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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화비평이다] 문화 이면을 해부해내는 명민한 현미경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문화 이면을 해부해내는 명민한 현미경" 내용보기
워크숍을 갔지요   10월의 어느 금요일, 파주출판단지로 떠난 사내 워크숍.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모였다. 서 있는 곳마다 마치 책장의 한 페이지처럼 멋진 정물이 연출된다. 정말 소박하고, 착한 워크숍을 마치고, 간단한 뒷풀이를 위해 홍대입구를 찾았다.   자음과 모음 북카페 앞 가판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불을 켜고 식당을 찾던 찰나, <자음과 모음> 본사 1층 북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문화 이면을 해부해내는 명민한 현미경" 내용보기

워크숍을 갔지요

 

10월의 어느 금요일, 파주출판단지로 떠난 사내 워크숍.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모였다. 서 있는 곳마다 마치 책장의 한 페이지처럼 멋진 정물이 연출된다. 정말 소박하고, 착한 워크숍을 마치고, 간단한 뒷풀이를 위해 홍대입구를 찾았다.

 

자음과 모음 북카페 앞 가판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불을 켜고 식당을 찾던 찰나, <자음과 모음> 본사 1층 북카페 가판대를 발견했다. 5,000원 균일가는 물론 신간의 경우에도 30~50%대의 할인행사를 하고 있었다. ‘오 신이시여~’ 흡사 먹이를 찾아 헤매던 하이에나의 눈빛으로 스캐닝~ 구병모, 백영옥, 김연수 님의 책까지 할인이라니...

 

하이브리드 총서와 워크룸

 

그 중 가장 눈에 띈 책이 바로 <하이브리드 총서>였다. 책의 디자인을 맡은 디자인 그룹 ‘워크룸’의 인기 탓일까?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읽지는 않지만 소장용으로 구입’하는 책이다. 1권부터 5권까지 탐스러운 장정과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몽땅 쓸어 담고 싶었으나,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만 구입했다. 1, 2권이 워낙 어려워 보인 탓도 있지만, 검증(참, 단어 선택이 어렵다)되지 않은 작가의 책은 일단 보류하는 내 습관도 한몫 했다.

 

평론을 대하는 불편한 심사...

 

‘경계 간 글쓰기, 분과 간 학문하기, 한국 인문학의 새 지형도’란 슬로건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소 문학비평을 비롯한 비평 및 평론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90년대 대학시절 학구열에 불타 김현, 김주현, 남진우, 우찬제, 김욱동 등의 평론집을 숱하게 읽었지만, 대부분의 평론집은 지적 호기심에 대한 충족보다 읽고 난 후의 ‘허무’와 ‘공허’가 너무 컸다. 문학평론에만 국한하자면, 작품 혹은 작가를 읽어내고, 해석해내는 다양한 프레임을 우리에게 선물하지만, 크게 두 가지가 불편했다.

 

첫째, ‘주례사 비평’이라 일컫는 ‘무조건 좋아요’란 뻔한 평론이 식상했다(위에 언급한 분들은 아니다). 조지 오웰도 서평과 관련하여 ‘10권 중 9권은 쓰레기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서평가의 정직과 도덕성을 강조했다. 문학비평과 서평의 차이를 크게 모르겠지만… 뭐랄까. 일단 작가 혹은 작품에 대한 호의를 전제하고, 각종 미사여구와 개념을 동원하여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이런 측면으로 보자면 장정일 님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에서 견지한 서평 태도가 훨씬 마음에 와 닿는다.

 

둘째, 지식인들이 버릇처럼 쓰는 현학적인 표현과 ‘~ism’에 경도된 태도가 불편했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요즘 들어 여실히 깨닫는다. 우선은 알아 먹을 수 없는(기원과 출처, 목적이 불분명한) ‘먹물이즘’을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웬만큼 독서 훈련이 되어있는 나조차도, 같은 문장을 대 여섯 번 반복해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또 얼마나 많은지…. 하여 내겐 평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내재되어 있다.

