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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라깡의 시선을 통해 프로이트의 '충동'을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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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크 라깡의 충동 이론에 대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논한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라깡은 프로이트의 학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설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따라서 라깡의 이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의 학설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나로서는 프로이트 학설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만을 알고 있을 뿐,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공부한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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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크 라깡의 충동 이론에 대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논한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 있다주지하듯이 라깡은 프로이트의 학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설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따라서 라깡의 이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의 학설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한다그러나 나로서는 프로이트 학설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만을 알고 있을 뿐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공부한 적이 없다우선 모든 것을 성적인 해석에 결부시킨 그의 학설 자체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렇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내용이 낯설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더욱이 언어에 대한 중의적 해석을 덧붙인 라깡의 논리 전개에 익숙치 않았기 때문이다.

   

충동에 관한 18개의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라깡의 충동 이론을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어떤 글은 라깡의 논법을 닮아 추상적으로 서술하고 있었으며또 다른 글을 통해서는 라깡의 이론이 지닌 친절한 설명으로 진행되고 있었다나는 뒷부분의 글을 읽으면서조금씩 개념과 내용에 대한 이해가 진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특히 라깡만의 독특한 개념들이 사용되고 있어앞 부분의 글들에서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었다결국 답답함에 검색이나 다른 자료를 통해서 라깡이 사용한 개념들의 의미를 조사해 보았다그래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진행된 상태이기에뒷 부분에 있는 글들이 보다 더 잘 이해가 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의 제목에는 몽타주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몽타주는 '조립한다'는 뜻을 가진 프랑스 말인데, 특히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하여 형체를 그려나가는 기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제목은 결국 라깡의 충동 이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8개의 조각들을 모아야만 가능하다는 기획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다양한 시각을 지닌 필자들의 안내를 따라모든 내용들을 읽었을 때 비로소 조금씩 그 이론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여전히 라깡의 충동 이론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처음보다는 다소 진전된 이해에 도달했다고 말하고 싶다

   

예컨대 처음에는 이 책의 필자들이 사용하는 주이상스라는 용어가 지닌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었다그러나 그것이 라깡이 개발한 표현으로 즐거움 또는 향략이라는 의미를 지니지만그것조차 정확한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여겨 일반적으로 주이상스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그리고 그러한 용어의 개발은 프로이트의 학설을 자신의 관점에서 잘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결국 라깡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 학설에 대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더욱이 라깡의 이론은 기호학에 기대고 있는데그는 하나의 단어를 해체하여 다른 뜻을 파생시키며 활용하고 있다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라깡을 해체주의자로 분류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어쨌든 이 책을 거칠게 완독했지만내용 이해에는 그리 만족한 성과를 얻지 못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그동안 기호학이 지니는 모호함 때문에관련 분야에 대해 의도적으로 기피했었다그래서 읽고 있으면서도 이 책의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이 책을 완독한 지금의 시점에서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한 저자들의 도움으로 라깡의 이론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생각한다일단은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겠다아마도 기호학이나 구조주의에 대한 내용을 접한다면이 책을 읽은 경험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차니)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i*****n 2019.12.04. 신고 공감 15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20-07] 라캉의 충동이론에 대한 18개의 이야기
"[20-07] 라캉의 충동이론에 대한 18개의 이야기" 내용보기
라캉의 충동 이론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 이하 ‘라캉’)의 충동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먼저 ‘상상계’[개인]는 ‘거울단계’라고도 하며, 보여짐을 모르고 바라봄만 있는 단계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현실의 사건이 상상계의 인식[거울]을 통해 개인에게 수용된다는 것이다. 생후 6~18개월 사이의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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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의 충동 이론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 이하 라캉’)의 충동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먼저 상상계’[개인]거울단계라고도 하며, 보여짐을 모르고 바라봄만 있는 단계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현실의 사건이 상상계의 인식[거울]을 통해 개인에게 수용된다는 것이다. 생후 6~18개월 사이의 아이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 다음 시기가 상징계’[사회]상상계를 포섭하는 과정[사회화]으로 보여짐을 의식하는 단계라고 한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소통의 상징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언어로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욕망은 만족시킬 수가 없다. 여기서 인간은 이를 말로 표현 가능한 대리만족의 대상들을 통해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욕망을 해소한다. 이것을 압축하면,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가 된다.

마지막으로 실재계라는 개념은 다소 모호해서 상상계상징계를 모두 넘어서는 지점 혹은 그 사이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라캉이 충동이론에서 얘기하는 충동(instinct)’은 무엇일까? 또한 그가 주이상스(jouissance)’라고 말하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순수 욕망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라캉이 주이상스라는 개념을 내세운 이유는 우리가 흔히 자신의 욕망이라고 믿고 있는 타인의 욕망[욕망의 표상]이 아니라 정말로 나 자신이 원하고 있는 실재적인 욕망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해서 라고 한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실재에 도달하는 것[실재계에 대한 각성]은 주로 절망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절망을 통해 진실을 엿보게 되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미쳐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라캉에 의하면 자신의 실재에 도달하는 자만이 새로운 자신만의 상징계에 도달함으로써 현실을 재구성하고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시련을 극복한 영웅처럼.

 

 

충동 이론에 대한 18개의 시각

 

이번 엄브라는 몸을 생산하는 것, 즉 충동에 몸을 재장착해서 생명을 불어넣어주려는 시도로 기획되었다. 이 중요한 기획에 가능하면 많은 저자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 우리는 짧은 분량의 글을 청탁했다. 이런 방식으로 충동에 관한 일련의 예비적 개념들을 모으고, 충동을 그것과 유사해 보이는 다른 개념들, 가령 욕망, 주이상스, 소대상 등등과 구별하려고 했다. 이 에세이들의 몽타주를 통해서 몸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열기를 희망한다.[p. 24]

 

이 책의 서문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충동의 몽타주는 라깡의 충동 이론에 대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논한 18개의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그래서 ‘18개의 충동에 관한 몽타주라는 부제목이 부여되어 있다.

 

필연이 충동이다에서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내 욕망의 성취, 현존을 향한 욕망의 완성은 다름 아닌 죽음이다. 동시에 필연성()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내게 가르친다. 내 욕망이 채워질 수 없다는 것, 현존이란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든다. 현존은 항상 분리되어있고 분열되었으며 차이와 공간에 의해 표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필연은 나쁜 한계이며 내가 충분히 향유할 수 없게 하는어떤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한계는 내 욕망의 조건이다. 이 한계가 정해지면 나는 곧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 필연이 충동이다.” [p. 27]

 

충동에 관하여에서 다니엘 콜린스는 프로이트가 말한, 충동의 네 가지 양상, 네 가지 모멘트인 압박원천목표대상을 소개한다. 이어 라캉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혼동되어 왔던 욕망과 충동의 관계를 명확히 세웠음을 얘기한다. 나아가, 라캉이 대타자의 욕구를 자신의 욕망과 혼동하며, 대타자의 요구를 환상의 공식에서 만족의 대상으로 대체함으로써 욕망을 충동으로 환원시킨다” [p. 46]고 말한 것을 언급한다.

