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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이 과연 도움이 되는가?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이 과연 도움이 되는가?" 내용보기
결코 얇지 않은 이 책을 읽으려 할 때, 적잖이 고민을 했었다. 내가 이 책을 읽어 그 어렵다는 글을 쓰는데 정녕 도움 받을 수 있을까? 글쓰기는 다른 모든 일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계속 써보고, 경력이 많이 붙으면 저절로 연마되는 것이지,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을 읽었다고 실력이 향상될 수 있을까? 뭐... 이런 의구심이 들었다. 시중에 나와있는 글쓰기에 대한 책들이 베스트셀러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이 과연 도움이 되는가?" 내용보기
결코 얇지 않은 이 책을 읽으려 할 때, 적잖이 고민을 했었다. 내가 이 책을 읽어 그 어렵다는 글을 쓰는데 정녕 도움 받을 수 있을까? 글쓰기는 다른 모든 일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계속 써보고, 경력이 많이 붙으면 저절로 연마되는 것이지,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을 읽었다고 실력이 향상될 수 있을까? 뭐... 이런 의구심이 들었다. 시중에 나와있는 글쓰기에 대한 책들이 베스트셀러는 고사하고 큰 서점의 그 흔한 순위에도 못 올라간 것을 봤을 때,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 책을 참을성 있게 끝까지 읽어, 마지막 부분에 있는 옮긴이의 글까지 읽어버렸을 때는 가슴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소설책도 아닌데 웬 감동? 그것은 무언인가 도움을 받았다는 강한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무슨 도움을 받았는가? 이제부터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얘기해 보도록 하자. '사회과학자의 글쓰기'는 번역을 한 책이다. 따라서 알만한 사람은 벌써 눈치챘겠지만, 끝까지 읽기에 어려움이 많다. 내가 평소에 영어공부를 즐겨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해 안 되는 번역문들을 보고 있노라면 영어에 대한 나의 향학열이 불타오른다. 왜냐하면 원서를 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여하튼 중간의 이해 안 되는 몇몇 문장들에 대해서 참을성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읽다보면 다음과 같은 글쓰기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초고를 쓰는데 주력하라! 저자인 '베커' 교수에 의하면, 글쓰기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은 처음부터 완벽한 문장을 쓰려고 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글을 쓰는 진도를 더디게 하고, 글쓰기 자체를 엄청나게 고통스런 작업으로 이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초고는 별 부담 없이 속도감 있게 써 내려가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초고란 것은 결코 발표될 수 없는 그리고 수없이 퇴고를 거쳐야 하는 그야말로 처음 쓰는 글일 뿐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초고를 부담 없이 그리고 속도감 있게 쓰는 습관을 갖게되면 저자의 경우, 약 7-8배의 생산성이 있었다고 한다. 저자보다야 못할지라도 이 정도로 성과가 있다면, 우리도 한번 적용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초고를 완성했으면 여러 번 고친다! 일단 초고가 완성되었으면 이제부터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퇴고는 여러 번 할수록 쓰고 있는 '글의 질'이 좋아지게 된다. 그렇다면 어느 수준까지 퇴고를 해야하는가? 이점에 대해 저자는 일정정도의 '타협'을 제시하고 있다. 즉 어떤 글에 대한 오류 및 한계는 그 끝이 없기 때문에, 글쓴이가 일정 정도 수준에서 마무리짓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대개의 경우 그 결단의 시기는 해당 글을 투고하게될 각종 문헌의 마감일이 될 것이다. 그런 마감일이 없는 경우에는 전적으로 글쓴이의 결정에 따라 글쓰기가 마무리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글쓰는 기간이 길다고 해서 글의 수준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오랜 기간의 연구가 질적으로도 반드시 좋을 것이라고 오해라고 있다. 물론 희대의 대작들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글에 대한 수준을 별달리 높이지도 못하면서 시간만 끄는 비생산적인 습관들에 대해 저자의 충고를 귀기울여 들을 만 하다. 글을 쉽게 써라! 일기를 제외하고 모든 글은 타인을 위해 쓰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아닌 '독자의 이해'가 우선시 되어야 함은 글쓰기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어렵게 글을 쓰는 것이 전문가적인 글쓰기라고 착각하는 학자가 많음을 강조하고 있다. 학자의 중요한 가치는 현실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인키 어려울 것이다. 현실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학자들간의 교류 뿐 아니라 '학자와 일반인의 교류'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쉬운 글쓰기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 책의 번역자인 '이성용' 교수도 어렵게 글을 쓰는 학자들은 자신이 쓰는 글의 내용도 온전히 이해 못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대학자인 경우도 예외가 아님을 강조한다. 따라서 대학자라고 해서 그들의 난해한 글쓰기 스타일까지 맹목적으로 따라 배우는 제자들이 있다면 이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정도뿐인가? 300페이지나 되는 책이 설마 이 정도의 내용으로 끝나겠는가? 위에서 제기한 내용 외에 저자가 강조하는 몇 가지 제언을 짧게나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글쓰기는 '단 하나의 올바른 방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선배들의 잘못된 방식을 무작정 따라하지 말고 보다 창조적인 방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참고적으로 저자의 방식은 '가장 쉬운 부분부터 글을 쓰는 방식'이다. 또한 저자는 기존 문헌을 이용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논지와 기존 문헌을 연계시킴으로써, 반드시 새로운 무엇인가를 진술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즉 학자는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진술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거 매우 흥미롭군"이라고 말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천! 저자의 마지막 언급이 의미심장하다. '베커' 교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어떤 유용한 정보이건 간에 그 정보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면, 그것을 사용하고 글쓰기의 번거로움을 야기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그것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 즉 그 정보들은 자신의 선호, 스타일, 주제, 독자층에 알맞게끔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말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내가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도움은 '글이란 두려움 없이 초고를 무작정 써 내려가되, 여러 번의 퇴고를 통해서 가다듬는 과정'이란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려움 없이'라는 구절이다. 내가 이 장황한 서평을 두려움 없이 쓸 수 있었던 도 '베커' 교수의 도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j*******2 2001.08.07.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회과학자의 글쓰기,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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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리스트'라고 이름 팔아서 나름 여기저기 칼럼도 쓰고, '대학원생'이라서 논문과 쪽글을 써야하며, '사회과학 저자'로 책도 쓰고 있는 처지다. 매번 '글쓰기' 그 자체가 문제가 된지는 깨나 오래된 일이다. 처음 칼럼을 썼던 <PD저널>의 '헨드릭스의 책읽기'의 첫 글이었던 김주완의 <대한민국에서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에 대한 독후감은 정말 엉망이었다. 다시 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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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라고 이름 팔아서 나름 여기저기 칼럼도 쓰고, '대학원생'이라서 논문과 쪽글을 써야하며, '사회과학 저자'로 책도 쓰고 있는 처지다. 매번 '글쓰기' 그 자체가 문제가 된지는 깨나 오래된 일이다. 처음 칼럼을 썼던 <PD저널>의 '헨드릭스의 책읽기'의 첫 글이었던 김주완의 <대한민국에서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에 대한 독후감은 정말 엉망이었다. 다시 읽을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왜?'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해 본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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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분류로 글쓰는 사람을 이태백 형 필자와 두보 형 필자로 나눠볼 수도 있다. 요즘의 시인으로 치자면 매번 노벨 문학상에서 떨어진(죽을 때까지 절대 노벨상을 탈 리 없는) 고은 시인 같은 경우가 이태백 형 필자라고 말할 수 있다.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시들을 줍듯이, 생각이 정리되면 일관되게 콸콸콸 글이 쏟아지는 경우라 말할 수 잇다. 두보 형 필자는 써놓고, 다듬고 또 다듬고 또 다듬는 그러한 필자다.