 

다양한 프레임과 시선, 생생한 현장의 이면

 

‘문화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을 발굴해내는 것이 곧 문화비평가의 사명’이라고 말하는 이택광 님의 글은 신선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특히 1부 ‘철학과 비평 사이’는 약간의 배경지식이 없으면 읽기 힘든 수준이다. 하지만 2부 ‘사회와 정치 사이’, 3부 ‘문화와 인물 사이’는 재미는 물론, 대한민국의 다양한 문화, 사회현상을 해부해내는 예리한 저자의 시선이 경쾌하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의 글들을 모은 터라, 시간적 간극이 느껴지지만, 문화 현상 이면에 자리한 ‘정치, 욕망, 심리’ 등을 해부해내는 능력은 단연 우뚝하다.

 

아래에 굳이 목차를 길게 나열했다. 우선 제목만 보더라도 호기심이 동하는 소재인데다, 상관 관계가 성립하지 않을 것 같은 오브제들이 묘하게 어울리며 주목할 만한 담론을 제시한다. 거기에 이택광 님이 해부해내는 문화, 사회적 현상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또 어떤가?

 

Part. 1 철학과 비평 사이
문화비평의 테다고지 / 위반을 위한 변명 / 벤야민 / 숙명의 트라이앵글 / 방법론의 은하계 / 생존지상주의 / 프랑스 철학 / 냉소주의 시대의 인문학자 / 철학 / 인문좌파란 무엇인가 / 마르크스의 귀환

 

Part. 2 사회와 정치 사이
연쇄살인범의 발견 / 우익 이데올로그 조갑제가 고독한 이유 / 우리의 중세 / 불륜 드라마,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 / 낯선 윤리의 출현 / 이순신, 그 불멸의 분열 / 몸짱-얼짱 신드롬은 무엇인가 / 강준만을 위하여 / 부정과 부인 / 박정희, 그 반복의 자리 / 독도라는 아이러니 / 신성 가족의 몰락 / 전두환 / 김 일병 / 정치 자금의 추억 / 2006년 월드컵 / 북핵의 정신분석 / 아파트라는 증상 / 한국 중간계급은 무엇을 욕망하는가 / 신정아와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 반지성주의 / 추기경의 죽음 / 스포츠와 정치인 / 이명박과 노무현 / 부자 신드롬 / 모든 것은 이명박 탓인가 / 촛불에 대한 다섯 가지 테제 / 미디어법 / 이명박식 민주주의 / 쌍용자동차 / 김대중 / 김길태와 한국 사회 / 경쟁에 대하여 / 신세경, 송두율, 쌍용자동차 / 천안함 / 괴담 / 국가와 우파 / 2010년 월드컵 / 월드컵 응원녀 / 정대세 / 황제의 식사 / 공인이라는 정치적 지점 / 서민은 나타나지 않는다 / 타블로 논란 / 전쟁에 대한 이중 전략

 

Part. 3 문화와 인물 사이
한류는 무엇인가 / 휴대폰에 대하여 / 독신주의의 정치경제학 / 찜질방 / 김삼순 / 뉴올리언스 또는 좀비 / 스타리그 / [어메이징 레이스] / '마빡이', 근대적 노동에 대한 조롱 / 소주 마시는 여성들 / 유령 작가 / 여자 연예인의 자살 / 전지현과 낸시랭, 누가 더 예술적인가 / 보수주의자 김수현의 주이상스 / 책의 현실 / [워낭소리] / 신해철은 진보 인사인가 / 성기 노출 / 연예인의 노동 / 막장 드라마 / 미학과 정치 / 팬덤과 민주주의 / 꿀벅지는 성희롱인가 / 그랜저 광고 / 루저의 난 / 인터넷과 지식 생산 / 미국 드라마 / 소녀시대 / 마녀사냥 / 알몸 뒤풀이? / [지붕 뚫고 하이킥]이 없는 현실 / [추노] / 아름다움 / 개그 없는 정권 / [신데렐라 언니] / 케이블 방송

 

문화비평가Ship을 건지며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라 제목 붙일 만한 품과 격이 두루 느껴진다.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진중권 님의 ‘아이콘’과 진중권, 정재승 님의 ‘크로스’의 사이에 위치한다고나 할까? 하이브리드 시리즈의 독자층을 어떻게 상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보통의 독자들이 읽어내기엔 쉽지 않다. 인물과 문화 현상에 대한 짧은 글 들의 모음이라 쉽게 덤볐다가 큰 코 다친 이가 바로 ‘나’다. 이택광 님의 ‘문화비평’을 대하는 ‘~ship’과 ‘진정’이 느껴지지만, ‘앎을 넘어선 앎, 계몽에 대한 재계몽’ 혹은 행간 곳곳에 등장하는 ‘주이상스’와 같은 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물론 내 부족한 독서력 탓도 있겠지만).