 

욕망:충동=진리:에서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1949 ~ )진리와 앎은 욕망과 충동에 관련된다.” [p. 55]고 말한다.

정신분석 내에서 절대 주체화될 수 없는 충동의 앎은 주체의 근본적 환상이라는 앎의 형태를 취한다. 이 환상은 주체가 주이상스로 접근하지 못하게 통제하는 매우 특수한 공식이다. 다시 말해 욕망과 주이상스는 본질적으로 적대적이며 배타적이다. 욕망의 존재 이유는 자신의 목표를 실현시키거나 완벽한 만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재생산이다.” [p. 58]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욕망 속에서 주이상스의 지분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욕망의 원인이자 이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형식적인 프레임인 소대상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충동의 만족에서 레나타 살레츨(Renata Salecl, 1962~ )이걸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 하지만 나는 그래도 할 거야” [p. 64]라는 욕망과 나는 이걸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래도 하고 있어” [p. 64]라는 충동을 구분시켜 준다.

 

충동들에서 엘리 래그랜드는 주체가 요구를 받고 사라질 때 뭔가가 남게 된다. 요구 역시 사라진다. 오직 한 가지 예외라면 그 단절이 남게 된다. 단절은 충동이 서식하는 유기체적 기능으로부터 충동을 구별해내는 것 속에 남아 있다. 즉 원천과 대상 양쪽 모두에게 절합된 충동의 역전을 통해 드러난 충동의 문법적 기교를 의미한다.” [p. 72]라는 라캉의 말을 인용해서 충동을 설명한다.

 

‘21세기의 정치와 리비도경제를 위하여를 쓴 장-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 1924~ )를 비롯해서 라캉의 충동이론에 대한 여러 글을 겨우 읽기는 했다.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도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또 이들에 의한 18개의 몽타주를 하나씩 끼워 맞춰 하나의 그림을 볼 수도 없다.

그래도 정신분석학이나 기호학에 관한 지식을 좀 더 쌓고 다시 이 책을 읽으면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이 리뷰는 도서출판 인간사랑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도서출판 인간사랑으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w******f 2020.01.26. 신고 공감 1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매우 친밀한 충동의 속삭임에 잠시 당신을 놓아두기를,,,
"매우 친밀한 충동의 속삭임에 잠시 당신을 놓아두기를,,," 내용보기
※ 이 리뷰는 출판사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나는 몸(신체)에서 작동하는 충동이라는 기묘한 현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당장은 꼭 집어내어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막연하게나마 나는 느끼고 있다. 매순간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포기하지 않고, 나의 주체 의식적 통제와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주체를 압박하는 그 무엇인가,,,
"매우 친밀한 충동의 속삭임에 잠시 당신을 놓아두기를,,," 내용보기

※ 이 리뷰는 출판사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는 몸(신체)에서 작동하는 충동이라는 기묘한 현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당장은 꼭 집어내어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막연하게나마 나는 느끼고 있다.
매순간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포기하지 않고, 나의 주체 의식적 통제와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주체를 압박하는 그 무엇인가,,,
"충동"~~

인간 주체로서 우리에게 충동은 필연이다.
내 안의 뭔가, 내 욕망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그것, "충동"이 있다.
충동은 언제나 존재한다.
나의 의식 여부와 무관하고, 만족의 대상도 가려 고르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나를 압박한다.

충동은 늘 우리 곁,,,, 나의 곁에 있다.
달려가는 자동차, 몰아치는 비바람에 대해 나는 종종 "충동"을 말해왔다.
그렇지만 어찌된 일이지 충동이란 낱말이 나에게 적용되기만 하면 비유로 변한다.

"각자 내면의 충동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고유한 운명을 따라가 보라"고 나의 지인이 이야기 한 말이 생각난다.

한번 시작한 인생의 그림을 완성하려 한다면 누구나 충동을 감당해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완성으로 향해가는 욕망의 운동은 충동이 일으키는 단절, 파편화, 단락과 균열을 해결하며 살아

가야 한다.

 

 

 

 

 

 

충동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의 의식 여부와 무관하고, 만족의 대상도 가려 고르지 않능 채 지속

으로 주체를 압박한다.

 

충동은 우리 몸 안에 남은 유아시절 모성과의 일체감을 통해서 경험한 쾌락의 흔적을 남긴다.

 

추천합니다.


 

h*****6 2019.12.06.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충동, 심오한 심리적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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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과 관련된 다양한 얘기들을 모아놓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라깡의 충동이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이를 모아 18개의 텍스트로 분류해 제공하고 있다. 거의가 비슷비슷한 내용을 닮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외국인을 볼 때 거의 모두가 비슷한 사람으로 인식되듯이 처음 만나는 글들은 같은 내용을 소재로 선택해 각자의 관점을 얘기하고 있기에 비슷하게 인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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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과 관련된 다양한 얘기들을 모아놓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라깡의 충동이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이를 모아 18개의 텍스트로 분류해 제공하고 있다. 거의가 비슷비슷한 내용을 닮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외국인을 볼 때 거의 모두가 비슷한 사람으로 인식되듯이 처음 만나는 글들은 같은 내용을 소재로 선택해 각자의 관점을 얘기하고 있기에 비슷하게 인식하기가 쉽다. 영적이고 개념적이며 추상적이기에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 무척 어려운 내용을 잘도 분석적으로 제시해 놓고 있다. 전문가나 필요에 의해서 꼭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면 읽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을 나는 꾸준히 읽고 있다. 두 번 세 번씩 읽으면서 글의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쫓으려 하고 있다.

 

자크 데리다는 말한다. 필연은 충동이라고. 필연의 종착지는 죽음이다. 결국 충동이 죽음으로 연결된다는 뜻이다. 필연은 나쁜 한계고 내가 충분히 누릴 수 없게 하는 무엇이다. 충동은 결국 욕망의 완성이고 죽음이란 말이다. 다니엘 콜린스는 말한다. 프로이트와 라깡으로 연결되는 충동이론은 아들러, 융의 그것과 다르다. 이를 개념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본능적인 개념이 아니라 정신분석적인 요소로 말하고 있다. 충동은 반사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힘이고 불가피한 자극의 유입이라고 보고 있다. 이것은 자극이 아니라 요구의 자극에 대한 정신적 표상이다. 이를 프로이트는 네 가지 영상으로 소개한다. 압박, 원천, 목표, 대상이 이들이다. 이를 더욱 발전적인 전개로 라깡의 충동을 소개한다. 프로이트의 혼란스러운 이론을 수정해 나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라깡은 충동의 흔적을 따라가는 그래프를 만든다. 그는 욕망과 충동의 관계를 분명하게 제시해 나간다. 충동을 도식화해 보여주고 있다.

