아이들은 꼭! 읽어줘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절실하다. 남자 형제없이 딸만 넷이 있는 가정에서 자라온 나는 남자들의 심리, 남자들의 문화, 남자들의 성향을 이해 못해서, 그만큼 연애도 힘들게 하고, 직장 생활도 남자 직원들과 원만하게 지내지 못했다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람으로 태어나 일생을 길게 살아가려면, 지구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남자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까닭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조카 에드워드를 '에디'라고 줄여서 부르는데, 독일 소년인 에드바르트도 '에디'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작가가 독일과 영국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살았다는 증거를 발견한 듯 해서이다. 요즈음 아이들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모두 카톡과 카스에 빠져있는데... 페이스북 같은 SNS를 자유롭게 사용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해서, 다소 걱정스럽기도 하다. 요즘 스마트폰의 병폐를 절절히, 뼈저리게 느끼고 있음이리라~ 2013.1.30. 마음이 급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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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부터 무언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질문들이 많은 책이다. 청소년문제를 시시각각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메스컴을 통해서 전해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혀를 차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물론 그런일들이 무수히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정말 우리 미래기 불투명해 보인다고 하기도 한다. 이런 중요한 청소년들이 과연 지금 어떤 생각들로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모두가 우리 사회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야 할거라 여긴다. 요즘 들어 SNS 소셜네트워크를 모르면 현대인이라 할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너무나 급변하는 시대를 살고있다. 실시간으로 전 세계가 하나로 움직일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발전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역시 이런 페이스북을 통해서 자신의 단점을 커버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관심을 보이려 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일들이 점점 일어나게 되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이웃 할아버지와 정말 얼굴도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았었는데 결국에는 그 할아버지를 돕게 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각종 사고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자신이 뜻하지 않은 거짓말로 인해 고초를 겪게 되지만 결국에는 주인공은 역시나 용감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을 하고야 만다. 이렇게 갈등과 걱정 그리고 고민들이 뒤섞여서 매일매일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는것처럼 보이는 주인공이지만 알고보면 너무나 순수하고 착하고 약간은 어리석어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과 나와 흡사 닮아있는점을 발견할수도 있다. 너무 잘난 세상에서 최고만 인정받고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그 뒤로 늘 우리처럼 평범하고 드러내고 잘난것을 보여줄것이 없는 일반인들도 분명히 많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괜한 동정과 동지애를 느끼면서 함께 공감하면서 읽게 된다. 너무 잘난 사람들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우리처럼 일상을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뭉치면 오히려 더 큰 일을 할수 있음도 깨닫게 된다. 청소년들의 심리를 그려본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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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날은 없다, 제목이 어쩐지 맘에 드는 이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운이 좋다면 개학하기 전에 죽고 싶다.'
열 여섯, 하지만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에드바르트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괴롭히는 헹크는 얼마나 '살기 싫게' 만드는 존재였을까. 늘 자신을 본체만체하는 콘스탄체도. 그렇게 열 여섯다운 고민과 열 여섯다운 방황을 하는 에드바르트는 블로그에 비공개로 일기를 쓴다. 귀엽기도 하고, 공감이 가기도 하고, 또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해 주기도 하는 솔직담백한 에드바르트의 내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즐거웠다.