 

다시 홍대 앞을 서성이다

 

그럼에도 그날 자음과 모음 북카페에서 <하이브리드 시리즈>를 죄다 업어 오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일간 홍대에 다녀올까 한다. ‘bar삭’에서 튀김과 맥주를 곁들이며, 빵빵하게 배불러오는 가방을 흐뭇하게 쓰다듬고 싶다.



t******2 2012.10.24. 신고 공감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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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정치, 그 뫼비우스의 띠
"문화와 정치, 그 뫼비우스의 띠" 내용보기
문화비평은 문화라는 형식을 통해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택광은 <이것이 문화비평이다>에서 "한국사회에서 문화비평이야말로 일상에 파묻혀 있는 불편한 정치성을 발굴해서 제 몫을 찾아주게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글쓰기"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문화는 단순한 정치의 반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정치적이다. 그동안 진보는 정치와 뫼비우스 띠처럼 엮여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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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은 문화라는 형식을 통해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택광은 <이것이 문화비평이다>에서 "한국사회에서 문화비평이야말로 일상에 파묻혀 있는 불편한 정치성을 발굴해서 제 몫을 찾아주게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글쓰기"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문화는 단순한 정치의 반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정치적이다. 그동안 진보는 정치와 뫼비우스 띠처럼 엮여있는 문화 속에서 정치적 사유의 계기들을 통찰하는 작업을 너무나 등안시 한 것은 아니었을까.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새로운 주체의 등장. 이것을 가장 민감하게 말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문화적 현상들이다.

 
 
 

좌우파에 대한 규정은 2008년 촛불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촛불은 우파에게 공포를, 좌파에게 무기력을 선사한 사건이었다. 촛불은 상부상조하던 기존의 좌우파 구도에 일대 균열을 초래했다. 우파는 촛불을 '좌파세력의 준동'으로 판단했지만, 좌파는 좌파대로 촛불에서 자신들을 배척하는 '시민들'을 발견해야 했다. 촛불이라는 '이상한 사건'에서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을 정립해야 할 필요를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촛불의 주체는 '운동'에서 출몰한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등장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좌우파가 말해왔던 이념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p55)
 

민족이라는 범주내에 얼마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존재하고 있는가. 이런 이질적 흐름들을 단일하게 수렴시키는, 또는 하나의 상징으로 모든 차이를 빨아들여 버리는게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환상은 외설적 대상을 감추기 위해 발생한 것인데, 이 끔찍한 대상은 다름아닌 '계급'이다. 한국사회에서 무자비하게 통용되는 '동포'라는 말은 계급의 분열을 회피하기 위한 진통제다. (p72)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강렬한 정치적 시도가 좌절되었을 때, 문화가 출몰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월드컵은 정치해서 해결하지 못한 무엇을 대신하기 위한 상징행위다.(중략) 지식인만이 사유한다는 것은 너무도 고전적인 믿음이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하는 주체는 지식인이 아니라 대중이다. 지식인조차도 대중의 사유를 내면화할 때만 생존할 수 있다. 기적을 바라는 대중, 아니 기적을 창조하려는 대중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정치의 실감을 잃어버린 이들이 지금 신화를 찾아 떠나고 있다.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보건대, 참으로 불길하다. (p114)
 

모두 부자가 되는 사회보다는 가난하지만 모두 행복한 사회가 분명 더 실현 가능한 일임에도 부자의 판타지는 오늘도 리얼리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완전히 소거시키기 위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p147)
 

현실성 없는 기획에서 탈정치성과 무기력한 이데올로기가 발생한다. 이 상황은 정치적 목적의식을 품어줄 수 있는 세계의 소멸을 의미하는데, 이와 같은 세계의 부재는 대중적 저항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원인이기도 하다. (p151)
 

촛불은 시민사회와 국가라는 대립적이면서도 협력적인 관계에 대한 전면적 사고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한다면 탈정치성에서 정치적인 것을 발현시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은 시장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중간계급의 역동성'이었다. 시민사회가 중간계급의 상황이라면, 이 상황을 사회역사적으로 고정시켜줄 중간계급의 국가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p161)
 