나는 매번 내가 '이태백'형 필자라고 생각해왔다. 글 쓰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고, 책 읽는 속도도 나름 '상위 1%'라고 생각해온 바라 더 그랬다. 문제는 그 글이 '어떤' 글이냐의 문제다. 매번 내가 빨리 써온 글은 '쪽글', 즉 A4 2~3장 내외의 글이었다. 그리고 그 '문체'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 글. 엇 비슷한 스케일이어도 신문과 여러 매체에 기사를 싣는 것은 전혀 다른 노력을 필요로 했다. 계속 '퇴고'해야 했다. 손 보고 손 보고, 읽어보고 또 손 보고. 그리고 '잘 읽혀야' 한다는 점을 계속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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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커는 전형적인 '두보형' 필자이다. 책을 읽기 전에 '두보형' 필자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굉장히 피곤하게 매일매일 시달리면서 글에 매달리는 그러한 작가 혹은 시인 혹은 사회과학자. 하지만 베커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강조한다. 오히려 생각이 '완벽하게' 정리된 상태에서 뭔가를 써야한다는 강박에서 '해방'되라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 "그들은 두 가지를 두려워했다. 첫 번째는 그들이 자신의 사고를 조직화하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고, 두 번째는 글쓰기가 매우 당황스러운 엄청난 혼란을 야기시켜서 자신을 미치게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들이 좀더 감정적으로 말한 것은 두 번째 두려움이었다. 즉 자신이 쓴 글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고, (불특정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p.24). "나는 수년 동안 강의보다 연구에 종사했기 때문에, 기존의 프로젝트를 끝내기 전에 항상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항상 여러 프로젝트의 글을 동시에 작업해야 했다. 예를 들어, 새로운 프로젝트의 최초의 초고, 좀 오래된 프로젝트의 먼저번 초고에 대한 퇴고, 그리고 출판 준비에 들어간 최종원고 마무리 등의 작업을 동시에 했다. 이런 식의 작업은 생각보다 쉽다. 항상 가장 쉬운 것부터 작업함으로써, 한 프로젝트의 작업이 꽉 막혔을 대에는 하기 쉬운 다른 프로젝트의 작업으로 이동할 수 있기문에,실상 글쓰기 과정의 모든 단계가 훨씬 수월해진다"(p.163). 그의 테크닉들의 효과는 '작문'에 대한 이론들에서 '경험주의적 검증'을 통해서 검증된 바 있고, 실제로 글을 쓰고 매번 고민하는 사람들은 베커의 말을 들으면서 끄덕거리게 되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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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글쓰기의 전략'으로 베커를 읽는 것도 유익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 '지식의 유통'이라는 차원에서 베커를 읽는 것도 동시에 중요해 보인다. 예컨대 논문을 쓰는 것과 책을 쓰는 것의 뉘앙스 차이/ 논문을 읽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의 뉘앙스 차이를 떠올릴 수 있다. ""즉, 저술가는 똑똑한 사람이고, 내가 저술가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저술가만큼 똑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간주한다. (......) 예를 들어 만약 <미국 사회학회지>의 논문을 접하면, 그것은 훌륭하고 중요한 논문이라고 간주한다. 그 잡지는 이미 자격을 검증받은 것이기 때문에 내가 논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p.59) 이러한 '고상한 척'이 벌어지다보니 학생들도 따라하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학술지에서 많이 쓰이는 최악의 문체를 보고 따라하며, 그러한 문체의 남용이 평범한 사람의 말과 자신들의 글을 구별시켜 준다는 사실을 배운다"(p.76).