 

슬라보예 지젝의 말을 전한다. 그는 욕망과 충동의 관계를 진리와 앎의 관계로 표현해 낸다. 라깡의 말을 통해 머리 없는 앎을 충동으로 인식한다. 이는 진리와는 거리가 있다. 즉 과학과 관련해 충동은 진리의 차원을 무시하고 있다고 보며 가장 순수한 형태라고 말한다. 욕망의 존재 이유는 목표를 실현시키거나 완벽한 만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재생산이다. 그러면 욕망과 주이상스를 한 쌍으로 묶는 일은 가능할까? 욕망 안에 최소한의 주이상스를 보장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고 본다. 소대상이라는 통약 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매개 역할을 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욕망과 충동의 관계를 인식해 보게 한다. 존재와 그 존재를 가장한 현상화한 것들로 말이다.

 

주이상스: 주이상스는 라캉의 조어 가운데 가장 번역이 분분한 용어이다. 지금까지 "희열," "향유," "즐김" 등으로 번역되었으나 모두 어느 한 면을 가리킬 뿐이다. 주이상스는 상황에 따라 변한다. 쾌락원칙을 넘어선 고통스러운 쾌락을 뜻한다.

소대상: 욕망을 작동하고 욕망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형식적 프레임. 정신적 대상.

 

욕망은 이것은 금지되어 있어 나는 그래도 할 거야하는 의미고 충동은 법을 극복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즉 어떤 것을 할 욕망이 없으면서도 그것을 하면서 즐긴다. 즉 충동 안에는 모순적인 논리가 작용한다.

 

엘리 래그랜드는 말한다. 그는 라캉의 이 말을 인용한다.

주체가 욕구를 받고 사라질 때 뭔가가 남게 된다. 요구 역시 사라진다. 오직 한 가지 예외라면 그 단절이 남게 된다. 단절은 충동이 서식하는 유기체적 기능으로부터 충동을 구별해내는 것 속에 남아 있다. 즉 원천과 대상 양쪽 모두에게 절합된 충동의 역전을 통해 드러난 충동의 문법적 기교를 의미한다.......

 

무의식의 주체가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상태에서 뭔가 발화를 한다. 발화는 욕망과 멀어지게 한다. 이를 성감대를 통해 설명을 하려 한다. 즉 구강 충동에서 우리는 입과 치아, 입술을 성감대의 한계 지점으로 꼽는다. 위장이나 식도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이들은 먹는 행위를 통해 만족을 준다고 가정된 기관들이다. 이들의 설명이 위상학적이다. 가장자리 모양의 구조 때문에 유기체의 나머지 부분들과 구분되고 끝에서 어떤 것이 공허와 교환되어 구멍에 넣어진다. 구멍은 단일한 특성으로 한계지어 진다. 뭔가 이미지, 실체 혹은 소리로 채워진다. 즉 공간 구멍의 단절 행위는 공허가 텅 빈 것이 아님을 보증한다. 즉 욕망은 존재 속의 결여의 자리에서 작동한다. 이를 다시 말하면 충동은 욕구의 요구, 사랑의 요구, 주이상스의 요구에 응답하는 무의식적인 메시지가 된다는 말이다.

 

맥캐넬은 라캉은 부분 충동의 오묘한 의미를, 멧츠거는 충동이 언어의 상징적 구조와의 관계를, 글로고스키는 충동 개념을 주체성과 결부된 임상학적 요소들의 맥락에 두어 살펴보는 기회를, 브루스 핑크는 에로스를 욕망의 견지에서 보는 것으로부터 주이상스의 관점으로 보는 것으로 바뀐 내용에 대한 집중적 고찰 즉 욕망과 주이상스 사이의 상호관계에서 현성되는 매듭을 풀 것을, 찰스 쉐퍼드슨은 충동의 구성 요소를, 러셀 그리그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에서 해석의 방법을 가져온 즉 기표와 충동, 정신과 육체 사이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해석을, 스튜어트 슈나이더만, 제인 말모 로버트 사무엘즈, -프랑수와 리오타르, 자크 알랭 밀러 등이 참여하여 자크 라깡의 충동이론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필쳐 나가고 있는 책이다. 다시 말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독해가 쉽지도 않다. 심리학을 심리학적인 용어로만 해석을 해나가는 직역이 그렇게 일반인들에게 다가올 리가 없다. 나와 같이 충동의 심리학에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들에겐 읽기가 심히 난해하단 생각이 들었다.

 

주로 미국 주립대를 중심으로 슬로베니아 출신 학자들이 많이 참여한 경향이 있다. 그 쪽이 프로이드와 라깡의 연구에 일가견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된다. 내용이 심오하다. 용어 자체도 개념적인 것이 많이 사용되고 있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요소들은 찾아보기 힘이 든다. 그러기에 동일 계통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소용이 닿는 듯하다. 일반인들에겐 언어로 전달하기엔 모호한 요소들이 많다. 학자들과 대면하여 강의를 들어도 이해의 범주가 주어질까 생각이 든다. 일반인들이 이 책을 무난하게 소화한다면 지적으로 정말 뛰어난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나에겐 어려웠고, 번역도 나와 같은 독자들에겐 의역을 해주는 것이 좋지 않으랴 하는 생각을 해봤다. 단편적으론 이해가 되나 전체적으론 이해가 잘 안 된다. 책을 처음 들었을 때보다 놓고 있는 지금이 더 충동이란 개념이 모호해 진다.

 

 <인간사랑>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j****3 2019.12.12.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충동의 몽타주 _ 충동에 관한 18개의 텍스트
"충동의 몽타주 _ 충동에 관한 18개의 텍스트" 내용보기
'충동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정신 분석 이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충동이야말로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하나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논문의 몇몇 필자들이 해석하는 바, 정신분석의 충동이론에 개념분석의 토대를 제공한 원 텍스트라 할 수 있는 프로이트의 논문 <충동과 그 변이>의 독일어 원제를 어원적으로 풀어보면 '충동과 그에 따른 운명'이
"충동의 몽타주 _ 충동에 관한 18개의 텍스트" 내용보기

'충동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정신 분석 이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충동이야말로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하나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논문의 몇몇 필자들이 해석하는 바, 정신분석의 충동이론에 개념분석의 토대를 제공한 원 텍스트라 할 수 있는 프로이트의 논문 <충동과 그 변이>의 독일어 원제를 어원적으로 풀어보면 '충동과 그에 따른 운명'이라는 뜻이 되며, 충동이 이끄는 대로 따라갈 때 생기는 온갖 변형들로 구축된 운명의 길이 바로 인간 주체가 자신의 부어받은 생명을 다해가며 살아가는 인생의 궤적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성공과 행복의 신기루를 좇으며 "자본주의의 슬픈 진실"(다니엘 콜린스)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충동이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제공하는 '만족'을 깨닫지 못한다.

라깡과 밀러는 주체는 언제나 행복할 뿐 이니라 그 만족도가 너무도 큰 나머지 불편하고 불만을 느낄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고 했다.

인간 주체가 매번 충동을 통해 만족을 경험하고 있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더 불행하고 고통을 겪으며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각자 자아의 이상이 아무리 말끔하고 완벽해보여도 그건 욕망을 작동시키는 환상 속의 이미지일 뿐, 우리 존재가 거하는 실존의 매트릭스에서 우리 모두는 소외되어 있다.