현실의 콘스탄체와는 달리, 페이스북의 제이슨에게 콘스탄체는 뜨거운 관심과 반응을 보인다. 에드바르트가 그런 콘스탄체를 보며 느끼는 절망감과 배신감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원래 존재하지도 않았던 존재인 제이슨의 죽음에 대한 추모의 열기와 온갖 음모론들은 우리의 사이버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가끔 우리는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상인지에 대해, 무엇에 대해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쓸 것인가에 대해서 갈팡질팡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래도 에드바르트는 운이 좋은 소년이란 생각이 든다. 조금은 괴짜인 면도 있지만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무엇보다 '1등주의'가 아닌 에드바르트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살기를 바라는 진보적인 부모님, 그리고 처음의 만남은 비록 개똥으로 시작되었지만 에드바르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개인교습을 해주고 과학과 천문학에 대한 애정을 심어준 옆집 할아버지, 여자 같지는 않지만 에드바르트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공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멋진 소녀 칼리... 그들이 있기에 '죽고 싶은 날은 없다'는 것일 것이다. 특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별>이라는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한 옆집 할아버지가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에드바르트의 엄마와 친구들끼리 집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부분은 인상깊었다. 에드바르트가 존경하고 애정을 가진 사람을 위해서, 잘못된 사회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리라는 기분좋은 느낌도 들었다. 에드바르트의 엄마, 멋지다. 우리 현실에서는 만나기 힘든 캐릭터라는 사실이 안타깝지만...(십대 아들이 공부는 안하고 농성하는 것을 지지해 줄 엄마가 흔할까). 성장과 우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여러 면에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에드바르트와의 만남, 유쾌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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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소년들은 별로 책을 읽지 않는 것 같다.아니 책은 상당히 많이 읽는데 그 대부분이 공부에 필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국내 작가들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책을 쓰긴 하는데 그 책이 청소년 수준에 맞추기 보다는 뭐랄까 무언가 교훈을 주기 위한 책을 주로 쓰다보니 한때 청소년들은 그들 나이또래 작가들이 쓴 인터넷 소설에 열광한 적이 있는 것 같다.아마 그 대표주자기 귀여니가 아닐까 싶은데 외계어와 비슷한 인터넷 언어에 어른들은 이게 뭐냐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국내에서 청소년대상으로 한 소설의 시장이 그리 크지 않은데 비해 외국에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들이 많이 나오는데 우리한테 판타지 소설의 대명사라고 할수 있는 해리포터 시리즈 역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고 트와일라잇 역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다.하지만 아쉽게도 우리한테는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읽을수 있는 책이 안나오는 것 같은데 그건 아무래도 어른들이 청소년시기에는 공부가 더 중요하단 생각을 가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죽고 싶은 날은 없다 역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다.주인공 에드바르트는 열여섯 살 평범한 남학생인데 우리 나이로 치면 아마 중3 내지는 고 1에 해당하는 학생이다. 에드바르트는 아직 변성기도 오지 않았고, 남자의 궁극이라고 생각되는 가슴 털도 나지 않아서 자신을 찌질이라고 생각한다.에드바르트는 좋아하는 여자아이 콘스탄체 앞에서 넘어져서 죽고 싶을 만큼 창피했고 그녀가 자신을 거들떠도 안보며. 페이스북 친구 요청도 계속 거절하는것에 마음이 상한다.그리고 갓길에서 토하다 악동친구한테 사진이 찍히고 그 사진이 페이스북에 퍼져서 커다란 창피를 당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가슴털을 기르기 위해 아빠 약도 바르고 콘스탄체에 대해 알고 싶어 가공의 인물 제이슨을 만들어 그녀와 페이스북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가짜 제이슨에 빠지는 콘스탄체를 보고 실망하기도 한다. 그런도 가짜 제이슨을 만든 거짓말이 자꾸 커지고 옆집 할아버지 타넨바움 교수를 돕고자 한 일이 농성으로 번지는등 여러가지 사건이 생기면서 에드바르트는 개학전에 죽든지 전학을 가든지 해야겠다는 고민을 하게 된다. 죽고 싶은 날은 없다는 사춘기 시절 청소년들의 여러 고민을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이 시기의 고민은 시대를 초월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 약 30년전에 나온 비밀일기란 책을 본 기억이 나는데 이 책의 주인공 역시 에드바르트처럼 사랑하는 여자의 관심을 끌지못해 고민하는데 그 차이는 비밀일기의 주인공이 그 고민을 자신의 일기장에 쓴 반면 죽고 싶은 날은 없다의 에드바르트는 블로그에 썼다는 것일 뿐이다.