사실 한국에서 80년대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정통성' 논쟁이었던 <사회구성체 논쟁>과 관련된 문헌들을 읽어보라. 헤겔적인 어투와 알튀세르적인 어투, 그리고 레닌의 어투, 스탈린주의의 어투가 뒤범벅이 된 데다가, 종종은 주사파의 어투까지 뒤섞여서 도대체 '내공'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글들이었다. 이러한 '어투'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인텔리에 대한 페르소나를 만들어내고, 그들의 '가오'를 형성했다. (물론 당시 PD/CA 인텔리들의'구체적 정세 판단'은 초보적이었음에 트림없다. 요즘의 '이론-오타쿠'들과 크게 차이는 없어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최악의 문체'였음에 틀림없다. 입으로 읽어보라. 번역투와 수동태와 이상한 선동투의 결합, 이게 '한글'인가? 결국 '현장'에서 <현실과 과학>이나 <사사방>을 집어들고 학습하던 '학출'들은 현장에서의 '언어' 곤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소통'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식의 유통'에 대해서 베커가 지적하는 지점은 온당하다. 베커는 논문을 쓰면서도 늘 '책'으로 만들어서 대중과의 '지식의 유통'의 접점을 만들었다. 그 '소통'은 그의 명쾌한 언어를 읽다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우석훈 식 글쓰기에 대해서도 같은 의미에서 평가해볼 수도 있는데,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가 아닌 초창기의 (출간도 전의) <청년을 위한 경제학 강의>에 나왔던 우석훈의 생태경제학에 대한 논문을 읽어보라. 당신들이 알고 있는 그 우석훈의 문체가 아니고, 여기에서는 파닥파닥 뛰는 젊은 '좌파 사회과학자'의 전형적인 문체가 나온다. 그걸 내려놓아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들과 베커의 전략이 내게는 같이 보였다. '책'의 세계는 '논문'의 세계와 다르다. 논문을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어 팔아먹겠다는 기획은 아무래도 확실히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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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커의 <사회과학자의 글쓰기>를 읽으면서 계속 좋은 것이 그가 대학원생들에게 '어떤 위로'를 주는 것이 가장 적실하고, '어떤 조언'을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건 단순히 '희망 고문'이 아니라, 사회과학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 나온 이론들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학의 위대한 자유의 메시지를 우리 자신의 학문적 상황에 적용하라. 당신에게 있는 문제는 전적으로 혼자서 초래한 것이나 한심한 개인적 결함의 결과가 아니라, 학문적 삶의 조직체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주지하라. 그리고 나면, 당신은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스스로를 비난하면서 고통을 증가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다"(p.251). 게다가 어떤 측면에서는 '영업 비밀'도 서슴지 않고 말하는 베커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것은 틀림없다. "우리는 위대한 대작을 쓰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아니면, 반드시 언급할 필요가 있는 것을 명료하게 납득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진술하는 좋은 산문을 목표로 삼는 것이 더 나은가? 과학은 뛰어난 산문표현을 필요로 하는가? 학술지의 보편적인 문체로 쓰여진 글이 대작이 될 가능성은 있는가? 작품에 대한 지나친 열망은 현상을 자세히 보지 못하게 만든다. 게다가 빅토리아 시대의 위대한 소설가 디킨스, 태커리Thackeray, 엘리어트Eliot, 트롤프Trollope 등은 전반부의 연재물이 팔리지 않으면 후반부를 쓸 수 없는 삼류 잡지에 글을 투고하는 상황에서 대작을 썼다"(p.200).