이 책에는 18개의 충동에 관한 몽타주가 있다. 충동이라는 단 하나의 개념으로 다수의 논자들이 글을 쓰고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일은 우리에게 흔치않은 책이다.

충동에 관한 이 18개의 에세이를 읽고 나면 우리 몸에서 작동하는 충동이라는 기묘한 현상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수 있다. 물론 조금은 어렵게 다가온다. 대부분 학술적인 논문이라 어떤 부분은 생각보다 진도가 안나가는 부분도 있고 잘 안 읽히는 부분도 분명 있다. 하지만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라는 주체의 의식적 통제와 부인에도 불구하고 주체를 압박하는 그 내면으 무엇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충동은 필연이다. 내안의 무언가 내 욕망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그것, 그 필연적 기표가 있다. 하지만 모두가 충동이 제시하는 운명을 따르지는 않는다. 그건 당연하게도 각자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 등장하는 무덤 한 구석에서 천으로 목을 묶어 매달린 채 죽어간 안티고네는 라깡에 의하면 죽음 충동의 화신이다. 이런 안티코네의 고집스런 의지를 그녀의 여자형제 이스메네는 '으스스하다'고 표현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코네>에 등장하는 두 여인의 운명은 이처럼 달랐다.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절대권위 왕의 명령을 어기는 일을 주저없이 행한 안티고네와 절대 절명 위기의 시대에 몸을 낮추고 왕의 법령에 충실히 따르기로 선택한 이스메네가 보여준 충동의 길은 21세기 초 자본의 지평에 어른거리는 성공과 행복의 이미와는 판이하다. 

 

충동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의 의식 여부와 무곤하고, 만족의 대상도 가려 고르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주체를 압박한다. 충동은 우리 몸안에 남은 유아시절 모성과의 일체감을 통해서 경험한 쾌락의 흔적으로서 모성의 목소리와 시선, 손길과 품, 그리고 그녀의 몸에 달린 젖꼭지를 빨던 원시적 경험은 사라지기는 커녕 우리 몸 곳곳에 파편적으로 흩어져 남아있다. 

엄지 손가락을 쉴 새 없이 빨아대는 이유기를 훌쩍 넘어선 꼬마, 속도를 높여 달려가는 자동차의 환각에 빠지는 중독자들의 몸 등에서 이런 충동은 우리 몸에 계속 남아 우리를 이끈다.

 

이 책은 충동에 관한 최초의 논문모음집 성격이 있다.

의심할 필요없이 '충동'이란 용어는 프로이트가 꼼꼼한 개념화 과정을 통해 충돌이론을 선포하기 이전부터 정신분석이론에서 사용되었다. 프로이트의 공은 충동을 개념으로 만든 것이다. 프로이트의 <충동과 그 변이>는 1915년에 출간되었는데, 정신 분석 연구의 긴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에 쓴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진술한다. 따라서 프로이트가 이 글을 과학에서의 개념 구성에 관해서 언뜻 생뚱맞아 보이는 문단으로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p.30 ~ 31

프로이트의 이 충동을 미국에서 번역한 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이 개념조차 불분명했다고 볼 수 있다.

 

라깡 이론의 핵심은 신경증 환자가 충동에 대한 상징계적 제약을 전부 집어 던지고, 에고와 초자아를 완전히 집어던지는 지점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충동을 완전히 집어던지는 지점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충동을 새롭개 받아들이고 그들이 추구하는 만족을 수용하는 지점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적 욕망의 혁명적 성격으로부터 라깡은 다른 곳을 향한다. 혁명은 어떤 특정한 법에 대한 저항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 식의 저항은 자신이 반역을 꾀하는 법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는 셈이다. 라깡이 모색하는 새로운 형식은 욕망과 충동 사이의 일종의 '조화'(비록 라깡의 이론에서 사용하기 주저되는 용어이긴 하지만)와 관련된다. 욕망은 입 닥치고 향유의 지배를 내버려 두는 법을 배우게 된다. ---p.128 ~ 129

 

정신 분석이 다른 종류의 이원론을 지지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이 어려움은 데카르트적 이원론과 유사하다. 이 라깡주즤적 형태의 이원론은 기표와 충동, 혹은 상징계와 실재계와 연관된 어려움이며 정신과 육체 사이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어려움과 유사하게 어떻게 기표들의 절합이 뭔가 근본적으로 타자인 것, 즉 다른 '실체'를 만족시키는 방식과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어려움이다.

 

주이상스(jouissance)란 말 들어본적이 있는가?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았다.

쾌락원칙을 넘어서 쾌락 자체가 고통으로 경험되는 '고통스러운 쾌락', 즉 주체의 병리적인 증상을 즐기면서 역설적으로 만족을 얻게 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용어다.

욕망이 법의 금지에서 나온다면, 주이상스는 욕망과 법을 넘어서 있다.

프랑스어로 'jouissance'는 기본적으로 ‘향락’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오르가즘 등과 같은 성적 향유나 즐거움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영어 ‘enjoyment’에는 이러한 의미가 없으므로 한국에서는 보통 '주이상스'로 음차번역한다고 한다. 

라깡은 'jouissance'를 늘 단수 형태로만 정관사를 앞에 덧붙여 사용한다.

라깡은 이 용어를 《프로이트 기술론》과 《프로이트 이론과 정신분석기술에서 본 자아》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의 맥락에서 활용하였다. 즉, 노예는 주인이 향유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 특정 대상이나 물건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인(타자)의 주이상스에 봉사한다.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것은 어렵지만, 언제나 즐겁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주이상스 같은 개념은 아마 평생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굉장히 어려운 책임에 분명하다. 이 책의 저자들을 보면,

라깡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독보적인 철학으로 ‘동유럽의 기적’ 혹은 라캉 정신분석학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세계적인 석학인 슬라보예 지젝,

가장 잘 알려진 20세기 철학자 중 하나로, 문학과 철학 텍스트뿐만 아니라 정치 제도를 비판하는 ‘해체’의 창시자인 자크 데리다서양 철학에 대해서 솔직히 무지한 나도 한 번 쯤은 들어본 유명 철학자들이 참여했다.

 

서양 명 철학자들이 충동에 관해 연구한 이 책을 통해 우리안에 내재되어 있던 개념 충동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고마운 책이다.

인간사랑 출판사는 솔직히 이런 책이 돈이 안되는 순수 출판업인 줄 알면서도 이런 책을 꾸준히 번역 출간해 주신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나 역시 도서관에서 이 책을 신청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래본다.

