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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그림자를 묵묵히 안으로 받아들이“라는 시집: 김명리 시인의 ‘적멸의 즐거움’
"”제 그림자를 묵묵히 안으로 받아들이“라는 시집: 김명리 시인의 ‘적멸의 즐거움’" 내용보기
아침 해의 붉음도 노을이라 부른다. 지는 해의 붉음을 노을이라 부르는 만큼 뜨는 해의 붉음도 노을이라 부르는 것이다. 두 노을은 맹염(猛炎: 세차게 타오르는 불꽃)과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정서적으로까지 같지는 않다. 현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부재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같지 않듯. 이 차이를 닮은 것이 적멸(寂滅)이다. 적멸은 열반에 이르는 도리라는 의미를 가진 적
"”제 그림자를 묵묵히 안으로 받아들이“라는 시집: 김명리 시인의 ‘적멸의 즐거움’" 내용보기

 

아침 해의 붉음도 노을이라 부른다. 지는 해의 붉음을 노을이라 부르는 만큼 뜨는 해의 붉음도 노을이라 부르는 것이다. 두 노을은 맹염(猛炎: 세차게 타오르는 불꽃)과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정서적으로까지 같지는 않다. 현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부재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같지 않듯. 이 차이를 닮은 것이 적멸(寂滅)이다. 적멸은 열반에 이르는 도리라는 의미를 가진 적멸지도(寂滅之道)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열반과 관계 있는 말이다. 흔히 열반을 무여(無餘) 열반과 유여(有餘) 열반으로 나눈다.


무여 열반은 죽은 뒤에 들어가는 열반이며, 유여열반은 몸이 멸(滅)하지 않은 상태의 열반 즉 살아서 이룬 깨달음이라 사람들은 말한다. 노을과, 적멸을 경유한 열반이란 단어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노을이 아침과 저녁의 차이로 나뉘는 만큼 열반 즉 적멸도 그런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시인이 적멸을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김명리 시인의 ‘적멸의 즐거움’을 두고 하는 말이다. 표제작인 ‘적멸의 즐거움’을 보자. “... 텅 빈 불상좌대 위./ 저 가득가득 옮겨앉는/ 햇빛부처, 바람부처, 빗물부처/ 오체투지로 기어오르는 갈대잎 덤불/ 밤 내린 장항리,/ 폐사지 자욱한 달빛 진신사리여!”


이 시는 ‘적멸의 즐거움‘의 마지막 부분분이다. 이 시가 말하는 적멸은 불교에서 말하는 사라짐 곧 죽음이다. 이 시의 첫 줄에는 적멸보궁이란 시어가 나온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곳이다. 물론 그보다는 석가모니의 불상을 모시지 않고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데에 진의(眞義)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신사리란 석가모니를 다비(茶毘)한 뒤 수습한 사리를 말한다. 시집 ’적멸의 즐거움‘의 시어 가운데 중요한 것은 그림자, 그늘, 해거름 등의 말이다. 그림자, 그늘, (해)거름의 3위일체라 할 만하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어가 그늘이다. 이 그늘이란 말에도, 노을이 아침과 저녁과 관계되듯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들어 있다. 우선 그늘이란 시어가 들어 있는 시들을 보자. 제목만을 나열하면 ’비 오는 酒幕‘, ’가을 수종사‘, ’물결들‘, ’냇물‘, ’느릅나무 그늘‘, ’꽃그늘 사이로‘, ’배롱나무‘, ’능소화 꽃 핀 그 마을을 돌아나올 때‘, ’발걸음 뒤‘, ’누가 내 등을 떠밀었나‘, ’무거운 새‘, ’서호(西湖)에서‘ 등이다. 그늘은 왜 의미 있는 단서가 될까? 열반이 그렇듯, 노을이 그렇듯 그늘에는 어두운 부분이란 의미와 의지할 만한 대상의 보호나 혜택이란 의미가 있다.


그늘이란 시어가 들어 있는 시들이 저렇게 많은 것은 시인이 그늘이란 시어에 무의식적으로 경도되어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3위일체란 말을 했는데 그림자 역시 그늘이란 단어로 풀이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림자는 물체가 빛을 가려서 그 물체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늘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늘이란 시어가 있는 시들에 “거대한 물그림자”란 시어가 있는 ’새란 새들은 온갖 구름들은‘, “제 그림자”란 시어가 있는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등도 포함시켜야 한다.


’적멸의 즐거움‘은 여행시집이고 저물녘/ 해질녘/ 어스름의 시집이고 그늘과 그림자의 시집이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시들의 모음이고 붉음과 관계된 시어들이 인상적인 시집이다. 단종의 슬픔과 한이 깃든 영월 청령포, 두물머리, 수종사, 백천정사, 백천사, 전등사, 개심사, 어흘리, 몇몇 폐사지/ 빈 절터, 저무는 강, 지는 해, 밤의 북한강, 저물녘 바다처럼 구체적이거나 일반적인 이름만이 제시된 곳을 여행해 얻어낸 시집이라는 점에서 여행 시집이다.


시집의 전체적인 정서는 저물녘 또는 해질녘의 시간들에 맞추어져 있고 그렇게 해질녘에 특별히 맞추어져 있으니 그늘, 그림자, 해거름 등의 말들이 주요 어휘들이 될 수 밖에 없다. “낭창한 달빛, 계면으로 흐르는 젓대소리“라는 시어는 그런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들판에 서서‘란 시에 노을이란 시어가 나온다. ”서편 노을, 어둡던 날일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날들에 날들을 끝간 데 없이 포개어 놓고...“란 부분이다.