시대가 변화고 IT의 발달이 있었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청소년기의 고민들은 대부분 대동소이한 것 같다. 이 책은 청소년기의 사랑과 고민,그리고 사화적 문제를 가볍게 다루고 있는데 청소년뿐만 아니라 비밀일기를 읽고 자랐을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아마 어른들도 이 책을 읽으면 자신들의 청소년기를 다시금 되돌아 볼것이고 자식들의 고민들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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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목요일 오후 3시 32분
운이 좋다면 개학하기 전에 죽고 싶다. 물건을 사러 가다가 우연히 헹크를 만났다. 헹크는 나와 같은 반이지만 나를 좋아하진 않는다. 걔는 혼자였다. 난 혼자인 행크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걔가 자기 친구들 없이 혼자 다닐 때는 입이나 좀 닥쳤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개 얘기를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다. 헹크는 나를 보자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꺼냈다. "야, 이 멍청아. 키가 좀 컸냐? 아니면 너희 부모님도 모르는 너희 형이랑 몸을 바꾼 거냐?" 난 10센티미터쯤 자랐다. 진짜다. 한 밤 자고 나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꺼져 줄래?" 라고 했다. 헹크는 거의 바닥에 구를 정도로 웃어 젖혔다. "우하하하, 너 진짜 얼마나 웃긴 줄 아냐? 나보다 좀 켜졌지만 목소리는 아직 계집애네." (8쪽)
이렇게 미운 놈이 친구라면 얼마나 열받을까? 헹크라는 아이 정말 못됐다. 하지만 헹크라는 아이는 어디에나 꼭 있다. 한명이든 두 명이든.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이 마치 인생의 낙인양 사는 아이들. 얼마전 [학교의 눈물]이라는 프로에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가 나와서 심경을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들을 괴롭히면 재미있단다.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의 힘없는 저항이 아주 재미있는가보다. 그걸 보고 있으면 묘하게 재미있다는 것이다. 내 참. 할말이 없군. 생각해보면 어쩌면 인간이란 그런 취미가 있다. 나역시 어렸을때 우리 오빠가 누구를 괴롭히거나 왕따 시키는 그야말로 막돼먹은 헹크같은 아이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찌나 세살 아래인 나를 괴롭히던지... 툭하면 장난치고 농담하고.. 그러다보면 난 울그락불그락 해지고..그런 나를 보고 어른들은 말했다.
오빠가 너 귀여워해서 그러는 거야. 장난치는 거야. 그냥 신경쓰지마..." 라는 이야기들...참 나역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장난은 거의 한동안 끊임없이 있었다. 정말 짜증났다. 그런 반응을 즐기는거지..장난으로... 아들아이를 낳고 보니 아들아이에게도 그런 면이 있다. 장난이 어찌나 심한지...엄마 배가 엄청나게 나왔다고 말하는건 예삿말이고..돼지라는 둥...ㅡㅡ;; 자기는 그게 재미있는 표정이다. 그렇게 장난치는 것도 정말화가 난다. 그래서 기분이 그닥 좋지 않다. 그런데 하물며 헹크같이 딱히 친분도 없이 그렇게 괴롭힌다면? 헹크같은 아이들은 보통의 장난의 수준을 넘어선 좀 과한 편인 것이다.
그런 경우 아이는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에드바르트는 생각지 못했던 방법으로 헹크를 한번에 깔아뭉게버렸다. 물론 에드바르트는 그 이후 자신을 피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도 헹크가 자신에게 댓거리를 할수 있는 아이라고 이미 머릿속에 입력이 끝난 상태인것처럼..하지만 차츰 차츰 에드바르트는 헹크가 어느정도는 자신에게서 멀어졌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런 상황을 이끌어내는 데는 에드바르트의 어느정도의 의지가 필요하다. 물론 여러가지 상황들이 있었다.
옆집에 사는 그냥 재수없는 할아버지가 자신이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유명작가라는 것을 알게되고 공부에 대해서도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성적도 올라가고 공부가 점점 좋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멘토, 멘토 하는가보다. 멘토가 있음으로 인해 살아가면서 의지가 되고 힘이 된다. 에드바르트의 부모님 역시 아주 휼륭하신 분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중 힘겨운 상황을 겪고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어쩌면 에드바르트의 부모님을 보면서 몹시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옆집에 아주 근사한 할아버지가 사는 것을 보고 역시 나와는 다른 먼 세계의 복 받은 아이일뿐이야~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걸까? 어쨋든 에드바르트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흥미롭고 산뜻해서 보기좋았다. 물론 에드바르트에게도 헹크라는 몹시 울적하게 만드는 친구가 있었지만 말이다. 아 그리고 빼먹으면 안되는 칼리~ 아주 멋진 친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