 

* 인간사랑 출판사의 충동의 몽타주를 성실히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d*****2 2020.03.0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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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의 몽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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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의 몽타주 : 충동에 관한 18개의 텍스트 무의식의 저널 Umbr이 책, 충동의 몽타즈가 중심적으로 다루는 주제인 명사형 충동의 이론과 개념적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사실은 인내심을 발휘해 자신만의 지적 항해를 권유한다. 즉, 아래에서 언급 하겠지만 충동과 변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무의식적인 영역이 품고있는 이 단어의 개념은 여지는 있지만 Sigmund Freud(이하, 프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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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의 몽타주 : 충동에 관한 18개의 텍스트 무의식의 저널 Umbr

이 책, 충동의 몽타즈가 중심적으로 다루는 주제인 명사형 충동의 이론과 개념적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사실은 인내심을 발휘해 자신만의 지적 항해를 권유한다. 즉, 아래에서 언급 하겠지만 충동과 변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무의식적인 영역이 품고있는 이 단어의 개념은 여지는 있지만 Sigmund Freud(이하,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에 도입하고, Jacques Lacan(이하, 라깡)이 받아들여 발전시킨 개념(p 29)이다. 알다시피 그는 수많은 부분에서 난해하게 변형되는 복합 함수적 혼란을 발생시켰지만 학계적으로도 그 의의는 매우크게 보고있다. 그리고 프로이트가 쾌락 원칙을 넘어서에서 죽음충동을 개념화하기 18년 전약 20여년 늦게 출생한, 우리에게는 inferiority complex로 더 잘 알려진 Alfred Adler(이하, 아들러)가 이미 그 6년 전에 충동의 변형이라는 개념으로 소환해서 우리의 의식속의 충동이 변형, 전치, 자신에게 향하는 투영을 발표했다는 이론적인 역사는 상당히 알려지지않은 의외의 여정이다. 공식적으로 충동이 인정받은 학계 정설로는 정신분석학계에 상당히 뒤늦게 도입됐지만 

Ockham's razor을 들고 있는 것은 사실 그 이전부터 정신분석 이론들 속에 차용되고 이용됐다고 보고되고 있다.(p 34) 범인인 나로서도 이 중요한 개념이 무시될 수 없는 주제이기때문에 한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이 책에서는 그런 값진 주장과 이론들을 정신분석적 시각의 몽타즈라는 단어의 인문학적 성찰를통해 18명의 학자적 시선을 다양하게 모으고, 재조합한 논문용 용어가 풍성한 책이다. 


이 책은 그런 다양한 전조 지식을 베이스로 하고 읽어야하기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양한 학자들의 스펙트럼을 통해 제시된 세부적인 풀룻은 프로이트의 충돌 개념자크 라깡의 충돌이론을 중의적 이해를 토대로 정신분석적 시각과 심리학적 부분까지 투영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아다시피 모두에서 밝혔듯이 프로이트가 10대 후반과 40대 중반에 아들러와 라깡이 차례로 태어났고 프로이트의 이론을, 앞서 말했듯 아들러가 먼저 도입했고 프로이트가 자리를 잡아 라깡이 발전시킨 것이라는 점에서 프로이트의 개념을 여러부분에서 선배라는 점을 참고하고 이해한다면 각각의 비슷하면서 다른 단어의 개념 주장과 또 다르면서 비슷한 설명들을 이해하면 될듯하다. 다만 라캉 특기인 같은 의미를 다른 단어로 개념화시켜놓은 부분이 상당하기에 많은 면에서 꼬인 실타레를 잡아나가며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본능과 충동을 다르게 바라본 프로이트의 충동 기본개념(p 146)은 학자의 숫자만큼이나 다수소수적 다양한 시선속에 설명되고 있는듯 일부 학자들의 시선을 설명하면,

자크 라캉은 개인적으로 변증법 혹은 위상학의 대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는 충동을 더 이상 나눌 수 없다고 본 욕망의 속에 한 부분으로, 쾌락원칙의 방해물로 부르기도 했다.

이에 멜라니 클라인은 충동이 실재로는 쾌락원칙의 방해요소(p 73)이며 욕구와 쾌락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데리다는 필연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욕망과 운명에 필연적으로 정해진 죽음의 한계로 충동을 재시한다.(p 27) 프로이드의 시선하고는 완전히 결이 다른 결과로 나아가는듯 했고

찰스 브레너가 충동이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심리적인 요소(p 32)라고 말한 부분은 틀린 주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충동을 처음 언급한 아들러는 충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개념으로 제시하지 않았으며 은 충동이라는 용어를 개념으로 적용하기는 했지만 미진했다는 것이 학계의 결론이다.(p 30)

프로이트충동과 변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우리가 생물학적 시각에서 정신생활을 고려한다면 충동이 정신과 육체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개념으로 등장한다. 충동이 유기채 내부에서 비릇되어 정신에 도달하려는 자극의 심리적 표상물이며 충동이 육체와 맺고 있는 관련성 탓에 정신에게 부과된 정신의 척도이다.(p 105) 또한 역설적으로도 설명한 부분은 책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등장하고 설명되는 프랑스어 Jouissance(p 244, 192.. 등 다수 등장)는 영어 enjoyment로 즐김, 혹은 즐거움이다. 학자들마다 상이한 설명으로 일종의 충동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듯 하면서도 파멸과 죽음까지 연관되기에 선듯 이해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쾌락과 대립하지만 죽음처럼 즐거운 것, 극적인 오르가즘이기도 하지만 즉거운 쾌감이 다가 아닌 의미인 주이상스는 본문에서 다양하게 말하고있는 충동의 포괄적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기혼자이면서 나는 쥬이상시스트라며 일탈을 개념한다면 프로이트나 라깡은 용서할 듯도 하다. 현대사회에서는 교도소 행이겠지...


충동이라는 용어를 독어로는 trieb, 불어로는 poussee, 영어로는 특히 자크 라깡이 instinct가 아닌 drive로 보고자 했으며 학계에 정식적으로 이론적 기반을 다진 프로이트의 업적에 이견을 주장할 사람이 없을 만큼 정신분석학계는 인정을 하고 있다.

이 책이 보통 사람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한다면 충동에 대한 다양한 함의, 유추, 주제에대한 결핍, 주장의 허구, 그리고 학계와 학자간 다양하고 폭넓은 관점들을 두루 접할수 있는 부분에대하여는 상당히 값진 시간이다.

다만 본문 내내 고뇌스럽게 행간을 관통하고 있는 논문용 용어들, 같은 의미의 다른 단어 등의 반복속에 충동에대한 큰 흐름과 그 자체에 맡겨진 이질적이고 기묘한 이론들은 딱딱하지만 가치있는 시각을 제공해준다. 

의식의 일탈, 이성의 쥬이상스를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


당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

당신의 충동을 잊지 말라.

충동에대해 발언하라.(p 48)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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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 2019.12.12.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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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와 라깡의 '충동(Trieb)'에 관한 18개의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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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서 "Umbr(a)"는 뉴욕주립대(SUNY Buffalo)에 사무실을 둔 정신분석과 문화연구센터(The Center for the Study of Psychoanalysis and Culture) 주관으로 현대정신분석이론에 관한 논문을 실은 저널이다. 1993년 창간호 이래 매년 한 차례씩 2013년까지 총 18호를 발간했다(한때 홈페이지http://www.umbrajournal.org에서 저널 원본을 제공했으나 현재 링크가 끊겼다).제호 "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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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서 "Umbr(a)"는 뉴욕주립대(SUNY Buffalo)에 사무실을 둔 정신분석과 문화연구센터(The Center for the Study of Psychoanalysis and Culture) 주관으로 현대정신분석이론에 관한 논문을 실은 저널이다. 1993년 창간호 이래 매년 한 차례씩 2013년까지 총 18호를 발간했다(한때 홈페이지http://www.umbrajournal.org에서 저널 원본을 제공했으나 현재 링크가 끊겼다).