미국 사회과학계가 한 동안 맛이 갔던 것들은 사실인데, 그럼에도 계속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계속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쓰인 '사회과학서 시장' 덕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베커의 조언을 듣고 좀 다른 방식으로의 글쓰기를 생각하고, 당장 생각나는 대로 써보는 연습들을 하게 되었다. 우석훈의 표현대로 하면 '습작'의 중요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둘의 이야기가 묘하게 겹치는 것이 신기했다.

f***********x 2010.1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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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말투의 글 vs 고상하지 않지만 간략하고 명료한 글
"고상한 말투의 글 vs 고상하지 않지만 간략하고 명료한 글" 내용보기
학술적인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막연함, 어색함, 두려움이 있다면 보아야할 책. 일반적인 글쓰기에도 더할 나위없이 좋은 조언을 제공하는 책. 소위 학술적인 글쓰기에 이미 익숙해진 이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책. 그리고 학술적인 글쓰기 양식이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 사회학적 관점의 설명이 돋보이는 책.   베커의 이 책은 오래전 대학원 과정에 들어가면서 소개받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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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적인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막연함, 어색함, 두려움이 있다면 보아야할 책.

일반적인 글쓰기에도 더할 나위없이 좋은 조언을 제공하는 책.

소위 학술적인 글쓰기에 이미 익숙해진 이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책.

그리고 학술적인 글쓰기 양식이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 사회학적 관점의 설명이 돋보이는 책.

 

베커의 이 책은 오래전 대학원 과정에 들어가면서 소개받아 읽었던, 오래전의 책이다.

초판 1쇄가 1999년에 있었으니 국내에 소개된 지도 이미 십여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몇일 전 다시 이 책을 펼쳤을 때, 저자가 제공하는 글쓰기와 관련한 논리정연한 제언들은 내가 고쳐야할 것들을 꼬집고 있었다.

 

처음 책을 읽었던 당시 느꼈던 새로움, 내 글을 쓰면서 의도적으로 염두에 두었던 베커의 제언들은 그 즈음의 글들 안에만 살아있었던게 아닌가...

 

나름 공부했다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의 글들은 어렵고 고리타분하고 짧게 설명할 것도 길게 늘여쓰는 것이 다반사다. 마치 그 동네의 사투리 처럼 말이다. 그런 사투리들은 그 학문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을 차단한다. 관심을 보이던 사람들 조차 그런 학자들의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다면 관심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베커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베커는 자신의 제자들의 논문을 지도하면서 있었던 많은 실제 예들을 통해 어떤 부분이 수정되어야하는지 보여준다. 책에서 소개된 실례를 살펴보자.

 

"이 장에서는 돈, 특히 독립적인 수입이 가계의 영역에 관련된 부부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할 것이다."

-> "이 장에서는 독립적인 수입이 부부의 가계처리 방식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로 수정

"꼭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었다." -> "걱정할 필요가 없다."로 수정

 

동일한 내용이지만, 훨씬 간결하고 명료하다.