2002년 월드컵은 한국 사회의 개인들을 '주체'로 만들어준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월드컵 주체'라고 불렀다. 2002년 이전과 이후는 이 월드컵 주체를 통해 확연하게 구분된다. 이 주체는 1990년대 이후 전면화한 소비주의를 세계관으로 채택하고, '대한민국'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386 주체들과 사뭇 다른 이 주체들은 이념보다도 쾌락을 중심으로 정치성을 구성한다. 말하자면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요구하는 것이다. (p206)
 
  
월드컵 주체는 새로운 정치적 차원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즐거움'이라는 말이 이 차원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키워드다. 즐거움이라는 쾌락 원칙의 범주가 어떤 정치적 폭발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2008년 촛불은 우리에게 훌륭하게 증명했다. 물론 이 즐거움은 평상시 우리의 일상에 조각조각 흩어져있다. 그러난 어떤 과잉의 공간을 만나는 순산, 이 즐거움은 폭발적으로 집단화 할 것이다. (p207)

 

 

YES마니아 : 플래티넘 x******0 2012.04.04.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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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을 일깨워주는 사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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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라 함은 고차원적으로 인류의 지식,신념,행위의 총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고 좀 더 쉽게 굳이 정의를 내려보자면 한 민족이나 사회의 전반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지칭하더라도 크게 무리를 없을 것이다. 그럼 조금 평이한 수준의 정의개념을 들추어 보면 한 사회의 전반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그건 한 사회구성체가 가지고 있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나열대는 거의 모든 것의 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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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라 함은 고차원적으로 인류의 지식,신념,행위의 총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고 좀 더 쉽게 굳이 정의를 내려보자면 한 민족이나 사회의 전반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지칭하더라도 크게 무리를 없을 것이다. 그럼 조금 평이한 수준의 정의개념을 들추어 보면 한 사회의 전반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그건 한 사회구성체가 가지고 있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나열대는 거의 모든 것의 총량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여기에게 정치, 철학, 사회, 경제, 인물등 그 사회 구성원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분야를 망라할 것이다. 단지 지엽적으로 문화라는 개념과는 사뭇 다른 거시적인 범위의 삶이 바로 문화인 것이다. 별것 아니지만 이런 개념이 전제된 상태에서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라는 책을 읽게 될 경우 지엽적인 문화개념에 익숙한 독자들에겐 좀더 효과적으로 저자의 사유의 전개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한국인들의 삶 즉 문화에 대해서 나름의 논거를 가지고 비평을 펼쳐나간다. 물론 어디까지나 저자의 독자적이고 개인적인 사유이기 때문에 책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이와 정반대로 납득하기 힘들거나 강하게 거부감을 표출할 수 있는 사유들 역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독자들 개인적인 프리즘의 위치가 제각각이고 사유의 표출 방식이 제각각 상황에서 저자의 사유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단지 이러한 사유들을 독자 자신의 사유와 한번쯤 비교해 보고 자신의 사유가 어디쯤에 그리고 과연 올바르게 사물이나 사건을 인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체크해 본다는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는 상당한 읽을거리와 더불어 많은 도움(인문학적 소양의 진전등)을 가져 올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상고하더라도 로마제국만큼 최대의 강역과 세월을 영위한 제국은 없었다. 이는 로마만의 독특한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다양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로마제국은 인종,국적,민족,문화등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획일화 내지는 통일화 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던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 구성원들 각자의 다양성을 그대로 수용했기 때문에 대제국이라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존속할 가치가 없고 존속하더라도 그 명이 짧을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지켜봐았다. 이런점을 상고해서 우리는 <이것이 문화비평이다>에서 주장하는 저자의 사유 역시 또 하나의 다양성의 표출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십수년간 대한민국 사회에서 벌여졌던 사건,사고들 그리고 그 이면에 담겨져 있는 문화와 그에 따른 비평들 전반적으로 지나온 시절을 리뷰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러한 사건과 그에 따른 사회 각층의 반응이 제각각일 수 밖에 없는 지에 대한 정답을 이 책을 통해서 찾고자 하면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이 전체주의 사회가 아닌 이상은 저마다 바라보는 시각과 그에 따른 사유는 같을 수 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사유가 옳고 어느 한쪽의 사유가 틀렸다는 이분법적인 사고 보다는 다양성에 근거한 포용적인 사고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책이라고 해야겠다.

l******e 2011.09.30. 신고 공감 0 댓글 0