제호 "Umbr(a)"가 던지는 의미는 이중적이다. 프랑스에서 'umbre'''을 뜻한다. 여기에 'e'대신 소대상을 뜻하는 '(a)'를 덧붙였다. '(a)'는 욕망의 대상을 뜻한다. 그래서 'umbr(a)''욕망하는 삶'으로 옮길 수 있다.

이번 책, '충동(Trieb)'을 다룬 특별호는 1997년 발간되었다. 옮긴이 강소영 선생에 따르면 저널형식으로 충동이라는 단일 주제로 다수의 연구자들을 한데 모아 한 권으로 엮는 경우는 당시 최초라고 할 수 있다고 평한다. 그만큼 각별하다는 뜻이겠다.

인간사랑은 이 책보다 앞서 '정체성/자기동일화' (Identity/Identification)라는 주제를 다룬 1998년판 Umbr(a)나의 타자 ? 정체성의 환상과 역설라는 제목으로 20186월 출간했다. 1998판에 7편의 논문이 실렸다면 이번 1997년판에는 18개의 논문/비평을 담고 있다. 그만큼 충동이라는 주제가 논의할 것이 많다는 방증이 아닐까.

조운 콥젝의 글은 이 책의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콥젝은 엄브라의 한국어판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2008, 인간사랑)의 원서 편집을 맡아 서문을 쓰기도 했다.

 

이번 엄브라는 몸을 생산하는 것, 즉 충동에 몸을 재장착해서 생명을 불어넣어주려는 시도로 기획되었다. 이 중요한 기획에 가능하면 많은 저자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 우리는 짧은 분량의 글을 청탁했다. 이런 방식으로 충동에 관한 일련의 예비적 개념들을 모으고, 충동을 그것과 유사해 보이는 다른 개념들, 가령 욕망, 주이상스, 소대상 등등과 구별하려고 했다. 이 에세이들의 몽타주를 통해서 몸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열기를 희망한다.” - 24

 

여기서 우리는 몽타주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몽타주란 사전적 의미로 따로 촬영된 화면이나 그림을 떼어 붙여서 새로운 장면이나 형태를 만드는 기법을 말한다.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범인의 얼굴을 그려내는 것도 몽타주다. 편집자의 의도는 독자들이 18편의 글을 통해 프로이트와 라깡이 말한 충동 이론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역자는 서문에서 자크 데리다의 짧은 비평을 소개한다. 데리다는 인간주체로서 우리에게 충동은 필연이라고 말한다(본문에서는 필연이 충동이라고 거꾸로 말한다). 그는 필연이란 개념을 통해 욕망을 거스르고 방해하며 인간의 운명에 필연적으로 정해진 죽음이라는 한계로서 충동을 제시한다. 즉 내 안의 뭔가, 내 욕망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그것, 그 필연적 기표가 있다는 것이다. 나를 대타자와의 불완전한 결속으로부터 떼어내어 다른 운명의 길을 가게 해줄 그 무엇을 통해 나는 특별하고 고유한 존재가 된다. 내가 로서의 참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무엇[학벌, 가문, 재력 등]이 아니라 충동과 주이상스에서 기원한다.

그렇다면 프로이트와 자크 라깡에서 충동이란 무엇일까? 충동 이론에 대한 시초는 프로이트가 1915년에 발표한 논문 충동과 그 변이에서 비롯됐다. 충동의 개념과 원리에 대해서는 다니엘 콜린스의 「충동에 관하여」와 레나타 살레츨의 「충동의 만족」을 꼼꼼하게 읽어봐야 한다.

우선 충동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충동은 주체가 기표의 주체가 되어 상징적 구조에 통합되는 작용을 거치고 난 뒤 남은 잔여물이다. 이때 주체에게는 오직 부분충동만이 존재하며 순수한 의미의 성기중심 충동은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충동은 기호적으로 상징적 요구와 관련된 빗금 친 주체다. 또한 충동은 본능과 다르며, 주체와 욕망을 나누는 어떤 것이다.

충동과 욕망은 구분해야 한다. 욕망은 본질적으로 법에 연결되어 있다. 욕망은 늘 금지되었거나 사용할 수 없는 것을 찾는다. 욕망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이걸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 하지만 나는 그래도 할 거야.” 충동은 이와 반대로 금지를 개의치 않는다. “나는 이걸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래도 하고 있어.” 따라서 충동 안에는 모순적 논리가 작동한다. 주체는 어떤 것을 할 욕망이 없으면서도 바로 그것을 즐긴다.

이것을 정리하면 욕망은 만족되지 못하고 끝없이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제한과 금지를 만든다. 충동은 역설적으로 항상 만족을 얻는다. 또한 충동은 지속적인 압박이며 소대상 주변을 돌면서 주이상스, 즉 고통을 주는 만족감을 생산한다.

말이 좀 어렵다. 차근차근 풀어보자. 라깡에서 주체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 그렇다면 주체는 어떻게 대타자의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자각하는 것일까? 라깡은 이 과정을 그래프를 통해 풀어냈다. 이 그래프가 등장하는 곳은  『에크리』의  「프로이트적 무의식에서의 주체의 전복과 욕망의 변증법」이다. 

 

 [그래프1]

 

콜린스는 라깡이 설명한 것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설명한다. 먼저 기본적인 그래프(1)를 보자. 여기 기표들의 연쇄를 2차례 뚫고 지나가는 원환이 있다. 오른편(△)에 놓인 환영 상태의 전-언어적 의도가 왼쪽의 빗금 친 주체로 향해 간다. 이때 S에서 S‘로 움직이는 벡터는 어떤 일을 성취하기는커냥 무언가를 상실하고 있다. 

[그래프2]

 

조금 확대된 그래프(2)를 보자. 여기서 △$원환($I(A))은 의미의 효과를 기표의 연쇄에서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SS’(기표목소리)선은 의미의 연쇄는 소거되고 오직 순수한 잔여물, 순수한 목소리만을 남긴다. 이때 두 개의 교차지점 A와 s(A)가 생긴다. 라깡에 의하면 각각 장소와 맥동(pulse)이다.

 

여기서 m은 반영적 이미지(거울상)를 표상한다 (『에크리Ecrits』(2019 개정판) 658쪽을 보라). i(a)는 대타자의 자리를 뜻한다. i(a) 지점에서 강박증적 주체는 기표(A)의 가능성을 제공받지만 대타자가 될까봐 두려워 대타자를 회피한다. 즉 빗금 친 주체$는 대타자를 위한 특수한 기의s(A)를 반영(m)해 대타자와의 동일화I(A)를 이룬다.