이 노을이란 시어도 붉음의 편에 넣을 수 있거니와 ”붉은 광합성“, ”물봉선 진분홍 꽃잎 같은 절“, ”붉오동 나무“, ”흥건한 붉은 울음“, ”붉디붉은 붉나무“, ”만산홍엽“, ”붉은 눈발“, ”붉은 햇무리“, ”꽃처럼 붉은 마음“, ”진분홍 종소리를 점액처럼 쏟아놓는다“, ”붉은 진흙고랑“, ”잉걸처럼 되살아 부풀던 저 붉은 햇무리“, ”울긋불긋 되돌아오는 내 목소리“, ”붉은 꽃숭어리“, ”꽃그늘 분홍 물소리“, ”붉게 언 발들“, ”농붉은 아라리“, ”붉은 지지미 치맛단 같은 깔깔한 낙동강 모랫벌“, ”붉은 뻘밭“, ”거칠 것 없이 붉은, 살의 經典을 헤쳐 보이리“, ”저 푸르고 붉은 숯덩어리 같은 저물녘 바다“ 등이 모두 붉음과 관계된 시어들이다.


그늘, 그림자에 어울리게 시인은 해마저 색다르게 표현한다. ”숯덩이 같은 해“, ”정오의 햇빛이 그을음처럼 내려앉는다“...시집에는 제목인 ‘적멸의 즐거움’의 그 적(寂) 즉 고요와 상응하는 말들이 몇 가지 나온다. 적묵(寂黙), 적막(寂寞), 적념(寂念), 정적(靜寂)... 그렇다면 이 적(寂)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은 ’꽃그늘 사이로‘에서 이런 말을 한다. ”어느 사이 내 삶에/ 벚꽃 잎사귀만한 꽃그늘이 들어오는지...“ ’느릅나무 그늘‘이란 시에 이와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저 작은 느릅나무도/ 한 뼘 누옥의 제 그늘이 부끄러운 듯...“ 삶에는 제 몫 만큼의 그늘이 드리운다는 의미로 읽히는 시이다. 그 그늘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시집에는 두드러지게 실존적인 시가 몇 편 있다. ’다시 부르는 노래‘, ’새란 새들은 온갖 구름들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등이다. 이 시들은 ”어느 사이 내 삶에/ 벚꽃 잎사귀만한 꽃그늘이 들어오는지...“ 란 구절과 특별히 관계된 시들이다.


”나 너무 오래 길을 돌아온 것 같지/ 정적은 우물 속처럼 검고 깊어/ 내 스미어온 이곳,/ 갈잎 오동잎 그림자 져서/ 젖은 발 아래 삐걱이는 빈 배 한 척// 나 너무 오래 눈물이 발등에 꽂히던 시절/ 하룻밤, 메마른 한나절의 식탁을 위해/ 그 때절은 街路의 무성한 나뭇가지들/ 단 한차례 우레의 몸서리로/ 제 가진 잎새들 죄다 떨구었었네// 내 몸의 안팎으로 또다시/ 저 기울어가는 것들, 비누거품처럼 환하게/ 아직도 손아귀에 남아 있는 체온,/ 거뭇거뭇한 산등성이를/ 교외선 순환열차가 뿌리치듯 돌아나가지만/ 파묻힌 상처, 되돌릴 수 없는 추억들을 위해/ 노래는 다시 시작되지/ 저 어둠들을 비추기 위해/ 겨울산 바위 벼랑끝은 저다지 환하고/ 그토록 오래 내 머리 위./ 푸르른 차양처럼 드리우던 구름?“(’다시 부르는 노래‘ 전문)


이 시에도 예의 그림자란 시어가 나온다. ”단 한차례 우레의 몸서리로/ 제 가진 잎새들 죄다 떨구었었“다고 말하는 시이다. 거기에 ”파묻힌 상처, 되돌릴 수 없는 추억들을 위해/ 노래는 다시 시작“된다고 말함으로써 여운을 남기는 시이다. ’새란 새들은 온갖 구름들은‘에서 시인은 ”그는 한시라도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조종이 울리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사랑의 대상이다. 시인에 의하면 그것은 ”내 사랑! 그의 이름은 텅 빈 황야를 지키려는/ 헛된 드라마, 급전직하로 추락하는/ 이름 없는 詩“이다.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에서 시인은 ”혼자 가는 산길/ 해 떨어지기 무섭게/ 소나무 마른 가지에 힘이 실린다/ 지금은 다만 일체의 生이/ 제 그림자를 묵묵히 안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이 다음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 표현된다.


”..어쩌면 검고 뾰족뾰족한 털외투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우리들 늙고 게으른 길짐승의 胎 속으로부터/ 어둠은 미끈덩거리며 쏟아져나온 것은 아닐까...“ 내게 읽히는 것은 적(寂)이란 ”묵묵히“란 시어로 표현할 말이라는 점이다. ’배음(背音)‘이란 시에서 ”..나는 범람하는 강의 소용돌이를 찾아/ 내 인생의 뒤엉킨/ 실마리를 짧게 끊어 띄워보곤 했던 것“이라 말한 시인이 전하는 메시지는 ”제 그림자를 묵묵히 안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만큼 자기의 언어가 피어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잘못 관리해 삭제된 예전 리뷰들을 하나씩 둘씩 다시 올리고 있다. 요즘 시가 특별히 더 좋아졌다. 그래서 ‘제비꽃 꽃잎 속‘ 다음으로 같은 시인의 이전 작인 ’적멸의 즐거움‘을 올린다. 논문 같은 글이 아닌 내 느낌과 해석을 많이 반영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스타일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변명을 다시 하게 된다.

이달의 사락 m******1 2016.07.21.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