그럼에도 왜 학술적인 글들은 수정전의 모습에 훨씬 가까운가?

당신도 처음 작성된 문장이 학술적으로 더 고상하다고 느껴지는가?

 

"이웃들", "옆 집에 사는 사람들"을 "바로 이웃한 집에 거주하는 이들"로 표현하는 것이 학술적으로 더 고상해보이는가?

 

사실 고상하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말투는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간단한 말투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의례적인 것일 뿐이지 그 안에 더 깊고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산다'는 '거주한다'로 '여유 돈'은 '잉여 소득'으로 표현하는 이러한 습관들은 순간적으로 당신이 더 똑똑한 사람처럼 느껴지게 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한 문장을 복잡하게 만들고 간략하게 정리될 것을 길게 늘어뜨리도록 만드는 이러한 문체들은 저자 스스로도 생각을 분명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정리된 것인양 착각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베커는 이러한 문체가 학자 집단안의 권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이며,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첫걸음이라 설명한다.

 

그리고 퇴고와 선행연구들에 대한 정리 등 학술적 글쓰기에서 경험할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설명과 분명한 방향제시는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뿐 아니라 소위 '고상한 글쓰기'가 습관화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l*****0 2012.03.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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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난 공부하기가 싫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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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대학원을 수료하고 논문만을 쓰고 있는 백조(?)라고 할까요? 아무튼, 저는 나름대로의 뜨거운(?) 향학열과 지적 호기심을 불태우면서 공부를 해 나가고자 했지만, 대학교라는 공간에서 보낸 6년 세월동안 '아~ 공부가 진짜 재미있어'하는 순간보다는 공부하기가 싫어질때가 많았습니다. 왜일까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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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대학원을 수료하고 논문만을 쓰고 있는 백조(?)라고 할까요? 아무튼, 저는 나름대로의 뜨거운(?) 향학열과 지적 호기심을 불태우면서 공부를 해 나가고자 했지만, 대학교라는 공간에서 보낸 6년 세월동안 '아~ 공부가 진짜 재미있어'하는 순간보다는 공부하기가 싫어질때가 많았습니다. 왜일까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리라 생각하며)열심히 할 생각에 준비한 여러 책들과 자료들을 보다보면 그 진의를 파악하기도 전에 먼저 지치고 말아버리는 것입니다. 그 문장이 난해하기 때문이죠. 도대체 이건 무슨 말이야? 이 문장에 주어는 도대체 뭐지? 누가 어쨌다는 말이야? 왜 이렇게 말이 길어? 무슨 수식어가 이렇게 많고, 왜 이렇게 어려운 말 투성이야! 영어에 한자에... 겨우 한페이지 다 읽고나서 보면 결국 한 마디 말인데.... 이러다보면, 짜증만 나고 글을 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는 파악하고 싶지도 않을만큼 지쳐버리는거죠... 그러니, 겨우 책 한권 혹은 기타 자료들을 끝까지 읽더라도 책을 덮어버리면 무슨 내용이었던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답답해 할 때가 여러번입니다. 물론, 이런 상황이 제 자료해독능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상당부분의 책임은 이제까지 쓰여진 글씨기의 패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글쓰기가 그래야만 한다고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쉬운 말보다는 어려운 말을 써야 유식해 보이고, 짧은 문장보다는 길게 늘여 쓴 문장이 좀 더 있어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죠..그리고, 가끔 몇 사람들은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글을 질리게 만들기도 하죠....그리고, 무엇보다도 딱딱한 문어체 표현은 정말...!!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글들을 답답해 하면서도, 지금 논문을 쓰는 제가 그런 글들을 써야한다는 부담을 받고 있다는거죠. 사실, 제가 좋아하는 쉬운 글들을 교수님들께서는 그다지 좋아하시지 않는답니다. 논문에 맞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논문에 맞는 글이 꼭 정해져 있는걸까요? 저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은 제게 정말 반가운 것이었습니다. 제가 답답해 하고, 목말라 하고 있던 것들을 채워줬다고나 할까요?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어떤게 좋은 글인지, 그리고 글을 쓸때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들이 저에겐 너무 큰 힘이 되었습니다.(책의 자세한 내용은 다른 리뷰들을 통해 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선후배님들에게도 큰 공감을 얻었답니다. 같이 읽고 토론했었는데..이런 어려움과 고민들을 공유하고 있었거든요. 사회과학을 공부하시는 여러분들, 꼭 한번 읽어보세요! 여러분만의 세상을 얽매어 오던 글쓰기 패턴에서 (전부는 아니더라도) 꽤 자유로와질 수 있는 책입니다!