 

[그래프3]

 

[그래프4]

 

완성된 그래프(4)의 상단부는 그래프(2)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라깡은 욕망이 “그 분리[주체와 욕망의 분리]와 분리의 원인인 대상 사이의 오인된 관계에서만 유지되며, 이것이 환상(幻想)의 구조”라고 했다. 즉 상징적 요구가 만족의 대상들을 얻는 것을 향해가기 때문에 주체는 자신의 욕망을 대상을 통한 만족이라는 환상 속에 유지시키게 된다. 이것을 공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

 

 

이때 환상의 기호 $◇a에 주목하자. 이것이 뜻하는 바는 주체와 대타자 사이에 있는 간극, 교차 혹은 공허는 비어 있지 않고 소대상이 있다는 것이다. 소대상은 결코 성취할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인 동시에 이미 얻은 충동의 대상이다. 이것을 원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상단부는 대타자의 결여에 대한 기표(S빗금 친A)는 주체 $가 대타자 안에서 그리고 대타자 A에 의해서 소외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결여는 주체s(A)에게 의미화되고, 대타자와의 동일화I(A)를 이룬다.

YES마니아 : 로얄 h*******c 2019.12.10.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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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에 대한 인문학자들의 이야기 - [충동의 몽타주]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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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충동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봤다.충동 자체보다는 충동적이라는 말이 더 많이 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이 책은 충동에 대한 저명한 인문학자들의 에세이를 모아놓았는데 충동이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끔 만든다.충동의 개념은 정신분석과 심리학에서 오래 전부터 탐구했다.프로이트를 시작으로 한 정신분석이 심리학의 영역에서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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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충동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봤다.충동 자체보다는 충동적이라는 말이 더 많이 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이 책은 충동에 대한 저명한 인문학자들의 에세이를 모아놓았는데 충동이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끔 만든다.충동의 개념은 정신분석과 심리학에서 오래 전부터 탐구했다.프로이트를 시작으로 한 정신분석이 심리학의 영역에서 그리고 더 넓게는 과학적으로 계속 인정받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수치로 표현되는 과학적 방법론 외에도 경험적 탐색의 필요성은 아직 남아있다.인문학을 토대로 한 정신분석이 필요한 이유다.그리고 그와 같은 이유로 측정이나 실험이 아닌 철학적인 텍스트 모음집인 이 책의 가치가 있다.사람에게 필연적인 충동은 욕망과 혼동되기 쉬운데 그것은 진리와 앎의 관계다.


인문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라깡은 난해하고 복잡한 주장을 펼치는 철학자다.그러나 정신분석에 대해 알아보면서 라깡을 건너뛰기는 어렵다.자본주의 시대에 충동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라깡은 빠지지 않는다.자본주의 시대에는 모든 충동에 대한 금기가 사라졌고 돈을 중심으로 해서 마음껏 욕망을 채우면서 살 수 있다.그러나 그런 과정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자본주의가 돈의 부족을 제외한 모든 사회적 금지를 소멸시키고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일은 교환 가치를 나타내는 돈이 허용해야만 가능하다.더군다나 자본주의 시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때문에 주체로 자리잡지 못한다.주체가 아닌 사람들에게 행복이 주어지기는 힘들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충동에 대해 탐구할 때 과학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과학은 명확한 진실을 말해준 것 같지만 과학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 과학 역시도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토대로 결과가 나온다.개인의 철학과 관념은 과학과 무관하게 여전히 유효하다.이 인문학적 충동 이야기에 대해서 새롭고 유의미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은 지적으로 만족스러운 유희를 제공해준다.


이 충동에 대한 이야기는 생소한 단어가 나오기 때문에 어렵지만 인간 삶의 본질에 접근한다.정의와 법, 윤리와 자아, 정치와 경제 전반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온다.철학은 한 단어에 대한 이야기만을 통해서도 세상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학문 같다.

a*******2 2020.02.2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 충동의 몽타주: 충동에 관한 18개의 텍스트, 스라보예 지젝 외, 인간사랑, 201911, #707
"[서평] 충동의 몽타주: 충동에 관한 18개의 텍스트, 스라보예 지젝 외, 인간사랑, 201911, #707" 내용보기
충동 : 충동이란 유기체의 행동을 촉발시키는 내적 상태나 조건의 총칭이다. 이는 요구, 욕망, 동인 등과 유사한 개념으로, 일반심리학에서는 동기를 말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충동이라는 개념으로 쓴다. (프로이트의 충동의 개념)주체 : 주체에 대한 라깡의 용법은 다양하고 자유롭다.  때때로 그것은 최종적 주체성과 겹쳐지기도 한다. 의식, 의식적 주체, 이성이라는 형이상학적 사
"[서평] 충동의 몽타주: 충동에 관한 18개의 텍스트, 스라보예 지젝 외, 인간사랑, 201911, #707" 내용보기

충동 : 충동이란 유기체의 행동을 촉발시키는 내적 상태나 조건의 총칭이다. 이는 요구, 욕망, 동인 등과 유사한 개념으로, 일반심리학에서는 동기를 말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충동이라는 개념으로 쓴다. (프로이트의 충동의 개념)

주체 : 주체에 대한 라깡의 용법은 다양하고 자유롭다.  때때로 그것은 최종적 주체성과 겹쳐지기도 한다. 의식, 의식적 주체, 이성이라는 형이상학적 사고 속에 '나'를 중심으로 하는 정신적, 육체적인 삶을 생각하는 나, 의식적 주체가 우주의 중심이다.

주이상스 : 정신분석학 용어로, 생물학적, 성적 욕구 충족과 관련하여 쾌락원칙을 넘어선 상태인 '고통스러운 쾌락'을 말한다. (출처:두산백과)

 

 

자크 라깡의 '충동이론'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용어인 '충동'을 끌어다 라깡식 자기만의 개념설명을 한 것이다. 그의 충동이론에서의 '충동'에 관한 관념들을 저널에 기고된 18명의 18개의 에세이를 묶어 발간한 책이 바로 이 <충동의 몽타주: 충동에 관한 18개의 텍스트>이다.

 

저자 18명은 조운 콥젝, 슬라보예 지젝, 자크 알랭 밀러, 자크 데리다, 다니엘 콜린스, 레나타 실레츨, 엘리 래그랜드, 줄리엣 플라우어 맥캐넬, 데이비드 멧츠거, 제임스 클로고스키, 브루스 핑크, 찰스 쉐퍼드슨, 러셀 그리그, 스튜어트 슈나이더만, 제인 말모, 로버트 사무엘즈, 라울 몬카요, 장-프랑스와 료타르 순으로 모두 엄청난 석학들이다. 정신분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낯익은 사람들일 수도 있고, 나같은 사람에게는 몇몇을 빼고 다 생소한 인물들이다.

 

"이 책에는 18개의 충동에 관한 몽타주가 있다. 충동이라는 단 하나의 개념으로 다수의 논자들이 글을 쓰고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만들어진 것이다." "누구든 충동에 관한 이 18개의 에세이를 읽고 나면 우리 몸에서 작동하는 충동이라는 기묘한 현상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당장은 꼭 집어 내어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막연하게나마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매 순간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포기하지 않고, 주체의 의식적 통제와 부인에도 불구하고 주체를 압박하는 그 무엇인가를."

 

이 책을 통하여 독자가 '나'(각자의 주체)의 내면에 있는 '충동'이 선한 작용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내가 '나'로서의 참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충동과 주이상스에 기원한다. 하지만 모두가 충동이 제시하는 운명을 따르지는 않는다. 그건 당연하게도 각자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과 함께 우리가 추구하게 되는 결론을 "이 책은 정신분석의 충동이론에 개념분석의 토대를 제공한 원텍스트라 할 수 있는 프로이트의 논문인 <충동과 그 변이>의 독일어 원제를 어원적으로 풀면 '충동과 그에 따른  운명'이라는 뜻이 되며, 충동이 이끄는 대로 따라갈 때 생기는 온갖 변형들로 구축된 운명의 길이 바로 인간주체가 자신의 부여받은 생명을 다해가며 살아가는 인생의 궤적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의식의 삶을 살아감에 무수히 많은 선택의 시간에 인간은 의식적 선택의 순간들도 존재하지만 자신인 각각의 주체들의 '충동'에 의하는 경우들이 많다. "충동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의 의식 여부와 무관하고, 만족의 대상도 가려 고르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주체를 압박한다." 각자의 주체는 충동의 압박을 받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그것이 타인의 시선이 이상하게보일지라도 말이다.  "사회가 제시하는 말끔한 플랜을 마다하고 제 길을 더듬거리며 찾아 나서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편제한다. 그저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 하지만 그러한 각자의 '충동'들이 모여 결국 이사회를 형성하게된 것이다. 책에 따르면 우리의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바램이 있다. "자본주의적 주인담론 안에서 소외된 주체로 살아남기 위해 기를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만 명심하자. 충동을 기억하고 말하라는 정신분석의 명령은 저 높은 곳에 실체로서의 일자를 놓아두는 대신 각자 내면의 충동을 '하늘' 삼아 자기만의 고유한 운명을 따라가 보라는 제언이다."

 

삶에 정의는 각자의 몫이다. 또한 정해진 삶의 루틴은 없다. 각자가 자신만의 삶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욕망대로, 각자의 충동대로. 그 충동에 머뭇거리고 주저하거나 멈출 필요는 없겠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인간사랑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c*********e 2019.12.12.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충동의 몽타주 완전체 리뷰] 충동은 변화무쌍한 것
"[충동의 몽타주 완전체 리뷰] 충동은 변화무쌍한 것" 내용보기
1.임상적 작업을 하다보면 종종 젖먹이 아이에게 질투와 선망, 분노를 갖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의심할 것도 없이 단지 기묘한 마음의 뒤틀림 탓에 수유장면이 극적인 대면의 핑계거리를 제공하게 된다. 이런 아버지가 프로이트의 충동이론에 등장하는 무명의 존재감 없는 주인공이다. - p.182작년 12월에 1차 리뷰를 남긴 후, 과연 세월이 가면 이해할까 하고 묵혀두었던 충동의 몽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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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상적 작업을 하다보면 종종 젖먹이 아이에게 질투와 선망, 분노를 갖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의심할 것도 없이 단지 기묘한 마음의 뒤틀림 탓에 수유장면이 극적인 대면의 핑계거리를 제공하게 된다. 이런 아버지가 프로이트의 충동이론에 등장하는 무명의 존재감 없는 주인공이다. - p.182


작년 12월에 1차 리뷰를 남긴 후, 과연 세월이 가면 이해할까 하고 묵혀두었던 충동의 몽타주를 펼쳐들고 아직 다 못 읽은 부분을 읽어갔다. 여전히, 이해는 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건 알겠다. 나의 무기력감의 근원은 아주 근원적인 것이어서 그것을 뿌리치기는 힘들 거라는 것을. 그래서 그것을 극복할 많은 방법을 시도해야 하며, 그 시도를 아주 많이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2.

사랑은 충동 쪽에 있지 않다고 라캉은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진실로 정의의 충동은 가차 없는 힘으로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한다. 그렇지만 바로 이 충동이 정의를 향한 사랑과 욕망을 고무시키는 것이 아닐까? 어떠한 형태의 사랑관계에서도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 대타자의 욕망 이면에 놓여 있고 우리의 욕망이 지속적으로 움직이도록 추동시키는 것은 대타자의 참을 수 없는 주이상스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정의를 향한 우리의 욕망을 고무시키고 유지시키는 것은 충동이다. 충동은 고통을 겪게 되거나 뒤따른 결과들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행동을 추동하며 우리에게 정의롭게 행동하도록 요구한다. - p.200


그러니까 아주아주 쉽게 얘기하면 충동은 정의로운 것이라는 소리가 되겠다. 충동이 바르게 섰을 때 얘기가 아닌가 하는 의문점은 있지만, 충동은 우리를 바르게 인도하는 것만은 분명한 듯 하다. 그것이 욕망을 향한 자극적인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3.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무차별적인 에너지 확산이 초래할 불안을 만나게 된다. 국제적 규모로 섹스의 족쇄가 풀렸다. 출구 없는 충동의 범람이며 체계의 함몰이다. 상승하는 수위를 제어하기 위해 세운 모든 댐들이 불안의 표지를 담고 있다. 외국인, 이방인, 추방된 자들, 집도 안정도 직장도 없는 이들이 증식하면서 갈라진 틈에 기어들어가 시스템의 속도에 적응하면서 갈라진 틈에 기어들어가 시스템의 속도에 적응하면서 평화와 미래를 찾을 방법을 모색한다. 체계의 측면에 몰려들어 맥박치던 모든 것들이 색출되고 방출되거나 때로는 봉쇄되기도 하고 오류가 생긴 추진의 불경함으로 쫓겨나게 된다.- pp.232~233


사실, 앞에서는 충동의 정의를 얘기하고 뒤에서는 충동의 불경함을 얘기하게 되니, 어느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충동이란 녀석은 하나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카리스마 있는 것이기도 하고, 카멜레온적이기도 하며, 때로는 온순한기까지 하다. 『충동의 몽타주』는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삶의 지표로 보여주며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 녀석, 참 복잡하구만 하는 소리가 나온다.



4.

조금은 어렵지만 그것을 읽으면서 깊이 생각해보는 재미와 느낌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깊이 있는 생각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냈다면 그것만큼 의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작은 생각이었지만, 훗날 그것이 아주 큰 학문의 밑거름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이젠, 이 책을 떠나보내야 할 때. 나중에 다시 펼쳤을 때는 모두 이해되는 기적이 있길 바라면서, 완전체 리뷰를 마친다.


- 이 리뷰는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1차 리뷰를 먼저 작성한 후, 최종적으로 쓰는 완전체리뷰임을 밝힙니다. - 



h******o 2020.03.2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