n******s 2001.05.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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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두려움 없이 초고를 작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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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퇴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때문에 초안을 작성할 때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글쓰기는 절대 한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끔 1장에서 내내 강조하고 있는 말이다. 즉, 초안은 명료함과 정교함을 더해가는 퇴고의 과정을 통해 한편의 완성된 글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처음 작성한 글이 타
"일단 두려움 없이 초고를 작성하자!" 내용보기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퇴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때문에 초안을 작성할 때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글쓰기는 절대 한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끔 1장에서 내내 강조하고 있는 말이다. 즉, 초안은 명료함과 정교함을 더해가는 퇴고의 과정을 통해 한편의 완성된 글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처음 작성한 글이 타인에게 평가받아진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쉬운 문장을 쓰자! 나는 paper 작성하는 중에 가끔 무척이나 이해하기 힘든 문장구조를 쓴다. 사실, 그것은 내가 이해를 못했다는 의미인 것 같다. 2장에서는 이런 난해한 문체를 사용하는 이유로 연구자가 전문인임을 드러내고 또 설득력있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 쓰는 등장인물(pernaso)을 들고 있다. 때문에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사고의 전환일 것이다. 일부러 난해하고 복잡한 문체를 쓸 필요는 없다.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전문가로서 정확한 문장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글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단 하나의 올바른 방법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하나의 완성된 글은 여러번의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퇴고를 강조한 저자는 퇴고 시에 귀를 사용하여 '듣기 좋은' '보기 좋은' 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더불어 <글쓰기의 6가지="" 지침="">을 제시하면서 퇴고시 도움이 될 것이라 하고 있다. 능동태를 써라/불필요한 단어는 삭제하라/반복하지 말아라/문장 요소들을 배열함으로써,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사고를 강화해라/구제적 세부사항을 사용하라/참신하지 않은 은유 즉, 진부한 은유는 삭제하라. 사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단계에서 글을 쓸 때는 난점이 있다. 전문가가 되는 과정에서는 퇴고의 중요성을 더 많이 상기하면서, 일단 초고 쓰기를 두려워 말아야 한다. 이것은 책 전체에서 재차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독자가 나의 글을 쉽게 접할 수 있게끔, 또한 논점파악 쉽게되도록 가능한 그림을 이용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현재 대학원 초년생으로서 보다 성숙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만 하는걸까? 6장에서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 -동료에 대한, 선배에 대한, 자신에 대한 위험-을 "글을 썼다고 무조건 완성작 혹은 쓰레기"가 되는 것은 아님을 깨달음으로서 해결하였다고 했다. 우리는 "일을 끝낼 것인가" 아니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일을 할 것인가"의 양면성에 대해서, 앞으로는 내가 가진 학문세계에 대한 태도를 보다 분명히 하여 내 의견에 따라 보다 실용적인 태도를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 "일을 끝마치기"는 실용적 측면으로 일의 완성을 지향하는 반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일하기"는 좀 덜 실용적 측면으로 실천과 지식의 발달을 추구한다. 문헌을 이용하되, 문헌이 당신을 이용하게 하지말라! 즉, 내 주제와 관련된 문헌을 다루어야 하지만, 그런 문헌을 오용하여 피해보면 절대 안되겠다는 것을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두려움없이 초고를 작성하라는 저자의 주장이 기억에 남고, 이 말은 나에게 자심감을 준다. 이제껏 수많은 레포트를 내면서 제대로 된 퇴고를 하지 못했는데, 사실은 거듭된 퇴고를 통해 걸작 및 세계적인 작품들이 탄생한다니 부끄럽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문헌이 글의 논지를 훼손시키는 경우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것은 개개인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범주내에서 형성된 고전적인 딜레마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인식하고,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의 이데올로기적 구성요소를 찾아내고, 그 문제애 대한 좀더 중립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을 찾아 내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말할 때, 자신이 올바른 길에 서있다는 사실을 안다. 물론 방금 한 말이 좀 지나친 것이기는 하다. 지배적인 접근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모두 옳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러나 진지한 학자라면 동일한 주제를 논의하는 경쟁적인 방식들을 일상적으로 점검해야만 한다. 지금 사용하는 언어로는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문헌이 우리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다할지라도, 그러한 일이 자신에게도 발생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아마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k*****7 2001.03.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